내물왕 7년[계미383년]

 

3월, 부여(夫余)의 유민(流民) 30호(戶)가 다시 투항해 왔다.

 

부여(夫余)가 왜(倭)와 서로 상통(相通)하여 해마다 그 백성을 받아들여

도성과 시골에 분산시켜 배치하였다.

 

왜신(倭臣) <웅언熊彦>은 아름답고 말솜씨가 좋아 <아이阿尒>와 서로 정을 통하고

그 말을 들어주는 일이 많으므로 국인(國人)들이 이반(離反)하여

혹은 우리에게 오고 혹은 고구려로 가기도 했다.

 

처음으로 호구전(戶口典)을 세워서 백성들의 자모상혼(子母相婚)을 금했다.

 

 

 

<日本書紀 卷九 神功皇后 攝政五十二年 條>

 

 

五十二年秋九月丁卯朔丙子。久氐等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

當飮是水。便取是山鐵。以永奉聖朝。乃謂孫枕流王曰。今我所通海東貴國。

是天所啓。是以垂天恩。割海西而賜我。由是國基永固。汝當善脩和好。聚歛土物。

奉貢不絶。雖死何恨。自是後。每年相續朝貢焉。

 

 

<구저久氐>등이 <천웅장언千熊長彦>을 따라서 이르러,

즉시 칠지도(七枝刀) 1구( 一口), 칠자경(七子鏡) 1면(一面)과

여러가지 중보(重寶)를 바쳤다.

 

 

천웅장언(千熊長彦)이 이내 말하길,

 

"臣의 나라의 서쪽에 水源이 있는데, 곡나철산(谷那鐵山)에서 나옵니다.

 

그 먼 곳은 7일동안 가더라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마땅히 이 물을 마셔 보고, 즉시 이 산철(山鐵)을 取하였습니다.

 

성도(聖朝)를 영원히 받드는 것은 곧 孫{順理}입니다."

 

 

枕流王이 말하길,

 

"지금 내가 해동(海東)의 貴國과 통하는 바는 하늘이 啓하는 바이다.

 

이리하여 (天皇이) 天恩을 베풀어, 해서(海西)를 떼어서 나에게 하사하였다.

 

이 때문에 나라의 기초가 영원히 단단해졌다.

 

그대는 일찍이 和好 닦기를 잘 하였고, 土物을 취렴(聚歛)하여,

奉貢이 끊어지지 않으니, 비록 죽더라도 어찌 恨스럽겠는가?"

 

 

이후부터 매년 서로 朝貢을 이었다.

 

 

 

일본서기 신공황후 섭정 52년조에 나오는 천웅장언(千熊長彦)이 <웅언熊彦>이다.

 

<웅언熊彦>은 침류왕{재위 384년}때 야마토에서 백제에 보낸 사신이다.

 

근구수의 처 <아이阿尒>가 일본서기의 가공의 인물 신공황후인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