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양대제3년{AD386}병술,

 

8월, <용궐龍厥> 등이 백제의 관미성(関彌城)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고국양대제4년{AD387}정해,

 

9월, 좌장군 <해성觧猩>에게 명하여 갈(鞨)軍을 이끌고 関彌城을 공격하게 하였더니,

백제의 달솔 <진가모真嘉謨>와 은솔 <두지豆知>가 와서 고개에서 막아섰다가 패하여

성안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다.

 

이에 성을 포위만 하고 빼앗지는 않았다.

<고국양대제기> 

 

 

진사3년(387년) 봄 정월, 진가모를 달솔로 임명하고, 두지를 은솔로 임명하였다.

 

가을 9월, 관미령에서 말갈과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삼국사기>

 

 

내물왕 11년 화시(火豕:정해387)

 

정월, 부여(扶余)가 <진가막眞嘉莫>을 달솔(達率)로 삼고

<두지豆知>를 은솔(恩率)로 삼아 병관에 소속되도록 하였다.

 

9월, 부여(扶余)가 말갈(末曷)과 관미령(關彌岺)에서 크게 싸웠다.

 

부여(扶余) 여자를 사서 처로 삼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에 앞서 소민(小民)중에 처가 없는 자들이 많이 부여(扶余) 여자를 샀기에

부여가 이를 원망했는데 이에 이르러 그것을 금지시키고

가야민(加耶民)과 서로 혼인하는 것은 그대로 허락했다.

<내물대제기>

 

 

9월 왕은 <진가모眞嘉謨>를 배알하고 달솔로 삼았고,

<한두지韓豆知>를 은솔사로 삼았다.

 

말갈을 쳐서 관령(關嶺)에서 싸웠다.

 

오래동안 포위를 했으나 승패를 결정하지 못하였다.

 

왕은 이내 사지절로 하여금 병사를 이끌고 돌아오게 하였다.

<국로추사> 

 

 

말갈이 고구려의 지방군으로 편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