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대제5년{AD418}무오,

 

정월, <눌기>가 <보해>를 보내 달라 청하여 허락하였다.

 

<마련馬連>이 <보해>와 2녀 1남을 낳고도 <보해>를 따라가지 않았다.

 

상은 부득이 명을 내려 <각언角彦>의 처가 되게 하였다. 

 

2월, 관등을 고쳤다.

 

삼보와 2품은 금화관을 쓰게 하였고,

외·형·병·민·곡을 주관하는 2품下는 은화관을 쓰게 하였고,

신·빈·약·농·축을 관장하는 3품은 은화관을 쓰게 하였고,

위·시·공·평·훈을 관장하는 3품下는 치화관(雉花冠)을 쓰게 하였고,

적·주·선·야·장·직·주·7원을 주관하는 4품은 치화관을 쓰게 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종전과 같게 하였다.


상이 <춘>태자에게 이르길;

 

“선제께서 내게 이르시길 평생 동안 后를 둘만 두고 살라 하셨는데,

나는 이미 그 것을 지킬 수가 없이 되었습니다.

과연 천자의 궁중도리는 어떠한 것입니까?”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천자는, 신하나 백성과 달라서,

널리 후사를 두고 기운을 돋우며 만민을 신하나 첩으로 둘 수 있습니다.

옛 성인은 시중드는 사람을 뽑아서 쓰길 헤아려보니 3천 비접(飛蝶)이나 되었는데,

하룻저녁 짧게 냄새만 맡았습니다.

주상이 과로하면 조종이 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궁궐의 예법엔 정도가 하나만은 아니어서,

后 이하는 많으면 칠팔십 명이었고 적어도 삼십 명은 되었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아예 없었거나 훨씬 많았던 이는 없었나요?”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한 여인에게만 가는 것은 잘 못이어서,

보조하는 이를 두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상이

 

“<동명>께서는 세 명의 후를 두셨고, <광명>께서는 일곱 후를 두셨으며,

<대무>께서는 다섯 후를 두셨소.

짐도 이 들 숫자에서 택하려 하는데, 어찌함이 좋겠소?”라 물었고,

 

<춘>태자가 답하길;

“훌륭한 생각이십니다.”라 하였다.

 

상이 묻기를;

“보조하는 이는 얼마까지 둘 수 있는 것인가요?”라 하니,

 

<춘>이 아뢰길;

 

“7妃 16嬪 28宮을 두시면 하늘의 성수에 맞을 것입니다.”라 하였고,

 

상은 “좋아 보입니다.”라 하였다.

 

상이 또 묻기를

 

“조종의 법도에 용골은 용골과 교접해야 하며 잡색은 취하지 않는다 하나,

근자엔 다른 의견들도 파다한데, 경의 의견은 어떠하시오?”라 하니,

 

<춘>이 답하길;

 

“<복희伏羲>는 자신의 딸 <화>를 후로 삼아서 자식을 스물이나 두었으며,

제(齊)<환>{공}과 진(晉)<문>{공}은

모두 자매 또는 고모{또는, 이모} 및 조카와 혼인하였으며,

이미 성인들의 통상적인 법도가 되었습니다.”라 하였더니,

 

상은

 

“옳거니! 짐도 또한 골육을 귀하게 할 것이며, 다섯 后를 용골로 하고,

일곱 妃는 네 명의 용골과 세 명의 선골로 하고,

열여섯 嬪은 잡색으로 하였으면 하오. 어찌 생각하시오?”라 하니,

 

<춘>은 “훌륭한 생각이십니다.”라 하였다.

 

상이 또한 묻기를;

 

“조종법도가 젊은 나이에는 순사하지 못하게 하고

다시금 이어서 총애를 받게 하였는바,

정리 상으론 그러할지라도 법도 상으론 흠결이 있어 보이는데, 어찌 생각하시오?”

라 하니,

 

<춘>태자가 아뢰길;

 

“지존이신 주상님들은 살리길 즐겨하시며, 천자는 어미도 따지지 않는데,

항차 그 나머지야 어찌하여야 하겠습니까?”라 하니,

 

상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는

 

“결정하였소.”라 하고는,

 

5후 7비를 제도로 정하고는,

중외대부 <연비淵鞴>에게 명하여 그 절차를 정하라 명하였으며,

경총대부 <용경龍莖>에게는 후비로 합당한 종실의 여인들을 선발하고,

림총대부 <강>은 외척들 중에서 비빈으로 합당한 여인들을 천거하라 명하였다. 

 

<천룡天龍>후가 딸 <빈>을 낳았다.

 

 

4월, 상이 손수 후궁 30인을

경총대부와 림총대부가 천거한 여인들 중에서 선택하여, 후궁으로 들이고,

궁전과 방을 정하여 주고 각자에 딸리는 관원도 정하여주었다.

 

상이 친히 골랐는데, 착하고 후덕하며 훤칠하고 고상해 보이는 빈들이 많았고,

교태 있고 예쁜이는 적었다. 

 

상이 <춘>태자에게 이르길;

 

“어려운 일을 해나감에 있어 극기(克己)가 핵심이라 합니다만,

짐의 나이가 이제 막 장년{壮年}이 되었으니 기운만 믿기 쉬운지라

나라의 큰일들을 스스로 다스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오로지 숙부 세 분만을 믿을 것입니다.

 

짐이 과함을 범하거든 기탄없이 직간하여 주셔야 할 것입니다.

 

숙부{<춘>태자}의 처 <천을天乙>과 <서구胥狗>의 처 <천룡天龍>

모두는 천거된 자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으며,

그들 스스로가 감당하길 원한 것이지 감히 뽑지는 않았었습니다.

 

욕망이 있으면 접해보게 되는 것이어서,

지극히 온전한 사람은 그리하지 않을 방도를 구하겠지만,

억눌러도 극기치 못할 욕망도 있겠지요?”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신과 <서구胥狗>는 폐하의 고굉지신인데 감히 이바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실상은 이리하여야 솔선수범하는 것이 되옵니다.”라 하였다.

 

상은 그 말이 가상하여,

이윽고 두 비{<춘>태자의 <천을天乙>妃와 <서구>의 <천룡天龍>妃}를 后로 삼았다.

 

태후가 아들 <담태談太>를 낳았기에,

<용덕龍德>의 처 <호련胡連>을 유모로 붙이고,

<용덕龍德>을 육성대부로 삼아주었다.

 

10월, <눌기>가 <보해>를 보내어 공물을 바치면서 말하길,

<미해> 또한 왜에서 신라로 돌아왔으며, 역시 대풍이 들었다고 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