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지왕 3년 토양(土羊:기미419) 4월, 수우곡(水牛谷)에 큰비가 내려서 물이 솟아 넘쳐 옥릉(玉陵)으로 들어왔다. <호원好原>등을 보내어 물을 막고 수묘인들의 수호(守戶)를 구휼하고 위문했다. 5월. 왕제(王弟) <미해美海>가 뗏목을 타고 도망쳐 돌아왔다. 왕이 교외에 나가서 맞이하고 우식가(憂息歌)를 지음으로써 그를 즐거워 하였다. <치술鵄述>이 6딸을 거느리고 태태궁(太太宮)에서 <미해美海>를 알현하였는데, <미해美海>를 여섯 딸의 주군(主君)으로 삼을 것을 청하자 그를 허락했다. 6월에 <조생鳥生>이 병이 나자 중외(中外)의 선무(仙巫)들에게 명하여 병의 치유를 빌도록 했다.
<제상堤上>의 딸 <자아紫我>와 <녹아綠我>를 <미해美海>의 처로 삼았다. 왕이 <치술鵄述>과 더불어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했다.
7월에 <보미宝美>가 딸 <나해羅海>를 낳자 야왕(野王)이 노하여 그를 버리려고 하였다. 그 (모)후(后)가 황금(黃金)으로 준풍선(駿風船) 2척을 사서 우리 변경으로 호송해 보냈다. <미해美海>는 맞아들이지 않고 모량(牟梁)의 옛 궁(舊宮)에 두었다.
8월에 왕이 <미해美海>에게 명하여 모량(牟梁)에서 <보미宝美>를 맞도록 했다.
9월에 왕이 주칸(州干) 7인에게 상을 내렸다. 모두가 백성들을 보호하고 들을 개척한 자들이었다. <보미宝美>가 <미해美海>를 따라 입궁하여 왕을 알현하였다. 왕이 연회를 베풀고 자의(紫衣)를 내렸다. 성모사주(聖母祠主) <운화雲花>가 졸(卒)하자 그 딸 <우화宇花>로 그를 대신하게 했다.
11월에 <청아靑我>와 <보미宝美>에게 저택을 내렸다. 앞서 <청아靑我>는 <미해美海>를 권하여 <보미宝美>를 맞아들였는데 <자아紫我>가 그를 질투하자 <청아靑我>가 잘 타일러서 서로 용납할 수 있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겨 <청아靑我>와 <보미宝美>를 <미해美海>의 좌우난방(左右暖房)으로 삼아 좋은 저택과 노비를 내렸다. ※ 보미(宝美)의 가계도 아황 = 미추味鄒(292-362) | 素皇 = 급리急利 | 水皇 = 野王(仁德) 志皇 = 물품勿品 | | 三子 = 野姬 제상提上 = 치술 | | 宝 美 = 눌지 - 미해 청아-자아-녹아 <수황水皇>은 <미추>의 외손녀로 367년 <근구수>의 아들인 <인덕>에게 시집간다. <보미宝美>는 <仁德>과 <수황>의 손녀이고 <제상>은 그녀에게 외가로 작은 집 삼촌이다. <제상提上>은 이모인 <수황>과 외질녀 <보미>의 도움으로 <미해>를 탈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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