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대제8년{AD421}신유,

 

정월, 상이 원전(元殿)으로 태후를 찾아뵈었다.

 

 

2월, <춘春>태자가 서하(西河)로 가서 병사를 훈련하였다.

 

가락(加洛)의 <취희吹希>가 사자를 보내와 즉위하였음을 고하였다.

 

 

4월, 魏의 <사嗣>가 <하란賀蘭>의 딸 <탁발托跋>씨를 바쳐왔다.

 

<경鯨>태자가 선사(仙師) <절우折雨>와 <봉의封蟻>를 데리고 가서

<하란賀蘭>에 답을 주도록 하였다.

 

<하란賀蘭>은 해대(觧帶)할 의향이 있는 것 같았으며,

해막(海漠)에서 제와 만나기를 바랐다.

 

이에 상이 허락하고자 하였다. <춘春>태자가 말렸더니,

 

상은

 

“周<목>왕도 단기(單騎)로 가서 곤륜(崑崙)에서 <왕모王母>를 만났소.

이번엔 해막(海漠)의 문 앞에서 볼 것이오.

8월에 만나자고 약속하시오.”

라 하였다.

 

군신들은 위험하다 하였고, 상 혼자서만 느긋하였다.

 

 

5월, <서구胥狗>가 3만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천서(川西)에서 크게 사열하고는

거란 12부락과 해(奚) 5부락을 불러서 그들의 우마와 군정을 징발하였다.

 

<서구胥狗>를 양(梁)왕·진북대장군으로 봉하고,

<화덕華德>을 호위장군으로 봉하였다.

 

 

8월, 상이 <화덕華德>과 함께 개마(盖馬)에서 구려(勾麗)로 들어가

<하란賀蘭>을 월해(月海)에서 만나고 돌아와,

 

<춘春>태자에게 이르길;

 

 

“<사嗣>가 마음에 병이 있어서,

<하란賀蘭>과 표리를 이룬다면 정벌할 수 있을 것 같았소.”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아뢰길;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사嗣>가 비록 쾌차하지 못하여도,

그의 아들 <초稍>가 치욕을 씻으려 할 것입니다.

 

색두(索頭)는 족속 아끼기를 명확히 하는지라 멸망하지 않아왔으니,

섣불리 도모하기 어려우며, 뿐만 아니라 빼앗았다 하여도

밖으로부터 많은 적을 마주해야 할 것이니 지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신라와 백제 그리고 <풍발>도 면전에서는 따르는듯하나

속으로는 따르지 않아서, 어느 날에 변고가 생길 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밖으로 골칫거리를 만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며, 안에서도 그리 해야 할 것입니다.

 

정경(政經)도 말하지 않습니까?

 

멀리 있는 자와는 교류하고 가까이 있는 자는 쳐야 하며,

붙어있는 이들은 떼어놓고 멀리 있는 자들과는 가까이 지내야 하며,

잘 지키고 나서 정벌하고 잘 타일러서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동명>께서 정벌하여 얻으신 것을 <광명>께서는 지켜내셨습니다.

 

폐하 역시 응당 선제께서 이루신 땅을 지켜내시고

남방의 불을 끄고 나신 후에 서쪽으로 가심이 좋을 것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은

 

“숙부의 말씀이 옳으십니다.”라 하고는 일어나서

 

<천을天乙>전으로 가서 <춘양春羊>을 안아주었다.

 

 

수랏상을 대하며, 이르길;

 

“나는 여동생 하나를 당신의 남편에게 주고 싶은데 누가 좋겠소?”라 물었더니,

 

 

<천을天乙>이 아뢰길;

 

“그이는 곡식도 먹지 않는데{풀잎 솔잎 등만 날로 먹고 사는데}

무얼 더 주시려 하십니까?”라 답하였다.

 

 

이에 상은 화를 내며 이르길;

 

“당신은 내 처가 되었는데도 옛 남편을 섬기어 투기하는 것이오?”라 하고는

 

<두련斗蓮>을 <춘>태자의 비로 삼았다. 즉시 명에 따라 합근하였다.

 

 

 

9월, 원전(元殿)으로 가서 국화꽃을 감상하고 퉁소와 거문고 소리를 듣고는

<왕문王文>·<주희朱羲>·<정몽鄭蒙> 등에게 대부의 작위와

매년 먹을 곡식과 채단을 하사하였다.

 

이들 모두는 유사{儒士}들이었다.

 

 

 

10월, 상과 <춘春>태자가 란궁(鸞宮)의 남당에 앉아 국사를 의논하였다.

 

상이 이르길;

 

“지키는 방도로는 응당 부국강병을 위주로 해야 할 것인즉

묘안이 곧 나와야 할 것입니다.”

라 하였더니,

 

<춘>태자가;

 

“상께서는 근면하시니 부국을 이룰 것이며 용감하시니 강국도 될 것이고

아직 검소하지 않았다면 모으면 될 것이고 의로우시니 충성이 있을 것입니다.”

라 답하였다.

 

 

상은 얼굴이 싱글벙글하여져서, 이르길;

 

“숙부의 말씀이 적절하십니다.”라 하였다.

 

 

이로 인해 <천을天乙>에게 명하여 술을 권하게 하고는, 이르길;

 

“내 딸들이 모두 어려서 누이동생을 경에게 처로 드렸습니다.

<천을天乙>보다는 못할 것이란 생각입니다.”라 하였더니,

 

 

<춘春>태자가 아뢰길;

 

 

“<을乙>후는 예쁘긴 하나 덜 질펀하였으며,

<두斗>는 부인의 도리는 잘 지키지만 전혀 질펀하지 않습니다.”라 답하였다.

 

 

이에 <천을天乙>이 <춘春>태자에게 말하길;

 

“내가 당신의 젊은 시절의 처였을 땐 당신에게 교태를 부렸었지요.

지금 당신은 이미 늙으셨는데도,

<두斗>가 힘껏 확실히 당신을 섬기는 것은 상의 명이 무서워서일 것입니다.

어찌 당신에게 교태를 부릴 마음이 있겠소.”라 하였다.

 

이 소리에 상과 <춘春>태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를 파하였다.

 

 

<마련馬連>이 딸을 낳았더니, 상이 찾아가서 물로 닦아주며, 이르길;

 

“너의 어미는 울기를 잘 하였으니, 이름을 <읍泣>이라 하면 되겠다.”라 하였더니,

 

 

<마련馬連>이 상을 툭 치면서 말하길;

 

“당신이 어찌 저를 가지고 농을 하십니까?

저는 운수가 기구하여 남편을 멀리 떠나 다른 이와 가까이 지냈었고,

그런 연후에 나서 가까스로 당신의 딸을 낳았으니, 가련하지 않습니까?

이 딸아이는 복을 받지 못하여 눈물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하였다.

 

 

상은 비를 끌어안아 눈물을 닦아주면서 위안하여 주면서, 이르길;

 

“모후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어찌 그대를 버릴 수 있겠소.

천하가 그대를 섬길 것이며, 모두가 그리하게 할 것이오.”라 하였더니,

 

<마馬>비는 비로소 즐거워하면서,

자기의 딸 <보양宝陽>을 시켜 잠자리를 깔게 하였다.

 

이 때 나이 열다섯이었고, <하夏>태자의 딸이었다.

 

 

<마련馬連>은 나이 열넷에 <하夏>태자의 비가 되어서

아들 <하양夏陽>과 (딸) <보양宝陽>을 낳았는데,

<하夏>태자가 해산(海山)으로 유람을 떠나더니 돌아오지 않았기에

<보해寶海>의 처가 되어 신라로 따라갔었다.

 

<보금宝金>이 억지로 상통하고 후궁으로 들이려 하여

<천성天星>과 서로 다투다가 다시금 <보해寶海>에게 돌아갔었다가,

(신라에서) 돌아와서는 <각언角彦>의 처가 되어 아들 <호언胡彦>을 낳았었다.

 

상이 궁전의 제도를 정하자, <마련馬連>은 자원하여 승은을 입고자 하였으나,

상 역시 그녀가 심하게도 <평양平陽>을 닮아서 총애하기는 보통과는 남달랐으나

동침해주지는 않고 하찮게 여겼었더니,

<마련馬連>은 자신이 예쁘지 않아서 승은을 입지 못한다고 여겨

매일 눈물짓고 살았으며, 승은을 입고 나서는 또한 흡족함에 울었었다.

 

그리하여 <읍泣>공주라 부르게 된 것이었다.

 

 

 

12월, 상과 태후가 란궁(鸞宮)에서 종실과 외척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고,

<춘春>태자를 제(齊)의 왕으로 봉하였으며,

<두련斗蓮>에게는 제(齊)왕의 妃로 삼아 적복(翟服)을 하사하였다.

 

<왕문王文>을 주빈대부(主賓大夫)로 삼았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