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지왕 11년은 화토(火兎:정묘427)의 해이다.

 

2월, <복수福壽>가 <총덕寵德>의 아들 <구희久希>를 낳았다.

 

<총덕>은 <남南>을 깨뜨리고 금관(金官)에 군대를 머물렀는데,

<탕배湯陪>와 <취희吹希>가 그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복수福壽>가 몰래 그와 잠통(潛通)하고는 이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다.

 

왕이 그 소문을 듣고는 <총덕寵德>을 소환하였다.

 

 

5월, 가야(加耶)의 박사(博士) 5인을 불러 입경(入京)시키고,

골문(骨門)의 자제(子弟)들로 하여금 그 문자(文字)를 익히게 하였다.

 

 

7월, <아로阿老>상궁(上宮)이 왕자 호생(好生)을 낳았다.

 

일선(一善){今 구미시 선산군}의 여자 <모례毛禮>가 집안에 토굴(窟)을 만들고

집에 괴인(怪)을 길렀다.

 

<모례毛禮>는 처음에 무당(巫)이 되어서 주의 관리(州吏)가 그를 첩으로 삼았는데

주칸(州干)이 보고는 그를 빼앗았다.

 

<모례毛禮>가 주칸(州干)을 좋아하지 않아

마침내 관리와 더불어 산속으로 도망쳐 살았다.

 

구변(口辯)을 가져서 능히 대중(衆)을 미혹(惑)할 수 있었으니,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모례毛禮> 및 괴인(怪)을 체포하도록 했다.

 

 

10월, <모례毛禮>와 그 무리(徒)들을 크게 수색하였다.

 

 

 

눌지왕 11년(427년) 7월에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든 괴인이 <묵호자墨湖子>이다.

 

이들이 무리를 미혹시켰다는 것은

신라의 선도(仙道)와 다른 불교를 전파하였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어지는 수색에서 체포된 것은 이듬해 2월이다.

 

이들을 살려주는 것은 상궁 <아로阿老>였다.

 

이후 <아로阿老>의 딸 <조생>이 병에 걸렸을 때,

<모례>와 <묵호>의 기도를 허락한 것으로 보아,

<아로> 또한 불교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풀려나는 것은 그  2년 후의 일이었다.

 

불교가 신라에서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사건으로,

이즈음 신라는 왕실에서도 불교를 옹호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