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신왕 8년 겨울 12월에 왕이 사망하였다.
비유왕(毗有王)은 구이신왕의 맏아들이다.
혹은 전지왕의 서자라고도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용모가 훌륭하고 말을 잘 하여 사람들이 따르고 귀중히 여겼다.
구이신왕이 사망하자 그가 즉위하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삼국사기는 <구이신久爾辛(405-480?)>왕이 427년 12월에 사망하였다고 하나
<구이신>은 423년에 퇴위되어 宋으로 들어가고 전지왕이 복위 하였다가
427년 12월에 전지왕과 解씨 사이에서 태어난 <비유毗有(412-455)>에게 양위하고
전지왕은 일본열도의 나라시 갈성현의 치온사에 들어갔다.
少帝 景平 2년(424년)에
<영映>{전지왕}이 長史 <張威>를 보내 대궐에 이르러 공물을 바쳤다.
元嘉 2년(425년)에 태조가 조서를 내려 말하길
"황제가 안부를 묻소.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은 여러 해 동안 충성하고 순종하였으며,
바다를 건너 정성을 다하였소.
義를 사모함이 드러났고 가슴에는 충성스런 마음을 품었소.
작은 배를 타고 麗水를 건너 보물과 폐백을 바쳤소.
그러므로 왕위를 잇게하여 나라를 맡기니,
동쪽 변방의 번(藩)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선대의 업적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시오.
이제 겸 謁者 <問丘恩子>와 겸 副謁者 <丁敬子>를 보내,
내 뜻을 알리고 위로 하노니 짐의 뜻을 헤아리기 바라오" 라고 하였다.
그 뒤 해 마다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리고 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7년(430년)에 백제왕 <여비餘毗>{비유왕}가 다시 조공하므로
<영映>의 작위를 그대로 주었다.
<宋書 高麗傳>
송서는 424년에 전지왕이 사신 <장위>를 파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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