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지왕 15년은 백양(白羊:辛未431)의 해이다.

 

월나(月奈) 아라(阿羅) 야인(野人)등이 고자(古自)를 침벌함으로써,

<탕배湯陪>를 <발차發車>의 남편으로 삼게 했다.

 

<실상實相>에게 명을 내려 <호연好淵>을 대신하여 금관(金官)을 지키게 했다.

 

 

3월, <비유毗有>가 월나(月奈)를 쳐서 그 서남부의 땅을 취하여 군(郡)을 삼았다.

 

월나(月奈)가 도성을 원읍(猿邑)으로 옮기고,

그 아우 <오인吳人>을 보내서 화친을 청하였다.

 

 

4월, 야인(野人)이 3천의 병력을 이끌고 동쪽 변경을 습격하여,

<총덕寵德>의 병력을 격파하고, 들어와 명활성(明活城)을 포위하고

우리의 부녀자를 약탈하였다.

 

<효직孝直>이 실직(悉直){今 삼척}의 군사를 인솔하여 그 배후를 끊고,

<호연好淵>과 <다감多甘>이 남로군(南路軍)을 이끌고서

경도군(京都軍)과 합세하여 그를 공격하였다.

 

그 추장 <만두량晩頭良>과 <불차不次>등을 베어 죽이니,

항복한 자가 천여 명이었으며, 도망쳐 숨은 자들은 모두 바다에 빠졌다.

 

 

5월, 왕이 궁(宮)에서 <만두량晩頭良>의 처(妻) <비사지比斯只>에게 행(幸)하였다.

 

<비사지比斯只>는 절색(絶色)을 지녀 <다감多甘>이 그를 헌상하였다.

 

왕이 궁인(宮人)으로 삼으려 하자 군신(群臣)들이 쟁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명을 내려 군사들의 야녀(野女)를 얻은 자는 첩(妾)으로 삼도록 허락했다.

 

<만두량晩頭良>등은 그 왕(王)의 미움을 사게 된 바로써

우리를 정벌한다고 일컫고는 와서 체류하려한 까닭에 부녀를 이끌고 온것이다.

 

그 군사들이 우리 여자들을 약취하여 난행하였기에 임신한 자가 많았다.

 

 

6월, 투항한 야인(野人)들을 서로(西路)로 옮겨 각기 나누어 성(城)을 쌓도록 했다.

 

 

7월, <섬신蟾神>이 <삼광三光>의 딸 <아리阿利(431-491)>를 낳았다.

 

 

9월, 왕이 남해(南海) 안(中)의 야인(野人)을 정벌하고자 했으나

이 해의 (농작이) 흉년이므로 그를 중지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