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2년{AD434}갑술,

 

2월, 양(梁)왕 <서구胥狗>가 입조하여 자신의 처 <천룡天龍>과 함께

돌아가고 싶다고 청하였고, 허락되었다. 

 

보후(補后) <천을天乙>{64歲}이 월 걸이가 멎지는 않았어도

나이가 많아 아이 낳기가 어렵다 하여 물러나길 청하였더니, 허락하였다.

 

<담윤談允>의 처 <춘풍春風>이 대신하게 하였다.

 

상이 <담윤談允>에게 이르길;

 

“그대는 글은 잘 하나, 휘하의 사람들은 정벌하여 쌓은 공이 없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그대를 어미와 처의 공으로 산다고 하오.

마땅히 틈을 내어 무예에 힘써서

갑옷입고 투구 쓴 무리들이 경멸하지 않도록 하시오.”라 하였다. 

 

 

<비유毗有>가 <눌지訥祇>에게 좋은 말을 보내주었다.

 

宋에서 얻어가지고 씨를 받은 것이라 한다.

 

상은 사축경(司畜卿) <해대觧大>에게 이르길;

 

“요사이의 신마는 옛날의 것과 같지 못하오.

억제하기만 하면 또한 쇠잔하여지게 하잖소.

<발발勃勃>이 보내 온 것으로 종자를 바꾸어보시오.”

라 하였더니,

 

<해대觧大>가 아뢰길;

 

“신이 들은 바로는 魏에 튼튼하고 좋은 말 종자가 있다 합니다.

교역하여 씨를 받았으면 합니다.”

라 하였고, 허락하였다.   

 

 

상이 <서구胥狗>宮으로 가서 <서구胥狗>와 <천룡天龍>이

개마(盖馬)땅으로 돌아왔음에 연회를 베풀었더니,

 

<서구胥狗>가 아뢰길;

 

“魏가 스스로 오가면서 변민들을 위로하여 쟁기질하더니,

진휼함이 정도를 넘어서서 <풍馮>의 서쪽 땅을 잠식하고 있으니,

<홍弘>은 장차 망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울러서, 魏는 <비유毗有>와 사통하고

멀리는 <눌지訥祇>에게 까지 찾아갔으니 그 속셈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조정은, 평화로운 날이 오래 된지라, 마치 문을 중시하는 듯하고 있으니,

武가 점점 스러져가면 낭패가 올 것입니다.

라 하였더니,

 

상은

 

“짐도 그것을 알고 있었소.

 

경은 마땅히 잘 방비하여 짐의 마음이 편안토록 하여주시오.

 

조정 또한 응당 경의 생각에 맞출 것이오.”

라 하였다.

 

이에 선·불·유자들에게도 하명하여

무예를 익혀서 기사를 하지 못하는 이가 없게 하라 하였더니,

이후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간에 널리 이행되었다. 

 

 

 

4월, 상이 남소(南蘇)로 가서 武力 검열을 실시하였다.

 

<풍홍馮弘>이 사자를 보내어 칭신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상은

 

"魏의 (탁발)도燾>가 내게는 그대의 땅을 침입하지 않기로 약속하였으면서

뒷구멍으로는 침식해 들어가고 있다니,

그렇다면 쥐새끼나 고양이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소.

 

요수(遼隧)의 서쪽은 짐이 알지 못하겠으나,

만약  용성(龍城)에 쳐들어온다면 짐이 응당 토벌할 것이오."

 

라 일렀다. 

 

 

 

7월, 선선(鐥善)의 사신이 래조하여 말과 낙타 및 공작을 바치기에,

후하게 위안하여 돌려보냈다.

 

魏가 침입할 뜻이 있음에,

우리가 魏의 형 나라임을 알아 찾아와 구원하여주기를 청하였던 것이었다. 

 

 

8월, 魏가 찾아와서 불로주를 바쳤는데,

서역의 포도즙을 천 년 동안이나 익힌 것이라 하였다.

 

상이 <최호崔浩>의 율령을 보더니만 가혹하다 하였고,

이에 <최호崔浩>는 오랫동안 난감해 하였다.

 

또한, 宋이 <사령운謝霊運>과 <도잠陶潛>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탄하여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르길;

 

“<도잠陶潛>은 탐내지 않고서도 주살됨을 면치 못하였다 하는데,

필시 이런 다스림은 없었을 것이다.”

라 하였다.

 

후에 잘못된 보고였음이 밝혀졌다. 

 

 

 

9월, <풍홍馮弘>이 여인 둘을 바쳐오면서 아뢰길;

 

“이 여인들은 <고高>씨의 후예이어서 마땅히 상국에 바칩니다.”

라고 하였고,

 

상이 이를 물리치자, 주빈대가 <사만의謝萬義>가 아뢰길;

 

“두 나라는 화친하는 사이인데 혼인하기를 물리친다면 예의가 아닙니다.

청컨대 떨어진 궁에 두고 찾아보시지요.”

라 하였고,

 

상은

 

“魏 또한 여인을 바치면서 찾아와 의논하자고 할 것이니,

<홍弘>의 청을 받아주면 魏의 청도 받아주어야 할 것이고,

魏의 청도 응당 받아주어야 할 것이니,

여인을 돌려보내 답하는 것이 양난(兩難)함을 면할 수 있음 아니겠소?”

라 이르고는,

 

삼보들과 열 대가들에게 어찌해야 하는지를 의론해보라 명하였더니,

여러 날이 지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고, 여인은 끝내 안으로 들어왔다. 

 

 

 

10월에 魏가 찾아와서 여인을 바치겠다고 청해왔다.

 

상은 신마 50필과 양 천 마리를 보냈다. 

 

<눌지訥祇>가 황금과 명주로써 <비유毗有>의 딸을 빛나보이게 해주었더니,

<비유毗有>가 또 흰 매{해동청 또는 보라매}를 <눌지訥祇>에게 보냈다. 

 

이해에 선선(鄯善)과 북량(北凉) 또한 여인을 바치겠다고 하더니,

혼인하여 화친하는 풍속이 차츰 잦아졌다. 

 

 

 

 

 

<434년경 고구려의 강역도>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