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12년{단기2777년/AD444}갑신,

 

4월, 동명신상(東明神像)을 魏와 <신라> 및 <백제>에 나누어 보냈다. 

 

왜가 들어와서 금성을 열흘 동안을 포위하고 있다가

먹을 것이 떨어져서 물러나자, <눌지>가 추격하였다.

 

좌우가 궁한 개는 쫓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병법에 쓰여 있다고 말하여도

<눌지>는 듣지 않고 친히 수천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독산의 동쪽에 이르렀다가, 적에게 패하여 장수와 군사들의 반을 넘는 이들을 잃었다.

 

<눌지>는 정신이 아득하여져서 말을 버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왜인들이 몰려와서 여러 겹으로 둘러싸니,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홀연 어지러운 안개가 산을 덮어서 지척을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왜인들은 <눌지>를 잡을 수 없게 되었고,

신이 돕고 있다고 여기어 물러갔다.

 

상이 이르길;

 

“<눌지>의 처사는 가벼이 조처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군왕 된 자들이 따를 바 되지 못하였었다.”

라 말하였더니,

 

<용덕勇德>이 아뢰길;

 

“<눌지>는 과감하기는 하여 장인을 죽였고,

바탕이 어지러운 듯하나 조심성은 있어 큰나라를 섬기고 교린하기에는 민첩하여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엔 능란하였으니, 간사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라 하였다.

 

이에 상이 이르길;

 

“간사함으로도 역시 사람의 목숨을 능히 구할 수 있으며,

병법에 있어서 사술을 꺼려하지 않음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라 하였더니,

 

<왕문王文>이 아뢰길;

 

“성인들은 간교함에는 간교함으로, 정도에는 정도로써 다스렸고,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내외를 두루 살피었으며,

다스림에는 한 가지만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라 하였고,

 

상은 “옳거니!”라 하고는, 더 듣기를 청하였더니

 

<왕문王文>은

 

“작은 이는 작은 이의 분수가 있고, 큰 이는 큰 이의 분수가 있으니,

분수를 지키면서 여유있게 행하면, 간교함으로는 쳐들어올 수 없지만,

정도만을 따른다면 밖으로 쳐나갈 수도 없음입니다.”

라 하였다.

 

이에 상은 무릎을 두드리며 감탄하여 이르길;

 

“맞아요! 맞아!”

라 하였다.

 

 

눌지왕 28년(444)

 

여름 4월에 倭兵이 금성(金城)을 10일 동안 포위하다 식량이 다 떨어지자 돌아갔다.

 

왕이 군사를 내어 그들은 추격하려고 하니 좌우에서 말하였다.

 

“병가(兵家)의 말에 ‘궁지에 몰린 도적은 쫓지 말라.’고 하였으니

왕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십시오.”

 

(그러나 왕은) 듣지 않고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독산(獨山) 동쪽까지 추격해 싸우다가

적에게 패하여 장수와 사졸 가운데 죽은 사람이 반이 넘었다.

 

왕이 허겁지겁 말을 버리고 산에 올라가니 적이 몇 겹으로 에워쌌는데,

홀연히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지척에 있는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적들이

“귀신이 도와주는구나!”                                                                                   

 

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독산(獨山)은 향교산(鄕校山)이라고도 하는데

신광현 동쪽 2리의 벌판 가운데 우뚝 솟아 있다고 한다.

 

그 위에토성이 두 겹으로 있고 안에 우물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산이 왜구의 침입 루트상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경북 포항시 신광면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왜인, 왜병은 한반도 남부해상세력 집단을 말하며,

일본 열도세력 집단을 남당은 야인이라 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