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왕은 461년에 임신중이던 황부인(皇夫人) 韓媛 곤지를 일본열도에 보내는데

황부인은 규슈로 가는 도중에 일본 규슈 사가현의 각라도(加唐島)에서

무녕왕(武寧王) <사마斯摩(461-523)>를 낳았다.

 

이 황부인은 갈성 <한원韓媛(423-468))>이라 하는데

대마도에 있던 갈성습진언의 손자 <옥도숙녜>의 딸이다.

 

갈성 한원(韓媛) 황태부인(皇太夫人)은 468년에 서거했다.

 

雄略부인의 황후로 기록된 갈성한원 황태부인이 사실은 개로왕의 황부인이었고,

그래서 곤지왕에게 황태부인이었던 것을 雄略왕의 황후라고 조작하고

개로왕의 업적을 雄略왕의 업적으로 조작해서

일본서기는 힘들게 왜 5왕(讚王, 珍王, 齊王, 興王, 武王)을 지어냈다.

 

곤지왕은 규슈 경도군(京都郡) 광국성(廣國城)으로 들어갔다.

 

지금의 경도군 가리다정(苅田町) 광국성(光國城)이 된다.

 

가리다에 어소소산(御所所山) 석성이 있었다.

 

곤지왕은 규슈에서 왜흥왕(倭興王)으로서 일본을 통치하고

대화조정으로 들어가 淸寧천황으로 즉위한다. 

 

473년경 곤지왕은 대화조정 동부에 있던 이세(伊勢)의 조일랑(朝日郞)을 쳐서 없앴다.

 

규슈 구류미시 고려성을 지키던

允恭천황의 둘째인 조일풍성(朝日豊盛)의 무리도 제거한 것이다.

 

475년 장수대제의 공격으로 한성의 개로왕이 참살당하였다.

 

곤지왕은 이제까지 살려두었던 雄略왕을 살해하고,

규슈는 武寧왕 <사마斯摩>에게 넘겨주었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