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44년{AD476}병진,
<문주文周>가 <해구觧仇>를 병관좌평으로 삼아서
대두산성(大豆山城)을 고쳐쌓고 한수(漢水) 북쪽의 백성들을 옮겼다.
탐라(耽羅)가 래조하려는 도중에 <문주文周>에게 가로막혔고 위로받고 설득당하여
탐라(耽羅)의 주인은 좌평으로 봉함을 받게 되고 사신 자신은 은솔(恩率)이 되었다.
탐라(耽羅)는 선제(先帝){영락대제}의 시절에 찾아와 항복하고
다시금 매년 공물을 바쳐왔었는데 또다시 지금에 이르러 두절된 것이었다.
이즈음에 <호덕好德>이 <문주文周>가 宋으로 보낸 사신을 바다에서 사로잡아서
그 사신이 宋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더니,
<문주文周> 또한 탐라(耽羅)의 사신을 가로막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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