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年 春正月 王移居月城 

<삼국사기>

 

소지왕10년(서기 488) 춘 정월, 왕이 월성(月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妙心夜夜 抱后而臥 常言曰 朕實神帝 而毗處邪氣也
汝以吾妻 不除邪氣 此腹中天子 無以貴也
善兮曰 妾爲郞君 不避水火 况爲吾腹之兒 敢不如敎
 
妙心曰 吾臣有善刺者 可入琴匣 使處宮中 夜入琴匣 置汝枕頭
待汝抱毗處而臥 出匣刺之殺
不發喪 矯詔召智度路毗已剡臣等 悉誅之 而後
乃以遣詔 立我爲天子 以汝爲皇后 不亦好乎
 
善兮聞之乃懼曰 毗處荒於厚凰 不與我好 固有罪矣
他皆我骨肉 豈忍多誅耶
妙心知善兮之不忍 乃使其徒 入衛天宮 欲自行之
 
期以上元夜 天宮初夕之時 帝幸天泉亭 有鵲乱噪相鬪
命駐輦而搜之 得書於池中曰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帝謂剡臣曰 寧其二人死 不若一人
剡臣曰 一人者君也 不開不可 乃開視之
有夜入天宮 先射琴匣之語
剡臣乃奏 天宮荒淫之罪
帝亦可之 乃皈天宮
 
后不知而喜 欲抱帝而媚
帝乃挽弓 射枕頭琴匣 血流出外 有人號呌而出 
智度路與剡臣 引兵入衛 曵出匣人視之 乃妙心奴也
大搜宮中 妙心以女服 在蘭陵宮嬉戱
曵出之 盡捕其徒下理方
 
帝命剡臣公治之 辞多連宮中
智度路公曰 二人者妙心與奴也 吾妹雖有罪 天后也 刑不上於大夫 况天后乎 汝其止之
剡臣公乃奏於帝曰 謀逆之事 天后實不知 而嬖幸則有之
帝乃賜妙心死
 
命后出宮 蘭陵英陵 亦皆坐事而出 遂廢日月仙
以璽宮厚凰爲天后 迎帝爲地后
命智度路公 摂行天子事
剡臣公與叔欣公 爲左右輔 以運大政
帝忌舊宮之妖 移居月城新宮 
<박창화 필사본 위화진경> 
 
<묘심妙心>이 밤마다 后를 안고 누워 항상 말하기를

“짐은 사실 신제(神帝)이고 <비처毗處>는 사악한 기운이다.
너는 내처로 사악한 기운을 없애지 않으면 이 뱃속의 천자는 귀할 것이 없으리라.”

<선혜善兮>가 말하기를

 

“첩은 낭군을 위해서도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하물며 내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는 감히 가르침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묘심妙心>이 말하기를

 

"칼을 잘 쓰는 내 신하가 금갑(琴匣){거문고 상자}에 들어갈 수있으니,
궁중에 들여보내 밤중에 금갑(琴匣)에 들어가면 너의 침대 머리맡에 두어라.
네가 <비처毗處>를 안고 눕기를 기다렸다가 상자를 나와 찔러 죽일 것이고,
발상하지 않고 가짜 조서로

<지도로智度路>, <비이毗已>, <염신剡臣> 등을 불러 모두 죽인 후
유조(遣詔)로 나를 천자로 세우고 네가 황후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선혜善兮>가 이를 듣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비처毗處>는 <후황厚凰>에게 빠져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으니 죄가 있으나,

다른 모든 이들은 내 골육인데 어찌 많이들 죽게 하겠는가?”

<묘심妙心>은 <선혜善兮>가 차마 결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 무리를 불러들여 천궁(天宮)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이를 행하고자 하였다.
 
정월 대보름날 밤, 천궁(天宮)의 초저녁 일과시간에,
帝가 천천정(天泉亭)에 행차하였는데, 까치가 시끄럽게 울며 서로 싸웠다.

연(輦){임금의 수레}을 잠시 멈추고 이를 찾아보았다.

못 가운데에서 편지를 주워 읽으니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는다.”

라 하였다.
 
帝가 <염신剡臣>에게 말하기를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 한사람이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염신剡臣>이 말하기를 한사람은 임금이니 열어보지 않을 수없습니다.

 

이에 열어보았더니,

“밤에 천궁(天宮)에 들어가 먼저 금갑(琴匣)을 쏘라”

고 쓰여 있었다.

<염신剡臣>이 이에 천궁(天宮)의 황음의 죄를 아뢰었다.

帝 또한 그러하다하여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后가 이를 모르고 기뻐하며 帝를 안고자하며 아양을 떨었다.

이에 帝가 활을 당겨 베갯머리 쪽의 금갑(琴匣)을 쏘니 피가 밖으로 흘러나왔고,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나왔다.

<지도로智度路>와 <염신剡臣>이 병사를 데려와 지키게 하고

거문고 집에서 사람을 끌어내어보니 바로 <묘심妙心>의 종이었다.

궁중을 모조리 뒤지니 <묘심妙心>이 여복을 하고 난릉궁(蘭陵宮)에서 희희닥 거리며 놀고 있는 것을 끌어내고 리방(理方)에 이르기 까지 그 무리들을 모조리 체포하였다.
 
제가 <염신剡臣>공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였더니,
궁중에 많은 이들이 연루되었다고 아뢰었다.

 

<지도로智度路>공이 말하기를

 

“두 명이란 묘심과 그 종입니다.

내 누이가 비록 죄가 있으나 천후이니 대부에게도 벌할 수없는 데

하물며 천후를 벌하겠습니까? 그대는 이를 멈추시지요.”

 

<염신剡臣>공이 이에 제에게 아뢰기를

 

“역모이나 천후는 사실 알지 못하였으니 폐행이 혼자 한 짓입니다.”

제가 이에 <묘심妙心>에게 사형을 내렸다.
 
后에게 명하여 궁을 나가라하고,
<난릉蘭陵>, <영릉英陵> 또한 모두 관련되어 내쫒아 마침내 日, 月仙을 폐하였다.

 

<새궁璽宮> <후황厚凰>을 천후로, <영제迎帝>를 지후로 삼았다.

<지도로智度路> 공에게 명하여 천자의 일을 섭행하라 하였고,
<염신剡臣>공과 <숙흔叔欣>공을 좌, 우보로 삼아 국정을 맡으라 하였다.

 

帝가 옛 궁의 요망함을 싫어하여 월성(月城) 신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사건을 삼국유사에서는 사금갑(射琴匣)이란 제목으로

설화의 형식을 빌어 궁중에서 벌어진 간통사건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신라 소지왕(비처왕)때 일어난

국왕 암살기도사건이었으며, 역모사건이었다.

 

삼국사기는 이 역사를 지워버렸고,
삼국유사는 쥐와 까마귀 그리고 돼지가 등장하는 설화로 만들어버렸다.

 

당시 천주사의 법(天柱寺法)을 맡고 있던 묘심이라는 도인(道人)이,
소지왕의 여인인 선혜를 꾀어 국왕 암살을 시도한 사건이다.

다행이 이들 무리에서 밀고자가 있어 소지왕은 암살을 모면하게 되고,
묘심과 자객만 죽이게 된다. 

삼국유사의 내용과는 달리 당사자 중 하나인 선혜는 궁을 쫓겨난 것에 그쳤다.

그리고 소지왕은 궁을 월성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을 또 다른 필사본 소지명왕기(炤知明王紀)에서는

묘심옥사(妙心獄事)라 기록하고 있는데,
이미 한해 전부터 묘심이 군마를 준비하고 거사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지도로>가 눈치 채고 군마를 해체하라 하였는데,
아마도 <지도로>가 지속적으로 <묘심>을 정탐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계획을 그의 첩자를 통해 알아낸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는 이 중대한 사건의 내용은 싹 지워버리고,
아무른 이유도 없이 월성으로 옮긴 것만 기록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신라에는 불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차돈(異次頓)이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이차돈이 바로 이때 사형당한 묘심의 외손자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