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59년{AD491}신미,

 

정월, 평양(平壤) 대궁(大宮) 정전의 큰 돌기둥이 저절로 부러지더니,

그 속에 큰 지네 세 마리가 죽어있었다.

 

두 마리는 암컷이었고 한 마리는 수컷이었으며,

암컷은 누렇고 수컷은 록색이었다.

 

상이 명을 내려 그것을 갈게 하였고, 닭으로 하여 먹더니 정력이 점점 좋아졌고,

하루를 <하양河陽>·<장萇>·<초운椘雲>·<모대牟大>의 여동생{眞花} 등과 함께

거문고를 마음껏 타면서 술을 내리길 즐거움으로 삼았다.

 

魏 帝가 이 소식을 듣고 불로주 네 항아리를 보내며 말하길;

 

“신산의 영약을 가려서 담그고, 푸른 자라의 긴 발로 북두자루 연못의 선도를 따서

왕모의 높은 솜씨로 빚었으니, 한 잔을 마시면 만사가 구름 같아 보이고,

두 잔을 마시면 천년이 하루아침 같아집니다.”

라 하였다.

 

이에 상이 웃으며 <하양河陽>에게 이르길;

 

“너의 아비가 나에 대한 효성이 이와 같으니,

비록 허언인 줄은 알지만 아니 마실 수 없구나.”

라 하고는,

 

<하양河陽>을 품고 누워서 입에 따라 넣으라고 명하였더니,

그 맛이 달고 향은 맑고 차가웠다.

 

<하양河陽>은 스스로는 여러 잔을 마시고 상에게는 조금만을 주었다.

 

감국이 이를 보더니만, 꾸짖어 이르길;

 

“너는 나이도 어린 것이 왜 불로주를 마시느냐?”

라 하였더니,

 

공주가 감국에게 교태지어 아뢰길;

 

“저는 당신과 함께 오래 살았으면 합니다.”

라 하였다.

 

이에 상은 웃으면서 <하양河陽>의 아랫볼을 매만지고,

 

이르길;

 

“이 볼이 이렇게 예쁘니 필시 내게 잘생긴 손자를 낳아 줄 것이다.

비록 불로주를 흠뻑 마셔서, 남은 것이 얼마 없어도 서운해 할 필요 없다.”

라 하였다.

 

감국도 따라 웃었다.

 

이윽고 상이 <하양河陽>에게 명하여 감국과 함께 장막 안으로 들어가라 명하였다.

 

상은 <욱호勗好>와 함께 바라보면서 즐겼다. 

 

상이 내외의 선인과 유자들의 독경을 잘하는 딸들을 욕탕 밖으로 불러서

경을 외우게 하고 춤을 추게 하고는

불로주와 하선탕(霞仙湯)을 마시고 취하여 누워있었다.

 

감국 또한 곁에 있었더니, 사령(使令)들은 정사를 살필 수 없었다.

 

<경鲸>后와 <욱호勗好> 및 <연흡淵洽> 등이 대신하여 정사를 살폈더니,

많은 일이 막혔었다.

 

 

하6월, 큰비로 물이 넘쳤다.

 

상이 <하양河陽>과 <장萇> 및 <모대牟大>의 여동생과 용산의 온탕으로 들어갔다.

 

비가 흩뿌리기에, 감국 또한 <욱호勗好>와 함께 비를 무릅쓰고 온탕으로 가다가

시골의 관사로 들어가 잠시 머물렀더니,

큰 두꺼비가 작은 개구리를 등에 업고서는 부르며 울고 있었다.

 

작은 개구리의 소리는 크고 큰 두꺼비의 소리는 작았다.

 

이윽고 온탕 관사에 다다랐더니, 큰 이무기가 작은 규룡과 포개져 있었고,

규룡이 이무기를 먹고 있었으며, 이무기는 거의 죽어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상{감국}이 <욱호勗好>에게 이르길;

 

“좀 전엔 큰 놈의 울음소리가 작더니만, 이번엔 큰 놈이 작은 놈에게 먹히고 있소.

그러한즉 큰 것이 작은 것 만 못하오.”

라 하였더니,

 

<욱호勗好>가 아뢰길;

 

“좀 전의 큰 놈과 지금의 작은 놈은 모두 암컷이네요.

 

수컷이 몸을 바쳐서 작은 놈 여럿을 먹이니,

그 소리가 비록 작아도 능히 우두머리일 수 있음입니다.

 

수컷들은 대략적으로 음란한 소리에 즐거워하나 봅니다.”

라 하였다.

 

감국이 입궁하여 상에게 그 얘길 드렸더니,

 

상이 이르길;

 

“내가 곧 일어날 수 없게 될 것 같구나.”

라 하였는데,

 

감국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하였다.

 

아마도 상이 <하양河陽>과 상통하여 짙은 사랑을 나누다가 정기가 손상되었음이었고,

그리하여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모대牟大>의 사신이 도착하여 아뢰길;

 

웅천(熊川)이 크게 넘쳐서 2백 여의 가옥이 떠내려가고,

농사지은 곡식이 여물지 않아서, <모대牟大>의 백성이 떠돌게 되었고,

월성(月城)으로 들어간 이들이 6백여 가가 되며,

<모대牟大>는 그들을 돌아오게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9월, 상은 <하양河陽>과 <욱호勗好>를 데리고 황산(黃山)으로 가서

평양릉(平陽陵) 앞에서 곡을 하고, 이르길;

 

“내가 죽거든 여기에다 장사하였다가 어머니와 합골하여 주시오.”

라 하였다.

 

이해에 국화가 하얗게 피었는데 

 

상은 황산(黃山)의 행궁에 머물면서 매일 <하양河陽>과 함께 주색에 빠져있었다.

 

<욱호勗好>가 말렸으나 듣지 않았다.

 

12월 7일, <하양河陽>의 침소에서 죽었다.

 

이때, 큰 눈이 닷새나 내려서 도로는 모두 끊겨있었으며,

<하양河陽>은 상이 돌아가신 것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욱호勗好>가 일찍 일어나 가보았다가 처음으로 발견하였고,

감국을 불러서 발상하였으며,

재궁을 평양의 광혈로 옮겨서 육탈을 기다렸다가 합골하였다.

 

감국은 황산(黃山) 행궁에서 즉위하였다. 12월 15일이었다.

 

공경들은 큰 눈으로 인하여 참석하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十月 麗君巨連 死
連 獾心狼慾 熊大虎胖 一食一羊 好兵貪淫 有子百人
其少子 有助多者 娶于讃加氏 甚美
生子羅雲 連以爲冝子 而奪之爲妾
助多由此 而病死 
連 悔之 乃以雲爲嗣 賛加亦以寵 專內政
 
連 年漸老 疑猜多怒 雲恐有變 囚連于宮中 数月而死
乃盡逐連臣 而立 
逃皈于我 言其可伐之狀 諸將請伐之
國公曰 勿幸人之不幸 而須備人之不備
命增倉于沙伐 及三年山 
<소지명왕기> 
                         

 

(491년) 10월, 고구려왕 거련이 죽었다.

 

<거련>은 이리와 같은 욕심과 곰과 범처럼 큰 몸집으로,

한 끼에 양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전쟁을 좋아하고 여자를 탐하니 자녀만 백 명이었다.

그 막내아들 <조다助多>가 <찬가讃加>씨에게 장가들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아들 <라운羅雲>을 낳자, <거련>이 의자(冝子)로 삼고 그녀를 뺏어 첩으로 삼았다.

<조다助多>가 이로 인하여 병들어 죽었다. 

 

<거련>이 이를 후회하여 <라운羅雲>을 후사를 삼았고,

<찬가讃加> 또한 총애를 입어 내정을 장악하였다.
 
<거련>이 점차 늙어가자 의심과 시기로 자주 화를 내니,
<라운羅雲>은 변고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거련>을 궁중에 가두었는데 몇 달후 죽었다.

 

이에 거련의 신하들을 모두 내쫒고 즉위하였다. 

(신하들이) 우리에게 도망 와서 죽여 마땅한 상황을 말하니,
장수들이 그를 정벌하자고 청하였다.

 

국공(國公)이 말하기를

 

“남의 불행을 즐기지 말고 남의 허술함을 대비해야 합니다.”

명하여 사벌(沙伐)삼년산(三年山)에 창고를 늘렸다.

 

 

 

 

<조다助多>는 <가란嘉蘭>과 <거련>사이에 태어난 아들이고
<가란嘉蘭>은  北魏 <탁발사拓跋嗣>의 딸이다.

 

고구려사는 <조다助多>가 북위의 <풍馮>태후와 눈이 맞아 자식을 낳자

<풍馮>태후의 정부(情夫)가 독화살로 죽였다고 하고

신라사는 <조다助多>의 처 <찬가讃加>를 장수대제가 뺏어 첩으로 삼자

그로 인하여 병들어 죽었다고 한다.

 

장수대제가 며느리를 첩으로 삼았다는 것인데

고구려사 장수대제의 기사를 살펴볼 때

장수대제는 태자 <조다助多>를 魏에 보내어 魏의 동정을 살피도록하였으며

<라운羅運>을 감국황제로 명하여 정치를 맡기고

<라운羅運>과의 일체의 마찰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신라사가 과장하여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