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호(土虎=戊寅)년(A.D. 498)

 

二月 以魏花郞爲太子舍人

<소지명왕기>

 

 

 

 

※ 위화(魏華)의 가계도 

 

 

順實 <소문국의 후손> = 靑我           = 美海(39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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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牟梁(434-) = 登欣 - 助里  = 白欣

                            |                  |

智度路(437-514) = 蓮帝            剡臣(447- ) = 碧我 <소문국의 후손>

                       |                                   |

                  慕珍(480-540)                   魏華(487- )

 

 

 

 

화랑의 뿌리는 풍월도인 선도(仙徒)이지 청소년 수련단체가 아니다.

 

신라가 불교와 유교를 수용한 후 호국단체가 된 것이다.

 

이 선도(仙徒)들이 마침내 양도(洋徒)를 중심으로 통합되는데,

그 양도(洋徒)는 금강대모를 받드는 <허을許乙>{乙公}로부터 시작되고,

성동(城東)과 소문(召文)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화랑의 시작은 <위화魏華(487- )>로 부터라고 전하고 있는데,

그 <위화魏華>가 바로 신라에 의해 패망한 소문국의 후손이다. 

 

<위화魏華>가 제 1대 풍월주가 된것이 54살 때인 진흥대제 원년 540년이다.

 

<염신剡臣(447- )>의 아들이 <위화魏華(487- )>이며,

그가 태어날 때 선도(仙徒)를 처음으로 통합한

소문국의 후손 <순실順實(398?-448)>이 다시 태어났다고 하였다. 

 

소문국은 비록 서기 245년 신라에게 패망하였지만,

신라에서 감국(監國)으로 들어온 <산을山乙>을 받아들임으로서,

그들의 후손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루게 한 정신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 소문국의 후손 <위화魏華>가 있었고,

그를 후원하였던 소문국의 후손 황후 <연제蓮帝>{迎帝}가 있었고,

그 황후의 아들인 소문국의 후손 法興大帝 <모진慕珍>이 있었던 것이다. 

 

 

 

 

 

 

- 원화(源花)와 화랑(花郞)

 

 

花者樹之真明也 白者光之真明也 故曰真花也
萬物之中 人爲花 萬人之中 仙爲花 萬仙之中 神爲花 
<위화진경> 
 
꽃은 나무의 진명(真明)이고, 밝음은 빛의 진명(真明)이다.
따라서 진화(真花)라 하는 것이다.
만물(萬物) 중에서 사람이 화(花)이고,
만인(萬人)중에서 선(仙)이 화(花)이고,
만선(萬仙) 중에서 신(神)이 화(花)이다. 

 

 

萬物之中 人爲花 萬人之中 仙爲花
今我太子 仙之眞 今我妃宮 花之源
源花抱璧 拜眞仙 眞仙授花 抱源花
<위화진경>  

 

만물 중에는 사람이 꽃이요, 만인 중에는 선이 꽃이다.
바로 우리 태자가 선(仙)의 진(眞)이고, 바로 우리 妃宮이 화(花)의 원(源)이다.
원화(源花)가 옥구슬을 안고 진선(眞仙)에게 절하니,

진선(眞仙)이 꽃을 받고 원화(源花)를 안았다.

 

神者 大真之光明
智者見之 愚者不見 賢者奉之 愚者背之 
<위화진경> 
                          
신(神)은 대진(大真)의 광명(光明)이니,
지혜로운 자는 보고, 어리석은 자는 보지 못한다.
현명한 자는 받들고, 어리석은 자는 배척한다.

玄駒 四月丑日 仙徒奉碧花 于仙院眞殿 奉太子于仙院元殿
行源花淨儀 郞主其事 有節次皆合規矩 
<위화진경>
 
현구(玄駒)(지증 3년, 502) 4월 축일,
선도仙徒가 <벽화碧花>를 선원진전(仙院眞殿)에,

태자를 선원원전(仙院元殿)에 받들었다.
원화정의(源花淨儀)를 행하여 랑郞{위화}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니,

절차가 모두 규칙에 맞았다.
 
.........................
  
太子源花 就玉座共坐下言 吾花郞吾仙徒 均霑仙雨 得無憂苦
 
태자와 원화(源花)가 옥좌(玉座)로 나아가 함께 앉아 말씀을 내리시기를

 

“내 화랑, 내 선도, 고루고루 선의 비를 적시어 근심과 괴로움이 없음을 이룰지어다.”

 

 

仙徒奉碧花 爲源花 以召文 爲花之源也
或曰太子爲花主 故妃爲花之源也 
<지증대제기>
 
(지증 3년, 서기 502년)
선도(仙徒)가 <벽화碧花>를 원화(源花)로 받들었다.

소문(召文)을 화(花)의 근원으로 여긴 것이다.
혹 말하기를 태자가 화주(花主)가 되었기에 妃가 화(花)의 원(源)이 되었다고 한다.
 
......................... 
 
八月 命魏花 行嘉俳祭 于南桃
太子爲之 發羽林軍 盛其儀 以錦衣飾花母碧我 
 
8월, <위화魏華>에게 명하여 가배제(嘉俳祭)를 남도(南桃)에서 행하라 하였다.
태자가 이를 위해 우림군(羽林軍)을 출동시키고,
비단 옷으로 화모(花母) <벽아碧我>를 장식하여 그 의식을 성대히 하였다.
 
.........................
  
十月 ................
仙徒奉碧花 行白羊大祭 于明活山
太子命 魏花爲花郞 
  
10월, ..............
선도(仙徒)가 <벽화碧花>를 받들어 명활산에서 백양대제를 행하였다.
태자가 명하여 <위화魏華>를 화랑(花郞)으로 삼았다.
 

 

 

화랑이나 원화에 쓰인 화(花)라는 글자는

선도(仙道)에서 말하는 보다 심오한 뜻이 있다.

 

화(花)라는 글자의 뜻을 모르고는 화랑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나무의 결정체는 꽃이 되는 것이고
빛의 결정체는 밝음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중에 사람이 그 결정체인 것이고,
그 모든 사람들의 결정체가 선(仙)이고,
그 모든 선(仙)의 결정체가 신(神)이라는 것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자 하는 것이고,
사람은 선(仙)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고,
선도(仙徒)는 신(神)이 되고자 함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선(仙)을 수행하여 신(神)이 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삶이라는 것이다.

 

화(花)라는 말은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원화와 화랑은 원화정의(源花淨儀)의 행사에서 나왔다.

 

즉, 이때부터 원화와 화랑이라는 말이 시작된 것이다.

 

원화는 <벽화碧花(485-)>로부터,

화랑은 <위화魏華(487- )>로부터 시작되었다. 
 
<벽화>는 만물의 으뜸인 사람이고

태자는 만인의 으뜸인 선(仙)이고
태자는 진선(眞仙)이고 <벽화>는 원화(源花)이고
벽화의 남동생 <위화>는 화랑(花郞)이고,
벽화의 어머니 <벽아>는 화모(花母)가 되는 것이다.  

 

 

소지 마립간이 죽고 지증 마립간이 즉위할 즈음,
소지의 천궁 <후황厚凰>도 죽어 <연제蓮帝>로 이어졌는데,
원래 태자였던 <후황厚凰>의 아들 <분종芬宗>을 <연제蓮帝>가 폐위시키고,
자신의 아들인 <모진募珍(480-540)>{법흥대제}을 태자로 세우게 된다. 

 

그 때가 바로 서기 501년 4월의 일이었다.
 
<후황厚凰>의 아버지이자 <연제蓮帝>의 남편인 <지도로>의 반대는 통하지 않았다. 

 

<연제蓮帝>는 이를 강하게 밀어붙인 후,
자신의 고향인 소문국 출신의 <위화魏華>를 앞세워

통합된 선도(仙徒)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태자비인 <후황厚凰>의 딸 <정황淨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벽화碧花>를 태자인 <모진募珍>과 어울리게 하여

원화정의(源花淨儀)라는 대대적인 선도의 행사를 통하여,
그 세력을 확고히 한 것이다. 
 
원화와 화랑이 이로서 시작된 것이고,
이어서 8월과 10월, 가배제와 백양대제를 통해 다시 한 번 그 세를 과시하는데,
공식적으로 <벽화碧花>가 원화가 된 것은 506년 4월 원화정의를 통해서 이고,
<위화魏華>가 화랑이 된 것은 506년 10월 백양대제를 통해서 이다.

 

<연제>와 그의 아들 <모진>은 <벽화>와 <위화>를 내세워
선도를 그들의 편으로 끌어들인 후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나갔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