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흥대제 4년(AD. 517) 백계(白鷄=丁酉)

야인(野人)이 <계덕契德>을 쫓아내고 <발치發治>를 세웠다.

 

장군 <이등伊登>이 전쟁에서 패하여,

왕이 칠성제(七星弟){마복칠성}를 사면하여 주었다.

 

<이등伊登>이 말하기를

 

“둘러싸임을 당하여 힘써 싸웠으나 배가 파손되어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신(家臣) <뇨위淖威>가 업고 잠수를 하여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수하 장졸들은 모두 물고기 밥이 되었으니

얼굴을 들고 살수 없어 목을 매어 죽고자 하였으나,

<뇨위淖威>가 힘써 멈추게 하며 말하기를

 

‘주군의 몸은 곧 폐하의 몸이니, 어찌 감히 사사로이 몸을 훼손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여 신의 잘못을 깨닫고 이에 배로 이르게 된 것입니다.

 

폐하에게 죄를 지었으니, 신을 가련히 여기어, 죽지 않으면 군기를 기피하는 바입니다.

 

신에게 자진하도록 허락하여 경계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왕이 자진함을 그치게 하며 말하기를

 

“너는 기병에 능숙하고,

물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지 않아 그런 연유로 가지 않으려 하였지만,

짐이 너를 그곳으로 보냈고, 또 그들의 선박이 모두 높고 크며,

우리의 전선들은 노(혹은 배)가 낡고 작아

네가 능히 선전했음에도 어찌 너의 죄가 되겠느냐.

 

군벌(軍罰)을 받을 자는 충성을 다하지 않는 자인데,

짐은 너의 충성함을 알고, 또 짐의 고굉(股肱, 팔다리)이다.

 

어찌 감히 스스로 짐의 팔뚝을 다치게 하려느냐?

 

너의 어머니가 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짐이 (어머니를) 입궁토록 하여 식사를 내릴 터이니 서로 얼굴을 봄이 가당하다”

라고 하였다.

 

 

드디어 <홍수洪壽>를 불러 <이등伊登>을 안아 들어오도록 하였다.

 

<뇨위>의 작위를 더하여 내마(奈麻)로 하였다.

 

 

 

野人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한반도남부 해상세력은 아니므로

대마도에 신라계의 <계덕契德>이 <발치發治>에게 패하여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이등(伊登)이 대마도 정벌전에서 패하였고

이 당시 일본의 조선기술이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는 기사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