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AD526}<안장>8년,

 

춘정월, 습(霫)왕 <거민巨敏>이 유연(柔然)의 <두병頭兵>과 <오리吳利>을 데리고

동쪽으로 찾아와서 배알하고 세폐(歲幣){신년하례선물}를 바쳤다.  

 

<두락주杜洛周>가 혈산(穴山)석현(石峴)을 쳐서 빼앗고는

송형(松陘)에서부터 2만의 무리를 이끌고 내려와 거용관(居庸関)을 쳤다.

 

<원담元譚>은 패주하였으며, 행대별장 <최충철崔忠哲>의 목을 치고

군도관(軍都関)에 의지하였더니,

<상경常景>은 별장 <이거李琚>를 도독으로 삼았다.  

 

북도대도독<심深>{魏 廣陽王}은 <휘徽>{魏 城陽王}>의 처와 평상 통정하였던지라,

<휘徽>의 근본인 <호胡>태후의 세력은 <심深>을 불러들이고

<양진楊津>이 대신하게 하였다.

 

이때, <선우수례鮮于修禮>・<곡률斛律>・<낙양洛陽>・<목자牧子> 등이

군병을 일으켰더니 <이주영爾朱榮>이 <낙양洛陽>과 <목자牧子>를 깨뜨렸다.

4월, <완琓>태자가 魏에서 돌아와 말하길;

 

“<정엄鄭儼>과 <서흘徐紇>이 <호胡>태후와 더불어서

간교한 도적이 벌떼 같이 일어나게 만들었으니 아마도 망할 것이며,

필시 <두락주杜洛周>・<이주영爾朱榮>・<갈영葛榮>의 무리가 점차 흥성할 것입니다.”

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고환高歓>은 어떠하오?”

라 물으니,

 

답하길;

 

“<환歓>이 <두杜>와 <주朱> 사이에 끼어서 힘을 펴지 못하고 있음인데,

재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라 하였다.

 

상이 명을 내려 황금 천근을 <고환高歓>에게 보내주었더니,

<고환高歓>은 크게 기뻐하며 입조하였다.

 

이때, <진관晋冠>은 서도(西都)에서 부유하기로는 으뜸이었으며,

엄청 예쁜 딸이 있었는데 칠보로 단장하여 높은 봉우리에 데려다 놓고는,

8층으로 두왕(梪王) 구곡강정(九曲江亭)을 짓고,

흰 모래와 푸른 솔 그리고 기이한 꽃과 아름다운 풀로 정상까지를 꾸며놓았으며,

사람을 시켜 이 예쁜 딸을 틀림없어 보이는 남장을 시켰으며,

어떠한 남자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러는 중에 천신이 하강하여 총애를 내려주길 바랐었다.

 

상이, 한밤에 쳐다보니 등촉이 찬란한지라 알아차리고는, 미행하여 찾아갔더니,

정말로 우아하고 소박하며 여유롭고 고요하였으며,

거문고를 타서 학이 춤을 추게 하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선의 취향이었다.

 

승은을 베풀고는 그녀를 <봉희峰姬>라 이름 하였다.

 

그 시절에 부호들은 딸을 바치고는 싶었어도 어찌 할지를 몰랐었는데,

<진관晋冠>은 상의 취향을 알고 있어서 이러한 수를 써서 상의 승은을 입게 하였고,

종척들에게도 후하게 실어 보내어 친밀하여 지기도 하였으며,

아울러서 <두락주杜洛周> 및 <고환高歓> 등과도 상통하여

오가기를 끊이지 않게 하였던 것이었다.

 

<원의元义>의 처가 <담복談福>과 상통하다가 들통 났다.

 

이에 <담복談福>이 우리에게로 도망하여 와서 말하길;

 

“<노희盧僖>의 딸이 곧 혼인초야를 맞이할 지경에,

<신궤神軌>가 <호胡>태후를 시켜서 그 혼인을 멎게 하더니만 그녀를 탈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신궤神軌>와는 편하지 않게 되어서 귀의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상은, 이 말을 믿을 수 없어, <복>을 림부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굉>이 전사하였다.

10월, <명농明穠>이 웅진성(熊津城)의 지붕을 고치고 사정책(沙井柵)을 세우고는

가야에 침입하여 약탈하였더니, 신라와는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  

 

<원홍업이 <수례修禮>를 죽이고 에 투항하였더니,

<우문태宇文泰>는 <갈영葛榮>을 좇아 들어가서 <홍업洪業>을 참하였다.
 

 

 

 

해족(奚族)은 대개 흉노(匈奴)의 별종이다.

 

거주지는 선비(鮮卑)의 옛 땅이니 바로 동호 (東胡)의 경계로서

당나라 장안에서 동북쪽으로 4,000여리 떨어져 있다.

 

동쪽으로 거란(契丹)과 접하고 서쪽으로 돌궐 (突厥)에 이르며

남쪽으로 백랑하(白狼河 )까지 이르며, 북쪽으로 습()에 이른다.

 

영주(營州)에서 서북쪽의  요락수(饒樂水)부터 그 나라에 이른다.

 

뛰어난 병사는 3만여명이며 다섯 부족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부족마다 사근(俟斤) 한 사람이 있다.

 

풍속은 돌궐과 비슷해서 항상 물과 풀을 쫓아다니며 목축을 생업으로 삼아 옮겨다니며

일정한 거처가 없다.

 

머무는 곳은 융단 장막이며 수레를 사용하여 군영을 만드는데

항상 500명을 두어 지키도록 한다.

 

이 밖의 부락은 모두 산간 계곡에 흩어져 있으므로 세금이 없다.

 

사람들은 화살로 사냥을 잘하며 거란과 자주 전쟁을 벌인다.

<구당서(舊唐書) 권199 북적열전(北狄列傳) 해()>

 

 

 

 

실위(室韋)는 거란(契丹)의 별종이다.

 

노월하(峱越河)의 북쪽에 거처하니, 그 나라는 경사에서 동북쪽 7천리에 있다.

 

동쪽은 흑수(黑水靺鞨), 서쪽으로는 돌궐(突厥)에 닿고,

남쪽으로는 거란(契丹)에 접하고 북으로는 바다 (海)에 이른다.

 

그 나라는 군장 (君長)이 없고, 큰 수령(首領) 17명이 있는데,

모두 「막하불(莫賀弗)」이라 호칭하니,

 대대로 관리하여 다스리며 돌궐에 복속되어 있다.

 

병기로는 각궁(角弓)과 효시(矢)가 있고,

활을 매우 잘 쏘며 때가 되면 모여서 수렵을 하고 일을 마치면 흩어진다.

 

그곳 사람들은 땅에 붙박혀 살며, 부역이나 세금이 없다.

 

혹은 작은 집을 지어 가죽으로 그 위를 덮고 서로 모여 거처하는데

수천 가구에 이르기도 한다.

 

나무를 깍아 쟁기를 만드는데 금속으로 된 날은 부착하지 않으며

사람이 끌어 경작하며 씨를 심으니 소를 이용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여름이면 안개와 비가 많고 겨울에는 서리와 싸라기눈이 많다.

 

가축으로는 개와 돼지가 알맞기에 기르고 잡아 먹으며

그 가죽을 사용하여 물두질한 가죽을 만들어 남녀가 모두 공통으로 옷을 지어 입는다.

 

머리는 풀어 늘어뜨려 왼편으로 여미고

집안이 부유한 자는 목덜미에 다섯 빛깔의 온갖 구슬을 찬다.

 

시집가고 장가드는 법도에 남자가 먼저 여자의 집으로 가서  

3년동안 노역(役力)을 해주고 그로 인해 그 신부를 맞이하여 들인다.

 

노역의 날짜가 모두 차면 여자의 집에서 재물을 나누어주게 되고

그러면 부부가 같은 수레를 타고서 북을 치고 춤을 추며 함께 돌아온다.

 

오환(烏丸)의 동남쪽  300여리에는 또  동실위(東室韋)가 있는데,

노훨하(峱越河)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강은 동남쪽으로 흘러 나하(那河)와 합해진다.

<구당서(舊唐書) 권199 북적열전(北狄列傳) 실위(室韋)>

 

 

 

 

말갈(靺鞨)은 곧  숙신(肅愼)의 땅이니,

후위(後魏)때에는 이를 물길(勿吉)이라 하였다.

 

경사(京師)에서 동북으로 6천여리 밖에 있다.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서쪽은 돌궐(突厥)과 접하며,

남쪽은 고려(高句麗)와 경계하고, 북쪽은 실위(室韋)와 인접해 있다.

 

그 나라는 모두 수 십부(部)나 되는데,

각각 추수(酋帥)가 있어 더러는 고려 (高句麗)에 부용(附庸)되어 있고,

더러는 돌궐(突厥)에 신속(臣屬)되어 있다.

 

그런데 흑수말갈(黑水靺鞨)이 가장 북방에 있으면서 제일 강성하여

늘 그 용맹을 과시하므로 항상 이웃 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풍속(風俗)은 모두 머리를 땋는다.

성격이 사나워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없으며,

젊은 자는 귀(貴)하게 여기고 늙은 자는 천시(賤視)한다.

 

집이 없고 모두 산간이나 물가에 의지하여 움을 파고

그 위에 나무를 걸쳐서 흙으로 덮는데,

모양은 마치 중국(中國)의 무덤과 같으며, 한곳에 모여서 산다.

 

여름에는 수초(水草)를  따라 나오고, 겨울에는 움 속으로 들어가 산다.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군장(君長)을 세습한다.

 

습속(習俗)에 문자(文字)가 없다.

 

병기(兵器)로는 각궁(角弓) 및 고시(矢)가 있다.

 

가축은 돼지가 많아 부유한 집은 수 백마리가 되며,

그 고기는 먹고 가죽으로는 옷을 지어 입는다.

 

죽은 자는 땅을 파고 묻는데,

시신(屍身)을 그대로 흙에 묻으므로  관렴(棺斂)의 도구가 없으며,

그가 타던 말을 잡아서 주검 앞에 놓고 제사한다.

<구당서(舊唐書) 권199 북적열전(北狄列傳) 말갈(靺鞨)>

 

 

 

 

습() 흉노의 별종이며, 황수(潢水) 북쪽에 기거하며

또한 선비(鮮卑)의 옛 땅으로서 그 나라는 경사의 동북쪽   5천리에 있다.

 

동쪽으로는 말갈과 접하고 서쪽은 돌궐에 이르며,

남쪽은 거란에 이르고 북쪽은 오라혼(烏羅渾)과 접하고 있다.

 

땅은 둘레가 2천리이며 사면에 산이 있어서 그 나라의 경계를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활로 수렵하며

뛰어나고 붉은 가죽으로 의복의 가장자리로 선을 넣은 것을 좋아하며,

부인들은 구리 팔가락지를 귀하게 여겨,

옷의 깃 아래위로 작은 구리 방울을 매어다는데, 풍속은 대략 거란과 같다.

 

도륜홀근(都倫紇斤) 부락이 있어 4만여 가구수에 날랜 군사가 1만여명이다.

<구당서(舊唐書) 권199 북적열전(北狄列傳) 습()>

 

 

 

 

오라혼국(烏羅渾國)은 아마도 후위 (後魏)때의 오락후(烏洛侯)일 것으로

지금 역시 그들을 오라호(烏羅護)라고 일컬으니,

그 나라는 경사의 동북쪽 6,300여리에 있다.

 

동쪽은 말갈과 더불어 접하고 서쪽은 돌궐과 접하고,

남족은 거란(契丹)과 접하고, 북쪽은 오환(烏丸)과 접하고 있다.

 

풍속은 말갈(靺鞨)과 같다.

<구당서(舊唐書) 권199 북적열전(北狄列傳)오라혼국(烏羅渾國)>

 

 

 

<고구려 주변국 위치도> 

 

 

 

<北魏 6鎭 위치도>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