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A.D. 528) 황원(黃猿=戊申)

二月 命擇骨門俊才十二人 荒宗年十七居文之甲 西力夫居武之甲 異次頓居仙之甲

皆授舍人職 賜衣馬奴子 以獎力學之風 于中外

 

2월 골문의 준재(俊才) 12명을 골라 뽑도록 명하니,

황종(荒宗)은 나이 17세로 문(文)에서 으뜸이었고,

서력부(西力夫)는 무(武)에서 으뜸이었고,

<이차돈異次頓(507-528)>은 선(仙)에서 으뜸이었다.

 

모두 사인(舍人)의 직을 받았다.

 

옷과 말과 사내종을 내려, 이로써  학문에 힘쓰는 바람을 나라안팎에 권장하였다.

 

 

三月 五日 異次頓自云 與大日如來 講論眞經 天下萬國 當行西域佛法 帝命兩門議之

 

 

四月 仙門効 異次頓異瑞 當斬 不許 命羽林軍解散 各院仙徒五千人

設眞經大會 于別洞 帝與天宮 親受眞言 于仙王 命中外大小人民 勿行異敎

舍人覺德素 與異次頓好合 內奉佛道 外拜樹王 柳眞責之 曰

“汝爲我夫 何不信 我父之道 而拜西方金像乎”

覺德曰 “當春花發 當秋木落時也奈何”

柳眞曰 “松菊凌霜 義士持節 隨時遷變 安得爲骨門之宗柱乎”

覺德曰 “仙佛一也 非所以變也 大日火也 樹王木也 父子相傳也主勿疑之”

柳眞乃 以其言 告于帝 帝召魏花 問之 魏花曰

“方今金氣大盛 西學遍滿中土 其潮早晩來矣 此輩皆聰兒也 特先聞耳 不必罪之”

帝乃釋之

六月 羽林仙軍作亂 圍花亭 請斬異次頓 甚急 帝憂之 以御衣弊異次頓 而叱亂軍

軍勢危急 異次頓自出 曰

“臣被陛下聖恩 得保 今日死 亦何恨臣當殉佛 以立新敎 陛下以金神之年下降

乃西方彌勒化神也 臣雖死 而佛敎大興矣”

遂拜伏 而退亂軍 遂斷其頭 有白血如乳湧出丈餘 一軍皆驚執釰者先斃 其餘皆昏仆

帝命覺德 收其尸葬之 金色滿其身 面目如生 帝乃詔令 仙徒右佛者 勿禁之

各隨其好 而修其眞 以成其遂

比助夫科花稟祖主 斗花兵部令 河沛妻靑好以其女納斗花

 

七月 行異次頓齋 于剡光仙院 帝命覺德 着梁使所獻袈裟 焚西域檀香 有異鳥來鳴

<금천대제법흥진왕기>

 

 

 

법흥왕 15년, 처음으로 불법이 시행 되었다.

 

처음 눌지왕 때, 중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 일선군에 왔었다.

 

그 곳 사람 모례가 집안에 굴을 파서 방을 만들고 그를 편히 모셨다.

 

이 때 양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의복과 향을 주었으나

임금이나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용도를 알지 못했다.

 

이렇게 되자 관리에게 향을 주어 여러 곳을 다니며 물어보게 하였다.

 

묵호자가 이를 보고 그 이름을 말해주면서

 

"이것을 태우면 향기가 피어나고, 그 정성이 신성한 곳에 이르게 되오.

소위 신성이란 3보(三寶)를 일컫는 것이니,

첫째는 불타(佛陀)요, 둘째는 달마(達摩)요, 세째는 승가(僧伽)라오.

만일 이것을 태우며 원하는 바를 기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을 것이오."

라고 말하였다.

 

그 때 왕의 딸이 병으로 위독했었다.

 

왕은 묵호자로 하여금 향을 태우며 서원하게 하였다.

 

왕녀의 병이 치유되었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묵호자에게 예물을 후하게 주었다.

 

묵호자가 물러 나와 모례를 보고 예물을 주면서

 

"나는 지금 갈 데가 있어 작별코자 한다"

라고 말했다.

 

잠시 후에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 때가 되어 아도['阿道'를 '我道'로 쓰기도 한다.] 화상이라는 사람이

시자 세 사람과 역시 모례의 집으로 왔다. 그의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다.

 

그는 몇 년 동안 살다가 아무런 병도 없이 죽었다.

 

그의 시자 세 사람이 그 집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불경과 계율을 강독하니,

가끔 불법을 신봉하는 자가 나타났다.

 

이 때에 이르러 왕도 역시 불교를 흥하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불교를 믿지않고 반대가 많았으므로

왕도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근신 이 차돈이[혹은 처도라고도 한다.] 왕에게

 

"청컨대 소신의 목을 베어 여러 사람들의 분분한 견해를 하나로 모으소서"

라고 말했다.

 

왕은

 

"본래 불도를 흥하게 하려는 것인데,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고 대답하였다.

 

이차돈은

 

"만약 불도가 시행된다면 소신이 죽더라도 유감이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자 왕은 여러 신하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모두

 

"요즈음 중의 무리를 보면, 머리를 깎고 이상한 복장을 하였으며,

말하는 것이 기괴하니, 이는 영원히 진실한 도가 아닙니다.

이제 만약 그들을 방치한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까 염려되오니,

저희들은 비록 중죄를 당할지라도 감히 명령을 받들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차돈은 홀로

 

"지금 여러 신하들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무릇 비상한 사람이 있은 후에야 비상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불교의 심오한 경지를 들어보면, 이를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왕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강경하여 이를 꺾지 못하겠고,

너만이 혼자 견해가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 두 편을 모두 따를 수는 없다."

라고 말하고,

 

마침내 형리로 하여금 그의 목을 베도록 하였다.

 

이차돈이 죽음을 앞두고 말했다.

 

"나는 불법을 위하여 형벌을 받는다.

만일 부처의 영험이 있다면 내가 죽고나서 반드시 기이한 일이 있을 것이다."

 

이차돈의 목을 베자, 목을 벤 곳에서 피가 솟아 나왔는데, 그 색깔이 젖빛처럼 희었다.

 

사람들이 이를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불사를 비방하거나 헐뜯지 못하였다.

 

[이 기록은 김 대문의 [계림잡전]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한내마 김 용행이 지은 아도 화상비의 기록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삼국사기>

 

 

 

<이차돈(507-528)>은 <위화랑(487-)>이 그의 처 <옥란>을 통하여

<묘심妙心>과 <란릉蘭陵>사이에서 태어난 <식란>과 사통하여 507년에 태어났다.

 

<란릉>은 <묘심>과 <선혜>가 일으킨 역모의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고 자결한 여인이다.

 

사인(舍人) <각덕覺德>이 이차돈과 어울려 지내며 불도를 옹호하자,

그 아내인 <유진柳眞>이 이를 법흥왕에게 고발한 사건에서,

<위화랑>이 <이차돈>을 옹호하고다. 

 

선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아들이 불도를 주장하고,

또 세상의 흐름이 그리 돌아감을 <위화랑>은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라를 지배했던 선도를 대신하여 불도점차 신라를 지배하게 된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