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AD532}<대장>2년,

 

춘정월, 병인일 초하루에

상이 <초>태후와 함께 용산(龍山)온궁(溫宮)에서 조례를 받았다. 
 

 

<고환高歓>이 <업>을 공격하며 땅굴을 파고 나무기둥을 박아서

그 기둥에 불을 질렀더니 성이 무너져 땅속으로 꺼져 내렸다.

 

17일엔 업()을 빼앗고 <유탄劉誕>을 사로잡았으며,

<원랑元朗>은 (鄴)으로 옮겼다.

 

<고환高歓>은 자신이 승상・주국(柱國)・대장군이 되고,

아들 <징>을 표기대장군을 삼았더니, 나이 열한 살에 능히 싸움에 임하였다.

 

이때 <환>의 나이는 서른일곱이었다.

 

그의 처 <루>씨는, <루사덕師德>의 피붙이로,

근력이 엄청 세어서 능히 <환>을 도왔으며,

진을 치거나 말 타고 달리는 것이 나르는 것 같았다.
 

<공>은 <조>의 딸 <매>를 처로 삼았으며,

<세륭世隆>은 <조>・<천광天光>・<도율度律> 등과 함께 임금을 바꾸어 세우고

서약하여 서로 간에 친목을 도모하였다.

 

<곡사춘斛斯椿>과 <하발승賀拔勝>은 이들을 도모하고자

<세륭世隆>에게 <조>와 <천광天光> 등 모두를 낙양(洛陽)으로 불러 모아서

함께 <고환高歓>을 토벌하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천광天光>이 장안을 나서려 하자, <하발악賀拔岳>이 간하길;

 

관중(関中)에 진을 두어 근본을 굳건히 한 다음,

날랜 군대를 나누어 보내 다른 무리와 합세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나아가면 이길 수 있고, 물러나더라도 지켜낼 수 있습니다.”

라 하였다.

 

<천광天光>은 이 말을 따르지 않고 장안을 출발하여 (鄴)에 다다랐으며,

<조>는 진양(晋陽)에서, <도율度律>은 낙에서,

<중원仲遠>은 동도(東都)에서 모두들 (鄴)으로 모여들어서

군대를 합쳤더니 20만군이 되었다.

 

원수(洹水)로 와서 진을 쳤더니,

<고환高歓>이 <고오조高敖曹>와 출격하여 이들을 대파하였다.

 

<조>는 진양(晋陽)>으로 달아났고, <중원仲遠>은 동도(東都)로 달아났다.

 

4월, <곡사춘斛斯椿> 등이 <세륭世隆>・<천광天光>・<도율度律> 등을 죽여서

그 목을 <고환高歓>에게 보냈더니,

<고환高歓>은 낙으로 들어가서 <공恭{節閔帝}>을 유폐하고

<수{孝武帝}>를 세웠다.  

 

좌보 청하공(淸河公) <곡춘谷瑃>이 작위가 올라서 태보・상주국(上柱國)이 되었다.
 

 

 

5월, <고환高歓>이 문하외성에서 <공恭>을 짐독으로 죽였다. 나이 35살이었다.

이 이를 절민제(節閔帝)라 하며 <굉>의 조카이었다.

 

모든 벼슬아치들이 모여서 각별한 예의로 장사하여 주었다.
 

 

 

6월,  태보・상주국이었던 청원공 <곡춘谷>이 나이 69살에 죽었다.

 

<춘>은, 용모가 아름다워 태종{明治帝}을 섬기게 되었으며,

용양신(龍陽臣)이 되어 오랫동안 궁중에 있으면서 대부의 재물과 보화를 관리하였다.

 

또한, 천부령(泉府令)으로 있으면서 여러 번 금・은・동전을 주조하기도 하였다.

 

처와 딸 및 여동생도 상의 총애를 받아 후궁에 줄줄이 머물렀다.

 

권력이 <곡춘谷瑃>집안의 내외{남자와 여자들}에게 쏠렸었다.

 

그러나, 사람됨이 공손하며 조신하였고 단정하고 깔끔하였으며,

다른 사람들과 아랫사람들을 아꼈고,

사정이 급한 이가 있으면 그 곤궁함을 구휼하기도 하였으며,

자손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부모에게는} 효도하고 {형제간에는} 우애로 지내고

{나라엔} 충성을 다하라고 하였더니, 사람들이 그를 현명하다고 칭송하였었다.

 

하지만, 규방 문을 단속하지 않아 아래 위를 가리지 않고 치붙음이 무상하였더니,

마음 편히 먹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었다.

 

모은 재물도 많아서 수만금이 되었고,

황금을 땅속에 묻어두어 자손을 위한 것도 백만금이 되었으며,

따져보면 궁중의 진보들도 <춘>에게 돌아간 것이 심히 많았었다.

 

그의 조상은 <병>태자 후예 <장>이어서,

황후금척 및 대수장과 70근 금어 및 옥마 등을 집안에서 여러 대를 전하였고,

혼백이 쇠락하고 빈한해졌어도 그것들을 지켜냈고 팔지 않았었다.

<춘>의 아비 <겸>이 비구니를 처로 얻어 <춘>을 낳았더니,

 

꿈에 <추모>가 찾아와 이르길;

 

“내가 <정공鄭共>을 너에게 주어 아들이 되게 하겠노라.”

라 하였기에, 초명을 <공태수共太守>라 하였었고,

하사받은 성과 이름이 <곡춘谷瑃>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곡>씨는 크게 일어났다.

 

<춘>은 밖으로는 검소해 보였어도 내면은 호사로웠다.

 

집안에는 많은 미녀를 모아두어서 낳아놓은 자녀는 수백 인이 되었으며,

모두들 미려하고 명민하였다.

 

형제숙질 간에 서로 혼인하여 좋은 씨앗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오로지 후궁으로 들어간 이들만 황상들의 자손을 낳아 줄 뿐이었다.

 

딸 <비>가 상의 명령으로 <왕훈王勳>에게 하가하였는데,

비록 <훈>이 통정하였어도 그의 정기가 이르지 못하게 하여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였다.

 

상이 이 말을 듣고 <비>가 <훈>의 자식을 낳지 않음을 책망하였더니,

 

<비>가 아뢰길;

 

“첩의 집안 딸들은 <왕>씨의 자식은 낳지 않습니다.

단지 <곡谷>씨의 아이를 낳을 뿐 다른 사람들의 아이는 낳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상께서 이리 명령하시니 아이를 낳겠습니다.”

라 하고는,

 

궁리 끝에 <춘>과 합방하여 아들 <표>를 낳았다.

 

그 아이의 외모가 <훈>을 닮지 않았고,

그 용모와 말하는 품새나 행동거지가 <춘>과 여일하였더니,

 

<훈>이 이를 심증으로 알아차리고 말하길;

 

“이 아이는 내 처의 동생이오.”라 하였다.

 

<왕王>황후가 죽어 <훈>이 받는 총애가 쇠하여지매,

다시금 후궁으로 들어가서 여러 왕자들과 상통하여 아이를 낳았었으니,

<훈>의 처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훈>은, <비>가 궁인이 되자, <비>를 다스릴 수는 없어졌고,

단지 <비>에게 절제를 받을 뿐이었었다.

7월, <고환高歓>이 <조>를 치고 진양(晋陽)을 빼앗아

대승상부(大丞相府)로 삼았고,

<조>는 수용(秀容) 땅으로 패주하여 <해>왕 <두출>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고환高歓>이 아들 <징>을 시켜서 비단과 명주 및

귀한 노리개와 마름질 한 말가죽 그리고 붉은 옥 등을 바치며,

자기는 <고루高婁>태자의 후예라고 하면서 주변을 지키는 신하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상이 후하게 대접하여 돌려보냈다.
 

 

 

11월, <魏>가 <호胡>태후를 장사하였다.

 

<순>태자가 가서 그들과 함께하였다.

 

상이, <화양華陽>황후와 함께 서쪽 전각에서 어깨를 드러낸 채로

{조의를 표하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이르길;

 

“나는 재색이 그대의 어미와 같은 딸을 하나 낳았으면 하오.”라 하였다.

 

이에 <화양>이 아뢰길;

 

“폐하, 어찌 재색을 말씀하십니까?

어미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도,

떼거리 놈들에게 내돌려 능욕을 당하고 나서 물속에 던져졌으며,

죽어서도 몸이 더럽혀졌었습니다.

이러할진대, 어찌 닮을 일이겠습니까?

첩은 그리 되기를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슬픔이 남아 있는 채 자식을 잉태하면 상서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라 하였으나,

 

상은 듣지 않고 후를 품어 안고 장막으로 들어가서 하루가 다하도록 합환하였으며,

후는 감히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호胡>태후가 물에 던져졌음은,

창을 꼬나든 무리들에게 내돌려 간음을 당하면서도 목숨은 건지고자 하였었으나,

끝내는 그리 되지도 못하고 시신으로 물가에 버려진 것이었음이고,

얼굴과 눈이 살아있는 듯하여,

어부가 거룻배 안으로 들여서 또한 음행하고는 궁둥이 살과 머리 터럭을 베어 갔다.

이런 일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고환高歓>이 딸을 <수>에게 처로 주었다.

 

이에 상이 이르길;

 

“<이주영爾朱榮>이가 딸을 <자유子攸>에게 주고 나서 죽음을 당하였는데,

<환>이가 또 <영>이한테서 배우다니 죽음을 당하고 싶단 말인가!"

라 하였다.

 

이에 <륭>태자가 아뢰길;

 

“신이 알기에는 <고환高歓>이는 사람됨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모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술한 듯하지만 치밀하고, 능대능소하기 때문입니다.”

라 하였다.
 

<초운椘雲>태후가 상의 아들 <금>태자를 낳았다.

 

상이 친히 닦아주고 위로하면서,

 

이르길;

 

“환갑이 된 나이에 이리도 훌륭한 아이를 낳았으니,

비록 기쁜 일이지만 감히 기쁘다는 말을 못하겠소.”

라 하였더니,

 

태후가 제를 껴안아 입을 맞추면서,

 

말하길;

 

“부부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데, 당신은 무슨 말씀이시오?”

라 하였다.

 

상은 못이기는 듯 태후가 아이를 낳은 곁에서 밤을 지냈다.
<안장대제기>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