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AD537}<대장>7년,

 

춘정월, 정유일 초하루,

<문장文藏>의 처 <연화淵華>가 상의 딸 <당>공주를 낳아서, 조례를 미루었다.  

 

상이 우산릉(牛山陵)으로 가서 安藏大祭를 행하여

한왕(漢王){恪 太子}夫妻를 위안하였다.  

 

 

<고환高歓>의 군병이 포판(蒲坂)에 다다랐다.

 

<우문태宇文泰>는 <환歡>과 맞싸우지 않고 작은 관문을 몰래 빠져나가

<두태竇泰>를 공격하여 죽였다.

 

<환歡>은 하(河)가 얇게 얼어 구원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고오조高敖曹> 혼자만은 앞으로는 향할 곳이 없어서

상락(上洛)을 공격하여 빼앗았다.

 

그러나 화살을 세 곳이나 맞아 상처가 심하였기에 락주(洛州)로 돌아갔다가,

끝내는 무너지자 <태泰>에게 귀의하였다.

 

<태泰>는 괴리(槐里)에서 신성한 옥새를 얻자 크게 사면하였다.
 

 

3월, 동궁이 <은>공주와 함께 군과 읍을 순행하여 백성을 진휼하고 치료하였다.

 

이 시절, 창고엔 10년 치의 양식이 있었고,

의원에는 10번이나 쓸 수 있는 약재가 있었으니,

설사 가물고 황충이 일어도 백성들은 아무도 굶지 않았으며,

병이 들어도 많은 이를 구할 수 있었다.  

 

우산(牛山)에다 안장탑(安藏搭)을 5층으로 세웠다.

 

6월, <고환高歡>이 분양(汾陽) 천지(天池)에 이르렀더니

기이하게도 돌들이 점괘 문양을 숨기어 솟아있었는데,

여섯 왕과 물귀신 셋을 숨기고 있는 것이 낙서(洛書)와 관련된 조짐이었다.

 

랑중 <두필杜弼>이 <환歡>에게 선위 받으라고 꼬였더니,

<환歡>은 지팡이를 높이 쳐들어서 그를 쫓아버렸다.

7월, <고환高歡>이 <이해李諧>를 <소연蕭衍>에게 보냈다.

 

<연>이 함께 얘기를 나누고 나서, 크게 놀라며 말하길;

 

업()에도 뛰어난 인재가 있으니, 이제부터는 남과 북이 좋게 지내면서,

반드시 재주와 지위에 맞게 예를 표하고 선물도 하면서 지극히 존중합시다.

말만으로 잘 된 것은 잘 되었다하여도 잠시만의 잘 되었음일 뿐이오.”

라 하였다.  

 

<독고신獨孤信>과 <양충楊忠>이 <梁>에서 나와 <태泰>에게 귀의하였다.

 

<신信>은 부모를 산동(山東)땅에 내버려두고 마음에 두지도 않은 채,

 

말하길;

 

“주군을 섬기면서 두 마음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라 하였다.

 

<연>은 <태泰>와 <환歡>이 서로 다투게 해놓고,

그들의 후미진 곳과 그들의 뛰어난 점을 살폈다.
 

 

8월, <태泰>{西魏}>가 <환歡>{東魏}>에게 귀의하였기에,

꾸준히 농사하던 <우근于謹>을 전봉으로 삼고,

또한 유연(柔然)을 시켜서, (합쳐져 힘이 커진) <환歡>을 치게 하였다.
 

<소연蕭衍> 아육탑(阿育塔)으로 나가서 삭발하고

무애회(無礙會)를 열어서, (서로를) 크게 용서하였다.

 

<우문태宇文泰>가 괴리(槐里)의 신성한 옥새를 취한 것,

<고환高歡>의 육왕삼천(六王三川)의 건,

<두병頭兵>의 천산(天山) 선인(仙人) 건,

<연>이 탑을 짓고{황기사(皇基寺)아육탑(阿育塔)을 짓고} 삭발한 건,

 

이 모두는 불경스러운 일이었고, 그것들에 미혹되었으니,

개돼지 무리이었다고 할 만하였음이다.  

 

<강음江陰>공주가 <양의덕楊義德>에게 하가하였다.

9월, <태泰>가 유연(柔然)과 혼인을 약속하였다.

 

유연(柔然)은 <란릉蘭陵>과 혼인하고 나서도 배신하고

<환歡>의 분양(汾陽) 삼퇴(三堆)를 침략하였다.

 

이에 <환桓>이 출격하여 쫓아내고,

측근들을 불러서 그를 진정시키고 말 잘 듣게 할 방도를 상의하였더니,

 

모두들

 

유연(柔然)은 동쪽의 황상에게는 복종하고 있으니,

동쪽 황상의 조서를 얻을 수 있다면, 싸우지 않고도 진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 하였다.

 

<환歡>이는 정말로 그렇겠다고 여기어,

<이정李挻>을 시켜 찾아와서 보물 및 말과 향 및 약재를 바치고,

다시금 딸을 바치겠다고 청하였다.

 

이에 상이 이제 늙어서 장가들 수 없다고 사양하였더니,

 

<정>이 아뢰길;

 

“폐하께서는 춘추가 오히려 넉넉하시고 용체는 건장하시며 여유로우신데,

어찌 잉첩 하나를 걱정하시어서 신의 외로운 충정을 짐스러워 하십니까?

그리하시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을 거절하시는 것과 다름이 없고,

남들과는 빼앗기만 하시고 받지는 않으심이 됩니다.”

라 하였다.

 

상은 종실들과 의논하더니, 피륙과 비단을 <환歡>이에게 보냈다.

 

<환歡>이는 크게 들떠서,

 

처와 상의하며, 말하길;

 

“동쪽의 황제께서는 7척 5촌의 키에 엄청나게 건장하고 힘도 세신데,

우리 딸이 감당하겠소?”

라 하였더니,

 

<루婁>가 웃으며 말하길;

 

“<우미虞美>는 연약하였어도 능히 항왕(項王){초 패왕 항우}>을 녹였는데,

항차 임금의 딸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라 하였다.

 

<환歡>이 딸에게 훈계하길;

 

“승은은 입을 때는 지아비 되시는 황제를 잘 섬길 것이며,

나이 드셨음을 싫어하지 말거라.”

라 하였더니,

 

딸이 아뢰길;

 

“신하는 주군을 위해 죽고, 처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습니다.

어찌 감히 늙었다고 마다하겠습니까?

오로지 아버님이 명을 내리시면, 딸은 응당 즐거이 따를 것입니다.”

라 하였다.

 

<환歡>은 기뻐서 딸을 어루만져주었다.

 

<진하真賀>는 <육혼六渾>의 딸이었기에,

<선견善見>{東魏 孝靜帝}의 수양누이동생으로 삼아서 <청하淸河>공주로 봉하여,

꽃마차 100대에 말 마차 1000대를 딸려서 보냈더니,

그 위풍 성대함이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었다.

 

상이 외부상서(畏部尙書) <송>태자와 홍로경(鴻矑卿) <담위談緯>를 보내

국경 언저리로 가서 맞이하게 하였다.

 

이때, <태泰>의 사신 또한 찾아와서 유연(柔然)과 군병을 합쳐서 <환歡>을 토벌하고 그 땅을 함께 나누어 가지겠다고 청하였더니,

 

상은

 

유연(柔然)은 <란릉蘭陵>과 혼인하고서도 <환歡>을 배반하였으니,

믿을 수 없겠다.”

고 일렀고,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윤9월, 임술일 초하루, 상이, <녕양寧陽>공주와 <음>태자를 대동하고,

남구(南口)에서 <청하淸河>공주를 맞아들였다.

 

이때, <환歡>은 20만병을 이끌고 <태泰>의 포진(蒲津)을 공격하였으며,

<태泰>는 기근으로 인하여 장수와 사졸이 만 명을 넘지 못하였으니,

모두가 나서도 막아내기 어려웠다.

 

8일, 상이 <청하淸河>공주를 데리고 백암(白岩)을 지나는데,

공주는 상의 풍채가 영묘하게도 흰 수염을 시원스레 드리우고 있음을 보고서도

아직도 알아채지 못한 채로 기쁨에 들떠서 말하길;

 

“내 지아비께서는 오시는 것이 왜 이리 더디시나요?

집을 떠나온 내내 밤마다 꿈을 꾸었는데.”

라 하였다.

 

상은 크게 기쁜 나머지

 

“진정 내 처로구나.”

라고 하면서 품에 안고 장막으로 들어갔다.

 

군신들이 만세를 부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이윽고 상이 공주와 함께 행궁 신전(神殿)에서 합환하였다.

 

공주는 보령 열 셋으로, <고환高歡>의 셋째 딸이고,

그 어미 <루婁>씨는 <사덕師德>의 혈족이었다.

 

배신(陪臣){딸려온 신하}들에게는 술과 먹을 것을 주었다.

 

다음날, 상은 공주를 데리고 신전(神殿)에서 조례를 받으며,

 

이르길;

 

“새 황후는 나를 위해 멀리에서 찾아왔소.

그대들은 수복과 아들 많이 낳길 빌어주어야 할 것이오.”

라 하였다.

 

11일, 백암(白岩)을 떠나 내시(內市)에 이르렀다.

 

함께 같은 련()에서 눕고 일어났으며,

공경 이하 련을 곁에서 따르는 이가 70인이었고,

정결한 남녀를 가려 뽑고 성장시켜서 수레를 끌게 하였었다.

 

행렬이 지나간 주와 군은 금년 조세를 면하여 주었다.

10월, <청하淸河>공주를 제3황후로 봉하고,

졸본으로 가서 종실과 <魏>의 공주 등에게 연회를 베풀었다.
 

<환歡>이는 <태泰>와 사원(沙苑)에서 싸우다가 크게 지고 돌아갔다.

 

상은 새 황후가 슬퍼할까 걱정되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황후는 날마다 좋은 소식을 기다렸었다.

 

이에 상은

 

“자네는 나의 처가 되었으니, 오로지 지아비 섬기기를 힘써야 하거늘,

어찌 친정집 일을 골똘히 생각하는고?

아들 낳고 딸을 낳아 지아비를 즐겁게 하는 것이 처 된 자의 도리이니,

정성을 다하여 밤의 법도를 생각하며 단지 나만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데,

얼마나 한가하면 타인을 생각한 달 말인고?

친정 아비 또한 외인이니 깊게 걱정하지 말 것이야.”

라 하였다.

 

그랬더니, 후는 사죄하고 나서 다시는 싸움에 대하여 묻지 않았으며,

낮이면 용모를 다듬고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으며,

밤이면 잠자리에서 교태로써 모시기를 힘썼다.
 

 

11월, <양의신梁義臣>을 우시중으로, <문장文藏>태자를 리부상서로 삼았더니,

<의신義臣>은 <문장文藏>을 작은 아이를 부리듯 쉽게 부렸다.
 

<화양華陽>이 상의 딸 <홍양紅陽>공주를 낳았다.

 

새 황후가 <홍양紅陽>을 입힐 옷을 만들었더니,

 

<화양華陽>이 말하길;

 

“동생은 나와 함께 한 지아비를 모시고 있네.

어찌 만 리 먼 곳에서 골육을 다시 만나는 것을 생각이나 하였겠는가.

부질없겠지만, <고高>승상이 우리를 돌봐주지 않을까봐 걱정되네.”

라 하였더니,

 

조카인 后가 답하길;

 

“형님께서는 그를 의심하지 마세요. 그는 진정 충신입니다.

더군다나, 저를 형님의 동생이 되게 맺어준 사람이잖습니까.”

라 하였다.

 

 

<幷州와 南口>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