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단기2873/AD540}<대장>10년
7월, <원종原宗>이 죽었다. 딸 <지소只召>가 다스리게 되었고,
그녀의 아들 <심맥深麥>은 나이 일곱이었다.
<지소只召>는 스스로 보위에 서지 않고
<심맥深麥>을 세워서 품에 안고 정사를 처결하였다.
<원종原宗>은 불도를 좋아하였고 <지소只召>는 선도를 좋아하였다.
<지소只召>에게는 지아비가 셋이 있었다.
<입종立宗> 및 <태종苔宗>과 <황종黃宗>이 그들이며, 달마다 번갈아서 입시하였다.
<심맥深麥>은 <입종立宗>의 아들이다.
혹자는 <원종原宗>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상은 그가 왕을 참칭하여도 불문에 붙였다.
<안원대제기>
27년(A.D. 540) 금신(金神=庚申)
七月 太上復與天宮遊蚊川 食瓜 夢尋尋夫人 跨黑牛 而來掠帝 而帝拂之 落地大呼
天宮驚抱之 有呻吟 良久得疾 還宮而崩 春秋六十一
群臣號泣願以身代 上臨崩 會七星腹臣 而遺詔 曰
“朕子雖多 眞骨正統莫如太子 朕女雖多 大元神統莫如太子妃
爾等奉此神統正胤 如朕在時若有反異者共伐之”
天宮大帝 以英失玉珍爲左右璽臣 如朕在此可也 天宮垂淚承詔 帝崩 群臣曰
“太子雖多 不可曠位 可卽大位天宮”
乃抱太子踐祚行祥 群臣山呼萬歲 大赦天下 瑞氣發於神宮
<금천대제법흥진왕기>
법흥왕 27년 가을 7월,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법흥이라 하였다.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지냈다.
진흥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삼맥종이다.[혹은 심맥부라고도 한다.]
이 때 그의 나이 일곱살이었다.
그는 법흥왕의 아우 갈문왕 입종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김씨부인이며 법흥왕의 딸이다.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가 섭정하였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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