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AD542}大藏12년,

 

 

춘정월, 정묘일 초하루, <제운齊雲>공주가 죽었다.

 

<인종仁宗>{장수대제}의 딸이었고, 향년 85세였다.

 

조례를 폐하고 상청(喪廳)을 지켰다.

 

그녀의 아들 <운연雲連>은 <연>씨의 주인{공경대부}이다.
 

 

<紅>황후가 동궁의 딸 <백치白雉>공주를 낳았다.  

 

홍로경(鴻矑卿)이 업()에서 돌아와 아뢰길;

 

 산동(山東)땅에 큰 풍년이 들어 곡물 한 가마니의 값이 9전이었다.”

고 하였다.

 

상이 <이주언爾朱彦>에게 명하여 산동(山東)땅의 곡물을 사들여서

거룻배로 남구(南口){남구(南口)는 산동과 가까 거리이다}로 실어 나르게 하였다.
 

 

4월에 우박이 내렸다.

 

상은 음식을 줄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스스로 하늘에도 빌었다.  

 

남월(南越)사람 <조신趙信> 등 57인이 표류하여왔다가 귀화하였다.

5월, <흥문興文>태자가 <과려夸呂>의 딸 <을불乙弗>씨와 혼인하여 돌아왔다.

 

이이가 <청해靑海>공주가 된다.

 

<토>국은 동서가 4천 리에 남북으로 2천 리였다.

 

염지(鹽池)와 기름진 벌판이 있으며, 목축이 성행하였다.

 

그들의 복사성(伏俟城)은 <漢>인들이 많았으며 문물을 완전히 갖추고 있었고,

관작은 <漢>의 제도 하나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유연(柔然)보다는 나았다.

 

그 곳의 왕과 공경 들은 모두 <모용외慕容廆> 형의 후예들인데,

지금의 왕 <과려夸呂>는 미천제(美川帝)의 10세손이라 하였다.
 

<부성芙星>이 유연(柔然)의 왕자 <우뢰근宇雷近>과 더불어,

<섭>공주를 배종하여 왔다.

 

상은 서하(西河>의 행궁에서 맞아들였고 합근{합환}하였다.

 

공주는 나이가 12살이었으며, 얼굴과 모습이 절세미인이었고 가무도 잘 하였다.

 

누런 낙타 천 두, 흰 코끼리 암수, 말 만 필, 꽃마차와 7백 대의 수레,

시신(侍臣) 3백 인이 딸려 왔다.

 

이들을 공주의 궁 밖의 새로이 저택에 머무르게 하였다.

 

<우뢰근宇雷近>이 상께 아뢰길;

 

“<과려夸呂>는 속임수가 많으니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청컨대 혼인을 물리시지요.”

라 하였더니,

 

상이 이르길;

 

“이미 혼인한 여인인데, 어찌 저버릴 수 있겠나?

 

게다가 <을불乙弗>은 나의 처도 아니니

{<과려夸呂>의 딸 <을불乙弗>씨는 <흥문興文>태자와 혼인했음},

염려하지 말게나."

라 하였다.

 

이 이후로 상은 청해궁(淸海宮){<을불乙弗>씨의 궁}>에 가더라도

연연궁(蠕蠕宮){<섭>공주의 궁}>의 사람들이 알아채게 하지 않았다.

11월, <담위談緯>의 아들 <온>이 상의 수양아들이 되어 <魏>로 가서

<후>의 딸 <수양>공주와 혼인하였는데,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고환高歡>이 옥벽(玉壁)을 포위하고 있길 9일 만에,

큰 눈을 만나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환高歡>이 <이원충李元忠>을 복야(僕射)로 삼고자 하였는데,

 

<징>이 아뢰길;

 

“<원충元忠>은 술을 지나치게 마시니 복야(僕射)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라 하였고,

 

<원충元忠>의 아들은 자신의 아비에게 간하기를;

 

“술을 삼가는 게 어떠신가요?”

고 하였더니,

 

<원충元忠>은;

 

 “내가 보기엔 복야(僕射)가 술만 못하다.

네가 만약 복야(僕射)가 되고 싶다면, 너나 술을 마시지 말거라.”

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주복야(酒僕射)라고 불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