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해{AD543} 大藏13년,

 

춘정월, 신유일 초하루, 대궁(大宮)에서 조례를 받았는데,

봉황이 주목궁(朱木宮)으로 날아와서 울었다.

 

이에 상은 이윽고 <섭聂>공주와 함께 주목궁(朱木宮)의 전각으로 들어갔으며,

봉황궁(鳳凰宮)이라 이름을 붙였다.
 

좌시중 <계춘랑桂春娘>을 좌승상으로 삼았고,

그녀 지아비 <루사덕婁師德>은 우승상으로,

<계춘경桂春卿>은 좌시중으로, <주금령朱金鈴>은 우시중으로 삼았다.  

 

<高>황후가 <포덕布德>태자를 낳았다.

 

<고환高歡>이 자신의 아들을 시켜서 찾아와

비단과 명주 만 필 및 황후 적복 일곱 상자를 바쳤다.

 

이에 상은 소라나전 금 주발 일습을 <환歡>의 처 <루婁>씨에게 보내주었다.
 

<우문태宇文泰>의 사신이 찾아와서 토산물을 바치고,

<우문태宇文泰>의 처 <풍익馮翊>이 지난겨울에 아들 <각覺>을 낳았음을 고하였다.

 

이에 상은 <풍익馮翊>에게 옷을 하사하였다.

 

<풍익馮翊>은 오빠를 죽인 원수의 자식을 낳았으니, 그 심정이 참담하였을 것이다.

<고징高澄>이 어사중위(御史中尉) <고중밀高仲宻>의 처 <李>씨를 억지로 간음했다.

 

이에 <중밀仲宻>은 노하여 호뢰(虎牢)를 지키는 장수 <해수흥奚壽興>을 죽이고

그 성을 들어서 <우문태宇文泰>에게 투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상이 <高>황후에게 이르길;

 

“우리나라의 신하들은 자기의 처가 임금의 승은을 입게 되면 좋아하는데,

그대의 나라 신하들은 노여워하고 있소. 그것은 불충이오.”

라 하였더니,

 

<高>后가 아뢰길;

 

“당신은 만년천자이시지만, 제 아비는 당신 집안 여자 자식의 종놈인데

어찌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라 하였다.

 

이에 상은 웃으며 이르길;

 

“자네도 자신의 본바탕을 알고 있은 즉 감히 나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것이야.”

라 하였더니,

 

후가 말하길;

 

“저의 근본은 비록 그러하여도 지금은 당신의 처이오니 당신이 바로 제 몸이십니다.

어찌 제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겠습니까? 어서 저에게 절 해보세요.”

라 하였다.

 

이리하여 상은 后에게 절을 하였고 后는 상을 품에 안고 즐거워하며 말하길;

 

“당신은 제 지아비이십니다.”

라 하였다.

 

상은 정사에 권태를 느끼더니 날마다 <高>황후 및 <섭聂>공주 등과 희롱하여

망측하기가 이러하였고 아무 때나 음사에 빠지더니,

끝내는 허리아래가 습하고 시들하기에 이르렀으며 탕약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2월, <선병善屛>을 동궁의 보비로 삼는다는 명을 내렸다.

 

<선병善屛>은 문장과 색사에 능하고 젊기도 하여,

상이 여러 번 당해내기가 어려워하더니 마침내 동궁에게 내려 주게 되었던 것이다.

3월, <환歡>은, <태泰>와 망산(邙山)에서 싸워서, 크게 이겼는데,

<진원강陳元康>이 <태泰>를 추격하여 장안으로 들어가길 청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중밀仲宻>이 호뢰(虎牢)를 <태泰>에게 바친 때문이었다.

 

이에 <태泰>가 군대를 이끌어 응징하여 백곡(栢谷)을 쳐서 빼앗고,

하교(河橋)의 南城을 포위하였다.

 

이어서, <환歡>이 십만 군으로 <河>의 북쪽에 다다르자,

<태泰>는 군대를 전수(瀍水){하남에서 락수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로 물리고는,

상류에서 큰 배들에 불을 붙여서 하교(河橋)를 불태우려 하였다.

 

그러자, <곡률금斛律金> 등이 작은 거룻배 100여척에 기다란 쇠사슬을 싣고서

큰 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다가온 불붙은 배에 사슬 끝에 달린 쇠갈고리가 박히게 하여

쇠사슬을 물가로 당겼더니 다리가 불태워짐을 막을 수 있었다.

 

이에 <환歡>이 <河>를 무사히 건너서 망산을 의지하여 진을 치고 여러 날을 머무르자, <태泰>가 야밤에 망산을 기어올라 <환歡>을 기습하였다.

 

척후 기병이 고하길;

 

“<태泰>가 손수 40리를 급히 서둘러서 오고 있습니다.”

고 하였다.

 

이에 <환歡>이 말하길;

 

“그 놈 자신도 목말라 죽을 지경일 것이다. 진영을 바로하고 그놈들을 기다리자.”

라 하였다.

 

동이 틀 무렵 양 군이 서로 조우하였다.

 

<팽락>이 수천 기를 이끌고 <태泰>군의 북쪽 끝을 쳤더니,

도망치고 무너져 내리기에 <태泰>의 군영으로 내달려 들어갔다.

 

<환歡>은 <락楽>이 배반한 줄로 의심하였었다.

 

그런데 홀연 서북쪽에 먼지가 일더니 <락楽>의 사자가 승첩을 알려왔다.

 

<태泰>의 대도독인 임조왕(臨洮王)<동東> 등의 동료와

속료 48명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여러 장수들은 승승하며 <태泰>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목을 벤 것이 3만여 급이었다.

<환歡>은 <락樂>에게 <태泰>를 추격하라 명하였고,

 

심히 궁색하여진 <태泰>는 말하길;

 

“어리석은 사내자식아! 오늘 내가 없어지면, 내일 어찌 너는 살아있겠냐?

어찌하여 군영으로 돌아가 네 금보를 서둘러 챙기지 않느냐?”

라 하였다.

 

<락樂>은 그의 말을 좇아서 <태泰>의 금대와 한 자루를 챙겨 돌아왔더니,

<환歡>이가, <락樂>이 <태泰>를 놓아준 것에 노하여,

참살하려고 칼날을 들었다 내렸다 하길 세 차례를 하는 차에,

<락樂>은 애걸하여 5천기를 주시면 다시금 왕을 위해 그놈을 붙잡겠노라 하였고,

 

<환歡>이 이르길;

 

“그 놈을 놓아줄 땐 무슨 속셈이었고? 그런데 다시 잡겠다고?”

라 하였다.

 

명주 3천 필을 <락樂>의 등짝에 꾹꾹 눌러서 하사하였다.

 

다음 날 다시 싸움이 붙었다.

 

<태泰>의 중군과 우군이 합세하여 <환歡>을 쳐부수고, 그의 보졸들을 포로로 잡았다.

 

<환歡>은 말을 잃게 되어 따르는 이의 말을 얻어 타고 달아났으며,

보병과 기병 일곱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추격병이 다가오자, 도독 <위흥경尉興慶>은 허리춤에 화살 100개가 있어서

그것으로 항전하다 화살이 떨어지자 죽었다.

 

<하발승賀拔勝>이 <환歡>을 매우 급하게 추격하였다.

 

이에 <류홍휘劉洪徽>가 <승勝>에게 화살을 쏘아서 두 발을 적중시켰고,

<단소段韶> 또한 활을 쏘아 <승勝>의 말을 맞혀서 쓰러뜨렸다.

 

이에 <환歡>은 잽싸게 피하여 도망하였고,

<승勝>은 궁시를 지니지 않았던 것을 한탄하며 말하길;

 

“하늘의 뜻이로다.”

라 하였다.

 

이때 <태泰>의 좌군인 <조귀趙貴> 등 다섯 장수가 밀리게 되고,

<환歡>의 군대가 다시금 떨쳐 일어났기에,

<태泰>가 맞붙어 싸웠으나 또한 불리하였다.

 

해가 저물자 <태泰>는 도망하고, <환歡>은 <태泰>를 쫓았다.

 

<독고獨孤>와 <우륵于勒> 등이 흩어진 군졸을 모아가지고

후방에서 <환歡>의 추격 군병들을 쳤더니, 그 추격 군병들은 놀라서 어지러워졌고,

<태泰>는 온전하게 우군을 만났다.

 

<우혜于惠>가 야밤에 군대를 물릴 듯하자, <환歡>의 군병이 그들을 추격하였더니,

 

<혜惠>가 말하길;

 

“장안에서 죽으나, 이곳에서 싸우다 죽으나, 차이가 있겠는가?!”

라 하고는,

 

군영을 차리고 먹기를 마쳤으며,

깃발을 세우고 뿔피리를 불어서 흩어진 군졸들을 불러 모아 천천히 회군하였다.

 

뒤쫓는 이들도 복병이 있을까 의심스러워서 바짝 따라붙을 수도 없었다.

 

<태泰>는 이윽고 관문을 들어서더니 <달해무達奚武>를 시켜서 추격군을 막게 하였다.

 

<봉자회封子繪>와 <진원강陳元康>은 하늘이 내린 때라는 생각이어서

추격하자고 하였더니,

여러 장수들 모두가 벌판엔 푸른 풀도 없고 사람들과 말들도 피곤하니

멀리까지 추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여 그만두었다.

돌궐(突厥)은 유연(柔然)의 속국으로,

요사이 들어 점차 강성하여져서 서형(西陘)으로 뻗어 나아가더니,

<해奚>왕 <두출梪出>과 경계를 다투었다.

 

<두출梪出>이 토문(土門)을 위해 친히 정벌을 나갔고,

돌궐은 토문(土門)때문에 <호죽好竹>이 죽은지라

사신을 보내 급한 사정을 유연(柔然)에게 알렸다.

 

이에 돌궐은 공격하기를 <습霫>부로 돌렸고,

유연(柔然)은 돌궐을 구원하려 왔다가 토문(土門)에 의해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함에 상은 랑장(郞将) <하건夏乾>을 보냈더니

경기 5천을 끌고 가서 돌궐을 격파하였다.

 

돌궐은 이 이후로 우리를 원망하게 되었다.

 

 

5월, <후경候景>이 호뢰(虎牢)를 깨고 <고중밀高仲宻>의 처자식을 <鄴>으로 보냈다.

 

<징澄>이 검은 속옷 바람에 이들을 만나보고 나서,

 

말하길;

 

“오늘이 어떻소? 치마를 찢어서 죽는 것도 또한 괜찮소만?”

이라 하였더니,

 

이에 <李>씨가 교태지어 말하길;

 

“천명은 정해졌으니, 침첩이 되겠습니다.”

라 하였다.

 

이에 <징澄>은 <이李>씨를 씻겨서 음욕을 채웠다.

 

<이李>씨는 음란한 여인으로 요염한 자태를 가졌기에,

후에 <양洋>의 처 <이李>씨와 결연하여 <연燕>의 화를 불러 키웠고,

<환歡>의 혈족도 모조리 죽여 버렸으니, 또한 보복한 것이었다. 이게 운명이런가?  

 

<숙俶>공주가 상의 아들 <임任>태자를 낳았다.
 

<환歡>의 처가 누차 찾아와서 입조하고자 원하더니,

<포덕布德>의 일로 찾아오게 되었고, 상은 <高>후와 함께 南口로 맞으러 나갔다.

 

<루婁>씨에게 황후가 입는 적복을 하사하고는,

상이 <루婁>씨에게 먼저 절하고 모후라 불렀더니,

<루婁>씨는 상을 夫皇{황상이신 남편}이라 하면서 만세를 불렀고,

군신들 모두는 <루婁>씨를 태후폐하라고 불렀다.

 

이때 그녀는 나이가 마흔 넷이어도 통통하고 건장하며 아직 젊어보였다.

상과 희롱하는 것이 부부처럼 보였고,

밤이 되면 <高>황후와 잇달아서 잠자리를 하며 승은을 입더니만,

울면서 <高>후에게 이르길;

 

“우리의 지아비이신 황상은 천자 중의 천자이시다.

어찌 중원천자를 하기위해 고생한단 말이냐?

중원천자는 {살아남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애걸해야 할 뿐인데.”라 하였다.
 

 

11월, <문장文藏>태자에게 명을 하여,

우승상 <루사덕婁師德>과 <루婁>태후를 따라붙어 시중들며 晋陽으로 데려다주고

<고환高歡>을 찾아보고 예물을 아주 성대하게 바치라 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