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축{AD545}大藏15년,

 

춘정월 경진일 초하루,

상이 동궁에게 명하여 德陽后와 함께 우두전(牛頭殿)에서 조례를 받게 하였다.  

 

<징>의 사신이 와서 <루>씨가 아프다고 하였더니, <高>후가 돌아가고파 하였다.

 

이에 상이 동궁에게 명하여 <高>후를 데리고 진양(晋陽)으로 가보라 하였는데,

월해(月海)에 이르러 <이주문爾朱文>이 세력이 불어나더니

반란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상이 <高>후에게 명하여 동궁의 비가 되게 하고 소후(小后)라 칭하였다.

 

<양의신梁義臣>을 대승상, <문장文藏>과 <연화淵華>를 각각 좌・우시중으로 삼았다.
 

 

2월, <선견善見>{東魏 孝靜帝}이 <과려夸呂>{토곡혼 왕}의 종매를 처로 삼았으며,

이름은 <용화容華>이었다.

 

상은 <흥문興文>과 <청해淸海>를 업()으로 보내서 그들의 혼례에 참석케 하였다.
 

<우문태宇文泰>가 유연(柔然)토곡혼(吐谷渾)을 잃더니 돌궐에 전념하였다.

 

돌궐의 주인인 <토문랑土門狼>의 아들 <이질伊質>은 <니사도泥師都>의 후예로,

돌궐산(突厥山)에서 여러 대를 거쳐 살면서

유연(柔然)의 용병이 되어 숨죽이고 살면서 부를 모으고 번창하더니,

인접한 호족들을 집어삼키거나 아울렀다가 지금 <태泰>에게 탈취 당한 것이다.

3월, 을묘일 초하루에 상의 병이 두루 깊어지더니 경진일에 죽었다.

 

동궁이 손가락의 피를 내어 입에 흘려 넣었더니 회생하였다.

 

<덕양德陽>后에게 옥새와 어보를 전하게 하고,

색을 밝히지 말고 선정을 베풀고 장례는 검소하게 하게 이르라고 명하고는 죽었다.

 

동궁이 우두전(牛頭殿)에서 즉위하고

백단문(白檀門) 위에서 백관들의 산호를 받았으며, 월황(月煌)의 의식도 거행하였다.

 

춘추 67세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