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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603-657) 대막리지 취임 이전의 고구려 강역 및 동북아 정세>
장수홍제호태열제 <거연巨連(394-492) 재위 414-491>은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셨다.
인의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영토를 넓히고 개척하시어
웅진강(熊津江) 이북이 고구려에 귀속되었다.
그리고 북연(北燕), 실위(室韋) 등 여러 나라가 다 같이 입조하여
우리의 형제 족속에 편입되었다.
또 신라의 매금(寐錦)과 백제의 어하라(於瑕羅)와 함께
남평양(今 북한의 평양)에서 만나,
공물 바치는 일과 국경에 주둔시킬 병사의 숫자를 약정하였다.
건흥 14년(427)에 평양(今 보정시 정흥현 고성진)으로 천도한다.
문자호태열제 <라운羅雲(462-519) 재위 492-518>은 연호를 명치(明治)로 고치셨다.
명치 11년(501)에 제(齊),노(魯), 오(吳), 월(越)의 땅이 우리에게 귀속되었고
이때에 이르러 영토는 점점 넓어졌다.
AD 501년 백제의 동성대왕이 백가에게 시해되자
고구려는 중원에 있던 백제를 공격하여 오, 월까지 진출한다.
평강상호태열제 <양성陽成(544-590) 재위 559-589>은 담력이 크고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시어 주몽의 기풍이 있었다.
연호를 대덕(大德)으로 바꾸었고 정치와 교화가 매우 밝아졌다.
대덕 18년(576) 병신년에 열제께서 대장 <온달溫達>을 거느리고 가서
갈석산과 배찰산을 치고 추격하여 유림관(楡林關)에 이르러
북주(北周)를 크게 깨드렸다.
이로써 유림진(楡林鎭) 동쪽 땅이 모두 평정되었다.
유림(楡林)은 지금의 산서(山西) 경계이다.
<온달溫達(560?- )>은 <양성陽成(544-590)>의 사위로 17살?에 대장군에 올라
산서성으로 침공하여 쓰러져 가는 북주(北周)를 크게 깨뜨리니
산서성 유림관 동쪽이 고구려에 복속된다.
영양무원호태열제 <원元(559?-618) 재위 590-617>때에 천하가 잘 다스려져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번성하였다.
수(隋) 나라 왕 <양광(569-618) 재위 605-617>은 본래 선비족의 후손이다.
<양광>이 남북을 통합하고 그 여세를 몰아 우리 고구려를 깔보고,
조그마한 오랑캐가 거만하게도 상국(上國)을 업신여긴다하여 자주 대군을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일찍이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홍무(弘武) 25년(614)에 <양광>이 또다시 동쪽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먼저 군사를 보내어 비사성(卑奢城)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적이 곧 평양을 습격하려 하거늘 열제께서 소식을 들으시고 진격을 늦추기 위해
<곡사정斛斯政>을 보내려 하셨다.
<곡사정斛斯政>은 수나라 예부상서 <양현감楊玄感>의 부하로서
시랑(侍郞) 벼슬에 있었다.
<양현감>이 반란을 일으키자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진중(陳中)에서
613년 6월 26일에 고구려에 망명하였다.
후일 고구려는 수양제의 요구에 따라 <곡사정>을 수나라에 인도하였다.
때마침 조의선인 <일인一仁>이 지원하여 따라가기를 청하므로
함께 진중에 도착하여 <양광>에게 표(表)를 올렸다.
<양광>이 배 안에서 표를 손에 들고 절반도 채 읽기 전에
갑자기 <일인>이 소매 속에서 쇠뇌를 꺼내 쏘아 가슴을 맞혔다.
<양광>이 놀라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우상(右相) <양명羊皿>이 <양광>을 업게 하여 급히 작은 배로 옮겨 타고 물러나서
회원진(懷遠鎭)으로 철병하기를 명하였다.
회원진(懷遠鎭)은 하북성 영주의 동쪽에 수나라가 설치한 최전방 기지이다.
<양광>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친히 작은 나라를 치다가 졌으니,
이것이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다.
<양명>등은 얼굴빛이 검게 변하며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뒷 사람들이 이 일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아아,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너희 한나라 아이들아!
요동을 향해 헛된 죽음의 노래를 부르지 말지라.
문무에 뛰어나신 우리 선조 환웅이 계셨고
면면히 혈통 이은 자손, 영걸도 많으셨네.
고주몽성제, 태조무열제, 광개토열제께서
사해에 위엄 떨치시어 공이 더할 나위 없네
<유유紐由>, <일인一仁>, <양만춘楊萬春>은
저들이 얼굴빛 변하여 스스로 쓰러지게 하였네.
세계에서 우리 문명이 가장 오래고
바깥 도적 쫓아 물리치며 평화를 지켜 왔으니
저 <유철>,<양광>,<이세민>은
풍채만 보고도 무너져 망아지처럼 달아났구나.
광개토열제 공덕 새긴 비석 천 자(尺)나 되고
온갖 깃발 한 색으로 태백산처럼 높이 나부끼누나.
<을지문덕乙支文德>은 고구려 석다산(石多山) 사람이다.
일찍이 산에 들어가 도를 닦다가 삼신의 성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고
신교 진리를 크게 깨달았다.
해마다 3월 16일이 되면 말을 달려 강화도 마리산에 가서
제물을 바쳐 경배하고 돌아왔다.
10월 3일에는 백두산에 올라가 천제를 올렸다.
이런 제천 의식은 배달 신시의 엣 풍속이다.
홍무 23년(612)에 수나라 군사 130여 만 명이 바다와 육지로 쳐들어왔다.
<을지문덕>이 출병하여 기묘한 계략으로 그들을 공격하고 추격하여
살수(薩水)에 이르러 마침내 크게 격파하였다.
수나라 군대는 바다와 육지에서 함께 궤멸되어
살아서 요동성으로 돌아간 자가 겨우 2천 7백 명이었다.
<양광>이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구걸하였으나 <을지문덕>이 듣지 않았고
열제(영양제) 또한 추격하도록 엄한 명을 내리셨다.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와 더불어 승리의 기세를 타고 곧바로 몰아붙여
한갈래는 현도(玄兎)길로 태원(太原)에 이르고
한 갈래는 낙랑(樂浪)길로 유주(幽州)에 이르러
그곳의 주와 현에 들어가서 다스리고 떠도는 백성을 불러모아 안심하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건안(建安), 건창(建昌), 백암(白岩), 창려(昌黎) 등
여러 진(鎭)은 안시(安市)에 속하고
창평(昌平), 탁성(涿城), 신창(新昌), 용도(埇道) 등
여러 진(鎭)은 여기(如祈)에 속하고
고노(孤奴), 평곡(平谷), 조양(造陽), 누성(樓城), 사구을(沙溝乙)은
상곡(上谷)에 속하고
화룡(和龍), 분주(汾州), 환주(桓州), 풍성(豊城) 압록(鴨綠)은
임황(臨潢)에 속하게 되어 모두 옛 제도에 따라 관리를 두었다.
위에 나오는 지명들은 모두 하북성과 산서성에 있는 지명들이다.
이때 강한 군사가 백만이었고 영토는 더욱 커졌다.
<양광>이 임신년(612)에 쳐들어올 때 전에 없이 많은 군사를 몰고 왔으나
우리는 조의(皂衣) 20만으로 적군을 거의 다 멸하였으니
이것은 <을지문덕> 장군 한 사람의 힘이 아니겠는가?
을지공같은 사람은 한 시대의 흐름을 지어내는 만고에 드문 거룩한 영걸이었다.
옛 역사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영양무원호태열제 홍무 9년(598)에 열제께서 서부 대인 <연태조淵太祚>를 보내어
등주(登州)를 토벌하고 총관 <위충韋沖>을 사로잡아 죽이셨다.
이에 앞서 백제가 군사를 일으켜 제(齊), 노(魯), 오(吳), 월(越)의 땅을 평정하고
관서를 설치하여 호적과 호구수를 정리하고 왕의 작위를 나누어 봉하고
험한 요새에 군대를 주둔 시켰다.
그리고 군역과 세금가 특산물 납부를 모두 본국에 준하여 하게 하였다.
명치(明治) 연간에 백제의 군정이 쇠퇴하여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권익 집행을 고구려 조정에서 하게 하였다.
성읍의 구획을 짓고 문무 관리를 두었다.
그 후 수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남북에서 사변이 생기고 사방에서 소요가 일어나
그 피해가 생민에게 미치게 되었다.
열제께서 크게 노하여 하늘의 뜻을 받들어 토벌하시니
사해 안에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수나라 왕 <양견>은 속으로 앙심을 품고 감히 원수를 갚겠다고
군사를 내어 은밀히 <위충>을 보내 총관이라는 이름으로
관가를 파괴하고 읍락에 불을 지르고 노략질하였다.
이에 장수와 병사들을 보내어 도적의 괴수를 사로잡아 죽이시니
산동지역이 평정되고 해성(海城)이 평온하여졌다.
이해(598)에 <양견>이 또다시 <양량楊諒>, <왕세적王世績> 등 30만을 보내
전쟁할 때 겨우 정주(定州)을 출발하여 요택에 이르기도 전에
물난리를 만나 군량 수송이 끊기고 유행병이 크게 번졌다.
<주라구周羅緱>가 병력을 동원하여 등주(登州)를 점거하고
전함 수백 척을 징집하여 동래(東來)에서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향하다가
아군에게 발각되었다.
<주라구>가 후진을 맡아 막으면서 전진하다가
문득 큰바람을 만나 전군이 표류하다 빠져 죽었다.
이때 백제가 수나라 군대에게 길을 인도해 주겠다고 제의 하였다가
고구려에서 은밀히 타이르자 실행하지 못하였다.
고구려 좌장 <고성高成, 고건무高建武(575?-642)>이 몰래
수나라와 찬하려는 마음을 품고 은밀히 막리지의 북벌 계획을 무너뜨리려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고성>은 여러 번 군대를 보낼 것을 청원하여
백제를 쳐부수고 공을 세웠다.
그러나 막리지가 홀로 힘써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리치고
남쪽은 지키고 북쪽을 치는 계책을 강하게 고수하여
여러 번 이해를 따져 말하므로 이를 따르게 되었다.
......
이에 앞서 고구려는 백제와 밖에서 서로 경쟁하여 공존하였다.
요서 땅에 백제의 영지(領地)가 있었는데, 곧 요서(遙西) 진평(晋平)이고,
강남에는 월주(越州)가 있었으니
여기에 소속된 현은 첫째 산음(山陰), 둘째 산월(山越), 셋째 좌월(左越)이다.
명치 11년(501) 11월에 이르러, 월주(越州)를 쳐서 취하고 군현의 이름을 바꾸어
송강(松江), 회계(會稽), 오성(吳城), 좌월(左越), 산월(山越), 천주(泉州)라 하였다.
명치 12년(502)에 신라 백성을 천주(泉州)로 옮겨 그곳을 채웠다.
이 해에 백제가 조공을 바치지 아니하므로 군대를 보내어
요서 진평 등의 군(郡)을 쳐서 빼엇으니 백제군(百濟郡)이 없어지고 말았다.
백제는 501년 8월에 <백가苩加>가 동성대왕을 시해하고 무령대왕이 즉위한다.
동성대왕이 시해되자 중원에 있던 백제의 호족들은 고구려에 귀의하고
백제는 중원을 고구려에 내어주고 한반도 공주에서 왜와 연합하여 지탱하게 된다.
<연개소문의 생애>
<고성高成,고건무高建武(575?-642) 재위 618-641>이 즉위하자
이전의 열제들이 남긴 법을 모두 버리고 당에 사신을 보내어
노자상(老子像)을 구해 와서 나라 사람으로 하여금 노자 도덕경 강론을 듣게 하셨다.
또 무리 수십만을 동원하시어 장성을 쌓는데
부여현에서 남해부까지 그 거리가 천여리였다.
이때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도교 강론을 그만두도록 청원하고,
또 장성 쌓는 일을 중지시키도록 이해를 따져 간절히 아뢰었다.
그러나 임금이 매우 언짢게 생각하여 <연개소문>의 군사를 빼앗고
장성 쌓는 일을 감독하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비밀리에 여러 대인과 함께 <연개소문>을 주멸하려고 의논하셨다.
<연개소문>이 이 일을 먼저 전해 듣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 어찌 몸이 죽고 나서 나라가 온전히 보존될 수 있겠는가?
일이 급박하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되리라." 하고
휘하 군사를 모두 모아 장차 열병할 것처럼 하였다.
그리고 술과 음식을 많이 차리고
여러 대신을 불러 함께 열병식을 보자고 하니 모두 참석하였다.
이때 연개소문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 범과 이리가 문 가까이 왔거늘 나를 구하기는 커녕 도리어 죽이려 하는가?" 하고
마침내 그들을 모두 제거해 버렸다.
임금이 변고를 전해 듣고 평복으로 몰래 달아나다가 송양(松壤)에 이르러 조칙을 내려
병사를 모집하셨으나 나라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붕어하시고 말았다.
이때 영류대제 <고성, 고건무> 68세, <연개소문> 40세이다.
조대기(朝代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蓋金>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淵)씨이고, 선조는 봉성(鳳城) 사람이다.
아버지 이름은 <태조太祚>이고 할아버지는 <자유子遊>, 증조부는 <광廣>인데
모두 막리지를 지냈다.
명치대제 라운羅雲(오씨) - 광廣,문장文藏(연화) - 연자유淵子遊(연화) -
연태조淵太祚(소씨) - 연개소문淵蓋蘇文(603-657)
<연개소문>은 홍무 4년(603) 5월 10일에 태어났고 아홉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다.
몸가짐이 웅장하고 훌륭하였고 의기가 장하고 호탕하였다.
늘 병사들과 함께 섶에 나란히 누워자고,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셨다.
무리 속에 섞여 있어도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일이 혼란하게 얽혀 있어도
미세한 것까지 분별해 내었다.
하사 받은 상은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호하고,
상대방의 진심 어린 마름을 헤아려서 거두어 품어 주는 아량이 있었다.
또한 온 천하를 잘 계횟하여 다스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감복하여 딴 마음을 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법을 운용할 때에는 엄격하고 명백히 하여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이 다스렸다.
만약 법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았다.
비록 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조금도 놀라지 않고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눌 때에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항상 자기 겨레를 음해한는 자를 소인이라 여기고,
당나라 사람을 능히 대적하는 자를 영웅으로 여겼다.
기뻐할 때는 신분이 낮고 미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지만,
노하면 권세있고 부귀한 자도 모두 두려워하니
진실로 일세를 풍미한 시원스러운 호걸이었다.
<연개소문>이 스스로 말하기를
" 물 속에서 태어나서 종일 물에 잠겨 헤엄쳐도 더욱 기력이 솟고 피로한 줄 모른다."
하니
무리가 모두 놀라서 땅에 엎드려 절하며,
" 창해(滄海)의 용신(龍神)이 다시 화신(化身)하였다." 라고 하였다.
<연개소문>이 고성제(영류제)를 내쫓고 무리와 함께
<고장高藏(597?-682) 재위 642-668>을 맞이 하였다.
이분이 보장제(寶藏帝)이시다.
<연개소문>이 드디어 뜻을 이루자 모든 법을 공정무사한 대도로 행하였다.
이로써 자신을 성취하여 스스로 자신의 주인이 되고
만물의 이치를 깨쳐 차별이 없게 되었다.
또한 세 마을에 전(佺)을 두고 조의선인들에게 계율을 지키게 하였다.
........
<왕개보王介甫>가 이렇게 말했다.
" <연개소문>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 하더니 과연 그렇다.
막리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고구려와 백제가 함께 건재하였으나
막리지가 세상을 뜨자 백제와 고구려가 함께 망하였으니,
막리지는 역시 걸출한 인물이로다."
<왕개보王介甫>는 송(宋)나라때 문필가이자 정치가인 <왕안석王安石>을 말한다.
막리지가 임종에 <남생男生>, <남건男建>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 너희 형제는 사랑하기를 물과 같이 하여라.
화살을 한 데 묶으면 강하고 나누면 꺾어지나니,
부디 이 유언을 잊지 말고 천하 이웃 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여라"
때는 개화 16년(657) 10월 7일이었다.
묘는 운산(雲山)의 구봉산(九峰山)에 있다.
<이맥李陌(1455~1528)의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중에서>
이제 위와같은 고구려의 강역과 동북아 정세를 참조하여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을 다시 살펴보자.
<1부>
주인으로 살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당태종 <이세민>은 645년 고구려 정벌을 목표로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으로 쳐들어 오는데...
안시성에서의 90일간의 사투! 하늘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때 <연개소문(603-657)> 43세, <이세민(599-649)> 47세,
<장손무기(594-659)> 52세, <이세적(594-669)> 52세,
<이도종(600-653)> 46세, <설인귀(613-683)> 33세이다.
<연개소문>은 고구려왕의 서자이다.
장수대제 거연(394-492)(욱호) - 명치대제 라운羅雲(462-519)(오씨) - 문장文藏
문장文藏(연화淵華(511-?) - 연자유(용암) - 연태조(소씨) - 연개소문(603-657)
<연개소문>의 고조 할아버지가 명치대제 문자왕 <라운羅雲>이다.
<당 태종 고구려 침공 루트>
안시성은 고구려 최후의 보루이다.
고수전쟁과 고당전쟁은 고구려가 중원을 통일한 수와 당에
조공을 바치지 않아 일어난 전쟁이 결코 아니다.
조공은 각 나라의 특산물을 서로 교역하는 일종의 공무역 같은 것인데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고 나라의 국운을 건 전쟁을 할 어리석은 군주가 어디 있겠는가?
5호16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의 분열울 통일한
수나라와 당나라가 국력이 강성하여지자
영락대제 이후 중원의 산서성, 하북성, 산동성과 멀리 강소성과 절강성까지 진출한
고구려를 내쫓기 위한 필연의 전쟁이었다,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수 양제 <양광>과 당 태종 <이세민>이 정신병 환자인가?
요하가 지금의 요녕성 요하라면 고구려의 요동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요녕성 대릉하 유역에 군을 집결하여 출병하고
후방기지로 하지
왜 수천리 떨어진 하북성 탁군에서 출병하고 탁군을 후방기지로 하겠는가?
전쟁을 치루기도 전에 수천리를 행군하다 모두 지쳐 자빠지겠네.ㅎㅎ
요녕성은 요나라 건국 이전에는 결코 그들의 영토가 아니었고
하북성의 탁군과 산서성 유주의 유림관이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 고구려 최전방이었다,
<2부>
<이세민>은 자신의 눈에 박힌 화살을 부여잡고 대오를 정비하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연개소문>에게 기울었다.
<장손무기>는 <이세민>에게 몸을 피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세민>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연개소문>은 <이세민>을 잡겠다고 달려들며 부월도를 휘두른다.
<이세민>의 부하들은 목숨을 받치며 <연개소문>을 막는다.
마침내 <장손무기>가 <이세민>을 피신시킨다.
다시 전열을 정비한 <이세민>은 전투에 나선다.
당나라 군사들은 토산을 점령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토산 위의 고구려군은 돌과 통나무를 굴리고, 불붙은 짚단을 굴린다.
진흙탕이 된 토산을 오르던 당나라 군사들은 아수라장 속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
당나라 <계필하력>은 연개소문에게 칼을 휘두른다.
<연개소문>은 <계필하력>의 목을 치려고 하다가
고구려 장수를 살려 준 전력을 상기하고 칼을 거둔다.
당나라 <이적>이 <연개소문>에게 달려온다.
하지만 <연수정>과 <쌍검녀>가 막아 선다.
<술탈>은 당나라 <설인귀>와 맞선다.
<이세민>은 사경을 헤매다가 꿈 속에서 <연개소문>을 만나 결전을 치른다.
겨우 목숨을 건진 <이세민>은 장수들을 불러 앉혀서 술잔을 기울이며
패전의 한을 곱씹는다.
그 때 설연타족이 당나라의 도성을 넘본다는 긴급 전갈이 날아든다.
<이세민>은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옛 벗이었던 <연개소문>을 만나러 가는데….
<3부>
오랜 옛날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한국을 건설한지 수천여년,
뒤에 단군 왕검이 다시 아사달에 도읍을 열어 조선을 세운지 천여년.
진나라 시황 때 신인이신 대 해모수가 웅심산에서 일어나,
그 계해년에 천제의 아들 추모 동명성왕이 북부여를 이어 일어난 것이 고구려의 시조.
고씨성을 받아 왕위를 이어 26대에 이른 것이 영양왕 <고원>,
뒤를 잇는 동생 <고건무>가 27대 영류왕.
수나라는 고구려의 선조들에게 복속되었던
지난날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고구려와 충돌을 일으킨다.
영양왕은 진시황 이래로 실로 사백여 년만에 중원을 통일한 수나라를
고구려의 절대적 상대세력으로 지칭하고 있다.
중원은 진시황의 뒤를 이은 한 무제 이후로 다시 분열을 거듭,
숱한 제후국이 명멸하면서 오늘에 이르렀고,
고구려는 그들의 내분을 이용하여 영토를 넓히며 국력을 다져 왔다.
영양왕의 아버지가 되는 평원왕은
수나라의 중원통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불가피한 충돌이었다.
그리하여 평원왕은 <연태조>를 지금의 수상격인 막리지로 등용,
양곡을 비축하고 병기를 제작하였으며 저들의 무기 기술자들을 포섭해 왔었다.
그러나, 고구려의 권력을 대표하는 귀족들은
오랜 평화 속에서 이러한 전쟁의 조짐들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더불어 다음 왕이 될 <건무>는 귀족들의 절대적 지지가 필요한 입장이었다.
<연태조>는 아내 소씨와 함께 조의들의 손에 크고 있는
아들 <연개소문>을 마지막으로 보러 간다.
연태조와 소씨는 언제 볼지 모르는,
열살이 채 되지 못한 연개소문에게 성씨와 이름을 다시 이르며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다짐한다.
소씨는 부모라는 사실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어린 <연개소문>을 꼭 안고 눈물을 흘린다.
한편 수나라 사신들이 평양성을 찾아온다.
사신들은 큰소리를 치며 당당하게 고구려 영양왕을 만난다.
장수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사신들에게 불호령을 치며 벌벌 떨게 만든다.
사신은 영양왕 앞에서 조서를 읽는다.
자신들에게 조공을 받치고 머리를 숙이라는 무례한 내용이다.
영양왕은 껄껄 웃으며 사신들을 모두 감금한다.
<고건무>는 평화 외교를 주장하며 형 영양왕을 설득한다.
하지만 영양왕은 <고건무>에게 고구려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 주며
때가 되었음을 예고한다.
마침내 춥고 고생스러운 길을 떠난 어린 <연개소문>은
조의들과 말을 달려 신라 국경에 다가간다.
그 때 뒤를 쫓아온, <연태수>가 보낸 추격자들에게 포위된다.
조의들은 어린 <연개소문>을 호위하다가 목숨을 잃고,
어린 <연개소문>도 칼을 맞는데….
<4부>
대모달 <을지문덕>은 군영을 정비하고 수박 대련, 창검술, 마상무예, 철갑기마대의
진법 훈련, 가상 기마 전투까지 펼치며 강도 높은 훈련을 계속한다.
대장군 <강이식>은 여섯 명의 병사들을 쓰러뜨리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영양왕은 <을지문덕>이 양성하는 군사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흐뭇해 한다.
영양왕은 동생 <고건무>와 각 지역을 관장하는 욕살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나라 사신의 목을 베고 전쟁을 선포한다.
영양왕은 광개토대왕을 외치며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대모달 <을지문덕>과 대장군 <강이식>을 데리고
수나라 <양견>을 물리치기 위한 선봉에 나선다.
<역사적 사실>
영양무원호태열제 홍무 9년(A.D 598년)
옛 역사에서 말하기를
"帝는 서부대인 연태조를 보내어 登州(註 산동반도 방면)를 토벌하고
총관 <위충>을 잡아죽였다"고 하였다..중략..
수나라 왕 <양견>은 은밀하게 모반의 뜻을 품고 감히 복수의 군대를 내어
몰래 총관 <위충>을 파견하여 공명을 위해
관가를 부수고 읍락에 불지르고 노략질하게 하였다.
이에 제는 곧장 장병을 보내 적의 괴수(註:위충)를 사로잡아 죽이니
산동지방은 이에 다시 평정되고 해역은 조용해졌다.
이 해 <양견>은 또 <양양>, <왕세적> 등 30만을 파견하여 싸우도록 했으나
겨우 정주를 출발하여 아직 요택에도 이르지 못하였을 때
물 난리를 만나서 식량은 떨어져 배고픔은 심하고 전염병마저 크게 돌았다.
<주라후>는 병력을 모아 등주에 웅거하여 전함 수백 척을 징집시켜
동래(註 산동반도에 있는 지명)로부터 배를 띄워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는데,
고구려가 이를 알아차리고 후군으로써 이를 방어하도록 내보냈는데,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나서 전군이 물에 떠다니다 몰사하였다.
영양왕 9년(A.D 598년) 왕이 말갈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遼西를 침입하니
營州總管 <위충韋冲>이 쳐 물리쳤다.
수 문제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한왕 <양>과 <왕세적>으로 원수를 삼아
수군과 육군 30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토벌케 하였다.
여름 6월 수제는 조서를 내려 왕의 관작을 삭제하였다.
한왕 <양>의 군사가 임유관에 당도하자 장마비를 만나 수송이 계속되지 못하여
진중에 양식이 떨어지고 또 유행병이 돌았다.
<주라후周羅喉>는 동래로부터 배를 타고 평양성으로 달리다가
역시 바람을 만나 배가 많이 침몰되었다.
가을 9월 수의 군사가 돌아가는데 죽은 자가 열에 여덟 아홉이었다.
왕도 또한 두려워 하여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고 표를 올리어
"요동분토의 신하 아무개"라고 일컬으니
수 문제는 이에 군사를 철회하고 처음과 같이 대우하였다.
백제왕 昌(註 위덕왕)이 수 문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군도를 하겠다고 청하니
수제는 조서를 내려
"고구려가 죄를 자복하므로 이미 용서해 주었으니 다시 칠 수는 없다"하고
그 사신을 후대하여 돌려보냈다.
왕은 그 사실을 알고 백제의 경계를 침략하였다.
598년의 역사 기록이다.
이때 영양대제 <고원> 40세?, 수 문제 <양견> 58세, <고건무> 24세?,
백제 위덕왕 <여창> 69세, <연태조> 46세?, <양광> 30세이다.
한편 <고건무>는 <연태수>에게 <연태조> 아들의 생사를 묻는다.
<연태수>는 태연하게 국경 근처에서 조카를 제거했다고 말한다.
어린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어린 <연개소문>이 들고 있는 신표를 본다.
<서현>은 고구려의 국조인 삼족오와 십방육성의 별자리,
청룡무늬가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어린 <김유신>과 동생 <보희>, 어린 <연개소문>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김유신>은 595년생이고 <연개소문>은 <김춘추>와 동갑인 603년생이다.
<5부>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 영양왕이 사신의 목을 베고, 전쟁을 선포한 것을 알게 된다.
문제는 독고황후와 어떤 아들을 선봉에 내세울지 상의한다.
문제는 태자 <양용>은 바람 피우느라 정신없어서,
둘째는 너무 많은 공을 세워서, 셋째는 병약해서,
넷째는 큰 고을을 맡고 있어서 곤란하다고 판단한다.
마침내 막내 <양량>에게 출병하라고 명령한다.
한편 영양왕은 압록수를 넘어서 국내성으로 가는 길에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말갈 족장 <아소친>이 이끄는 1만의 기병과 합류한다.
광개토대왕비는 비류국 국내성(북도)에 414년에 세운 것을
고구려 멸망 후 고구려 부흥운동 시 후손들에 의하여 만주 즙안으로 옮겨졌을 것이다.
<고건무>는 형 영양왕이 요하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한다.
<고건무>는 욕살들의 눈치를 살피며 수군들의 출정 준비상태를 점검한다.
<연태조>는 <고건무>가 준비한 삼족오 부리를 닮은
쇠뿔이 달린 모형선을 보고 극찬한다.
<연태조>는 미리 예견했다는 듯이 <고건무>에게 전략과 전술을 늘어놓는다.
<고건무>는 <연태조>가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수군을 지휘하기로 결정한다.
영양왕은 국경 요하를 건너는데…
수 문제 황후 <독고가라獨孤伽羅(543-602)>는 <독고신獨孤信(503-557)>의 딸로
선비족이다.
<6부>
수나라 <양량>은 고구려군이 요하를 건넜다는 얘기를 듣고 군사들을 재촉한다.
노장 <고경>은 군사들이 지치면 전투에 차질이 생긴다고 충언하지만
<양량>은 서두르라고 다그친다.
조의들은 치루산 계곡에서 수나라 대군을 교란시킬 작전을 짠다.
<을지문덕>은 임시 군영을 설치하고 공격 준비태세를 갖춘다.
대장군 <강이식>과 영양왕의 처남인 온달장군의 후손 <온군>이 선봉에 나선다.
<양량>의 군대가 치루산 계곡으로 들어온다.
조의들은 불화살을 쏜다.
당황한 <양량>은 침착하지 못하게 무조건 화살을 쏜다.
조의들은 수나라의 화살을 모은다.
어렵게 영주성에 도착한 <양량>은 선제 공격에 나선다.
<강이식>과 <온군>, 말갈의 <아소친>은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수나라 군사들을 끌어 들인다.
고구려군은 미리 짜여진 작전대로 차근차근 전투를 치른다.
다급해진 <양량>은 <고경>의 조언을 듣지 않고 무조건 공격한다.
요하에 진을 치고 총공세를 준비하던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가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7부>
수나라 <양량>이 이끄는 8만 대군이 불타는 강위를 건넌다.
영양왕은 새까맣게 몰려오는 수나라 군사들을 지켜본다.
드디어 <강이식>과 <을지문덕>에게 공격 명령이 내려진다.
고구려군은 일제히 화살을 쏟아 낸다.
선봉의 수나라 영주성주 <위충>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도
목책을 넘어서 계속 공격한다.
고구려군의 퇴각명령이 떨어진다.
고구려군은 갑자기 석포를 퍼붓는다.
수나라군은 모두 얼음이 갈라진 강에 빠져서 전멸한다.
<양량>은 자신의 눈 앞에서 대군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당황한다.
문제는 막내 아들 한왕 <양량>이 전패한 것을 알고 크게 분노한다.
한편 <김유신>, <흠순>, <보희>, <문희>는 아버지 <서현>을 따라서
신라 황궁으로 들어간다.
<연개소문>도 따라간다.
<만호(548?- )> 태후마마는 <서현>을 흠모해서 도망친 딸 <만명>을 미워했지만
세월을 탓하며 용서한다.
<만호>태후는 손자 <유신>의 의젓함을 보고 흐뭇해 하고,
손자 <흠순>, <보희>, <문희>를 보고 기뻐한다.
어린 <김유신>은 외조모인 신라 황실의 최고 어른 태후마마에게
삼한을 통일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낸다.
수나라 문제는 전열을 정비해 대군을 준비한다.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강이식>, <아소친>과 <대걸중상>은
수나라 이십만 대군에 맞서기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연태조>는 천기를 움직이기 위한 준비를 서두른다.
드디어 수나라의 대군이 다시 일어나는데….
<8부>
수나라 <양량>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고구려 공격에 나선다.
바다에서는 수로군 <주라후>장군이
함선 3천척과 병참선 1천척으로 고구려 공격을 준비한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된다.
수나라 장수 <고경>은 행군 속도를 늦추라고 하지만
<양량>은 군사들의 발길을 재촉한다.
<양량>은 끝없이 이어지는 갈대밭과 늪지대 요택에 들어선다.
<양광>은 후방에서 동생 <양량>을 지원하지만
고구려군에게 또 패할 것을 예견하면서 자신의 야심을 비춘다.
한편 고구려 <을지문덕>과 <강이식>은 샘물에 독을 풀고 돌과 흙으로 메우며
적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한다.
고구려 <고건무>는 <연태수>, <문달>, <고승>을 데리고
수나라 수로군을 물리치기 위해서 바다로 나아간다.
신라 <서현>은 어린 <연개소문>이 혼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서현>은 <개소문>, <유신>, <흠순>, <보희>, <문희>를 앉혀 놓고
삼한의 밝도가 고구려 조의, 신라 풍류도와 화랑도로 이어졌다고 얘기한다.
<서현>은 <연개소문>에게 마방 일을 그만두고 낭도 공부를 하라고 시킨다.
<서현>은 <유신>에게 <연개소문>을 시종이자 친구로 사귀라고 말한다.
수나라 군사들은 물도 없이 길도 없고 모기와 거머리 떼가 우글거리는
늪지대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고경>은 죽을 각오를 하고 <양량>에게 군사들의 행군을 멈추자고 제안한다.
<양량>은 화를 내며 죽일 듯이 달려든다.
<고경>은 고구려군의 함정에 빠졌다고 얘기하고 물러간다.
<양량>은 계속 진군하라고 하는데….
<9부>
늪지대 요택에서 큰 위기에 처한 <양량>은 결국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드디어 고구려 1천 함대는 안개가 자욱한 장산군도 앞바다를 지난다.
수나라의 4천 척이 넘는 함선들도 고구려 앞바다를 향해 다가온다.
고구려 <고건무>는 <연태수>와 제장들에게 결전을 예고하고, 작전계획을 하달한다.
해무가 낀 틈을 이용해서 쇠뿔이 달린 충각선으로 적 측면을 공격하고
보급선과 수송선을 대파하기로 한다.
제1진은 <연태수>와 <고승>장군이, 제2진은 <고건무>와 <문달>장군이 맡는다.
수나라 장수 <주라후>는 공적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해무 속을 헤치고 고구려로 달려든다.
마침내 고구려와 수나라의 해전이 시작되고,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돌과 불화살이 하늘을 뒤덮고,
고구려의 충각선은 적함을 침몰시키고, 백병전까지 벌어진다.
수많은 적함이 불길에 휩싸이고 침몰된다.
1차전에서 고구려는 큰 성과를 올린다.
하지만 수적으로 불리한 <고건무>는 수나라의 대반격을 대비한 비책을 강구하는데….
금륜(지소) - 용수(573?- )
용춘(578-647)<13세 풍월주 재위 596-603>
무력(아양) - 서현(573?- )
이때 진평대제 <백정> 32세, <만호> 51세?, <미실> 52세, <서현> 26세,
풍월주 <용춘> 21세이다.
<10부>
<문달>장군과 <고승> 장군은
적의 학익진 전법을 밀집대형으로 바꾸기 위한 희생을 감수하기로 한다.
두 장군은 죽음을 각오한다.
<문달>이 선봉에 나선다.
북소리가 빨라지고 함선의 속도를 높인다.
수나라 함선에 가까이 다가간다.
<문달>은 최후의 순간까지 싸울 것을 당부하면서 불화살을 날리고
백병전을 준비하라고 소리친다.
조의를 비롯한 고구려군은 불타는 아비규환의 함선 속에서 격전을 벌인다.
수나라 <주라후>는 무모하게 달려드는 <문달>과 병사들을 보고 개탄한다.
급기야 <문달> 장군과 고구려군은 장렬하게 산화한다.
뒤를 따르던 <고승> 장군도 수나라 함선을 향해 돌격하지만 중과부적으로 대파된다.
<고승>은 부상을 당했지만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 뱃머리를 돌리고 사력을 다한다.
한편 <고건무>는 장렬하게 산화한 <문달>과 고구려군의 명복을 빌며
때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고승>의 뒤를 따라서 <주라후>가 이끄는 수나라 함선들이 밀집형으로 몰려든다.
마침내 박명이 시작되고, 몰려드는 수나라 함선에 고구려군이 불을 뿜는다.
<주라후>는 큰 피해를 보고 퇴각한다.
<주라후>는 수나라 함선에 마지막 결전을 지시하고 대오를 정비한다.
<고건무>는 최후의 저지선을 지키며
막리지 <연태조>가 얘기하던 신풍을 기다리는데….
<11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고구려군은 백성들의 큰 환영을 받는다.
영양왕은 큰 공을 세운 장군들과 각국의 축하 사절단을 위한 대연회를 연다.
천기를 다스렸던 <연태조>는 병환이 깊어져서 백두산으로 들어간다.
한편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군에게 참패하고 돌아온 <양량>과 <양광>,
장수들을 불러서 추문한다.
30만의 대군이 전멸하고, 100만에 달하는 수나라군의 피해를 집중 추궁한다.
<고경>과 <양소>는 삭탈 관직과 함께 천리 밖에 유배를 보내고,
<왕세적>과 <우문술>은 참수형에 처하고,
아들 <양량>과 <양광>에게는 자결하라고 명령한다.
<양량>은 아버지 문제에게 울부짖으며 용서를 구하고,
형 <양광>은 목에 칼을 대는데 독고황후가 나타난다.
세월이 흐른다.
신라 화랑과 낭도들의 실력을 가늠하는 시험이 시작된다.
진평왕과 <만호>태후, <만명>, <보희>, <문희>가 참석한다.
<미실>과 그의 양녀 제사장 <천관녀>도 지켜본다.
<만호>태후는 손자 <김유신>의 늠름한 모습을 보며 흐뭇해 한다.
<유신>의 동생 <흠순>과 낭도로 참가한 <연개소문>은 김유신의 뒤를 따른다.
<김유신>의 지휘로 전투가 벌어진다.
<김유신>은 물론 <연개소문>의 활약이 돋보인다.
<천관녀>는 <김유신>을 보고 반한다.
<보희>는 <연개소문>에게 시선이 끌리는데...
동륜(만호) - 백정(567-631) <진평대제 재위 579-631>
<미실>궁주와 <만호>태후는 비슷한 나이인데
<미실>이 왜 이렇게 못 생기고 어리게 나오나? ㅈㅈ
<12부>
<김유신>은 진평왕이 하사한 검을 받고 대화랑에 임명된다.
<연개소문>도 실력을 인정받아 낭도 중에 으뜸인 별장에 임명된다.
<김유신>에게 매료된 <천관녀>는 그를 신궁으로 유혹한다.
김유신은 홀린 듯이 천관녀를 따라간다.
<유신>의 동생 <흠순>은 모의 전투에서 자기를 도와준 <연개소문>에게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종놈이 자신을 욕보였다며 채찍질을 가한다.
<보희>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달려가서 오빠 <흠>순을 진정시킨다.
<보희>는 <연개소문>에게 손수 지은 낭도복을 건네며 마음을 달랜다.
<보희>와 <연개소문>이 웃음꽃을 피우는데 어머니 <만명>이 나타난다.
한편 영양왕은 수나라 포로들을 이용해 승전을 기념하는 경관을 세우고,
고구려의 역사를 정리한 신집을 발간해 주변국에 돌린다.
수나라 문제는 고구려의 경관과 신집 얘기를 듣고 크게 분노한다.
문제는 당장 고구려를 치러 가겠다고 난리법석을 떤다.
그 때 독고황후가 나타나 문제에게 일침을 가한다.
<연태수>는 자처해서 직접 신라의 동태를 살피고 돌아오겠다고 한다.
<연태수>는 <고건무>에게 자신의 조카가 살아 있는 것 같다며
국가와 가문을 위해서 제거해야한다고 하는데….
신라는 진흥대제 때 북쪽으로 만주의 길림까지 서쪽으로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였고
백제는 무왕 때 북쪽으로 황해도와 요동반도 남부지방까지 진출하였다.
<13부>
<김유신>과 <연개소문>은 단식 훈련에 들어간다.
열흘 넘게 물만 먹으며 강도 훈련을 받는다.
멀리서 <천관녀>는 넋을 잃고 <김유신>을 바라본다.
<미실>은 김유신에게 푹 빠진 <천관녀>를 불러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한편 수나라 문제는 돌궐과 고구려의 도전이 달갑지 않다.
독고황후는 황태자가 군사를 모아서 군사 훈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문제는 고민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문제는 <양광>의 사주를 받은 진부인의 얘기를 듣고
황권에 도전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연태수>는 신라 국경을 넘어서 왕궁으로 향한다.
신라군이 고구려 사신을 맞이하고 궁으로 안내한다.
길을 가던 <연태수>와 훈련중이던 <연개소문>이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연태수>는 <연개소문>에게 다가가서 낯이 익다고 하며 이름을 묻는데….
금륜(미실) - 비담(578?-647)
숙흘종(보리) - 알천(580?- ) 647년 상대등이 됨.
<14부>
훈련을 끝마친 <유신>은 <천관녀>의 유혹에 넘어가 신궁으로 간다.
<연개소문>은 <보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석양을 바라보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낸다.
<천관녀>는 <김유신> 앞에서 춤을 추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김유신>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천관녀>를 껴안는다.
<미실>은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본다.
<미실>은 <김유신>을 쫓아낸다.
한편 <만명>은 늦은 시간까지
<김유신>과 <보희>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걱정한다.
<흠순>이 <김유신>과 <보희>의 행방을 답한다.
잠시 후에 <연개소문>과 <보희>가 집에 들어오고,
<만명>은 <연개소문>에게 <보희>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이른다.
때마침 <김유신>이 들어오고,
<만명>은 아들 <김유신> 앞에 머리카락을 잘라 보여 주며
<천관녀>를 만나지 말라고 단호하기 얘기한다.
문제는 진부인이 소개한 궁녀를 만나는 재미에 푹 빠진다.
독고황후는 궁녀가 자신의 말을 거역하고 문제를 다시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독고황후는 궁녀의 목을 베어 문제 앞에 가지고 가는데….
<15부>
문제는 독고황후가 자신이 아끼는 궁녀의 목을 베어 보낸 것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흥분한 문제는 궁 밖으로 뛰쳐나간다.
<양광>은 아버지 문제가 궁을 빠져나갈 정도로 화가 난 것을 알고 계략을 꾸민다.
<양광>은 어머니 독고황후에게 단순한 질투로 궁녀의 목을 벤 것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충정으로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한다.
<양광>은 독고황후에게 아버지 문제를 위해서 석고대죄를 하라고 주문한다.
한편 태자는 동생 <양광>으로부터 아버지 문제가 궁 밖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엉뚱하게 자기가 주인인양 전시 상황처럼 모든 군사들을 동원해 궁을 호위한다.
궁안의 모든 사람들은 태자가 궁을 접수한 것으로 오해한다.
<양광>은 아버지 문제를 설득해 궁으로 데려온다.
문제는 반란을 일으킨 것처럼 군사들을 동원한 태자의 모습을 보고 몹시 진노한다.
<연태수>는 고구려에서 신라로 보낸 세작(간첩)으로부터
고구려에서 온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연태수>는 삼족오와 청룡이 새겨진 신표를 지닌 아이를 찾으라고 한다.
<연개소문>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백석>은 목걸이를 보여 달라고 하는데….
<16부>
<흠순>은 누이 <보희>와 <연개소문>이 함께 도망가자고 나누는 얘기를 엿듣는다.
<흠순>은 <연개소문>을 채찍질하며 당장 떠나라고 말하고,
떠나지 않으면 죽은 목숨이 될 거라고 경고한다.
<천관녀>를 찾아간 <김유신>은 마지막 만남이라고 얘기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김유신>은 훈련에 집중하지 못한다.
<용춘>은 <김유신>을 <원광>대사에게 보낸다.
<원광>대사는 <김유신>의 괴로움을 읽고, 산속 동굴을 찾아가서 수련하라고 말한다.
<김유신>과 <연개소문>은 참선에 들어간다.
문제는 독고황후와 <양광>의 집을 찾아간다.
미리 소식을 접한 <양광>은 방에 책을 쌓고, 향을 피우고,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름한 옷을 입힌다.
문제와 독고황후는 <양광>의 사는 모습과 언변에 탄복해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태자는 <양광>이 보낸 술로 방탕한 밤을 보내고 있는데….
이화(숙명) - 원광(560?- )
<17부>
태자는 처소에 감금되고, 태자와 함께 있던 신료들 모두 옥에 갇힌다.
문제와 독고황후는 태자 때문에 깊은 시름에 빠진다.
<양광>은 통쾌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예감한다.
진부인은 <양광>이 만들어 낸 상황을 보고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고민하던 문제는 태자와 신하들이 역적모의를 했다고 생각하고 모질게 고문한다.
한편 동굴 속에서 수련중인 <김유신>과 <연개소문>은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고통을 참아낸다.
<연태수>의 사주를 받은 <백석>은 <연개소문>의 절친한 친구지만
그의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기회만 엿본다.
<연개소문>은 신라와의 인연을 끊고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잡념을 지우지 못했던 <김유신>은 어디선가 들려 오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데….
<18부>
<김유신>은 어디선가 나타난 <난승>에게 책을 받아 들고 산에서 내려온다.
<연개소문>은 <김유신>에게 <보희>를 데리고 떠나겠다는 의사를 비춘다.
<김유신>과 <연개소문>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고 취한다.
술에 취해서 잠시 정신을 잃었던 <김유신>은
말이 <천관녀>의 집 앞에 멈춘 것을 알고 놀란다.
<천관녀>는 <김유신>을 반갑게 맞이하지만 <김유신>은 자신의 칼로 말을 내려친다.
한편 <연개소문>은 <보희>를 데리고 도망친다.
<만명>은 드디어 자신의 딸이 큰 일을 저질렀다고 탄식한다.
<흠순>은 <보희>와 연개소문을 잡기 위해서 뒤를 쫓는다.
마침내 수나라 태자는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데….
<19부>
<양광>은 아버지 문제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쏟으며
태자를 살려 달라고 애원한다.
문제는 <양광>을 뿌리치고 독고황후와 추문장으로 들어선다.
<양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자에게 달려들어 눈물을 흘린다.
태자는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양광>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서 노력한다고 착각한다.
독고황후의 눈치를 보던 문제는 최후의 결정을 내린다.
한편 <연개소문>과 <보희>는 말이 지치도록 달린다.
<흠순>은 <연개소문>과 <보희>를 잡기 위해서 추격한다.
<흠순>은 낭도들과 만노군을 이끌고 국경 근처를 샅샅이 뒤진다.
<연개소문>과 <보희>는 산속으로 숨어든다.
<보희>는 길 아래로 떨어져서 발목을 다친다.
<연개소문>은 친구 <백석>이 나타나서 자기를 인도해 주기만 기다린다.
그 시간 <백석>은 <김유신>을 국경 근처로 유인한다.
<백석>은 <연개소문>과 <보희>, <김유신>을 위기에 처하게 만드는데….
양견(독고가라) - 양용楊勇(564-604)
양광楊廣(569-618)<수 양제 재위 605-617)
양준
楊俊(571-600)
양수
楊秀(573-618) 양양楊諒(575-605)
독고신獨孤信(503-557)의 장녀는 북주 명제<원후元詡(510-528)>의 비 명경황후이고4녀는 당 고조<이연李淵(566-635)>의 생모이다.
우식于寔(??) - 우중문于仲文(545-613)
<20부>
<연개소문>과 <보희>는 추격해오는 <흠순>을 피해서 숨는다.
<흠순>은 군사들을 풀어서 필사적으로 <연개소문>과 동생 <보희>를 찾는다.
<백석>은 <김유신>을 유인해서 고구려에서 넘어온 무리들이 있는 주막으로 안내한다.
국경 근처까지 <백석>을 따라온 <김유신>은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다.
<김유신>은 <백석>과 무리들의 정체를 밝혀 낸다.
<백석>은 칼을 빼 들고 고구려 간첩임을 드러낸다.
<김유신>은 <백석>의 무리를 물리치고 음모를 밝힌다.
<김유신>은 <연개소문>과 <보희>를 찾아서 움직인다.
마침내 <양광>은 태자의 의관을 갖추고, 성대하게 치러지는 즉위식을 올린다.
<양광>은 태자가 된다.
<진>부인은 화려한 예복을 차려 입고 <양광>을 맞이하려고 준비한다.
<진>부인은 화려한 옷을 입은 이유를 묻는 궁녀에게
황태자에 오른 <양광> 때문에 수나라의 멸망이 보인다고 하는데….
<양광>이 태자가 된 해는 600년이다.
이때 수 문제 <양견> 60세, 황후 <독고가라> 58세,
폐태자 <양용> 37세, <양광> 32세이다.
<21부>
<유신>은 <연개소문>에게 칼을 던져 주며 스스로 자결하라고 말한다.
<연개소문>은 <보희>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고민하다가 칼을 꺼낸다.
<유신>은 괴로운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관녀>가 머무는 신궁을 지난다.
<유신>이 돌아오기만 기대하던 <천관녀>는 <유신>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유신>은 눈물을 훔치며 신궁에서 점점 멀어진다.
<천관녀>는 신들린 듯이 춤을 추다가 촛불을 쓰러뜨리고, 불길에 휩싸인다.
영양왕은 동생 <고건무>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기로 한다.
<연태조> 역시 동생 <연태수>에게 뒤를 맡기기로 한다.
한편 수나라 독고황후는 노환으로 점점 힘을 잃는다.
<양광>은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문제는 <양광>이 동생들을 헤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방책을 강구하는데….
이밀李密(582-618)은 이때 20세 전후이다.
우문태宇文泰(508-556) - 우문성宇文盛(548?- ) - 우문술宇文述(565?-616)
우문태의 10子 581년 우위대장군
우문옹(543-578)의 동생
양소楊素(544-606) - 양현감楊玄感(570?-613)
589년 의동삼사
<22부>
관노비가 된 <연개소문>은 국경 근처 노역장으로 끌려간다.
<연개소문>이 보는 앞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관노들의 대장격인 <마두>가 돌덩이와 통나무에 깔려 죽을뻔한 것을
<연개소문>이 구해준다.
그 일을 계기로 <마두>는 말없이 일만하는 <연개소문>에게 관심을 갖는다.
한편 아우 <고건무>에게 황권을 맡긴 영양왕은 북평양성으로 휴양을 떠난다.
<연태조>, <을지문덕>, <강이식>도 10년 후를 예상하며
수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기로 한다.
<고건무>와 <연태수>는 수나라와 화해하기 위한 묘책을 마련한다.
마침내 독고황후의 기력이 다 떨어진다.
독고황후는 남편 문제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양광>은 점쟁이를 통해서 황후가 묻힐 곳을 미리 찾고,
4년 후에 자기가 황좌에 오를 꿈을 꾸는데….
수 문제의 황후 <독고가라獨孤伽羅(543-602)>가 죽은 해는 602년이다.
<23부>
독고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문제는 깊은 슬픔에 잠긴다.
태자 <양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며칠 밤낮을 대성통곡한다.
급기야 <양광>은 울다가 눈을 까뒤집으며 숨이 막혀 졸도하는 연기까지 펼친다.
문제는 <양광>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한다.
한편 신라는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고구려를 막아 달라고 부탁한다.
고구려 역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형제국을 운운하며 회유책을 편다.
마침내 고구려는 때를 맞춰 신라의 북한산성으로 진격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신라 성주와 고구려 <고승>의 접전이 펼쳐진다.
북한산성에 있던 연개소문은 위험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하는데….
<24부>
신라 성주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마침내 신라군의 방어선이 뚫린다.
진평왕은 초조해지고, <용춘>은 화랑들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출군을 명한다.
갑옷도 입지 않은 화랑들은 용맹스럽게 싸우다가 전사한다.
신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간다.
화랑을 애송이로 생각했던 고구려군은 당황한다.
한편 <천관녀>는 <김유신>을 위해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삼고,
독주를 마신 후에 춤을 추다가 세상을 떠난다.
수련하던 <김유신>은 금빛새가 날아와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겨우 탈출한 <연개소문>은 보희를 데려가기 위해서
삼엄한 경비를 뚫고 집안으로 숨어든다.
<보희>와 다시 만난 <연개소문>은 마당으로 나서고,
<김유신>이 <연개소문> 앞에 나타나는데….
<25부>
<보희>는 <유신>에게 <개소문>을 살려줄 것을 청하지만
<유신>은 기회가 있을 때 달아났어야 했다며 이번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말한다.
<보희>는 끌려가는 <개소문>을 보며 절망스러워 한다.
<개소문>과 <마두>는 형리에게 끌려가 모진 매를 맞는데..
<고승>은 <건무>에게 패장이 되어 돌아옴을 면목없어한다.
<건무>는 방심은 금물이라며 명예를 되찾을 날이 있을 거라 격려한다.
한편 수나라에서는 <양수>와 <양량>이 폐태자가 모함을 받은 것이라며
다시 한번 헤아려 줄 것을 문제에게 청하다가 오히려 꾸지람을 듣는다.
<양광>은 아우들에 대해 매듭을 지으려 하는데..
<26부>
<양광>이 아우들의 행동에 분개를 하며 기분 나빠 하자
<양소>는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면 자신만 믿으라고 한다.
<양광>은 비위를 맞추며 웃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은데...
시위장 <이밀> 또한 신태자가 한 행동들을 좋지 않게 보고
<양현감>에게 형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한 태자와는 맞지 않는것 같다고 얘기한다.
태자 또한 <이밀>을 멀리하고...
상단의 노예로 끌려간 <개소문>과 <마두>는 배에서 노를 젓는다.
노예에 대한 대우가 도를 지나치자 <개소문>은 항의를 하고,
이를 보고 있던 <생해>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개소문>에게 원없이 싸우게 해주겠다고 하는데...
<27부>
<연개소문>과 노예대장 <점박>이가 붙는다.
<점박>이는 괴력을 자랑하며 <연개소문>에게 달려든다.
<연개소문>은 점박이를 보기 좋게 무릎 꿇린다.
이번에는 선단의 무사들을 지휘하는 <생해>가 <연개소문>과 접전을 벌인다.
<연개소문>은 <생해>를 이기고 무사단으로 들어간다.
한편 <양광>은 <양소> 우복야와 함께 동생들을 죽일 계략을 꾸민다.
<양광>은 <양소> 앞에서는 잘한다고 하면서
뒤로 <우문술>을 시켜서 <양소>를 제거하려고 계획을 세운다.
진부인은 주색잡기에 빠진 황제 문제와 동생들을 죽이고
황위에 오를 생각만 하는 <양광>을 보면서 수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침내 문제는 역모를 꾸민다는 상소를 받고
우복야에게 아들 <양수>를 불러들이라고 하는데….
<28부>
촉왕 <양수>는 폐서인이 되어 형 <양용>과 함께 감금된다.
<이밀>은 <이정>과 촉왕 <양수>가 폐위된 것을 이야기한다.
나라의 국운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걱정한다.
문제는 건강이 극도로 나빠져서 진부인과 인수궁으로 간다.
진부인은 문제의 환후가 나빠지는 것을 보고 태자 <양광>을 불러들인다.
진부인은 문제가 잠든 틈에 그 앞에서 태자 <양광>을 유혹한다.
문제가 잠시 뒤척이다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본다.
진부인은 다시 <양광>을 자신의 처소로 불러 들인다.
한편 해적들에게 잡혀 있던 <왕빈>은 집사가 가져온 황금을 건넨다.
황금에 정신이 팔린 해적들은 <왕빈>과 <연개소문>을 풀어 준다.
그 때 수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쳐서 해적들을 물리치는데….
<29부>
진부인은 문제에게 <양광>이 자기를 범하려고 했다며 울부짖는다.
문제는 당장 <양광>을 폐하고 폐위된 <양용>을 불러다 태자에 책봉하라고 지시한다.
다급해진 <양광>은 <장형>을 불러서 사태의 심각성을 얘기한다.
<장형>은 문제의 황명을 받고 <양용>을 데리러 가는 신하들을 잡아 가둔다.
<장형>은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마침내 수나라 황제인 문제까지 죽인다.
엄청난 패륜을 저지른 <양광>은 <양소>와 <장형>을 앉혀 놓고
사태 수습을 위해 고심한다.
<양광>은 광기를 잠재우지 못하고 진부인의 처소를 찾아간다.
한편 <연개소문> 일행은 <왕빈>의 처소에 도착한다.
<연개소문>은 <왕빈>의 집이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왕빈>은 연개소문을 양아들처럼 키우기로 하는데….
수 문제 <양견楊堅(541-604)>이 죽은 해는 604년이다.
<30부>
드디어 <양광>의 황제 즉위식이 거행된다.
<양광>은 세계 최대 규모의 대운하 건설, 만리장성의 완공,
대규모 고구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백성들을 기아와 궁핍으로 몰아간다.
<양광>은 동생 <양량>이 반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우복야 <양소>가 직접 토벌군을 지휘하고 나선다.
한편 <연개소문>은 <왕빈>의 소개로 <이밀>과 동생 <이화> 등을 만난다.
<이화>는 <연개소문>을 유심히 보고 관심을 갖는다.
<이화>는 책을 보고 있는 <연개소문>에게 다가간다.
마침내 <양소>는 반란군을 물리치고 <양량>을 생포한다.
<양광>은 진부인에게 호의를 베풀며 다가가지만
독설을 쏟아 붓는 그녀에게 면박을 당한다.
화가 난 <양광>은 신하들에게 진부인을 향해서 화살을 쏘라고 명령한다.
진부인은 수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며 숨을 거두는데….
<양소楊素(544-606>의 아들 <양현감楊玄感(570?-613)>은 이때 35세?이고
수 양제 <양광楊廣(569-618)>은 36세, 황후 소蕭씨(566-648) 39세이다.
陳부인(577-605)이 죽은 해는 605년으로 그때 나이 29세이다.
<31부>
고구려의 <고건무>는 <연태수>와 함께 수나라의 <양광>이
자기 아버지와 동생 <양수>, <양량>을 제거하고
새 황제가 됐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두 사람은 수나라가 고구려 침공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대책 마련에 나선다.
<양광>은 우복야 <양소>가 잡아온 동생 한왕 <양량>을 심문한다.
<양량>은 형 <양광>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양광>은 광기를 드러내지만 동생 <양량>을 죽이지 않고 가둔다.
<양광>은 <양량>의 여자였던 <오강선>의 미모에 반해서 자신의 애첩으로 삼는다.
<연개소문>은 <왕빈>과 함께 <이정>, <이밀>, <이화> 등과 사냥에 나선다.
모두 문무에 능한 <연개소문>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이화>는 <연개소문>과 검술 대결을 벌인다.
<이화>는 현란한 검술을 선보이며 <연개소문>에게 다가간다.
<연개소문>은 순간적으로 <이화>를 압도하고 끌어안는데….
<32부>
<양광>은 인사차 왔다는 고구려의 사신 <사비류>에게 정탐을 하러 왔다고 호통친다.
<사비류>는 <양광>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양광>은 얘기를 듣지 않고 쫓아낸다.
<장형>은 <사비류>에게 전쟁은 시작됐다고 얘기한다.
<양광>은 광기를 잠재우지 못하고,
태자에서 황제까지 만들어 준 <양소>를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양소>는 자신의 운명을 알기라도 하듯이 해괴한 꿈을 꾼다.
<양소>는 해몽가를 불러서 자신의 꿈 풀이를 묻는다.
<양소>는 운명의 갈림길에 놓인 자신의 처지를 알게 된다.
<연개소문>은 이화에게 신라에서 노비 생활을 했었고,
한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이화>는 <연개소문>에게 돌아갈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여자를 대신해서
빈자리에 들어가도 되는지 묻는다.
<연개소문>과 <이화>는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 말을 달리는데….
<33부>
황제 <양광>은 계속해서 좌복야 <양소>에게 술을 마시라고 권한다.
<양소>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술잔을 받지 않는다.
<양광>은 좋은 술이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양소>에게 술을 권한다.
<양소>는 좋은 술을 자기가 먼저 마실 수 없다며 태자에게 주고,
태자는 넙죽 잔을 받아 마신다. 태자는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둔다.
<이화>는 <연개소문>이 신라에서 화랑 별두를 지낸 비범한 인물이며
한 여인 때문에 도망쳐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화>는 <연개소문>에게 남은 인생의 절반을
자기에게 나눠 달라고 과감하게 얘기한다.
<연개소문>은 이미 좋은 벗이라며 한 발 물러선다.
<양광>은 양소 때문에 태자까지 죽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다.
<양소>는 자기 앞에 닥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양광>의 사주를 받은 <장형>은 자리에 누운 <양소>에게
어의를 데리고 간다는 핑계로 사약을 들고 찾아간다.
<양소>는 이제껏 자신이 누렸던 부귀영화를 부르짖으며 최후를 맞이하는데….
양광(소씨) - 양소楊昭(584-606)
좌복야 양소楊素(544-606)
이때 태자 <양소楊昭(584-606)> 23세, 좌복야 <양소楊素(544-606)> 63세이다.
<34부>
<양소>의 상가에 파리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양광>은 <양소>가 죽은 것을 크게 기뻐한다.
<장형>은 황제 <양광>에게 <양소>의 상가를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광>은 신하들을 데리고 <양소>의 상가를 찾아가 예를 올리지만
곧바로 악대를 불러서 술판을 벌린다.
마침 상가를 찾았던 <이밀>이 <양광>의 작태를 비판한다.
상가에 있던 사람들 모두 당황한다.
<이밀>과 <오씨>는 <이화>와 <연개소문>을 맺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이화>는 돌궐까지 먼 길을 가는 <연개소문>과 인사를 나눈다.
<이밀>은 <왕빈>에게 <연개소문>과 <이화>를 맺어 주자고 얘기한다.
<왕빈>은 <연개소문>의 의사를 물어서 실행하기로 한다.
<연태조>는 수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돌궐을 찾아간다.
이미 돌궐은 수나라와 끈끈한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연태조>가 돌궐의 왕에게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수나라를 물리치자고 설득한다.
돌궐의 왕도 마음이 서서히 움직인다.
수나라 <양광>과 50만명의 군사들
그리고 <왕빈>과 <연개소문>이 더욱 단단한 수교를 위해서 돌궐로 향하는데….
양견(독고가라) - 양광(569-618)
이병(독고씨) - 이연(566-635)
수 양제 <양광>과 당 고조 <이연>은 이종 사촌이다.
이연(두씨) - 이세민李世民(599-649)
이때 <이연李淵(566-635)> 41세, <양광> 38세, <이세민> 8세이다.
<35부>
수나라 장군 <장손성>과 돌궐의 왕 계민가한 고구려의 <연태조>가 팽팽하게 맞선다.
<장손성>은 <연태조>를 고구려의 세작이라고 의심한다.
<장손성>과 <연태조>의 기싸움이 계속되고,
마침내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태조>임을 밝힌다.
<장손성>과 <계민>가한 모두 크게 놀란다.
<장손성>은 황제 <양광>이 온다는 이유로
넓은 초원의 잡초를 베라고 <계민>가한에게 지시한다.
돌궐에 도착한 <양광>은 풀 투성이인 가한을 보고 크게 웃으며 <장손성>을 칭찬한다.
<양광>은 연회를 열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돌궐의 영원한 복속을 약속 받는다.
<양광>은 <계민>가한의 처로 살고 있는 자신의 동생 의성공주에게 안부를 물으며
더욱 견고한 결속을 다진다.
<계민>가한은 <양광>에게 고구려의 사신이 왔음을 알리고
대막리지 <연태조>를 불러온다.
<양광>은 자신의 눈 앞에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태조>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양광>과 <연태조>의 생사를 가르는 날카로운 대화가 오고 간다.
<연태조>는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는 <연개소문>을 보고 크게 놀란다.
마침내 아버지 <연태조>와 아들 <연개소문>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연태조>는 <연개소문>에게 고구려에서 왔는지, 신표가 있는지 묻는다.
<연태조>는 아들 <연개소문>에게 큰 절을 올리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연태조>는 마지막으로 미소를 지으며 떠난다.
<연개소문>은 <왕빈>으로부터 방금 떠난 사람이 연씨라는 얘기를 듣는다.
<연개소문>은 <연태조>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말을 달리는데….
<36부>
<연태조>는 집사 <최무>에게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린다.
<연태조>는 고구려의 큰 인물이 될 아들 <연개소문>을 부탁하고, 왜 나라로 떠난다.
<최무>는 눈물을 머금고 고구려로 돌아와
<연태조>가 수립한 전략을 영양제에게 보고한다.
영양제는 동생 <고건무>와 <연태조>가 보내온 정보를 살펴보고
수나라의 공격에 대비한 전략 수립에 나선다.
<을지문덕> 장군이 <연태조<의 자리를 대신하고
대규모 전쟁에 대비한 방책을 강구한다.
수나라의 어지러운 정세를 미리 읽은 <왕빈>은 모든 것을 <연개소문>에게 맡기고
먼 길을 떠나기로 한다.
<왕빈>은 떠나기 전에 <연개소문>과 <이화>의 혼담을 성사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연개소문>과 <이화>는 자신들의 속마음을 드러내고,
두 사람은 혼례를 올리기로 한다.
마침내 <연개소문>과 <이화>의 성대한 혼례가 거행된다.
<왕빈>, <이밀>, <이세민>, <양현감>, <곡사정>, <이정> 등이 참석한다.
<생해>와 <홍매>도 은근히 <연개소문>과 <이화>의 혼례를 부러워하며
사랑을 싹 틔운다.
한편 <양광>은 <장형>이 옆에서 바른 소리하는 것을 듣기 싫어한다.
결국 <양광>은 아버지 문제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친구 <장형>을 먼 변방으로 쫓아내기로 한다.
<장형>은 마지막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양광>에게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을 토해내는데….
<37부>
수나라 <양광>은 육군과 수군으로 나뉜 3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진군한다.
신라와 백제의 사신들은 <양광>을 찾아가 수나라를 돕겠다고 나선다.
<양광>은 감싸 안으려고 애쓰는 고구려와 비교하며
신라와 백제의 의도를 한심하게 생각한다.
한편 고구려 <고건무>, <연태수>, <강이식>, <을지문덕> 등은
수나라의 대공세를 막아 낼 수 있는 전략을 짠다.
여든살을 넘긴 <강이식> 장군은 노익장을 과시하며 결전을 예고한다.
<을지문덕> 장군도 그 동안 준비한 전술을 가다듬고
수나라를 물리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드디어 수나라는 완성된 부교를 강 위에 띄우고 요하강을 건넌다.
고구려 <온사문>과 <강이식> 장군은 쇠뇌와 불화살을 쏘며 수나라군을 요격한다.
<양광>은 광기를 드러내며 군사들에게 강을 건너게 하는데….
<역사적 사실>
삼국사기는 중국의 사서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니 수서(隋書) 양제 본기를 살펴보자.
대업(大業) 8년(612)
봄 정월 신사일(612.1.1),대군(大軍)이 탁군(涿郡)에 집결하였다.
수 나라의 대 고구려 최전방은 하북성 탁군이다.
병부상서 <단문진段文振>을 좌후위 대장군으로 삼았다.
임오일(612.1. 2),조서를 내려 말하였다.
『천지의 큰 덕으로도 가을철에 무서리를 내리며,
성철(聖哲)의 지극한 어짊으로도 형전(刑典)에 갑병(甲兵)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조화옹(造化翁)이 가을철에 초목을 말라죽게 하는 것에서
그 의리가 사사로움이 없다는 것을 알겠으며,
제왕이 창과 방패를 써서 정벌하는 것은 대개 부득이해서 쓰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판천(阪泉)과 단포(丹浦)의 정벌은 모두가 공손하게 천벌(天罰)을 행한 것이고,
어지러운 나라를 빼앗고 혼란한 자를 뒤엎은 것은
모두가 천지의 법도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더구나 감야(甘野)에서 군사들에게 맹세하여
하(夏)나라가 대우(大禹)의 왕업을 열었고,
상교(商郊)에서 문죄하여 주(周)나라가 문왕(文王)의 뜻을 발현한 경우이겠는가.
영원한 감계(鑑戒)가 전 시대에 있어서 이제 짐의 몸에 바로 당하였다.
우리 수나라는 하늘의 명에 크게 응해서 삼재(三才)를 겸하여 법도를 세우고,
육합(六合)을 통일하여 한집안으로 만들었다.
이에 강역(疆域)이 미친 바는 세류(細柳)와 반도(盤桃)의 바깥이고,
성교(聲敎)가 미친 바는 자설(紫舌)과 황지(黃枝)의 지역이다.
먼 곳에서는 덕을 사모해 귀부(歸附)하고
가까운 곳에서는 생업에 편안하여 화합하지 않는 나라가 없어,
공이 이루어지고 다스림이 안정됨이 이에 있게 되었다.
그런데 저 고구려의 보잘것없는 무리들이 미욱스럽고 공손치 못하여
발해(渤海)와 갈석(碣石) 사이에 모이고,
요수(遼)와 예수(穢)의 경계를 거듭 잠식하였다.
비록 한(漢)나라와 위(魏)나라가 주륙(誅戮)하여 그들의 근거지가 잠시 위태로웠으나,
난리로 인해 끝까지 정벌하지 못하자 그 종족(種族)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이에 지난 시대에 소굴로 모두 모여들어서 점차 번성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저 중국 땅을 돌아보건대,
잘려 나가 오랑캐의 부류가 된 지 세월이 이미 오래되어 악이 여물어 가득 찼다.
그러나 하늘의 도는 음란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법이라 망할 징조가 이미 나타났다.
떳떳한 도를 어지럽히고 덕을 무너뜨림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으며,
악을 숨기고 간사함을 품은 지가 날짜로는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다.
위에서 삼재(三才)란 천(天) 지(地) 인(人)으로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만물을 통틀어 말한 것이며
육합(六合)이란 천지와 사방(동서남북), 즉 천하를 말한다.
세류(細柳)는 전설 속에 나오는 해가 진다는 곳으로 극서(極西)를 말하고,
반도(盤桃)는 전설 속에 나오는 신선이 먹는다는 복숭아인 반도가 생산되는 곳으로
창해의 끝을 가리킨다.
자설(紫舌)은 중국과 다른 말을 쓰는 먼 지역을 말하며
황지(黃枝)는 인도에 있는 옛 나라의 이름이다.
다시 말해서 수나라가 온 천하를 정북하였는데
고구려만이 수나라에 대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조서(詔書)를 보내 엄하게 알린 것도 일찍이 면대하여 받지 않았으며,
조정에 알현하는 예도 몸소 하려고 하지 않았다.
도망친 반도(叛徒)들을 꾀어 받아들임이 끝닿은 데를 모르고, 변방 지역에 가득 차서,
자주 봉후(烽候)를 번거롭게 올리게 하고, 문빗장과 딱다기가 이로써 조용하지 못하여,
백성이 그로 말미암아 생업을 폐하게 되었다.
고구려가 수나라를 마구 공격하여
수나라 백성들을 살수 없게 되었다고 수양제는 말하고 있다.
양광(수양제)이 황제랍시고 사신을 보내 조서라는 것을 보내도
고구려 임금이 직접 받지 않고
문서를 접수하는 관리에게 조서를 받게 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 임금이 수나라를 대등한 상대로 보았기 때문에
외교문서 담당관에게 조서라는 것을 접수하게 한 것이다.
위 문구가 말하듯이 고구려가 수나라의 아래였다면
수양제가 보낸 조서라는 것을 고구려 임금이 직접 받아야 한다.
그런데 고구려 임금이 조서라는 것을 직접 받지 않는다고 타박하고 있으니
이것은 수양제가 직접 고구려가 수나라와 대등하게 행동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가 중원의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과 강소성, 절강성까지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에 정벌할 적에는 하늘의 법망에서 빠뜨려,
바로 앞에서 도망치는데도 주륙하는 것을 늦추어 주었고,
뒤늦게 복종하는 데 따른 주벌도 즉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찍이 그 은혜를 생각지 않은 채 도리어 악함을 길렀다.
거란(契丹)의 무리들과 연합하여 바닷가의 수자리 군사들을 죽이고,
말갈(靺鞨)의 습관을 익혀 요서(遼西) 지방을 침범하였다.
또 청구(靑丘)의 바깥에서까지 모두 직공(職貢)을 닦고
벽해(碧海)의 가에서 조차도 함께 정삭(正朔)을 받드는데,
드디어는 그들이 가지고 오는 보물을 다시 빼앗고 그들이 왕래하는 길을 막았다.
이에 죄 없는 사람들에게 잔학함이 미치고, 정성을 바치는 자들이 화를 당하게 되었다.
수서 고려전, 개황 17년(597년) 조를 보면
수문제가 고구려 평원대제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말갈을 못 견디게 괴롭히고 거란을 견고하게 가두었소.”
이것을 보면 고구려는 거란과 말갈을 확실하게 지배하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양제의 이야기는 고구려가 자기의 지배하에 있는
거란 및 말갈과 합동작전을 펴서
바닷가(산동반도)와 요서 지방을 공격하였음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수레를 탄 봉명(奉命)한 사신이 해동(海東)에 가고
정절(旌節)을 든 사신이 거기로 가려면
번국(藩國)의 경계를 지나가야 하는데 도로를 막고
왕의 사신을 거절하여 황제를 섬기는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어찌 신하로서의 도리이겠는가.
이런데도 참는다면 무엇을 참고 용납하지 못하겠는가.
고구려의 바깥에 있는 국가가 수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으려고 고구려를 통과하려고 하면,
물건을 빼앗고 왕래하는 길도 막아 조공하는 나라가 오히려 화를 당했다.
즉, 자기들의 외교관계 마저 단절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법령이 가혹하고 세금이 무거우며,
강포한 신하와 힘센 호족들이 모두 국정의 기틀을 틀어쥐고 있어
붕당끼리 결탁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었고,
뇌물을 주고받는 것이 마치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같아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억울함을 풀 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해마다 거듭된 재앙과 흉년으로 집집마다 기근이 닥치고,
전쟁이 그치지 않아 요역이 그칠 날이 없으며,
군량을 운반하느라 힘이 다하여 죽은 시체가 도랑과 구덩이를 메우고 있다.
백성들이 근심하고 고통스러우니 그 누가 따르겠는가.
온 나라 안이 슬프고 두려워하면서 그 폐해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머리를 돌려 중국을 바라보면서 제각기 목숨을 보전할 생각을 품고 있고,
노인과 어린아이들조차도 모두 혹독하다는 탄식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풍속을 살펴보며 유주(幽州)와 삭주(朔州)에 다다랐으니,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를 묻는 일은, 다시 군사를 일으킴에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산서성의 유주(幽州)와 삭주(朔州)가 대 고구려 최전방이다.
이에 친히 육사(六師)를 거느리고 구벌(九伐)을 펴서,
위급한 상황을 구제하여 하늘의 뜻에 따르고,
달아났던 무리를 쳐 죽여서 선대(先代)의 교훈을 이을 것이다.
지금 군율을 내려 출발하고 지휘를 나누어 길을 나아가되,
발해(渤海)를 엄습하여 천둥같이 진동하고,
부여(扶餘)를 경유하여 번개처럼 쓸어버리라.
방패를 가지런히 하고 갑옷을 살피고서 군사들에게 경계한 뒤에 출발하고,
거듭거듭 알리고 타일러서 필승을 기한 뒤에 싸우라.
좌군(左軍) 제1군은 누방도(鏤方道)로 나아가고,
제2군은 장잠도(長岑道)로 나아가고,
제3군은 해명도(海溟道)로 나아가고,
제4군은 개마도(蓋馬道)로 나아가고,
제5군은 건안도(建安道)로 나아가고,
제6군은 남소도(南蘇道)로나아가고,
제7군은 요동도(遼東道)로 나아가고,
제8군은 현도도(玄菟道)로 나아가고,
제9군은 부여도(扶餘道)로 나아가고,
제10군은 조선도(朝鮮道)로 나아가고,
제11군은 옥저도(沃沮道)로 나아가고,
제12군은 낙랑도(樂浪道)로 나아가라.
우군(右軍) 제1군은점선도(黏蟬道)로 나아가고,
제2군은 함자도(含資道)로 나아가고,
제3군은 혼미도(渾彌道)로 나아가고,
제4군은 임둔도(臨屯道)로 나아가고,
제5군은 후성도(候城道)로 나아가고,
제6군은 제해도(提奚道)로 나아가고,
제7군은 답돈도(踏頓道)로 나아가고,
제8군은 숙신도(肅愼道)로나아가고,
제9군은 갈석도(碣石道)로 나아가고,
제10군은 동이도(東暆道)로 나아가고,
제11군은 대방도(帶方道)로 나아가고,
제12군은 양평도(襄平道)로 나아가라.
이상의 뭇 군사들은 먼저 묘당(廟堂)의 계략을 받들어서
잇달아 길을 나아가 모두 평양(平壤)으로 집결하라.
위의 진군로에 나오는 지명들은 모두 평양(今 노룡)의 서쪽과 남쪽에 있는 지명들이다.
다시 말해서 낙랑은 평양이 아니라고 증언을 하고 있으며,
대방 역시 평양을 가기 전에 있다고 수양제는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좌군 중 해명도, 조선도, 낙랑도는 수군이며,
우군 중 점선도, 함자도, 흔미도, 임둔도, 제해도, 갈석도, 동이도, 대방도는 수군이다.
이는 일제 식민사관에 의하여 낙랑군이 평양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대방군이 황해도에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역시 사기임을 수양제는 똑똑히 증언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지금의 한반도의 평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군사들이 사나운 맹수와 같은 용맹을 가지고 있으며,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웅략(雄略)을 가지고 있다.
이에 힐끗 돌아보면 산악이 기울어 무너지고 한번 소리치면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니,
마음과 덕을 함께하는 바로, 용맹한 군사들이 여기에 있다.
짐이 몸소 말을 몰아 원융(元戎)이 되어 이들을 절제(節制)하면서
요수(遼水)를 건너서 동쪽으로 가,
바다의 오른쪽을 따라가서 먼 나라 사람들의 거꾸로 매달린듯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살아남은 백성들을 위해 질고(疾苦)를 물을 것이다.
그 외의 군사들은 양식을 싸 짊어지고
수레를 보충하여 기미에 따라 메아리처럼 호응하고,
갑옷을 말아 쥐고 말에게 재갈을 물려서 빠르게 진격해
적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나아가 칠 것이다.
또 큰 바다를 건너는 군사들은 천리에 이어진 전선(戰船)을 몰아
빠른 바람을 타고 번개처럼 내달리고,
커다란 전함이 구름처럼 날아가 패강(浿江)을 가로질러서
곧장 평양으로 나아갈 것이니,
도서 지역의 조망이 이에 끊어질 것이며, 어렵고 험한 길이 이에 궁해질 것이다.
그 나머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왼쪽으로 옷깃을 여미는 오랑캐 족속들이
시위를 당긴 채 쏘라는 명을 기다릴 것이며,
미(微), 노(盧), 팽(彭), 복(濮)의 군사들이 서로 모의하지 않고도 모두 모여들 것이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서 역적들을 치니 군사들은 용기가 백배는 충만할 것이고,
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전쟁을 하니
형세가 썩은 나무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그러나 왕자(王者)의 군대는 그 의리가 살해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데 있으며,
성인의 가르침은 반드시 잔학한 자를 막는 데 있는 법이다.
하늘은 죄가 있는 자에게 벌을 내리는데,
죄악의 근본은 원악(元惡)에게 있으며 사람들은 사특함이 많은 법이니,
위협에 못 이겨 악을 따라 행한 자는 죄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고원高元>이 원문(轅門)에 와서 머리에 진흙을 바르고
스스로 형관(刑官)에게 가서 죄를 받기를 청한다면,
의당 즉시 묶은 것을 풀어 주고 관(棺)을 불살라서 은혜를 크게 할 것이다.
그 나머지 신하들은 조정에 귀의하여 순종한다면,
모두 위로하면서 어루만져 주어 각자의 생업에 편안하게 하고,
재주에 따라 임용하여 화이(華夷) 간에 차별을 두지 않을 것이다.
영루(營壘)에 주둔함에 있어서는 정돈되고 엄숙하게 하기를 힘쓸 것이며
꼴 베고 나무하는 것을 금지하여 추호도 백성들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다.
은혜와 용서로써 포고하고 화(禍)와 복(福)으로써 유시하되,
만약 서로 도와서 악한 짓을 하여 천자의 관군(官軍)에 대항하는 자가 있을 경우에는,
나라에 떳떳한 법이 있으니 한 사람도 남김없이 처단할 것이다.
이상을 분명하게 효시하는 바이니, 짐의 뜻에 맞게 하라.』
모두 113만 3천 800 명이었는데 200만이라 일컬었으며,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가 되었다.
계미일(612.1.3)에 제1군이 출발하여 40일 만에 마쳐,
군대 인솔이 이에 끝났으며 깃발이 천리에 뻗쳤다.
황제의 친위대는 마지막으로 탁군을 출발하였으니 612. 2.12이다.
근고(近古)에 군대 출동의 성대함이 이와 같은 것이 없었다.
3월 신묘일(612.3.1),병부상서 좌후위 대장군 <단문진>이 죽었다.
계사일(612.3.3),(황)상이 군대가 있는 곳에 갔다.
갑오일(612.3.4),군대가 요수 다리에 다달았다.
친위대가 20일만에 탁군에서 요수에 도달한다.
1일 약15km x 20일 = 약 300km
탁군에서 요수까지의 거리는 약 300km 내외이다.
요하가 결코 지금의 요녕성 요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술일(612.3.8),대군(大軍)이 적에게 막혀,생각한 바대로 건너지 못하였다.
우둔위대장군 좌광록대부 <맥철장>,
무분랑장 <전사웅>、<맹금차> 등이 모두 죽었다.
갑진일(612.3.14),황제의 수레가 요수를 건넜다.
대전(大戰)이 (요수) 동쪽 연안에서 벌어져,적을 격파하고,
진격하여 요동(성)을 포위하였다.
5월 임오일,지난 날 여러 장군이 각각 황제의 명을 받았으므로,
감히 기회에 따라 나아가지 못하였다.
곧 고려가 각각 성을 지키니,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6월 기미일(612. 6.11),
(황제가) 요동(성)에 행차하여,여러 장군에게 화를 내며 질책하였다.
(황제가) (요동)성 서쪽 수 리(數里)에 머무르며,육합성에 나아갔다.
7월 임인(612. 7.25),<우문술>등이 살수(薩水)에서 패배하여,
우둔위장군 <신세웅>이 죽었다.
9군이 모두 함몰하여,
장군이 패주하여 도망해 인솔하여 돌아온 자가 2천여 기(騎)였다.
계묘(612. 7. 26),군대를 데리고 돌아갔다.
7월 25일 살수에서 패하여 2천여 기(騎)가 요동으로 돌아가
7월 26일에 철수한 것으로 보아 살수는 요동 인근임을 알 수 있다.
살수에서 요동까지의 거리는 하루 만에 갈수 있는 가까운 거리임을 알 수 있다.
살수가 청천강이고 요동이 요양이라면
천리나 되는 길을 어떻게 하루 만에 갈 수 있겠는가?
살수는 요수(今 潮白河)에 이웃한 지금의 조백하 지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수도 평양도 지금의 난하 인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월 경진일(612.9.13),(황)상이 동도(낙양)에 도착하였다.
요동에서 낙양까지 철군하는데 50일이 소요되었다.
철군시 하루 진군거리 약12km x 50일= 약600km
요동에서 낙양까지의 거리는 약 600km 내외이다.
11월 기묘일,종친의딸 <화용華容>공주를 고창왕에게 시집보냈다.
갑신일,패장 <우문술宇文述>、<우중문于仲文> 등을 모두 제명하여
서민으로 만들고,상서우승 <유사룡>을 참수함으로써 천하에 사죄하였다.
이해에,큰 가뭄과,유행병,사람이 많이 죽었는데,산동이 특히 심하였다.
<38부>
<양광>은 자신의 눈 앞에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보고 할 수 없이 퇴각을 지시한다.
고구려군은 승리를 외치며 환호성 친다.
<양광>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부교가 짧아서 전투에 진 것을 문책한다.
<양광>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전투준비를 서두른다.
<연개소문>과 <이세민>은 전세를 분석하며 육로군과 수로군의 흐름을 익힌다.
보급로의 길이가 수십리에 이르는 것을 보며 전투의 규모를 가늠한다.
<이세민>은 고구려의 도인이 바람과 비를 불러와
수나라 30만 대군을 물리친 것을 얘기한다.
<연개소문>은 <이세민>의 얘기를 듣고 궁금증을 가진다.
드디어 부교를 놓고 수나라 군대가 요하를 넘는다,
<온사문>은 죽음을 각오하고 필사적으로 막아 보지만 전선이 무너진다.
요동성으로 후퇴한 <온사문>은 <강이식> 장군에게 죽여 달라고 외친다.
<강이식>은 완월도를 들고 말을 몰아 수나라 진영으로 달려가는데….
이때 <연개소문> 10세, <이세민> 14세이다.
<39부>
고구려 <강이식> 장군이 수나라 <맥철장>의 목을 높이 쳐든다.
고구려군은 환호를 지르며 좋아한다.
기세를 몰아서 고구려군이 진군하고, 기가 죽은 수나라 군사들은 뒤로 물러선다.
<양광>은 화를 감추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이 100만 대군을 후퇴시킨다.
<양광>은 중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고구려의 요동성을 공략한다.
엄청난 무기와 군사들로 성을 포위하고 맹공격을 퍼붓는다.
고구려군은 수적 열세에도 불과하고 수만명의 수나라군을 제거한다.
<양광>은 분을 삯이지 못하고 부르르 떤다.
더불어서 <양광>은 군량미 100만석이
고구려 조의들에 의해서 불태워졌다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한편 <이세민>과 <연개소문>은 전선에서 들려 오는 소식을 듣는다.
<연개소문>은 조의들이 왔었다는 얘기를 듣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이밀>은 점점 기회가 다가온다고 생각하는데….
<40부>
<양광>은 요동성을 계속 공격하지만 고구려군의 방어선을 뚫지 못한다.
<양광>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요동성을 함락시키겠다고 큰소리친다.
한편 <내호아>는 전함과 수병을 데리고 비사성으로 향한다.
하지만 <내호아<는 곧 진로를 바꿔서 평양성으로 향한다.
<양광>과 <내호아>만 전략을 세우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에 나선다.
<강이식>의 용맹함에 끌린 <양광>은 <강이식>에게 사람을 보내서
항복하면 요동땅을 주겠다고 달랜다.
<강이식>은 콧방귀를 뀐다.
수나라의 총공세가 다시 시작된다.
고구려군은 죽을 힘을 다해서 수나라군을 막아 낸다.
고구려의 <고승> 장군은 비사성 앞바다에서 수나라 수병을 기다리지만
단 한 척도 나타나지 않는다.
<고승> 장군은 초조해 진다.
한편 <양광>은 고구려의 6개 넘는 성을 공격하지만 1곳도 함락 시키지 못한다.
<양광>은 장수들을 불러놓고 모두 목을 베겠다고 큰소리치는데….
<41부>
요하를 건널 때만해도 금방이라도 고구려를 정벌한 듯 자신만만했던 <양광>은
요동성은 물론 주변의 많은 성들 중 단 하나의 성도 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요동 벌판에 발이 묶인다.
<양광>은 진전이 없는 전선의 장수들을 못마땅해 한다.
고구려의 황도가 있는 장안성에서도 전체 전선을 총괄하는 <고건무> 또한
바다를 가로질러 온 <내호아>의 수로군의 행방이 묘연해 고민에 휩싸인다.
상선들이 다니는 길로 수나라의 전투함들이 나타나자 고구려군은 크게 놀란다.
<42부>
수나라군은 군량이 모자라 도둑질이 늘어나는 등 곤란을 겪는다.
그 와중에 압록수 건너에 있는 <을지문덕> 장군을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의 전투에 대해 걱정을 하지만
수만 정도의 병력으로는 어쩔수 없을거라 생각한다.
<을지문덕>은 수군의 현실을 정확히 살피고 군략을 세우겠다며
직접 수군의 영지에 들어가겠다며 배를 준비하라고 한다.
평양성에서는 <내호아>의 상륙군이 모두 뭍에 올라오자
<고건무>는 큰 숫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유인책밖에 없다고 말한다.
<43부>
<양만춘>이 압록수를 건너서 수나라 군영으로 들어간다.
<양만춘>은 수나라의 <우중문>, <우문술>, <유사룡>이 보는 앞에서 항복을 선언한다.
수나라 장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곧 이어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영에 도착한다.
<을지문덕>은 그 곳에서 <연개소문>과 마주친다.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은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아쉽게 헤어진다.
수나라 장수들은 <을지문덕>이 자기들 눈앞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항복을 하겠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우중문>은 <을지문덕>을 죽이자고,
<우문술>과 <유사룡>은 항복을 받아들이자며 의견 충돌을 벌인다.
마침내 수나라 장수들은 <을지문덕>의 제의를 받아들여서
5일 안에 군사들을 뒤로 물리겠다고 약속하는데….
<44부>
수나라 수로군 장수 <내호아>와 육군의 <우중문>은 총공세를 준비한다.
고구려군은 미리 준비한 전략대로 움직인다.
수나라 <양광>의 명을 받은 <곡사정>은 <우중문>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다.
평양성의 황제 <고건무>는 외성을 열고 수나라 <내호아>의 군사들을 끌어 들인다.
<을지문덕> 장군은 때를 기다리며 수나라 군사들이 더 지칠 때를 기다린다.
<내호아>는 정예군을 이끌고 평양성의 외성으로 진입한다.
<고건무>는 황급히 도망간 것처럼 금은보화를 길에 흘리고,
사찰 지붕에 불을 지펴서 적을 끌어들인다.
기세등등한 수나라 <내호아>의 입가에 미소가 끝날때 화살이 쏟아지는데….
<45부>
<양광>의 지시를 받은 <우중문>은 굶주림과 피로에 지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몰아
<을지문덕>이 있는 백마성 앞까지 진군한다.
<을지문덕은> 백기를 걸어놓고 적들을 기만하며 3일간의 시간을 더 달라고 주문한다.
기다리다 못한 <우중문>이 공격을 시작한다.
하지만 지친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고구려군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진다.
결국 <우중문>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후퇴하다가 살수에 이른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을지문덕>은 손을 높이 드는데 ….
<46부>
고구려는 축제의 분위기다.
서토로 총공세를 펴지 못한 <을지문덕>과 <강이식> 장군은 아쉬움이 있지만
큰 성과를 올린 전투에 만족하기로 한다.
한편 수천명의 군사만 남기고 30만 대군을 잃은 <우중문>과
4만의 정예군을 잃은 <내호아>가 <양광> 앞에 무릎을 꿇는다.
<양광>은 <을지문덕>을 살려서 보낸 <유사룡>을 비롯해
전쟁에서 대패한 장수들의 목을 치겠다고 광분한다.
마침내 <양광>은 수나라로 돌아가는데….
<47부>
<양광>의 폭정이 백성들과 신하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마침내 <양광>이 길을 가던 중에 자객들의 습격을 받는다.
<양광>은 오빈의 치마 속으로 숨으며 어쩔 줄을 모른다.
자객중 한 명이 <양광>의 목을 배려는 순간 시위군이 쏜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
자객 두목이 잡히지만 혀를 깨물고 자결한다.
겁을 잔뜩 먹었던 <양광>은 다시 몸을 가다듬고 거드름을 피운다.
한편 <양현감>은 <양광>을 제거하고 황좌에 오를 꿈을 꾼다.
<연개소문>과 <이밀>은 <양현감>의 야욕을 걱정한다.
<이세민>은 시대의 흐름을 보고 아버지 <이연>에게 조심스럽게 역모를 논한다.
<이연>은 크게 화를 내며 아들 <이세민>을 뜯어 말린다.
<이세민>은 <이정>에게 뜻 밖의 얘기를 듣는데…
<48부>
드디어 <양광>은 30만 정예군을 데리고 다시 고구려로 향한다.
<양현감>은 거사 준비를 서두른다.
<양광>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을 치르려고 계획한다.
<이밀>은 <양현감>이 3천명의 군사로
어떻게 거사를 거행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의아해 한다.
<양현감>은 황제가 보낸 감찰관의 목을 베어 피를 보이고 기세를 드러낸다.
한편 <이세민>은 <장손무기>와 함께 연개소문을 설득한다.
<이세민>은 <연개소문>에게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연개소문>은 <이밀>과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거절한다.
<장손무기>는 <이세민>에게 같은 편이 아니면
<연개소문>을 제거해야할 정도로 큰 인물임을 말한다.
<이세민>은 연개소문을 꼭 자기편으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때 <장손무기長孫無忌(594-659)> 20세이다.
<49부>
<양광>은 요동성 전투에서 공을 세운 <심광>에게 벼슬을 내리며 의기양양해하지만
곧 평지성인 신성에 <을지문덕>이 와 있어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군략을 재검토하자는 <곡사정>의 말을 들은 <양광>은 <을지문덕> 하나 때문에
군략을 바꾸면 체면이 떨어진다며 계속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인근 고을에서 거사 소식을 듣고 투항해 오는 향군들을 보며
<양현감>은 득의양양해 한다.
<양현감>은 요동 전선에 있는 아우와 <곡사정>을 데려오기 위해
<연개소문>을 보낸다.
<이세민>은 <이연>에게 <양현감>의 거사 소식을 전하며
더이상 시간 끌 필요없이 자신들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한다.
<이연>은 이에 호통을 치며 강하게 반대를 한다.
613년 <양현감>이 군량미 수송과 반란의 거점으로 삼은 여양(黎陽)은
지금의 하남성 준현(浚縣)이다.
요녕성의 요동에서 국운을 건 전쟁을 치루는데
군량미 수송을 하남성 여양에서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50부>
<개소문>과 <생해>는 <우문화급>이 이끄는 추격군에게 쫓기다가
추격을 따돌리고 요하를 건너 가려 한다.
첩자와 <양적선>을 모두 놓친 <양광>은 화가 머리 끝까지 올라 노발대발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양광>은 그들에게 군량을 맡긴 사실에 기막혀 하고,
<우문술>은 <양현감>과 <이밀>과 친했던 <곡사정>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강이식>과 <온사문>, <양만춘>, <아소친>은 <강이식>의 처소에 모여
수군의 동태에 대한 논의를 한다.
갑자기 중단된 공격에 의아해 하며 무슨 일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을것을 다짐한다.
반란군이 낙양성이 있는 동도로 향하고 있다는 황궁의 전령을 받은 <양광>은
그들의 꿍꿍이를 궁금해 하고
이에 오빈은 반란군이 가족들을 인질로 삼으려 한다고 말한다.
<51부>
<이밀>과 의견차이를 보이던 <양현감>은 <양광>의 이궁인 홍농궁 공격을 지시한다.
반란군은 홍농궁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에게 힘없이 당한다.
<우문술>이 이끄는 토벌군까지 도착해 반란군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퇴각한다.
<양현감>과 <이밀>은 궁리 끝에 황도로 향하지만 토벌군에 의해서 전멸한다.
도망치던 <양현감>은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둔다.
<이밀>과 <연개소문> 일행은 밤을 해치며 정처없이 길을 간다.
한편 <양광>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란군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고구려 공격에 나선다.
<을지문덕>은 병중이라서 <강이식>이 전선에 나선다.
<내호아>는 고구려의 허를 지르는 공격으로 마침내 고구려 비사성으로 진입하는데….
<52부>
<고건무>는 악화된 전황과 국내 사정을 고려해 거짓 항복을 하고
수나라 <곡사정>을 돌려보내기로 한다.
<을지문덕>은 <고건무> 앞에서 피를 토하며 항복을 반대하다가 숨을 거둔다.
<고건무>는 큰 슬픔에 잠기지만 결국 <곡사정>과 항복 문서를 보낸다.
<양광>은 회군한다.
<양광>은 <곡사정>을 처참하게 죽인다.
한편 <이밀>은 왕이 되어 낙양성을 공격한다.
정세를 살피던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에게 군사를 일으키겠다고 말한다.
고심하던 <이연>도 결정을 내리고 반란을 일으킨다.
<우문술>은 노쇠해서 세상을 떠난다.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과 <우문지급>은 <양광>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양광>의 수나라는 점차 쇠락하는데….
<53부>
<이밀>은 낙양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고전한다.
<이세민>은 장안성 공격을 앞두고
<연개소문>에게 자신의 편이 되어 달라는 제안을 한다.
<연개소문>은 <이밀>을 배신할 수 없어서 그냥 돌아선다.
마침내 <이세민>이 황제의 황도인 장안성을 함락한다.
<이세민>은 낙양성 앞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이밀>의 군대를 치기로 한다.
한편 황제 <양광>의 종 노릇을 하던 <우문화급>과 <우문지급>은 반란군을 일으켜서
<양광>을 죽이기로 한다.
<양광>은 술을 마시며 놀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우문화급>과 <우문지급>을 보고
때가 왔음을 감지한다.
오빈을 비롯한 신하들이 <우문화급>과 <우문지급>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양광>은 고구려 때문이라고 말하며….
<54부>
고구려 영양왕이 동생 <건무>와 신하들을 불러서 고구려의 앞날을 걱정한다.
영양왕이 숨을 거둔다.
<고건무>가 27대 태왕에 오른다.
한편 <양광>을 죽이고 황위에 오른 <우문화급>은
낙양성을 공격하고 있는 <이밀>의 뒤를 친다.
양쪽에서 협공을 당하게 된 <이밀>은 낙양성에 사람을 보내서 휴전을 요청한다.
<이밀>은 <우문화급>의 군대를 물리치지만,
휴전을 핑계로 뒤를 돌아 기다리고 있던 낙양성의 <왕세충>에게 패한다.
<이밀>은 <연개소문>과 도망자가 된다.
고심하던 <이밀>은 황제가 된 <이연>과 아들 <이세민>을 찾아가 무릎을 꿇는다.
<이밀>은 큰벼슬을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며 길을 떠나다가
<이세민>이 보낸 추격군의 칼을 맞고 숨을 거둔다.
<연개소문>은 조의들과 함께 길을 떠나는데….
이때 영양대제 <고원> 60세, 영류대제 <고건무> 44세, 수 양제 <양광> 50세,
<우문화급> 36세, <이밀> 37세, <이연> 53세, <이세민> 20세,
<연개소문> 16세이다.
<55부>
백두산에서 하산한 <연개소문>을 <연태수>의 하수들이 뒤쫓는다.
<연태수>가 보낸 일행임을 알아챈 <연개소문>은
자신을 해치우려 달려드는그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린다.
<연개소문>은 일행 중 <두손>이라는 자를 죽이지 않고 살리며
<연태수>에게 자신이 만나러 갈 것임을 전하도록 이른다.
<연개소문>은 평양으로 가는 길에 <죽리>와 길동무가 되고,
<죽리>는 군인들에게 쫓기는 <고소연>을 돕게 된다.
밤이 되어 묵게 된 주막에서 다시 <고소연>과 마주친 <죽리>는
<고소연>을 또 돕게 되고,
군사들로부터 <고소연>이 왕족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56부>
<연태수>는 <개소문>을 보고 연씨가문의 핏줄이며 자신의 조카임을 알아보며
자신을 베러왔느냐 묻는다.
<개소문>은 인사를 드리러 왔을 뿐이라 대답하고
조카인 자신에게 모진 짓을 저지른 이유를 묻는다.
국가를 위해서였다는 <연태수>의 대답에
<개소문> 또한 온 목숨을 다 태워 나라와 함께 할 생각임을 밝힌다.
<개소문>을 조의들의 두령이신 국선님이라며 따르는 조의 무리들은
<개소문>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데,
<개소문>은 그들에게 너무 과민하지 말라 이른다.
<죽리>는 <개소문>에게 신세를 좀 질 생각에
주막에서 고소연과 함께 개소문을 기다린다.
<개소문>은 그들을 뫼시도록 이르며 산 속에 위치한 조의 수련장에 머무는데...
<57부>
고구려 영류왕 <고건무>는 <연개소문>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강이식>은 <연태조>의 아들 <연개소문>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마침내 <연개소문>과 <검모잠>의 결투가 시작된다.
큰 덩치의 <검모잠>이 철퇴를 휘두르며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뛰어난 무술솜씨에 <검모잠>이 무릎을 꿇는다.
<연개소문>이 무술대회 최종 우승자가 된다.
영류왕은 <연개소문>을 황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공주 <고소연>과 혼례를 올리라고 말한다.
<연개소문>은 입을 연다.
한편 당나라 <이세민>은 아버지 <이연>과 자신의 형제들이
고구려의 조공을 받으며 친선외교를 펼치는 것이 못 마땅하다.
<이세민>은 기회를 봐서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켜 자신의 야욕을 펼치려고 한다.
고구려 영류왕은 <연개소문>이 자신의 앞길에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황실 근위장으로 임명하고 <고소연>과의 혼례를 서두르는데….
<58부>
<연개소문>은 영류왕에게 이미 혼례를 올려서 아내가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영류왕은 고구려인이 아닌 사람과의 혼례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황실의 후손인 <고소연>이 정실이 되어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고정의>는 자신의 딸 <고소연>이 연개소문과 혼담이 오고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
<고소연>은 <연개소문>에게 힘이 되어주겠다고 당돌하게 얘기한다.
<죽리>는 고민하는 <연개소문>에게 대의를 위해서 혼례를 올리라고 종용한다.
한편 당나라에서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서 책봉을 하라고 지시한다.
고구려 <연태수>는 당나라 사신들을 조용히 타일러서 보낸다.
<이세민>은 형제들의 반목과 갈등으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한다.
참다 못한 <이세민>은 각오를 다지는데….
<59부>
마침내 <이세민>이 <방현령>과 <위지경덕> 장군과 함께 황궁으로 향한다.
같은 시각 태자 <건성>과 제왕 <원길>이 군사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향한다.
<건성>과 <원길>이 성문 안으로 들어 오고 바로 문이 닫힌다.
두 사람 앞에 <이세민>이 나타난다.
<건성>과 <원길> 그리고 <세민> 형제간의 짧은 대화가 오고 간다.
<건성>과 <원길>의 목이 성문 밖에 걸린다.
<이세민>은 아버지인 황제 <이연>에게 향한다.
이때 <이연李淵(566-635)> 61세, <이건성李建成(589-626)> 38세,
<이원길李元吉(603-626)> 24세, <이세민李世民(599-649)> 28세,
<연개소문> 24세이다.
사극을 연출하는 자가 이렇게 역사를 모르고
20대의 <이세민>과 <연개소문>을 50대의 인물로 등장시키다니....ㅋㅋ
드디어 성대한 <연개소문>의 혼례가 거행된다.
영류제가 혼례를 직접 집전한다.
황실의 가족들은 새 가족이 되는 <연개소문>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연개소문>과 <고소연>의 혼례가 끝날 무렵
<생해>가 <연개소문>의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는데….
<60부>
<연개소문>과 <고소연>이 신방에 단둘이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고소연>은 <연개소문>에게 목숨을 받쳐서 내조하겠다고 다짐한다.
다음날 <연개소문>은 <고소연>과 함께 <생해>와 자신의 아들을 만난다.
<연개소문>은 전 부인인 <이화>와 <생해>의 처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 이름을 <남생男生(634-679)>이라고 짓는다.
<연개소문>과 <죽리>는 앞으로 펼쳐질 큰 그림을 그린다.
한편 <이세민>은 그토록 자신을 죽이려고 애쓰던
태자 휘하의 <위징> 장군을 잡아 온다.
<위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세민> 앞에서 사나이 기개를 보인다.
<이세민>은 <위징>을 휘하에 두기로 한다.
<이연>은 형제들을 죽인 아들 <이세민>에게 할 수 없이 황제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61부>
<연태수>는 <연개소문>의 지나온 과거를 들춰 보고 탄복한다.
<연태수>는 모진 인고의 세월을 거쳐서 오늘에 이른
<연개소문>의 기구한 삶에 고개를 젓는다.
<연태수>는 <연개소문>이 신라, 수나라, 당나라, 돌궐까지 거치면서
수많은 일을 경험했으며 병서까지 새로 만들 정도로
수준 높은 학식을 갖춘 것을 알지만 더욱 경계하게 된다.
<연태수>는 연개소문을 제거할 계획을 다시 세운다.
한편 돌궐 사신들이 고구려 영류왕을 찾아온다.
돌궐은 고구려와 뜻을 모아 동맹을 맺고 당나라를 공격하자고 제안한다.
고구려 장군들은 돌궐과 동맹을 맺자고 하지만 영류왕은 고민에 빠진다.
연개소문은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데….
<62부>
영류왕은 <연태수>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연개소문>을 아리수 전선으로 보낸다.
<연개소문>은 <생해>와 전선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본다.
<연개소문>은 신라에서 <보희>와 가슴 아프게 헤어졌던 일 등을 상기한다.
한편 돌궐의 힐리가한이 당나라의 혼란한 틈을 타서 공격해온다.
<이세민>은 황궁 가까이 진을 치고 버티는 돌궐 때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세민>은 갑옷을 입고 나서서 정면돌파 하기로 결정한다.
<이세민>은 군사들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고 장수 몇 명과 돌궐의 힐리가한을 만난다.
<이세민>은 힐리가한을 달래다가 위엄있게 얘기한다.
<이세민>의 당당함에 위세가 눌린 힐리가한은 철수를 지시하는데….
<63부>
영류왕이 당나라 사신들의 뜻대로 도교를 받아들인다.
학생들은 영류왕에게 진언을 올리겠다고 몰려든다.
평화를 주장하는 영류왕을 옹호하는 신하들과
반대하는 신하들 사이에 논쟁이 오고 간다.
고구려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한편 <연개소문>은 신라국경 접전 지역에 도착한다.
<연개소문>은 <대걸중상>으로부터 전황을 보고 받고
신라의 <김유신>이 전선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유신>도 상대의 적장이 <연개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크게 놀란다.
마침내 <연개소문>과 <김유신>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데….
<64부>
<연개소문>과 <김유신>의 불꽃 튀는 접전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지난 과거를 돌아본다.
이제는 화랑이 아닌, 고구려와 신라의 장수로 두 사람은 밀고 밀리는 각축을 계속한다.
마침내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칼을 두 동강 내고 승세를 잡는다.
그 때 <김유신> 수하가 쏜 화살이 <연개소문>에게 날아온다.
한편 계속되는 영류왕의 당나라 친선외교의 논쟁이 신하들 사이에서 끊임이 이어진다.
급기야 태학박사 <이문진>이 죽음을 각오하고 영류왕 앞에 선다.
영류제는 <이문진>을 하옥 시키고 매우 광분한다.
<이문진>의 하옥 사실을 접한 <강이식> 장군은
90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단식에 들어간다.
백성들은 동요하기 시작하고, 영류왕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당나라 사신들은 영류왕에게 또 다시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
<65부>
<개소문>과 <김유신>이 조촐한 술상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눈다.
<생해>와 <도비>가 암자 밖을 지키고 있고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이 오고 간다.
두 사람은 과거 회상을 시작으로 국제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김유신>은 <개소문>에게 양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피할 것을 권하며
삼한은 하나라 말한다.
노쇠해진 <강이식>은 신궁 안에 힘겹게 앉아
영류왕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쳐 줄것을 염원한다.
신궁 문 앞에는 <온사문>과 그의 가병들이 지키고 서 있고,
<양만춘>과 군사들이 그들과 대치해 있다.
신궁 주위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고,
태학의 학생들이 신궁 앞에 앉아 연좌농성을 한다.
<66부>
<개소문>은 아리수를 떠나 평양으로 돌아간다.
<개소문>은 굳은 표정으로 연신 채찍질을 하는데,
<생해>는 아리수를 떠난 이후로 말이 없는 <개소문>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개소문>과 <생해>는 꿈궈온 대 고구려와는 다른 지금의 고구려에 실망감을 느끼지만
<개소문>은 <이문진> 박사와 <강이식> 대장군을 생각하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류왕과 <연태수>를 비롯, 욕살 귀족들이 모여 국사를 의논한다.
<이문진> 박사의 자결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정세를 바로 잡기 위해
무력을 행하자는 파와 순리대로 풀자는 파로 나뉘어 언성을 높인다.
여전히 신궁안에서 정좌를 하고 기도를 올리는
<강이식> 대장군의 얼굴이 헬쓱해져 점점 탈진 상태에 이른다.
<67부>
<강이식> 장군의 시신을 모시려는 <양만춘>의 군사들과 시위대가 충돌한다.
그 때 <연개소문>이 등장해 양측을 진정시키고 시신을 인도한다.
마침내 <강이식> 장군의 장례가 거행되고 영류왕과 <연개소문>이 마주한다.
영류왕은 <연개소문>에게 자신의 정책 의지를 밝히며 도와 달라고 간절하게 청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영류제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얘기한다.
한편 <이세민>은 고구려를 자극하기 위해서
요하에 있는 고구려 승전기념탑 경관을 허물기로 한다.
영류왕은 당나라 사신의 얘기를 듣고 기겁한다.
<연개소문>은 사신의 목을 치고 당나라에 일침을 가하자고 강력하게 얘기한다.
고민하던 영류왕은 <양만춘> 장군에게 경관을 허물라고 지시하는데…
<68부>
고구려 전체가 경관 해체 문제를 놓고 혼란에 빠진다.
<연개소문>은 <연태수>와 욕살들에게
경관 해체 문제를 놓고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다.
등골이 오싹해진 <연태수>와 욕살들은
<연개소문>을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하고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한편 돌궐의 사신들이 영류왕을 찾아와 동맹을 요청하며
당나라를 협공하자는 제안을 한다.
영류왕은 평화외교를 이유로 돌려보낸다.
영류왕은 절호의 기회를 저버린다.
영류왕은 <고정의>와 <고소연>을 불러서 <연개소문>을 설득해 달라고 요청하며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한다.
<연개소문>과 <고소연>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대책을 세운다.
<온사문>과 <대걸중상> 장군은 군사를 일으킬 태세를 갖춘다.
<양만춘> 장군은 허물어져 가는 경관을 지켜보며 눈시울을 붉히는데….
<69부>
영류왕과 <연태수>는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한다.
<연개소문>을 동부가문의 대인으로, 젊은 장수들은 변방으로 발령을 낸다.
고심하던 <연개소문>은 세력들을 규합하기 시작한다.
<죽리>와 쌍검녀는 <대걸중상> 장군을 만나기 위해서 아리수로 향한다.
한편 고구려 태자가 당나라에 도착한다.
<이세민은> 봉역도를 바치고 경관까지 허물어 버린 고구려가
태자까지 보낸 사실에 흡족해 한다.
<죽리>와 쌍검녀는 <연태수가 보낸 자객들을 제거하고 <대걸중상>을 만난다.
<죽리>는 <대걸중상>에게 상세한 내용을 전달한다.
<대걸중상>은 군사들을 몰아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생해>는 <연개소문> 앞에서 살생부를 작성하는데….
<70부>
드디어 <대걸중상> 장군의 군사들이 도성으로 향한다.
<고승> 장군은 반란군을 막기 위해서 진압군을 편성하고 결전을 다짐한다.
<대걸중상>이 길목을 지키는 성을 지날 때마다
성주들이 <대걸중상>과 협력해 충돌없이 군사가 늘어난다.
<고승> 장군은 더욱 긴장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춘다.
<온사문> 장군은 진압군 앞에서 <대걸중상>의 군사들이 반란군이 아니고
의로운 군대라며 병사들의 마음을 돌린다.
진압군 대부분 <연개소문>의 편에 선다.
마침내 <연개소문>은 동부가문의 대인 자리에 오른다.
<연개소문>은 모든 신료를 왕궁의 연회장으로 불러들인다.
문이 닫히고 빗장이 채워진다.
신료들은 겁을 먹고 어쩔 줄을 모른다.
연개소문은 살생부를 펼치라고 소리친다.
영류왕과 대전안에 함께 있던 <연태수>는 자결을 결심하고, 영류왕은 크게 웃는데…
<71부>
드디어 <연개소문>이 왕궁으로 향한다.
술잔을 나누던 영류태왕과 <연태수>는 방안에 촛불을 환하게 밝힌다.
<연개소문>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다.
영류왕은 흐트러짐이 없이 자신의 소신과 고구려를 사랑하는 충정을 토하고
마침내 독주를 마신다.
<연태수>도 독주를 마시고 독설을 퍼붓다가 생을 마감한다.
마침내 보장태왕이 황위에 오른다.
<연개소문>은 막리지보다 더 상위의 개념인 대막리지로 임명된다.
<연개소문>은 실질적인 나라의 모든 권한을 부여받는다.
<연개소문>은 휘하의 장군들을 주요 자리에 임명하고,
모든 욕살들의 권한을 빼앗아서 왕족을 중심으로 국정을 개편한다.
한편 당나라 <이세민>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일어섰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세민>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데….
<72부>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영류태왕을 자결하게 만들었다고 탓하며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온사문>과 <대걸중상>은 <양만춘>을 설득하기 위해서 안시성으로 찾아간다.
<양만춘>은 <온사문>과 <대걸중상>의 목을 베겠다고 호통친다.
<온사문>은 손을 내밀며 <양만춘>을 설득하려고 하지만
<양만춘>이 완강히 거부한다.
더러운 손이라는 <양만춘>의 말에 화가난 <온사문>은
도끼로 자신의 손을 내리치려고 한다.
한편 백제를 찾아간 <죽리>는 의자왕에게 힘을 합쳐서 신라를 무찌르고,
삼국을 통일해서 서토로 가자는 <연개소문>의 뜻을 얘기한다.
의자왕은 <연개소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 사신을 보내기로 한다.
고구려 백성들은 당나라 도교사원을 불태우고 경관을 다시 짓는다.
연개소문은 자발적인 백성들의 의지를 보며 흐뭇해 하는데….
<73부>
당나라 사신 <심숙안>은 <연개소문> 앞에서 <이세민>이 보낸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편지 내용을 듣고 있던 고구려 장군들은 당나라 사신을 죽여서 보내자고 소리친다.
<연개소문>은 <심숙안>을 통해서 <이세민.에게 전하는 독설을 내뿜는다.
<연개소문>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심숙안>을 당나라로 바로 보내지 않고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이세민>은 <심숙안.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고구려로 진격할 준비를 서두른다.
한편 <연개소문>의 처 <고소연>이 산고 끝에 아들 쌍둥이를 낳는다.
<연개소문>과 <고소연>은 주저없이 대의를 위해서
쌍둥이를 조의선문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신라로 들어간 <죽리>는 <김유신>을 만나서 삼한통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죽리>와 함께 신라로 간 <최무>는 <연개소문>의 첫사랑 <보희>를 만난다.
<보희>는 <연개소문>의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짓는데….
<74부>
<연개소문>은 사신 <심숙안>과 잡아들인 간첩을 당나라로 돌려보낸다.
<이세민>은 간첩의 얼굴에 새겨진 문귀를 보고 크게 분노한다.
<연개소문>이 <심숙안>을 통해 전한 내용을 듣고
<이세민>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백제 <성충>은 고구려와 동맹 관계를 점치기 위해서 출발한다.
백제 의장왕은 <계백>장군과 의논하며 큰 뜻을 품는다.
<성충>은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고구려가 신라에서 당나라로 들어가는 당항성을 치자고 제안한다.
<김유신>은 <김춘추>와 격구를 즐긴다.
<김유신>이 <김춘추>의 옷을 찢어 놓는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김유신>은 동생 <보희>와 <문희>에게 대의를 위해서
<김춘추>와 밤을 보내라고 말한다.
<문희>가 <김춘추>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는데….
<75부>
잠자리에서 일어난 <김춘추>는 <문희>가 옆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다.
<문희>는 옷깃을 여미면서 일어난다.
<김춘추>는 지난밤을 회상하고 자신이 <보희>라고 착각한 사실을 깨닫는다.
<문희>는 <김춘추>에게 닷새를 주며 자신의 거취를 부탁한다.
<김춘추>는 고민에 빠지고,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못 올릴 경우에 자결할 결심을 한다.
한편 <연개소문>은 백제와 손을 잡고 신라를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백제 의자왕은 고구려와 힘을 합쳐서 신라를 공격하기로 한다.
<김유신>은 곧 혼란스러운 전쟁이 시작될 것을 가늠한다.
당나라 <이세민>은 자신의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위징>이
위독하다는 것을 알고 뛰어간다.
<위징>은 죽으면서 <이세민>에게 고구려로 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는데….
<76부>
<김유신>은 장작을 쌓고 <문희>를 화형시키라고 지시한다.
<보희>는 어쩔 줄을 모른다.
<문희>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선다.
불을 지피지만 하인들이 물을 뿌려서 잘 타지 않는다.
<김유신>은 장작을 바꾸라고 지시하고, 하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흠순>은 그 광경을 보고 <김춘추>에게 달려간다.
<김춘추>와 함께 있던 선덕여왕은
<김유신>의 집에서 불이 나는 것을 보고 확인하라고 한다.
그때 <흠순>이 달려와 사실을 알리고, 왕명으로 화형을 멈추라고 지시한다.
<김춘추>는 선덕여왕에게 사실을 얘기하고 <김유신>에게 달려간다.
드디어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로 향한다.
백제 <윤충> 장군은 <김춘추>의 부패한 사위 <품석>이 지키는 대야성으로 향한다.
고구려군은 당항성으로 진군한다.
주색에 빠져 있던 신라 <품석>은 부하들의 배신으로 성을 내준다.
<품석>과 <김춘추>의 딸 <고타소>가 참수된다.
신라 <김춘추>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데….
<77부>
<김춘추>는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딸의 몸뚱이만 돌아온 것을 보고 망연자실한다.
<김유신>은 대야성이 함락되고 당항성이 위기에 처했음을 알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마침내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풍월주 <흠순>이 당항성 앞에서 전투를 벌인다.
<계백>과 <흠순>의 일대일 대결도 펼쳐진다.
수세에 몰린 흠순은 퇴각을 검토한다.
한편 다급해진 신라는 당나라 <이세민>에게 사신을 보내서 구원을 요청한다.
<이세민>은 고구려로 향할 준비를 서두른다.
신라 <김춘추>는 고구려 <연개소문>을 만나서 협조를 구하기로 한다.
<연개소문>은 대야성에 이어서
당항성 함락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더불어 <양만춘> 장군이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겠다며 보내 온 편지를 받고 흐뭇해 하는데….
<78부>
<연개소문>의 처 <고소연>은 조의선인 <조실> 어른의 얘기와
일관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고소연>은 장차 <남생>이를 비롯한 쌍둥이들이
나라에 큰 혼란을 초래한다고 걱정한다.
<고소연>은 일관을 조용히 처리하고
나라를 위해서 자식들을 제거해야하지 않겠냐고 힘겹게 얘기한다.
<연개소문>은 처 <고소연>의 얘기를 듣고 태연한 척한다.
마침내 <연개소문>이 신라 <김춘추>와 만난다.
<김춘추>는 <연개소문<에게 백제를 물리쳐 달라고 주문한다.
<연개소문>은 대가를 달라고 말한다.
<연개소문>은 신라가 가지고 있는 고구려의 모든 옛 땅을 돌려 달라고 하며
사사로운 개인의 원한을 위해서 고구려가 나설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연개소문>은 <김춘추>를 볼모로 잡고 땅을 돌려 받겠다고 말한다.
<김춘추>는 경악하는데….
<79부>
당나라의 전쟁 준비상황을 지켜본 <연개소문>은 전군 전시체재로 돌입한다.
<양만춘> 장군을 요동전선 대총사로, <온사문> 장군을 요동성주 부총사로,
<검모잠> 장군은 해군 총책을, <대걸중상> 장군은 봉황성을 맡아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연개소문>은 반발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왕족들도 전쟁에 참여시킨다.
<연개소문>은 왜국과 설연타로 <죽리>를 보내서 외교전을 펴기로 한다.
한편 <이세민>은 고구려를 공격할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막바지 전력을 다진다.
하지만 태자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무산되는 사건이 <이세민>의 발목을 잡는다.
태자는 폐위되고,
병부상서 <후군집>과 이복동생 한왕 <이원창>은 역모죄로 치도곤을 당한다.
<이세민>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신라 <김유신>은 사신으로 고구려에 간 <김춘추>가 잡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연개소문>에게 편지를 쓴다.
<연개소문>은 <김춘추>를 내놓지 않으면
군사를 동원하겠다는 <김유신>의 편지를 읽고 크게 웃는다.
<연개소문>은 <김춘추>를 불러서 돌아가라고 하는데….
<80부>
몇 해가 지나고 <연개소문>의 장남 <남생>이가 백두산에서 하산한다.
<연개소문>의 처 <고소연>은 큰 아들 남생과 쌍둥이 두 아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연개소문>은 곧 전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감한다.
<양만춘> 장군과 <온사문> 장군은 당나라 군대의 심상치 않은 징후를 포착한다.
고구려 조의 <술탈>은 당나라 적진 깊이 조의들을 보내서 교란작전을 시작한다.
한편 태자의 반란을 진정시킨 <이세민>은 처남 <장손무기>의 조언대로
아홉째 아들 <이치>를 태자로 책봉한다.
<이세민>은 고구려와의 결전을 준비한다.
신라 <김춘추>는 왜국에 원군을 요청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
<연개소문>의 지시로 왜국을 찾은 <죽리>는
왜국과 고구려의 친선외교를 다짐받는데….
<81부>
<연개소문>은 군사들을 이끌고 당나라 <이세민>을 만나게 될 전선으로 나선다.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최전선에 투입된다.
왜국에 원군을 요청하러 간 <김춘추>는 소식이 없고,
신라 <김유신>은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를 협공하기로 한다.
백제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었지만 당나라와 고구려 사이에서 눈치를 보기로 한다.
마침내 선봉에 선 <연수정>과 <남생>이 당나라 <이도종>과 맞닥뜨린다.
<이도종>은 <연수정>이 여자라서, <남생>이 어리다는 이유로 얕잡아 본다.
<남생>은 달려오는 적장들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린다.
궁지에 몰린 당나라 <이도종>은 진격을 외치고,
고구려 <연수정>과 <남생> 그리고 낭자군의 무서운 기세가
당나라 군사들을 놀라게 한다.
한편 <이세민>은 고구려의 허를 찌르는 계략을 꾸미는데….
<82부>
우회로를 통해 갑자기 들이닥친 당나라 군사들을 이기지 못하고
고구려 현도성이 함락된다.
소식을 전해들은 고구려 <고정의>는 신성을 지키기 위한 전열을 가다듬는다.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은 당나라 군대를 계곡으로 끌어들인다.
당나라 <장검>의 부하들은 <남생>의 매복에 걸려 들어 무참히 전사한다.
<남생>과 <장검>의 일대일 결투가 벌어진다.
마침내 <장검>은 <남생>의 칼끝에 매달린다.
한편 <연개소문>은 <이세민>의 계략을 가늠한다.
주요 요충지에 성을 지키고 있는 성주들에게 각별한 경계를 지시한다.
<연개소문>은 신라 <김유신>이 당항성 공격에 나섰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연개소문>은 급히 백제에 파발을 띄우고 지원군을 요청한다.
하지만 백제군은 나타나지 않고, 신라군의 허를 찌를 전략을 꾸민다.
당나라와 신라는 고구려의 성을 하나 둘씩 함락한다.
<연개소문>은 들려 오는 비보를 접하는데….
<83부>
안개가 자욱한 밤을 틈타서
당나라 <장량>의 수로군이 고구려 비사성 앞바다에 이른다.
<이세민>은 고구려의 주요 성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했고,
이미 고구려는 전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에서 전투를 벌였다.
비사성을 지키며 당나라 군대와 맞서 싸운 <연수정>과 쌍검녀는
중과부적을 실감하고 부상당한 <검모잠> 장군과 퇴각한다.
당나라 장량은 비사성을 함락한다.
고구려 현도성, 개모성, 비사성 등이
모두 당나라에 함락되는 풍전등화의 상황이 벌어진다.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 평양성으로 가는 길목인 요동성에 이른다.
당나라 군사들이 총집결하고, 대대적인 전투 준비를 서두른다.
당나라 <설인귀>, <계필하력>, <이사마>가 서로 먼저 선봉에 서겠다고 나선다.
<이세민>은 천문을 읽고 요동성 쪽에 부는 바람을 예측하고 총공격을 준비한다.
<연개소문>은 <이세민>의 계략을 알아채고
신궁으로 들어가 하늘에 기도를 시작하는데….
<84부>
당나라 <이세민>은 요동성쪽으로 부는 바람을 등지고 불화살을 퍼붓고,
돌과 불덩이를 날린다.
요동성을 지키던 <온사문> 장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연개소문>은 패색이 짙어지는 것을 느끼고 피를 쏟으며 괴로워한다.
결국 수나라 100만 대군도 넘보지 못했던
고구려 철옹성인 요동성이 당나라 <이세민>에게 함락된다.
백암성을 사수하기 위해서 성 앞에 도착한 <고돌발>과 <남생>은
당나라 군사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기로 한다.
<고돌발>은 당나라 <계필하력>과 승부가 나지 않는 접전을 벌인다.
그 사이 <남생>이 돌파를 시도하지만 당나라 <설인귀>에게 막힌다.
한편 <이세민>은 고구려 백암성에 사람들을 보내서 항복을 권유한다.
백암성 성주 <손대음>은 싸우지도 않고 <이세민>에게 굴복하기로 한다.
또 한 번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 <이세민>은 기세등등하게 입성하는데….
<85부>
고구려 <손대음>은 당나라 <이세민> 발 앞에 머리를 숙인다.
<손대음>은 <이세민>에게 기어가서 큰절을 올린다.
고구려 장군 <고돌발>은 <손대음>에게 호통치며 괴로워한다.
<이세민>은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고 백암성에 있던 고구려 백성들을
모두 살려주기로 하지만 <고돌발>의 목을 베라고 지시한다.
당나라 <계필하력>은 자신과 겨뤘던 <고돌발>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이세민> 앞에 머리를 숙인다.
<이세민>은 <계필하력>의 소원대로 <고돌발>을 풀어 준다.
마침내 <연개소문>은 안시성을 교두보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기로 한다.
<이세민>은 군사들을 몰아 안시성으로 향한다.
<연개소문>은 2천리나 되는 당나라 보급로를 계속 차단한다.
<연개소문>은 군사들을 총동원해서 안시성을 거점으로 본격적인 전투에 나선다.
<연개소문>은 당나라 군대의 뒤로 돌아가 기습전투를 벌이는데….
<86부>
<연개소문>은 고구려 안시성을 둘러 싸고 있는 당나라 군사들의 포위망을 뚫고
성안으로 들어간다.
<이세민>은 <연개소문>이 포위망을 뚫고
안시성으로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고 대책을 강구한다.
<이세민>은 전선의 선봉에 직접 나선다.
<이세민>은 <계필하력>을 시켜서 고구려 5만의 군사를 계곡으로 유인한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고구려 군사 1만 5천 정도가 죽고 나머지는 전부 포로가 된다.
<고돌발>도 창을 들고 <이세민>을 향해서 달려가다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한편 승기를 잡은 <이세민>은 계속해서 고구려 진영을 자극하기로 한다.
<연개소문>은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는 고구려군의 사기를 진작 시키고,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린다.
<이세민>은 땅거미가 질 무렵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한 총공세를 준비하는데….
<87부>
당나라 <이세민>은 안시성을 공략하기 위해서 토산을 쌓는다.
고구려 <연개소문>은 토산이 높아질 때마다 성을 높이고 목책을 쌓는다.
<이세민>은 <연개소문>이 목책을 올리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
<이세민>은 곳곳에서 고구려 조의들에게 보급로가 차단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과 조의들이
당나라 보급창고의 군량미 50만석을 불태워서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
고구려를 배신한 <손대음>의 목까지 베고 당나라군의 사기를 떨어뜨린다.
한편 보급로가 차단되고 있는 것을 위기로 생각하는 <이세민>은
토산을 더 빨리 쌓으라고 지시하고 총공세를 준비한다.
고구려 <검모잠> 장군은 압록수를 통해서 보급선을 이동시키는
당나라군의 배를 차단시키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친다.
<검모잠>의 예상대로 당나라 군선들이 들어오고,
<검모잠>은 화공을 퍼부으며 공격에 나서는데….
<88부>
<검모잠>은 압록수에서 당나라 군선들을 대파하고 대승을 거둔다.
<연개소문>은 하늘의 일기를 읽으며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이세민>은 총공세를 위해서 군영르 살피며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
<이적>은 결전의 날을 앞두고 <연개소문>을 자극하기 위해서 군사들을 동원한다.
쌍검녀가 앞에 나서서 적장들의 목을 계속 떨어뜨린다.
당나라 <마문거>가 앞에 나서고, 쌍검녀와 불꽃튀기는 경합을 벌인다.
쌍검녀는 어깨를 베이고 옆구리를 찔린다.
한편 토산이 완공되고 <이세민>은
총공세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치고 비가 그치기만 기다린다.
<연개소문>은 역공할 준비를 끝마치고 선봉에 서기로 한다.
비가 그친다.
당나라 토산과 마주했던 안시성의 목책이 넘어간다.
<연개소문>과 조의들이 당나라 군사들을 거침없이 해치운다.
정상에선 고구려군이 불을 굴리고 화살을 쏟으며
당나라군을 정신없이 만들며 계속 공격해 내려간다.
마침내 <연개소문> 눈 앞에 <이세민>이 보이는데….
<89부>
<양만춘>이 쏜 화살을 눈에 맞은 <이세민>은 당황한다.
사방에서 고구려군이 몰아치고,
<이세민>을 호위하는 시위군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한다.
<연개소문>은 <이세민>을 잡기 위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 때 <계필하력>과 <설인귀>가 나타나 <이세민>을 호위한다.
<연개소문>과 <계필하력>의 접전이 벌어지고 <계필하력>이 위기에 처한다.
<연개소문>은 이전에 고구려 장수를 살려준
<계필하력>의 대장부다운 면모를 칭찬하며 살려 보낸다.
<설인귀> 역시 <연개소문>에게 상대가 되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진다.
<연개소문>은 <설인귀>도 그냥 보내준다.
마침내 <연개소문>은 토산을 점령하고 큰 승리를 이룬다.
한편 설연타가 당나라를 공격한다.
당나라 세자는 아버지 <이세민>에게 급히 전령을 보낸다.
설연타의 공격 사실을 모르는 <연개소문>은 봉화가 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이세민>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살아난다.
<이세민>은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퇴각하기로 결정한다.
안시성을 떠나기 전 <이세민>은 옛 친구였던 <연개소문>에게 선물을 보낸다.
<이세민>은 <이적>을 통해서
<연개소문>이 쓰던 활과 활통을 전달하고 비단도 보낸다.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지척까지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90부>
<이세민>과 당나라 군사들은 세찬 바람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요하를 지난다.
<이세민>을 비롯한 <장손무기>, <이적> 등은
추적해오는 고구려군을 피해서 퇴각로를 어디로 정할지 고민에 쌓인다.
결국 신성과 비사성에 포진해 있는 고구려군을 피해서 요택으로 방향을 정한다.
<이세민>과 군사들은 요택의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기회를 엿보던 <연개소문>은 마침내 <이세민>을 잡기 위한 총 공격 명령을 내린다.
<이세민>은 고구려군의 공격을 피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장손무기, 이적, 계필하력, 설인귀가 이세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한다.
고구려군은 이세민과 당나라 군사들의 전후좌우를 공격하며 섬멸한다.
겨우 목숨만 건진 이세민은
초라한 모습으로 만리장성을 향해서 횃불도 없이 밤길을 재촉한다.
이세민은 얼굴 전체가 피범벅된 것도 모르고 길을 간다.
장손무기는 이세민의 얼굴을 보고 기겁한다.
마침내 당나라 만리장성이 눈에 들어온다.
이세민과 수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만리장성으로 들어서는데….
<91부>
당나라 만리장성에서 고구려군에 둘러 쌓인 이세민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다.
당나라 이적, 이도종, 계필하력은 고구려군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장손무기와 설인귀는 이세민을 호위하고 도망간다.
남생과 연수정이 쫓는다.
마침내 이세민이 궁지에 몰린다.
설인귀와 쌍검녀가 불꽃을 튀기며 접전을 벌이지만 쌍검녀가 목숨을 잃는다.
연수정이 조카 남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설인귀와 싸우다 숨을 거둔다.
연개소문은 이세민에게 옛정을 생각해서 항복하면 목숨을 살려 주겠다고 말한다.
이세민은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이세민은 항복하기로 결심한다.
절차에 따라서 이세민이 머리를 풀고 입에 자갈을 문다.
한편 백제 의자왕과 계백장군 등은
고구려가 당나라를 대파한 소식을 듣고 전전긍긍한다.
기회를 엿보던 신라 김춘추는 당나라를 찾아가서 백제를 먼저 정벌하고,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을 하는데….
<92부>
이세민은 등창의 피고름을 빨아내는 태자에게
고구려에 패한 수모를 곱씹으며 원통해 한다.
몸이 쇠약해진 이세민은 고통을 참으며 김춘추가 제시한 계략을 상기하며
백제를 물리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신라로 돌아가는 뱃길에 오른 김춘추는 온군해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종국에는 당나라까지 물리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검모잠과 뇌음신은 신라로 돌아가는 김춘추를 잡기 위해서 바다에 진을 친다.
김춘추와 온군해는 고구려 군함을 보고 옷을 바꿔 입는다.
검모잠은 온군해를 김춘추로 판단하고 목을 벤다.
한편 연개소문은 이세민과 자신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이세민은 일관을 불러서 자신의 명을 묻는다.
일관은 시간이 다됐다고 말한다.
이세민은 다음 왕위에 오르는 것이 무씨 성의 여자라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란다.
마침내 이세민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처남인 장손무기와 아들 태자에게 유언을 하는데…
<93부>
이세민은 죽고, 연개소문은 백두산에서 운기조식을 통해 쇠약해진 몸을 다스린다.
연개소문은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하산한다.
연개소문의 처 고소연은 아들 남생 그리고 남산, 남건 형제가
국운을 해친다는 일관의 말이 잊혀지지 않아 걱정한다.
한편 성군으로 통하던 백제 의자왕은
은고라는 요녀에게 빠져서 신하들의 원성을 산다.
성충과 계백 장군 등은 충정으로 의자왕에게 충언을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국력은 차츰 약화된다.
반면 왕위에 오른 신라 김춘추는 당나라를 등에 업고
호시탐탐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를 정복할 계획을 세운다.
김유신은 김춘추에게 당나라와 점차 거리를 두고
고구려와 관계를 맺자고 하지만 거절당한다.
당나라 이세민이 죽은 후 왕위에 오른 고종은
장손무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조를 궁으로 들인다.
장손무기는 이세민의 유언을 얘기하며 만류하지만
고종은 요사스러운 무조의 치마폭에 쌓여서 말을 듣지 않는데….
<94부>
연개소문은 새 고구려가 가까운 곳에서 싹이 튼다는 조실 어른의 예언을 상기한다.
연개소문은 마중 나온 아들들과 수하들에게 얼굴을 붉히며 몹시 언짢아하며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지 않고 임지를 떠나서 마중 나온 것을 크게 꾸짖는다.
죽리는 그 동안 백제와 신라, 당나라의 정세를 보고한다.
한편 백제 의자왕은 며칠동안 꽃놀이 벌이며 시간을 보낸다.
보다 못한 성충이 목숨을 걸고 의자왕에게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다며
간신 임자와 요녀 은고를 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자왕은 계백, 윤충, 흥수 등도 성춘의 진언에 동의하지만
의자왕은 성충을 옥에 가두고 계속해서 흥을 즐긴다.
신라 김춘추는 김유신에게 당나라와 함께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하라고 말한다.
김춘추는 자신에게 중병이 있음을 얘기하고 김유신의 다짐을 받고 싶다고 애원한다.
당나라 고종이 백제와 힘을 도모해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할 계략을 짤 무렵,
드디어 무조가 고개를 들고 당나라를 뒤흔드는 음모를 펴기 시작한다.
무조는 황후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자신의 친딸을 죽이고 황후가 죽였다고 거짓말한다.
고종은 황후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폐서인 하라고 말한다.
장손무기까지 위기에 처하는데….
<95부>
당나라의 국문장에서 왕황후의 국문이 벌어지고
무조는 고종에게 이제 자신을 황후로 올려 줄 것을 청한다.
하지만 고종은 장손무기의 반대를 걱정하고 이에 무조는
장손무기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는 거짓 상소를 올리도록 신료들을 종용한다.
결국 장손무기는 통탄을 하며 자진을 하고 무조가 황후의 위에 오르더니
고종 이치는 병으로 인해 눈이 보이지 않아 무조에게 국정까지 맡도록 한다.
무조는 수렴청정을 하며 이적, 소정방, 계필하력, 설인귀에게 백제 정벌을 명하니
이적이 육로군을 이끌어 고구려를 치는 척 요동으로 진군하고
소정방이 이천척의 배를 끌고 아리수와 신라군과 만나
마치 고구려로 북상할 것 같은 움직임을 취한다.
이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군사를 모아 대비하지만
나당 연합군의 수로군이 지나치게 남하한 것에 의심을 품는다.
결국 이들이 백제로 진군하자 크게 안타까워 하며
이적의 육로군에 묶여 백제를 도울 수 없음을 걱정한다.
한편 백제의 의자왕은 나당 연합군의 진공 소식에
그들이 단지 고구려를 칠 것이라며 군사를 일으킬 것을 주장하는
흥수와 윤충을 내치고 계백마저 백의종군시킨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백제로 진군하여 황산벌에까지 이르자
그때야 비로소 경악하며 근신하던 계백을 불러들이고
계백은 조용히 갑옷을 입으며 죽을 전장에 나서기에 앞서
식솔들을 자신의 손으로 벤다.
<96부>
황산벌에서 마주한 신라의 대군의 백제의 5천 군사.
하지만, 결사의 각오를 다진 계백의 군사들은 신라의 선봉군에 대승을 거둔다.
그리고 연일 계속되는 전투에서 백제군의 기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한편 소정방의 당나라 군대는 백제의 도성에 거의 다다르고
의자왕은 그런 와중에도 계백만 있으면 백제가 지켜질 것이라며
패한 장수들은 목을 베라고 법석을 떤다.
김유신은 사기를 되살리지 않으면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하고
이에 먼저 김유신의 조카인 화랑 반굴이 백제군으로 뛰어 들어가
전력을 다해 싸우다 죽고 이어 화랑 관창이 다시 백제군의 진영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계백은 사로잡힌 관창을 풀어주고 관창은 또 다시 돌아와 싸우다 사로잡혀
결국 계백은 그의 목을 벤다.
이에 다시 사기가 오른 신라군은 백제군을 제압하고
계백은 혼신을 다해 싸우다 생을 마감한다.
한편, 의자왕은 이 소식을 듣고 도망치다 항복을 결심하고 소정방을 찾아간다.
사비성을 향해 진군하던 김유신은
백제의 궁녀들이 강에 뛰어들어 자진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한편 김춘추는 백제가 정벌되었다는 소식에 자신의 한이 풀리는 날이 왔다며
사비성으로 향하고 사비성에서는 승리의 주연이 벌어진다.
김춘추와 소정방은 망국의 왕 의자를 농락하며 즐거워하나
김유신은 오만한 당나라 장수들의 모습에 진노하여 소정방과 맞서는데
이에 김춘추가 오히려 신라의 제장들을 꾸짖는다.
한편,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백제의 멸망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고 급히 아들 남생을 부른다.
<97부>
세월은 흘러 연개소문은 막리지의 지위를 장남 남생에게 넘긴다.
연남생과 남건, 남산 형제의 갈등은 점점 커져가고
더불어 이를 지켜보는 어머니 고소연의 고민도 깊어만 간다.
마침내 수렴청정 체제를 굳힌 무조, 측천무는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로 향하고
총사령관 이적은 소정방과 계필하력을 앞세워 전쟁을 시작한다.
압록강에 상륙한 계필하력은
강어귀를 지키고 있던 남생의 군대를 속여 위기에 몰아넣고,
다시 고구려는 전쟁의 위기에 빠지는데….
<98부>
연개소문은 노구를 이끌고 다시 당나라군과 대적하여 위기에 빠진 고구려를 구해낸다.
신라는 김춘추가 죽고 차남 김인문이 왕에 오르는데….
<99부>
연개소문의 큰아들 남생이가 대막리지에 오른다.
동생 남산과 남건은
형 남생이 한 어머니에게 태어난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뇌음신은 남산, 남건과 남생의 출생을 부정하며 강한 반발을 산다.
연개소문의 처 소연은 예언이 사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불안감에 쌓인다.
연개소문은 역시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걱정한다.
마침내 남산과 남건이 뇌음신, 선도해, 신승과 함께
남생이 순행을 떠난 사이에 군사를 일으킨다.
반란군은 남생의 처는 물론 그의 자식까지 죽이며 혼란스러운 형국을 만든다.
연개소문은 걱정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 것을 알고 크게 놀라는데….
<100부>
순행을 떠난 남생과 생해는 반란이 일어난 사실을 모르고 국내성에 도착한다.
생해는 남산이 보낸 전령의 얘기를 듣고 평양성으로 돌아갔다가 목숨을 잃는다.
겨우 목숨만 건져서 도망친 헌성은 아버지 남생을 만나고,
남생은 모든 사실을 전해 듣는다.
남생은 동생 남산과 남건이 자신들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에 광분한다.
살육으로 대막리지에 오른 남산이 형 남생을 역적으로 몰아 추격에 나선다.
갈 곳이 없어진 남생과 헌성 부자는 신성으로 향하지만
그 곳 역시 자신들이 머물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사지로 몰린 두 사람은 당나라로 간다.
급기야 당나라는 고구려의 혼란한 틈을 타서 남생과 헌성을 앞세워 공격에 나선다.
남산과 남건 두 형제의 다툼으로 고구려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당나라는 연승을 거듭하며 차츰 고구려를 점령한다.
신라 역시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 깊숙이 들어온다.
연개소문은 조의들을 시켜서 선도해, 뇌음신, 신승의 목을 친다.
마침내 당나라 이적이 연개소문 앞에 나타난다.
연개소문은 옛 친구 이적과 술잔을 나누며
고구려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고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