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배경>
당초 오나라는 월나라에 비하여 상당한 강국이었고,
오나라의 제6대 왕인 <합려闔閭 재위 BC514-BC496>는
당시 손꼽히는 거대 세력인 춘추오패(春秋五覇)의 1인이었지만,
월나라와의 전쟁으로 인하여 결국 실패한 군주가 되고 말았으며,
아들 <부차夫差 재위 BC495-BC473>에 와서는 월나라에 의하여 멸망당하게 된다.
오나라 멸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가 자신의 부와 권세만을 탐한 간신 때문이었으며,
그 간신은 바로 <백비>이다.
吳王 <합려>는 중원 제패의 야망을 품고 널리 다른 나라에서도 인재를 모아왔으며,
그들을 중용하여 나라가 크게 강성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초나라 출신의 <오자서伍子胥>와
제(齊)나라 출신인 "손자병법"의 병성(兵聖) <손무孫武>이다.
<오자서>는 오랫동안 망명 생활을 하면서 중원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중원의 실정에 밝았는데,
오왕 <합려>는 그를 통하여 다른 나라들의 군사 정책을 연구하고,
군을 정비하여 오나라의 군대를 선진화하도록 하였다.
또한 제(齊)나라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제나라에 내분이 일어나 오나라로 망명하게 되었고
<오자서>의 추천으로 등용된 <손무>는
손자병법을 통하여 오나라 군대의 전투력을 크게 향상시키게 된다.
그러나 吳王 <합려>는 미인을 좋아하고 허영심이 강하기도 하여
자신에게 아첨하는 <백비>도 중용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백비>는 초나라 재상이었던 아버지가 간신의 흉계에 빠져
초나라 평왕(平王)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후 오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으며,
같은 초나라 출신인 <오자서>의 도움을 받게 된다.
<백비>는 별다른 재능은 없으면서 시기심이 강하고
여색을 탐하며 뇌물을 무척 좋아했다.
따라서 왕에게 아첨을 능사로 하여 왕의 귀를 즐겁게 했으며,
여색을 밝히는 왕에게 항상 미인을 갖다 바치는 채홍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백비>의 간교한 인간성을 간파한 <손무>와 <오자서>는 여러 차례 백비의 제거를
건의했지만 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합려>의 재임 말년에는
楚나라의 아름다운 궁궐을 모방한 고소대(高笑臺) 축성 공사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태재(太宰)로 임명되면서, 누구도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 커지게 된다.
<백비>에 대한 <합려>의 신임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백비>가 권세를 악용하여 월나라로부터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고
오나라의 정보를 팔기도 했으나,
누구도 왕에게 <백비>의 정체를 알리지 못했고 막지도 못했다.
BC 496년, 오왕 <합려>는 10년전에 월나라에게 침략당한 원한을 풀기 위해
월나라를 공격하지만,
사형수를 최전방에 투입하여 인벽(人壁)을 쌓고,
적의 공격이 시작되자 적군의 눈 앞에서 자결을 하는 할복 전략으로
오나라 병사를 얼어붙게 만든 월나라 장군 <범려>의 책략에 말려 패배하였으며,
자신은 부상을 입고 사망하게 된다.
이때 <합려>는 아들 <부차>에게
"월왕 <구천勾踐 재위 BC496-BC464>이 나를 죽였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유언하며,
복수를 맹세하게 한다.
이후 왕이 된 <부차夫差>는 가시가 많은 장작 위에
자리를 펴고 잤으며, 방 앞에 사람을 세워 두고 출입할 때마다
"부차야,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하고 외치게 하며 아버지의 원한을 되새겼다.
바로 와신(臥薪)의 세월이었다.
이후 <부차>는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복수의 칼을 갈았다.
오왕 <부차>가 아버지 <합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월왕 <구천>은 <부차>가 군사력을 키우기 전에
오나라를 치겠다는 욕심에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제 공격을 시도한다.
이로써 <부차> 재위 2년만에 吳越간에 국운을 걸고 생사를 가르는 전쟁을
다시 치르게 되며 복수의 칼을 갈았던 오왕 <부차>와
방심한 월왕 <구천>과의 전쟁에서 <구천>은 대패하게 된다.
도읍지 소흥(紹興)의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하게 되고,
회계산이 적에게 포위되어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월나라의 참모들은 뇌물을 좋아하는 <백비>를 이용하여
목숨을 구할 책략을 준비하는데, <백비>에게 재물과 미인들을 상납하여,
<백비>로 하여금 월왕 <구천>의 구명 운동에 앞장서도록 공작을 한다.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백비>는
월왕 <구천>을 살려주고 신하로 삼도록 <부차>에게 간청을 하였으며,
오왕 <부차>가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월왕 <구천>은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된다.
이것을 바로 "회계산의 치욕(會稽之恥)"이라고 한다.
황후는 부차의 첩이 되고, <구천>과 <범려>는 3년동안 짐승 취급을 받으며
<부차>의 종으로 일하면서 갖은 고역과 모욕을 겪는다.
마굿간에서 <부차>의 마부로 일하기도 했으며,
<부차>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서 <부차>의 건강을 점검한다고
<부차>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철저히 충성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한편,
미인 <서시西施>와 궁녀들을 <부차>에게 바쳐서
<부차>가 정사를 소홀히 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후 <구천>은
"越나라는 영원히 吳나라의 속국이 될 것"을 맹세하고
겨우 목숨을 건져 귀국하게 된다.
<구천>은 돌아오자 잠자리 옆에 쓸개를 매달아 놓고 앉거나 눕거나 쓸개를 햝으며
"너는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 하며 매일같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바로 상담(嘗膽)의 시간들이었다.
이후 구천은 "십년 교훈과 십년 쟁취"의 구호를 내걸고
장장 20년간 吳나라의 감시를 피해 국력을 배양했다.
월왕 <구천>의 항복을 의심스럽게 생각한 <오자서>는
<구천>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왕에게 간언하였으나,
<서시西施>의 여색에 빠진 <부차>는 판단력이 흐려져서
오히려 <오자서>를 내치게 된다.
<백비>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충언을 마다하지 않는 <오자서>를 반역죄와
불충으로 모함하여 황제의 명령으로 자결을 하게 만든다.
<오자서>는 한탄하면서 자신이 죽으면
오나라가 월나라에 멸망당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도록 눈알을 도려내서
동문(東門) 위에 걸어달라고 당부하고는 자결을 한다.
그후 <백비>의 부추김으로 인한 무리한 각종 토목 사업과 주변 나라와의 전쟁으로
吳나라의 국력은 점점 피폐해져 갔으며, 백비는 점점 자신의 부를 쌓아갔다.
한편 20년동안 몰래 국력을 기르면서 기회를 노리던 <구천>은,
오왕 <부차>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제나라를 침공한 기회를 틈타,
방어가 허술한 吳나라 수도를 치면서 역공을 했으며,
마침내 吳나라를 정복하고 吳王 <부차>를 생포하게 된다.
<부차>는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며 자결했으며,
이로써 吳나라는 112년간 존속하다가 BC 473년 이후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吳越 전쟁에서 월나라가 패배한 후 20년후의 일이다.
吳나라 멸망의 중심에는 越나라와 내통하여
미녀와 재물을 상납받은 반역자인 간신 <백비>가 있었다.
그러나 간신 <백비>를 두둔하고 키운 것은 吳王 <합려>와 <부차>였고,
막강한 권력의 장막으로 오히려 그를 비호했다.
결국 스스로 뿌린 화근의 씨앗이 아들 <부차>에 이르러서는 암처럼 커졌고,
吳나라 멸망이란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吳나라의 멸망에 간신 <백비>만큼이나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서시西施>가 있다.
<서시>는 중국의 고대 4대 미인(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한사람으로
본명은 시이광(施夷光)이다.
<서시>는 월왕 <구천>이 항복한 후,
미인계의 일환으로 재물과 함께 오왕 <부차>에게 바쳐졌다.
<서시>가 뽑힐 때
"참된 미인은 세 가지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데,
미모를 갖춰야 하고, 가무에 능해야 하며, 자태가 기품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따라,
3년동안 부족한 가무와 걸음걸이, 예절 등을 배운 후 부차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부차>에게 바쳐진 <서시>는 재능과 미모를 십분 활용하여 <부차>를 구워삶아,
<부차>가 여색에 빠져 政事를 돌보지 않도록 만들었으며,
결국 오나라의 패망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오월간의 전쟁은 많은 고사성어도 낳게 된다.
앞서 말한 "와신상담"이란 유명한 故事도 여기서 연유된다.
오왕 <부차>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가시가 많은 장작더미 위에 몸을 누이고(臥薪)" 복수를 맹세했으며,
다시 월왕 <구천>이 <부차>에게 당한 패배를 항상 기억하기 위해
"쓸개를 햝으면서(嘗膽)" 복수의 칼을 갈았던 것이다.
이 두사람의 이야기가 합쳐지면서,
바로 원수를 갚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하게 된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내부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 중에
월나라의 충신 <범려>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월왕 <구천>은 <범려>에게 봉토(封土)를 하사하며
재상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지만 <범려>는 사양하고 월나라를 떠난다.
부귀해지면서 교만해지고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이기적인 성격의 월왕 구천이,
결국에는 <범려> 자신을 포함한 공신들을 죽일거라 예측하여 월나라를 떠난 것이다.
이때 <범려>는 <구천>은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날아다니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도 폐기되고(飛鳥盡 良弓藏),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먹혀 버리는 법(狡兎死良狗烹)"
이라는 편지를 남긴다.
바로 고사성어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이다.
오월전쟁을 통하여 처절한 원수 사이가 된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의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미워하지만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면,
마치 오른손, 왼손이 서로 협력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서로 돕는다는 뜻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이해 때문에 뭉치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서시비사 줄거리>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순수하고 선량한 절세미녀 <서시>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서시>와 <정단>은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오나라의 왕궁으로 보내진다.
<구천>과 그의 신하인 <범려>, <문종>이 월나라 부흥의 꿈을 실현하며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절세미녀 <서시>와 <정단>, 그리고 오나라 왕 <부차夫差>는
비장하게 멸망의 심연으로 걸어 들어간다.
춘추 시기, 오월전쟁 때 월왕은 객경인 <범려>의 말을 무시하고 전군을 투입하여
전쟁에 나서지만, 오군의 전법을 이겨내지 못하고 위기에 몰리고 만다.
그때, 월군의 진영에 젊은 여인이 나타나 <범려>에게 십 년 전 오나라에서 쫓겨난
병성 손무의 병법서를 넘겨준다.
<범려>는 병서에 힘입어 오군을 대파하고
오왕 <합려闔廬> 또한
이때의 부상으로 인해 끝내 숨지고 마는데...
전세를 바꾸기 위해 군역을 내지 못한 장정을 소집해 결사 항전하려 한다.
<서시>와 <정단>은 전장에 끌려간 <황소>와 <정욱>을 구하기 위해
사부의 병서를 월의 대장군인 <범려>에게 전해주고 장정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구천>은 장정들의 절반을 결사대로 조직하여 전장에 보내버리고
BC 496년 취리 전투에서 패한 오왕 <합려>는 결국 독화살에 맞아 임종을 앞두는데…
복수를 잊지 않도록 <오자서>에게 조례 때마다 자신을 일깨우도록 명한다.
<범려>는 결국 월왕 <구천>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전쟁보다는 화평을 청할 것을 간언한다.
사신 자격으로 오나라에 간 <범려>는 <부차>에게 화평을 청원하지만
<부차>는 <범려>의 재능을 높이 여겨 오히려 그가 오나라에 남기를 원하는데…
회계산에 포위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오왕 <부차>가 <구천>을 살려주는 대가로 <구천>이 오나라로 와서
3년간 노비로 살 것을 제안하자 <구천>은 눈물을 머금고 이에 응한다.
월나라 대부인 <문종>은 <구천>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동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인계를 쓰기로 하고 <정단>을 불러들이는데…
<범려>는 눈물로 호소하며 해가 지기 전에 <서시>를 데려오겠다고 말한다.
범 장군의 속내를 알게 된 <서시>는 망연자실한 채 <구천>을 살리기 위해
<범려>와 함께 월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차>는 <오자서>의 반대로
<백비>가 데려온 월나라 여인들을 돌려보내라고 명하지만
<정단>은 돌아갈 집에 없다며 오왕궁에 머무르길 간청한다.
결국 <구천> 부부와 <범려>를 마구간에서 지내도록 명한다.
<정단>과 <서시>는 후궁에서 위세를 부리려는 <위희>의 눈 밖에 나고
비참한 모습의 <범려>까지 보게 되자 <부차>를 죽이려는 시도를 한다.
연회에서 <범려>가 추태를 가장해 <서시>를 막아서자
<부차>는 내막을 눈치 채고 <범려>를 회유하기 위해 나서는데…
<구천>은 최후의 수단으로 <정단>에게 <구선>을 데려오도록 명한다.
<서시>는 정단을 돕기 위해 마차를 몰고 왕궁에서 뛰쳐나가고
<구천>은 <구선>을 통해 <이비사>를 빼돌린다.
<범려>는 말을 잃어버린 <구천>을 대신해서 스스로 누명을 쓰고
<부차>는 하루의 시간을 줄 테니 <이비사>를 찾아오라 명하는데…
이를 이용해 <오자서>를 견제하기 위한 계략을 꾸미기로 한다.
오왕후는 오왕 <부차>의 생일을 맞아 <위희> 부인에 맞서
<서시>에게 왕포를 짓도록 명한다.
<범려>는 <백비>에게 접근해 <오자서>를 궁지로 몰기 위한
연합 제의를 얻어내는데 성공하는데…
오히려 이를 이용해 <범려>를 죽일 생각을 품는다.
<위희>는 <서시>의 왕포를 없애버리라고 <정단>에게 명하지만
<정단>은 그 일을 다시 <추선>에게 캍기는데…
<오자서>가 선왕인 <합려>의 묘 앞에서 <범려>를 죽이려 하자
<서시>는 <부차>의 비가 되겠다며 <범려>를 살려달라고 사정한다.
왕후가 서시를 시켜 만든 장포와 경쟁을 하게 된다.
<부차>는 <범려>를 불러 두 장포 중에 어느 것이 나은지 판별을 시키고
<서시>가 만든 장포를 상으로 내려준다.
<구천>은 <오자서>가 자신을 핍박해 오자 극단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
<서시>에게 왕후, 비빈들만 패용하는 비녀를 보내려 하는데…
저군인 공자 <우>와 만나게 된다.
겨우 살아남은 <서시>는 결국 <부차>의 비가 되긴 하지만
싫은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순 없다며 <부차>를 노엽게 만든다.
<위희> 부인의 시종을 피해 다니던 <추선>은 결국 <동매>에게 잡히게 되지만
그때 길을 지나던 공자 <우>가 이를 발견하고 마는데…
<정단>을 끌어들여 <부차>와 동침하게 한 후
<서시>와 <정단>이 서로 싸우도록 만든다.
<서시>는 <부차>를 거부한 죄로 냉궁에 내쳐진 뒤로
고단한 생활을 하는 월나라 출신 노비들의 곤궁한 생활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부차>는 제나라 사신이 오자 중신들과 회의를 하는데
태재는 제나라 정벌을 주장하며 화친을 원하는 <오자서>와 충돌한다.
<서시>가 마음을 돌리도록 회유한다.
<위희>는 <정단>을 앞세우고 <부차>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부차>가 관외궁을 서시에게 내리려는 것을 간파하고 오열한다.
<부차>는 백비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향후 패업을 이루기 위해
제나라의 공자 <강총>을 오나라로 데려오도록 명한다.
<건용>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미행을 명한다.
<영비>는 <건용>에게 왕후를 조심하라고 충고하고
자신의 병환 또한 왕후로 인한 거라며 복수를 종용한다.
<구천>은 오나라가 제 공자 <강총>을 제나라 왕위에 옹립하려 하자
이를 이용해 오나라에 타격을 주기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부차>는 호부도 없이 군영에 가지만 장수들은 왕명을 거부한다.
<구천>은 제 공자 <강총>의 문인인 <맹제>가 <서시>, <정단>과 사형제임을 알고
그를 이용해 오나라와 제나라 사이를 이간시키려 한다.
<백비>는 <부차>를 충동하여 <오자서>를 하옥시키고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계략을 세우는데…
오제 결맹을 방해하라는 명을 내린다.
<서시>는 늦은 밤 자신을 찾아와 미인계를 써 달라는 <맹제>와 <범려>의 요구를 듣고
또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얻게 된다.
<부차>는 <서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며 마음을 얻으려 하고
가뜩이나 지쳐있던 <서시>는 부차를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대전 앞에 꿇어앉아 <부차>를 재촉하며 <서시>를 처벌하라고 시위한다.
<백비>는 <오자서>로 인해 <부차>가 자해를 하자 이를 빌미로
<오자서>가 군주를 핍박한다며 호부를 반납할 것을 종용한다.
<부차>는 호부를 회수하자 곧이어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신군을 도성으로 불러들이고 삼군의 장수들을 교체하려 하는데…
어떻게든 <부차>를 유혹하려고 기회를 노리며 <구천>에게도 지원을 요청한다.
<위희>는 고민 끝에 <오자서>에게 <부차>의 계획을 몰래 누설해 버리고
<오자서>는 <부차>보다 앞서 대비를 하러 군영으로 간다.
<오자서>가 계획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범려>는 <서시>에게 달려가
<부차>의 결행을 막으라고 요구하다가 <서시>의 진심을 알게 되는데…
하고 <범려>에게도 자신을 잊어달라는 요구를 한다.
<위희>는 <부차>를 찾아가 <서시>가 남자를 궁으로 불러들였다며 고자질하고
결국 <서시>와 <범려>는 <부차>에게 들키고 마는데…
<부차>는 <서시>가 말한 것처럼 덕으로 <오자서>를 거두려 함과 동시에
<오자서>와 <백비>에게 조정을 맡긴 채 휴가를 가지려 한다.
자신이 <부차>를 모실 기회를 만들어 내고야 만다.
<위희>는 시위와 추문을 내고 쫓겨난 궁녀를 몰래 빼돌린 다음
의원을 매수하여 거짓으로 회임을 했다며 <부차>에게 알린다.
<부차>는 중신들에게 자신의 휴가를 선포하는 동시에
오 상국의 수연 연회를 궁에서 베풀어 주기로 하는데…
<강총>의 제나라 왕위 계승을 지원하려 한다.
<구천>은 자신이 살기 위해 오제 동맹을 깨트릴 계획을 세우고
<맹제>를 이용해 <서시>와 공자 <강총>이 만나도록 만든다.
공자 <강총>의 흑심을 눈치 챈 <부차>가 진노하자
<백비>는 어떻게든 부차를 진정시키려 하지만…
<맹제>를 납치해서 심문하려 하지만 불의의 기습을 당해 실패하고 만다.
<서시>의 도움으로 도성을 빠져나온 <맹제>는 <서시>에게 보물을 보여주며
함께 오나라를 떠나자고 <서시>를 설득하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다.
<부차>는 <오자서>가 <서시>의 품행을 빌미로 강력하게 처벌을 요구하자
자신이 월나라에 가서 상황을 파악하겠다고 선포한다.
<맹제>가 죽게 된 이유를 알게 된 <서시>는 오히려 원한을 키운다.
대공자 <우>가 <추선>을 진심으로 대하자 <취아>를 시켜 <추선>을 납치하고
이를 우연히 목격한 <몽요>는 <영비>에게 도움을 청한다.
<서시>는 <부차>가 노나라에서 보내온 흑곰 싸울 사람을 선택하라 명하자
사형의 복수를 하기 위해 <구천>을 지목하는데…
<위희>는 <추선>의 생사와 관계없이 왕후의 약점만 잡으려 한다.
<서시>의 도움으로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긴 <추선>은 충격으로 인해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며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한다.
왕후는 <부차>가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자
자신의 조카에게 <건용>과 <추선>을 죽이라는 연락을 하고 마는데…
<문종>의 대처로 아무것도 찾지 못한다.
<서시>의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월군의 복색을 한 무리들이 <부차>를 습격하지만
<범려>는 그들의 속옷이 오군의 것임을 알려준다.
<서시>는 길에서 만난 난민 행려와 황폐해진 월나라 사정을 보고는
<범려>에게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물어보는데…
정신을 잃고 <철륵>은 이를 빌미로 월나라를 멸하자며 <부차>를 압박한다.
자객 소식이 오왕궁에 알려지자 사태를 꿰뚫고 있던 <오자서>는 왕후를 찾아가
공자 <우>를 지지하겠다며 거래를 요구한다.
<정단>은 <위희>의 거짓 회임을 눈치 채고 그 사실을 왕후에게 알려준다.
하지만 왕후는 그 사실을 묻어두고 <위희>의 출산일을 기다리는데…
<오자서>의 다음 행보를 기다린다.
<철륵>이 궁성을 완전희 포위하고 <부차>의 행동마저 제약하자
<범려>는 부차에게 왕궁의 비밀 통로를 알려주며 도망치길 권하는데…
<오자서>는 <부차>가 끝내 월나라를 존속시키려 하자 칼을 꺼내들지만
결국 <부차>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하고 만다.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명한다.
왕후는 <동매>를 시켜 왕후궁을 빠져나가 <정단>에게
<위희>의 거짓 임신을 <부차>에게 고발하도록 도와달라며 거래를 제시한다.
왕후와 <위희> 사이에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저울질하던 <정단>은
<구천>을 찾아가 조언을 청하고 결국 왕후를 돕기로 결정하는데…
<서시>는 오히려 여러 사람이 죽게 될 것을 염려하며 <정단>을 만류한다.
<정단>은 <위희>의 밀실을 알아내기 위해 <구천>에게 도움을 청하고
<범려>는 <정단>을 돕기 위해 변장을 하고 <위희>의 침궁에 잠입한다.
왕후를 만나려던 <부차>는 때마침 달려온 <동매>의 말에 <위희>에게 가버리고
<위희>의 밀실에선 금방이라도 시녀가 분만을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침실로 돌아온 <부차>는 모든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
<위희>의 처벌을 맡게 된 태재는 <위희>가 이미 반미치광이가 된 걸 확인하고
향후 조례 때 이 사건의 처벌을 결정하기로 한다.
<부차>로부터 왕후에 대한 처벌을 위임받은 <오자서>는
또 한 번 <부차>에게 시험을 당할 위기에 봉착하는데…
<건용>에게 <우>를 밀어내고 저군이 되라고 강요한다.
왕후와 <위희>의 처벌 문제를 두고 고민하던 <부차>는 <위희>가 미친 모습을 보고
결국 관용을 베풀기로 결심한다.
결국 왕후가 폐위되고 <위희>가 위나라로 쫓겨나게 되자
<정단>은 <위희>의 침궁을 차지하고 비빈에 봉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자 <우>를 만나 자신의 신물을 건네준다.
오나라에서 쫓겨나 위나라로 가던 <위희>는 길을 인도하던 군사들이 철수하자
연극을 그만두고 다시 오나라로 돌아가는데…
공자 <우>와 <건용>의 검술 비무 자리에서 <서시>는 <추선>이 갖고 있던 옥패가
왕후 것임을 알아보고 급히 왕후에게 달려간다.
모든 것이 <구천>과 <범려>의 계략이 아닐까 의심한다.
<부차>는 제나라가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오자서>를 제나라에 보내놓고
<백비>로 하여금 노나라와 결맹을 맺겠다는 전언을 전하게 한다.
공자 <우>가 매일 술에 취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자
<추선>은 <서시>를 찾아가 자신을 대신해 새로운 비를 맺어달라고 부탁한다.
<정단>에게 협조를 요청하지만 <정단>은 매정하게 거절한다.
<정단>은 <완정>이 <부차>의 전투 계획을 엿드는 모습을 보고
자신까지 위험에 빠질까봐 <구천>을 찾아가 선을 그으려 한다.
<범려>는 월나라 부흥 계획에서 빠지겠다는 <정단>을 협박해
<완정>을 계속 그녀 곁에 머물게 하여 정보를 수집하게 하는데…
<부차>는 이를 빌미로 <오자서>를 제나라로 보내 버린다.
<범려>는 <건용>이 출정한다는 소식에 공자 <우>를 없애기로 결정하고
<완정>에게 <몽요>의 도움을 얻어 <영비>의 옥패를 빼내오도록 명한다.
<몽요>의 행동에 이상을 느낀 <영비>는 시녀를 시켜 <몽요>를 미행시키고
<몽요>를 미행한 시녀는 <몽요>와 <완정>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데…
일이 어그러진 것을 알고 <완정>을 자신의 궁에 감금해 버린다.
<건용>은 <몽요>를 설득해 옥패를 훔치려 한 배후와 진짜 목적을 알아내려 하지만
<몽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정단>이 없는 틈에 <완정>을 잡아가려던 <건용>은 어지를 빙자해 문을 부수고
<정단>궁에 난입하는데…
<정단>은 <부차>가 질투할 거라며 <서시>를 만류하려 한다.
<부차>는 <범려>의 재주를 아까워 하며 애릉 전투에 대한 조언을 청하고
<구천>을 버리고 자신을 보좌하라며 설득한다.
<몽요>는 <정단>이 <완정>을 독살하려는 사실을 알고 <서시>에게 알리지만
<서시>는 <정단>을 의심하지 말라며 다독이기만 하는데…
<정단>은 <서시>의 입을 막기 위해 <완정>을 인질로 삼는다.
<오자서>는 끝내 제나라와의 결맹을 주장하며 <부차>를 설득하지만
조정의 대세가 넘어간 뒤라 원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 버린다.
<정단>은 <완정>의 목숨을 담보로 <서시>에게 비밀을 지키도록 협박하고
때마침 찾아온 <부차>를 위해 자신에게 협조하도록 요구하는데…
결국 <정단> 대신 자신이 간세가 되어주기로 결정한다.
왕후는 직접 <정단>을 찾아가 협박하는데 성공하고
무사히 <완정>을 구해 월나라로 보낸다.
제나라 정벌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부차>는 전쟁이 끝난 후
새로 왕후를 세울 결심을 하는데…
목릉관을 함락시키기로 결심한다.
월나라 <구선>은 <강총>의 군대와 연합하여 <부차>의 진영을 습격하고
대공자 <우>를 독화잘로 암습하는데 성공한다.
<부차>는 <건용>이 대공자 <우>를 죽이려 한 것인지 의심하지만
<우>는 끝내 <추선>을 따라 자결하고 마는데…
무리하게 천하 쟁패를 위한 전쟁 준비에 매진한다.
<구천>과 <범려>는 <부차>가 출전하기 전에 월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서시>와 <정단>에게 청원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부차>가 <오자서>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내자
<정단>은 <서시>가 배신했다며 <부차>에게 그간의 상황을 고해 버린다.
오나라의 왕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되었다는 것에 기뻐하며
부차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친정에 나선 부차는 파죽지세로 북진을 감행해 나가지만
<구천>은 오군의 군량이 부족한 점을 들어 계략을 세운다.
서시 역: 오정정
부차 역: 마경도
구천 역: 마덕종
범려 역: 진호민
합려 역: 오경안
위희 역: 만니은
정단 역: 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