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馬七月 智帝 崩 於凉宮
514년 7월 지증제가 양궁(凉宮)에서 붕(崩)하였다.
514년은 갑오(甲午)년 청마(靑馬)의 해이다.
法帝 卽位 奉后 爲太后 行妙王 仙后事仙政盡 歸之
법흥제가 즉위하여 후를 태후로 받들고 묘왕(妙王)에게 행차하였다.
선후(仙后)가 선정(仙政)을 정성을 다하여 베푸니 돌아왔다.
묘왕(妙王)은 선후(仙后) 태후 <연제>로 곤천대제 법흥묘왕이다.
乃置 仙臣 十二級 一如 骨品設三十六 仙院於國中 置仙院令 治之
이에 선원의 신하 12등급을 골품 36등급을 설치하여 똑같이 하여
나라 안의 선원에 선원령(仙院令)을 시행하여 다스렸다.
后命平立宮 設三位宝座 以郎居其右 如三聖殿同 其規
후는 평립궁(平立宮)에 명하여 세 번째 보좌(宝座)를 설치하여
<위화>랑을 그 오른쪽에 앉게 하고 그 규모를 삼성전(三聖殿)과 같이하라고 하였다.
※ 종묘(宗廟)
홍현궁(弘峴宮) : <보해(390-441)>를 모시는 종묘
갈천궁(葛川宮) : <자비(414-479)>를 모시는 종묘
선평궁(善坪宮) : <습보(420-485)>를 모시는 종묘
이동궁(伊同宮) : <비처(436-500)>를 모시는 종묘
평립궁(平立宮) : <지도로(437-514)>를 모시는 종묘
好知 以其非祖宗之法 諫 于帝
<호지好知>가 帝에게 조종(祖宗)의 법이 아니라고 간(諫)하였다.
帝欲悅后 而任 其所爲
帝는 후를 기쁘게 하고자 그대로 두었다.
乃樹三株 樹王 立 其殿 飾 以金玉 朱門 翠尾 莊嚴燦爛
이에 세 그루의 나무를 수왕(樹王)으로 하여
금과 옥으로 장식한 붉은 문과 그루터기를 비취로 장식한
장엄하고 찬란한 수왕전(樹王殿)을 세웠다.
평립궁에 세운 수왕전을 말한다.
以羊秀爲翁 命花人狗臣 治花田栽 以琪瑤芬芳 以悅四時之目 引水其間曲曲爲池
以養魚鳥 完然若仙界 骨女之詣謁者不絶
<양수羊秀>를 수왕전옹(樹王殿翁)으로 하여
꽃을 다루는 사람과 구도(狗徒)의 신하에게 명하여 꽃밭에 꽃을 심도록 하니
진기한 꽃의 향기가 가득하여 사시사철 눈을 즐겁게 하고
그 사이로 물을 끌어들이니 굽이굽이 못을 이루고
고기와 새를 기르니 마치 신선의 세계와 같아
골녀(骨女)들이 와서 보는 것이 끊이질 않았다.
后與郎 抱臥于樹王殿 晝寢 夢 見美人 紫衣 紺裳 兎首 而進自言 臣是五兎神君
願護陛下夫妻 乃以五株宝花進之 其花各發 一旬 循環不盡
후와 <위화>랑이 수왕전(樹王殿)에서 안고 누워 낮잠을 자는데
꿈에 미인(美人)이 자주색 저고리에 짙은 푸른색 치마를 입고
토끼 머리를 하고 다가오며 스스로 말하기를
“ 신(臣)은 다섯 마리 토끼의 신군(神君)입니다.
폐하 부부를 보호하기를 원하오니 다섯 송이의 붉은 꽃을 주시면
그 꽃이 각각 10일 만에 피어 끝없이 돌고 돌 것입니다.
后奇其夢語于郎曰 此何兆乎
후가 그 꿈속의 말이 기이하여 <위화>랑에게 말하기를
“ 이것은 무슨 조짐입니까?”
郎曰 元始 弩理 卯王 旬間 吾爲陽兎 汝爲陰兎生 于五卯神山
宝椧樹下 食其花 而生五子女 其花有五色 各發十二日
而不盡 以養 吾子孫 今 此 樹王 乃古椧神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만물의 근원은 노리(弩理)이고 묘왕(卯王)은 순간(旬間)입니다.
나는 오묘신산(五卯神山)에서 태어난 양토(陽兎)이고 당신은 음토(陰兎)입니다.
나무 아래에 있는 보물 홈통(椧)이 그 꽃을 먹어 다섯 자녀를 낳으니
그 꽃은 다섯 가지 색으로 각각 12일간 피어 다함이 없이 우리 자손을 키웁니다.
지금 이 수왕이 바로 옛날의 홈통신(椧神)입니다.“
위화는 487년 정묘년(火兎)에 태어났고 연제는 463년 계묘년(黑兎)에 태어났다.
보리(宝理)는 太極, 노리(弩理)는 八卦, 순간(旬間)은 五行을 말한다.
다섯가지 색은 五行의 색인 青,赤,白,黑,黄을 말한다.
后乃大覺完然 如見旬間
이에 후는 순간(旬間:五行)을 보는 것처럼 완연히 깨달았다.
時乃以樹王殿 爲椧神祠 故仙徒 稱以椧洞仙院
이에 당시 수왕전(樹王殿)을 명신사(椧神祠)라 한 까닭에
선도들은 명동선원(椧洞仙院)이라고 칭하였다.
羊秀 息仁等 與沙忠 薛布等 請用五卯神曆 許之捀
<양수羊秀>, <식인息仁> 등이 <사충沙忠>, <설포薛布> 등과 함께
오묘신력(五卯神曆)을 사용토록 청하니 이를 받들도록 허락하였다.
仙童之美 爲五卯 旬將 戒名者 五人
선동(仙童)중에서 아름다운 자가 오묘(五卯)가 되는데 계명(戒名)자 5명이다.
直日者 五人 緋衣 綠袴 戒名者 黃綠 高一品
직일(直日)자 5명은 붉은 저고리와 녹색 바지를 입고
계명(戒名)자는 노란 저고리에 녹색바지를 입은 높은 일품(一品)이다.
月將 十二人 皆用五品 奾子
월장(月將) 12명은 모두 오품으로 선자(奾子)이다.
日將 二十四人 使者
일장(日將) 24명은 사자(使者)이다.
六十人 奉上仙 値其年者 爲太歲大將軍 以其妻 爲歲合大母
60명이 상선(上仙)을 받드는데 그 나이가 많은 자가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그 처는 나이를 맞추어 대모(大母)가 된다.
日將 使者 皆用淨林 以備充年之用仙徒
일장(日將) 사자(使者)는 모두 정림(淨林)을 사용하여
해마다 선도(仙徒)를 준비하고 충당하였다.
以旬將爲登龍之門 爭其科者
순장(旬將)은 등용문이 되니 시험을 경쟁하는 자들이다.
학당(鶴堂)에 들어와 시험에 합격한 자가 순장(旬將)이다.
飾其族之美者 窮其奢侈 爲之傾 其産掌 其銓者 謂之 駕鶴
그 가족을 아름답게 꾸미고 사치가 극에 달하여 생산하여 가진 것이 기우니
시험을 보려는 자를 일러 가학(駕鶴)이라 하였다.
一經駕鶴卒 然成富 盖受重賂也
일단 가학(駕鶴)을 마치면 자연히 부를 이루니 어찌 중한 뇌물을 받지 않겠는가?
每以六月 十二月 考其試 先 期定鶴
매 6월과 12월에 시험을 치기 전에 학당(鶴堂)을 정해야 한다.
故爭科者 皆就鶴堂納門 禮行 師弟之儀
그러므로 시험에 경쟁하는 자는 모두 학당(鶴堂)에 나아가 학당 문에 들어가서
사제(師弟)의 예를 행하여야 한다.
其禮不一 牛馬金帛盡 其所有 而納之 故仙臣 以駕鶴 爲致貨之職 亦爭其職
그 예가 서로 어긋나면 소와 말과 금과 비단을 바쳐서 가지게 되니
선원의 신하들은 가학(駕鶴)으로 돈을 모으는 직책이 되니 그 직책을 다투었다.
가학(駕鶴)은 학당(鶴堂)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를 말한다.
后命 駃兒 薛布 執網 唐奴 曹義 比食 黃馬 角治 息仁 爲東堂 呼以靑鶴
후가 명하여 <결아駃兒>, <설포薛布>, <집망執網>, <당노唐奴>,
<조의曹義>,<비식比食>, <황마黃馬>, <각치角治>, <식인息仁>을
동당(東堂)이라 하여 청학(靑鶴)이라고 부르고
沙忠 亥牟 牛衣 翟芝 羊秀 神龍 牛公 雨神 柯枝 爲西堂 呼以白鶴
<사충沙忠>, <해모亥牟>, <우의牛衣>, <적지翟芝>, <양수羊秀 >,
<신룡神龍>, <우공牛公>, <우신雨神>, <가지柯枝>를
서당(西堂)이라 하여 백학(白鶴)으로 부르게 하였다.
청학(靑鶴) 9명, 백학(白鶴) 9명이다.
仙童 年十五六 始入鶴堂曰 登壇 凡欲登壇 宜得靑白之援引 呼以靑父 白父
선동(仙童)이 나이 15,6세로 처음으로 학당에 들어오면 등단(登壇)이라 하였다.
무릇 등단이 되고자 하면 마땅히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의 추천을 받아야 하니
청부(靑父), 백부(白父)라 불렀다.
十七八 乃入銓考曰 上堂 初授 旬將者曰 直日 再授者曰 戒名
17,8세에 시험을 쳐서 들어오면 상당(上堂)이라 하고
처음 수업을 받는 순장(旬將)자를 직일(直日)이라 하고
재차 수업을 받는 자를 계명(戒名)이라 한다.
十九而止二十 而始列 于仙臣之序次 受品位登壇 而未得上堂者曰下堂
以才藝進之曰別堂 亦序臣列 以功力進之曰功堂 特寵加之曰寵堂
19세에서 20세까지 선도의 신하의 품계에 서열이 시작되는데
등단(登壇)의 품계를 받고 상당(上堂)이 되지 못한 자를 하당(下堂)이라고 하는데
재주와 예능에 있으면 별당(別堂)이라 부르니 이 역시 신하의 서열이다.
공을 세우면 공당(功堂)이라 부르고 특별히 총애를 받은 자를 총당(寵堂)이라고 한다.
下堂之爲 州郡 仙臣者(曰)外堂
하당(下堂)으로 주군(州郡)의 선원의 신하가 된 자를 외당(外堂)이라 한다.
上別功寵 外 謂之 五堂學士下堂曰 壇士
왕이 특별히 공을 총애하는 자 외에
오당학사(五堂學士)를 하당(下堂)에서 단사(壇士)라 한다.
未及登壇曰 仙徒
등단(登壇)하지 못한 자를 선도(仙徒)라 한다.
선도(仙徒)는 선동(仙童) 중에서 학당에 들어가지 못한 자를 말한다.
未及擇童曰花衆
선동(仙童)으로 선택되지 못한 자를 화중(花衆)이라 한다.
八九歲而入童子番者曰擇童
8,9세에 선원에 들어와 선동이 되기를 순번을 기다리는 자를 택동(擇童)이라고 한다.
每以三四月 分遣採童使于國內 各院擇之州郡選 其美者納于屬院 而備其採
해마다 3,4월에 선동(仙童)을 채용하려고 나라 안에 나누어 파견하니
각 선원은 이를 주군(州郡)에서 선발하여
아름다운 자를 소속 선원에 들여보내 그 채용에 대비하였다.
擇得其擇一 鄕祭之曰 吉祥
그 중에서 한 명이 선택을 받으면 마을에서 제(祭)를 올렸는데
이를 길상(吉祥)이라 한다.
以花飾笠 而擧戴 其童 而歌舞 爲例
그 선동(仙童)은 꽃으로 장식한 삿갓을 쓰고
수레에 올라 가무를 하는 것이 예가 되었다.
凡有美童一響 養之 童母 爲遊花
무릇 아름다운 선동(仙童)이 있다는 명성이 있으면 이를 키우니
선동(仙童)의 어머니는 유화(遊花)가 된다.
故國人 重美色 雖富豪之家 見行旅之美者 不問其骨品 而喜迎 而寬待之
使其妻女通之 得美種曰 轉元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미색을 중히 여겨 부자 집에서는 비록 행여자(行旅者)라도
아름다운 자를 보면 골품을 묻지 않고 기꺼이 맞이하여 관대히 대우하고
그 처와 딸로 하여금 통정하게 하여 아름다운 씨를 얻으니 이를 전원(轉元)이라 한다.
苟有美風采 善歌舞 言辭者 遍行國中 不行一步 綺羅膏梁 而歸名曰遊春
구차하여도 아름다운 풍채가 있고 가무를 잘하고 말을 잘하는 자는
나라 안을 두루 다닐 때 한 발짝도 걷지 않아도
기라성 같이 쌓인 고량진미를 잘 먹고 돌아오니 이를 유춘(遊春 : 봄나들이)이라 한다.
時人歌之曰 願逢遊春郎 得接仙花 種 當春花
당시 사람들이 이를 노래하여 말하기를
“ 봄나들이 낭군을 만나기를 원하여 선화(仙花)와 교접하여 씨를 받은 봄꽃이다.”
라고 하였다.
時家家飾其妻女出遊 於途花樹 擁途 而發爛熳 如雪散在花下
당시 집집마다 그 처와 딸이 예쁘게 꾸며 꽃이 활짝 핀 꽃나무 길에서 놀고 거느리니
마치 꽃나무 아래 눈이 날리는 것 같았다.
開葚携䒰 陳列酒食 而待遊春郎 得其所歡 則縱情 歌舞
或野合 而不歸 雖至旬月 而不問其風
오디가 우거지게 열리니 술과 음식을 진열하여
봄나들이 낭군을 기다려 그 즐거움을 얻어 가무를 실컷 즐기고
때로는 야합(野合)하여 비록 열흘이나 한 달 동안 돌아오지 않아도
그 풍속을 묻지 않았다.
淳美 不相 盜詐暴力 故理方 皆得其情 農工 不以其時 遊連
순박함과 아름다움은 도적과 사기와 폭력과는 서로 상관이 없으나
이방(理方)에서 그 정(情)을 받은 농업과 공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연이어 노는 것은 그 때가 아니라고 하였다.
故家戶皆 全其業咸 頌妙王之德 山無盜賊 野無拾遺
그런 연유로 모든 가구가 그 생산을 다하고 묘왕(妙王)의 덕을 암송하니
산에는 도적이 없고 들에는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比尾連屋 皆食米穀 夜不關門 途無行乞人
꼬리를 이은 집이 즐비하고 모두가 쌀밥을 먹으니
밤에도 대문을 닫지 않고 길에는 걸인이 없었다.
口蕃殖 逐 年增 戶疾病 不行 人無
마침내 호구가 크게 늘어나 해마다 가정에 질병이 늘어나니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醜惡 殘弱 雖 少兒老婦 皆有春心 夏顔無
비록 추악하고 잔약(殘弱) 무력한 어린아이와 늙은 부녀자는
모두 춘심(春心)만 있고 얼굴에는 열정이 없었다.
有欠氣 口誦 妙王眞后理 陰調陽福
我萬民神運開通 國力日盛 如出一口 無有腹誹
모자라고 부족한 기(氣)로 단지 입으로 묘왕(妙王) 진후(眞后)의 이치인
음(陰)의 조화와 양(陽)의 복(福)을 외우며
우리 만백성은 신운(神運)이 열려 한 입에서 나오듯이 국력이 날로 번성하니
마음속으로 꾸짖지 말라 하였다.
後來 帝文郞 作遊春曲 贊其盛事
훗날 <제문>랑이 유춘곡(遊春曲)을 지어 그 일이 이루어졌음을 도왔다.
神龍 曹義 最多遊春 得子數百人
<신룡神龍>과 <조의曹義>는 가장 많이 봄나들이를 하여 자식이 수백 명이었다.
天下之姓曹神者 皆祖之 常語人曰
汝以眞 吾以元 汝以現 吾以隱 仙院 雖 廢吾 其祀矣 果然矣
온 세상의 조(曹)씨는 모두가 그를 조상으로 하니 언제나 사람들의 말이
“ 너는 진(眞)이고 나는 원(元)이고, 너는 현(現)이고 나는 은(隱)이다.
비록 선원이 나를 폐하더라도 제사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하니 과연 그리 되었다.
神龍 與郎 同年 而先二月
<신룡神龍>은 <위화>랑과 나이가 같은데 2개월 앞섰다.
自云 神龍 交 于其母 而生 乃名 神龍
스스로 말하기를 신룡(神龍)이 그 어머니에게 교접하여 태어나
이름을 <신룡神龍>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長於羊皮奾子 奾子 愛其壯陽 而密私之
자라서 <양피羊皮> 선자(奾子)에게 소속되었는데
선자(奾子)는 그 강한 양기(陽氣)를 사랑하여 남몰래 사유(私有)하였다.
奾子有三夫 其一曰 玉人休父 其二曰 皮人卓五 其三曰 刀人國長
<양피> 선자는 세 남편이 있는데
첫 번째는 옥인(玉人) <휴부休父>이고
두 번째는 피인(皮人) <탁오卓五>이고
세 번째는 도인(刀人) <국장國長>이다.
三人議曰 兒龍得志 則吾輩 當踈 不如除之
세 사람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 어린 용(龍)이 뜻을 얻은 즉 우리 무리들을 소홀히 할 것이니
이를 제거함만 못할 것이다.”
乃誘 至陰處 欲刺之
이에 음침한 곳으로 유혹하여 <신룡神龍>을 주살코자 하였다.
神龍曰 汝等之欲害 我者爲奾子也
汝等 計拙反 爲理方所捕 而族之 吾爲龍子可甦 而專奾子
<신룡神龍>이 말하기를
“ 너희들이 해를 입히려고 하지만 나는 선자(奾子)를 위할 것이다.
너희들이 졸렬하게 반대하는 계책을 꾸미니 이방에서 가족을 잡아 가둘 것이고
나는 소생하여 용의 자식이 되어 선자(奾子)를 독차지 할 것이다.“
三人(曰) 汝此陰處有 誰可知 而告 理方乎
세 사람이 말하기를
“ 너는 이와 같이 음침한 곳에 있는데 누가 알고 이방(理方)에 고소하겠는가?”
可急殺之 忽自樹上 有言曰 吾知之
급히 죽이려고 하니 갑자기 나무위에서 “내가 알고 있다”는 말이 들렸다.
나무 위에 <조의曺義>가 숨어 있었다.
三人乃懼曰 樹王知之
이에 세 사람은 부끄러워하며 말하기를
“ 수왕이 이를 알고 있다.”
乃止之 許爲 同夫
이에 주살하는 것을 금지하고 같이 남편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神龍乃語奾子曰 汝愛我甚 故三人妬之 不若踈我 而保之
이에 <신룡>이 선자에게 말하기를
“ 당신이 나를 심히 사랑하여 세 사람이 이를 질투하니
만약 나를 소홀이 하지 않으면 보호할 것입니다.”
奾子乃佯笞 而放之 林間 龍 仰臥
이에 선자가 볼기를 때리는 체 하며 놓아주니
숲 사이에 용(龍)이 가슴을 위로하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數樹果有 人 自樹轉樹 如飛 摘果 而飽之
나무에는 몇 개의 과일이 달려 있고
사람이 나무에서 나무로 굴러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었다.
龍問其爲誰 乃前日樹王也
용이 누구냐고 물으니 바로 어제의 그 수왕(樹王)이다.
<조의曹義>를 수왕이라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短軀 炯目 有剽勇 常曰 馬有 同曹之義 人有 同樹之情
체구는 작고 눈은 빛이 나고 사납도록 용감하며 언제나 말하기를
“ 말은 조(曹 : 짝)와 같은 의(義)가 있고 사람은 나무와 같은 정(情)이 있다”
라고 하였다.
故名之 以曹義 二人一見如
그런 연유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보아 <조의曹義>라고 이름 하였다.
曹義라는 이름의 뜻이 두 사람의 의리라는 것이다.
舊曰 得長補短 吾人之謂也
옛말에 “긴 것을 얻어 짧은 것을 보충한다” 하니 우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盖龍太長 而義太短也
<신룡>의 가장 긴 것으로 <조의>의 가장 짧은 것을 덮은 것이다.
遂 詣曹義 窟中 同其妻母
마침내 <조의曹義>의 처와 어머니가 같이 굴속에 있는 <조의曹義>에게 이르렀다.
若兄弟不歸 羊皮思之 不食 命其三夫索之 得於窟中 請歸
만약 형제가 돌아오지 않으면 <양피>는 밥을 먹지 않으려고 생각하여
그 세 남편에게 그를 굴속에서 찾아 구하여 돌아오라고 청하였다.
龍曰 吾無所技臥 遊終日 汝等各 以其業 媚妻 丈夫 豈可取食於女子乎
<신룡>이 말하기를
“ 우리는 기술이 없어 종일 누워서 놀고 있는데
당신들은 각자 그 직업으로 처에게 아첨하니
대장부가 어찌 여자에게서 밥을 얻어먹겠는가?“
三夫 以告羊皮 羊皮乃薦於后 欲爲院卒
세 남편이 <양피>에게 고하니
이에 <양피>가 후에게 천거하여 선원을 나오고자 하였다.
后見 其壯皃魁偉 而可之
후는 얼굴에 기상이 넘치고 기골이 장대함을 보았다.
龍仰天大笑曰 臣等皆 當世之英雄也 今補之 以衛卒 誰謂陛下聖乎
<신룡>이 앙천대소하며 말하기를
“ 신(臣) 등 모두는 당대의 영웅인데 지금 위졸(衛卒)로 임명하면
누가 폐하를 성인이라고 말하겠습니까?“
后曰 侍汝有功 而遷之矣
후가 말하기를
“ 네가 공을 세우기를 기다려 옮길 것이다.”
龍曰 臣日飮斗酒 豚肩 若與螻蟻輩 同食 則餓 而死 何待立功乎
<신룡>이 말하기를
“ 신(臣)은 하루에 한 말의 술을 마시고 돼지 넓적다리 하나를 먹는데
만약 누의배(螻蟻輩)들과 같이 먹으면 죽으니 어찌 공을 세워 모시겠습니까?“
※ 누의(螻蟻) : 땅강아지와 개미라는 뜻으로 작아서 시시한 것을 비유한 말
乃手折銅馬柱 亂打衛卒 百余人 無敢敵者
손으로 동마(銅馬) 기둥을 꺾어 위졸(衛卒) 백 여 명을 난타하니
감히 대적할 자가 없었다.
后大驚曰 古莫柴之類也
후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 옛날에 없던 섶나무(柴 : 울타리로 쓰는 가시나무) 부류이다.”
命屬衛士曰 賜斗酒 烝豚
위사(衛士)에 소속토록하고 명하기를
말술과 돼지를 삶아 내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龍與義 拔雙刀 㘦而食之 旣醉 揚刀 而歌
<신룡>과 <조의>가 쌍도(雙刀)를 빼내어 잘라서 먹고는
술이 취하여 칼을 휘두르며 노래하였다.
令人笑啼飛刀 於樹上 枝葉隨意前落
나무 위로 칼이 나르고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게 하니
나뭇가지 잎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后喜聞其歌 每於月夜 與郎 抱臥 於殿上 使之 奏歌 于殿庭
후는 달밤이면 전각위에 <위화>랑을 안고 누워
전각의 정원에서 그를 시켜 노래를 연주토록 하여 그 노래를 기쁘게 들었다.
令弄刀 往來 爲戱 而欒之
칼을 희롱하며 오고가며 노니 란(欒 : 둥근 모감주나무)이 되었다.
未幾 山帝公主 將妻 剡梁
머지않아 <산제山帝> 공주를 <염량剡梁>의 처로 하기로 하였다.
비처(연제) - 산제(494- )
염신(옥량) - 염량(494- )
后與郎 宿 于剡院 失火 迫 於后寢人 皆危之
후와 <위화>랑이 염원(剡院)에서 자는데 실수로 불이 나서
불길이 침실로 들어 와 후는 다급해지고 모두가 위험에 처하였다.
龍與義 毁屋脊 而飛入 抱 后及郎 而逃禍 功爲第一加爵
<신룡>과 <조의>가 용마루를 헐고 비호같이 날아 들어와
후와 <위화>랑을 안아서 화를 모면하여 공이 제일이라 작위를 더하였다.
或云 非后 而公主也 又有地震 剡院 老樹王倒地
혹은 말하기를 후가 아니라 공주라고 하고
또 염원(剡院)에 지진이 일어나 늙은 수왕(樹王)이 땅에 쓰러졌다고 하였다.
后憂之曰 朕之蘖也
후가 이를 근심하며 말하기를
“ 짐의 얼(蘖 : 그루터기에서 돋은 움, 허물, 재앙)이다.”
龍義起之 如小株 如常
<신룡>과 <조의>는 평상시와 같이 작은 그루터기처럼 일어났다.
后益愛 獎之序 于仙臣之列
후는 더욱 사랑하여 선원의 서열로 격려하였다.
衆畏其勇 莫敢拒之 后出入必左右之曰 朕之雙獹也 不可無好牝
모인 사람들은 그 용맹함을 두려워하여 감히 거스러지 못하니
후가 출입할 때 반드시 좌우에 두고 말하기를
“ 짐의 두 준견(駿犬)이니 좋아하는 암컷이 없음은 불가하다.”
乃以蟾長女艾妻之 于龍義
이에 <섬장蟾長>의 예쁜 딸을 <신룡>과 <조의>의 처로 하였다.
有其妻 而不易 人益義之
그 처가 있으나 바꾸지 않으니 사람들은 더욱 의롭다고 하였다.
火猿之始 后復臨朝 命定 骨門 四十七宅 以明六仙之系
516년 정월, 후가 다시 조회에 임하여
골문 47집안을 정하여 이름 있는 6선가(仙家)의 계보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福公之後 有 彭公宅 東公宅 摩帝宅 碩孝宅
<복공福公>의 후손으로는
<팽공彭公>, <동공東公>, <마제摩帝>, <석효碩孝> 집안이 있고
일신(선도) - 복공
역공(불휘) - 팽공
월복(홍제) - 마제(90?-159)
공공(선효) - 석효
阿盧之後 有 月盧宅 尙盧宅 虹公宅
<아노阿盧>의 후손으로는 <월노月盧>, <상노尙盧>, <홍공虹公> 집안이 있고
일광(알영) - 아노
과노(삼달라) - 월노
<삼달라>는 <일성>과 <지진내례>의 딸이다.
강노(상씨) - 상노
치공(석홍) - 홍공
奉母之後 有 發良宅 白馬宅 順貞宅 馬貞宅
<봉모奉母>의 후손으로는
<발량發良>, <백마白馬>, <순정順貞>, <마정馬貞>집안이 있고
일광(알영) - 봉모
봉모(산제) - 발량
백마(100?-160)
봉모(성제) - 순정
마정
<산제>는 <알영>의 딸이고 <성제>는 <월광>의 딸이다.
大盧之後 有 日知後 昌永宅 馬知那宅 天公宅 馬日宅 又有 許婁宅 羽烏宅 河婁宅
<대노大盧>의 후손으로 <일지日知>의 후손으로는
<창영昌永>, <마지나馬知那>, <천공天公>, <마일馬日> 집안이 있고
또 <허루許婁>, <우조羽烏>, <하루河婁> 집안이 있었다.
일광(알영) - 대노
대노(아리) - 일지(85?-129)
일지(야비) - 창영(110?-176)
일지(한나) - 마지나(110?-179)
사을나
일지(아세) - 천공
<아세>는 차웅(남해왕)과 운제의 딸이다.
일지(사을나) - 마일
대노(구을) - 허루(80-155)
대노(?) - 우조
대노(자산) - 하루
別封 山檍宅 辛公宅 馬公宅 汗兒宅 文支宅 吉公宅 齊居宅 玉君宅 明宣宅 屈公宅
楊山宅 大刀宅 白山宅 金山宅 于老宅 大樹(宅) 月瓠宅 盤山宅 仲解宅 車宿宅 好淵宅
長沙宅 牟梁宅 章伊宅 實相宅 比太宅 乃宿宅 阿珍宗宅 宝信宅
별도로 <산억山檍>, <신공辛公>, <마공馬公>, <한아汗兒>, <문지文支>, <길공吉公>,
<제거齊居>, <옥군玉君>, <명선明宣>, <굴공屈公>, <양산楊山>, <대도大刀>,
<백산白山>, <금산金山>, <우로于老>, <대수大樹>, <월호月瓠>, <반산盤山>,
<중해仲解>, <거숙車宿>, <호연好淵>, <장사長沙>, <모량牟梁>, <장이章伊>,
<실상實相>, <비태比太>, <내숙乃宿>, <아진종阿珍宗>, <보신宝信>
집안을 봉하였다.
방아(산도) - 산억(135?-193)
거신(알영) - 신공(60?-138)
파사(미례) - 마공(146-191)
윤공(흘고) - 길공(110-170?)
고허(돌산) - 제거(70?- )
유리(금당) - 옥군
훤명(장생) - 명선
심공(구을) - 굴공(66-141)
장도(알씨) - 대도(? -124)
내해(홍모) - 우로(277-331)
적공(무산) - 대수(70?139)
호공(월씨) - 월호(90?-149)
내해(옥모) - 중해(280- )
?(홍아) - 거숙(439- )
심(보반) - 호연(397-466)
눌지(보미) - 모량(434-503)
<모량>은 태후 <연제>의 어머니이다.
보해(보미) - 장이(425-490)
호물(보반) - 실상(395-461)
실성(아로) - 비태(416-481)
습보(홍아) - 내숙(436-501)
습보(보량) - 아진종(451-511)
미해(보미) - 보신(421-485)
其外諸宅 在眞骨者 稱宮 在仙骨者宗
그 외 여러 집안은 진골(眞骨)은 궁(宮)이라 칭하고 선골(仙骨)은 종(宗)이라 하였다.
於四十七宅 以統之 分置仙臣 于其宅 以供之 名曰宅相
47집안을 혈통으로 하여 그 집안에 선원의 신하를 나누어 두어 받들게 하니
이를 택상(宅相)이라 한다.
自是 宅相 憑籍 仙院 多 通宅母生子 以爲骨仙 歸合之 慶盛設火戱 以爲黑夜之樂
이로부터 많은 택상(宅相)들이 선원(仙院)을 빙자하여
택모(宅母)와 통정하여 아들을 낳아 골선(骨仙)이 되어 돌아와 하나가 되어
캄캄한 밤에 불꽃놀이로 성대히 경축하며 즐겼다.
時 富斗理 娘主 爲退花郡主 最善火戱
때에 <부두리富斗理> 낭주가 퇴화(退花) 군주(郡主)를 위하여
불꽃놀이에 최선을 다하였다.
宅相 龍周者 淺璜之私父也 善作火花 發五色烟 奇奇妙妙 幻變 百化狀 故呼爲龍火
택상(宅相) <용주龍周>는 <천황淺璜>의 사부(私父)인데
불꽃을 잘 만들어 오색의 연기를 내뿜으니 기기묘묘하고
환상적으로 변화하여 여러 색으로 바뀌니 용화(龍火 : 용불)라 불렀다.
后亦樂之 每以黑夜 取龍火設 于深苑中
후 역시 이를 캄캄한 밤마다 깊은 연못 가운데 용화(龍火)를 설치하여 즐겼다.
后在樓與郎 共臥 而賞之 雖風雨 而不滅
후는 누각에서 <위화>랑과 같이 누워 이를 감상하니
비록 바람이 불거나 비가와도 꺼지지 않았다.
后命各院 置火人 使龍周 敎其硝術 授 以奈麻
후가 명하여 각 원에 화인(火人)을 두어
용주(龍周)로 하여금 초술(硝術)을 가르치도록 하고 나마(奈麻)의 작위를 주었다.
龍周之父 宝周 爲烏士只 嬖臣 善 於房術 得爵 奈麻 人以爲泥 奈麻
<용주龍周>의 아버지 <보주宝周>는 <오사지烏士只>의 폐신(嬖臣)으로
방술(房術)을 잘하여 나마(奈麻)의 작위를 받았는데
진흙으로 사람을 만드는 나마(奈麻)이다.
龍周 以硝術 爲奈麻 人以爲火 奈麻
<용주龍周>는 초술(硝術)로 나마(奈麻)가 되니 불로 사람을 만드는 나마(奈麻)이다.
龍周笑曰 水火旣備 吾其興矣
<용주>가 웃으며 말하기를
“ 수화(水火)를 준비하여 사람을 만드니 우리가 흥(興)하는 것이다.”
富斗理 與龍周 相通 而生三子 皆聰明
<부두리>와 <용주>가 상통하여 세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가 총명하였다.
富龍善藥 與芬宗同年
<부룡富龍>은 약을 잘 지었는데 <분종芬宗>과 같은 나이이다.
甚善 后命 入別洞 爲藥手
매우 약을 잘 지어 후가 별동선원으로 들이어 약수(藥手)로 삼았다.
次斗龍 皃明美善歌
그 다음 <두룡斗龍>은 얼굴이 밝고 아름다우며 노래를 잘 하였다.
次理龍 亦端麗 善舞 亦能繪圖
그 다음 <이룡理龍> 역시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춤을 잘 추고 그림에 능하였다.
與執網 齋名 以此東西堂 亦推
<집망>과 더불어 명성을 나란히 하니 동서 학당에서 추천하였다.
龍周爲座首 龍周美䯾 而善言辭
<용주龍周>는 좌수(座首)가 되었는데 <용주>는 머리카락이 아름답고 말을 잘하였다.
※ 좌수(座首) ; 지방 향청(鄕廳)의 우두머리
四十七宅 皆稱 其賢 乃爲龍周 立火人院 于退火
是爲 退火仙院也
47집안 모두가 그 현명함을 말하여 퇴화(退火)에 화인원(火人院)을 세우니
이것이 퇴화선원(退火仙院)이다.
雨斗 妻 塞宣 與后 同年 而善釀酒雜 以山果 甘酸 淸香 時人稱 以酒神
<우두雨斗> 처 <새선塞宣>은 후와 나이가 같은데
산의 과실로 여러 가지 술을 잘 담갔는데 신 맛이 나고 향기가 맑아
당시 사람들이 주신(酒神)이라고 칭하였다.
酒母 皆就 而習 其手 不能 盡其妙
주모들이 모두 나아가 그 손재주를 배웠으나 그 신묘함을 다하지 못하였다.
雨斗乃 以旬日 獻酒 爲例 名曰山酒
이에 <우두雨斗>가 초열흘에 술을 바치는 것을 관례로 하니
이 술을 산주(山酒)라 하였다.
后好飮山酒醉 則裸舞高歌
후가 산주(山酒)를 좋아하여 취하여 옷을 벗고 춤을 추며 크게 노래하였다.
而降神 卞人 曲直 完如目見
신이 내려오니 변인(卞人)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처럼 완연하게 잘잘못을 가렸다.
※ 변인(卞人) : 옳고 그름을 법으로 가리는 사람.
仙臣 神之 願得 山酒 以通其神
선원의 신하들이 이를 신(神)으로 여겨
산주(山酒)를 얻어 그 신(神)과 통하기를 원하였다.
富龍亦 以黃根 作橘酒 甘凉 宜暑 郎好飮之
<부룡> 역시 황근(黃根)으로 귤주(橘酒)를 담그니 달고 시원하여 피서를 할 만하여
<위화>랑이 이를 즐겨 마셨다.
塞宣聞之 迎富龍 于其家 而習之 論酒意
合遂與之 相通 願得 爲宅相
<새선>이 이를 듣고 그 집에서 <부룡>을 맞이하여 배우며 술의 의미를 논하다
마침내 하나가 되어 상통하여 택상(宅相)이 될 것을 원하였다.
后以藥手 不恕 塞宣 自願 爲別洞酒母 而欲從
후는 <부룡>이 약수(藥手)라 용서하지 않으니
<새선>이 자원하여 별동선원의 주모(酒母)가 되어 따르고자 하였다.
富龍(塞宣?)曰 臣之愛富龍 如陛下之愛仙君
<새선>이 말하기를
“ 신이 <부룡>을 사랑함은 폐하께서 선군을 사랑함과 같습니다.”
富龍은 塞宣의 오기인 듯
后笑而許之 賜茅 于庄中 與富龍同居 以掌 酒食藥物
후가 웃으며 허락하고 장원 안에 모옥을 하사하여
<부룡>과 함께 동거하며 술과 음식과 약물을 관장토록 하였다.
歲餘 富龍 爲色所迷 不能專其術
한 해가 지나니 <부룡>은 색(色)이 혼미하게 되어 그 기술을 전담할 수 없었다.
后怒欲逐 塞宣 歸之
후가 노하여 <새신>을 쫓아내어 돌아가게 하였다.
郎止之曰 汝能無我 而可 則逐之
<위화>랑이 이를 막으며 말하기를
“ 당신이 내가 없어도 가하다면 쫓아 낼 수 있습니다.”
后乃召塞宣戒之曰 仙君憐汝之 恩不可忘也
이에 후가 <새신>을 불러 훈계하며 말하기를
“ 선군(仙君)이 너를 가엾게 여기니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塞宣乃作不忘酒獻之 以爲合歡之用 是爲 塞氏三合
이에 <새신>이 불망주(不忘酒)를 담아 바쳐 합환(合歡)에 사용하게 되니
이를 새씨삼주(塞氏三酒)라 하였다.
今人 以歡酒 爲不忘酒者 盖出 於此也
지금 사람들이 합환주로 불망주(不忘酒)를 사용하는 것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后以同卯之情 特加 富龍 爵奈麻 以榮之
후는 동묘지정(同卯之情)으로
특별히 <부룡>에게 나마의 작위를 내려 영화롭게 하였다.
<연제>와 <새선>이 동갑이고 <위화>와 <부룡>이 동갑으로 토끼띠이다.
塞宣生富龍女龍宣 妻其冢孫 汗斗 世爲骨門
<새선>이 <부룡>의 딸 <용선龍宣>을 낳아 그 몽손(冢孫) <한두汗斗>의 처로 하여
대대로 골문이 되었다.
龍周之言 果驗矣
<용주龍周>의 말이 과연 효험이 있었다.
宝周之先 出自 板公家奴 善事樹王
<보주宝周>의 선조는 <판공板公> 집안의 노비 출신으로 수왕을 잘 섬겼다.
지마(판구) - 판공(160-228)
板公宅 有陽精樹 當春吹脂 如陽精 味酸洌 懷春之女 爭取食之
<판공>의 집에 양정(陽精) 나무가 있어
봄에 마치 양정(陽精)같은 기름진 수액(樹液)이 나오는데
맛은 시고 담백하여 회춘하고자 하는 여인이 이를 취하여 먹으려고 다투었다.
多有娠者 以爲宜子 而封爲樹王
많은 임신한 부인이 아들을 낳기 위하여 수왕에게 봉지를 봉하여 달았다.
都中士女奉之者 萬計 其入總歸 於宝周 頗饒足
경도(京都) 안의 사녀(士女)로 수왕을 받드는 자가 만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들어와 모두 <보주宝周>에게 보내졌으나
수액(樹液)은 자못 넉넉하여 모자람이 없었다.
鳥生宮 山花宮 皆用其脂 而産士女
<조생鳥生>궁 <산화山花>궁도 모두 그 수액을 먹고 사녀(士女)를 출산하였다.
눌지(아로) - 오사지(410- )
자비(414-479 20대왕 재위 458-478)
조생(418-487)
?(운화) - 산화(380?-439)
<오사지>는 자비왕의 누나이고 <조생>은 자비왕의 여동생이다.
<산화>는 <운화>공주의 딸이다.
只取根 井水飮之 烏士只宮 以樹老 而脂衰憂之
다만 뿌리를 캐어 우물물로 마시게 하니
오사지(烏士只)궁은 오로지 나무가 늙어 수액(樹液)이 쇠할까 걱정하였다.
多甘公 按察 北溟 時 値盛暑
<다감多甘>공이 북명(北溟)을 조사하여 살필 때 더위가 기성을 부렸다.
?(탑운) - 다감(403-470)
路傍 有樹 其液 如乳 行旅取 而飮之曰 陰精水宜
於陽道公 亦下馬飮之 淸甘 可醫暑渴
길 가에 나무가 있어 그 수액(樹液)이 마치 젖과 같았는데
길을 떠도는 사람이 채취하여 마시면서 말하기를
“ 양정수(陰精水)임이 틀림없다.”고 하니
<양도陽道>공도 역시 말에서 내려 마시니
맑고 달콤하여 더위와 갈증을 달랠 만 하였다.
乃令地主 獻其子 于官 植 于陽精樹王之側
이에 지주에게 영을 내려 그 아들을 관청에 보내어
양정(陽精) 수왕(樹王)의 옆에 심었다.
於是 兩樹 皆 茂拜之者 益衆
이로써 두 나무 모두에게 절을 하는 자들이 더욱 많이 모여들었다.
城南富戶之女 當嫁 則皆 以子時 詣樹 獻衣 占 其吉匈
성남(城南)의 부잣집 딸이 시집을 가면
모두가 밤 열두 시에 수왕에게 와서 옷을 바치며 길흉을 점쳤다.
宝氏 世守 城南 畯官 廣置田園 奴婢 歲費 數百石
보씨(宝氏)가 대대로 성남(城南)을 지켰는데
농사를 담당하는 관리가 밭과 정원을 넓히고
노비를 두었으며 조세로 내는 세비가 수백 석이었다.
其奢侈 擬 於王公 有獨 女甚美 不肯嫁 于同流 慕 王子 山同 而禱于樹王
그 사치가 왕공(王公)에 견주었는데 홀로 한 딸이 매우 아름다워
같은 부류에 출가하는 것을 수긍하지 않고
왕자 <산동山同>을 사모하여 수왕에게 기도하였다.
눌지(산화) - 산동(418- )
叔周以?引媚 而通之 遂生 宝周 竟 以叔周 爲夫 其族 以叔周 賤品 不許
<숙주叔周>가 아첨하여 이끌어 통정하여 마침내 보주<宝周>를 낳으니
<숙주>를 남편으로 하였으나 그 가족은 <숙주>가 골품이 낮다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山同乃娶爲妾 而子宝周 以嗣
이에 <산동山同>의 첩이 되어 <보주宝周>를 적자로 하였다.
宝氏 出入 烏士只宮 與枕婢 烏龍 通之生子龍周
<보씨>가 <오사지>궁에 출입하여
침비 <오룡烏龍>과 통정하여 아들 <용주龍周>를 낳았다.
보주(오룡) - 용주
長於烏士只宮中 多甘公卒 烏士只 迎宝周 而報之 如夫婦 烏含公 不能爭之
<오사지> 궁에서 장성하자 <다감>공이 죽어 <오사지>는 <보주>를 맞이하여
부부와 같이 보답하니 <오함烏含>공은 다투지 못하였다.
도광(오사지) - 오함(428-499)
<다감>공이 죽은 해는 470년이고 이때 <오사지>는 61세이고 <오함>은 43세이다.
<보주>는 <오함>과 비슷한 나이거나 어린 40세 정도일 것이다.
事宝周如父 而慰悅母心 人稱其難
<보주>를 아버지로 섬겨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니
사람들이 그 곤란함을 말하였다.
烏士只薨 宝周 分其骨懷 而歸 城南
<오사지>가 죽으니 <보주>는 그 뼈를 나누어 안고 성남(城南)으로 돌아왔다.
時 山同已薨 宝氏 復歸 叔周 而其族 以宝周 貴 不敢復拒 遂以其財盡歸之
때에 <산동>이 이미 죽어 <보씨>는 다시 <숙주>에게 돌아가니
그 가족은 <보주>가 귀인이 되어서 다시는 감히 거절하지 못하여
마침내 그 재물이 모두 <보주>에게 돌아왔다.
武公 妻 斗皮 亦與宝周 通生女 願從 城南宅焉
<무공武公>의 처 <두피斗皮> 역시 <보주>와 통정하여 딸을 낳아
성남(城南) 집안을 따르기를 원하였다.
宝周乃 移武公宅 于其地
이에 <보주>는 <무공> 집안을 그 땅에 옮겼다.
沈沛之妻 宝同 乃上同之女 而宝周胞妹也 亦移其地
<심패沈沛>의 처 <보동宝同>은 <상동上同>의 딸로 <보주>의 포매(胞妹)인데
역시 그 땅에 옮겼다.
乃立三樹院 武氏 沛氏 宝氏 世主 其祀
이에 삼수원(三樹院)을 세워
무씨(武氏), 패씨(沛氏), 보씨(宝氏)를 세주(世主)로 하여 제사를 지냈다.
后幸 蘿畐祠 必宿 於三樹院
후가 라복사(蘿畐祠)에 행차하면 반드시 삼수원(三樹院)에서 잠을 잤다.
벌휴왕 9년(252년) 5월 기사
五月 大雨水 山崩十餘所 遣所非太子 恤民 行蘿畐祭 于南郊 履雨順
5월 큰 비가 내려 무너진 산이 10여 군데였다.
소비(所非){이음}태자를 보내어 백성을 구휼하고,
남교(南郊)에서 라복제(蘿畐祭)를 행하여 비가 순하여 지기를 빌었다.
大場 亦移 于院內 命 宝周 爲場師 宝同爲院主 以爲獎農之地
대장(大場)을 삼수원(三樹院) 내에 옮겨 열고
<보주>를 장사(場師)로 <보동>을 원주(院主)로 하여
농사짓는 땅을 넓이는 것을 장려하였다.
黃馬 亦與富龍 同辰(年?) 先二日 富龍待之 以兄 其先 葷公之裔也
<황마黃馬> 역시 <부룡富龍>과 나이가 같고 2일이 앞서
<부룡>이 형으로 대접하였는데 그 선조는 <훈공葷公>의 후예이다.
辰은 年의 오기인 듯?
절공(한나) - 훈공
<절공>은 <대노>의 아들이고 <한나(63?-132)>는 <알영>의 딸이다.
世守推火 蠶職善 於組絲織紋
대대로 추화(推火)를 지키며 잠직(蠶職 : 누에치고 비단 짜는 일)을 잘하여
실을 만들어 무늬를 넣은 직물을 생산하였다.
추화(推火)는 지금의 밀양이다.
其母 受 遊春郎 産之 不識其父
그 어머니가 봄놀이 낭군과 통정하여 낳았는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다.
及長 採童 使擇之 求門禮 于其母
마침내 장성하니 사신(使臣)이 <황마>를 선동으로 채택하여
그 어머니에게 가문의 예법을 구하였다.
母曰 業絲不興 願 以身 獻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 실을 만드는 일이 흥(興)하지 못하니 몸을 바치기를 바랍니다.”
使曰 汝 雖 無 無品 出自 葷公
사신(使臣)이 말하기를
“ 당신은 비록 가진 것이 없고 골품 또한 없다고 하나
훈공(葷公)으로부터 나왔습니다.”
不可 爲婢 待納禮 而再擧
노비가 되는 것은 불가하여 예의에 맞게 대접하니 다시 천거되었다.
未晩乃擇其次 屬院 惜之
머지않아 그 다음으로 <황마>를 발탁하여 삼수원에 소속시키니 이를 애석해하였다.
母曰 吾 貧而 無皃 不能 揚 汝之美 汝往京中 須 索汝父 爲援可也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 우리가 가난하고 안면이 없으니 너의 아름다움을 펼칠 수가 없다.
너는 경도(京都)에 가서 반드시 너의 아버지를 찾아 도움을 받음이 옳을 것이다.“
乃入京都 無所 依流離 東西 不得其父
이에 경도(京都)에 들어가 사방을 떠돌아 다녔으나 그 아버지를 찾지 못하였다.
卜者勸之曰 汝爲公主奴 則必得主寵 生子 則貴
점쟁이가 격려하며 말하기를
“ 당신이 공주의 노비가 되면 반드시 공주의 총애를 받아 귀하게 될 것입니다.”
乃越 丹門公主家 高墻 入其園中 飢臥 於樹王之下
이에 <단문丹門> 공주 집 높은 담장을 뛰어 넘어 그 정원으로 들어가
수왕(樹王) 아래에 배가 고파 누워있었다.
자비(장문) - 단문(475- )
公主見之問其來意 黃馬直言之
공주가 이를 보고 그 들어온 내막을 물으니 <황마黃馬>가 바른대로 말하였다.
公主 見其美心悅之 乃洗 而衣之 以爲身奴 推食 食之
공주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기뻐하며
몸을 씻기고 옷을 내어 주며 노비로 삼아 밥을 먹였다.
黃馬乃織五色組 以獻 于樹王
이에 <황마>는 오색의 직물을 짜서 수왕에게 바쳤다.
公主奇其才益愛之
공주가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겨 더욱 사랑하였다.
時后飾組花 于郎 公主納其組爲第一
때에 후가 <위화>랑에게 꽃을 엮어서 꾸미게 하니 공주가 엮어 보낸 것이 제일이었다.
后問其手 乃與黃馬謁之
후가 그 솜씨를 물어 <황마>와 더불어 알현하였다.
后美之 命屬仙院
후가 이를 아름답게 여겨 선원에 소속하도록 명하였다.
公主曰 卜者之言 不虛 我可生汝子 乃捀日 沐浴 而婚之
공주가 말하기를
“ 점쟁이의 말이 헛되지 않다면 나는 당신의 아들을 낳을 것이니
날을 받아 목욕을 하고 혼인을 할 것이다.“
相慕 凡五年 而始親情意密密
서로 사모한 지 무릇 5년이 되니 처음 친한 정이 더욱 친밀해졌다.
公主夫婿 康秋公 知其密 妬怒欲誅之
공주의 남편 <강추康秋>공이 그 친밀함을 알고 질투와 노여움으로 주살코자 하였다.
黃馬乃逃匿 仙庄 公主從 而爲夫婦
이에 <황마>가 도피하여 산장에 숨으니 공주가 따라와 부부가 되었다.
康秋 訴 于理方
<강추康秋>가 이방(理方)에 고소하였다.
后聞之 召康秋 丹門解之
후가 소문을 듣고 <강추>를 불러 <단문>과 해결하도록 하였다.
康秋乃 許 黃馬 私 其妻
이에 <강추>는 <황마>에게 사사로이 그 처를 허락하였다.
丹門乃 與黃馬 行吉 而洗子 迎其母 于推火 而養之 康秋不能爭
이에 <단문>과 <황마>가 혼례를 치르고 아들을 씻고
추화에서 그 어머니를 맞이하여 부양하니 <강추>는 다툴 수 없었다.
后命黃馬 掌仙院之 孫 以功超遷 至大舍
후가 <황마>에게 명하여 선원을 관장토록 하니
자손이 공을 세워 등급을 뛰어넘어 대사(大舍)에 이르렀다.
丹門設 東西 寢 事 以二夫無差等
<단문>은 동서(東西)에 침실을 두고 두 남편을 차등 없이 섬겼다.
黃馬曰 彼夫 而吾奴 何待若是
<황마>가 말하기를
“ 저 남편은 나를 노비로 여기는데 어찌 이와 같이 대우합니까?”
丹門(曰) 彼乃人定之夫 而君 乃仙定之夫 果誰輕乎
吾身在彼 而心常在君 不復産彼子也
<단문>이 말하기를
“ 저 사람은 사람이 정한 남편이고 낭군은 신선이 정한 남편인데
과연 누구를 가벼이 하겠습니까?
내 몸은 저 사람에게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낭군에게 있으니
다시는 저 사람의 자식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後果連産黃馬子女 而已 時 理方 有會食 大釜 可享 數百人
훗날 과연 <황마>의 자녀를 연이어 낳아
이방(理方)에서 큰 솥으로 밥을 지어 먹으며 잔치를 여니 모인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國有異變 釜自鳴 理方戒之
나라에 이변이 있으면 그 솥이 스스로 울어 이방(理方)에서 이를 경계하였다.
康秋 以左頭 卞上 每問 釜鳴
<강추>는 좌두(左頭)로 솥이 울 때 마다 변인(卞人)에게 알아보라고 하였다.
右頭曰 有何異變乎
우두(右頭)가 말하기를
“ 어찌하여 이변이 있다고 하는가?”
秋曰 黃馬夜夜 跨 吾妻 天后夜夜 抱 花郞 此非異變 而何乎大
<강추>가 말하기를
“ <황마>는 밤마다 내 처를 타넘고 천후는 밤마다 <위화>랑을 안으니
이것이 이변이 아니면 무엇을 큰일이라고 하겠는가?“
理方聞 而癡之 罷 其卞曰 不卞子午者焉 能卞人曲直乎
이방(理方)이 듣고 어리석게 여겨 그 변인(卞人)을 파면하며 말하기를
“ 변(卞 : 法)은 자오(子午 : 쥐와 말)라는 것이 아닌데
변인(卞人)이 옳고 그름을 알 수 있겠는가?
后聞 而笑曰 京都之釜 不鳴可聞
후가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 경도(京都)의 솥이 운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다.”
州郡之釜 命移 一善 理方
주군(州郡)의 솥을 일선(一善) 이방(理方)으로 옮기도록 명하였다.
일선(一善)은 지금의 경북 선산(善山)이다.
秋 戀妻 夜 騎 而歸 密入 其室 窺見 其妻 與黃馬 相戱之狀 而悲號 于外
<강추>는 처를 그리워하여 밤에 말을 타고 돌아와서
몰래 그 방에 들어가 그 처를 엿보니
<황마>와 더불어 서로 즐기고 있어 바깥에서 슬피 통곡하였다.
丹門曰 吾愛黃馬 而汝愛我 汝欲妬之 反 受殃 而已何不愛 黃馬 如愛我乎
<단문>이 말하기를
“ 나는 <황마>를 사랑하고 당신은 나를 사랑하여
당신이 이를 질투하여 반대하고 재앙을 받아 이미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황마>가 나를 사랑함과 같겠습니까?
秋乃服 而順之
이에 <강추>는 복종하며 순순히 따랐다.
丹門乃爲其夫 (請)移 屬畿內 后許之
이에 <단문>이 그 남편을 위하여 경도(京都) 내에 소속토록 옮기기를 청하니
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後來 帝文郞 作詩解之曰
훗날 <제문>랑이 시를 지어 이를 풀어 말하기를
子午通心 鼎不鳴 漫使理方 勞夜騎
黃馬 丹門 相得地 老陰少陽 轉上下
쥐와 말이 마음이 통하니 가마솥이 울지 않아
이방의 사신이 게을러 밤에 말을 타고 달리며 힘쓰네.
황마와 단문이 서로 땅을 얻어
늙은 암컷과 젊은 수컷이 위아래로 구르네.
<단문>은 475년생이고 <황마>는 487년생으로 같은 토끼띠로 12살 차이다.
時人 以老陰少陽 老陽少陰 爲貴故也
당시 사람들이 늙은 암컷과 젊은 수컷이 늙은 수컷과 젊은 암컷으로 되니
귀하게 된 까닭이라고 하였다.
陰陽調 而萬物生 老少和 而天地
음양의 조화로 만물이 생겨나고 노소가 화합하여 천지가 되었다.
久神仙之道在乎 玄牝
장구한 신선의 도가 있는가? 현빈(玄牝)이다.
※ 현빈(玄牝)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 도덕경 6장>
신(神)이 죽지 않는 계곡이 있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玄牝)의 문은 하늘과 땅의 뿌리이다.
그 이어짐이 실낱같아서 어찌 보면 있는 것 같지만 쓰임새는 없다.
玄牝之妙在乎 老少
현빈(玄牝)의 신묘함이 있는가? 노소(老少)이다.
陰陽不盡之理 仙道盛
음양이 다하지 않는 이치로 선도(仙道)가 번성하였다.
時 上下和融 老少 相 依男女 交好 盡情 而歡遊花 載路無 有曠夫
당시 위아래가 서로 어울려 사이좋게 화합하고
노소가 서로 남녀에 의존하여 서로 정을 다하여 좋아하니
길에는 수레에 태워 환영할 유화(遊花)는 없고
아내를 잃고 홀로 지내는 홀아비만 있었다.
故頌 時樂天 不知 帝力 東方之數 女多而 男少
그런 연유로 시절을 희망적으로 칭송하니 帝의 힘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東方)의 수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었다.
公卿大夫 皆 有侍妾 數人 士農工賈 亦有三四 妻者 役 于官者 不得 帶 妻營家者
防其 以公謀私也
공경대부는 모두 시중드는 첩이 여러 명이고 사농공상 역시 3,4명의 첩이 있으니
처를 부득이 띠를 두르게 하여 관청에 부역하게 하였으나 놓아주어
사사로이 공모하였다.
乃設遊花 交遞 送 迎一 依鍾鼓
이에 유화(遊花)를 설치하여 교체하여 보내니
한 사람을 맞이할 때마다 종과 북을 쳤다.
肥其飮食 侈其枕 席出 則花場入 則權地
음식을 배불리 먹고 그 베개를 치장하고 출석하여 화장(花場)에 들어가니
그 화장(花場)은 권지(權地)이다.
故皆 能効死 報國 無 有憾焉
그런 연유로 모두가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여 이바지 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고
한심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非天子之貴無 以尊神仙 故聖后配陰 以見少陽也
천자(天子)가 아니면 귀한 것이 없어
신선으로 존경받는 까닭에 성후(聖后)를 음(陰)에 배치하여 소양(少陽)으로 보았다.
※ 소양(少陽)과 소음(少陰)
불(☲)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활활 타올라 강(剛)하고 뜨거우나
속은 태울 수 있는 물체가 있어야 하므로 바깥은 양이며 속은 음이므로
음을 지닌 양으로 소양(少陽) 상화(相火)이다.
물(☵)은 겉으로 보이는 것은 부드러워 유(柔)하나 속은 굳세어 강(剛)하여
속은 양이며 바깥은 음이므로 양을 지닌 음으로 소음(少陰) 군화(君火)이다.
老陽少陰者巽也 兌也 老陰少陽者艮也 震也
노양소음(老陽少陰)은 손(巽 : 風 ☴)이고 태(兌 : 澤 ☴)이며
노음소양(老陰少陽)은 간(艮 : 山 ☶)이고 진(震 : 雷 ☳)이다.
山澤通氣之門 而震巽 東方之神也
노음소양(老陰少陽)인 산과 노양소음(老陽少陰)인 못은 기(氣)가 통하는 문이며
노음소양(老陰少陽)인 우레와 노양소음(老陽少陰)인 바람은 동방의 신(神)이다.
弩理世界相食而 循環 故男(女)交精 老少通氣也
노리(弩理)의 세계는 서로 상생상극하며 돌고 도는 까닭에
남녀가 교합하니 노소(老少)의 기(氣)가 통한다.
노리(弩理)의 세계라는 것은 八卦(乾坤坎離震巽艮兌)를 말한다.
팔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 8명으로 만물의 근원이다.
주역은 태극(太極)이 양의(兩儀 : 陰陽)를 낳고
양의(兩儀)가 사상(四象 ; 乾坤坎離)을 낳고
사상四象이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였다.
尹己之於牛衣 凡有 四十年之高 牛衣之母 甲夫公 濯足之婢也
<윤기>공주는 <우의> 보다 무릇 40살이 많았는데
<우의>의 어머니는 <갑부甲夫>공의 발을 씻는 노비이다.
눌지(파호) - 윤기(442- )
每以七月七日 獻衣 於明活山 樹王 凡五年如一日
노비는 칠월칠석날이면 명활산 수왕에게 옷을 바친 지가 무릇 5년을 하루같이 하였다.
不避風雨 雨則 衣牛皮 而行 自其先來 不知 爲幾年也
비바람을 피하지 않고 비가 오면 우피(牛皮)를 입고 나갔으며
그 선조가 왕래한 지 몇 년이 되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其歲嘉俳日 天雨 客少 飮食 滯餘
그 해 한가윗날 비가 내려 손님이 적어 음식이 그대로 남았다.
乍眠 于盤菜之間 忽 夢 樹王至 而起之曰
我與西岳大王 會遊 於鳩嶺 花舍 汝其戴食 而來
잠시 음식을 치우는 사이 졸았는데 홀연 꿈에 수왕(樹王)이 이르러 일으키며 말하기를
“ 내가 서악대왕(西岳大王)과 더불어 구령(鳩嶺)의 화사(花舍)에서 모여 노는데
네가 음식을 머리에 이고 왔다.“
婢乃如其言 有光明導之 至其處
이에 노비가 밝은 빛이 있어 인도하는 대로
그 말처럼 음식을 머리에 이고 그 곳에 이르렀다.
精舍 在山腹 有老翁居之 以花鳥 爲業 奇玩 可賞 婢乃告其言
산 중턱에 있는 정사(精舍)에 늙은 노인이 꽃과 새를 키우며 기묘한 꽃을 감상하며
새를 즐기며 놀고 있어 노비가 그 말을 고하였다.
翁喜曰 吾奉西岳大王 三十七年 今始驗矣
노인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 내가 서악대왕(西岳大王)을 30년을 모셨는데 지금에야 효험이 나타나는구나.”
乃掬石 淸水 淨其手口 而進食 拜神 天復 大雨 不能下山
이에 두 손으로 돌을 움켜쥐고 맑은 물로 손과 입을 깨끗이 하여
음식 앞에 나아가 신에게 절하니 하늘에서 다시 큰 비가 내려 산을 내려올 수 없었다.
遂與翁 對食 通宵
마침내 노인과 더불어 음식을 마주하고 밤을 새웠다.
翁曰 吾在山中 三十年 不見雌人 今對吾娘 不覺春回 願 以佛心 惠 我艾陰
노인이 말하기를
“ 내가 산중에 30년을 있으면서 여인을 본적이 없는데 지금 내가 낭자와 마주하여도
회춘을 깨닫지 못하니 불심으로 나에게 조그만 음을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婢曰 妾雖賤人 方年 十八 未知男子 一與之許 可以終身許 偕不可 無物相禮
노비가 말하기를
“ 첩이 비록 천인(賤人)이나 방년 18세로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한번 허락하면 종신토록 허락하여야 하니 서로 예물이 없으면 불가합니다.“
翁曰 吾有 三十七年 所奉 西岳神像 可以獻之
노인이 말하기를
“ 나에게 37년 동안을 모신 서악신상(西岳神像)이 있으니 이를 예물로 바치고자 한다.”
婢曰 妾有金剛大母 牛皮衣 可以答禮
노비가 말하기를
“ 첩에게는 금강대모의 우피(牛皮) 옷이 있으니 답례로 하겠습니다.”
於是 兩人情洽 行春 遂生牛衣
이로서 두 사람의 정(情)이 화합하여 행춘(行春)하여 마침내 <우의牛衣>를 낳았다.
能通 百鳥語 深察 千花神 花鳥之師 皆仰之 如神 年十五
백가지 새의 말에 능통하고 천 가지 꽃의 신(神)을 깊이 관찰하니
꽃과 새의 스승으로 모두들 신(神)으로 추앙하니 나이 15살이었다.
<우의>는 482년생이니 <우의>가 꽃과 새의 신으로 추앙받은 해는 496년이다.
甲夫公 薦于龍宮 冬花殿 與其母 入花舍 得炤明天后之寵 擢爲 花鳥師
雖老師 不及 其奧妙
<갑부>공이 용궁(龍宮) 동화전(冬花殿)에 천거하여
그 어머니와 함께 화사(花舍)에 들어와
소명천후(炤明天后)의 총애를 받아 화조사(花鳥師)로 발탁되니
비록 노사(老師)가 있어도 그 오묘함에 미치지 못하였다.
소명천후(炤明天后)는 <비처> 소지왕의 비이고 <지도로> 지증왕의 딸인
후황(466-499)을 말한다.
炤明崩 而花皆 孝白 帝 神之 加爵舍知
소명천후가 붕(崩)하니 꽃들이 모두 하얗게 피어
帝가 이를 신묘하게 여겨 사지(舍知)의 작위를 더하였다.
車宿公 以理方 退 居 芼兮 作大花園 集花師 營之
<거숙車宿>공이 이방에서 물러나 모혜(芼兮)에 살며
큰 화원(花園)를 지어 화사(花師)를 모집하여 이를 운영하였다.
모혜(芼兮)는 지금 경북 군위이다.
皆言 牛衣之神 公妻
모두들 말이 <우의>의 신(神)은 <거숙>공의 처 <윤기>라고 하였다.
尹己乃請于帝 而迎 歸雨中 遂 通(於)帷 車中 至其家 奉之 如夫
이에 <윤기>가 帝에게 청하여 비가 오는 중에 <우의>를 맞이하여 돌아오다가
마침내 수레 안 휘장에서 통정하고 그 집에 이르러 지아비처럼 받들었다.
車宿公 素淡 於色 許 與之好爾來 二十年 如一日
<거숙>공은 색에 소박하고 담백하여 허락하고
20년을 하루같이 그녀{윤기}만을 좋아하며 지내왔다.
甲夫公之(妻)車己 乃尹己之女也
<갑부甲夫>공의 처 <거기車己>는 <윤기尹己>의 딸이다.
恥其母與奴通 不見其母 車己之女甲(己)反之 右于尹己
그 어머니가 노비와 통정한 것을 수치로 여겨 그 어머니를 보지 않았으나
<거기>의 딸 <갑기甲己>는 반대로 <윤기>를 도왔다.
눌지(파호) - 윤기(거숙) - 거기(갑부) - 갑기(우의) - 우갑
尹己以已年老 而不能生 牛衣子憂之
<윤기>가 늙어서 <우의>의 자식을 낳을 수 없음을 걱정하였다.
甲己曰 我則汝身也 可代 而生之
<갑기>가 말하기를
“ 내 몸은 바로 할머니의 몸입니다. 내가 대신하여 낳을 수 있습니다.”
尹己乃以 昏夜 代甲己 牛衣不知 而通之 乃甲己也
이에 <윤기>가 캄캄한 밤에 <갑기>로 대신하게 하니
<우의>가 알지 못하고 통정하니 <갑기>였다.
遂生牛甲 車己益怨 其母 而后方廣仙院 力花鳥
마침내 <우갑牛甲>을 낳아 <거기>가 더욱 그 어머니를 원망하니
후는 오로지 선원에서 꽃과 새를 널리 기르는데 힘쓰도록 하였다.
牛衣 以功超遷 至奈麻 致財數萬
<우의>는 공을 뛰어넘어 나마(奈麻)가 되어 많은 재물을 모았다.
后命 甲夫妻其女 行吉鮑祠 將吉 車己不肯之
후가 <갑부>의 처 <거기>와 <우의>가 포사에서 길례를 치르라고 명하니
<거기>는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甲夫曰 國家用人才 汝有何才 陋吾婿乎
<갑부>가 말하기를
“ 나라에서 사람의 재주를 쓰고자 하는데
당신은 무슨 재주가 있어 나를 속 좁은 사위로 만드는가?”
車己 不得已 吉之 知 牛之好 而大悅之 反有甚 於尹己事
<거기>는 부득이 길례를 치르고 <우의>를 좋아하여 크게 기뻐하고는
<윤기>의 일에 심히 반대함이 있었음을 알았다.
牛衣母 如其母 甲夫 尹生 皆以牛衣之業 廣其田園 以爲國甲富
<우의>의 어머니를 그 어머니처럼 모시고
<갑부>와 <윤생>이 모두 <우의>의 직업으로 그 전원을 넓혀 나라의 갑부가 되었다.
거숙(윤기) - 거기(461- )
윤생(464-540)
갑부는 거기의 남편이고 윤생은 거기의 동생이다.
盖西岳大王 金剛大母 守護之力也
이 어찌 서악대왕과 금강대모의 보살핌이 아니겠는가!
後人 奉 牛衣之母曰牛皮奾子 父曰西岳老人
훗날 사람들이 <우의>의 어머니는 우피선자(牛皮奾子)이고
아버지는 서악노인이(西岳老人)이라고 말하며 받들었다.
花人稱 鳩眞人妹曰翁衣
화인(花人)들은 구진인(鳩眞人)의 여동생을 옹의(翁衣)라고 칭하였다.
翁衣 嫁 藥頭兵 其生子 兵林 從守知 如梁通 鍼灸 而歸
<옹의翁衣>가 <약두병藥頭兵>에게 출가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 <병림兵林>은 <수지守知>를 따라 양(梁)나라에 들어가
침과 뜸에 통달하여 돌아왔다.
이흔(준명) - 수지(482- )
唐奴之家世 以算數 傳業 其先扶余人也
<당노唐奴>의 집안은 산수(算數)로 직업을 전하여 왔는데
그 선조는 부여(扶余 : 백제) 사람이다.
以調府 吏 畜私財珍玩
조부(調府) 관리로 사사로이 재물과 골동품을 모았다.
家于東市之 衝令奴 廢擧
집은 동시(東市)에 있었는데 노비에게 영을 내려
물가가 싸면 사들이고 비싸면 내다 팔았다.
其妻 羊秀之姊箕也 豊 而有色 能巧笑 伶媚 率其美族三四人
그 처는 <양수羊秀>의 동생으로 <기箕>인데
풍만하고 색이 있어 기교로 미소를 잘 지으며 영리하고 아첨을 잘하며
아름다운 식구 3,4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開壚 於樓上 仙骨僚吏 往來飮之
누각 위에 술집을 여니 선골(仙骨)의 벼슬아치들이 오고 가며 술을 마셨다.
車馬不絶 人陋其業 則奴曰
蓮生泥中 穀生糞中 若能陶朱 吾家不知其非也
수레와 마차가 끊이질 않고 그 업으로 사람들이 북적되니 노비가 말하기를
“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은 똥 속에서 나오는 곡식과 같아
만약 능히 질그릇이 붉게 되어도 우리 집은 그 잘못을 알지 못한다.“
箕乃縱情肆春所 與之通者百數
이에 <기箕>는 춘정(春情)에 매여 방자하여 더불어 통정한 자가 백 명이나 되었다.
奴以執網爲兄鶴 而箕與網通 仙臣多非之 而奴晏然
노비가 <집망>을 학당의 형으로 여기니 <기箕>가 <집망>과 통정하였는데
많은 선원의 신하들이 이를 비난하였으나 노비는 평온하였다.
羅德之母 羅仙 以奴兄通 爲臣 而密通之
<라덕羅德>의 어머니 <라선羅仙>은 노비의 형과 통정하여 신하가 되어 밀통하였다.
奴亦出入仙家 與羅德相通 爲其私夫 生一女 德盡以其財委之
노비 역시 선가(仙家)에 출입하여 <라덕羅德>과 서로 통정하여
그 사부(私夫)가 되어 딸 하나를 낳았는데 <라덕>은 그 재물을 모두 딸에게 맡겼다.
奴殖其利十倍之 德女羅別 亦 與奴通 生子女
노비가 그 이익을 10배로 늘리니 <라덕>의 딸 <라별羅別> 역시
노비와 통정하여 자녀를 낳았다.
干德 取其女 爲妾愛之
<간덕干德>이 그녀를 취하여 첩으로 하여 사랑하였다.
尋逐其妻 而妻之 事奴 如父
얼마 안 되어 그 처를 내쫓고 처로 하여 노비를 아버지로 섬겼다.
人以奴 擬 於伐知公
사람들은 노비를 <벌지伐知>공으로 의심하였다.
호원(황아) - 벌지(437-504)
벌지(라덕) - 라별(476- )
노비가 <벌지>의 아내인 <라덕>과 통정하고 <벌지>와 <라덕>의 딸 <라별>과 통정하여
자녀를 낳으니 사람들이 노비를 <벌지>공으로 의심하였다는 것이다.
翟芝者 理方 遊花 瓊芝之子也
<적지翟芝>는 이방(理方)인데 유화(遊花) <경지瓊芝>의 아들이다.
瓊母 亦理花 自云 呑瓊芝 而生 而名之也
<경지瓊芝>의 어머니 역시 이화(理花)인데
스스로 말하기를 경지(瓊芝)를 삼켜서 낳아 이름을 지었다고 하였다.
※ 경지(瓊芝) : 매화 꽃 10여 송이를 넣고 얼린 후 생강과 귤을 넣어 절임을 만든 것.
桃聰 而玉膚 令及諸郎 寵之 無有暇日 公兄議曰 遊花本非堂君之物也
高花出雲 吾等 何以爲快乎
복숭아처럼 총명하고 옥같이 피부가 고와 여러 낭도들로부터 총애를 받으니
한가한 날이거나 한가하지 않은 날이거나 형들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 유화는 본래 집에 있는 군자의 물건이 아니다.
높이 있는 꽃은 구름을 나오게 하는 것과 같으니 우리들이 어떻게 즐기겠는가?“
大舍 翟 喜素 與芝 好 乃言於衆曰 公等 若以芝妻我 我可誘 而出之衆
대사(大舍) <적지>가 기꺼이 <경지>와 더불어 좋아하며 무리들에게 하는 말이
만약 <경지>를 나의 처로 하면 내가 유혹하여 무리들에게 나오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乃許 翟 乃從容謂芝曰 汝若甘於堂君 則色衰 而棄 從我爲妻 則 百年偕老
이에 허락하니 <적지>가 <경지>를 종용하며 일러 말하기를
“ 당신이 만약 집에 있는 군자에게 달콤한 즉 색이 쇠하여 버리게 되니
나를 따라 처가 되어 백년해로를 합시다.“
芝乃稱疾 自髠歸 于翟 而生者也
이에 <경지>가 질병을 칭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적지>에게 돌아와 살았다.
聰明精敏 分人 秋毫 決獄 如神
<적지>는 총명하고 민첩하여 사람을 분별하여 신과 같이 추호도 틀림없이 판결하였다.
叔欣 主理 方年 才十六 以綠衣 通引 左右 每有 古事可疑 則對之 如流
<숙흔叔欣>은 이방을 주관하였는데 방년 16살에 녹의를 입고 좌우를 인솔하여
고사(古事)에 의심스러움이 있을 때 마다 물 흐르듯이 이를 대답하였다.
등흔(보미) - 숙흔(434?-502)
雖老吏 不敢當 乃擢 爲沮知 城南
비록 늙은 관리도 감히 당해내지 못하니 발탁하여 저지(沮知)가 되었다.
저지(沮知)는 관등의 최말단인 17관등이다.
城南 有出 戍北邊者 五年 未歸 其母訴之
성남에서 북변을 지키려고 나간 자가 5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니
그 어머니가 소(訴)를 올렸다.
兵官 失其牌簿 遷延 不決
병관에서 그 패부(牌簿)를 잃어버려 날짜를 오래 끌며 해결하지 못하였다.
翟芝乃 授其牌 位所在者 訊之
이에 <적지>가 그 패를 받아 소재자 위치를 물었다.
盖 兵吏 有受賂 于人 而代其名也
이 어찌 병관의 관리가 뇌물을 받아 타인에게 그 이름을 대신한 것이 아니겠는가!
兵官大驚搜之 得數十人 皆歸
병관은 크게 놀라 수색하여 수십 명을 찾아내어 모두 돌려보냈다.
頌翟芝之德 出有爲社 於是 名 大振
<적지>의 덕을 기림은 사직(社稷)를 위하여 남아있으니 이로서 이름을 크게 떨쳤다.
其吏 以賂 畜妾 數人 于都中要處 殖其貨掘地 爲庫 而藏其珍宝 自居蕭然 若儉
그 관리는 수뢰한 돈으로 경도(京都)의 요처에 수 명의 첩을 두고
땅을 파서 창고에 그 돈과 진기한 보물을 감추어 두고는
자신은 외롭고 쓸쓸히 오히려 검소하게 지내고 있었다.
芝踵之 而得其情 發之
<적지>가 뒷조사를 하여 그 정인(情人)을 찾아내어 이를 밝혀내었다.
兵官欲 以其財分 賞之 不取 而歸
병관은 그 재물을 나누어 상으로 주고자 하여 취하지 않고 돌아왔다.
叔欣乃以私田與之
이에 <숙흔>이 사전(私田)으로 주었다.
叔欣妻 洪壽 有疾 侍于枕席 奉供 如婢
<숙흔>의 처 <홍수洪壽>는 <숙흔>이 아플 때
잠자리 시중을 노비처럼 봉공(奉供)하였다.
비대(오수) - 홍수(465- )
<숙흔>과 <홍수>는 31살 차이다.
且善 於烹飪 下厨手理 厨人不及
또한 삶고 지지는 것을 잘 하였는데 손수 요리를 만드니
수라간의 사람들은 미치지 못하였다.
后嘗至欣家 嘗而甘之 召入宮中 看厨
후가 일찍이 <숙흔>의 집에 이르러 맛을 보니 맛이 좋아
궁중으로 불러 들여 수라를 살피도록 하였다.
叔欣 有疾 與洪壽 入溫井 思 其食 后爲之 送 于井 與洪壽 起臥 於叔欣枕中 月餘
<숙흔>은 아파서 <홍수>와 더불어 온정(溫井)에 들어가
그 음식을 후를 위하여 온정(溫井)에서 보내기로 생각하며
<홍수>와 더불어 <숙흔>의 침실에서 일어나고 누운 지 한 달이 지났다.
洪壽 素慕 其色 逼 而通之
<홍수>는 그 색(色)이 다급하여 통정코자 하였다.
未幾 欣卒 以智登 爲繼夫 而托福 入桃 累召幸之
얼마 지나지 않아 <숙흔>이 죽어서
<지등智登>을 계부로 하여 남도에 들어가 신세를 지니
누차 <홍수>를 불러 행(幸)하였다.
등흔(보미) - 숙흔(434?-502)
등흔(심황) - 지등(445-507)
숙흔(홍수) - 이등(483- )
<숙흔>이 죽은 해는 502년이다.
이때 <숙흔> 69세, <홍수> 38세, <지등> 58세, <이등> 20세이다.
其子伊登怒曰 母若好艾 我可當之好成 叔可當之 何濡烹奴 以汚我門
그 아들 <이등伊登>이 노하여 말하기를
“ 어머니가 만일 애숭이를 좋아한다면 내가 당연히 좋아할 것인데
어찌 숙부가 적시어 노비를 삶아 우리 가문을 더럽힙니까?“
洪壽曰 汝父之遺命也 汝勿妬之
홍수가 말하기를
“ 너의 아버지의 유언이니 이를 질투하지 말라”
盖恥而矯之
이 어찌 부끄러우니 바로잡을 일이 아니겠는가!
而叔欣常 愛芝 抱臥枕中 故伊登不能辨其詐 不爭之 而心卑 其母 不同宿 而慰之
<숙흔>이 항상 <적지>를 사랑하여 침실에서 안고 누워 있는 까닭에
<이등>은 그 사교(詐交)를 분별할 수 없어 다투지 못하고 마음을 낮추고는
그 어머니가 같이 자지 않으니 이를 위로하였다.
翟芝曰 以臣之 故背公子 臣 甚不安
<적지>가 말하기를
“ 신하로서 공자(公子)를 배반하니 신은 심히 불안합니다.”
공자(公子)는 <이등伊登>을 말한다.
洪壽曰 以子 爲夫 夷風也 不若 以汝爲夫
<홍수>가 말하기를
“ 아들을 남편으로 삼는 것은 이(夷)의 풍속이니 너를 남편으로 하느니만 못하다.“
遂得后詔 以爲私夫
마침내 후의 조칙을 받아 사부(私夫)가 되었다.
爲芝 設西寢 公然行 夫婦事 使家臣 事芝 如智伊 曰第三君 遂生芝子 芝登
<적지>를 위하여 서쪽에 침실을 마련하여 부부로서 공공연하게 행동하고
가신들에게 <적지>를 <지등>과 <이등>처럼 섬기도록 하고 세 번째 군(君)이라 하고
마침내 <적지>의 아들 <지등芝登>을 낳았다.
적지(홍수) - 지등
<지등芝登>은 530년에 이방(理方)의 13관등인 사지(舍知)가 되었다.
未幾 智登卒 謂伊登曰 翟芝 汝母之所好 已生其子 吾死可許之
얼마 지나지 않아 <지등>이 죽으니 <이등>에게 일러 말하기를
“ <적지>는 너의 어머니가 좋아하여 이미 그의 아들을 낳았으니
내가 죽더라도 이를 허락함이 옳을 것이다.“
伊登乃許行吉于鮑祠 后爲之加爵 賜衣
이에 <이등>이 허락하여 포사에서 길례를 행하고
후가 작위를 더하고 옷을 하사하였다.
翟芝 以雨神 爲鶴弟 起臥共之
<적지>는 <우신雨神>을 학당의 동생으로 삼아 일어나고 눕는 것을 같이 하였다.
智登卒 而芝入 洪壽 正寢 爲君 每引雨神 共通 于壽
<지등>이 죽고 <적지>가 들어오니 <홍수>는 군을 위하여
매번 <우신雨神>을 이끌어 <우수于壽>와 같이 통정하였다.
壽亦樂 而不拒 家人指以 四君
<우수> 역시 즐기며 거절하지 않으니 집안사람들이 4군(四君)이라고 가리켰다.
4군(四君)은 <적지翟芝> <우신雨神> <우수于壽> <이등伊登>을 말한다.
后與郎 嘗 會骨女 私夫 于剡院 賜食
후와 <위화>랑이 일찍이 골녀 들의 사부(私夫)를 염원에 모이게 하여 음식을 내렸다.
洪壽使二人 扶其腋 而上之拜 于后 曰
臣肥胖鴻大 芝不能 獨當 故兼養其弟 願陛下許 臣小夫
<홍수>는 두 사부(私夫)로 하여금 옆구리를 끼고 부축하게 하여
후에게 절을 올리며 말하기를
“ 신은 뚱뚱하고 체구가 커서 <적지> 혼자로는 감당하지 못하는 까닭에
그 동생을 같이 부양하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신의 소부(小夫)로 허락하여주시기를 청하옵니다.“
后笑 而引雨神 撫其背曰 此兒 倩嬌 可愛 不可無爵位
후가 웃으며 <우신>을 끌어당겨 그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 이 아이는 예쁘고 아름다우니 가히 사랑할 만하고 작위가 없음은 불가하다.”
乃加爵 以榮之
이에 작위를 더하여 영화스럽게 하였다.
雨神者 兵官雨得之子也 雨得之母 以兵官遊花 奉金剛梪王
<우신>은 병관 <우득雨得>의 아들인데
<우득>의 어머니는 병관의 유화(遊花)로 금강두왕(金剛梪王)을 모셨다.
年十五 冒雨夜 詣樹下 發願曰 願得兵官爲夫
15살에 밤비를 무릅쓰고 두왕(梪王) 아래에 이르러 소원을 빌며
병관을 남편이 되게 해 달라고 하였다.
忽有神人從樹 而降 歡之曰 必生貴子
갑자기 신인(神人)이 두왕(梪王)을 따라 내려와 기뻐하며 말하기를
“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果生雨得
과연 <우득雨得>을 낳았다.
兵吏 以其未筓 無 有 近者 而産 故爭訊 其父 而窘之 兵官天德憐 而庇之曰
吾所犯也 伊宗亦曰 吾所犯也
병관 관리는 비녀를 꽂아 준 사람이 없는데 요 얼마 동안 산고가 있어 낳은 까닭에
그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몰라 다투니
병관 <천덕天德>이 이를 가엾이 여겨 이를 비호하며 말하기를
“ 내가 바로 범인이다.”라고 하니
<이종伊宗> 역시 말하기를
“ 내가 바로 범인이다”라고 하였다.
방석(異氏) - 이종(454-524)
吏等 不敢犯之 天德 伊宗 專其女
관리 등이 범인을 가리지 못하여 <천덕>과 <이종> 두 사람이 그녀를 차지하게 하였다.
得旣長 以二公 爲父 從事之
<우득>은 이미 장성하여 <천덕>과 <이종>을 아버지로 섬기며 따랐다.
天德 佐理方 得從 爲吏 翟喜
<천덕>은 좌이방(佐理方)인데 <우득>이 따라서 관리가 되니 <적지>가 기뻐하였다.
妹朶 以理方 遊花 相通情 好 欲爲夫婦
적지는 여동생 <타朶>가 이방 유화로 서로 통정하여 좋아하니 부부가 되기를 바랐다.
得母乃偕至樹王 禱之
이에 <우득>의 어머니와 <타朶>가 함께 수왕에 이르러 기도하였다.
夢見 樹神 入 朶腹而 生 乃名雨神
꿈에 수왕 신(神)이 타(朶)의 배에 들어와 임신하여 낳으니
이름을 <우신雨神>이라 하였다.
時理郎雨斗 亦 通于朶 故欲 爲己子 雨得不敢抗之
때에 이방의 낭도 <우두雨斗> 역시 <타朶>와 통정한 까닭에
자기의 아들로 하고자 하니 <우득>은 이를 감히 막지 못하였다.
<우두雨斗>는 <새선塞宣>의 남편이다.
朶以月日辨之 雨斗 怒 欲笞 雨得
<타>가 날짜로서 분별하니 <우두>가 노하여 <우득>에게 태형을 가하려고 하였다.
天德乃使得 從 伊宗 於西路 以功授兵官
이에 <천덕>은 <우득>으로 하여금 <이종>을 따라 서로(西路)에 나가게 하여
공을 세워 병관이 되게 하였다.
朶不得(已)爲斗妾 斗妻塞宣妬之 幽於苑室
<타>가 부득이 <우두>의 첩이 되니
<우두>의 처 <새선>이 이를 질투하여 화원의 방에 가두었다.
而使其子 塞斗監之 塞斗通之 而放
그 자식으로 하여금 <새선>과 <우두>를 감시케 하니
<새선>과 <우두>는 통정하여 방면하였다.
乃與雨神 奔歸 爲得妻 凡七年 而復合
이에 <우신>과 더불어 바삐 돌아와 <우득>의 처가 되니
무릇 7년이 지나 다시 합하였다.
雨神 善蹴毬 掠馬 疾如飛燕 常時 雍容 嬌娟 有若處女
<우신>은 축구를 잘하고 말을 약탈하여 나는 제비처럼 달리고
언제나 몸가짐은 얌전하고 조용하였고 마치 처녀와 같이 아름답고 예뻤다.
雨斗 欲復得之 訴于理方
<우두>가 다시 <우신>을 데려 가려고 이방에 고소하였다.
朶具言 雨斗夫妻 橫暴
<타>가 소상하게 말하니 <우두> 부부는 횡포를 부렸다.
后責斗 不能理內 賜朶得 衣馬 而獎之
후가 <우두>를 책망하여 이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타>와 <우득>에게 옷과 말을 내려 이를 장려하였다.
柯枝 沙伐王後也
<가지柯枝>는 사벌왕(沙伐王)의 후손이다.
사벌(沙伐)은 지금의 경북 상주이다.
善歌 而美 羊秀採之 爲鶴弟 妻 以其妹
노래를 잘하고 아름다워 <양수羊秀>가 채용하여 학당의 동생으로 하고
그 여동생을 처로 하였다.
黿兒 柯枝 不喜色 色踈放 自適
<원아黿兒>와 <가지柯枝>는 색을 좋아하지 않고
색에 얽매이지 않으며 유유자적하였다.
黿兒 乃與角治 雨神 息仁等 相通 柯枝 呼雨神 以兄
<원아黿兒>가 <각치角治>, <우신雨神>, <식인息仁> 등과 더불어 서로 통하니
<가지柯枝>는 <우신雨神 >을 형으로 불렀다.
<식인息仁>이 492년생이니 <원아>, <각치>, <우신>은 <식인>과 나이가 비슷하고
<가지柯枝>는 495년생 정도 될 것이다.
情最密 使其妻 歡之 而歌 于外
정(情)이 무르익어 그 처로 하여금 <우신>과 합환케 하고 밖에서 노래를 불렀다.
歌終 而往往 淚下 問其所以悲 則曰
常 則滯 無常 則寂 是以悲也
노래가 끝나면 왕왕 눈물을 흘리니 슬픔이란 것을 물은 즉
“ 인생의 보람이란 것은 막혀있어
인생이 보람 없고 헛되어 쓸쓸하니 이것이 슬픔이다”라고 하였다.
人鮮能解 其義 而芬宗公 嘉其言 常召 于邸園 共與之 談笑 移昝(咎?) 而不懈
사람들은 그 말의 뜻을 능히 이해하였고 <분종芬宗>공은 그 말을 좋아하여
언제나 집 정원에 불러 같이 담소하니 허물이 크나 나태하지는 않았다.
비처(후황) - 분종(488- )
自比 以偶然 一柯枝花葉 自春風
스스로를 봄바람에 우연히 태어난 한 줄기의 꽃잎에 비유하였다.
其爲歌 淸遠 令人 消却塵 念后 或惘然自失 而歎曰
昔吉公 以笛 治民 今柯枝 以歌 理朕 朕不覺自愧于心也
그 노래로 정(淸)을 멀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后를 생각하여 티끌을 태우라고 하고
혹은 망연자실하여 한탄하기를
“ 옛적에 <길공吉公>이 피리로 백성을 다스렸는데
지금 <가지柯枝>가 노래로 后를 깨닫게 하려고 하니
后는 깨닫지 못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구나.“라고 하였다.
윤공(흘고) - 길공(110-170?)
沙嵩公亦愛柯枝 使妃厚蒂公主 裁衣 而與之指 園中 琦花 而命爲歌 柯枝應口 而歌曰
見花 而思花 花花有花中花
<사숭沙嵩>공 역시 <가지柯枝>를 사랑하여
<사숭>공의 妃 <후체厚蒂>공주로 하여금 옷을 만들어 주고는
꽃밭의 아름다운 꽃을 가리키며 노래를 부르도록 하니
<가지>가 응답하여 노래하기를
“ 꽃을 보니 꽃이 생각나네.
꽃은 꽃인데 꽃 속에 꽃이 있구나.“
비처(사세) - 사숭(482-520)
비처(연제) - 후체(484- )
公大贊之曰 吾花中花也
<사숭>공이 칭찬하며 말하기를
“ 우리 꽃 중의 꽃이다.”
時年才十六
때에 나이 겨우 16살이었다.
510년경의 일이다.
沙園有紫鹿 后使人取其種 而不肯交
<사숭>의 정원에 자주색 사슴이 있어 후가 사람을 시켜
그 종자를 취하도록 하였으나 교배가 되지 않았다.
枝曰 汝何 不自交 而種乎
<가지>가 말하기를
“ 어찌 당신이 스스로 교배하지 않는데 종자를 얻을 수 있겠는가?
人曰 臣雖賤人也 豈肯與鹿交乎
그 사람이 말하기를
“ 신이 비록 천인지만 어찌 사슴과 교배를 하겠습니까?“
枝笑曰 汝尙不交 况紫牝乎 固有 不同 非有賤也
<가지>가 웃으며 말하기를
“ 너는 아직도 여전히 교배를 해 보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자주색 사슴은 교배를 해 보았겠는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이 같지 않으니 천함은 없는 것이다.“
蝴蝶樓 舞婢 玲兒 常 與枝 演技而 慕技 心病 告其旨 于沙嵩公
호접루 무비(舞婢) <령아玲兒>는 항상 <가지>와 더불어 연기를 하니
<가지>를 사모하여 마음에 병이 생겨 이를 <사숭>공에게 고하였다.
公乃使枝醉 而欲與之偕 枝曰 殿君亦 以臣爲色虜乎
이에 <사숭>공이 <가지>를 술이 취하게 하여 함께 행동하려고 하니
<가지>가 말하기를
“ 전군(殿君) 역시 신(臣)을 색(色)의 포로가 되도록 하십니까?”
公曰 吾欲 保汝種 而已
<사숭>공이 말하기를
“ 나는 너의 씨앗을 보존하려고 한다.”
枝曰 臣非紫鹿 何種之用乎
<가지>가 말하기를
“ 신은 자주색 사슴이 아닌데 무슨 씨앗을 사용하려 하십니까?”
厚蒂曰 鹿尙可種 况吾仙弟乎
<후체>가 말하기를
“ 사슴은 아직도 여전히 종자로 가한데 하물며 우리 선원의 동생도 가하지 않겠는가?”
乃强引其手 而與玲接之
이에 강제로 그 손을 끌어당겨 <령아>와 사귀게 하였다.
果生一女 名曰鹿氏
과연 딸을 낳으니 이름을 <록씨鹿氏>라 하였다.
其妻 黿兒多子 而未知爲誰子
그 처 <령아玲兒>와 <원아黿兒>는 많은 아들이 있었는데
누구의 아들인지 알지 못하였다.
人以爲 十羊 不如一鹿
사람들은 열 마리의 양이 한 마리의 사슴만 못하다고 하였다.
角治之父 善角力 名 於京都
<각치角治>의 아버지는 씨름을 잘하여 경도(京都)에 이름을 알렸다.
眉闌公主 右其力歲 賜衣食
<미란眉闌>공주는 그 씨름의 세비를 도와주고 옷과 음식을 내렸다.
公主婢慕 而通之 生治
공주가 노비를 사모하여 통정하여 <각치角治>를 낳았다.
자비(미량) - 미란(457- )
公主乃以其婢妻之 治 亦繼其父 而率其衆
이에 공주가 그 노비의 처가 되니 <각치> 역시 그 아버지를 이어 대중을 통솔하였다.
年十七 能挽弩運常
나이 17살인데 능히 활을 당기고 기(氣)를 운용하였다.
毗羅公薨 公主 托福 遊 捺己神山
<비라毗羅>공이 죽으니 공주는 날기 신산을 유람하며 신세를 졌다.
자비(파호) - 비라(451-505)
각치는 489년생이다.
治從之 至難處 負而行之
<각치>는 공주를 따르며 난처한 곳에 이르면 업고 다녔다.
公主鴻胖 人不能堪 而治易之 其行常 先人莫能
공주는 몸집이 크고 살이 쪄서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하니
평상시 선인(先人)이 하지 못한 것을 <각치>가 바꾸고자 하였다.
及時 値(置?)署 月路 逢驟 雨治 爲洗其衣 而浴 于淸泉
그때 마침 월로(月路)의 봉취(逢驟)에 관청을 설치하니
<우신>과 <각치>가 그 옷을 씻기 위하여 맑은 못에서 목욕을 하였다.
眉 見治 陽壯 而抱之 天賜我 于汝也
<미란>공주가 <각치>를 보니 양물(陽物)이 강건하여 안고는
하늘이 나에게 너를 주었다고 하였다.
乃通 于泉中 情洽 遂約 爲夫婦
이에 정(情)이 화합하여 못 속에서 통정하고 마침내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였다.
朝夕共之 諸嬖不能敵
조석으로 함께하니 여러 폐신들은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乃薦於后 率其徒 角戱 于仙院
이에 후에게 천거하여 그 낭도를 통솔하게 하고 <각치>를 선원에 바쳤다.
后命羽林力士 決雄皆敗
후가 우림의 역사(力士)에게 명하여 자웅을 겨루게 하니 모두가 패하였다.
乃置仙院 角戱科 令治掌之
이에 선원에 각희과(角戱科)를 설치하고 영을 내려 <각치>가 이를 관장토록 하였다.
其衆日加多至千余人
그 무리들이 날로 늘어나니 천 여 명에 달하였다.
治又善弓 常每有大祭 主其 常 比食 多異術
<각치>는 또 활을 잘 쏘아 항상 대제(大祭)가 있을 때마다 그를 주관하니
항상 <비식比食>은 특이한 도술이 많았다.
<비식比食>은 <모량牟梁>의 딸인 <모연牟淵(473- )>의 사부(私夫)이다.
<모연牟淵>은 后 <연제>의 동모제(同母弟)이다.
惑衆 角治 兄 事之 常時 迎之爲座主 觀者成堵
때로는 무리들이 <각치>를 형으로 섬기고 언제나 좌석의 주인으로 맞이하니
<각치>를 보려는 자들이 담을 이루었다.
眉闌 會骨女 于堂 而觀其術 食 以枯枝 植于盒上 吹水 而扇之 良久 而花開 爛熳
<미란>이 집에 골녀들을 모아 그 도술을 보니
<비식>이 마른 나뭇가지를 합(盒) 위에 심고는
물을 뿌려 부채를 부치니 얼마 되지 않아 꽃이 활짝 피었다.
盛冬無花之時也
한 겨울은 꽃이 피지 않는 때이다.
一座皆 驚拍掌
한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놀라 박수를 쳤다.
念呪 良久 有 一蝶 飛揚花上 食取 其蝶 而還 于牟淵娘主
주문을 외우니 얼마 되지 않아 한 마리의 나비가 꽃 위에 날아 올라와
<비식>이 잡으니 그 나비는 <모연牟淵>낭주가 되어 돌아왔다.
盖其勝飾也
이 어찌 그 지나친 꾸밈이 아니겠는가!
座中㔫驚 牟淵心醉之 請爲其徒
좌중이 크게 놀라고 <모연>은 심취하여 그 낭도가 되기를 청하였다.
食曰 以秘通 秘以神傳 臣(下)若欲學神(上) 可與臣偕
<비식>이 말하기를
“ 비밀스런 통정으로 비밀리에 신(神)을 전하는 것이니
신하가 신(神)을 배우고자 하면 신(臣)과 함께 하여야 옳을 것입니다.”
牟淵乃齋戒沐浴 迎食 同宿 三夜三晝
이에 <모연>은 목욕재계하고 <비식>을 맞이하여 3일 주야를 같이 잤다.
遂爲雌伏 事食如神 好助公 不能禁之
마침내 자복(雌伏)이 되어 <비식>을 신(神)과 같이 섬기니
<호조好助>공은 이를 금할 수 없었다.
비지(조리) - 호조(459- )
遂生食子比次夫
마침내 <비식>의 아들 <비차부比次夫>를 낳았다.
비식(모연) - 비차부
后亦喜其術 加以爵祿列 于仙臣 內奸外柔 隨處浮沉
후 역시 그 도술을 기뻐하여 선원의 신하로 작위와 녹봉과 서열을 더하니
안으로는 간사하고 밖으로는 유순하여 어디서나 흥함과 망함이 있었다.
時 以唐奴之貪 羊秀之點 比食之奸 爲三狐雄
당시 <당노唐奴>의 탐욕, <양수羊秀>의 오점, <비식比食>의 간사함은
세 명의 외로운 영웅이 되게 하였다.
<당노唐奴>는 <라덕羅德>의 사부(私夫),
<양수羊秀(485- )>는 <섬경蟾京(452-516)>의 사부(私夫),
<비식比食>은 <모연牟淵(473- )>의 사부(私夫)로 골녀들의 폐신이다.
初食母比 自扶余 入西路 行術 美 而經快
처음에 <비식>의 어머니 <비比>는 부여로 부터 서로(西路)로 들어왔는데
도술을 부리고 아름답고 경(經)을 즐겼다.
后兄 曲欣 納于枕席 其父 以爲少女 受胎 則不能行術 不肯 數應
후의 오빠 <곡흔曲欣>이 잠자리에 들이니 그 아비를 소녀가 되게 하여 수태한 즉
도술을 부리지 못하게 하니 수차 응하는 것을 수긍하지 않았다.
등흔(모량) - 곡흔(456- )
석흔(459?- )
이흔(461-526)
연제(463-525)
曲欣怒命罷其 取其女 爲妾
<곡흔>이 노하여 그 도술을 그만두게 하고 그녀를 취하여 첩으로 삼았다.
歲餘 兵吏 少食之子 豆食 爲曲欣 龍陽臣 密通 于比 而生子 是爲 比食
몇 년이 지나 병관의 관리 <소식少食>의 아들 <두식豆食>이
<곡흔>의 용양신(龍陽臣)이 되어 <비比>와 밀통하여 아들을 낳으니 <비식比食>이다.
※ 용양신(龍陽臣) : 남색(男色)으로 주인 혹은 상관을 받드는 신하
曲欣怒逐比及豆食 比與其父 入京行術
<곡흔>이 노하여 <비>와 <두식>을 쫓아내니
<비>는 그 아비와 더불어 경도(京都)에 들어가 도술을 부렸다.
而父沒 比多引 骨門子弟 鬻春
아비가 죽자 <비>는 골문의 자제를 많이 끌어당겨 질펀하게 놀아났다.
石欣 知其爲兄所逐 而病 復 納爲己妾 其徒 乃擁比食 而繼其業
<석흔石欣>은 그 형의 소행으로 쫓겨난 것을 알고 병이 나서
다시 자기의 첩으로 받아들이니 그 낭도들은 <비식>을 옹호하여 그 업을 이어나갔다.
曲欣卒 豆食 自逃 而反 亦爲比食之徒
<곡흔>이 죽자 <두식>은 스스로 달아나 반하여 <비식>의 낭도가 되었다.
石欣乃 以比 許 于豆食 賜以田宅 其徒 漸盛
이에 <석흔>은 <비>를 <두식>에게 허락하고 밭과 집을 내리니
그 낭도들이 점점 번성하였다.
先是 比通其徒象 至是 比復納象
이에 앞서 <비>는 그 낭도 <상象>과 통정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다시 <상象>을 받아 들였다.
豆食妬之 相搏于枕席 比食右其父 而共蹴象 於床下
<두식>이 이를 질투하여 잠자리에서 서로 부딪치니
<비식>은 그 아버지를 도와 같이 <상象>을 발로 차서 침상 아래로 떨어트렸다.
象乃分其徒 而別立之 象之妹爲玉人
이에 <상>은 그 낭도들을 나누어 별도로 당을 세워
<상>의 여동생을 옥인(玉人)으로 하였다.
亥牟妻有寵於后 讚豆食之無狀 而流之 命比以象爲夫
<해모亥牟>의 처는 후에게 총애가 있어 <두식>의 덧없음을 기리며 흐르는 대로
<비>에게 명하여 <상>을 지아비로 하였다.
比食乃以其術屬 于角治之母 出入 眉闌宅 得貴復 以豆食爲比夫
이에 <비식>은 그 도술을 <각치>의 어머니에게 속하게 하고
<미란>의 집을 출입하여 다시 귀함을 얻게 되어
<두식>을 <비>의 지아비가 되게 하였다.
盡統其衆 以此人 以爲孝比食
그 무리들을 모두 통솔하니 <비식>이 효도하게 되었다.
亥牟曰 神仙之道 敬神 而愛物 故不循 私 而害物 有害物之心 則不得仙也
以歡喜爲見眞之方 (故)不妬不專 妬 而專 其慾 則不得仙也
爲父 而蹴人者 循 私 而害物也
况妬 而專其慾乎 厚父 而薄母 爲孝 則孝 不可獎也
<해모>가 말하기를
“ 신선(神仙)의 도는 신(神)을 존경하고 만물을 사랑하는 까닭에
순환하지 않고 사사로이 만물을 해치거나 만물을 해치려는 마음이 있으면
선(仙)을 득하지 못한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진(眞)의 행방을 바라보는 까닭에
질투하지 않고 독차지 하지 않으며 질투로 독차지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선(仙)을 득하지 못한다.
아버지를 위하여 사람을 발로 차는 것은 순행을 사사로이 하여 만물을 해친 것이다.
하물며 질투로 어찌 그를 독차지 하려고 욕심을 내는가?
아비를 후덕하게 하고 어미를 천박하게 하여 효도한 것이니
이러한 효도는 장려하지 못한다.“
右亥牟者 持其說 右比食者曰 人情 則天理 愛親事君情也
安有父被人摶 而不救乎 喜怒得中 眞也 神仙之道 貴眞 而賤詐 不分物 我情之詐也
<해모>를 도우는 자가 그 말을 지지하니 <비식>을 도우는 자가 말하기를
“ 사람의 정(情)은 하늘의 이치이니
부모를 사랑하여 공경하고 군(君)을 섬기는 것이 정(情)이다.
어찌 아비가 부딪치는데 구하지 않겠는가?
즐거움과 노여움이 지나치지 않고 꼭 맞게 하는 것이 진(眞)이고
신선의 도는 귀하고 진실하니 천하고 거짓된 것으로는 만물을 가리지 못하니
나의 정(情)이 거짓된 것인가?.“
亥牟焉 知仙 諦 兩說 相持 不解
<해모>가 선(仙)을 알아 양당의 주장을 살폈으나 서로 지지하여 해결이 나지 않았다.
后命 比事二夫而 和之 而 其說 猶熾 一主無我 一主情眞
후는 <비>가 두 지아비를 섬겨 화합하도록 명하고
한 당의 주장은 무아(無我)이고 한 당의 주장은 정진(情眞)으로
그 말을 오히려 떨치게 하였다.
郎曰 弩理本情眞 宝理本無我 兩者適其宜 而人生 樂 爾等皆 吾臣相持
而執我 卽 不忠 於我夫妻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노리(弩理)의 본성은 정진(情眞)이고 보리(宝理)의 본성은 무아(無我)이다.
정진(情眞)과 무아(無我) 둘 다 적절한 것이니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너희들 모두는 우리의 신하로 서로 지지하여 나를 붙잡으려 하니
우리 부부에게 불충하는 것이다.“
노리(弩理)는 五行으로 그 본성이 정진(情眞)이며
보리(宝理)는 太極으로 그 본성이 무아(無我)라는 것이며
태극과 오행은 본래 하나인데
서로 지지하여 분당하는 것이 불충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后然之乃 詔兩黨曰 執論 非無我 不忠 非情眞 掃 是非 如骨肉 乃我臣 於是黨
이에 后가 자연스럽게 양당(兩黨)에 조칙을 내리기를
“ 집론(執論)은 무아(無我)가 아니고 불충(不忠)은 정진(情眞)이 아니다.
시비(是非)를 소탕하는 것은 마치 혈족과 나의 신하를
이 같은 도당(徒黨)에서 소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遂沈 而議 潛行 仙臣之私議
마침내 논의가 가라앉고 선원 신하들의 사사로운 논의는 남들이 모르게 진행되었다.
遂漸于此 後來 竟爲三十六私黨 縱橫 累萬言 濁亂
마침내 점점 심하여지더니 훗날 필경 36사당(私黨)이 되어
종횡무진으로 수많은 말들이 생겨나 쌓여 흐리고 어지럽혔다.
仙史 而佛 愈侵入 其間蠶食 其弱 於是乎
선교(仙敎)의 역사에 더욱 불교가 침범하여 들어 와 그 사이 잠식하여
그 약함이 어찌 이같이 되었는가?
當日之盛 况 盡歸於佛 而天下亂
하물며 당일 번성하였다가 모두 불교로 돌아가니 천하가 혼란스러웠다.
盖亦數也
이 어찌 역시 여러 번 일어난 일이 아니겠는가!
后夢 見 三十六童子 肩輿 后郎 而佪儃 有一髠 揮杖盡 伏之
后與郎 墮于河中 后匍匍上郎腹曰 夫兮夫兮 以汝神力 何爲小 髠所窘乎
후가 꿈에 36동자(童子)가 상여를 매고 있었는데
후와 <위화>랑이 머뭇거리니 한 머리 깎은 사람이 지팡이를 마구 휘둘려 엎드리니
후와 <위화>랑이 하천에 빠져 후가 <위화>랑의 배위로 엉금엉금 기며 말하기를
“ 지아비여! 지아비여! 당신의 신력(神力)이 어찌 이리 작아
머리 깎은 사람에게 막혀 군색하게 되었습니까?” 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일곤(一髠)은 한 스님을 말한다.
郎笑曰 此中有別天地 汝何以弩理 爲常住 而戀之乎
<위화>랑이 웃으며 말하기를
“ 지금 바로 별천지에 있는데
당신은 어찌 노리(弩理)로 상주하고자 하여 그리워하십니까?”
忽然郎身 爲一大牧丹花 安后於花心 而浮海 海漸濶 而花益高 花片 皆成瓊宮玉山
갑자기 <위화>랑의 몸이 하나의 큰 모란꽃이 되더니
후는 화심(花心)으로 바다에 떠돌고 바다가 점점 넓어지고 꽃이 더욱 높이 올라오니
꽃의 파편이 모두 경궁(瓊宮)의 옥산(玉山)을 이루었다.
到處有郎 到處有后 后喜極 而抱郎 而舞 疲倦 而躓
가는 곳 마다 <위화>랑이 있고 가는 곳 마다 후가 있으니
후는 지극히 기뻐하며 <위화>랑을 안고 춤을 추니 피로하고 나른하여 넘어졌다.
乃醒后 在 郎上 而躓也
이에 후를 깨우니 <위화>랑 위에 넘어져 있었다.
后乃抱郎貪愛 而苦其夢
이에 후가 <위화>랑을 안고 사랑을 탐하니 그 꿈처럼 고통스러웠다.
郎曰 勿苦也 汝愛我 我不愛汝 則不如此 我愛汝 汝不愛我 則不如此
汝我 雖愛 而帝不許 則不如此 今日之樂 固天定也 人間事 莫非天定 雖苦何益
<위화>랑이 말하기를
“ 고통스러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데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즉 이와 같이 고통스럽지 않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데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즉 이와 같이 고통스럽지 않으니
당신과 나는 비록 사랑하나 제가 허락하지 않은 즉 이와 같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오늘의 즐거움은 하늘이 굳게 정한 것입니다.
인간사는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닌 것이 없는데 어찌 고통을 더하겠습니까?
后曰 妾自少時 縱情 歡喜 不暇 養眞 願自 今後 朝朝暮暮抱我 講眞
掃我一㘦鄙念俗思 植我夫 王道力仙慧 以免煩悶 弩理相
후가 말하기를
“ 첩은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즐기며 기뻐하여
스스로 원하여 진(眞)을 기를 겨를이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아침저녁으로 나를 안고 진을 강론하여 주십시오.
나 일체의 잡스러운 세속의 생각을 버릴 것입니다.
나의 지아비를 심어 왕도(王道)는 선혜(仙慧)에 힘쓰도록 하고
번민을 벗어나는 노리상(弩理相)으로 하고자 합니다.“
郎曰 吾妻得矣
<위화>랑이 말하기를
“ 과연 내 처입니다.”
乃說 魏華眞經 以授之 於枕席 故後人 以此經 爲房中經 又稱 鴛鴦經 婚嫁必用之
설명에 위화진경(魏華眞經)은 잠자리에서 전수한 까닭에
후세 사람들이 이 경전을 방중경(房中經)이라 하고
또 원앙경(鴛鴦經)이라고 칭하며 혼인할 때는 반드시 이를 사용하였다.
言只
后曰 鷄聖 言只 何謂只乎
后가 말하기를
“계성(鷄聖 : 흑치)이 ‘지(只)’를 말하는데 무엇을 일러 ‘지(只)’라 합니까?”
花曰 飢 則思飽 飽則困 寵則思淫 淫則疲 故食色 只在不飢不寵
富貴者貧賤之所欲 而富則勞其形 貴則危其身 故大福 只在不貧不賤
不飢 不寵 不貧 不賤 則乃求其眞
始 懷其疑 疑則思 言則愈疑 故大化無爲 大道無言
此所以聖人言只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배가 고프면 배부름을 생각하고, 배가 부르면 나른해 집니다.
총애하면 음탕함을 생각하고, 음탕하면 피곤해 집니다.
그런 까닭에 식(食)과 색(色)은 단지 배고프지 않고 총애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부(富)와 귀(貴)는 가난하고 천한 자가 바라는 바인데,
부(富)란 그 육체를 힘쓰게 하고, 귀(貴)란 그 몸을 위태롭게 하는 까닭에
큰 복은 단지 가난하지 않고, 천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배고프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천하지 않는 것은
곧 그 진(眞)을 찾는 것입니다.
처음에 의심을 품으니 의심은 곧 생각하는 것인데 말은 의심을 더하게 합니다.
그런 까닭에 큰 조화는 무위(無爲)이고 큰 도(道)는 무언(無言)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인이 ‘하나(只)’를 말하는 까닭입니다.”
지마 9년(AD.167) 4월 기사
四月 上謂言只所聖人 曰 “爾神靈乎” 曰 “靈未知也 只言只也”
上曰 “何謂言只” 曰 “言只卽發不二也 不拘驗 不驗也”
上曰善 乃賜聖人爵阿飡
先是 有白亥祠 在神林池中 有兩白亥與七鷄爭技 俗傳不可 使外人見之
權妻之不及寵者 多生私子 皆委於祠主 育爲鷄亥
上幼時爲侮 所引常觀其枝 及長 護其祠 至是 知其鷄亥
多私宮人 欲誅之 召其聖人試之 聖人不諱直言 上嘉之乃止 遂以其祠爲言只所
命馬政大頭 賜治疫藥師十二人 大白馬
4월 왕이 언지소(言只所) 성인에게 일러 말하기를
“너는 신령이로구나.”
언지소의 성인이 말하기를
“신령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언지(言只)일 뿐입니다.”
왕이 말하기를
“무엇을 언지(言只)라 하는가?”
언지소의 성인이 말하기를
“언지(言只)는 즉 불이(不二)를 말합니다.
해보지 않은 경험은 경험이 아닙니다."
왕이 옳다고 하며 이에 언지소 성인에게 아찬의 벼슬을 내렸다.
이에 앞서 신림지(神林池) 가운데에 백해사(白亥祠)가 있었다.
백해(白亥)와 칠계(七鷄)가 있어 양쪽이 기예를 겨루었는데,
세속에는 전하지 아니하고 바깥사람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였다.
권처(權妻) 중에서 총애를 받는 자가
사자(私子 : 私通해서 낳은 자식}를 낳은 자가 많아 모두 사주(祠主)에게 맡기었다.
백해(白亥), 칠계(七鷄)로 키웠다.
왕이 어렸을 때는 업신여겼으나, 이곳으로 이끌려와 항상 그 기예를 관찰하였다.
장성함에 이르자 그 사당을 보호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계해(鷄亥)를 알게 되었다.
궁인들과 사사로움이 있어 목을 베려하였으나, 그곳의 성인을 불러 시험하였다.
성인은 직언을 기피하지 아니하니 왕이 기뻐하며, 이에 그치도록 하였다.
마침내 그 사당을 언지소(言只所)라고 불렀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것이니 그 마음을 비우라는 것이다.
보리(寶理)는 무아(無我)이고 언지(言只) 즉 불이(不二)인 하나로
우주 창조의 원리인 태극(太極)이고
노리(弩理)는 정진(情眞)이고 오행(五行)과 팔괘(八卦)로
만물의 근원인 원시(元始)이다.
后曰 鷄聖 上奉 樹王 下統 鷄徒 力能通神 智能言只 而不得 令終者何也
후가 말하기를
“ 계성(鷄聖 : 흑치)은 위로는 수왕(樹王)을 모시고 아래로는 계도(鷄徒)를 통솔하고
신과 통하는 힘과 언지(言只)의 지혜가 있는데
어찌 영종(令終 : 수명을 다 누리고 편안히 죽음)을 얻지 못하였습니까?“
花曰 言只 不如行只 行只 不如自只 令終不如無終 聖人不如眞人 夫聖人者衆所戴也
衆戴 則好名 好名則騎危 騎危則轉覆 轉覆則名 且滅矣 况其身乎
故眞人 不衆 不名 無滅 無終 悠悠 而已聖人師之 而不及曰 眞人
<위화>랑이 말하기를
“ 단지 말이라는 것은 단지 행하는 것만 못하고
단지 행하는 것은 단지 스스로 그러한 것만 못하고
편안한 죽음은 끝이 없는 것(永遠)보다 못하고
성인(聖人)은 진인(眞人)만 못하니
무릇 성인(聖人)이란 것은 무리들이 떠받드는 것입니다.
무리들이 떠받드는 것은 명성을 좋아하는 것이고
명성을 좋아함은 위험을 일으키는 것이고
위험을 일으키는 것은 뒤집어엎는 것이고
뒤집어엎는 것이 명성이니 또한 멸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그 몸입니까?
그런 까닭에 진인(眞人)은 무리를 이루지 않고
명성을 얻지 않아 멸하지 않으니 끝이 없이 유구하며
성인(聖人)의 가르침도 미치지 못하니 진인(眞人)이라 합니다.“
※ 言只 不如行只 行只 不如自只
불쌍한 거지가 동냥을 할 때의 참 마음(眞)을 알기 위하여는
단지 불쌍하다고 말만 하는 것은 한 푼의 동냥을 주는 것만 못하고
한 푼의 동냥을 주는 것은 스스로 거지가 되는 것보다 못하니
스스로 거지가 되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지의 참 마음(眞)을 알지 못하므로
경험하지 못하고 듣고, 보고, 읽은 것은 무릇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后曰 何謂衆戴 而滅名
후가 말하기를
“ 무엇을 일러 무리들이 떠받드니 명성은 멸한다고 하십니까?”
花曰 有餌 而魚聚 魚聚 則爭餌 名者衆之餌也 爭而相伐 故危而滅也
水無色 能潤萬物 天不恩 而能包 萬物 故眞人 不衆 而衆 自被化 不名 而名 自無滅
<위화>랑이 말하기를
“ 미끼가 있어 고기를 모으니 고기가 모이는 것은 미끼를 물려고 하는 것이고
명성은 무리들의 미끼이니 미끼를 물려고 서로 싸우는 까닭에
위험하여 멸하는 것입니다.
물은 색깔이 없으나 능히 만물을 적시고 하늘은 은혜가 없어도 만물을 감싸는 까닭에
진인(眞人)은 무리가 아니어도 무리를 지어 스스로 조화를 입고
명성이 없어 명성은 스스로 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后曰 卽發不二 不拘驗者何也
후가 말하기를
“ 불이(不二)가 발한다고 하는 즉 경험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花曰 發在我 而驗在彼也 言則愈疑 止其所信 何拘驗乎
我可無疑 而卽發不二也 疑而發 則二 而不中也
<위화>랑이 말하기를
“ 발하는 것은 나에게 있고 경험은 저쪽에 있어 말은 더욱 의심하게 하니
그 소신을 멈추어 어찌 경험을 구속하겠습니까?
내가 의심이 없어 불이(不二)를 발하는 것입니다.
의심을 발하는 것은 이(二)이니 중(中 : 치우침이 없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后曰 願聞不疑
후가 말하기를
“ 의심이 아닌 불이(不二 : 中)를 듣기를 바랍니다.”
花曰 靜 而觀示 持其兩端 歸其一也
多端 則多思 徒勞 其神 故善 於神者 如一光 而擴之 善於仙者 如物我俱寂
<위화>랑이 말하기를
“ 고요히 명상하여 그 양쪽 끝을 지탱하여 그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잡한 것은 생각이 많은 것이니 그 정신을 아무런 보람이 없이 헛되게 하는 까닭에
신(神)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하나의 빛을 넓히는 것과 같고
선(者)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사물과 내가 고요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眞花
后曰 羊徒奉白羊 馬徒奉白馬 鷄徒奉白鷄 何尙白乎
후가 말하기를
“ 양도는 백양을 받들고 마도는 백마를 받들고 계도는 백계를 받드는데
어찌하여 백(白)을 받드는 것입니까?
花曰 白是眞花也
花者樹之眞明也 白者光之眞明也 故曰眞花也
萬物之中 人爲花 萬人之中 仙爲花 萬仙之中 神爲花
神者 大眞之光明
智者見之 愚者不見 賢者奉之 愚者背之
위화랑이 말하기를
“ 백(白)은 진화(真花)입니다.
꽃은 나무의 진실한 밝음이고, 백(白)은 빛의 진실한 밝음입니다.
그런 까닭에 진화(真花)라 하는 것입니다.
만물(萬物) 중에서 사람이 꽃이고,
만인(萬人)중에서 선(仙)이 꽃이고,
만선(萬仙) 중에서 신(神)이 꽃입니다.
신(神)은 큰 진실의 광명(光明)이니,
지혜로운 자는 보고, 어리석은 자는 보지 못합니다.
현명한 자는 받들고, 어리석은 자는 배척합니다.“
昔者 仙桃山 元始聖母 波穌天王 頭戴絳色金冠 身被銀色錦神衣 內着紫黃綠四十九彩
率 大瓢 碧海 加耶 三仙姑 乘彩雲 而下降于仙桃山 千年老桃梪王之宮 以爲六部之神
天神乃率雷火風三神 而下降與聖母合歡 而娠大日光明
天神是爲奕西居 於是 眞花發於吾土 仙骨大昌
예전에 선도산(仙桃山) 원시(元始)성모(聖母) <파소波穌>천왕이
머리에 진홍색 금관을 쓰고 몸에는 은색의 비단 신의(神衣)를 걸치고,
안에는 자황록의 49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대표大瓢>, <벽해碧海>, <가야加耶>의 세 선녀(三仙姑)를 거느리고
채운(彩雲)을 타고 선도산 천년 묵은 복숭아 ‘두왕(梪王)의 궁’에 내려와
6부의 神이 되었다.
이에 천신(天神)이 <뇌신雷神>, <화신火神>, <풍신風神> 三神을 이끌고 내려와,
성모(聖母)와 합환(合歡)하여 대일광명(大日光明 : 혁거세)을 임신하였다.
천신(天神)은 <혁서거奕西居>이다.
이로부터 진화(眞花)가 우리 땅에서 피어나 선골(仙骨)이 크게 번창하였다.
眞花者宝果之母 宝果者梪王之母 梪王者眞花之母 三者相生而互母是謂三母轉元
진화(眞花)는 보과(宝果)의 어미이고
보과(宝果)는 두왕(梪王)의 어미이고
두왕(梪王)은 진화(眞花)의 어미이다.
셋이 서로 생겨나고 서로 어미가 되니,
이를 삼모전원(三母轉元)이라 한다
꽃은 열매의 모태이고
열매는 나무의 모태이고
나무는 꽃의 모태라는 것이다.
꽃이 피어야 열매가 맺어지고,
그 열매가 품은 씨가 다시 나무를 만들고
그 나무가 다시 꽃을 만들어 피게 하니
서로가 서로에게 어미가 되어 그 근원이 돌고 돈다는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에서 말하는 一始無始一......一終無終一이며
역경(易經)의 旣濟(꽃) 未濟(열매, 씨)이며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언지(言只)이며 불이(不二)이며 태극(太極)이라는 것이다,
<혁거세>를 진화(眞花)의 시작으로 하여 <혁거세>로 부터 그 뿌리가 돌고 돈다는
신라인의 선골(仙骨)에 대한 관념과 모계를 중심으로 한 족내혼의 관습도
이 삼모전원(三母轉元)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花爲火 而果爲水 故祀梪王 以明水明火
꽃은 불이 되고 결과적으로 물이 되는 까닭에
두왕(梪王)에게 맑은 물과 밝은 불로 제사를 지냈다.
達門大母 右佩陰鑑 左佩陽燧 勤事梪王
故乙公 生焉 若非乙公 誰知梪王之德 而奉眞花乎
<달문達門(97-171)>대모가 오른 손에 음(陰)의 거울을 들고
왼 손에 양(陽)의 횃불을 들고
부지런히 두왕(梪王)을 받든 까닭에 을공(乙公 : 許乙(131-176)을 낳았다.
만일 <을공>이 아니었다면 누가 두왕(梪王)의 덕을 알아 진화(眞花)를 받들었겠는가?
달문 대모가 거울(水)과 횃불(火)을 들고
두왕에게 기도하여 을공(花)을 낳았다는 것이다.
주역의 水火旣濟(꽃)이다.
乙公
許婁大王 猿面 而虎精 足智多謀 紏合英雄 一匡天下 臣妾萬民 威高 八域
<허루許婁> 대왕은 얼굴이 원숭이 상으로 호랑이의 정기(精氣)가 있고
지혜가 풍부하고 계략이 많아 영웅을 규합하여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 잡아
신하와 첩, 만백성에게 두루 위엄을 높였다.
대노(구을) - 허루(80-155)
達門大母 溫美神麗 常奉大王枕席
달문(達門)대모는 온화하고 신비스런 아름다움이 있었는데
언제나 잠자리에서 대왕을 모셨다.
탈해(장씨) - 달문(97-171)
時卞山有 大麻織之爲布
변산(卞山)에 있을 때 대마(大麻)로 모시를 짰다.
布人曰 此布多異祥 非凡人 所可服 乃裁 大裙 而獻 于甘生大母
포인(布人)이 말하기를
“ 이 모시는 기이한 상스러움이 많아 비범한 사람이 입어야 한다며
큰 치마를 만들어 <감생甘生(100?- )>대모에게 바쳤다.
<감생>은 <발량發良>의 처로 <길문吉門(93?-152)>을 좋아하여
파사왕 4년(129년)에 <길문>을 따라 변산(卞山)으로 갔다.
甘生曰 我何敢當此 可奉納 于達門大母
<감생>이 말하기를
“ 내가 어찌 이 모시옷을 감당하겠는가?
<달문>대모에게 받들어 바침이 옳을 것이다.“
達門乃服之 與大王 同枕 而合歡
이에 <달문>이 그 모시옷을 입고 대왕과 함께 동침하여 합환(合歡)하였다.
夢見 月下 有虎 下山 似虎 而非虎 似馬 而非馬 似鹿 而非鹿 烏足 而白鼻
大母惧之 走度小橋 歸 其室 室在豕牢之傍 與牢 同醜 小門 髣弗 柵門 怪而覺之
꿈에 달빛 아래 호랑이가 산을 내려오는데
호랑이 같기도 한데 호랑이가 아니고
말 같기도 한데 말이 아니고 사슴 같기도 한데 사슴이 아닌
까마귀 발이 달린 백비(白鼻)를 보았다.
※ 백비(白鼻) : 털색은 흑갈색이며, 얼굴, 사지, 꼬리가 긴 흰 코 사향 고양이
대모가 두려워 조그만 다리를 건너 달려와 집에 돌아오니
그 집은 돼지우리 옆에 있었는데 돼지우리처럼 더럽고
작은 문은 목책을 둘러 친 문이었다.
괴이하게 여기며 깨어났다.
大王曰 當生貴子 其神羊之精乎 惧之者犯也 豕牢同醜者胎也
대왕이 말하기를
“ 마땅히 신령스런 양(羊)의 정기로 귀한 자식을 낳을 것이다.
두려워하는 것은 죄이고 돼지우리와 같이 더러운 것은 수태이다.
大母乃禱于梪王 果娠 身生黃華
이에 대모가 두왕에게 기도하니 과연 임신하여 몸에 황화(黃華)가 생겼다.
時 脫解帝崩 未葬 婆娑帝 夢見 脫解帝入 達門大母之懷
때에 <탈해脫解(51-130)>제가 붕하여 아직 장례를 치르지 않았는데
<파사婆娑(90-158)>제가 꿈에
<탈해>제가 <달문>대모의 품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탈해>가 죽은 해는 130년이고 을공(乙公) <허을>이 태어난 해는 131년이다.
파사왕 5년(130년)
八月 太君以暑疾崩 于日知宅 上與惠后臨泣曰 “父今棄我 何去”
太君曰 “歸侍先今 此願畢矣 骨門無相殘 努來無相欺 知之乎”
上曰 “諾” 太君乃崩 天地晦冥 上痛哀之 以父今禮葬 于壤井陵門
阿孝今堂皆殉之 不能禁
太君足智多謀有 大功于社稷 又喜女色所 畜嬪妾 千有余人 生子女七百人 不能盡知
自神以來 初有之事也.
8월 태군(太君){탈해}이 더위로 병을 얻어 <일지日知>宅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왕과 혜후가 대면하여 울면서 말하기를
“부금(父今)은 지금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시렵니까?”라고 하였다.
태군이 말하기를
“선금(先今){유리}을 모시러 가고자 한다. 이 소원을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골문(骨門)간에 상잔(相殘)하지 말고,
오고자 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속이지 마라. 알겠느냐”고 하였다.
왕이 승낙하자, 태군이 이에 죽었다.
하늘과 땅이 깊은 어둠속에 빠져들었다.
왕이 애통해 하며, 부금(父今)의 예로 양정릉(壤井陵)에 장사를 지냈다.
<아효阿孝>와 <금당今堂>이 모두 따라 죽었으나 막지 못하였다.
태군은 지혜가 풍부하고 많은 계략이 있어서 사직(社稷)에 큰 공이 있었다.
또 여색을 좋아하는 바가 있어 데리고 있는 빈첩(嬪妾)이 천여 명이었고,
자녀가 700명이어서 모두를 알 수 없었다.
신(神)이 내려온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
知其爲貴子 召 于壤井 而幸之曰 生子可名乙
귀한 자식이 될 것을 알고 <달문>을 양정(壤井)으로 불러 행(幸)하며 말하기를
“ 아들을 낳아 이름을 을(乙)이라고 함이 옳다.”
達門不敢諱之 乃告以已娠 許婁子
<달문>이 감이 이를 기피하지 못하여 이미 <허루>의 자식을 임신하였음을 고하였다.
帝惜之 以爲摩㚆子 十月 許婁大王 監軍 于一善
제가 이를 애석하게 여겨 마복자(摩㚆子)가 되게 하고
10월 <허루>대왕을 일선(一善)에서 군사를 살피게 하였다.
파사왕 5년(130년)
十月 聖父角干與太聖 巡至一善 慰賜軍士 夂理唐卒 命以海飡禮葬之
10월 성부(聖父 : 許婁) 각간과 태성(太聖 : 阿利)이 돌아다니며
일선(一善)에 이르러 군사를 위문하였다.
<치리夂理>가 갑자기 죽어 해찬(海飡)의 예로 장사를 치루었다.
達門大母從之 以布裙福 于烏城
<달문>대모가 <허루>를 따라 오성(烏城)에 가서 모시 치마를 입고 복을 빌었다.
城神 以明水 獻之曰 可生羊聖
오성(烏城)의 신(神)에게 맑은 물을 바치며 말하기를
“ 양성(羊聖)을 낳게 하여 주십시오.”
果 至翌年 白羊之 孟春 中陽 誕之
과연 다음 해 백양(白羊)의 음력 정월 9일에 성인이 탄생하였다.
131년은 辛未년 백양(白羊)의 해이다.
香聞 而彩生
향기가 멀리 퍼지고 채운이 일어났다.
母見白羊從(天) 而降 完若 夢
어머니는 백양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완전히 꿈에서 본 것과 같았다.
時空中隱隱有仙樂 忽有異人羽衣下庭 授丹藥 而奏曰
國仙生矣 可以壽之 輒不知所去
때에 공중에 은은한 선악(仙樂)이 울리더니
홀연 이인(異人)이 우의(羽衣)를 입고 정원으로 내려와 단약(丹藥)을 주며 아뢰기를
“ 국선이 태어나 장수를 기원하여야 하는데 문득 나아갈 바를 모르겠습니다.”
大王奇之 洗于神池 乃名許乙
대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며 신지(神池)에서 씻고 <허을許乙>이라고 하였다.
及長 聰明 過人 眉目吉羊眞 天仙之下降也
장성하여 감에 따라 남보다 총명하고 눈썹과 눈은 길한 양(羊)을 빼어 닮으니
하늘의 신선이 내려온 것이다.
及長 好事梪王 勤行朔禮
장성하여 감에 따라 두왕(梪王)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삭례(朔禮 : 초하루에 올리는 禮)를 올렸다.
年十三 與足公 學 于吉公
13살에 <족공足公(130?-187)>과 더불어 <길공吉公(110-170?>에게서 수학하였다.
굴공(66-141)(아리 65?-133) - 진공(굴고) - 족공(130?-187)
吉公子邊公與公同年 而多識 于庭 公乃事邊公如吉公
<길공>의 아들 <변공邊公>은 공과 나이가 같은데 정원에 지식이 많아
공은 <변공>을 <길공>과 같이 섬겼다.
길공(흘고) - 변공(131- )
吉公謂邊公曰 今日 汝雖敎乙 他日 乙必敎汝 汝不可 以師 自居
<길공>이 <변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 오늘은 비록 네가 가르치지만 다음날엔 <을공>이 반드시 너를 가르칠 것이니
너는 스스로 스승이라고 자처하는 것은 옳지 않다.“
邊公乃 欲友之 而公敬之益重
이에 <변공>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니 더욱 공경하고 중히 여겼다.
邊公美而好色
<변공>은 아름답고 색을 좋아하였다.
年十六 儼 若妙仙
16살인데 의젓하고 신묘한 신선(神仙) 같았다.
達門大母見其美 而心惑之 夏月 引欲 于蚊川 而通之
<달문>대모가 그 아름다움을 보고 유혹하려는 마음이 있어
여름에 문천(蚊川)으로 이끌고 나와 통정을 하였다.
寵愛深 至解其宝佩 而與之 仍謂公曰
邊公多才 而美 又洽我情可 呼 以小父
깊이 총애하여 차고 있던 보물을 풀어 <변공>에게 주고는 공에게 말하기를
“ 변공은 재주가 많고 아름답고 또 나와 정을 화합하였으니
소부(小父)라 불러야 한다.”
公從之 無逆
공은 이를 따르고 거역하지 않았다.
邊公遂 與達門 相戱 如夫婦
마침내 <변공>은 <달문>과 더불어 부부처럼 서로 놀았다.
公未嘗 有妬 色 視 若尋
공은 일찍이 질투를 한 적이 없고 색을 보거나 찾는 일이 없었다.
常 達門大母 有大度 多權數 故前後所産多異 公恥之
달문대모는 언제나 도량이 크고 권세가 많은 까닭에
앞 사람과 뒤 사람에게서 낳은 자식이 많이 달라 공이 이를 수치스러워 하였다.
嘗諫願如己者 至是 知其不可諫
일찍이 자기처럼 간(諫)하기를 원하는 자도 지금에 이르러 간(諫)하지 못함을 알았다.
乃禱於樹王曰 許其所好 無使過勞
이에 수왕에게 기도하며 말하기를
“ 그 좋아하는 대로 하게 해 주시고 너무 과로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大母窃聽之 乃謝于公曰 吾非好之也 不忍拒之也
대모가 이를 훔쳐 듣고 공에게 말하기를
“ 나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거절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公曰 不忍之心是 卽牝也 可以生萬物 願擴其心
공이 말하기를
“ 참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암컷의 마음입니다.
암컷은 만물을 낳으니 그 마음을 널리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大母乃?曰 母心子知 子心母知
이에 대모가 말하기를
“ 어미의 마음은 아들이 알고 아들의 마음은 어미가 안다.”
公曰 知之行之至之 是知也 吾未得其一 安有知乎
공이 말하기를
“ 알고 행하여 이르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저는 그 하나를 얻지 못하였는데 어찌 안다고 하겠습니까?“
大母乃謂許婁曰 汝雖雄也 未若汝子之賢 汝之威一世 子之威萬世也 今汝亦然
이에 대모가 <허루>에게 일러 말하기를
“ 당신이 비록 영웅이지만 만약 당신의 아들의 현명함에 미치지 못하면
당신의 위엄은 한 세대지만 아들의 위엄은 만 세대에 떨칠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그러합니다.“
后是之曰 願苾而入
후가 이를 옳다고 하며 말하기를
“ 향기가 들어오게 하라.”
理方
理方者 理之 以方也
이방(理方)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것을 방편으로 하는 것이다.
太古之世 神人濟衆 眞氣彌滿 無言 而化
태고(太古)의 시절에는 신인(神人)이 무리를 제도(濟度)하여
진기(眞氣)가 널리 가득차서 무언(無言)으로 교화하였다.
中古之世 聖人治衆約之 以法民不罹之
중고(中古)의 시절에는 성인(聖人)이 무리에게 약속하였으나
법으로서는 백성을 매어달지 못하였다.
下古之世 眞鵚法解 無以爲民 故賢智者理之 以方
하고(下古)의 시절에는 진(眞)이 쓰러지고 법이 느슨해져
백성을 위하는 바가 없는 까닭에
현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다스리는 것을 방편으로 하였다.
故或中或不中 今之人 以方 爲法 刑之 削之
罔有 其極 豈徒 不中 而已哉反 有害之
그런 까닭에 지금 사람들은 법으로 형벌을 내리기도하고 깎기도 하고
그물에 그 지극함이 있으나 빠져나오기도 하니
반하여 해로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古之善刑者 無刑善 理者 不理 唯 回眞氣 而已 吉公吹笛 回心者 此也
옛적의 형벌을 잘 다스리는 자는 형벌이 없이도 잘 다스리고
다스리지 않고 오직 진기(眞氣)를 돌림으로서 이미 형벌이 필요 없으니
<길공>이 피리를 불어 마음을 돌리게 한 것이 이것이다.
今汝朝暮 我 而愈 勤 理方 其 於汝何 抑 亦 於蒂何
지금 너희들은 아침저녁으로 내가 병이 낫도록 부지런한데
이방이 어찌 너희들과 <후체>를 억류하려고 하겠는가?
后曰 善哉 苾我 祐我
후가 말하기를
“ 선(善)함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고 나를 돕게 하라”
后女厚蒂 爲沙嵩妻 與嵩 修眞理 淸無相逆
후의 딸 <후체厚蒂>는 <사숭沙嵩>의 처가 되어 <사숭>과 더불어 진리를 닦아
맑고 서로 거역함이 없었다.
비처(연제) - 후체(484- )
비처(사세) - 사숭(482-520)
嵩有 歌奴 名柯枝 麗質 蕙性 寵遇之
<사숭>에게는 <가지柯枝(495-524)>라는 가노(歌奴)가 있었는데
곱고 아름다운 성품을 지녀 총애하여 특별히 대우하였다.
或以月夜 連歌 輸情意 頗戀牽 無有間髮 困憊 鵚臥
때로는 달밤에 연이어 노래를 불러 자못 연정을 이끌어내니
잠시도 피곤하여 쓰러져 눕지를 못하였다.
厚蒂 解 柯枝衣 抱 而入裳 如幼子慈母
<후체>가 <가지>의 옷을 벗기고 안고는 치마 속에 들어오게 하니
마치 어린 자식과 인자한 어미 같았다.
<가지>는 <후체>보다 11살 어리다.
三人同被 而宿 陰陽相觸 未嘗動念
세 사람이 같은 이불에서 자니 음양이 서로 닿아도
일찍이 사념(思念)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一日 柯枝朝起 見厚蒂 豊美 隆皐 玲瓏 玉膚 逼起根念
하루는 <가지>가 아침에 일어나 <후체>의 풍만한 아름다움과 두둑한 음부와
영롱한 옥 같은 살결을 보니 남근이 우뚝 솟아올랐다.
嵩先起 下庭刷鶴
<사숭>은 먼저 일어나 정원에 내려가 학(鶴)을 손질하고 있었다.
柯枝 不忍 火心 取 而濡之 厚蒂 從容受之 莞爾撫之 歡畢 而起
<가지>가 화심(火心)을 참지 못하여 취하여 적시니
<후체>는 조용히 받아들이고 빙그레 웃으니 애무하여 즐기고는 일어났다.
柯枝 善惧 自責 不能諱之 乃告 于嵩 而請杖
<가지>는 착하나 두려워하여 기피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사숭>에게 고하여 지팡이로 매질 할 것을 청하였다.
嵩笑之 而已不言 是非 待之 如常
<사숭>은 웃으며 잘잘못은 말을 하지 않고 여느 때와 같이 대우하였다.
自是 柯枝 戒而不犯
이로부터 <가지>는 경계하여 범하지 않았다.
及嵩薨 厚蒂 不勝 寥寂 召柯枝 同宿
<사숭>이 죽으니 <후체>는 적적함을 견딜 수 없어 <가지>를 불러 같이 잤다.
情話深深 適値 冬冬夜 纏綿 取溫 不覺 氣生 暖流 而柯枝 不敢犯之
정겨운 이야기가 깊어지고 마침 겨울의 긴 밤을 맞이하여
단단히 얽힌 솜으로 따뜻함을 취하니
기가 일어나 따뜻이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하여 <가지>는 감히 범하지 않았다.
厚蒂 挑 而引之 則戰戰拒之 則蒂 疲 而 柯 凍
<후체>가 돋우어 끌어당기니 전전긍긍하며 거절한 즉
<후체>는 피로하여 지고 <가지>는 얼어붙었다.
如是 數日 厚蒂 憔悴
이와 같이 며칠이 지나니 <후체>는 초췌하여졌다.
后憂之 使斗花 往慰 笑話 見勢 而逼通之
후가 이를 걱정하여 <두화斗花>를 시켜 가서 위로하게 하니
우스운 이야기로 기세를 보여 다그쳐서 통정하였다.
결아(벽화) - 두화(496?-530)
厚蒂乃留斗花 而薄 柯枝
이에 <후체>는 <두화>에게 머무르며 <가지>를 박대하였다.
柯枝乃作白鳥歌 而悲之
이에 가지는 백조가(白鳥歌)를 지어 슬퍼하였다.
后乃與郎 吉之 爲夫妻 遂生子 而情弛
이에 후와 <위화>랑이 길례로 부부가 되게 하니
마침내 자식을 낳았으나 정이 느슨해졌다.
厚蒂復思柯枝密從之曰 男女 以陰陽爲情 汝不通我 而誤我 今已生子 而猶未忘汝也
<후체>는 다시 <가지>를 생각하며 남몰래 <가지>를 따르며 말하기를
“ 남녀는 음양으로 정(情)이 되는데 너는 나와 통하지 않아
잘못하여 내가 이미 자식을 낳았으나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다.“
柯枝曰 臣非不好色 不敢忘先恩
<가지>가 말하기를
“ 신(臣)이 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감히 <사숭>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蒂曰 汝能悅我 則彼自悅矣 何固持乎
<후체>가 말하기를
“ 너는 능히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으니 너 스스로 기뻐할 것인데
어찌 고집을 부리는가?“
枝曰 臣非吾君 則不可活命 可聽也
<가지>가 말하기를
“ 신은 나의 군(君)이 아니면 목숨을 연명할 수 없으니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乃解 而縱 情盡歡
이에 해명하고 종용하여 정을 다하여 합환하였다.
蒂乃奔 于枝 而不歸
이에 <후체>는 <가지>에게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다.
后怒曰 吾夫所吉 枝敢毁之
후가 노하여 말하기를
“ 나의 지아비가 한 길례를 <가지>가 감히 훼손하였다.”
乃命理方 治枝 而蒂護 而不放 理方不得治
이에 이방에 명하여 <가지>를 치죄토록 하니
<후체>가 보호하였으나 방면하지 못하고 이방은 치죄하지 못하였다.
后命兵官笞理方 而捕枝曰 今之理方 何 爲以稱理方
후는 병관에게 명하여 이방에게 태형을 가하고 <가지>를 잡아들이게 하고 말하기를
“ 지금의 이방이 어떻게 이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는가?”
郎乃告此 而止之
이에 <위화>랑이 이와 같이 고하고 이를 중지시켰다.
達門大母
后曰 達門大母聖人也 猶多枕席 前後所夫十數 而人不爲好色
朕是庸人也 惟三帝一仙 而人 以爲好色何也
후가 말하기를
“ <달문達門>대모는 성인(聖人)이다.
많은 사람이 잠자리를 같이 하여 전 남편과 후 남편이 수십 명이나
사람들은 색을 좋아한다 하지 아니하였다.
짐은 평범한 사람으로 오직 세 명의 帝에게 한 명의 선인이 있었으니
사람들이 어찌 호색하다고 하겠는가?”
<연제>는 자비, 소지, 지증제를 모셨다.
花曰 達門大母古之大雌也
大雌善理陰 故枕多 而不煩
中雌能守陰 故枕淸 而能貞
下雌亂淫 故十目指之
汝與我 偕 仙風 長吹 誰復謂好色乎
汝乃今之達門也 可不好色乎 惟在理陰 而已
위화랑이 말하기를
“ <달문>대모는 옛적의 큰 암컷입니다.
큰 암컷은 음의 이치를 잘 아는 까닭에
많은 사람이 잠자리를 하여도 번민하지 않습니다.
중간의 암컷은 능히 음을 지킨 까닭에 잠자리가 맑고 능히 바릅니다.
아래의 암컷은 음란한 까닭에 열 개의 눈이 손가락질 합니다.
당신과 나는 모두 선풍(仙風)을 오래도록 불었으니
누가 다시 호색하다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은 오늘의 <달문>인데 호색함에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오직 음의 이치가 있을 뿐입니다.
后曰 欽哉 願 耳 而苾我
후가 말하기를
“ 공경함이여! 귀 기울어 나를 향기롭게 하라”
后曰 那比神母 達門大母之婢也
今人 反以爲神母 抑有功德 而然乎
후가 말하기를
“ <나비那比> 신모(神母)는 <달문>대모의 노비이다.
지금 사람들이 신모를 반대하는 것은 공덕이 있음에도 막으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입니까?“
花曰 婢子何常婢 而功德何常功哉 我無色 而汝悅之 汝無威 而人畏之 何嘗有功德哉
只是 淤池 爲玉門 腐草 爲吾汝 而已 竹室 宝弓 何嘗有功德哉
<위화>랑이 말하기를
“ 노비는 어찌 영원한 노비이며 공덕은 어찌 영원한 공덕이겠습니까?
나는 색(色)이 없이도 당신을 기쁘게 하고
당신은 위엄이 없이도 사람을 두렵게 하니
어찌 일찍이 공덕이 있다하겠습니까?
단지 진흙 같은 못이 옥문지(玉門池)가 되고 썩은 풀이 나와 당신이 되었는데
<죽실竹室(433-496)>과 <보궁宝弓>이 어찌 일찍이 공덕이 있다하겠습니까?“
호원(다실) - 죽실(433-496)
궁혜(보심) - 보궁(450?- )
后曰 浪哉苾我
후가 말하기를
“ 물결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라.”
郁永者 昌永之後也
<욱영郁永>은 <창영昌永>의 후손이다.
일지(야비) - 창영(110?-176)
<창영>은 파사왕 14년(139년)에 태자병관이 되었고
<욱영(450?- )>은 자비왕 17년(474년)에 병관이 되었다.
世守那比神祠 在玉門池
대대로 나비신사(那比神祠)를 지켜왔는데 그 신사(神祠)는 옥문지(玉門池)에 있었다.
有七百 奈樹 國人尊之 爲奈祠 貢布歲 以萬敫
칠백 그루의 나수(奈樹)가 있어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니
나사(奈祠)로 하여 해마다 포목을 바치고 수많은 사람이 노래하였다.
故郁永之家 富裕 多珍宝
그런 까닭에 <욱영>의 집은 부유하고 진기한 보물이 많았다.
實竹公母竹室娘主 致誠于奈祠 而生公
<실죽實竹>공의 어머니 <죽실竹室(433-496)>낭주가
나사(奈祠)에서 치성을 드려 <실죽>공을 낳았다.
及長 與郁永 相善 郁永妻宝弓 亦禱祠 而生 郁永 入實相(竹?)公 幕下
장성하여 <욱영>과 더불어 서로 잘 지내니
<욱영>의 처 <보궁> 역시 나사(奈祠)에서
<욱영>이 <실죽>공의 막하에 들어가도록 기도하였다.
宝弓亦爲實相(竹?)公 供妾 生公女 宝竹 還爲 郁永妻 守那比神
<보궁> 역시 <실죽>공을 위하여 첩으로 바쳐 공의 딸 <보죽宝竹>을 낳고 돌아와
<욱영>의 처가 되어 나비신(那比神)을 지켰다.
竹室之母多室 亦曰聚姬者 句麗人也
<죽실>의 어머니 <다실多室>은 <취희聚姬>라고 하는데 고구려 사람이다.
初爲好原妾 生竹室 而後爲實相公妾
처음에 <호원好原>의 첩이 되어 <죽실>을 낳고 후에 <실상實相>공의 첩이 되었다.
호동(수화) - 호원(396-438)(다실) - 죽실(433-496)
호물(보반) - 실상(395-461)(죽실) - 실죽(449- )
竹室從之 共事那比神 夢見 白額虎告 于竹室
<죽실>이 어머니를 따라서 나비신(那比神)을 같이 섬기니
꿈에 이마가 흰 호랑이가 <죽실>에게 고(告)하였다.
實相公聞之曰 貴子夢也 可以生吾子
<실상>공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 귀한 아들을 낳을 꿈이니 나의 아들을 낳음이 옳다.”
聚姬乃引竹室 于公寢
이에 <취희>가 <죽실>을 <실상>공의 잠자리로 이끌었다.
公遂合竹室曰 汝爲何功德 而得夢乎
마침내 <실상>공이 <죽실>과 합환하고 말하기를
“ 너는 어떤 공덕으로 꿈을 꾸었는가?”
竹室曰 妾於祠 前見 小兒輩 欲捕水天牛 而殺之 故救而放之也
<죽실>이 밀하기를
“ 첩이 사당에서 전에 작은 아이들이 물속의 천우(天牛)를 사로잡아 도살코자하여
구하여 놓아주었습니다.“
公曰 汝行陰德 必生吾好子 不可以婢妾待之
<실상>공이 말하기를
“ 네가 음덕을 행하여 반드시 나의 좋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첩으로 대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
乃請于帝 而吉之爲夫人
이에 帝에게 청하여 부인(夫人)으로 하여 길례를 올렸다.
果生 實竹公
과연 <실죽實竹>공을 낳았다.
<실죽>이 태어난 449년은 己丑년으로 土牛의 해이다.
竹室曰 我母爲汝妾 而我爲汝妻 不安于心也
<죽실>이 말하기를
“ 나의 어머니는 당신의 첩인데 내가 당신의 처가 되니 마음이 불안합니다.”
公然之 亦請于帝 而幷欲爲夫人
<실성>공이 그렇다고 여겨 역시 帝에게 청하여 나란히 부인이 되게 하고자 하였다.
帝以骨微 難之 只嵩品秩
제는 골품이 낮아 어렵게 여겨 단지 품계만 높여주었다.
公乃納竹室 于帝 媚於枕席之間 而請之
이에 <실성>공이 <죽실>을 제에게 바치니
잠자리에서 아첨을 하여 어머니가 부인이 되기를 청하였다.
帝頗動之 命聚姬爲宝海女
제가 자못 마음이 흔들려 <취희>를 <보해宝海>의 딸로 명하였다.
내물(보반) - 보해(390-441)
보해는 고구려에 인질로 있다가 418년에 돌아왔다.
未幾 竹室又娠帝女
얼마 되지 않아 <죽실>은 또 제의 딸을 임신하였다.
帝摩其腹曰 吾子之祖也
제가 그 배를 문지르며 말하기를
“ 내 아들의 자식이니 할아버지이다.”
내물(보반) - 눌지(387-458) - 자비(414-479) - 비처(436-500)
보해(390-441) - 취희(호원) - 죽실(433-496)
미해(393-433)
호물(보반) - 실상(395-461)
<눌지>, <보해>, <미해>, <실상>은 형제간이다.
<취희>를 <보해>의 딸로 하였으므로 <취희>의 딸인 <죽실>이 <눌지>의 딸을 임신하자
<눌지>가 <죽실>의 배를 문지르며
<자비>의 자식이니 할아버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乃許吉之 故聚姬亦爲公夫人 侍於左右
이에 길례를 허락한 까닭에
<취희> 역시 <실상>공의 부인이 되어 좌우에서 시중을 하였다.
人稱 雉卵湯 誹 其子母 聚麀也
사람들이 치란탕(雉卵湯)이라고 하며 그 딸과 어미가 암사슴을 모은다고 비난하였다.
竹室事公 十四年 而公薨
<죽실>이 공을 섬긴 지 14년에 <실상>공이 죽었다.
<실상>공이 죽은 해는 461년이다.
이 때 <죽실>의 나이 29살이다.
年尙二十九 慈帝 以其少 命嫁之
나이 29살 이었으나 <자비>제는 오히려 어리다 하여 출가(出嫁)하도록 하였다.
竹室曰 妾已事兩帝一君 又何適乎
<죽실>이 말하기를
“ 첩은 이미 두 임금과 한 君을 섬겼는데 또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죽실>은 <눌지>제와 <자비>제 그리고 <실상>군을 섬겼다.
帝益憐之 陞爲二品權妻 入居宮中
제가 이를 더욱 가련히 여겨 2품 권처(權妻)로 올리고 궁중에 들어와 살도록 하였다.
又生帝女 寵益高 以爲奈祠 陰祐盡 以賞賜納祠飾之
또 제의 딸을 낳으니 총애가 더욱 높아져 나사(奈祠)를 음으로 도와
하사 받은 상을 모두 사당에 바쳐 나사(奈祠)를 장식하였다.
時東宮改修 太子移御所 接 於竹室宮
때에 동궁(東宮)을 수리하니 태자가 거소를 옮겨 죽실궁(竹室宮)에 접하게 되었다.
竹室 以其所 栽草花 日 進太子 媚之 太子悅 其色 挑弄之
<죽실>이 그 곳에 풀과 꽃을 심다가 하루는 태자에게 다가가 아첨을 하니
태자가 그 색(色)을 좋아하며 농을 돋우었다.
竹室 以目送情 而密語
<죽실>은 눈으로 정(情)을 보내며 속삭였다.
太子曰 恐人耳目 走歸之
태자가 말하기를
“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우니 빨리 돌아가십시오.”
太子思慕之 上樓 吹笛 而送音 竹室出倚欄干 而相望戱之
태자가 <죽실>을 사모하여 누각 위에서 피리를 불어 소리를 보내니
<죽실>이 나와 난간에 기대어 서로 바라보며 놀았다.
良久曰 帝將臨幸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 帝가 곧 행차하려 합니다.”
不可不 浴 解衣 示膚 而下之
어쩔수 없이 욕실에서 옷을 벗으니 아래에 피부가 보였다.
太子 不覺 心動 放其籠鳥 而逐之 故入其浴室 呼之 曰 大母請 洗 我汚足
태자는 심장이 뛰었으나 깨닫지 못하고 새장 속의 새를 놓아주어 날려 보내니
그 욕실에 들어와 <죽실>을 부르며 말하기를
“ 대모가 나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기를 청합니다.”
竹室 知其意 却婢出之 出槽迎之
<죽실>이 그 뜻을 알고 노비를 물리치고 욕조에서 나가 태자를 맞이하였다.
太子乃抱竹室 入槽通之
이에 태자가 <죽실>을 안고 욕조에 들어가 통정하였다.
竹室感泣曰 妾蒙 聖恩 願作同穴之身 此處 多人目 不得 浪藉
太子 若從妾 于奈祠 淨室 則雖姿意 盡歡 而人 莫知之
<죽실>이 감읍하며 말하기를
“ 첩이 성은을 입었으니
동혈지신(同穴之身 : 죽어서 같이 묻히는 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곳은 여러 사람의 눈이 있어 질펀하게 놀지 못하니
태자가 만약 첩을 따라 나사(奈祠)에 가면 방을 깨끗이 하여
비록 마음대로 즐겨도 사람들이 알지 못할 것입니다.“
乃以琴笛 相應 爲約 而日就 奈祠 相合
이에 가야금과 피리로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매일 나사(奈祠)에서 서로 만났다.
遂娠太子女 太子益愛之 以奈祠 猶遠 托言 學琴 至 竹室之寢
마침내 태자의 딸을 임신하여 태자는 <죽실>을 더욱 사랑하게 되니
나사(奈祠)는 가야금을 배우는 구실을 붙이기에는
<죽실>의 침실에 도착하기가 오히려 멀었다.
或書 而繼夜 婢皆知之 嘲 琴曰 雌蛙聲 笛曰 雄蛙聲
때로는 낮에서 밤까지 계속하여 함께 있으니 노비들 모두가 이를 알고
가야금은 암 개구리 소리고 피리는 숫 개구리 소리라고 조롱하였다.
一夜 太子與竹室 沈淪 抱臥
어느 날 밤 태자와 <죽실>이 사랑에 빠져 안고 누워있었다.
時方風雨 以爲帝 不幸臨矣 豈謂 帝 微行 而至入其寢
而見 太子合 于竹室 而睡深
때에 비바람을 피하려고 帝가 임의로 행차하지는 않았는데
어찌하여 알려져 帝가 미행하여 그 침실에 들어와 보니
태자와 <죽실>이 합환하여 깊이 잠들어 있었다.
帝怒召 巴胡后 責之 將流 太子 及竹室
帝가 노하여 <파호巴胡>后를 불러 꾸짖으며 태자와 <죽실>을 유배를 보내려고 하였다.
태자 <비처(436-500)>는 <자비(414-479)>와 <파호(420-482)>의 아들이다.
巴胡乃 取餠 與帝 及太子 覺 喫少 許 而自取 而食其餘曰
共色亦 如共食 而已
竹室 先帝 寵姬 而汝悅之 汝之寵姬 太子獨 不可悅乎
이에 <파호>가 떡을 가져와 제와 태자에게 주며 한 모금씩 먹어보라 하며
자기도 나머지를 먹으며 말하기를
“ 색(色)을 같이 하는 것은 음식을 같이 먹는 것과 같습니다.
<죽실>은 <눌지>제의 총희로 당신이 좋아하여 당신의 총희가 되었는데
유독 태자가 좋아하면 옳지 않은 것입니까?“
帝乃小解欲歸之
帝는 이에 조금 풀려 돌아가고자 하였다.
巴胡后曰 冒雨而 來 怒 而歸 非人情也
吾欲與汝 共枕 于竹室之寢
<파호>후가 말하기를
“ 비를 피하려고 와서 노하여 돌아가니 인정(人情)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죽실>의 침실에서 같이 자고자 합니다.“
遂引帝入寢 呼 竹室 入之
마침내 제를 침실에 끌어들여 <죽실>을 불러 들어오게 하였다.
竹室不敢入 后使諸婢 携來引入 使臥帝側曰 聖人不妬
<죽실>이 감히 들어오지 못하니 후가 여러 노비를 시켜 강제로 들어오게 하여
제의 곁에 눕히며 말하기를
“ 성인은 질투를 하지 않습니다.”
濡 餘多 福 遂 挑帝 聯房
적시는 복이 남아도니 마침내 帝를 돋우어 연이어 방사를 치렀다.
帝乃氷解 不復問之
이에 帝는 완전히 풀려 다시는 묻지 않았다.
是以 太子姿意出入 設小門 於寢後 帝至 則太子 從小門 走 宮中
이로서 태자는 마음대로 출입하고 침실 뒤에 작은 문을 설치하여
帝가 도착하면 태자는 작은 문을 따라 궁중으로 도주하였다.
歌曰 東門 迎太陽 西門 送小陽 妾身 不是好淫 雨 只是 聖恩 兩 難忘
노래하기를
“ 동문(東門)에서 태양(太陽)을 맞이하여 서문(西門)에서 소양(小陽)을 보내네.
첩의 몸은 음탕함을 좋아하지 않는데
단지 비가 내려 성은을 입었으니 태양(太陽)과 소양(小陽)은 잊기가 어렵구나.“
太子 卽位 待 以后禮 後宮 無 與之 抗禮
태자가 즉위하여 후의 예로 대우하니 후궁들이 아무도 그 예에 거부하지 못하였다.
政事多出其手 習宝公 依之 爲重
정사(政事)가 그 손에서 많이 나오니
<습보習宝>공이 그녀에게 의지하여 중하게 되었다.
내물(보반) - 보해(성명) - 습보(420-485)(조생) - 지도로(437-514)
<습보>는 <내물>제의 아들인 <보해>의 아들로 일명 <보보아>라 하였으며
지증제 <지도로>의 아버지이다.
炤明 迎帝 兩后之入宮 皆被其薦引之力
소명(炤明)과 영제(迎帝) 두 后가 궁궐에 들어온 것은
모두 <죽실>이 천거하여 끌어들인 힘이다.
<비처>의 천후인 소명(炤明)천후는 <지도로>의 딸 <후황(466-499)>을 말하며
<지도로>의 천후인 영제(迎帝) 천후는 <등흔>의 딸 <연제(463-525)>를 말한다.
迎帝之初薦于毗帝
영제(迎帝)를 처음 <자비>제에게 천거하였다.
時 竹室 以相衣付之曰
那比神 護寵之衵也 大貴而無相忘
당시 <죽실>이 서로 속곳을 바꾸어 입고 부탁하며 말하기를
“ 나비신(那比神)이 보호하고 총애하는 속곳이다. 크게 귀하게 되니 서로 잊지 말자.”
迎帝感其恩 常 呼以叔母 情義不變
영제(迎帝)는 그 은혜에 감격하여 항상 숙모라고 부르며
정(情)과 의(義)가 변하지 않았다.
奸細輩 讒 迎帝 于昭明 則竹室 輒解之 得無事者多
간사한 무리들이 소명(昭明)천후에게 영제(迎帝)를 참소하니
<죽실>이 번번이 이를 해결하여 무사하게 된 것이 여러 번이었다.
宝弓者 宝沈之女也 亦事那比神 以竹室爲神兄
<보궁宝弓>은 <보심宝沈>의 딸인데
역시 나비신(那比神)을 섬겨 <죽실>을 신형(神兄)으로 여겼다.
交義甚密 竹室歡之 如夫婦曰
吾功德 乃汝功德 以放生 救恤計 以較之
교의(交義)가 심히 친밀하여 <죽실>이 이를 기뻐하며 부부처럼 말하기를
“ 나의 공덕과 너의 공덕은 방생(放生)으로 구휼하는 계책이니
서로 이를 견주는 것이다.”
宝弓見人寒無衣 而脫衣與之
<보궁>이 추운 겨울에 옷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는 옷을 벗어 주었다.
竹室聞之曰 無衣 則無食
<죽실>이 이를 듣고 말하기를
“ 옷이 없는 것은 음식이 없는 것이다.”
遣人 負粮 追 而與之 如是者 累百計
사람을 보내어 양식을 짊어지고 쫓아가 주니 이와 같은 자가 수백 명이었다.
常謂宝弓曰 大貴 未若事神 汝可爲祠主
항상 <보궁>에게 일러 말하기를
“ 크게 귀한 것은 신을 섬기는 것만 못한데 네가 어찌 사주(祠主)가 되겠는가?”
乃召祠 嗣 郁永 與宝弓通之
이에 후사(後嗣) <욱영>을 사당으로 불러 <보궁>과 통정하게 하였다.
郁永 素仰 竹室 一如其命 遂以宝弓 爲祠主 奉 竹室爲祠大監
<욱영>은 <죽실>의 명성을 오래 전부터 들어 그 명령에 따르니
마침내 <보궁>이 사주(祠主)가 되어 <죽실>을 나사(奈祠) 대감(大監)으로 받들었다.
毗帝卽位 竹室退 爲習宝公 暖房
<자비>제가 즉위하지 <죽실>은 물러나 <습보>공의 난방(暖房)이 되었다.
<자비>제가 즉위한 해는 458년이다.
이때 <죽실>은 26세이고 <습보> 39세, <자비> 45세이다.
及公 薨 以奴 碧仁 爲私臣 生女竹仁 嫁 于宝弓子弓永 生子竹永
마침내 <습보(420-485)>공이 죽으니
종(奴) <벽인>을 사신(私臣)으로 삼아 딸 <죽인竹仁>을 낳고
<보궁>의 아들인 <궁영弓永>에게 출가하여 아들 <죽영竹永>을 낳았다.
벽인(죽실) - 죽인(486- )
궁영(죽실) - 죽영(488?- )
迎帝欲報其舊恩 命竹仁入侍于帝 生子
영제(迎帝)가 그 구은(舊恩)에 보답하고자
<죽인>에게 명하여 제를 시중들게 하여 아들을 낳았다.
竹公 妻 以眞晩公主 生子䨿公
<죽공竹公>은 <진만眞晩>공주를 처로 하여 아들 <잡공䨿公>을 낳았다.
모진(죽인) - 죽공(505- )
지도로(연제) - 진만(502- )
죽공(진만) - 잡공(520?- )
竹公 荒外 而不親 公主乃與(竹永)私通 願改嫁竹永 而主祠許之 生女筍姬
<죽공>이 변방에 나가 친하지 못하니 공주는 <죽영>과 사통하여
<죽영>에게 개가하기를 원하여 사주(祠主)가 이를 허락하여 딸 <순희筍姬>를 낳았다.
죽영(진만) - 순희(527- )
竹永使其嬖人 妙人 通其妻 生女篁氏 爲狗祠主
<죽영>은 그 폐인(嬖人)인 <묘인妙人>을 시켜
그 처와 통정케 하여 딸 <황씨篁氏>를 낳아 구사(狗祠)의 사주(祠主)가 되었다.
묘인(진만) - 황씨(530- )
尋宗妻 簡公通之 生子篁宗
<심종尋宗>의 처가 <간공簡公>과 통정하여 아들 <황종篁宗>을 낳았다.
簡公 尋宗母眞昭公主與竹公相通 而生也
<간공簡公>은 <심종尋宗>의 어머니 <진소眞昭>공주가
<죽공竹公>과 상통하여 낳았다.
모진(진희) - 진소(506- )
모진(죽인) - 죽공(505- )
죽공(진소) - 간공(525?- )
至是 狗祠奈祠皆 奉竹室 宝弓 皆稱其功德此章
이때에 이르러 구사(狗祠)와 나사(奈祠)는 모두 <죽실>과 <보궁>을 받들고
모두가 그 공덕을 이와 같은 문장으로 말하였다.
竹公生子䨿公福于奈祠
<죽공>의 아들 <잡공>이 나사(奈祠)에서 복을 빌었다.
迎帝與魏花郞臨之 入其淨室 見竹室宝弓之像 而謂
영제(迎帝)와 <위화>랑이 왕림하여 그 깨끗한 방에 들어와
<죽실>과 <보궁>의 상(像)을 보고 생각하였다.
郎曰 人有 以竹室 碧仁 比 汝我 我實不然
又以達門 比 竹室 而那比 比 宝宮者有之 何如
<위화>랑이 말하기를
“ <죽실>과 <벽인>을 당신과 나와 비교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달문>을 <죽실>에 비교하고 <나비>를 <보궁>에 비교하는 자가 있는데
어찌 같겠습니까?“
郎乃說大母經 而入齋
이에 <위화>랑이 대모경(大母經)을 설명하고 들어와 재(齋)를 올렸다.
后曰 望祖 晦母 三神護之 而祠丁 作亂 藏 於岩穴 而避之
朕與汝 若遭 不測之變 則汝有何術 而遁之
후가 말하기를
“ 죽은 할머니 <벽회碧晦>는 삼신이 보호하여 사당 장정의 난리가 일어났을 때
동굴에 숨어 피신하였는데
짐과 당신이 만약 사고를 당하면 당신은 무슨 술수로 달아나겠습니까?“
花曰 禍福之 所由其源 甚遠可遁 則遁可當 則當 何用術乎 無乃汝遁我 我遁汝乎
<위화>랑이 말하기를
“ 길흉화복은 그 원인이 이유인데 아주 멀리 달아나면 달아남이 가한 것이 당연하니
무슨 술수가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이 나를 달아나게 하고 내가 당신을 달아나게 하는 것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后曰 遁哉苾我
후가 말하기를
“ 달아남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라.”
捺己神山有三神祠 碧氏祀 狐息氏祀 兎率氏祀
날기(捺己) 신산(神山)에 삼신(三神)의 사당이 있는데
벽씨(碧氏) 사당, 호식씨(狐息氏) 사당, 토솔씨(兎率氏) 사당이다.
羊以冢女主之 而互相 迎夫 作親狐主
양사(羊祠)가 적녀(嫡女)를 사주(祠主)로 하니 서로 지아비를 맞이하여
호사(狐祠)의 사주(祠主)와 친하게 되었다.
양사(羊祠)는 <솔화率華>가 사주(祠主)이고
호사((狐祠)는 <벽회碧晦>가 사주(祠主)이고
토사(兎祠)는 <식씨息氏>가 사주(祠主)이다.
碧晦 皃美 其奴 慕之 蒙 白狐皮 乘 其晝寢 而奸之
<벽회碧晦>는 얼굴이 아름다워 그 종(奴)이 사모하여 흰 여우 가면을 쓰고
낮잠을 자는데 침상에 올라 와 간음하려 하였다.
晦以爲神狐 而受之 生子 望 美 風采 尙義氣
<벽회>는 신호(神狐)가 되어 이를 받아들여 아들 <벽망碧望>을 낳았는데
아름답고 풍채는 제법 의기(義氣)가 있었다.
羊主 率華 欲迎爲夫 獻馬五雙 牛五雙 赤豆三十石 白米五十石
正布七十匹 白紬三十匹 爲幣 以烝豚 七肥 神酒十二甁 乾魚五脯 爲賂 而求之
양사(羊祠)의 사주(祠主) <솔화率華>는 지아비를 맞이하려고
말 암수 다섯 마리, 소 암수 다섯 마리, 붉은 콩 서른 말, 흰 살 오십 말,
품질 좋은 베 칠십 필, 흰 명주 서른 필을 폐백으로 바치고
삶은 돼지 일곱 마리, 신주(神酒) 열 두병, 건어물 다섯 포를 뇌물로 구혼하였다.
時晦與望 相通 而生女 碧氏
때에 <벽회>와 <벽망>이 상통하여 딸 <벽씨碧氏>를 낳았다.
벽망(벽회) - 벽씨
不欲 捨望 而貪其財 猶豫 不決
<벽망>을 버리지 않고 그 재물을 탐하니 아직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望謂晦曰 率氏 不 吾可爲其夫 而移財於汝
<벽망>이 <벽회>에게 일러 말하기를
“ <솔화>는 내가 그 지아비가 되기에 불가하니 그녀에게 재물을 도로 보내시오.”
晦頗動之 率華乃加其幣 馬五十匹 黃金盒 眞珠衣等
<벽회>가 자못 마음이 움직이니 <솔화>는 폐백으로
말 오십 필, 황금 합, 진주 옷 등을 더하였다.
晦乃許之 將發 晦兄 丙人卒
이에 <벽회>가 허락하고 <벽망>을 보내려고 하니
<벽회>의 오빠 <병인丙人>이 죽었다.
丙人妻 乃兎主息氏也
<병인>의 처는 토사(兎祠) 사주(祠主) <식씨息氏>이다.
息氏與晦同年生 丙人二子 皆幼
<식씨>는 <벽회>와 나이가 같고 <병인>의 두 아들은 모두 어렸다.
是年 春 望 聘 于兎祠 遊連 一旬 息氏慕 而通之 故欲迎爲繼夫
이 해 봄 <벽망>이 토사(兎祠)에 초빙되어 연이어 열흘을 유람하니
<식씨>가 사모하여 통정한 까닭에 계부로 맞이하고자 하였다.
聞 率氏幣 而倍之 而求之
<솔화>의 폐백을 듣고는 갑절로 하여 구혼하였다.
晦迷不知所決
<벽회>는 미혹하여 그 해결책을 알지 못하였다.
望 以率華 年少 而美 欲却息氏
<벽망>은 <솔화>가 나이가 어리고 아름다워 <식씨>를 물리치려고 하였다.
息氏乃自詣 于狐祠 說晦曰
吾知 妹主與侄 有私 若爲繼夫 則當許 半月 歸妹
이에 <식씨>는 스스로 호사(狐祠)에 이르러 <벽회>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 나는 동생이 조카와 사통한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계부(繼夫)가 되면 당연히 <반월半月>은 동생에게 돌아가도록 허락 할 것이다.“
晦諾之 乃迫 于望曰 伯母與我 非汝 無可夫 率華年少 豈無他人哉
汝若愛美少 而棄吾等 非義氣也
<벽회>가 허락하고 <벽망>에게 핍박하며 말하기를
“ 백모와 나는 네가 아니면 지아비로 가한 사람이 없다.
<솔화>는 어린데 어찌 다른 사람이 없는가!
만약 네가 아름답고 어린 것을 사랑하여 우리를 버리면 의기(義氣)가 아니다.“
望 不得已 與息氏 婚于祠中 而欲却 率華之幣
<벽망>은 부득이 <식씨>와 호사(狐祠)에서 혼인하여
<솔화>의 폐백을 물리치려 하였다.
率不聽 乃擇 碧洪 假作 望
<솔화>가 듣지 아니하니 <벽홍碧洪>을 택하여 가짜 <벽망>으로 꾸몄다.
而請來 迎率 夜來 婚 于祠
<솔화>를 오도록 청하고 <솔화>를 맞이하여 밤이 되니 호사(狐祠)에서 혼인을 하였다.
率臣 有知 望者 故恐 事洩 先 以望 約 于祠 而共枕 至夜半
<솔화>의 신하 중에 <망>을 아는 자가 있어
앞서 <벽망>이 호사(狐祠)에서 약속한 일이 새어나갈 것을 두려워하여
같이 침실에서 깊은 밤까지 있었다.
望 起 如厠 洪代入之
<벽망>이 일어나 뒷간에 가니 <벽홍>이 대신하여 들어갔다.
洪 皃美 率愛之 同車 而歸
<벽홍>은 얼굴이 아름다워 <솔화>가 사랑하여 수레를 같이 타고 돌아갔다.
知 望者 及歸 而覺之
<벽망>을 아는 자가 돌아 와 알게 되었다.
洪泣訴曰 我眞望也 汝臣所言者 非望 而洪也
<벽홍>이 울면서 말하기를
“ 내가 진실로 <벽망>입니다.
당신의 신하가 말하는 자는 <벽망>이 아니고 <벽홍>입니다.“
率信之 責其言者 而衆說 紛紛 不止
<솔화>는 이를 믿고 그 말한 자를 책망하니 여러 말이 분분하여 그치지 않았다.
歲餘 率生洪女 以爲嗣
몇 년이 지나 <솔화>가 <홍벽>의 딸을 낳아 후사(後嗣)가 되었다.
洪始 信 率華之愛 已備告代入之事
<벽홍>은 비로소 <솔화>의 사랑을 믿으니 이미 준비하여 알려서 바꾸어 넣은 일이다.
率華乃托聘 祠會獵 而至兎祠 與望 相見 見其倍美 於洪 而益慕之 泣謂望曰
與我約祠者君也 與我共枕初歡者亦君也 君乃我夫也 何以昏夜棄我他 適乎
이에 <솔화>는 사당의 사냥모임에 초대되어 토사(兎祠)에 도착하여
<벽망>을 만나 보니 그 아름다움이 <벽홍>보다 갑절이어서 더욱 사모하여
울면서 <벽망>에게 일러 말하기를
“ 나와 함께 사당에서 약속한 사람이 당신이고
역시 나와 함께 첫날밤을 같이 자며 즐긴 사람이 당신이니
당신은 나의 지아비인데 어찌 캄캄한 밤에 나를 버리고 가셨습니까?“
望曰 非我志也 吾亦戀汝久矣
<벽망>이 말하기를
“ 나의 뜻이 아닙니다.
나 역시 당신을 오래도록 그리워하였습니다.“
率益怨息氏 奪其夫欲 報仇
<솔화>는 더욱 <식씨>를 원망하여 그 지아비를 빼앗아 원수를 갚으려 하였다.
望曰 三神兄弟 不可爭也 可以義讓
<벽망>이 말하기를
“ 삼신(三神)의 형제는 다투지 않고 의(義)로서 양보하는 것이 옳습니다.”
率猶不解 與望 托獵 而出相通 於林木之間
<솔화>는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고
<벽망>과 함께 사냥을 나가 숲속에서 상통(相通)하였다.
息氏之臣告 于息氏 息氏怒罵
<식씨>의 신하가 <식씨>에게 고하니 <식씨>가 노하여 욕을 하였다.
率華曰 汝托聘 而淫我夫 當受 神罰
<솔화>가 말하기를
“ 당신이 초대하여 나의 지아비를 간음하였으니 마땅히 신벌을 받을 것이다.”
率華罵息氏曰 汝以匈計奪我夫 而反罵我乎
<솔화>가 <식씨>에게 욕을 하며 말하기를
“ 당신이 흉계로 나의 지아비를 빼앗고는 반대로 나에게 욕을 하는가?”
二女遂大鬨 望力止之
마침내 두 여자가 크게 싸우니 <벽망>이 힘으로 이를 저지하였다.
率歸其祠 發祠丁七千人 襲兎祠 大戰 于兎川之北 兎軍大敗
<솔화>가 그 사당으로 돌아가 사당의 장정 7천명을 선발하여 토사(兎祠)를 습격하여
토천(兎川)의 북쪽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 토군(兎軍)이 대패하였다.
息氏與望 逃歸狐祠 息氏美女皆 爲羊軍 所汚 兎祠財宝 亦歸于率華
<식씨>와 <망>은 달아나 호사(狐祠)로 돌아가고
<식씨>의 미녀들 모두는 양군(羊軍)에게 더럽혀졌고
토사의 재물과 보화 역시 <솔화>에게 돌아갔다.
率華遣人于晦曰 若不送望 當伐狐祠
<솔화>가 <벽회>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 만약 <벽망>을 돌려보내지 않으면 당연히 호사(狐祠)를 정벌할 것이다.”
晦乃藏 息氏及望 於秘穴 羊軍圍狐祠七日 不得
이에 <벽회>는 <식씨>와 <벽망>을 비밀 동굴에 숨기니
양군(羊軍)이 호사(狐祠)를 7일간 포위하였으나 <벽망>을 득하지 못하였다.
率華怒欲屠 狐祠人心 洶洶
<솔화>가 노하여 도살하려 하니 호사(狐祠)의 인심이 흉흉하였다.
望乃謂晦曰 率華英雄也 不以 此人爲妻 而爲汝等 所迷乃吾過也
이에 <벽망>이 <벽회>에게 일러 말하기를
“ <솔화>는 영웅입니다.
이 사람의 처가 되지 못한 것은 당신들이 미혹한 것이니 나의 잘못입니다.“
遂出見率華曰 汝欲以我爲夫 則盡以汝軍委我可也
마침내 나가 <솔화>를 만나 말하기를
“ 당신은 나를 지아비로 하고자 하니
당신의 군대 모두를 나에게 맡김이 옳을 것입니다.”
率卽許之曰 女子唯有夫可矣 一㘦事唯郎君裁之
<솔화>가 이를 허락하고 말하기를
“ 여자는 오직 지아비가 있음이 옳으니 일체의 일은 오직 낭군에게 달렸습니다.“
望乃與率華 歸羊祠 婚之
이에 <벽망>과 <솔화>가 양사(羊祠)에 돌아가 혼인을 하였다.
盡以其臣 分掌三祠 於是 三祠 皆歸 於望
그 신하들 모두를 삼사(三祠)에 나누어 관장하게 하니
삼사(三祠) 모두가 <벽망>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終望之世 三祠爲一家 而無相爭
<벽망>의 세대 말년에 삼사는 한 가족이 되어 서로 다툼이 없었다.
望沒 望後妻 率仁者 率華所生 碧洪女也
<벽망>이 죽었다.
<벽망>의 후처 <솔인率仁>은 <솔화>가 낳은 <벽홍>의 딸이다.
欲立洪族 時 望女 碧氏 爲狐主 以息氏 所生 丙人子 晉 爲夫 生 子碧晉 女碧我
<벽홍>의 가족을 세우고자 할 때 <벽망>의 딸 <벽씨碧氏>가 호주(狐主)가 되어
<식씨>가 낳은 <병인>의 아들 <식진息晉>을 지아비로 하여
아들 <벽진碧晉>과 딸 <벽아碧我>를 낳았다.
병인(식씨) - 식진
벽망(벽회) - 벽씨
식진(벽씨) - 벽진
벽아(469-526)
이 <벽아>가 <위화>의 어머니이다.
率仁 以其庶弟 率咸 欲爲 碧氏夫 托望遺命 而迫之
<솔인率仁>은 그 서제(庶弟) <솔함率咸>을 <벽씨>의 지아비로 하고자 하여
유언을 부탁하여 핍박하였다.
碧氏 不得已 迎之爲夫
<벽씨>는 부득이 <솔함>을 지아비로 맞이하였다.
息晉 率子女 歸 兎祠 欲興祠 而致財 巡行各地
<식진>은 자녀(벽진과 벽아)를 거느리고 토사(兎祠)에 돌아 와
토사(兎祠)를 일으키고자 재물을 모아 각지로 순행하였다.
見遜同 牧場 多肥牛 欲買之 無価
<손동遜同>을 만나니 목장에 살찐 소가 많아 이를 사려고 하였으나
가격이 맞지 않았다.
遜同 而新富 而無骨品 願以千牛 易碧我妻之 而榮其骨
<손동>은 새로운 부자로 골품이 없어
천 마리의 소와 <벽아>를 바꾸어 그 골품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였다.
同 已年 年五十四 而碧我 時 年才十四
<손동>은 이미 54살이고 <벽아>는 이때 겨우 14살이었다.
故難之 碧我曰 遜同人豪也 何以老棄乎
그런 까닭에 이를 어렵게 여기니 <벽아>가 말하기를
“ <손동>은 호걸인데 어찌 늙었다고 멀리 하겠습니까?”
願自適 而助父 息晉乃喜 以碧我妻遜同
스스로 원하여 아버지를 도우니
<식진>은 기뻐하며 <벽아>를 <손동>의 처가 되게 하였다.
同大喜 自至兎祠 婚之 生碧花后 數月同卒
<손동>은 크게 기뻐하며 토사(兎祠)에 이르러 혼인하고
<벽화碧花>后를 낳고 수개월 후 <손동>이 죽었다.
손동(벽아) - 벽화(485- )
이 <벽화>가 신라 최초의 원화(源花)이다.
同弟 波路 托同 有 遺命 繼娶 碧我 波路 前妻 妬之
誣告 波路 殺其兄 遜同 而奸 碧我
<손동>의 동생 <파로波路>는 <손동>의 유언을 따라 <벽아>를 아내로 맞이하니
<파로>의 전처가 이를 질투하여
<파로>가 그 형 <손동>을 살해하고 <벽아>를 간음하였다고 무고(誣告)하였다.
村主 不能辨 其獄 小吏輩 見碧我之美 欲奪之 遂强䧟 波路 將誅之
촌주(村主)가 그 옥사를 판별하지 못하니
작은 벼슬아치들이 <벽아>의 미모를 보고 빼앗으려고
마침내 강제로 함정에 빠트려 <파로>를 주살코자 하였다.
剡臣公 以理方 按察 到郡 碧我聞之 私詣 於途 而訴之
<염신剡臣>공이 이방(理方) 안찰사로 군(郡)에 도착하여 <벽아>의 소문을 듣고
사사로이 도중에 이르러 이를 송사(訟事)하였다.
公見其美 命入車中 逼淫之 碧我曰
妾亦月碧太后之後裔也 非遊花淫物也 願郎君勿棄我
<염신>공이 그 미모를 보고 수레 안에 들어오도록 하여 핍박하여 간음하려고 하니
<벽아>가 말하기를
“ 첩 역시 <월벽月碧>태후의 후손으로 음탕한 유화(遊花)가 아니니
낭군께서 저를 버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公許之 載而歸 有寵
<염신>공이 이를 허락하고 수레에 싣고 돌아와 총애하였다.
公召息晉 爲兵官 命統三祠 以波路爲捺己貢吏
<염신>공은 <식진>을 불러 병관으로 하여 삼사(三祠)를 통솔하도록 하고
<파로>를 날기(捺己) 공리(貢吏)로 하였다.
及碧花爲后 息晉 已老 命爲神山村主 爵奈麻位
마침내 <벽화>가 后가 되니 <식진>은 이미 늙어
신산(神山) 촌주로 명하고 나마(奈麻)의 작위를 내렸다.
息晉子碧晉 從剡臣公 平妙心亂 以功 授沮知 付 於仙門
<식진>의 아들 <벽진>은 <염신>공을 따라 <묘심>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이 있어
저지(沮知)의 직위를 주어 선문(仙門)에 보내었다.
丙人 庶女 息兒 祠丁之亂 爲率華臣
<병인>의 서녀(庶女) <식아息兒>는 사당 장정의 난으로 <솔화>의 신하가 되었다.
時味之所掠 仍爲其妻 生女 息時 息味
<시미時味>가 그녀를 노략질하여 그 처가 되어 딸 <식시息時> <식미息味>를 낳았다.
시미(식아) - 식시
식미
時 爲碧晉妻 生 息臣 味 爲碧仁妻 生子 息仁
<식시>는 <벽진碧晉>의 처가 되어 <식신息臣>을 낳고
<식미>는 <벽인碧仁>의 처가 되어 아들 <식인息仁>을 낳았다.
벽진(식시) - 식신
벽인(식미) - 식인(492- )
皆 以仙臣 擅名
모두가 선원의 신하로 이름을 날렸다.
碧仁者 率仁所生 碧望子也
<벽인碧仁>은 <솔인率仁>이 낳은 <벽망碧望>의 아들이다.
벽홍(솔화) - 솔인
벽망(솔인) - 벽인
息臣等 造望祖晦母像 于碧我院 花林后慮 碧氏太盛 而有變
<식신> 등이 벽아원(碧我院)에 돌아가신 할머니 <벽회> 상(像)을 조각하여
화림후(花林后)로 기리니 벽씨(碧氏)가 크게 번성하였으나 변이 일어났다.
벽회(벽망) - 벽씨(식진) - 벽아(염신) - 위화
<벽회>는 <위화>의 증조 외할머니이다.
故欲設秘穴 而有此問也
그런 까닭에 비밀 동굴을 만들고자 하였다고 이와 같이 묻는 것이다.
后曰 天有日月 地有雙樹 今我奉郞 歡于秘藏 願聞大吉言 洗我塵心地
후가 말하기를
“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한 쌍의 나무가 있는데
지금 내가 낭군을 받들어 몰래 숨겨서 즐기니
크게 길한 말을 들려주어 내 마음 속의 티끌을 씻어주기를 바랍니다.“
花曰 惟昔 赤兎神人 與玄兎神母 遊於琳瑯之園
能曰祀陰 牛日祀母 虎日祀父 兎日祀出 龍日祀君 蛇日祀臣
馬日祀陽 羊日祀女 猻日祀友 鷄日祀入 狗日祀子 豕日祀娠
陰神狐 而陽神兎 娠神羊 故狐兎羊 爲三神 今吾與汝祀此三神
盖一業回也 豈偶然哉
위화랑이 말하기를
“ 아득한 옛날 적토신인(赤兎神人)과 현토신묘(玄兎神母)가
임랑(琳瑯 : 아름다운 옥)의 정원에서 놀았습니다.
적토신인(赤兎神人)은 <위화>를 현토신묘(玄兎神母)는 <연제>를 말한다.
<위화>는 487년 丁卯년 火兎의 해에 태어났고
<연제>는 463년 癸卯년 黑兎의 해에 태어났다.
쥐(能) 해는 음(陰)(多産)을 제사지내고
소(牛) 해는 어미(母)(富貴)를 제사 지내고
호랑이(虎) 해는 아비(父)(용맹)를 제사지내고
토기(兎) 해는 나아감(出)을 제사지내고
용(龍) 해는 군(君)을 제사지내고
뱀(蛇) 해는 신하(臣)를 제사지내고
말(馬) 해는 양(陽)(군대)을 제사지내고
양(羊) 해는 여자(女)를 제사지내고
원숭이(猻) 해는 벗(友)을 제사지내고
닭(鷄) 해는 들어옴(入)을 제사지내고
개(狗) 해는 자식(子)을 제사지내고
돼지(豕) 해는 임신(娠)을 제사지낸다고 말합니다.
음신(陰神) 여우(狐)와 양신(陽神) 토끼(兎)가 신양(神羊)을 임신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에 여우(狐)와 토기(兎)와 양(羊)이 삼신(三神)이 되어
지금 나와 당신이 이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업(業)으로 돌고 도는 것이니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后曰 娠乎苾我
후가 말하기를
“ 임신함이여! 나를 향기롭게 하라.”
法帝 白鼠之卯月 大玄 適値 后旬
법흥제 520년 음력 2월 그믐은 마침 后의 생일이다.
后乃起 祀 心爰 命 仙臣 諸 將備 車馬 糧草 行玄兎 于皐王宮
이에 后가 일어나 제사를 지내고
마음을 바꾸어 여러 선원의 신하들 모두가 거마(車馬)와 군량미를 준비하여
고왕궁(皐王宮)에서 현토제(玄兎祭)를 지내도록 하였다.
以赤羊日 進 次 㘦也火院 黃鷄日 進 次 史丁火院 黑鼠日 進 次 牛谷院
다음으로 적양일(赤羊日)에 체야화원(㘦也火院)으로 나아가고
다음으로 황계일(黃鷄日)에 사정화원(史丁火院)으로 나아가고
다음으로 흑서일(黑鼠日)에 우곡원(牛谷院)으로 나아갔다.
翌日 行吉公大祭
다음날 <길공吉公> 대제를 지냈다.
靑兎日 行兎祭 于召文 行宮 行金神祭 于古陀 行宮
청토일(靑兎日)에 소문(召文) 행궁(行宮)에서 토제(兎祭)를 지내고
고타(古陀) 행궁(行宮)에서 금신제(金神祭)를 지냈다.
進 次 捺己行宮 行赤兎 于兎祠 進 次 狐羊 二祠 皆行之
다음으로 날기(捺己) 행궁(行宮)으로 나아가 토사(兎祠)에서 적토제(赤兎祭)를 지내고
다음으로 호사(狐祠)와 양사(羊祠)에 나아가 모두 제를 지냈다.
是行發動 仙軍 二千余人 仙臣 奾子 百人 仙徒會衆 不知其數
이 행사에 선군(仙軍) 2천 여 명과 선원의 신하와 선자(奾子) 백 명을 동원하였고
선도(仙徒)들 모인 무리는 그 수를 알지 못할 정도였다.
后與郎 御高輦駕 九牛 三十六人 玉座飾 以八彩香宝
欄外列坐 旬將 秦奾 御者坐 於前後下端 掌水 而平之
후와 <위화>랑이 여덟 빛깔의 향기로운 보석으로 장식한
어가(御駕)의 옥좌에 높이 앉아 있고
어가(御駕)는 9 마리 소와 36명이 끌었는데
어가(御駕)의 난간 바깥에 순장(旬將)과 진선(秦奾) 마부(御者)가 진열하여 앉고
어가(御駕)의 앞과 뒤와 아래쪽에는 물을 채워 수평이 되게 하였다.
后與郎 捲珠簾 而觀風賞物 如在殿中 所過州郡
후와 <위화>랑이 발(珠簾)을 걷고 풍물을 보며
마치 대궐 안에 있는 것처럼 하여 주군(州郡)을 지나왔다.
命 放輕因 設天臺 于神山
가벼운 죄수를 방면하고 신산(神山)에 천대(天臺)를 설치하도록 명하였다.
雌雄樹上 郞具羽衣 三十六彩 從天降之
后迎之 爲夫 碧我 宣登 眞丸 剡蘭 以爲三代之席 大歡 五日
암수 두 그루의 나무 위에서
<위화>랑이 36빛깔의 우의(羽衣)를 입고 하늘을 따라 내려오니
후가 그를 맞이하여 지아비로 하고
<벽아>, <선등>, <진환>, <염란>을 삼대(三代)의 자리로 하여 5일간 크게 즐겼다.
식진(벽씨) - 벽아(469-526)
지도로(찬황) - 선등(469-526)
지도로(연제) - 진환(499- )
염신(옥란) - 염란(498?- )
因行大宴享 碧氏 息氏 率氏 波氏之族 男女七十人 皆賜錦衣
인하여 벽씨, 식씨, 솔씨, 파씨의 가족 70명 모두에게 비단옷을 내리고
크게 잔치를 열었다.
從郎吉言 行 十二瑯祀 日費甚多 逗留 山中 百日
<위화>랑의 길(吉)한 말을 쫓아 열 두 곳의 낭사(瑯祀)에 가니
하루의 비용이 매우 많아 산 속에서 백일을 지냈다.
將士皆 倦 宣登 乃請還宮 而歸 前後 凡百二十日
장졸들 모두가 <선등>에게 권하여 환궁토록 청하여 돌아오니
전후 무릇 120일이었다.
大祭七次 小祭十五次
대제(大祭)를 일곱 차례, 소제(小祭)를 열다섯 차례 지냈다.
大宴山中七日 行宮五日 大獵七日 小獵十日 試士八日 眞筵十七日 仙浴五日
犍角雜戱無日
산속에서 큰 잔치 7일간, 행궁 5일간, 큰 사냥 7일간, 작은 사냥 10일간,
사병 시험 8일간, 진연(眞筵) 17일간, 선속(仙浴) 5일간,
씨름과 곡예는 하루도 빠짐없이 하였다.
不行新成部落 十二處 命皆賜田穀 以安之
새로운 부락 열두 곳은 가지 못하고 모두에게 곡식을 내려 편안하게 하였다.
時 北進之計 漸盛 欲懷界民 而有此大供養 云爾
당시 북진의 계획이 점점 무르익어 국경의 백성을 끌어 앉고자
이와 같이 크게 공양(供養)하였다고 한다.
花郞道
大凡 花郞之道 體玄妙 而用眞美
대체로 화랑의 도(道)는 그 본체는 현묘(玄妙)하고 그 쓰임은 진미(眞美)하다.
玄機在天 而施禍福 妙智在人 而做善惡
현묘한 이치는 하늘에 있어 길흉화복을 베풀고
신묘한 지혜는 사람에게 있어 선악을 짓는다.
善而亨福 則昇化 天上 惡而被禍 則墮落 地下
선(善)은 복(福)에 통하니 천상으로 승화(昇化)하고
악(惡)은 화(禍)를 입히니 지하로 타락(墮落)한다.
天上 神仙之堂 地下 鬼畜之獄
천상은 신선의 집이고 지하는 귀신과 짐승의 감옥이다.
神仙 淫 則福盡 而墮落 鬼畜戒 則禍消 而昇化
신선이 음탕하면 복이 다하여 타락하고
귀신과 짐승도 삼가하여 경계하면 화를 멀리하여 승화한다.
故功德 無 三界之別 輪回 有 兩儀之序
그런 까닭에 공덕은 삼계(三界)에 유별함이 없고
윤회에는 음양의 차례가 있을 뿐이다.
※ 삼계(三界) : 天上의 天界, 地上의 人界, 地下의 地界를 말한다.
命之秘 爲玄 生之幻 爲妙 果之因 爲眞 花之色 爲美
명(命)의 비(秘)가 현(玄)이 되고
생(生)의 환(幻)이 묘(妙)가 되고
과(果)의 인(因)이 진(眞)이 되고
화(花)의 색(色)이 미(美)가 되었다.
생명(生命)은 현묘(玄妙)한 것이고
참된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고 아름다운 것은 꽃의 색이니
참되고 착하게 살아서 좋은 결과를 맺으라는 것이다.
萬物宇宙之花 人間萬物之花 神仙人間之花
만물은 우주의 꽃이고 인간은 만물의 꽃이고 신선은 인간의 꽃이다.
神曰源花 仙曰花郞
신(神)을 원화(源花)라 하고 선(仙)을 화랑(花郞)이라 한다.
加洛王孫 逍衍將軍 金天世家 玉葉 寵冑濶達大度
가야의 왕손(王孫) <소연逍衍>장군은 소호금천의 후손으로 왕족인데
총애를 받는 장수로 활달하고 큰 도량이 있었다.
무력(아양) - 서현舒玄=소연逍衍(573?- )(만명) - 유신(595-673)
김유신의 아버지 이름이 <서현舒玄>이 아니고 <소연逍衍>이다.
김유신의 묘비에도 <소연逍衍>이라고 되어있다.
包藏河海 英豪 氣象 可摧山岳
넓고 깊은 마음을 속에 품고 영웅호걸 같은 기상은 가히 산을 꺾을 만 하였다.
南征北伐 累建大功 骨門仙院 素著 雅望
남정북벌하여 누차 큰 공을 세워 골문과 선원에 청아한 명망이 평소에도 자자하였다.
人間萬事 莫不如意 而唯一所 懷 窈窕淑女 兵馬 矢石
五十年間 紅閨 妙牝 至上之樂 莫之 得聞 云爾
인간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오직 한 곳에서 요조숙녀와 병마(兵馬)와 활과 화살을 품고
50년 동안 미인의 침실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함을 최고의 낙으로 삼으니
이를 막지 못함을 들은 바가 있다고 한다.
峻嶺 南來 万壑千峰 大江 西流 碧波 素練
높고 험한 준령이 남쪽으로 뻗어 만학천봉을 이루고
큰 강이 서쪽으로 흐르니 푸른 파도는 흰 명주가 되었구나.
暮春天氣 日煖 風輕 南堤 北陌 花雲 如堆
늦은 봄 날씨는 따뜻하고 바람이 가볍게 부니
남쪽 언덕과 북쪽 두둑에 꽃구름이 무더기를 이루구나.
才子佳人 雙去雙來 飛禽走獸 有情無情
재주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이 짝을 지어 오고 가고
새들이 날고 짐승이 뛰노니 정은 있고 없구나.
朱樓翠閣 照耀水中 僧歌仙舞 搖落 天邊
붉은 누각과 비취색 전각이 물속에 비치고
중은 노래하고 신선은 춤을 추니 요람이 떨어져 하늘가에 매달렸구나.
將軍 白馬 飄然 而至 左顧 湖上 右眄 山半
장군이 백마를 타고 표연히 이르러 좌고우면하니 호수와 산이구나.
水上水下都 是 千紅萬綠 乾坤一幅 絶妙 畵圖中 春色 無限濃
물위와 물 아래의 도시는 울긋불긋하고 하늘과 땅은 한 폭으로 절묘하니
그림 속 봄빛이 무한이 짙구나.
將軍 執鞭 遙指 臨江 阨處曰
丹厓千尺 翠壁萬丈 翼然 而高者坍也 次第 而降者 塀也
紅白 紫黄 花林 叢中 繡闥 雕薨 隐隐 相見者 院也
那坍也 塀也 院也 必有來歴 䫢聞其傅
장군이 채찍을 들고 멀리 좁고 험한 임강(臨江 : 임진강)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 붉은 언덕은 매우 높고 비취색 벽은 만 길이라 날개를 펼친듯 하니
높은 것은 무너지고 차제에 내려오는 것은 병(塀 : 담)이구나.
홍백(紅白)과 자황(紫黃)의 깃발이 화림(花林)의 가운데서 문을 수놓으니
독수리의 죽음은 은은하고 서로 만나는 것은 원(院)이구나.
화림(花林)은 알지(세한=성한)의 탄생지로 김씨의 발상지이다.
여기서 독수리는 용맹한 장수, <소연逍衍>장군을 말한다.
나담(那坍 : 나라가 무너짐)과 병(塀)과 원(院)은 반드시 유래가 있을 것이니
그 전(傳)을 듣기를 바라노라.” (끝)
- 위화진경의 번역을 마치며
위화진경은 신라 최초의 화랑이며 풍월주인 <위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월도를 서두로 김유신의 아버지인 <소연逍衍>장군의 이야기로 끝 맺고 있다.
<배실>랑의 처인 백양선자의 예언에서
신라의 삼한통일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위화진경을 번역해보고자 하는 욕심으로 주역을 6개월간 공부한 후
감히 번역에 도전하였다.
아직도 보리(宝理)와 노리(弩理)의 세계를 완전히 깨닫지 못하여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채 끝맺음 하였다.
한문에 해박한 현명한 이의 많은 지도와 편달을 바라며
추후에도 계속 수정 보완할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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