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芻牟>生而坐,月余能自語,

以篳作弓矢能射紡車,

繩香雲常繞室鳳皇来居樹.

半年,能自步離懷而自食,割肉必方正煮魚以香新.

早起每東向仰日吸精華.不與凡兒遊不依婢僕護,

或出大野立百獸来護之,又登高丘臥虎豹来乳之.

<>王大奇之,賜以<芻牟>,乃作<芻牟殿>,僚屬十余人.

<萱花>監起居,<加菽>視外事,一寢與一食無不盡其誠.

或坐<好人>,或眠<萱花>,時徃聖母懷撫乳而自好.

能知大風吹禁人出海漁,能知旱與雨使人不失稼,老者智不及少者勇不當.

 

<추모芻牟>는 태어나자마자 자리에 앉더니만,

한 달이 넘더니 능히 스스로 말을 하였다.

 

울타리활과 화살을 만들어서 능히 과녁을 쏘아 맞혔다.

 

향운(香雲)이 띠처럼 상시로 집을 두르고 봉황이 찾아와 나무에 머물렀다.

 

반살이 되니 능히 스스로 걷고 품을 떠나서 스스로 먹었으며,

고기를 자르니 반듯하였고 물고기를 구우니 향내가 새로웠다.

 

일찍 일어나서 늘 동향하여 해를 우러르며 정화(精華)를 마셨고,

여느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았으며 비복들의 보살핌을 의지하지도 않았다.

 

어쩌다가 큰 들판에 서있으면 온갖 짐승들이 찾아와서 지켰으며,

또한 높은 언덕에 올라서 누우면 호랑이와 표범들이 찾아와서 젖을 먹였다.

 

이에 <금와金蛙>왕이 대단히 기이하게 여기고서

<추모芻牟>라는 별호(別號)를 내리고,

추모전(芻牟殿)을 지어주고 동료 10여 인을 딸려주었다.

 

<훤화萱花>가 기거를 살피고 <가숙加菽>이 바깥일을 돌보아서,

잠재우는 것 하나 먹이는 것 하나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때때로 <호인好人>의 무릎 위에 앉아있기도 하였고

혹간은 <훤화> 등에 엎혀 자기도 하였으며,

때때로 성모{柳花} 품으로 가서 젖을 매만지며 즐거워하였다.

 

능히 큰바람이 불 것을 알아서 사람들이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는 것을 말렸으며,

능히 가물고 비 올 것을 알아서 사람들이 농사를 망치지 않게 하였더니,

늙은이들의 지혜도 이에 미치지 못하였고 젊은이들의 용기도 이를 당하지 못하였다.

 

 

 

 

二歲能自讀,

 

두 살에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三世能自畵,

<>人来撓舌<>人来慴伏.

好聞古人書,慷慨有大志.時或種果樹,待花而自娛.

聖母禱<芻牟>丹靑修古社,<好人><芻牟>将欲入其社,

<芻母>泣不入,忽有大地震其社轉覄之,<芻牟>堀一处得二金尺章重各三百斤.

 

세 살에 혼자 그림을 그릴 줄도 알았더니,

한(漢)인들이 찾아와 혀를 내두르고 호(胡)인들이 찾아와서 두려워하며 탄복하였다.

 
옛사람들이 쓴 서책 듣기를 즐기다가 비분강개하였으니 큰 뜻이 있었고,

때때로 혹 과수(果樹)를 심게 되면 꽃이 피길 기다리며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성모께서 <추모>를 위해 빌고서 단청(丹靑)을 하여서 오래된 사당을 고쳤는데,

<호인>이 <추모>를 품에 안고 그 사당으로 들어가려다가
<추모>가 울음을 터뜨려서 들어가지 않았더니,

홀연 큰 지진이 일어서 그 사당이 무너졌으며,

<추모>가 한 곳을 파내더니 두 금척(金尺)과 금장(金章)을 손에 쥐었는데,

각각 무게가 3백 근씩이었다.

 

 

 

四歲,能善射百步墮玉環,得蟹大如蓋不食而棄之.

得獸如猉麟,時跨出江邊,或登高丘還.

肉角脫復生,香蹄復生,取之為仙薬,服之可延年.

聖母生<觧弗>,煎此角蹄飮,精神倍佳爽,容皃日益好.

<帶伯>欲奪之,忽然不知去,鳳皇亦飛去.

<觧存>遣使来欲迎<芻牟>,<觧存>[使]欲入廟,

廟言<芻牟帝>“以是欲迎去.” 聖母不許之.

又有<呼韓邪>夢見<慕漱帝>,“我子在<東海>當為大单于.”乃遣駝十匹.

又有<北鞨>夜観<東海>上有光成五彩,以為聖人出,遣使献土物.

如是来賀者連絡常不絶.

 

네 살에 능히 활을 잘 쏘아서 100보 앞의 옥환(玉環)을 떨어뜨렸으며,

솥뚜껑만한 큰 게(蟹)를 잡았더니 먹지 않고 놓아주었다.

 

기린(猉麟)같아 보이는 짐승을 잡아서는 때때로 올라타고

강변으로 나가거나 혹은 높은 언덕에 올랐다가 돌아왔다.

육각(肉角)은 떨어지면 새로 돋아나고 향기로운 발굽도 새것이 돋아나면 빠졌더니,

그것을 가져다가 선약(仙藥)을 만들어 복용하면 수명(壽命)을 늘릴 수 있었다.

 

성모께서 <해불觧弗>을 낳고 이 육각과 발굽을 달여 마셨더니

정신이 갑절로 좋아져 상큼하였고 용모도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대백帶伯>이 이것을 빼앗으려 하였더니,

홀연 간 곳을 모르게 되었고, 봉황 또한 날아가 버렸다.

<해존存>이 사신을 보내 찾아와 <추모>를 맞이해 가고자하였다.

 

<해존>의 사신이 묘당(廟堂)으로 들어가려하니,
묘당이 <추모제>께 이르기를 “이 사람이 데려가려는 것이다.”라 하였고,

성모께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호한야呼韓邪>가 꿈속에서 <모수제慕漱帝>를 뵈었더니

 

“내 아들이 동해(東海)에 있는데 응당 대선우(大單于)가 될 것이다.”라 하셨기에

 

낙타 10필을 보내왔으며,

 

또 북갈(北鞨)에선 밤에 동해 하늘의 빛줄기가 5색으로 변하였더니
북갈 왕이 성인이 나신 것으로 여기고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쳐왔으며,

이 같이 찾아와 하례하는 이들이 연이어서 끊어짐이 없었다.

 

 

 

 

 

五歲,至貝陵,掘貝得神釼,釼上有五字聖主得此釼,

又有黃玉璽藏在翠玉鼎.聖母秘藏之勿使外人知.

是歲,<槐里><郅支><呼韓>,

能言‘<稽侯>又占‘<豪全>.’

<末曷><奧万>,<斗辰>徃救之.

<柴吉><楽浪>,<卒本><鯤淵>,<松讓><奧犍>相爭故國原.

 

다섯 살에 패릉(貝陵)으로 가서 조가비를 파내다 신검을 얻었더니

신검의 겉엔 성주득차검(聖主得此釼)이라는 다섯 글자가 있었으며,

또한 누런 옥새(玉璽)들이 취옥정(翠玉鼎)에 담겨있었더니,

성모께서 이것들을 깊숙이 간직하여 바깥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하였다.

이해에, <괴리槐里>가 죽고 <질지姪支>가 <호한야呼韓邪>를 깨뜨렸는데,

 

능히 말하기를

“그랬어도 <계후稽侯{兒名狦,呼韓邪}>가 보위에 오를 거야.”라 하였으며,

또한 점을 보더니만 “<호전豪全{鮮卑王}>은 흉조(匈兆)야.”라고 하였다. 

 

말갈들이 <오만奧万>땅을 침입하여, <두진斗辰>이 달려가 구원하였다

 

<시길柴吉>이 낙랑국(樂浪國)을 칭하고,
졸본국이 곤연(鯤淵)을 병탄하고,

<송양松讓>이 <오건奧犍>과 고국원(故國原)을 다투었다.

 

 

 

六歲,能騎馬乘降如飛電,雖有悍惡馬制之如小兒,

一日必三射三日必遠騎,

種梪又種菜,捕魚又捕雉.

早起謁聖母,暮夜省<好人>.

時徃漢館裏尋訪医与薬,勤儉又溫詳甚得<>王心.

<好人><>,名曰<>公主,宝齡雖少一,夙逹如<芻牟>.

 

 

여섯 살에 말을 능숙하게 탈 수 있어 타고내림이 나르는 번개 같았고,

말이 비록 사납고 모질어도 어린아이 다루듯 하였다.

 

필히 하루에 활쏘기를 세 번 하고, 필히 사흘에 한 번은 멀리 말을 달렸다.

 

독두나무를 심고 채소도 심었으며 물고기도 잡고 꿩도 잡았다.

 

일찍 일어나 성모를 알현하고 저물어 밤이 되면 <호인>을 보살폈다.

 

때때로 한관(漢館) 안으로 가서 의술(醫術)과 시약(施藥)하기를 찾고 물었으며,
근검하며 따듯하고 자상하여 <금와>왕의 마음을 크게 샀다.

 

<호인>이 <금와>의 딸을 낳았었더니 이름이 <예禮>공주이며

보령은 비록 한 살이 적었어도 일찍 통달하기가 <추모>와 같았다.

 

금와(호인) - 호예(BC57-28) 

 

 

 

 

七歲,好擊釼<烏伊>不敢當.

沈重有大度恤貧與孤獨,敬老以禮賓不以皇子驕,

每事問於善察理周且密,恕人以寬厚,英表偉且奇皃如已成人.

聖母生<觧花>.

<斗辰><松讓>.

<好陵>送錦囊備香百二精.

<葦花>多疾病,<芻牟>求神薬三入西罽山

 

일곱 살에 검 겨루기를 좋아하였더니

<오이烏伊(BC65-18)>가 감당치 못하였다.

 

차분하고 진득하며 도량이 커서 빈한한 고아와 홀로된 노인을 긍휼히 여겼으며,

예의를 차려 노인을 공경하며 황자(皇子)라면서 교만하지 않았다.

 

매사를 잘 아는 이에게 물어서 살피고 처결함에 주밀하였으며,

타인을 용서함에 너그럽고 후하였으며, 뛰어난 외모에다 크고 빼어났더니,
용모가 이미 성인(成人) 같았다.

 

성모께서 <해화觧花>를 낳았다.

 

금와(유화) - 해화(BC52- ) 

 

<두진斗辰>이 <송양松讓>을 정벌하였다.

 

<호릉好陵>이 향료 102알이 든 비단주머니를 보냈다.

 

<위화葦花>가 질병이 많아서,

<추모>가 신약(神藥)을 구하려고 세 번이나 계산(罽山) 서쪽으로 들어갔다.

 

 

 

 

庚午八歲,加元服,

身長已五尺,每徃<>人家習冶又造船,敀来與<摩離>牧馬十余匹.

<萱花>諫勿勞,自云勞是福.

<>,<盖馬>,遣使献甘草,<芻牟>以為酒,每夜献<好人>,

<好人>稟賦好四十如少婦,又飮甘草酒好用黃駝精,<斗辰>不能當<>王亦常敗.

<旺弗><胡括><厚川>.

  <稽候><長安>,<病已>厚待之.

<旺弗><>,<黃竜><>.<荇人><卑离>,<旺弗><紫蒙>宿於<慕容>.

<慕容>,<>,数罪将欲殺,<旺弗>自知罪誓作<夫余>.

<荇人><卑离>遂与<黃竜>.

<荇人>,<觧存>納女為天后,新築天帝宮,大興神仙敎欲以制天下.

<>氏殺<厚川>而立<>.

 

 

 

경오{BC51}년 여덟 살에 원복(元服)을 입었다.

 

신장은 이미 다섯 척이었고,

매일 한(漢)인들 집으로 찾아가 야금하기와 배 만들기를 익히고,
돌아오는 길엔 <마리摩離(BC63-21>와 함께 말 10여 필을 돌보았다.

 

<훤화>가 고생하지 말라고 말려도, 스스로 말하길

“일하는 것도 복입니다.”라고 하였다.

 

<칠柒(BC75-BC38)>공이 개마(盖馬)왕을 하였는데 사신을 보내 감초를 바쳐왔더니,

<추모>께서 감초로 술을 담가서 매일 밤 <호인好人>에게 드렸다.

 

<호인好人(BC94-BC24)>은 천품이 멋지고 아름다워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젊은 여인 같았으며

게다가 감초주(甘草酒)를 마시고 황타정(黃駝精)을 즐겨 복용하여,
<두진斗辰>이 능히 감당할 수 없었고, <금와>왕도 또한 번번이 패하였다.

 

<호인>은 추모의 외할머니이고 <두진>은 추모의 외할아버지이고

<금와>는 추모의 계부이다.

 

<두진>과 <금와>는 이종사촌이다.

 

 

<왕불旺弗>이 <호괄胡括>을 <후천厚川>에게 주었다.

 

<호괄>은 漢 장수 <이릉李陵>의 딸이고 <후천>은 오환의 왕이다. 

 

 

 

<계후稽侯{呼韓邪(BC79-BC31)}>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갔더니,

<병이病已(BC91-BC48){西漢中宗}>가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왕불{卑离}>이 <칠>공{盖馬}을 쳤더니, 황룡(黃龍)이 <칠>공을 구원하였고,

행인(荇人){祖天}>이 비리(卑离){旺弗}>를 습격하여,

<왕불>이 자몽(紫蒙)으로 도망해 모용(慕容)의 집에 머물렀다.

 

<모용>이 <모수제>초상을 걸어놓고 죄들을 헤아리고 곧 죽이려 하자

<왕불>이 스스로의 죄를 알고 맹세하여 부여(夫余)의 신하가 되었다.

 

행인이 비리(卑离)를 약탈하고 황룡과 다투었다.

 

행인이 <해존解存>을 맞아들이고 딸을 바쳐서 천후(天后)가 되게 하였으며,

새로이 천제궁을 짓고 신선의 가르침을 크게 일으켜 천하를 제도하려 하였다.

 

<완莞>씨가 <후천厚川>을 죽이고 <광廣>공을 세웠다.

 

 

이때 <추모> 8세, <오이> 15세,<마리> 13세, <훤화> 21세, <유화> 24세,

<칠공> 25세, <호인> 44세 <옥두진> 42세, <금와> 40세,

<왕불> 28세, <호한야> 29세, <해존> 44세이다. 

 

 

 

 

辛未九歲,

連山鑄鏡.

<>公携書来敎之 以王

黃竜<>公崇文荇人 文章与仙道,孰為天下福.”

<芻牟>皆不許,“非武不可定.”

<>公敎兵書攻守因三才,<芻牟><孫吳>以為誤人書,“万事隨機應何可型而膠.”

<>公大奇之只得授古書.

 

신미{BC50}년

 

아홉 살에 연산주경(連山鑄鏡)에 통달하였고 한(漢) 문자를 사용하였다.

 

 

신농씨(神農氏)의 연산역(連山易)은 夏나라의 易으로 艮卦를 시작으로,

세수(歲首)를 寅月로 하였다.

황제(黃帝)의 귀장역(歸藏易)은 殷나라의 易으로 坤卦를 시작으로

세수(歲首)는 丑로 하였다.

周易은 乾卦로 시작하면서, 周代의 책력은 子月부터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寅月은 인도(人道)가 열리는 때이고,

丑月은 땅의 기운이, 子月은 하늘이 열리는 때이다.

易의 생성 과정이 天道가 아닌 人道에서 地道, 天道의 역순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면,

국가의 기틀이 다져지는 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단丹(BC77-BC33)>공이 열왕(列王)들과 백(伯)들을 가르친 서책을 가져와서

 

“황룡은 <온昷(BC66-BC23>공을 우러르며 문장을 숭상하여 행인에 대항하고 있으니,

문장(文章)과 선도(仙道) 중 어느 것이 천하를 복스럽게 합니까?”라 하였더니,

 

<단>공과 <온>공은 <추모>의 이복형이다. 

 

<추모>는 모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군대 없이는 세상을 평정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단>공이 병서(兵書)를 가르치길

공격과 수비를 3재(三才)(天地人}를 바탕으로 하였더니,

<추모>는 <손오孫吳>의 병서들을 평하길

사람들을 잘못되게 하는 서책이라면서,

“만사는 기회를 좇아 상응해야지 어찌 정형화(定型化)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단>공은 매우 기이하다 여기고 그저 옛 서책을 건네기만 하였다.

 

 

 

 

壬申十歲,

<敀藏>能成八陣法,<烏伊>為左幕,<摩离>為右幕,将兵三千人,習戦又習屯.

<斗辰>相十年,<東余>已大治,<于山><藻那>,<沃沮><楽浪>,<涉羅><加羅>,

爭来献土物.<>王重其功,加封七千戶.

聖母生<觧朱>,立府置僚屬.

七子皆驕傲<芻牟>獨愛民.

 

 

임신{BC49}년 열 살

 

귀장(歸藏)에 통달하고 능히 8진법(八陣法)을 이루니,

<오이>를 좌막료로 <마리>를 우막료로 삼아

군병 3천인을 지휘하며 싸우기를 익히고 둔치기를 익히었다.

 

<두진屋斗辰>의 재상(宰相)노릇 10년에 동부여가 훌륭한 다스림을 이루었더니,

우산(于山)이 조나(藻那)와 함께, 옥저(沃沮)가 또 낙랑(樂浪)과 함께,
섭라(涉羅)와 가라(加羅)등이 다투어 찾아와 토산물을 바치니,

<금와>왕이 그의 공을 중히 여기고 7천호를 더하여 봉하였다.

 

성모께서 <해주觧朱>를 낳으셨더니, 관부를 설치하고 관료를 딸려주었다.

 

일곱 아들들 모두가 교만하고 거만한데, <추모>만 홀로 백성들을 사랑하였다.

 

 

 

 

玄鶴暮春節,聖母有奇疾,<芻牟>禱河神入水得靈菜,服之卽雲捲,可謂孝盛致.

又與<烏伊>等分隊,習野戦山戦與水戦市戦又林戦雪戦及風戦,一一皆習之,

人人目<芻牟>必為天下主.

<稽候><病已>合力討<郅支>,<郅支><烏孫>,<烏孫>不服之.

是冬<病已>,<>継其後,

虗己能尊賢優柔不能斷.

<>公将兵東来不而城,<>公助以軍,黃竜亦與之,荇人不得爭,

卑离<>,<禾滿>為其相.

末曷漸南下蔓延盖斯水 自稱南沃沮.

東余<金蛙>稱爲大单于,聖母爲閼氏,

<帶伯>右賢王,<帶素>左賢王,

<帶仲>高邪王,<帶玄>加葉王,

<帶黃>貫那王,<帶赤>東海王,

<帶靑>蘭陵王,<斗辰>貝陵王,

<加菽>曷思侯,<胡真>藻那侯,

<芻牟>左大將,<觧弗>右大將,

<奧陵>柵城侯.

<斗辰><>氏生子曰<屋智>.

 

 

현학{癸酉,BC48}년

 

늦은 봄에 성모께서 기이한 병이 드니,

<추모>가 하신(河神)에게 기원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신령스런 푸성귀를 뜯어 오니,

그것을 먹고 구름 걷히듯 나으니, 가히 효성이 지극하였다 할 것이다.

 

또한 <오이> 등과 군대를 나누어서

野戦・山戦・水戦・市戦・林戦・雪戦과 風戦까지 하나하나를 모두 익히니,
모든 사람들이 <추모>를 지목하여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라 하였다.

 

<계후稽侯>가 <병이病已>와 더불어 힘을 합쳐

<질지姪支{西匈奴,呼韓邪兄}>를 토벌하니,
<질지>는 오손(烏孫)으로 달아났고, 오손은 이들을 복속하지 않았다.

 

이해 겨울,

<병이>가 죽고 아들 <유석劉奭(BC75-BC33){西漢高宗}>이 그 뒤를 이었다.

 

허약한 몸으로 현자(賢者)를 받들었으나 우유부단하였다.

 

<보簠(BC67- )>공이 호(胡)의 군대를 이끌고 동쪽 불이성(不而城)으로 왔더니

<칠柒(BC76-BC38)>공{盖馬王}이 군대를 내서 돕고 황룡 또한 그리하였고,

행인이 싸움을 벌이지 않았더니,
비리는 <보>공{卑离王}을 받들고 <화만禾万(BC70- )>을 그곳 재상으로 삼았다.

 

<보>공과 <칠>공은 <추모>의 이복형이고 <화만>은 <화상>과 <가달>의 아들이다.

 

 

말갈이 점점 남하하여 개사수(盖斯水)에 만연하더니 남옥저(南沃沮)를 자칭했다

 
동부여가 <금와>를 높여서 대선우(大單于)를 칭하니
성모는 연지(閼氏)가 되었고,

<대백帶伯(BC72- )>이 우현왕, <대소帶素(BC60-)>가 좌현왕

<대중帶仲>이 고야왕, <대현帶玄>이 가섭왕

<대황帶黃>이 관나왕, <대적帶赤>이 동해왕

<대청帶靑>이 란릉왕, <두진斗辰(BC92-BC45)>이 패릉왕

<가숙加菽>이 갈사후, <호진胡真>이 조나후

<추모芻牟(BC58-BC19)>가 좌대장, <해불觧弗(BC55-BC29)>이 우대장

<오릉奧陵>이 책성후로 되었다.

 

<두진>이 <도>씨를 거두어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옥지屋智>이다.

 

 

 

 

 

靑狵歲首日,大石落王庭,<>王憂爲災,

<帶素>自誇勇運石不能得,<帶伯><帶仲>次苐来運石皆不能離地,<帶玄>絶脉死.

<芻牟>,晩来見運之.如小礫携之,于溝中,深入一丈余,万夫不當勇.

<芻牟>,隱之久,今日始試之,<>等畏惧陰有猜忌心.

 

 

청방{甲戌,BC47}년

 

첫날에 큰 돌이 왕궁마당에 떨어지자, <금와>왕이 재앙이 있을까 우려하였다.

 

<대소>가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며 돌을 치우려 하였으나 치우지 못하였고,
<대백>이 <대중>과 더불어 차례로 와서 치워보려 하였다가 모두가 들지 못하였으며

<대현>은 혈맥이 끊겨서 죽었다.

 

<추모>가 늦게야 와서 그 돌을 옮겨서 보이는데

마치 조그만 조약돌처럼 들어서 해자 가운데로 치우니 한 길이 넘어

어느 누구도 그 용력을 당할 수 없었다.

 

<추모>가 용력(勇力)을 오래도록 숨기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시험하니,

<대소> 등 모두가 경외하고 두려워하였으나 속으론 시기하는 마음이 있었다.

 

 

 

 

 

靑豕,夏癸未,聖母生<觧百>,

大鼈自就釜,<>以為天賜将欲烹食之,聖母命放之.

赤谷<扶芬奴>有力又善弓.<帶素>,招為臣,命與<芻牟>,

<芬奴>易與之連試,皆不勝.於是,乃神之,願為<芻牟>.

<帶素>,聞而怒,使人欲刺之,<芬奴>殺其刺逃敀其母家.

 

 

청시{乙亥,BC46}년,

 

여름 계미일에 성모께서 <해백觧百>을 낳았다.

 

커다란 자라가 스스로 가마솥 쪽으로 가기에,

<금와>가 하늘이 내린 것이라며 삶아 먹으려 하였더니, 성모께서 놓아주라 명하였다.

 

적곡(赤谷)의 <부분노扶芬奴>가 힘이 있고 활을 잘 쏘았더니,

<대소>가 불러서 신하를 삼아 <추모>와 겨뤄보라 명하였다.

 

<부분노>는 갈사국 <대수大嫂>의 아들이다. 

 

<부분노>는 쉽사리 여기고서 연거푸 시험해보았으나, 한 번도 이기지 못하니,

<추모>를 신이(神異)하게 여기고 <추모>의 신하가 되길 원하였다.

 

<대소>가 이를 듣고 노하여 사람을 시켜서 <분노>를 칼질하게 하였더니,

<분노>가 그 자객을 죽여버리고 자기 어미의 집으로 달아나 돌아갔다.

 

 

 

 

赤獺春二月,

<紅株><斗辰>,<斗辰>病難起.

聖母命<芻母>求薬 東海,乃遊蘭陵原學釼於<胎仙>,復至阮陵上學畜於<九阡>,

北至藻那水乃得腽肭敀.将近半年余,

聖母怒太遲,<斗辰>勿怒.死病本無薬,雖遲亦何妨.”

<>氏乃泣言汝死我何敀.”

<斗辰><>氏命為<芻牟>,<芻牟>不肯之.

<昆莫><細君>與之<岑陬>,汝不聞之乎.

<好人>,欲以<>将為<芻牟>,

乃言“<岑陬>事出於社稷計,<>非社稷計何苦効<岑陬>.”

<斗辰>,<>,病勢益添劇,聖母.亦憂之,竟使<芻牟>.

月老赤縄戱,世人安得知.

是年秋,大獵.

<芻牟>,<>,劣馬引桑弓,射鹿最多獲.<帶素>六兄弟,駿馬與宝弓,終日無所得.

<>王責其子汝等見善射以為弓所致,汝等見善騎以為馬所致.農則田所致,

医則薬所致,奪其弓與馬何以無所得,何不思才拙徒為猜忌心.”

九月,<斗辰>.

<>王臨其枕,卿死誰可相.

<象觧>雖年少,可以代臣職.

<>王問其次.

<烏文>雖小可欠在不能将.

<><>何如,

<斗辰>不肯曰“<蘭巴>雖勝戦,亦非治國才且有惡賢心,用之必乱政.

<象觧>,如無威,封以駙馬王,賜之寵公主,誰敢侮<象觧>.”

 <>罽山,<><芻牟>.

<芻牟>固辞云 ,<斗辰>,已納<>為妻.何敢娶公主.”

<>大丈夫豈可一妻㢤.待汝威立後,欲以為相國.今姑数三年,<蘭巴>可代汝.”

<芻牟>,不得已,又娶<>公主,食邑三千戶.

<蘭巴>,乃為相,盡革<斗辰>,<東余>自此乱.

 

 

적달{병자;BC45}년, 2월,

 

<홍주紅株>가 <두진>을 저주하여 <두진>이 병이 들어 일어나기 어려웠다.

 

성모께서 <추모>에게 명하여 동해(東海)중에 있는 약을 구해오라 하시니,

란릉원(蘭陵原)으로 여행하여 <태선胎仙>에게 검술을 배우고,

다시금 완릉(阮陵) 위쪽으로 가서 <구천九阡>에게 짐승 기르기를 배웠으며,

북쪽으로 조나수(藻那水)에 다다라

이윽고 살진 물개를 구해서 돌아오니, 거의 반년이 되었다.

 

성모께서 너무 지체하였다고 노하시자, <두진>이 명하길

 

“화내지 마시오. 죽을병은 본시 약이 없는 법인데,

좀 지체하였다고 역시 어찌 거리낄 일이겠소.”라 하였더니,

 

<도씨(BC71-BC24)>가 울먹이며

“당신이 죽으면 나는 누구를 의지한단 말이요.”라고 하였다.

 

이에 <두진>이 <도씨>에게 명하여 <추모>의 내실이 되라 하였으나,
<추모>는 받아들이지 않으니,

 

“<곤막昆莫>이 <세군細君{王細君}>을 <잠추岑陬>에게 보낸 일을

너는 듣지도 못하였나?”라 하였다.

<호인>은 <예>공주를 <추모>의 후(后)로 삼아줄 생각에

“<잠추>의 일은 사직을 위한 계책이었고, <도씨>는 사직을 위한 계책이 아닌데,

어찌 <잠추>를 본받아 고생하라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두진>이 <도씨> 걱정에 병세가 더욱 심각하여 졌더니,

성모께서도 역시 걱정되어 급기야 <추모>에게 혼인하라 하였다.

 

월로적승(月老赤縄){月下老人이 붉은 줄로 묶어서 천상배필을 알려주는 것}하는

희학(戱謔)을 어찌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겠는가.

 

외할아버지 <두진>의 첩을 손자인 <추모>와 혼인하게 한 것이다.

 

이때 <추모> 14세, <도씨> 27세이다.

 

 

 

이해 가을에 큰 사냥이 있었다.

 

<추모>는 <금와>왕을 따라 다니면서

시원찮은 말과 뽕나무 활로도 가장 많은 사슴을 쏘아 잡았고,
<대소> 여섯 형제는 준마와 보궁을 가지고도 하루 종일 잡은 것이 없었다.

 

<금와>왕이 자기 아들들을 책망하며 이르길

 

“너희들은 활 잘 쏘는 것을 보면 그것은 활 때문이고,
말 잘 달리는 것을 보면 그것은 말 때문이라 하며,

농사는 밭 때문이고 의술도 약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활과 말을 빼앗고도 어찌해서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느냐?
어찌 재능이 졸렬함은 생각지 않고 도리어 시기하는 마음이더냐?”라 하였다.

 

9월, <두진>이 죽었다.

 

<금와>왕이 그의 침상 곁으로 가서
“경이 죽으면 누가 재상자리를 맡으면 좋겠소?”라 물었더니,

 

“<상해象觧>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신의 직책을 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 답하였고,

 

<금와>왕이 그 다음을 물었더니,

 

“<오문烏文>은 상(相)자리를 맡을 수는 있겠으나,

능히 장수(將帥)자리를 맡기엔 결함이 있습니다.”라고 답하였다.

 

<금와>가

 

“<란파蘭巴>로 하면 어떻겠는가?”라 하였더니,

 

<두진>이 의견을 달리하며 아뢰길

 

“<란파>는 비록 승전한 적이 있긴 하나 역시 나라를 다스릴 재목은 되지 못하며

게다가 현자를 싫어하는 심보입니다.

 

그를 등용하시면 필시 정사를 어지럽힐 것입니다.

 

<상해>가 위엄이 없어 보인다면,

부마 왕 자리를 봉하시고 총애하시는 공주를 그에게 주십시오.

누가 감히 <상해>를 깔보겠습니까?”라 하였다.

 

<두진>을 계산(罽山)에 장사한 후에 <예>공주를 <추모>에게 주었더니,

<추모>가 고사하며 아뢰길

“신은 일찍이 <두진>의 명으로 이미 <도씨>를 맞아 처를 삼았습니다.

어찌 감히 공주와 혼인할 수 있겠습니까?”라 하니,

 

<금와>가 이르길

“대장부가 어찌 처 한 명으로 되겠느냐.

네 위세가 세워지길 기다린 연후에 상국(相國)으로 삼으리라.

지금부터 수3년은 <란파>가 너를 대신할 것이다.”라 하였다.

 

<추모>가 부득이 <예>공주와 혼인하고 식읍 3천호를 받았다.

 

<란파>가 이에 상국이 되어 <두진>이 이룩한 정사를 모조리 갈아치우니,
동부여는 이로부터 어지러워졌다.

 

 

 

 

 

赤牛,白熊,<蘭巴><芻牟>,<芬奴>為先鋒先定<大嫂川>.白熊赤谷割地請為臣.

八月甲子日,<>氏生<都祖>.

<蘭巴><芻牟>不錄平.

<松讓>卒本,<貫貝><>.末曷順奴,<奧万>毛屯.

<奧犍>遣使来,<芻牟>欲徃救,<>王不許之,徒傷義憤心.

 

 

적우{丁丑,BC44}

 

백웅(白熊)이 반란하자 <란파>가 <추모>를 시험하였더니,

<분노>가 선봉이 되어서 우선으로 대수천(大嫂川)을 평정하였다.

 

백웅은 적곡(赤谷)으로 도주하더니 땅을 떼어 바치고 신하가 되겠다고 청하였다

 

8월 갑자일에 <도씨>가 <도조都祖>를 낳았다.

 

추모(도씨) - 도조都祖(BC44- )

 

이 <도조>가 <추모>와 <중실>이 낳은 <훤>공주의 남편이고 한빈왕이 된다.

 

<란파>가 <추모>를 시기하여 백웅을 평정한 공을 기록하지 않았다.

 

<송양松讓>이 졸본을 깨뜨려서 <관패貫貝>가 <송양松讓>의 처가 되었고,

말갈이 순노를 치니 <오만奧万>은 모둔(毛屯)으로 도피하였고,
<오건奧犍>이 사신을 보내 찾아왔기에 <추모>가 가서 구원하려 하였으나,

<금와>왕이 허락하지 않아서, <추모>의 무리들은 의분심(義奮心)이 상하였다

 

<관패貫貝(BC57- )>는 <소서노召西奴(BC66-BC6)>의 동생이다.

 

 

 

 

黃虎,<呼韓邪>,更復<竜城>,送使来献物.

五月戊午日,聖母生<觧素>,<蘋花><宝臣>.

<芻牟><好人>親徃曷思國懷柔黃頭,<大嫂>呈豊饌.

<尉厭>為前驅,原滿溯激流,運筏盡死力,

有子曰<陜父>八歲能觧文,願為<芻牟>,

其母再贊兒,黃頭而雪膚.

 

 

황호{戊寅,BC43},

 

<호한야>가 다시금 용성(竜城)을 되찾고 사신을 보내 찾아와 공물을 바쳤다. 

 

5월 무오일에 성모께서 <해소觧素>를 낳으시고,

<빈화蘋花>가 <보신宝臣>을 낳았다.

 

모수제(양화) - 빈화(BC65-BC22)

양길(빈화) - 보신(BC43- )

 

<추모>가 <호인>과 함께 몸소 갈사국으로 가서

황두(黃頭) 백성들을 회유하니, <대수大嫂>가 풍성한 음식을 바쳤다.

 

<위염尉厭>을 선봉으로 삼았다.

 

거세게 쏟아져 올라오는 물로 들판이 가득하여

뗏목을 움직이느라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다.

 

어느 사람이

“<협보陜父(BC50- )>가 여덟 살로 능히 글을 깨쳤으니

<추모>의 신하로 삼으시지요.”라 하였다.

 

그 어미도 재차 아이를 칭찬하니 황색 머리{黃頭}에 흰 살결이었다.

 

<협보>는 아라사(俄羅斯) 출신으로 이 <협보>의 후손이 신라 <탈해(51-130)>왕이다.

 

 

 

 

黃兎春正月,<荻得>毛屯,

虎豹来遮路,<荻得>不得進.

<奧万>,以為天,進兵討<荻得>,戦敗大被傷,乃移<九如鄕>.

<荻得>不敢追,相持羯河.

三月,丙子日,<>氏生<獐花>.

<奧万>創甚死,

<禾岑>欲報仇縱兵入<>,還為<荻得>,<順奴>分七國各自為圡豪.

 

 

 

황토{己卯,BC42}

 

춘정월에 <적득荻得>{北羯}이 모둔을 습격하였다.

 

호랑이와 표범들이 다가와서 길을 막아 <적득>이 전진할 수 없었다.

<오만奧万>이 하늘의 뜻으로 알고 군병을 내보내 <적득>을 치다가 싸움에 패하고

큰 부상을 당하여 구여향(九如鄕)으로 옮겨갔다.

 

<적득>은 감히 추격하지 못하고 갈하(羯河) 상류에서 서로 대치하였다. 

 

3월 병자일에 <예>씨가 <장화獐花>를 낳았다.

 

추모(호예) - 장화(BC42- ) 

 

<오만奧万>이 부상이 심하여 죽었다.

 

오천(황) - 오만(BC83-BC42)

 

<화잠禾岑(BC83-BC25)>이 원수를 갚고자 군병들을 풀어 말갈 소굴로 들어가

돌아오는 길에 <적득>에게 붙잡혔다.

 

<화잠>은 <화뢰>와 모수제의 둘째딸 <란>의 딸로 <오만>의 처이다.

 

 

이에 순노가 일곱 나라로 갈려 각자 토호(土豪)들로 되었다.

 

 

모둔(毛屯)은 추모가 동부여 탈출시 재사,무골,무거를 만난 곳이며

BC44년 북갈이 순노를 치자 <오만>이 도주한 골짜기이다.

 

 

 

 

 

白竜,

高邪,<帶伯>攻不得.

五月癸亥日,<>氏生女<>,<萱花>生太子.<帶仲>

多暴雪,高邪以是反,<帶伯>竟大敗.

<>王命<芻牟>,引軍至界上,使人慰其民,其民慕<芻牟>不戦而散去.

<>王以<芻牟>欲為高邪王,<芻牟>辞不就,又以<曷思國>十二邑為沐亦辞不受之.

國人多敀之,豪傑七十人,

<><><><芬奴>稱為東四豪,

眼黃白眉人<鬚多><夢七>,皆以脅力進人物,皆有主沛.

,孰能禦桃李尙成蹊.

况且<真命><葛馬>,<古銅><素守><又万支><介冠><頂竹伊>,皆以弓弩進.

<吳翠><林雲霜><月氏鎬><股曹>,皆以槍釼来.

 

 

 

백룡{庚辰,BC41}

 

고야(高邪)가 반란하여 <대백帶伯>이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5월 계해일에 <도씨>가 딸 <손蓀>을 낳았고,

<훤화萱花>가 <대중帶仲>의 태자를 낳았다.

 

추모(도씨) - 손蓀(BC41- )

 

폭설이 내렸더니, <고야>가 이를 틈타 반격하니 <대백>이 끝내 대패하였다.

 

<대중>은 고야왕이고 <대백>은 우현왕이다.

 

<금와>왕이 <추모>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경계에 다다라 사람들을 시켜서 그곳 백성들을 위무하니,
그곳 백성들은 <추모>를 흠모하여 싸우지 않고 흩어져 돌아갔다.

 

<금와>왕이 이에 <추모>를 고야왕으로 삼으려하니

<추모>는 고사하고 왕 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갈사국 열두 읍을 목읍(沐邑){湯邑,食邑}으로 주려고니,

그 또한 고사하고 받지 않았다.

나라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추모>를 따랐으니, 70인의 호걸들이었다.

 

<오이>・<마리>・<협보>・<부분노>가 이름 하여 동4호(東四豪)였으며,
눈빛이 누런 사람(眼黃) 및 눈썹이 흰 사람과

<수다鬚多>와 <몽칠夢七> 등도 모두 곁에서 힘을 써서 사람들과 물자들을 내었는데,

모두 습지(濕地)의 주인들이었다.

이러하였으니, 누가 능히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이 없어도

그 아래에 길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랴!

하물며 진명국(真命國)주인 <갈마葛馬>까지

<고동古銅>・<소수素守>・<우만지又万支>・<개관介冠>・<정죽이頂竹伊>와 함께

모두가 활(弓)과 노(弩)를 바쳐오고,
<오취吳翠>・<임운상林雲霜>・<월지호月氏鎬>・<고조股曹> 모두는

창검(槍劍)들을 가지고 왔다..

 

 

 

 

 

 

 

白蛇,

春二月,<芻牟><><>巡視<曷思國>,

<><>来迎之,相議禦<>,减民進供物又罷上京役.

 

 

백사{辛巳,BC40}

 

춘2월, <추모>가 <호인>과 <예>씨와 함께 갈사국을 순시하니,

<가숙加菽>{曷思侯}>과 <훤화>가 맞아들여 말갈을 막을 방책을 상의하고
백성들이 바치는 공물을 줄여주고 또한 도성으로 올라와서 하는 부역을 없애주었다

 

 

五月丙戌日,<芻牟>出獵敀,<帶素>依梪狙折其世傳釼.

蕞爾小<東余>,本非<芻牟>.”烏鳶嚇腐鼠,其情誠可笑.

成長十九年,母主恩亦大,妻小亦可憐.

<>主方姙娠不能隨.

<芻牟>藏釼松柱下,柱有七稜岺,礎有八谷盤,乃謂<>主曰

物在七岺下,松在八谷上,當索松石間,得藏可携来.若過二十年,可以迎汝去.”

重耳,十九年冢上栢已大,况且二十年生死安可期.雖然,大丈夫,豈顧兒女子.”

乃以<><>委於<觧弗>,

夜半将欲發,阮陵巨娄忽超二丈欄自入<芻牟>,鞍上有一書,乃是<九阡>.

乃騎巨娄,腰佩太阿釼,四豪擁前後,十二分左右.

一聲勸馬裡,肅肅出<柵城>,北辰耿自高,長江有意鳴.

丈夫得志秋,平生苐一夜.

 

5월 병술일에 <추모>가 수렵을 나갔다 돌아오는데,

<대소>가 독두나무를 의지하여 엿보다가

자신에게 세세토록 물려진 보검을 부러뜨렸다.

 

“풀이 더부룩한 네 조그만 동부여는 본시 <추모>의 뜻이 아니다.”라며

까마귀와 솔개도 비천한 사람을 꾸짖었으니, 그 정성이 가소로웠다.

성장하여 열아홉 살이 되니, 어머니의 은공 역시 크셨으며,

처와는 짧은 세월이었지만 역시 애틋하였다.

<예>공주가 바로 전에 임신한지라 따라 나설 수 없었기에

<추모>가 소나무기둥 아래에 칼날을 숨기었다.

그 기둥이 일곱 모가 난 고개에 있으며

주춧돌은 8곡반이었기에 <예>공주에게 이르시길

 

“물건은 일곱 고개 밑에 있고, 소나무는 여덟 계곡 위에 있으니,
꼭 소나무와 돌 사이를 뒤져서 숨겨놓은 것을 찾아가지고 와야 할 것이오.

20년이 지나면 그대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오.”라 하였다.

“아이가 뱃속에 있으니, 19살이 되면 무덤 위의 잣나무처럼 이미 커 있을 것이지만,

항차 20년이면, 생사(生死)를 어이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대장부가 어찌 아녀자를 마음에 둔단 말입니까?”라 하였다.

 

 

이에, <예>씨와 <도>씨를 <해불>의 집에 맡겨놓고,

밤중에 곧 떠나려하니,

완릉(阮陵)의 큰 당나귀가 홀연 두 길 담장을 뛰어넘어

<추모>의 마당으로 들어왔고, 안장엔 서찰 하나가 있었는데

‟<구천九阡>이 드립니다.”라 적혀있었다.

 

큰 당나귀에 올라서 허리에 태아검(太阿釼)을 차니,

호걸 네 명{烏伊・摩離・陜父・扶芬奴}이 앞과 뒤를 옹위하고,

열두 사람이 좌・우를 나누어 맡았다.

 

말에게 한 마디 채근하여 엄숙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책성(柵城)을 떠나니,

북두성(北斗星)은 밝고 저절로 높았으며, 긴 강물도 뜻을 안다는 듯 소리를 내었다.

 

장부가 뜻한 바를 이루는 때이니, 평생에 제일가는 밤이었다. 
 

 

 

六月己未暁,一行到高邪,<夢七>忽来報

"<帶仲>引兵来,<帶素>善後策必竟至於斯."

草草秣馬起乃入小柵城.守将<荷真>已素被<芻牟>恩寬待犒一行,

已亦願隨来姑留為探報,

乃捨江大路<西罽山>傍行,巨梪塹天立白日不得見但聞異鳥聲.

松子滿舖地,金銀繞梪香,蒼鼯含哺奔,魚鼈泝水来.

日烝汗出背俯岩飮淸泉,百里無一人古木腐如尸.

傍有七丈岩,大書辛巳夏聖人當過此.”

白睂攀而上,携来二金印,一作大单于一作濊可汗,

重各百五斤,未知何時代做此藏於斯.

路出其岩下轉轉入谿谷,飛㺚自梪墮含魚入水中.

有魚二尺余,肥香燒可食.

一行皆滿飽,枕流石上眠,不知山日落,

忽遇絶壁上,無路可得通,過雨大粒滴,

忽有一大漢,穿林抱石行,自云<漢素>,本是<欒大>,採菜入此山,欲見聖人過.”

<芻牟>引與語,知其有抱負.卿有何高見,敎此亡命人.

陛下,万世主,此行必大吉.,有造船術,願得養水師.臣友有<鄭共>能冶作兵{},

臣侄有<馬黎>能畜繁殖馬,幷可招来之以為陛下臣.

<芻牟>,大喜之,<>為師傅,時聞古代事或評帝王業.

<漢素>,善知路,深林如平地,逶迤出蟹橋.“此地本多蟹,滿地唯蟹行,取之食不盡.”

二蟹如巨席,欲為<芻牟>,<芻牟>命放之,

徃年吾放渠,今又再来此.凡物殊大者乃其神君也.吾雖飢無食,何忍食蟹神.”

其蟹聞而淚雌雄向長江,步步顧<芻牟>.

自此<大嫂>店不過数十里,<大嫂><芬奴>,本是<赤谷>,

身長九尺余,體重三百斤,豊美弄丈夫,且善槍釼術,有夫数十人皆為<大嫂>,

俗以女多夫稱之曰大嫂.凡通此店者,莫不被其掠,

生子数十人.勇者三十人,智者二十人,仁者二十人.

日食豚一頭,能盡十人食,其子<扶芬奴><尉厭><菸狗>,皆為<芻牟>.

<>長両河間,閱人非不多,未見如<芻牟>,嗟歎久不已,

献金五千斤,以為<芻牟>.一行三十人,両日飽且楽.

大路如黃頭拜見<><>,<萱花><芻牟>.

 

 

6월 기미일{탈출34일째!} 새벽에 일행이 고야(高邪)땅에 다다랐더니,

<몽칠>이 홀연히 다가와서 알리길

 

“<대중{高邪王}>이 병사들을 끌고 쫓아오고 있으며,
<대소{左賢王}>도 사후책(事後策)에 능한지라 필경 여기로 올 것입니다.”라 하였다.

 
간단히 말을 먹이고 작은 성채로 들어갔더니,

수장(守將) <하진荷真>이 이미 평소 <추모>의 은덕을 입었던지라

후하게 차려서 일행들을 먹이고 위로하였으며, 이미 따라나서길 원했다.

 

길 탐색을 위해서 잠시 머물렀다가, 강변으로 난 큰길을 버리고

서계산 곁길로 걸었더니, 거대한 독두나무들이 하늘을 찔러서

밝은 해는 보이지 않고 낯선 새소리만 들렸다.

 

소나무들이 북쪽으로 널리 펼쳐져 있고

금빛 은행나무들이 독두나무와 향나무를 둘러쌌으며,

놀랜 날다람쥐들이 먹이를 물고 내달리고,

물고기와 자라들이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햇볕이 찌는 듯하고 등에선 땀이 흘러 바위에 엎드려 맑은 샘물 마셨더니,

백 리 안에 사람 없고 고목들이 시체처럼 썩고 있었다

 

곁에 일곱 길 되는 바위가 있었는데,

큰 글자로 “신사년 여름에 성인께서 필시 이곳을 지나실 것이다.”

라고 새겨있었다.

 

아뢰는 이가 붙잡고 올라가서 두 개의 금 인장을 가지고 내려왔더니.

하나는 대선우(大單于)이고 다른 하나는 예가한(濊可汗)이었으며,

무게는 각각 백다섯 근으로,

어느 시절에 이것들을 만들어서 이곳에 감춰놓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길이 그 바위 아래쪽으로 나있었고, 돌고 돌아서 계곡으로 들어가니,

날랜 수달이 독두나무에서 떨어지더니 물고기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두 자가 넘는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았더니

살지고 냄새가 좋은 것이 구워먹기에 좋았다.

 

일행들 모두가 배불리 먹고서 물가의 자갈밭에서 눈을 붙이다가

산 중의 해가 빨리 지는 것도 몰랐다.

 

홀연 치솟은 절벽을 만나 빠져나갈 길이 없었는데, 지나가는 비가 큰 방울로 떨어졌다.

 

홀연 한 덩치 큰 사람이 나타나서

숲을 헤치고 바위를 껴안고 지나며 스스로 말하길

 

“저는 <한소漢素(BC72-BC21)>이며,

본시 <란대欒大>의 손자로 나물을 뜯으려 이곳으로 들렀으며,

성인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뵙고 싶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추모>가 곁으로 불러 함께 얘기를 나눠보니 포부가 있어

 

“경은 어떤 고견(高見)이 있으며 어떻게 이 망명(亡命)하는 사람을 도울 것이오?”

라 하였다.

 

“폐하께서는 만세의 임금이시고, 이 길로 가시면 필히 크게 길하실 것입니다

신은 배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원컨대 수군을 양성하고 싶으며,

신에게 <정공鄭共>이란 벗이 있는데

능란하게 야금(冶金)하여 병장기와 갑옷을 만들며,

신에게 <마려馬黎>라는 조카가 있는데 능숙하게 가축을 늘리고 말을 기릅니다.

함께 불러서 폐하의 신하로 삼으실 만 합니다.”라고 하였다. 

 

<추모>께서는 크게 반기고 <한소>를 사부(師傅)로 삼으며,

때때로 옛날 일들과 제왕(帝王)들의 일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한소>는 길을 잘 알아서 깊은 숲속에서도 {길을 찾는 것이} 평지에서와 같았는데,

이리구불 저리구불 비스듬히 해교(蟹橋){게다리}」로 가더니만

 

“이 땅엔 본시 게들이 많습니다.

땅바닥에 가득한 것으로 오로지 움직이는 것들은 게들뿐이어서,

잡아먹어도 없어지질 않습니다.”라 하였다.

 

게 두 마리가 큰 방석만하여 <추모>께 드릴 음식으로 만들려 하였더니,

<추모>께서 명하시어 놓아주게 하시고는,

 

“왕년에 내가 도랑에다 놓아주었더니, 지금 다시 여기로 찾아왔구려.

무릇 모든 사물들 중에서 유별나게 큰 것들은 그들의 신군(神君)일 것이오.

내가 굶을망정 어찌 차마 해신(蟹神)을 먹겠소?”라 하였다.

 

그 게들이 알아듣고 눈물을 흘렸으며

암・수가 장강(長江)으로 가면서 걸음걸음 <추모>를 돌아다보았다.

 

예서부터 대수점(大嫂店)은 불과 수십 리에 있으며,

<대수大嫂>라는 <분노>의 어미는 본시 적곡(赤谷)사람으로

키가 9척을 넘고 체중은 300근으로 풍만하고 아름다워서

장부들을 농락하였으며 창술과 검술에도 뛰어났었다.

 

지아비가 수십 인이었으며 모두들 <대수>를 위하여 노역하였고,

풍속에 지아비가 여럿인 여자를 대수(大嫂)라 불렀다.

 

이 점포를 지나는 이들은, 모두가 <대수>에게 스쳐 지남을 당하지 않은 이가 없었기에

낳은 자식들이 수십 인이나 되었는데,

용맹한 자가 30인, 지혜로운 자가 20인, 어진 자가 20인이었다.

  

돼지 한 마리를 하루에 먹어서 능히 열 사람 몫을 먹어치우는 그녀의 아들들인

<부분노>와 <위염> 및 <어구菸狗> 모두 <추모>의 신하가 되었다.

 

<대수>가 두 물줄기사이의 우두머리여서

검열한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도<추모>같은 이를 본 적이 없어서

감탄하며 한숨짓기도 오랫동안 해 본적이 없었더니,

금 5천근을 바쳐서 <추모>께서 쓰시게 하였으며,

일행 30인도 이틀을 배불리 먹었을 뿐만 아니라 즐거웠다.

 

큰 길로 황두(黃頭)로 가셔서 <훤화>와 함께 있던 <가숙>공에게 절하고 뵈었더니,

<훤화>가 <추모>를 따라나섰다.

 

 

 

 

辛巳到奄利, 時已七月節.

<芻牟>,聞布穀,其為何鳥.或云布穀鳥.”

<漢素>否之曰

七月豈布穀,此乃復國鳥,復國又復國.陛下将復國,彼鳥宣復國,

天心卽人心,鳥亦知天心,終日呼復國,必竟復國已,

若聞此鳥聲,不思復國者,安可曰人邪,人而不如鳥,復國復復國.”

中路逢霖雨,泥濘不可行,数日洪水至,平地水丈余,

乃宿高丘村,<蜂實>夫妻忠.

炎熱多蜹苦一行閔且欝,<萱花>常執扇納凉<芻牟>.居民,知駙馬,莫不持酒来,

合力開前路,通知奄利,波濤高洶洶,水勢遙連天,無舟不可渡,且聞追兵至.

以弓擊水歌,“天帝之子兮,河伯之外孫,欲渡無船兮,追兵可奈何.”

<萱花>願為牲踴身投水中,忽有方丈龜浮出受<萱花>,

一行三十人乃登龜背上,泛泛中流去其疾完如矢.

<帶仲>追来見亦打水叱曰

我乃夫余主欲捕<象觧>,神何不助我.”

忽有蟹一隊連作浮橋,<帶仲>促其軍上橋到中流,蟹忽各散去,人馬俱落水,出沒波濤中.

<帶仲>踴水中大呼神来助,蟹群以大螯支裂<帶仲>,鮮血滿江紅.

四豪望而笑拍掌大快之,

<芻牟>止之曰“<帶仲>雖愚騃亦一人命也,勿幸人不幸.”

<漢素>嗟歎曰聖言當如是.臣知陛下運,從此大通矣.”

此時,順奴國大被末曷.衆万余口穴居曷水,出沒掠良民七國不得全.

近以霖雨蟄又為虎豹困,欲出汗濱地数侵九如鄕,

<奧犍>兵不多乃請毛屯.

毛屯谷三村,村長皆賢人.

一是<麻衣村><><再思>,能占人吉凶,勧民勤農桑,施人以恩惠,村民仰如神.

一是<衲衣村><仲室><武骨>,豪俠好義氣,

為人能報仇,有勇精武藝,隣里皆慴伏,不敢倣盜賊.

一是<水藻村><少室><黙居>,採薬救疾病,造船避洪水,以是有德望.

是日,<九如>,鍊兵習弓釼,

人報 "普述口五彩玲瓏上,又有﨎彩虹,自北来揷地,

紅光如巨大.三賢大異之,登高遙望曰

"必有聖人来,引衆直向来,一大玄武舟滿載不知人,中有一大帝,神風凛且威.”

三賢俯伏地[]“臣等愚且鈍,不得早迎駕.”

<烏伊>謂衆曰帝是天帝子,今為復國来.汝䓁皆子来,水火亦可入.”

<武骨>伏奏曰臣家雖陋室,此地無他好,願迎陛下駕,請為臨時宮.”

帝乃許其請.一行入其村,果然富裕人,接待以珍味,使令足於前.

<><仲室>氏来薦<芻牟>,年少美且賢.

逐虎一朝事除<>亦不難,

當合卒本國遂可為之謀.

九如<奧犍>公乃是卒本婭可使媒両國,乃如九如鄕,<奧犍>喜迎之.

帝姊<觧凰>,聖母之外從.

議定備,閱兵試武藝.

其妻<乙旃>,卒本妃之妹,夜薦<芻牟>,具言卒本,帝乃知虗實.

選弓三十人槍手五十人,帝在軍士前射虎皆中目,虎盲不得見槍者盡屠之.

諸将大呼言,“不去當盡滅.”虎群乃悲吼負子逃水走.

乃伐其林木<漢素>作舟車,四豪鍊兵士,三賢撫百姓,隣近大土豪聞風多敀之,

<延陀勃>亦遣其妻来.

<乙旒>氏親見<芻牟>聖不勝喜悅心,欲以其女兒薦為<芻牟>,

敀與其夫議.其女<召西奴>,亦来見<芻牟>,遂棄己醮夫,欲招<芻牟>.

<芻牟>不肯去[]“丈夫當自立,何作人贅婿.”婚議遂不成.

楽浪<柴吉>亦以女来謁,帝皆不應之以待他豪俠.

 

 

신사일{탈출56일째}에 엄리(奄利)에 다다랐더니,

때는 이미 7월이였다.

 

<추모>가 뻐꾸기 소리를 듣고

 

“저것이 무슨 새요? 혹자는 포곡조(布穀鳥)라 하지만.”이라고 물으니,

 

<한소>는 그렇지 않다면서

 

“7월에 어찌 곡종(穀種)을 뿌리겠습니까? 이것은 복국조(復國鳥)입니다.

복국(復國)! 또 복국(復國)! 폐하께서 장차 복국復國하실 것이어서,

저 새가 복국(復國)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심이 인심이고, 새들 역시 천심을 아는지라,

종일토록 나라 되찾길 외치는 것이오니, 필경 나라를 되찾으실 것이옵니다.

 

이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서도 나라를 되찾을 것을 생각지 않는 이가

어찌 사람이겠습니까?

 

사람이라 하여도 새들보다 못할 것입니다. 복국! 복복국!"이라고 하였다.

 

도중에 장맛비를 만나 땅이 진창이어 길을 갈 수 없었다.

 

수일이 지나니 홍수가 밀려와서 평지의 물 깊이가 한 길을 넘어섰다.

 

이에 고구촌(高丘村)에서 유숙하게 되니, <봉실蜂實>부부가 충성스러웠다.

 

불타는 더위와 파리가 많아서 괴로워 일행들이 걱정하고 답답해하니,

<훤화>는 상시로 부채를 들어서 <추모>의 잠자리를 서늘하게 하였고,

거주민들은 부마(駙馬)임을 알아보고 술을 가져오지 않는 이가 없었다.

 

힘을 모아 앞길을 열고 <엄리奄利>어귀로 가서 살폈더니

파도가 높고 흉흉하며 수세(水勢)가 하늘에 닿아있어서 배 없이는 건널 수도 없었는데

게다가 쫓아오는 병사들이 다다르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활로 물을 치고 읊조리길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하백(河伯)의 외손이다.

건너야겠는데 배는 없고, 쫓아오는 병사들이 있으니, 어쩌면 좋겠는가?”라 하였다.

 

이에 <훤화>가 희생(犧牲)이 되고자 몸을 날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더니,

별안간 사방 한 길이 되는 거북들이 떠올라서 <훤화>을 받아냈다.

 

일행 30명이 거북이들의 등에 올라서 넘실대는 물 가운데로 흘러가니,

그 질주함이 마치 화살 같았다.

 

<대중>이 쫓아와 보더니만, 역시 물을 치며 꾸짖어 이르길

나는 부여의 주인으로 <상해象觧>를 붙잡으려 왔는데, 신은 왜 나를 돕지 않는가?”

라고 하였다.

 

홀연 한 떼의 게들이 등껍질을 잇대어 부교(浮橋)를 만들었고,

<대중>도 자기 군사들을 채근하여 부교에 올라 물 가운데로 다다랐는데,

게들이 홀연 흩어져 사라져서 사람과 말들 모두가 물속으로 떨어져서

파도 속에 들락날락하였다.

 

<대중>이 물속에서 펄펄뛰며 큰소리로 수신(水神)에게 와서 도우라.”고 외쳤더니,

게들이 큰 집게발로 <대중>의 살점을 갈래갈래 찢어발겨

선혈이 강물에 그득하여 벌겋게 되었다.

 

호걸 네 명이 바라보고 웃으면서 손뼉치고 크게 즐거워하니,

<추모>가 말리면서

“<대중>이 비록 미련하지만 역시 사람 생명이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행운으로 여기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한소>가 감탄하여 아뢰길

 성인의 말씀은 당연히 그와 같아야 합니다.

신이 알기로 폐하의 운수는 이로 인하여 대통하실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즈음, 순노말갈의 피해를 크게 입었다.

 

말갈무리들 만여 명이 갈수(曷水){羯河}>에 혈거(穴居)하면서 출몰하여

백성들을 약탈하였더니, 순노의 일곱 나라들은 온전할 수 없었다.

 

근래엔 장마철이라 칩거하다가 다시금 호랑이와 표범들에게 곤란을 당하니

한빈(汗濱)땅으로 나가려고 구여향(九如鄕)을 여러 차례 침범하였다.

 

<오건>은 병력이 많지 않아서 모둔(毛屯)에 도움을 청하였다.

 

모둔곡 세 촌락의 촌장들은 모두 현명하였다.

 

하나는 마의촌(麻衣村)<><재사再思(BC70?-BC10>공으로

능히 사람들의 길흉을 점을 쳐서 백성들에게 농사짓고 누에치길 권하면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더니 촌민들이 신처럼 받들었고,

 

하나는 납의촌(衲衣村)<중실仲室><무골武骨(BC55?- )>공이니

호협하고 의기가 있어서 능히 다른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주었는데

용맹하고 무예에 정통하였더니 가까운 마을들이 습복하여

감히 도적질은 흉내도 내지 못하였으며,

 

하나는 수조촌(水藻村)<소실小室><묵거黙居(BC58-24)>공으로

약을 구하여 질병을 고쳐주고 배를 만들어서 홍수를 피하게 하였더니

이로 인하여 덕망이 있었다.

 

이날, 모둔곡에서는 구여향(九如鄕)구원하기 위하여

군사들을 훈련하며 활쏘기와 칼 쓰기를 익히고 있는데,

사람들이 알리길

보술수(普述水)어귀에 오색이 영롱하고, 위로는 또한 쌍무지개가 떴는데,

북쪽에서 뻗어나와서 땅에 꽂혔으며, 붉은 빛이 거대합니다.”라고 하였다.

 

세 현자(賢者)들이 대단히 기이한 일로 여겨서

높은 곳으로 올라서 멀리 내다보고서 이르기를

필시 성인께서 오고 있다. 무리들을 이끌고 곧바로 오고 있는데,

한 커다란 거북배가 낯모를 사람들을 가득 태웠고,

그들 중에 한 대제께서 계시는데 신령스런 풍채에다가 늠름하고 위엄이 있다."

라고 하였다.

 

세 현자들이 땅에 엎드려서 아뢰길

신 등이 우매하고 아둔하여 일찍 어가(御駕)를 마중하지 못하였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오이>가 무리들에게 이르길

제께서는 천제의 아들이시오. 지금 나라를 되찾으려 오셨습니다.

그대 등 모든 남자들은 오시오.

서로 사이가 나빴던 이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라 하였다.

 

<무골>이 엎드려 주청하길

신의 집이 비록 방들이 누추하지만, 이곳 땅엔 달리 좋은 곳도 없사옵니다.

폐하의 어가를 모시길 원하오며, 임시 궁으로 쓰시길 청하옵니다.”라 하였다.

 

제께서 그 청을 들어주셔서, 일행이 그의 촌락으로 들어갔더니,

과연 부유한 사람이어서 접대하느니 진미였고,

사령(使令)들도 이전에 비해 풍족하였다.

 

<무골><중실>씨가 찾아와서 <추모>의 잠자리를 시중하였다.

나이도 어리고 예쁘고 현명하였다.

 

호랑이 몰아내기는 하루아침 일거리이고

말갈을 제압하는 것 또한 어려울 것이 없었다.

 

졸본국을 합치는 것이 마땅하니,

마침내 도모할 책략으로 삼을 만하였다.

 

구여향 <오건>공이 졸본국과는 동서(同壻)간으로 두 나라를 중매함이 가능하여

구여향에 찾아갔더니, <오건>이 기쁘게 맞아주었다.

 

제의 누님 <해황觧凰>의 아들이고 성모{柳花}외사촌 오빠이다.

 

오산(옥인) - 오천(BC100?- )(황) - 오건(BC79-BC23)

                  호인(BC94-BC24)(옥두진) - 옥유화(BC72-BC24)    

 

의논하여 말갈에 대한 방비책을 결정하고 열병하여 무예를 점검하였다.

 

그의 처 <을전乙旃(BC74- )>씨가 졸본 왕비의 여동생으로

밤에 <추모>의 잠자리를 시중하며 졸본에 대한 일을 구구절절 아뢰었고,

제께서는 졸본의 허실을 알게 되었다.

 

궁수 30인과 창수 50인을 선발하시고서

제께서 군사들의 앞에 서서 호랑이들을 쏘아서 모두 눈을 맞추었더니,

호랑이들은 눈이 멀어서 볼 수 없게 되어 창수들이 모조리 도살하였으며,

여러 장수들이 크게 호통 치면서

떠나지 않으면 당장에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하니,

호랑이 떼는 비명을 지르며 새끼들을 등에 업고 물속으로 도망쳤다.

 

그 숲의 나무들을 베어내고서, <한소>가 배와 수레를 만들고,

4호(四豪)들이 병사들을 훈련하고, 3현(三賢)들이 백성들을 진무하니,

인근의 큰 토호들이 풍문을 듣고서 귀의하였으며,

졸본<연타발延陀勃(BC106-BC37)>도 자기 처를 보내왔다.

 

졸본<을류乙旒(BC86?-BC26)>씨가 몸소 <추모>성인을 뵙더니,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 딸아이를 <추모>의 후로 천거하고 싶어서 돌아가서 지아비와 의논하였으며,

그 딸 <소서노召西奴(BC66-BC6)> 또한 찾아와서 <추모>를 보았더니만

자기가 초례를 치른 지아비{仇台}를 버리고 <추모>를 초빙해가려 하였으나,

<추모>께서 따라가길 내키잖아하시면서

장부가 당당하게 스스로보위(寶位)에 오를 일이지,

어찌 다른 이의 온당치 않은 사위가 되겠소?”라 하시니

혼사논의가 성사되지 않았다.

 

낙랑 임금 <시길柴吉(BC80?-B12)> 역시 딸을 데리고 찾아뵈었어도,

제께서는 모두에게 응하지 아니하고 다른 호걸과 협객들을 응대하였다.

 

 

 

八月,丙辰日,<>主生<類利>,<>公来言狀.

<芻牟>聞而喜以手加額曰,“天其祚我歟.有子可以継,何苦更娶哉.”

乃詣<屋因>祠<漱帝>,但有一玉鞭案寞無所見,

不過二十年果然如此變.

帝姊<好陵>主乃是<屋因>,與帝話一夜多言<漱帝>.

帝与<夢七>,早起巡境內撫民勧其業,探知賊来路設關置守卒,

召集皮裘匠大增軍士服,節食貯牛羊以為過冬計,又作輕乾肉使備不時用.

凡人有宝刀皆以金買之,凡有血氣者皆使来從軍,

又召<鄭共>来聚鐵製槍釼<馬黎>来牧馬.

末曷来毛屯<烏伊>大破之,末曷来九如<摩離>大破之.

末曷,不敢来,北侵沸流國,東侵楽浪界,又或越卒本.三國,皆不安,皆求我兵援.

帝故袖手観只鍊軍士藝,且備放火具以養火手技.

 

 

8월 병진일{탈출91일째}

<>공주가 <유리類利(BC40-18)>를 낳았더니,

<丹(BC7-BC33)>공이 찾아와서 그 형상을 얘기하였고,

<추모>께서는 들으시더니 반가움에 손을 이마에 대고 이르시길

하늘이 분명 내게 복을 내리셨음이오. 아들이 있어 뒤를 이을 것인데,

어찌 다시금 혼인하는 고초를 겪는단 말이오.”라 하고는,

이윽고 옥인사(屋因祠)로 찾아가 몸소 <모수제> 제실(祭室)을 청소하였더니,

달랑 옥 채찍 하나가 있을 뿐 안상(案床)은 쓸쓸하고 볼품이 없었다.

 

불과 20년 만에 과연 이렇게 변하였다니!

 

의 누님 <호릉好陵>공주가 <옥인屋因>소생이었더니

제를 모시고서 한 밤 내내 많은 <모수제>시절의 얘기를 나누었다.

 

제께서는, <몽칠> 등과 함께 일찍 일어나시어,

경내를 순시하며 백성들을 위무하여 생업에 힘쓰게 하시고,

적들이 침입할 길목을 탐지하여 관문을 설치하고 수졸들을 두셨으며,

피륙장인들을 불러 모아 군사들의 옷을 대대적으로 만드셨고,

소와 양들을 아껴먹고 남겨두어 겨울을 나는 계책으로 삼으시고,

또한 고기를 말려 가볍게 하여 불시의 쓰임에 대비하였다.

 

보도(寶刀)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선 금(金)을 주고 사들이고,

혈기있는 이들 모두가 찾아와서 종군하게 하였으며,

<정공鄭共>을 불러 쇠붙이를 모아 창검(槍劒)을 만들게 하고

<마려馬黎>는 와서 말을 모아서 기르게 하였다.

 

말갈이 모둔으로 침입하자 <오이>가 그들을 대파하고,

말갈이 구여로 침입하자 <마리>가 그들을 대파하였다.

 

말갈은 감히 침입해오지 못하고서 북쪽으로 비류국을 침입하고

남쪽으론 낙랑의 경계를 침범하였으며 또한 혹간 졸본의 경계를 넘어서기도 하였더니

이들 세 나라들은 모두가 불안하여 모두들 우리 군병의 도움을 바랐으나,

제께서는 일부러 수수방관하시면서 다만 군사들의 무예를 단련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불 놓는 도구를 갖추고 화수(火手)들의 재주를 양성하였다.

 

 

九月,芦花衰,秋風漸寒冷,去夜雪初下,正是可攻時.

曷輩臥窟中飮酒行楽時.

<摩離>引火手,從西放火入,賊窟依芦荻,一時火連天.

悲鳴皆躍出,<鬚多><夢七>䓁躍入皆斬之.賊将<金獅子>醉酒曳戟来,<白眉>擊殺之.

曷酋<荻得兒>上馬来督戦,

<烏伊>相對,戦勝敗未可知.帝射卽落馬,<烏伊>斬其頭.

,見其酋頭膽寒皆逃走,走至南岸上.<芬奴>,引弓手伏在其前面,一時發弓弩,賊皆墮水死.

<漢素>,引水軍溯水至曷口,收其走水者.

賊兵八千騎一時為魚肉.其衆万餘口女子千余人只為軍士獲,漏出得生者不過二三百.

羯河盡平定.

此時我軍数不過三百人,弓手只百人水軍亦百人釼手五十人火手五十人,誅賊万余人,

所謂一當百,非此更何有.

,以羯妻子分賜諸軍士,順奴旧王妃命為<芬奴>,財宝亦均分無一私藏之,

威名振內外隣國皆来賀,<芻牟>未嘗矝.

<烏伊>鎭羯河,<摩離>鎭靑河,<漢素>鎭汗濱,<芬奴>鎭河南,<再思>鎭淹淲,

<武骨>鎭毛屯,<黙居>鎭両河,<奧犍>鎭九如,

<陜父>在帝側運籌帷幄中,<>公為師傅.

<萱花>,主內壼,尋訪旧親戚,開宴<屋因>.

卒本國王妃亦来參是宴又與<乙旃>氏請婚<召西奴>.

帝以有夫女不可奪而娶,他云已相離不必更相嫌.

,以卒本國不可不相合,持久不能决.

卒本,使前婿遷之南荒処,以為<仇台>.

,聞其婿死,欲與相婚之.

是時,<召西奴>方娠前夫女,以待其産後.

 

 

9, 부들 꽃이 마르고 가을바람이 점차로 차가워져서 지난밤엔 첫눈이 내리니,

이제 바로 공격할 때가 되었다.

 

말갈 무리들은 굴속에 누워서 술 마시며 행락할 때였다.

 

<마리>가 화수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불을 질러서 들이쳤더니,

적의 소굴들은 부들과 억새들로 뒤덮여있는지라 일시에 불꽃이 하늘에 닿았다.

 

비명을 지르며 모두들 뛰쳐나오니,

<수다鬚多><몽칠夢七> 등이 뛰어들어 모조리 베어버렸고,

적장 <금사자金獅子>가 술에 취해 창을 질질 끌고 나오기에

<백미白眉>가 그를 격살하였으며,

말갈 추장 <적득아荻得兒>가 말위에 올라 싸움을 독려하니,

<오이>가 상대하여 싸웠으나 승패를 가름할 수 없었더니,

제께서 활을 쏘아 떨어뜨리시고 <오이>가 그의 머리를 베었다.

 

적들은 효시된 추장의 머리를 보자 간담이 서늘하여

도주하여 내달려 남안으로 다다라서 기어오르니

<분노>가 궁수들을 이끌고 그들의 전면에 매복하였다가 일시에 활과 노를 쏘아댔고,

이에 적들은 모두 물에 빠져죽었다.

 

<한소>가 수군을 이끌고 물살을 거슬러 올라 <갈하>어귀에 이르러서

물속으로 도주한 이들을 잡아들였다.

 

적병 8천기가 일시에 박살났고,

그 무리들 만여 명과 여자들 천여 명이 군사들에게 사로잡혔으며,

새어나가 살아남은 이들은 이삼백에 불과하였다.

 

갈하(羯河) 땅 모두가 평정된 것이었다.

 

이때 아군의 수효는 불과 300인이었다.

 

궁수 겨우 100인에, 수군 역시 100인이었고, 검수 50, 화수 50인이었다.

 

적들을 주살함이 만여 인이었으니,

소위 일당백이란 것이 이것 아니면 무엇이었겠는가?

 

제께서는 말갈의 처자식들을 군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순노의 옛 왕비(禾岑)는 명을 내려 <분노>의 처로 삼으시고,

재물과 보물들을 고르게 나눠주셔서 어느 하나도 사사로이 하지 않으니,

위엄과 명성이 내외에 떨쳐져서 인근의 나라들 모두가 찾아와 하례하였으나

<추모>께서는 으쓱대지 않았다.

 

이후, <오이>가 갈하(羯河)를 진압하고, <마리>가 청하(靑河)를 진압하고,

<한소>가 한빈(汗濱)을 진압하고, <부분노>가 하남(河南)을 진압하고,

<재사>가 엄표(淹淲)를 진압하고, <무골>이 모둔(毛屯)을 진압하고,

<묵거>가 양하(両河)를 진압하고, <오건>이 구여(九如)를 진압하고,

<협보>는 제의 곁에서 계책을 내며 군막 안에 있었고, <>공은 사부가 되었다.

 

<훤화>가 안살림을 맡아서 옛 친척들을 찾아보고 옥인사에서 연회를 열었다.

 

졸본국 왕비 역시 찾아와서 연회에 참여하였으며

다시금 <을전>씨와 함께 <소서노>와 혼인하길 청하였다.

 

제께서 유부녀를 빼앗아서 혼인할 수는 없다고 하였더니,

그들이 말하길

이미 서로 헤어졌으며, 필시 다시금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제께서는 졸본국과는 불가불 서로 합쳐야 함에도 오래도록 결말을 짓지 않으니,

졸본은 이전의 사위를 멀리 남쪽의 거친 땅으로 옮겨가게 하여놓고

<구태仇台>가 죽은 것으로 하였으며,

제께서 그 사위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서야 서로 혼인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소서노>가 이전 지아비의 딸을 바로 전에 임신하였기 때문에

그 출산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壬午,

春正月,<烏伊>為左大将,<摩離>為右大将,賜金尺大綬章,重各十五斤.

<陜父>為大主簿,<扶芬奴>為大司馬,賜金尺小綬章,重各十斤.

末曷餘衆<古斗><西文>等求救於北沃沮,得三千餘騎 屯於<菰丘之原>聚其散衆,

<柴吉>共謀作乱.上使<漢素><芬奴>率水陸軍進擊大破之.

 

 

임오{BC39}

 

춘정월, <오이烏伊>를 좌대장으로 삼고 <마리摩離>를 우대장으로 삼아서

금척(金尺)과 대수장(大綬章)을 하사하니 각각의 무게는 열 닷 근이었고,

<협보陜父>를 대주부로 삼고 <부분노>를 대사마로 삼아서

금척(金尺)과 소수장(小綏章)을 하사하니 각각의 무게는 열 근이었다.

 

말갈의 남은 무리 <고두古斗><서문西文> 등이

북옥저에 도움을 청하여 3천여의 기병을 얻어 고구원(菰丘原)에 둔을 치고

흩어진 그들의 무리를 모아 <시길柴吉>과 공모하여서 난리를 일으켰다.

 

상께서 <한소漢素><부분노扶芬奴>로 하여금

수군과 육군을 거느리고 진격하게 하여서 그들을 대파하였다.

 

 

 

 

二月,<荇人國>天帝<觧存>公薨,<>.上遣<再思>吊之.

<>公遣使来請卽位,上辞以無德.

 

2, 행인국 천제 <해존觧存>공이 죽고, 아들 <해문觧文>이 보위에 오르니,

상께서 <재사再思>를 보내서 조문하였다.

<>공이 사신을 보내와서 제위(帝位)에 오르시길 청하니,

상께서는 그럴 만한 덕이 없다고 하시며 고사하였다.

 

 

 

三月,<漢素>為太師,賜金魚大綬章,

<加菽>公妃<萱花>公主順奴王妃<乙旃>公主<武骨>公妃<仲室>夫人為天后,

賜翟服金魚玉馬金尺大綬章,重各七十斤.

<奧犍>為順奴王,<奧命>比如侯,<奧春>靑河伯,各賜金印玉章.

是月,<召西奴>生女<阿爾>.

與楽浪王<柴吉>定界.

<柴吉>,欲得奄東盖斯之地,

我本南沃沮也,願得沃沮故地.”上許之.

<烏伊>諫曰

吾等壤曷而得地.<柴吉>坐領此地,可乎.不如伐之.”

上曰“<柴吉>小虜也,驕而無謀,姑安之而擒之未晚.

末曷雖丧其衆必来報復,不可不備也.且黃竜荇人卒本沸流等皆是强敵也.

不可與小虜先爭而損耗也.吾聞,<延陀勃>病不能視事,其女<召西奴>代政而年少自危.

可以計取之然後,北定沸流西壓黃竜則吾計,可就矣.”

<烏伊>服之.

 

3, <한소>를 태사(太師)로 삼아서 금어(金魚)와 대수장(大綏章)을 하사하고,

<가숙加菽>공의 비 <훤화>공주와 순노 왕비 <을전>공주 및

<무골>공의 비 <중실>부인을 천후(天后)로 삼고

적복(翟服)금어(金魚)옥마(玉馬)와 금척(金尺) 및 대수장(大綬章)을 하사하였는데,

각각의 무게는 70근이었다.

 

<오건奧犍>을 순노왕으로 <오명奧命>을 비여후(比如侯)

<오춘奧春>을 청하백(靑河伯)으로 삼고

각각에게 금인(金印)과 옥장(玉章)을 하사하였다.

 

이 달에 <소서노>가 딸 <아이阿爾(BC39-BC7)>를 낳았다.

 

낙랑국 왕 <시길>과 나라의 경계를 정하였다.

 

<시길>이 엄수(奄水)동쪽 개사수(盖斯水) 땅을 가지고 싶어서

나는 본시 남옥저이었으니 옥저 옛 땅을 가졌으면 합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 허락하였다.

 

이에 <오이>가 간하길

우리는 말갈을 몰아내고서야 그 땅을 얻었는데,

<시길>은 앉아서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될 일인지요?”라고 하였더니,

 

상께선

“<시길>은 작은 적인데다가 교만하고 무모하니

잠시 안심하게 하였다가 그를 잡아도 늦지 않을 것이오.

말갈이 비록 그들의 무리를 잃었어도

필시 보복하려 할 것이니 대비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게다가 황룡행인졸본비류 등은 모두가 강적들이니,

작은 적과 먼저 싸워 힘을 소모해선 아니 될 것이오.

내가 듣건대, <연타발延陀勃>이 병이 들어 정사를 살피지 못하고,

그의 딸 <소서노>가 대신하여 정사를 보는데 나이가 어리고 위태로우니,

계책으로 그 나라를 취한 연후에,

북으로는 비류를 서쪽으로는 황룡을 평정하고 무너뜨리는 것이 내 계책이오.

따라주었으면 하오.”라고 하니, <오이>가 이를 따랐다.

 

 

 

,北沃沮末曷二千騎渡河而南聲言

<荻得><古斗>之讎.”

上命<扶芬奴>伏弩於河南待其登岸而射之,皆落水中.

上又與<漢素><摩離>擊其殘軍於河中大破之.

<烏伊><烏干><芬奴><菸狗>,自柵城来,

“<>公主<>夫人,皆以聖母之命,<觧弗>之妻.”

上曰“<>弱而多疾,<>美而好淫,<>健而緊靭.<>安能敵此二女乎.”

<>其不久後果然.

卒本<延陀勃>聞上之英豪,逐虎攘曷之威動於內外,遣使請見.

,<再思>報聘,

両君相見,必相會於界上.今大王病不移席,安可坐致吾主乎.”

<陀勃>

昔者,人心淳厚,各守其界,禮讓而居.

自末曷南侵以来,南沃順奴地方為其魚肉,

侵寇我邦無年不兵.寡人身被重創,薬石無效,

只有一女年少沒識,欲得佳郞而傳國.

近聞,聖人自東方来,敀者如雲祥瑞日至,虎負子而自逃,羯焚窟而遠鼠.

欲使兒女得此聖人以為夫,則一洽寡人之望.而顧此蕞,爾小邦聖人抑欲来救乎.”

<再思>

自吾聖皇,以三百之人屠曷八千之衆,而救順奴於塗炭,開沃沮於鏁束,

<柴吉>来服,曷思懷恩,遠震河北,聲動汗西,志在千里,不暇殘邑.,隣傍世豪莫不献土,

子来敀附沓至.大王欲以公主作親,何不厚幣崇禮至誠来懇.”

<陀勃>乃使<仇都>,奉牛馬千匹虎皮百張宝釼十柄黃金百両,而来請和婚.

上見其使来,手額而喜,[]

天以<卒本>賜我,餘無可慮.”

乃引見<仇都>,殷勤致禮曰

孤以客踪,偶得一戦,非所大能.大王,許以公主,致此厚禮實盛,

我心自此両國為一統合天下,以副大王子我之恩.”

仍把<仇都>之手而勧酒曰汝亦我臣也,勿辞而醉.”

<仇都>公主命臣,勿醉而失禮於夫皇故,臣不敢力醉.”

上許其不飮而送之.

,卒本侯<乙足>娶其叔鯤淵伯<乙宋>之女<>氏生子<乙音>而卒,

國相<延陀勃>七國之乱有功於社稷故委以妻子.

<陀勃>遂娶<>為妻而生女<貫貝><召西奴>.

丁丑之年,以運鹽貿鐵之事,<松讓>,交戦于汗濱而敗.

<>,膝行而乞和,遂以<貫貝><松讓>.

<召西><仇台>情好生女<阿爾>.<仇台>以卒本世族,美而無勇,遂至爱衰.

<召西奴>欲改嫁于<芻牟>,使人勧<仇台>自殺而稱丧夫,是年十七.

上使<漢素>購錦罽苧綾色絹色紗金花玉佩之物以為幣,

使<摩離><陜父>為報聘之使.

<召西奴>親自摂袖而歓待酒食,

自我定婚以来,晝宵夢想唯在夫皇膝上.汝等敀語夫皇,不必具備禮数,

為先早早合巹,使妾洽然,然後徐徐備之.”

<摩離>敀告于<芻牟>

公主,年雖少艾華泽充溢,美如秋花潔如銀鱗,察機之智近於細明,容物之德似或不足.”

<陜父>,“巧笑納媎流眄揣意,似是好淫之性,不宜聖人之配.”

<烏伊>聖上此計全為天下大事,君等何以毁主妨婚乎.”

上曰“<荊山>之玉非無小瑕,亦足以為璽,天以宝主為我之璽,

雖有小欠,君子居之,何陋之有.”

 

여름에 북옥저 땅의 말갈 2천기가 하()를 건너서 남쪽에 대고 맹세하길

“<적득荻得><고두古斗>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

 

상께서 <부분노扶芬奴>에게 명하여 하남(河南)에 노수(弩手)들을 매복하고 있다가

물가로 기어오르길 기다려서 쏘게 하였더니, 모두가 수중으로 떨어졌으며,

상께서도 또한 <한소><마리>와 더불어

살아남은 군대를 하()중에서 쳐서 대파하였다.

 

<오이>의 동생 <오간烏干><분노>의 동생 <어구菸狗> 등이

책성(柵城)에서 찾아와서 전언하길

“<>공주와 <>부인 모두가 성모의 명을 따라 <해불觧弗>의 처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더니,

상께서는 “<해불>은 약골이어 질환이 잦은데,

<>부인은 예쁘고 호음하며 <>공주는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해불>이 어찌 능히 이 두 여자들을 대적할 수 있을꼬!”라 하였다.

 

<해불>은 오래 가지 않아서 결국 그러하였다.

 

이때 <추모> 20, <해불> 17세이다.

 

졸본의 <연타발>이 상께서 호랑이들을 몰아내고 말갈들을 물리치고

호방한 영웅의 위세가 내외를 들썩이고 있음을 듣고는

사신을 보내와서 만나보길 청하니,

상께서 <재사再思>를 답례의 사신으로 보내었더니 <재사>가 아뢰길

두 임금들께서 서로 만나보시려면 필시 서로가 나라의 경계에서 만나야 할 것 인데,

지금 대왕께서는 병으로 자리를 뜨지 않고 계십니다.

어찌 앉아서 저의 주군을 초대하실 수 있으신지요?”라 하니,

 

<연타발>이 말하길

지난날엔 인심이 도탑고 후하여서 각자가 자기의 경계를 지키면서

예로써 사양하며 살아왔는데,

말갈이 남침한 이래로 남옥저와 순노지방이 그들에게 어육(魚肉)이 되었고,

내 나라를 침략하여 노략질하니 병란(兵亂)이 없는 해가 없더니,

과인도 큰 상처를 입었고 약과 침이 듣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딸 하나가 있는데. 나이가 어리고 아는 것이 없어서,

좋은 낭군을 얻어서 나라를 넘겨주었으면 합니다.

 

근자에 듣건대, 성인(聖人)께서 동쪽에서 오셨더니,

따르는 이들이 구름과 같고 상서로움이 날마다 도래하여서,

호랑이들이 새끼들을 들쳐 업고 스스로 도망하였고

말갈족들은 토굴을 불사르고 먼 곳으로 숨어들었다 합니다.

 

바라기는 딸아이가 이 성인을 지아비로 얻어서

오롯이 과인의 바램을 채워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더부룩한 꼴을 감안하여

그쪽 작은 나라 성인께서 욕망을 억누르고 찾아오셔서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라 하였다.

 

이에 <재사>가 아뢰길

저의 성황께서는 3백인으로 말갈 무리의 8천을 도륙하여

순노 땅을 도탄에서 건져내고 옥저 땅을 쇠사슬에서 풀려나게 하였더니,

<시길>이 찾아와서 굴복하고 갈사국(曷思國)이 은혜를 마음에 품고,

멀리 하북(河北) 땅이 떨고 있으며,

성음(聲音)이 한서(汗西) 땅을 진동하고 있습니다.

 

뜻하심이 웅대하시어 잠시라도 읍국(邑國)들이 해를 당하지 않게 하였더니

그런 연유로 곁에 가까이 있던 세습 호족들은 땅을 바치지 않는 이가 없고

아들들이 찾아와서 귀부함이 답지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공주로 하여서 화친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후한 폐백으로 예의를 차리고 지성으로 찾아오셔서 간청하지 않으십니까?”

라 하였다.

 

이에 <연타발>이 마침내 <구도仇都>로 하여금

소와 말 천 필, 호피 백 장, 보검 열 자루 및 황금 백 냥을 받들고 찾아와서

서로 간에 응낙하여 혼인하길 청하였다.

 

상께서는 그 사신이 오고 있음을 보더니 손을 이마에 대고

하늘이 졸본을 내게 주심이니, 나머지는 걱정할 것이 없겠구나.”라 하시면서,

<구도>를 가까이로 불러서 맞이하시고 은근히 치례하시어 이르시길

나는 나그네로 우연히 싸움 하나를 이겼던 것이며,

능력이 아주 좋은 때문도 아니었소.

 

대왕께서 공주를 허락하시면서 이렇게 후한 예물을 보내심이 실로 성대하니,

내 마음은 이제부터 두 나라를 하나의 천하로 통합하여

대왕께서 저를 아들{사위}로 하시는 은덕에 보필할 것이오. 그대는 나의 은인이오.”

라고 하시며

<구도>의 손을 잡고 술을 권하며 이르시길

그대 역시 나의 신하이기도 하니, 사양하지 말고 취해보시오.”라 하였다.

 

<구도>가 아뢰길

공주께서 제게 명하시길, 술에 취해서 부황(夫皇)께 예의를 잃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신은 감히 애써서 술에 취할 수는 없겠습니다.”라 하였다.

 

이에 상께서는 그에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좋다고 허락하시고 그를 돌려보냈다.

 

애초에, 졸본후(卒本侯)<을족乙足>이 자기 숙부이자 곤연백(鯤淵伯)이었던

<을송乙宋>의 딸 <을류乙旒>와 혼인하여 아들 <을음乙音>을 낳고서 죽었다.

 

국상(國相)<연타발>

7국의 난리{河上戰爭} 중에 사직(社稷)을 지킨 공이 있었던지라

그의 처자들을 떠맡게 되었다.

 

하상전쟁은 BC69년에 일어났다.

이때 <연타발> 38, <을류> 20이다.

 

 

<연타발><을류乙旒>를 처로 맞이하여

<관패貫貝(BC57- )><소서노召西奴(BC66-BC6)>를 낳았다,

 

정축년{BC44}에는 소금 운송과 쇠를 무역하는 일로

<송양松讓>과 한빈(汗濱)에서 교전하다가 패하였더니,

<을류>가 무릎으로 기면서 화의를 구걸하고 <관패><송양>에게 처로 주었으며,

<소서노><구태仇台>와 정분(情分)이 나서 좋아하다가 딸 <아이阿爾>를 낳았다.

 

<구태>는 졸본의 세족(世族)으로 미려(美麗)하였어도 용맹함이 없어서

점차 애정이 식어버리기에 이르렀다.

 

이에 <소서노><추모>께 개가(改嫁)하고자

사람을 시켜서 <구태>에게 자살하라고 권유하여놓고서 지아비가 죽었다고 하였으니,

이때 나이 열일곱이었다.

 

이때 <소서노> 28, 관패 <19>, 추모 <20<이다.

 

추모경은 <소서노>BC66년생으로 추모보다 8살 연상인데

BC55년생으로 하여 추모보다 3살 연하로 기록하였다.

 

 

상께서 <한소>로 하여금 금계(錦罽)저릉(苧綾)색견(色絹)색사(色紗)

금화(金花)옥패(玉佩) 같은 물건을 사들여 예물로 하고,

<마리><협보>로 하여금 보빙사(報聘使)로 삼았다.

 

<소서노>가 친히 스스로 소매를 추스르고 술과 음식으로 환대하며 말하길

나는 혼사가 정해진 이래로 밤낮으로 몽상하느니

부황(夫皇)의 무릎 위에 앉아있습니다.

그대들은 돌아가 례수(禮數) 모두를 갖추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

우선 하루빨리 합근(合巹)하여 첩을 흡족하게 하신 연후에

서서히 갖추시라고 말하여 주시오.”라 하였다.

 

<마리>가 돌아와서 <추모>께 고하길

공주께서는 나이는 비록 적어도 예뻐서 화택(華澤)함이 차서 넘치고,

아름다움이 가을꽃 같고 뽀얗기가 은빛 물고기 같았습니다.

지혜를 살폈더니 세밀하고 똑똑하셨으나

사람들을 포용함은 혹간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라 하였다.

 

<협보>

묘한 웃음으로 애교를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곁눈질로 속을 가늠하니,

이같이 호음할 것 같은 성품은 성인의 짝으로는 마땅치 않습니다.”라고 고하였다.

 

<협보>는 처음부터 <소서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이에 <오이>

성상께서는 이 계책으로 천하대사를 온전케 하려 하시는데,

그대 등은 어찌 공주를 폄훼하여 혼인을 막으려 하시오?”라 하였다.

 

상께서는

형산(荊山)의 옥()은 작은 흠결이 있어도 옥새(玉璽)가 되기에 충분하며,

하늘이 보물 같은 공주를 나의 옥새로 삼으려하니,

설사 작은 결함이 있더라도 군자가 거기에 머물면 어찌 누추함이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七月之望,上齋戒沐浴,<烏伊><吉士(丹公之子)>,

蒸豚脂鯤淵祭玄武之神,仍以西南行至卒本川,

観其土壤肥沃山河嶮固,而嘉之曰吾妻之國果如是乎.”

少焉公主以紫衣白馬引率從者依山而来,

上手額曰吾妻来矣.天賜我歟,天賜我歟.”

乃抱公主於馬上而移于<巨娄>之上,幷騎而歓.

主見聖上之凜凜神風,不覺心醉,顚于上懷,

燕觜轉香鸎丘雀躍,

乃入東城展雲衾而醮焉.

公主再拜且拜曰

妾以小邦之主世襲此邑,輓近以来,北辱於末曷東屈於楽浪,

北有<松讓>南有涉羅,無年不兵無日不戦,國弊民疲無以支存.

况今,新丧于台,國無所主.,以孤寡,不知所圖,

伏乞夫皇矜此可憐,使妾執紼,主此邦民.”

上遜辞再三避之不得,乃與公主設宴三日,合巹二夜雲雨巫山.

二聖歓喜,万民謳歌百僚山呼.

上抱后而喜曰

吾妻之國山河嶮固土壤肥沃,進可以取退可以守,

牛羊魚鼈不可以勝食,黍麥豆粱亦足而富,民有何可憂不知所圖.”

皇后依懷而奏曰

“<女媧>雖賢仰于<庖犧>,<王母>雖聖依於<穆王>,

從古女主皆守牝禮.妾以小國事我夫皇,從玆以徃,事無大小,唯夫主之,妾當隨之.”上曰.”

先是,卒本,有駿牝,無牡不與常牡交之,至于東城,有黑驪自東而来,交之生駒故,

居人異之名東城曰紇升骨城矣.至是,上與后合巹于此,故國人以為天定.

紇升骨者,交騰谷也.

上與皇后進牛壤謁父母,

<陀勃>大喜曰我得佳婿而傳國,何憂之有,死無恨矣.”

<>氏亦眷聖上,不可形言.

上親自調薬,以治其創,大有效果,卒本之臣莫不神之.

上自是居于卒本王宮,與皇后,朝両國之臣,决両國之事.

<陀勃><>氏退居別宮.

於是,卒本國兵馬盡敀<芻牟>.上命<扶尉厭>鍊其精銳,

又選順奴卒本豪族之子女親授弓釼之術.

 

7월 보름, 상께서 목욕재계하고 <오이><길사(丹公之子)>와 함께

돼지를 쪄서 곤연(鯤淵)>에서 현무신(玄武神)에게 제사를 지내고

서남쪽으로 길을 잡아 졸본천(卒本川)에 이르렀다.

 

토양이 비옥하고 산하(山河)가 험고(嶮固)함을 보고 기뻐하여 이르시길

내 처의 나라가 과연 이러한가!”라 하였다.

 

얼마간에,

공주가 자주색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서 종자들을 이끌고 산길을 오고 있었다.

 

상께서는 손을 이마에 대고 이르시길

내 처가 오는구나. 하늘이 내게 주셨음이야, 하늘이 내게 주셨어!”라 하였다.

 

이윽고 마상의 공주를 안아 거루(巨娄) 위로 옮겨서 함께 타고 즐거워하니,

공주는 성상의 늠름하고 신령한 풍채를 보고서

마음이 취하여 깨어나질 못하며 상의 품에 안겼다.

 

제비가 부리로 향내를 풍기고 꾀꼬리 언덕에서 참새가 뛰노는 것 같았다.

 

이윽고 동성(東城)으로 들어가서 운금(雲衾)을 펼쳐놓고 초례(醮禮)를 치렀다.

 

공주가 재배(再拜)하고 또 절하면서

첩은 작은 나라의 주인으로 이 읍국을 세습하였는데,

몇 년 전부터 북쪽으로는 말갈에게 치욕을 당하였고

동쪽으로는 낙랑에게 굽실거려야 하였습니다.

북쪽엔 <송양>이 있고, 남쪽엔 섭라(涉羅)가 있어서,

전란 없는 해와 싸움 없는 날이 없었더니,

나라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역병이 들어서 지탱하고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우태(于台)가 죽었으니 나라는 주인이 없게 되었고,

첩은 홀로 된 과부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부황께서는 이를 가련하게 여기시어

첩으로 하여금 엉킨 실이나 다스리게 하시고

이 나라 백성들의 임금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아뢰었다.

 

상께서는 겸손하게 재삼 사양하여 피하다가 어쩌지 못하여,

공주와 함께 사흘간의 연회를 열고

이틀 밤을 합근(合巹)하시어 무산운우(巫山雲雨)를 나누었다.

 

두 성인께서 매우 즐거워하시니, 만백성들은 노래하고 백료들은 만세를 불렀으며.

상께서는 후를 품에 안고 기뻐하며

내 처의 나라는 산하가 험고하고 땅이 비옥하니,

나아가면 이길 수 있고 물러나면 지킬 수 있으며,

()()()()은 먹어서 없앨 수 없고

()()()() 또한 넉넉하여 부유한데,

백성들이 어찌 근심할 일이 있고 해야 할 바를 모르겠소?”라고 하였다.

 

황후가 품에 안기어 상주하길

“<여왜女媧>께서는 현명하셨어도 <포희庖羲>를 우러르며 따르셨고,

서왕모(西王母)께서는 성인이신데도 주() 목왕(穆王)을 의지하셨으니,

예로부터 여자임금들은 여자의 도리를 지켰던 것입니다.

첩은 작은 나라를 들어서 부황(夫皇)을 섬길 것이니,

이제부터 앞으로는 크고 작은 일 모두를 지아비께서 주재하시고

첩은 응당 따르기로 하겠습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는 알겠소이다.”라 하였다.

 

이에 앞서, 졸본에는 뛰어난 암말이 있었는데,

숫말이 없어서 만나지 못하다가 동성(東城)에 이르니,

동쪽에서 검은 가라말이 찾아왔기에 서로 좋아하여 망아지를 낳았다.

 

그곳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고 동성(東城)을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 불렀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께서 후와 더불어 여기에서 합근(合巹)하였고,

때문에 나라사람들은 하늘이 정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흘승골(紇升骨)이란 서로 올라타는 계곡이라는 말이었다.

 

상께서 황후와 더불어 우양(牛壤)으로 가서 부모를 찾아뵈었더니,

<연타발>이 대단히 기뻐하며 말하길

내가 훌륭한 사위를 얻어서 나라를 물려주게 되었으니, 근심할 것이 무엇이 있겠소.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오.”라 하였으며,

<>씨 역시 성상을 돌보아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상께서 친히 약을 지어 그의 상처를 치료하여 큰 효험이 있었더니,

졸본의 신하들은 그 일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상께서는 이때부터 졸본의 왕궁에 머무시면서

황후와 더불어 두 나라의 신하들과 조회하여 두 나라의 국사를 처결하였고,

<연타발><>씨와 더불어 별궁(別宮)으로 물러나서 기거하였다.

 

이때 졸본국의 군병(軍兵)과 군마(軍馬) 모두가 <추모>께 귀속되었더니,

상께서는 <부위염>에게 명하시어 그들을 정예(精銳)가 되도록 훈련을 시키셨으며,

아울러 순노와 졸본의 호족(豪族) 자녀들에게도 친히 궁술과 검술을 가르치셨다.

 

 

 

 

九月,上與皇后謁屋因祠,與三天后相見於<好陵>之前,

<好陵>定后位於<萱花>之下<乙旃>之上.

上如汗濱,<漢素><鄭共><馬黎>,田宅奴婢,妻以豪族之女,

漢人之以技来敀者日加.

 

 

9, 상께서 황후와 함께 옥인사(屋因祠)를 참배하시고

<호릉好陵> 앞에서 세 천후(天后)들과 상견하더니,

<호릉>의 지위를 <훤화萱花>의 아래이며 <을전乙旃>의 위로 정해주었다.

 

상께서 한빈(汗濱)으로 가셔서 <한소><정공><마려> 등에게 땅과 집을 하사하고

호족들의 딸들로 처를 삼아주었더니,

재주가 있는 한()인들이 찾아와 귀의함이 날로 늘어났다.

 

 

 

 

계미癸未{BC38}

春正月,<萱花>為天太后,<召西奴>為天皇后,<>后為地皇后,<仲室>氏為人皇后.

 

춘정월, <훤화>를 천태후, <소서노>를 천황후,

<을전>후를 지황후, <중실씨>를 인황후로 삼았다.

 

이때 <추모> 21, <훤화> 34, <소서노> 29, <을전> 37, <중실씨> 18?세이다.

 

 

二月,鍊兵二千於<汗濱>,水師八百於<>.

<>公相都於鶻岺湖

上飭諸将毋奪民貨色以安其生.

 

2, 병사 2천을 한빈(汗濱)에서 훈련하고, 수군 8백을 하()중에서 훈련하였다.

 

<>공에게 명하여 골령호(骨岺湖)에 도읍할 자리를 살피게 하였다.

 

제장들에게는 조칙을 내리어 백성들의 재화와 여인을 빼앗지 말고

그들의 생활이 편안케 하라고 하였다.

 

 

五月, 曷賊<雪敬>等一千余騎来侵靑谷,<摩離>擊破之.

其舟楫兵仗多是沸流国物也.上命<奧春><松讓>相詰.

 

5, 말갈 적도 <설경> 1천여 기가 청곡(靑谷)으로 쳐들어왔기에,

<마리>가 이들을 격파하였다.

 

그들의 배 및 노와 병장기들 다수가 비류국의 물건들이어서,

상께서 <오춘>에게 명하여 <송양>과 함께하여 그 연유를 따져보게 하였다.

 

 

七月,上與<>皇后如汗南,與桓那囯女主<桂婁>夫人,.

上見<桂婁>皃美而有勇其志高尙,恨不得早見.<>亦見<芻牟>之聖,有欽仰之色.

其國界一從<>后之言而割與卒本,

桓那之臣多不平.

<桂婁>天下從當皆敀於<芻牟>,汝等何爭尺寸地乎.”

 

7, 상께서 <>후와 더불어 한남(汗南)으로 가서

환나국(桓那囯) 여임금 <계루桂婁>부인과 나라간의 경계를 정하였다.

 

상께선 <계루>가 미모인데다가 용맹하고 그 뜻이 고상함을 보더니만

일찍 만나지 못하였음을 한스러워하였으며,

<계루> 또한 <추모>께서 훌륭하심을 보더니 흠모하며 따르려는 기색이 있었다.

 

국경을 정함에 있어서 하나같이 <>후의 말을 따라 졸본국에게 주었다.

 

이에 환나국 신하들의 불평이 많았더니,

<계루>가 이르길

천하가 종당엔 모두 <추모>에게 귀속할 터인데,

그대들은 어찌 한 자 한 치의 땅을 다투려는가?”라 하였다.

 

 

 

八月,<柴吉>来襲牛山,上親征大破之仍復鯤淵以南失地又取奄東盖斯之地屬於卒本,

<柴吉>来朝,<柴吉>稱病遣使来献主襲者五人謝罪.

<>后生<元陽>公主.

鮮卑王<豪全>,遣使来献土物,賀復<順奴>故地. <箕東><于真>来降.<>后婿也.

 

 

8, <시길柴吉>이 우산(牛山)을 습격하여 오니,

상께서 친히 그를 정벌하여 대파하고,

나아가서 곤연(鯤淵)이남의 잃었던 땅을 복구하고,

또한 엄수(奄水) 동쪽의 개사수(盖斯水) 땅을 취하여 졸본에 귀속시켰다.

 

<시길>에게는 래조하라고 명하니,

<시길>은 병을 핑계하며 사신 편에 습격을 주모했던 다섯 사람을 바치고 사죄하였다.

 

<훤화>후가 <원양元陽>공주를 낳았다.

 

추모(훤화) - 원양(BC38- )

<원양元陽><비류沸流(BC47-1)>가 된다.

 

선비왕 <호전(BC88-BC34)>이 사신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치고

순노의 옛 땅을 복구하였음을 하례하였다.

 

기동(箕東) 땅 수장 <우진于眞(BC59?- )>이 찾아와서 투항하였다.

<을전乙旃>후의 사위였다.

 

九月,<>公薨,

遺命其妻事<芻牟>,以其子為<芻牟>.

盖馬王<燕音>之子<>,與其左大将<好丘>右大将<呂哲>,

自立為盖馬王,<>公之妻<>氏為其妻.

<>氏使人来告,<陜父>請伐之,不許.

 

 

9, <>공이 죽었다.

그의 처에게 유명으로 <추모>를 섬기고 그 아들을 <추모>의 아들로 삼게 하였는데,

개마왕 <연음燕音>의 아들 <연의燕宜>

그의 좌대장 <호구好丘>와 우대장 <여철呂哲>을 이끌고

스스로 개마의 왕이 되어서 <>공의 처 <>씨를 자기 처로 삼았다.

 

이에 <>씨가 사신을 보내와 고하기에 <협보>가 그를 토벌하길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十月,上親率獵騎渡汗水獵于箕丘之東,敀路又與<桂婁>相逢.

上得一香麝,<桂婁>得一羚羊請換之.

上喜許之曰羊大而麝小,得無損乎.”

<桂婁>麝雖価高,非男子之用也.妾當自淨而以待陛下之招後宮.”

上知其意遂入野人家相歓,自是使臣徃来不絶.

<>皇后生<奧花>公主.

 

10, 상께서 친히 렵기병(獵騎兵)들을 이끌고

한수(汗水)를 건너 기구(箕丘)동편에서 사냥하더니,

돌아오는 길에 또 환나 여왕 <계루>를 상봉하였다.

 

상께서는 사향노루 하나를 잡았는데,

<계루>가 영양 하나 잡은 것으로 맞바꾸길 청하였더니,

상께서는 기꺼이 허락하면서

영양은 크고 사향노루는 작은데 손해 보는 것 아니오?”라 하니,

<계루>

사향은 값은 비싸지만 남자에게 소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첩이 응당 그 사향으로 몸을 깨끗이 하고서

폐하께서 후궁으로 부르시길 기다리겠습니다.”라 하였더니,

상께서 그 뜻을 알아채고 들판의 인가로 들어가셔서 서로를 즐기었으며,

이때부터 사신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을전>황후가 <오화奧花>공주를 낳았다.

 

추모(을전) - 오화(BC38- )

<오화奧花>는 <송의松義(BC35?-36)>의 처가 되었다가 비류의  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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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