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馬之年,公生焉.

去年大旱今年大水,一人作之十人食之.飽者其誰

作者常飢,忠者轉壑 奸者跋扈,

民望始缺廷議不一,花朝月夕雲雨之楽,

池鳥獸耳目之悅,只堪欠伸不足為賞.

范賊入寇欲城玄菟, 烏桓伐之斬其校尉,

卑離紫蒙幷力大破, 漢卒匹馬不敀.

帝命槐里調理上谷, 降者賞之拒者殄之.

霍光謀內不暇於 外,雖有慘敗有若不知, 忠在簒逆不問邊事.

- 박창화 필사본 <추모경>

 

화마(丙午,BC75)년에 <칠柒>공이 태어났다.

지난해(乙巳,BCE76)가 크게 가물었고 금년(丙午,BCE75)엔 홍수가 나서,

한 사람이 지은 것을 열 사람이 먹었으니 배부른 자 누구였더냐.

농사를 지은 이도 매일같이 굶고 있고 충성(忠誠)하는 이들은 산골짝에서 엎어지매

간교(奸巧)한 이들이 발호(跋扈)하여,

백성들의 희망은 사라지기 시작하고 조정은 의견이 엇갈렸지만,

경개(景槪) 좋은 시절이어 운우지락(雲雨之樂)하는 성문(城門)과 해자(垓子)의

새들과 짐승들로 눈과 귀는 즐거우매 그저 견딜 만하여서

하품하며 기지개도 켜 보지만, 부족한 것은 상(賞) 줄 일이로고

 

<범范>적{西漢將帥范明友}이 현도(玄菟)땅에 침입하여 노략하며

성을 쌓으려 하였더니 오환(烏桓)이 그들을 쳐서 교위(校尉)의 목을 베고

비리(卑離){鮮卑一派}>와 자몽(紫蒙){鮮卑一派}>이 힘을 합쳐 크게 이겼더니

한(漢)의 군대는 말 한 필도 살아가지 못하였다.

 

모수제께서 <괴리槐里>에게 명하사,

상곡(上谷)을 사리를 따져서 처리하고 항복한 이들에겐 상을 주고

저항하는 이들은 모조리 쓸어버렸다

{☞기상이변과 漢의 침공으로 內憂外患이 심각한 상태임}

{☞匈奴・鮮卑・烏桓은 모두 옛朝鮮의 後裔들임}.

 

<곽광霍光>은 안에서 모의하느라 밖의 일엔 겨를이 없어서

비록 참패하였어도 모르는 척하였으니,

충성(忠誠)이란 찬탈(簒奪)과 반역(反逆)함에 있고

변방(邊方) 일은 모를 것이었더라

{☞前漢의 內憂外患도 심각한 상황임}.

 

孝昭皇帝上元鳳六年(丙午,公元前七五年)

春 正月 募郡國徒築遼東 玄菟城

夏 赦天下

烏桓復犯塞 遣度遼將軍范明友擊之 - 자치통감

 

봄, 정월, 군국의 죄수들을 모아 요동 토성을 쌓았다.

여름, 나라에 사면령을 내렸다.

오환이 다시 변방을 침범하여 도요장군 범명우를 보내 물리쳤다.

 

武帝의 죽음{BC87년}으로 漢의 요동 지배력이 약해지자

BC75년 모수제는 漢의 현도군 치소{今 흥융(興隆)}를 공격하게 되고

漢의 <범명우>라는 자가 토성을 쌓는 와중에

오환과 비리, 자몽 등이 이들을 몰살시킨 사건을 말한다.

 

그들이 <자치통감>에서 오환을 이긴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漢 무제가 죽은 다음의 漢나라는 그만한 힘도 없었고

현도가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난 지도 오래되었다.

 

 

오환은 BC222년 흉노 목특에게 밀려 동진하여 열하(今 승덕) 부근에서

일부는 멀리 대흥안령 동쪽지역까지 넓게 퍼져 살게 되고

토착세력인 예족과 조선에 흡수되기도 한 흉노의 동진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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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