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四年癸酉,

四月, <猗盧>使<六脩>伐<段疾陸眷>見敗. <慕容廆>取<段><徒河>而還.

<張統>降于<廆>. <廆>, 以<統>爲<楽浪>太守, <王遵>爲{叅}軍事.

此所謂<楽浪郡><廆>置也

 

미천대제14년{AD313}계유,

 

4월, <탁발의로拓跋猗盧>가 <육수六脩>를 시켜 <단질륙권段疾陸眷>을 정벌시켰더니,

<육수六脩>가 패하였다.

 

<모용외>는 단(段)의 도하(徒河)땅을 취하여 돌아갔다.

 

<장통張統>이 <모용외>에게 투항하니,

<외廆>는 <통統>을 낙랑태수로 삼고 <왕준王遵>은 참군사로 삼았다.

 

이곳이 소위 <외廆>가 설치한 낙랑군이다.

 

 

「건흥 원년(AD 313년)

 

4월 요동의 <장통張統>이 낙랑, 대방 2군에 있으면서

고구려왕 <을불>과 상공(相攻)하여 여러 해 동안 풀리지 않더니,

낙랑의 <왕준王遵>이 <장통>에게 권고하여

그 민 1,000여 가를 이끌고 <모용외>에게 귀부케 하였다.

 

<모용외>가 이들을 위하여 낙랑군을 두고

<장통>을 낙랑태수에 <왕준>을 낙랑군 참군사로 삼았다.

<자치통감 晉紀 10>

 

 

<도하 (徒河)와 모용부(慕容部), 단부(段部)및 탁발부(拓跋部)>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