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대제14년{AD313}계유,
춘정월, <을>태후궁에서 조회를 받고는 감주로 연회를 열었다.
상이 태보 <선방仙方>에게
"안평(安平)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낙랑을 깨야 하겠는데,
안전하게 출병할 수 있는 계획을 내시오."라고 이르니,
<선방>이 아뢰길
"<자술子述>은 용맹하나 지모가 없습니다.
지략 있는 사람을 써서 정벌함이 마땅합니다.
신은 계략을 써서 기습하여 취하시길 청합니다."라고 하였고,
상이 그리 하라고 하였다.
<선방>을 征南大将軍으로 삼아
<조문祖文>·<뉴벽紐碧>·<장막사長莫思>·<창멱倉覓> 등을 이끌고,
형편을 살펴서 일을 도모하게 하였다.
10월,
<선방>이 낙랑왕 <자술子述>과 살천원(薩川原)에서 만나 사냥하기로 하였는데,
<자술>이 <선방>의 정예기병을 보더니만 거기서 심히 내빼고 싶어 하는지라,
<선방>이 뒤따라가서 <자술>을 사로잡고,
<조문>과 <뉴벽>을 시켜 해빈(海濱)의 제읍을 평정하였다.
<창멱>이 교위부(校尉府)를 깨고, 교위의 속국 사람 일곱을 사로잡아 바쳤다.
<장막사>는 낙랑성을 습격하여 깨고는 남녀 2천여 명을 사로잡아 바쳤다.
<선방>을 낙랑의 왕으로 삼고 작위를 태공으로 올려주어서
낙랑의 무리들을 지키게 하였다.
<자술>의 낙랑국은 옛 청해군 지역으로 맥이 세운 나라이다.
일제는 313년에 미천대제가 낙랑군을 멸한 것으로 주해하여
고구려가 400여년간 중국의 지배를 받은 것 처럼 해석햐였다.
낙랑군은 313년에 晉의 낙랑태수 장통과 참군사 왕준이 모용외에게 귀부하여
모용외가 낙랑군을 설치하여 장통을 태수로 삼았다.
<모용외의 낙랑군과 자술의 낙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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