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2년(A.D.326) 화구(火狗=丙戌)

 

정월 <양부良夫(291-372)>를 이벌찬으로,

<달례達禮(303-371)>를 품주 겸 지군사(知軍事)로 삼았다.

 

당시 <우로于老(277-331)>와 <말흔末昕(278-350)>이 군사의 우두머리였고,

<달례達禮>가 오랫동안 군모(軍母)로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또한 <양부良夫>에게 그 군권(軍權)을 나누게 하여,

화림(花林)을 세우고자 하는 만약의 계책이었다.

 

이전에 <우로于老>가 <명원命元 (307-374)>에게 새로 장가를 들어,

해택(海宅)에 있는 조분선금(助賁仙今 254-329)을 만나러갔다.

 

선금(仙今)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달례達禮>와 <명원命元> 모두 나의 딸이다.

 

<첨해沾解 (274-324)>는 나의 다른 아버지의 동생이고,

너에게는 다른 어머니의 형이다.

 

<첨해>의 처를 너에게 시집보내는 것은 나의 뜻에 심히 합치된다,

신금(新今)이 깨달은 게로구나.”라고 하였다.

 

<우로于老>가 말하기를

 

“<달례達禮>는 음란함을 좋아하나 <명원命元>은 그러지 않습니다.

신(臣)은 새로운 여자를 사랑하여 옛 여자를 버렸습니다.”

라고 하였다.

 

선금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늙은 남자는 젊은 여자를 좋아하니, 네가 어찌 매혹되지 않았겠느냐?

 

<명원命元>은 <달례達禮>에 비하여 온유(溫柔)하고 날씬하고 예쁜데

신금이 차지하지 않고 너에게 준 것이다.

 

아마도 나의 뜻이 너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우로于老>가 말하기를

 

“<벌휴伐休 (189-256)>의 정통(正統)은 아버지(父, 조분)와 나에게 있는데,

우리나라는 어머니를 중요시하여 외척(外戚)이 왕위를 훔쳤습니다.

 

신금은 한(漢)의 왕망(王莽)과 같습니다.

 

여동생인 후(后, 아이혜)는 음란함을 좋아하여 (미추를) 총애하여,

신하가 제위에 있으므로 조종(祖宗)의 법(法)이 아닙니다.

 

부금(父今, 아바마마)은 어찌하여 누이동생을 제어하여 왕위를 바로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였다.

 

<조분>이 웃으며 말하기를

 

“참된 사람은 인간되지 않은 소행에 자재(自在, 구속함과 방해함이 없음)한다.

 

서방은 금(金, 서방)인 까닭에 살벌(殺伐)함을 좋아하여 남자가 정치를 주관하고,

동방은 목(木)인 까닭에 생육(生育, 낳아서 기름)을 좋아하고 여자가 정치를 주관한다.

 

여자는 어질고 화합하나 그런 까닭으로 음란함을 좋아한다.

 

음란함을 좋아하는 것은 덕(德)의 최고선이다.

 

살벌한 것은 악의 최상이다.

 

그런 연유로 서토(西土)에는 신선(神仙)이 이미 끊어지고,

동방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너는 어찌하여 살벌한 소리를 하여 화목한 기운을 깨뜨리려는 것이냐.

 

네가 니금이 되지 못한 까닭(所以) 역시 화목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화목하지 아니하면 어찌하여 만물(萬物)이 생장할 수 있겠느냐.

 

신금 역시 나의 아들이고 너 역시 나의 아들이다. 어찌 차별이 있겠느냐.

 

너는 마땅히 화목한 기운을 길러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로 인하여 <명원>과 서로 안고 춤추도록 하고,

선금이 손수 북을 치고, 초희(綃姬)에게 노래 부르게 하여 풀도록 하였다.

 

<우로>가 성을 낸 곳에 초궁인(綃宮人)이 있어

그 말을 <아이혜阿爾兮>后에게 고(告)하였다.

 

그런 연유로 후(后)가 니금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나의 오빠에게 다른 뜻이 있으니 병권을 맡기는 일은 불가하다.”

라고 하였다.

 

니금이 말하기를

 

“(첨해가) 갑자기 죽어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살아있으면 반드시 시기(猜忌)할 것이니 천천히 도모함이 옳다.”

라고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달례>의 옛 신하들이 모두 <양부>에게 속하게 되어

<우로>의 권세가 크게 깎이게 되었다.

 

<우로>가 화를 내는 뜻이 있었으나,

니금이 양존(陽尊, 겉으로만 존경함)하여 <우로>를 원상태공(元上太公)으로 삼았다.

 

니금이 5일에 한 번씩 안부를 묻고, 오로지 굽히며 숙부(叔父)라고 불렀다.

 

그 옷과 먹을 것 사는 곳을 사치스럽게 하였다.

 

 

2월 니금(尼今)과 <아이혜阿爾兮>后가 조상의 사당에 친히 제사를 지내고

천하의 죄인을 사면하고 백관들에게 작위를 1급씩을 올렸다.

 

선고(先考, 돌아가신 아버지) <구도仇道>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존하여 봉(封)하고,

어머니 <술례述禮>를 높이어 태후로 하였다.

 

<술례>의 남편 <말흔末昕>을 차상태공(次上太公)으로 삼았다.

 

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자, 아후(阿后)가 취하여 니금을 안고 춤추며 말하기를

 

“나의 남편이 씩씩한 양선(陽仙)이니 사랑스럽구나!”라고 하였다.

 

우로(于老)가 후(后)를 꾸짖어 말하기를

 

“너는 선금(仙今 조분)의 처이고, 비록 측부(側夫)를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선금이 아직 살아계시는데 어찌 감히 군신(群臣)들을 대하며 남편이라 칭하느냐?”

하고 하였다.

 

后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오빠는 어찌 시새움을 합니까?”라고 하였다.

 

“미추(味鄒)는 말흔(末昕)의 아들이니,

나의 아들임이 마땅한데 너는 남편으로 삼았으니 부끄럽지 않느냐?”라고 하였다.

 

후가 말하기를

 

“오빠는 나의 딸을 처로 삼았는데,

늙은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장가를 들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나는 오빠의 자식을 남편으로 삼아, 늙은 여자가 젊은 남자를 만나 기쁩니다.

 

인생은 모름지기 즐거움을 행할 뿐이고, 어찌 스스로 괴로워하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명원命元>에게 명하여 <우로>를 끌고 춤을 추는 대열로 들어가게 하였다.

 

 

신라의 모계혈통 중시와 선도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