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대제26년{AD325}을유,
2월, <석륵>이 <우문걸득귀宇文乞得皈>에게 관작을 주고는 <모용외>를 치게 하였다.
<외廆>는 세자인 <모용황>·색두(索頭)·단국(段國)을 함께 보내어
<석륵>의 <우문걸득귀>를 치게 하였고,
요동 재상 <배억>을 우익으로 <모용인>을 좌익으로 삼았다.
<걸득귀乞得皈>는 연수(渷水)에 거점을 두고 <황皝>에게 대적하면서,
형의 아들인 <실발웅悉拔雄>을 보내서 <인仁>에게 대적하게 하였다.
<인仁>이 <실발웅悉拔雄>을 공격하여 목을 베고, 승승하여 <황皝>과 합쳐,
<걸득귀乞得皈>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걸득귀乞得皈>는 군대를 내팽개치고 도주하게 되었다.
<황皝>과<인仁>이 그 나라의 성으로 들어가고,
가볍게 무장한 군병으로 하여금 <걸득귀乞得皈>를 쫓게 하였더니,
그 나라 땅을 3백여 리나 지났다가 돌아왔다.
중기(重器)와 가두어 기르던 짐승 도합 200만두를 모조리 노획하였으며,
투항하여 온 백성도 수만이나 되었다.
3월 <단말배>가 죽어, 동생 <아牙>가 섰다.
11월 <모용외>가 <단段>씨 및 <방목方睦>과 더불어
<단아段牙>를 위한 모의를 하고는 그의 도읍을 옮기게 하니,
<아牙>가 그 결정을 따른 즉 영지국(令支國)으로 갔다.
사람들은 <단질육권段疾睦眷>의 자손을 반기지 않았다.
요(遼)는 이들의 지위를 빼앗고 싶어 도읍을 옮긴 것을 <아牙>의 죄로 규정하였다
12월 나라사람들을 동원하여 <아牙>를 죽였다.
요(遼)가 <단段>씨를 세웠다. 정사는 요(遼)가 보았다.
업무를 깨끗이 한 이래로부터 날이 갈수록 강성하여져서
그들의 땅은 서쪽으로는 어양(漁陽)에 접하고 동쪽 경계는 요수(遼水)이었다.
호(胡)人과 진(晉)民을 합쳐 3만 호를 통솔하였기에
기사병(騎射兵)이 4, 5만이나 되었다.
<석륵石勒>이 사자를 보내 통화(通和)하자 (모용)외가 이를 거절하고는
그의 사자를 (붙잡아) 건업(建鄴)으로 보냈다.
<석륵>이 분노하여 <우문걸득귀宇文乞得龜>를 보내 (모용)외를 공격하자
(모용)외는 (모용)황을 보내 이를 막았다.
<배억裴嶷>을 우부도독(右部都督)으로 삼아
색두(索頭)를 이끌고 우익(右翼)이 되게 하고,
그의 소자(少子,막내아들) (모용)인(仁)에게 명해
평곽(平郭)으로부터 백림(柏林)으로 나아가 좌익(左翼)이 되게 하여,
(우문)걸득귀를 공격해 이기고 그의 무리를 모두 붙잡았다.
승세를 타고 그 국성(國城)을 함락하고
억을 헤아리는 (매우 많은) 자용(資用)을 거두고
그 인민들 수만 호(戶)를 (붙잡아서) 옮기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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