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왕 5년(AD.329) 토우(土牛=己丑)

 

2월 <조분선금助賁仙今(254-329)> 죽었다.

 

선금은 신선(神仙)을 좋아하여 人事에 관하여 마음에 두는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해택(海宅)과 도산(桃山)에서 20년을 살았으며,

가까이서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우객(羽客 신선)이었을 뿐이다.

 

결국 도(道)를 얻어 우화(羽化)하였다.

 

해로(海老)가 멀리서 바라보고

니금(尼今)과 총비(寵妃) 초희(綃姬)를 쌍어(雙魚)라고 불렀다.

 

임금의 수레를 타고 승천(升天)한 곳에,

복숭아 지팡이를 심었는데 지팡이의 머리에서 꽃이 피었다.

 

그런 연유로 <조분>이 살았던 곳을 백성들이 받들어 장산사(杖山祠)로 삼았다.

 

의대(衣帶), 금관(金冠), 약물(藥物) 등을 껴묻고, 월백릉(月白陵)이라 불렀다.

 

선도(仙徒)들이 노래를 짓고, 추모하여 모인 자가 천여 명이었다.

 

후에 왕의 문랑(文郞)이 시를 지어 찬양하여

 

“월백선황(月白仙皇)은 어디로 갔느냐.

쌍어(雙魚)는 돌아오지 않고 지팡이에 핀 복숭아꽃이 날리네.”

라고 하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