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택산함(澤山咸)
몸을 낮춰서 성실하게 감응함으로 아내를 맞으면 길하다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
괘사(卦辭)
‘함’(咸)은 서로 통(通)하는 것, 전심으로 하나로 합해 감응하는 것이다.
서로 감응하는 것 중에서 젊은 남녀 간의 감응이 가장 지극하다.
괘상은 태상간하(兌上艮下)이다.
태(兌)는 연못, 소녀, 기쁨, 수다, 깎임, 은둔, 구멍, 양, 입, 첩, 서쪽을 뜻하고
간(艮)은 산, 개, 손, 귀신, 제사, 소남, 착실함, 그침, 마침, 머무름을 뜻한다.
안으로 성실하게 그쳐서 머무르지만 밖으로는 기뻐한다.
산 위에 연못이 있다.
산이 연못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소남(艮)이 소녀(兌)를 품속에 안은 것이다.
소남이 자기를 낮춰 머물러 소녀를 구하니 소녀가 기쁜 마음으로 따른다.
함(咸)은 비록 형통하지만 정도를 따르지 않으면 문란해지기 때문에
정도를 지켜야만 이롭고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
택산함(澤山咸)은 젊은 남녀의 감응이고, 뇌풍항(雷風恒)은 중년 남녀의 감응이다.
풍산점(風山漸)은 바르게 시집을 가고 뇌택귀매(雷澤歸妹)는 부당하게 시집간다.
불통의 천지비(天地否)의 건곤(乾坤)의 上九와 六三이
택산함의 택산(澤山)의 上六과 九三이 된다.
이것이 유(柔)가 올라가고 강(剛)이 내려와서 감응하는 것이다.
효사(爻辭)
[初六] 咸其拇(함기무) 엄지발가락에 감응한다.
象曰 咸其拇(함기무) 志在外也(지재외야)
함기무는 뜻이 바깥에 있음이라.
初六은 감응(咸)의 시초로, 위의 九四는 정응이다.
음효가 양위에 있어서 九四를 향해서 나아가고 싶은 뜻은 있지만 재능이 부족하다.
그 감응함이 아직은 깊지 못해서 엄지발가락만 느낀다.
상전에서도 엄지발가락에 감응함은 그 뜻이 밖에(외괘/九四) 있다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택화혁(澤火革)이다.
初九는 과강하지만 아직은 시기가 이르고 응이 없기 때문에
황소 가죽(중정한 六二)으로 굳게 묶으라고 했다.
[六二] 咸其腓(함기비) 凶(흉) 居吉(거길)
장딴지에 감응한다. 흉하다. 머무르면 길하다.
象曰 雖凶居吉(수흉거길) 順不害也(순불해야)
수흉거길은 순리를 따르면 해롭지 않음이다.
六二는 군주 九五와 정응이고, 九三은 친비이다.
순리에 따라서 조금 멀더라도 九五를 기다려야 하지만,
가까운 친비인 九三에게 감응하면 올바름을 잃음이고 흉하다.
그것을 발과 그 위의 장딴지에 비유했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흉하지만 머물러 있으면 길한 것은
순리를 따르면 해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행히 六二는 그치는 간(艮)의 중정한 덕이 있고
아래에 강(剛)을 올라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쳐서 머무를 수 있다.
장딴지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몸통과 다리 전체에 붙어서 움직이듯이
머물러서 정응 九五의 부름을 기다림이 옳다.
六二가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이다.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돋아난다.
노부가 젊을 처를 얻어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비록 조금 과하나 자손을 볼 수 있어 이롭다.
[九三] 咸其股(함기고) 執其隨(집기수) 往吝(왕린)
넓적다리에 감응한다.
따르는 것에만 집착한다. 나아가면 궁색하다.
象曰 咸其股(함기고) 亦不處也(역불처야)
志在隨人(지재수인) 所執下也(소집하야)
함기고는 또한 머무르지 않음이고 뜻이 타인을 따름에 있고 집착하는 바가 비천하다.
九三은 그쳐서 머무르는 간(艮)의 주효이자 극(極)이다.
九三은 上六과 정응이고 六二와는 친비하다.
九三은 하괘에 머무를지 상괘로 나아갈지 결정해야만 한다.
양(陽)은 위로 나아가려 하고 음(陰)을 쫓음이 당연한데
九三이 과강하고 처한 위(位)가 위태해 감응(咸)의 정도를 지키지 못하고
감언을 일삼는 上六을 성급히 따르려고 한다.
상전에도 넓적다리에 감응함은 또한 바르게 머무르지 못함이고
뜻이 따르는 것을 집착함에 있으면 비천하다고 했다.
그 따르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마치 몸통에 넓적다리가 붙어서 그저 몸통이 움직이는 대로 따름과 같다.
스스로 감응해 나아가지 못하고 따르는 것만 고집하면 흉하고 인색하다.
九三이 효변하면 택지췌(澤地萃)이다.
모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기 때문에 슬퍼서 탄식한다.
이로울 것이 없으니 나아가도 허물은 없겠지만 다소 궁색하다.
[九四] 貞吉(정길) 悔亡(회망) 憧憧往來(동동왕래) 朋從爾思(붕종이사)
바르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자주 오고가면 벗이 네 뜻을 좇는다.
象曰 貞吉悔亡(정길회망) 未感害也(미감해야)
憧憧往來(동동왕래) 未光大也(미광대야)
정길회망은 감응해서 해가 되지 않는 것이고 동동왕래는 빛나고 크지 못한 것이다.
九四는 상괘의 첫 효사로, 맨 처음 하괘와 감응한다.
처음 감응하면서 올바르게 감응하지 못하면 후회가 있다.
게다가 九四가 음위에 있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아래 初六과 응하는 것이 사적으로 응하는 후회가 있을 수 있어서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했다.
九四는 세 양효의 중간에 있어서 괘상으로 가슴, 심장을 상징하기 때문에
감응(感)의 주체이다.
그래서 다른 효사와는 다르게 효사에 몸의 부위를 말하지 않았다.
사적으로 자주 오고가면 그 뜻을 얻기는 하겠지만 동류(同類)들만 따르게 된다.
대신으로서 사적인 정에 매여서 初六에게 감응해서 등용하면 공(功)을 이룰 수 없다.
상전에도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는 것은
사적으로 감응해서 해를 입지 않음이고
자주 오고가서 벗들이 따르게 되면 크게 빛나지는 못한다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수산건(水山蹇)이다.
六四는 나아가면 험난하지만 돌아오면 연대(連)하게 된다.
[九五] 咸其脢(함기매) 无悔(무회)
등살(脢)에 감응한다. 후회가 없다.
象曰 咸其脢(함기매) 志末也(지말야)
함기매는 뜻이 말인(末) 것이다.
九五는 중정한 군주이다.
九五는 六二와 정응이고 上六과는 친비이다.
등살에 감응함은 사적인 응비(應比) 관계를 등지고 사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군주로서 사심으로 응하면 후회가 있게 되고 등지면 후회가 없어진다.
상전에서도 등살에 감응함은 그 뜻이 말(末)이라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산소과(雷山小過)가 된다.
구름이 서쪽 교외로부터 왔으니 빽빽한 구름에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이다.
공(公)이 구멍 속에 있는 것(六二)을 쏘아서 잡는다.
[上六]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
볼과 뺨과 혀에 감응한다.
象曰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 滕口說也(등구열야)
함기보협설은 기뻐하여 입이 벌어 짐이다.
上六은 상괘 태(兌)와 함(咸)의 극(極)에 있다.
上六은 기쁨과 구설의 태(兌)와 감응의 극(極)에 있어서 기쁨과 구설이 지극하다.
上六이 효변하면 천산돈(天山遯)이 된다.
上九는 넉넉하게 물러나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上九는 아래에 응도 비도 없기 때문에 얽매임 없이 초연하게 물러날 수 있다.
32. 뇌풍항(雷風恒)
마땅한 도가 아니거나 때에 맞게 변통할 줄 모르면 항구할 수 없다
부부의 도(道)
괘사(卦辭)
‘항’(恒)은 변치 않는 항구함이다. 변함없는 중년 부부의 도리이다.
괘상은 택산함(澤山咸)을 거꾸로 뒤집은 진상손하(震上巽下)이다.
진(震)은 용,우레, 장남, 제후, 격동, 봄, 다리, 움직임(動)등을 뜻하고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시장, 들어감, 줏대 없음, 이익, 허벅지, 공손함을 뜻한다.
위로 장남이 있고, 아래에 장녀가 있다.
가정에서 상도(常道)는 남편이 위에 있고, 아내는 아래에 있는 것이다.
상괘 진(震)은 진동하여 나아가고 하괘 손(巽)은 공손한 덕이 있다.
장남인 진(震)은 밖에서 활동하고, 장녀인 손(巽)은 안에서 공손히 순종한다.
이것이 변함없는 중년 부부의 도리이다.
상괘 우레와 하괘 바람이 함께 화합하는 것이다.
우레는 밖으로 움직여서 나아가지만 바람은 안으로 파고든다.
항(恒)은 변통을 모르는 불변함을 뜻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에 고정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때에 따라서 끝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올바른 이치이다.
이치에 맞게 바르게 행하면 천지의 도와 같이 항구히 지속할 수 있다.
부부의 도리를 이야기하는 함(咸)과 항(恒)은 모든 효사들이 음양이 상응한다.
효사(爻辭)
[初六] 浚恒(준항) 貞凶(정흉) 无攸利(무유리)
항에 집착한다. 바르더라도 흉하다. 이로움이 없다.
象曰 浚恒之凶(준항지흉) 始求深也(시구심야)
준항지흉은 시초부터 깊이 구함이다.
初六은 하괘 손(巽)의 주효이고, 정응 九四는 상괘인 진(震)의 주효이다.
공손한 初六은 음유해서 위의 정응 九四가 구원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九四는 나아가는 성질의 진(震)의 주효로서 위가 바르지 못한 대신이다.
게다가 둘 사이에는 九二와 九三이 가로막고 있으니 구하러 오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상황을 初六이 깨닫지 못하고 상도(常道)만을 고집하여 구하면 흉하다.
변통을 모르고 정응 九四가 상응해주길 포기하지 않으면
비록 바르다 해도 흉하고 이롭지 않다.
初六은 재능도 없고 위가 바르지 못해서 시작부터 너무 과도한 항(恒)을 구한다.
상전에서도 과도한 항(恒)이 흉함은 시초에 깊이 구하기 때문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발꿈치가 왕성하다.
나아가면 반드시 흉하다.
[九二] 悔亡(회망) 후회가 없어진다.
象曰 九二悔亡(구이회망) 能久中也(능구중야)
九二회망은 중도로 항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九二는 위로 六五와 정응이다.
九二는 위(位)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있지만,
중(中)을 얻었고 위의 六五의 응원 덕분에 중도를 항구히 지킬 수 있어서
후회가 없어진다.
주역에서 중(中)은 반드시 정도지만 정(正)은 반드시 정도인 것은 아니다.
언제나 정(正)보다 중(中)이 중요하다.
상전에도 九二의 후회가 없음은 중도를 항구히 지키기 때문이라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할아버지를 지나서 할머니를 만난다.
분수를 지켜서 바로 군주에 이르지 않고 신하를 먼저 만나면 허물이 없다.
[九三] 不恒其德(불항기덕) 或承之羞(혹승지수) 貞吝(정길)
그 덕을 항구히 지키지 못한다. 혹 수치를 당하게 된다. 바르더라도 궁색하다.
象曰 不恒其德(불항기덕) 无所容也(무소용야)
불항기덕은 수용될 바가 없음이다.
九三은 과강하고 줏대 없는 하괘 손(巽)의 극에 있어 절제가 부족하다.
정응인 上六을 향해서 조급히 나아가려 한다.
上六을 구해 조급히 나아가면 자신의 덕을 항구히 지키지 못하는 것이므로
궁색할 뿐 아니라 수치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
상전에서도 그 덕을 항구히 지키지 못하면 수용되지 못한다 했다.
무릇 사람이 덕을 오래 지속시킬 수 없으면 수용되기 힘들고,
마땅히 머무를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라고 항구히 지속하기를 고집한다면 궁색한 것이다.
九三이 효변하면 뇌수해(雷水解)가 된다.
짐을 짊어지고 올라타서 도적을 이르게 한다.
바르더라도 궁색하다.
[九四] 田无禽(전무금)
사냥을 가도 밭에 사냥감이 없다.
象曰 久非其位(구비기위) 安得禽也(안득금야)?
그 자리가 아닌데 항구하게 한다고 어찌 새를 얻겠는가?
九四는 위(位)가 바르지 못한 대신이라서 상하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양효가 음위(陰位)에 있는데다가
중(中)도 얻지 못해서 항구하게 해도 이루는 것이 없다.
사냥을 가더라도 밭에 사냥감이 없다.
마땅한 자리에 거처하여 그 행하는 바가 정도에 부합하고
이것을 항구히 지키면 공을 이루겠지만,
마땅한 그 자리가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유익함이 없다.
상전에서도 마땅한 자리가 아님에도 항구하게 한다고
사냥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 되물었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풍승(地風升)이다.
왕이 기산에서 형통하게 한다.
길하고 허물이 없다.
성품이 바르기 때문에 분수를 지키고 순리를 좇아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여 형통하게 한다.
[六五] 恒其德貞(항기덕정) 婦人吉(부인길) 夫子凶(부자흉)
덕을 항구하게 하면 올바르다. 부인에게는 길하고, 대장부에게는 흉하다.
象曰 婦人貞吉(부인정길) 從一而終也(종일이종야)
夫子制義(부자제의) 從婦凶也(종부흉야)
부인정길은 일부종사함이고 대장부는 의리로 다스려야지 부인의 도를 따르면 흉하다.
六五는 九二와 정응이다.
음효가 양강에게 중용의 덕으로 상응함이 마땅하고
그 덕(德)을 항구하게 지키면 올바르다.
이와 같이 오래토록 변함없이 순종하는 것을 고수하는 것은 부인에게 바르고 길하다.
하지만 사내대장부가 아랫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을 오래토록 하는 것은
그 양강한 덕을 잃는 것이기 때문에 흉하다.
보통은 음효가 군위에 처했을 때
아래 양효에게 정응하는 것이 실도(失道)하는 것은 아니다.
상전에서 말했듯이 일부종사(一夫從事)는 부인에게 바르고 길하나
사내대장부는 의리(義)로써 다스려야지 부인의 따르는 도를 좇음은 흉한 것이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된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었다.
늙은 지어미가 젊은 지아비를 얻음이다.
허물도 없지만 그렇다고 명예도 없다.
[上六] 振恒(진항) 凶(흉)
항상 빠르게 흔들리므로 흉하다.
象曰 振恒在上(진항재상) 大无功也(대무공야)
위에 있으면서 항상 빠르게 흔들리면 크게 공이 없다.
上六은 상괘 진(震)과 항(恒)의 극(極)에 처했다.
上六은 음유로서 진동(震動)이 지극한 위치에 있다.
항(恒)의 도가 극(極)에 이르게 되면 상도(常道)가 아니며
또한 진동(震動)의 극(極)은 곧 정(靜)이 된다.
본성이 하강하는 음효가 윗자리에 있기 때문에 더 편안하지 못하고,
음유한 자는 자신의 덕을 굳게 지킬 수 없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반드시 항구하는 덕을 갖춰야만 공(功)을 이룰 수 있다.
윗자리에 있지만 항도(恒道)를 지키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여서 흔들리기 때문에 공(功)을 이룰 수도 없고 크게 흉하다.
上六이 효변하면 화풍정(火風鼎)이 된다.
上九는 옥으로 된 솥의 고리로서 크게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강유를 겸비하여 과강하지 않아서 크게 길하다.
수풍정과 화풍정은 모두 가장 높은 상효에 이르러서
그 공(功)을 이루고 통(通)하게 된다.
33. 천산돈(天山遯)
사심에 매이지 말고 초연하게 물러나야 한다
은둔의 지혜
괘사(卦辭)
‘돈’(遯)은 물러남, 도피, 은둔을 뜻한다.
어리석은 체하며 스스로 물러나서 은둔함이다.
괘상은 건상간하(乾上艮下)이다.
건(乾)은 하늘, 노부, 말, 머리, 대인, 수레, 둥근 것, 강건함을 뜻하고,
간(艮)은 산, 소남, 손, 개, 쥐, 귀신, 제사, 성실, 동북, 마침(從), 머무름을 뜻한다.
하늘 아래에 산이 있음이다.
산은 하늘을 향해서 솟아오르고 하늘은 산을 피해 위로 물러난다.
아래로부터 음의 세력이 자라서 무성해지니 양은 쇠퇴하고 물러난다.
소인은 성대해지고 군자는 물러나서 은둔한다.
돈(遯)은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는 강건한 덕이 있다.
위의 군자들은 음이 무성해지는 것을 미리 깨닫고 물러나지만
아래의 소인들은 물러나지 못하고 머무르다가 해를 입는다.
군자는 자신의 도(道)를 굽히지 않기 위해서 물러나서 은둔하여 덕을 기르면,
결국 형통하게 된다.
군자는 물러나야 할 기미(幾微)를 깨달아서 미리 경계하지만
음이 아직 성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때에 알맞게 해야 할 바를 하면서 올바름을 지킬 수 있다.
소인이 자라나되 아직 성대하지 않은 돈(遯)의 때, 아직은 물러날 여지가 있다.
비록 군자가 소인을 멀리하지만 말씨나 태도를 험악하게 하지 않고 위엄을 보여서
소인이 공경하도록 해야 한다.
만약 험악한 태도로 멀리 하면 오히려 해를 입게 된다.
효사(爻辭)
[初六] 遯尾厲(돈미려) 勿用有攸往(물용유유왕)
물러나는 꼬리로 위태하다. 나아가지 말라.
象曰 遯尾之厲(돈미지려) 不往何災也(불왕하재야)?
돈미지려는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음유(陰柔)한 初六이 가장 아래에 있어서 꼬리라고 말했다.
初六은 시작으로서 미약해서 미처 물러나지 못하고 뒤쳐졌다.
늦게 물러나면 꼬리를 밟혀서 위험한 지경에 처했다.
차라리 나아가지 말고 그쳐서 머무르면 재앙은 면한다.
상전에도 물러나는 꼬리로 위험해도 나아가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 있느냐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천화동인(天火同人)이 된다.
문을 나서서 동인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初九는 동인의 시작으로 사적인 친분을 떠나서 동인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六二] 執之用黃牛之革(집지용황우지혁) 莫之勝說(막지승탈)
황색 소 가죽으로 잡아맸으니 벗길 수 없다.
象曰 執用黃牛(집용황우) 固志也(고지야)
집용황우는 뜻을 견고히 함이다.
황색은 중앙(土)의 색이고 소는 순한 동물이며 가죽은 견고한 물건을 뜻한다.
六二는 정응 九五에게 응하여 따른다.
중정(中正)한 덕으로써 감응하여 응함이 마치 황소가죽으로 잡아맨 것처럼 견고해서
그것을 벗길 수 없다 했다.
상전에도 황소 가죽으로 잡아매는 것은 뜻을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라 했다.
자신의 소임을 완수하기 때문에 효사에서 六二만 돈(遯)을 언급하지 않았다.
六二가 효변하면 천풍구(天風姤)가 된다.
물고기를 꾸러미 속에 두면 허물이 없지만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날쌘 암퇘지로 인한 해를 공손함과 중용(中庸)의 덕으로 포용한다.
[九三] 係遯(계둔) 有疾厲(유질려) 畜臣妾吉(축신첩길)
물러남에 매여 있다.
질병이 있어서 위태하다. 신하와 첩을 기름에는 길하다.
象曰 係遯之厲(계돈지려) 有疾憊也(유질비야)
畜臣妾吉(축신첩길) 不可大事也(불가대사야)
계돈지려는 병이 있어 고달픔이고 축신첩길은 큰일은 불가함이다.
九三은 위에 정응이 없고 六二와 친비하기 때문에 친하길 구하므로
물러나는데 매여 있다고 했다.
돈(遯)의 때에는 소인의 기세가 번성하기 전에 그 기미를 깨닫고
초연히 물러나는 것이 선(善)이다.
六二에게 매여서 제때에 물러나지 못하면 결국 해를 입는다.
그것이 질병이 있음이고 위태롭다.
정도에 매이면 병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적인 정을 추구하여 매이기 때문에
신하나 첩을 기르는 것과 같은 작은 일에나 길하다.
상전에서도 물러나는데 매여 있어서 위험한 것은 병이 있어서 고달픈 것이고,
신하나 첩을 기르는 일에 길하다 함은 큰일은 할 수 없음이라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천지비(天地否)가 된다.
감싼 것이 부끄럽다.
재능도 없고 위도 바르지 못하여 정응이 응해 주지 않아서 부끄럽다.
[九四] 好遯(호둔) 君子吉(군자길) 小人否(소인비)
좋은 것을 두고도 물러난다.
군자는 길하겠지만 소인은 흉하다.
象曰 君子好遯(군자호둔) 小人否也(소인비야)
군자는 좋은 것을 두고도 물러나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함이다.
九四는 대신의 지위에 있다.
아래 初六과 정응이지만 돈(遯)의 때에 九三처럼 사사로운 정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것을 두고도 물러난다.
하지만 위가 바르지 못해서 뜻을 굳게 지키지 못할까 해서
길하다고 말하지 않고 소인은 흉하다고 경계하였다.
군자는 좋아하고 아끼는 것을 두고도 의리상 마땅하면 물러나고
소인은 사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에 얽매여서
자신을 위험 속에 빠뜨리고 욕되게 하고도 그칠 줄 모르기 마련이다.
상전에도 군자는 좋은 것을 두고도 물러나고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풍산점(風山漸)이 된다.
기러기가 점점 나무에 나아간다.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
밑에 양강한 九三을 타고 있어서 편안할 방법(평평한 가지)을 구해야 허물을 면한다.
[九五] 嘉遯(가돈) 貞吉(정길) 아름답게 물러난다.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다.
象曰 嘉遯貞吉(가돈정길) 以正志也(이정지야)
가돈정길은 뜻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九五는 아래 六二와 정응이다.
중정(中正)한 도는 시운(時運)에 따라서 적절히 진퇴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모습이 더 아름다운 것이다.
사심에 얽매이지 않고, 바른 도(道)를 굳게 지키면 길하다.
六二와 九五 모두 중정(中正)한 덕이 있어서 나아가고 물러섬이 아름답고 길한 것이다.
상전에도 아름답게 물러나고 올바름을 지켜서 길하다 함은
뜻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화산려(火山旅)이다.
六五는 활을 쏘아 꿩을 단번에 잡아서 결국 명예와 복록을 얻는다.
그러나 六五는 군주의 지위에 있지 않다.
무릇 나그네라 함은 편안한 바를 잃은 곤궁한 때를 말한다.
명예를 얻고 믿음을 얻어서 위아래로 두루 편안하게 되면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비록 여행 중이 아니라도 믿음을 잃게 되면 편안함을 잃게 되고
결국 나그네와 다름없다.
[上九] 肥遯 无不利 넉넉하게 물러난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肥遯无不利(비돈무불리) 无所疑也(무소의야)
비돈무불리는 의심할 바가 없음이다.
上九는 상괘인 건(乾)과 돈(遯)의 극(極)에 있다.
上九는 결단력이 있고 하괘에 정응도 없어서 물러남에 얽매이는 것이 없다.
따라서 초연하고 넉넉히 물러난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전에서도 넉넉히 물러나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한 것은
의심할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택산함(澤山咸)이다.
볼과 뺨과 혀에 감응한다.
무릇 진심으로 감응하지 않고
달콤한 말이나 번듯한 말로 상대를 감동시키려고 하면 흉하기 마련이다.
上九는 감응함으로 통하는 때의 마침이고
또 기쁘고 구설의 상(象)이 있는 태(兌)의 극(極)에 있기 때문에 흉하다.
34. 뇌천대장(雷天大壯)
성대하고 왕성하다고 해서 그 힘과 기세를 앞세우지 말라
군자도 피할 수 없는 힘 조절의 어려움!
괘사(卦辭)
‘대장’(大壯)은 성대한 것, 양(陽)이 자라나서 무성해지는 것이다.
돈(遯)은 음(陰)이 자라나서 양(陽)이 물러나고,
대장(大壯)은 양이 자라나서 음이 물러난다.
비록 물러나도 다시 왕성해지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이다.
천지의 시운(時運)은 돌고 돌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괘상은 천산돈(天山遯)을 거꾸로 뒤집은 진상건하(震上乾下)이다.
진(震)은 우레, 장남, 용, 발, 봄, 다리, 제후, 장수, 움직임, 격분해 나아간다는 뜻이고
건(乾)은 하늘, 노부, 말, 군자, 수레, 강건함을 뜻한다.
안으로 강건하고 밖으로 진동하는 덕이 있다.
뇌천대장은 음력 2월로서, 양기가 자라나서 조만간 초목이 움터 나오게 된다.
대장(大壯)은 봄 하늘에 우레가 울려 퍼짐이다.
대(大)는 양(陽)이고 군자이기 때문에
대장은 군자의 세력이 자라나서 왕성해지고 소인의 세력이 쇠퇴한다.
무릇 왕성할 때는 그 세력을 믿고 교만해져서 예가 아닌 것을 행하기 쉽다.
군자라면 왕성할 때 스스로를 수신(修身)함으로써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하고 비로소 이로움이 있다.
효사(爻辭)
[初九] 壯于趾(장우지) 征凶有孚(정흉유부)
발꿈치가 왕성하다. 나아가면 반드시 흉하다.
象曰 壯于趾(장우지) 其孚窮也(기부궁야)
장우지는 반드시 곤궁하게 된다.
初九는 대장(大壯)의 시작이다.
初九는 대장의 가장 아래에 있어서 발꿈치이다.
미천한 지위에 있지만 과강해서 의욕만 앞서 그 기세가 왕성하다.
시운(時運)과 자기 분수를 모르고 왕성한 기세만 앞세워 나아가면 흉하다.
상전에도 발꿈치가 왕성하면 반드시 곤궁하게 된다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뇌풍항(雷風恒)이 된다.
항에 집착해서 시초부터 깊은 항을 구한다.
재능도 덕도 없는데 시작부터 과도한 항(恒)을 추구하면
비록 그 구하는 것이 상도(常道)라 해도 흉하고 이롭지 않다.
[九二] 貞吉(정길)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다.
象曰 九二貞吉(구이정길) 以中也(이중야)
九二정길은 중도로써 하기 때문이다.
九二는 六五와 정응이다.
九二는 음위에 있어서 강유(剛柔)가 조화를 이루었고 중용의 덕이 있다.
시운을 잘 살펴서 때에 마땅하고 바르게 할 수 있어 길하다.
상전에서도 九二가 바르게 하면 길한 것은 중도로써 행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위로 유약한 군주 六五를 섬기며
아래로 강건한 건(乾)의 중을 얻어 과하지 않게 정도를 지키면 길하다.
九二가 효변하면 뇌화풍(雷火豊)이다.
그 거적이 풍성해서 한낮에도 북두칠성을 본다.
나아가면 의심과 질시를 받기 때문에 비록 신임 받지 못하더라도
성신을 다해서 뜻을 펼치면 감동시킬 수 있고 신뢰를 얻고 길하다.
[九三] 小人用壯(소인용장) 君子用罔(군자용망) 貞厲(정려)
羝羊觸藩(저양촉번) 羸其角(이기각)
소인은 왕성한 기세를 사용하지만, 군자는 왕성함이 없는 듯이 한다.
고집하면 위태하다.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그 뿔이 걸림이다.
象曰 小人用壯(소인용장) 君子罔(군자망)
소인은 장성한 기세를 사용하지만 군자는 없는 듯이 처신한다.
대장(大壯)의 때 九三은 양강하면서 건(乾)의 극(極)에 처했다.
왕성한 그 힘과 기세를 숭상하여 앞세우게 되면
앞을 막은 울타리를 받아서 뿔이 걸림과 같다.
이를 고집하면 위태하다.
상전에도 소인은 그 왕성한 기세를 내세우지만
군자는 왕성함이 없는 듯이(罔) 처신한다고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뇌택귀매(雷澤歸妹)가 된다.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려고 기다린다.
돌아와서 첩으로 시집간다.
[九四] 貞吉悔亡(정길회망) 藩決不羸(번결불리) 壯于大輿之輹(장우대여지복)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다.
울타리가 터져서 걸리지 않는다.
큰 수레의 바퀴살이 왕성하다.
象曰 藩決不羸(번결불리) 尙往也(상왕야)
번결불리는 나아감을 숭상(尙)함이다.
九四는 상괘 진(震)의 주효이다.
양(陽)이 무성해지는 대장(大壯)의 때 九四는 대장(大壯)의 중간을 넘었고
가장 앞에 위치한 양효이므로 지나치게 왕성하다.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정도를 잃기 쉬워서 바르게 하라고 했다.
진동(震動)의 주체이지만 다행히 음위(陰位)에 있어서
九三과 같이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여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울타리가 터져서 열리기 때문에 그 앞에 장애물이 없어지고
수월하게 나아가는 것을 큰 수레의 바퀴살이 왕성하다 했다.
상전에도 울타리가 터져서 걸리지 않으면 계속 나아갈 수가 있다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천태(地天泰)이다.
서둘러서 날아간다.
부유하지 않지만 이웃들과 함께 한다.
경계하지 않고 믿음을 얻게 된다.
음효들은 본래 아래가 편안하기 때문에
모두가 심중으로 원래의 편안한 제 위치로 돌아가기를 원하므로 경계하지 않는다.
[六五] 喪羊于易(상양우이) 无悔(무회)
양(羊)을 쉬이 잃었다. 후회는 없다.
象曰 喪羊于易(상양우이) 位不當也(위부당야)
상양우이는 위(位)가 부당함이다.
대장(大壯)의 괘상에서 효사들을 2개씩 묶어서 하나로 보면 태(兌)가 된다.
태에는 양(羊)의 상이 있다.
양은 항상 무리지어서 다니기 때문에
네 양효들이 무리지어 자라나는 대장은 양의 상으로 말했다.
아래에서 네 양효들이 왕성하게 무리지어 나아오지만
음유한 군주인 六五는 강제로 힘으로 저지시킬 수는 없다.
오직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으로써 온화하게 맞아야 한다.
상전에서도 양을 쉬이 잃으면 후회가 없음은
처한 위(位)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五는 중(中)을 얻었지만 정(正)은 얻지 못한 음유한 군주이기 때문에 부당한 것이다.
양은 앞으로 들이받고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부드럽고 쉽게 다스려야 한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천쾌(澤天夬)가 된다.
잡초 같은 악인 上六을 결단한다.
上六이 감언이설로 환심을 사려 하지만 중도로써 행하면 허물이 없다.
[上六] 羝羊觸藩(저양촉번) 不能退不能遂(불능퇴불능수)
无攸利(무유리) 艱則吉(간즉길)
숫양이 울타리를 받아서 뿔이 걸려 진퇴양난이다.
이로울 바가 없다.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
象曰 不能退不能遂(불능퇴불능수) 不詳也(불상야)
艱則吉(간즉길) 咎不長也(구부장야)
불능퇴불능수는 헤아리지 못함이요 간즉길은 허물이 커지지는 않음이다.
上六은 九三과 정응이다.
정응에게 가고 싶지만 양이 밑에서 자라서 무성해져서 두려워서 진퇴양난이다.
上六은 진(震)과 대장(大壯)의 극(極)에 있어서 왕성하여 지나침이 있다.
그러나 본성이 음유해서 그 뜻이 지극해도 끝까지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한다.
상전에도 진퇴양난은 헤아리지 못함이고
어렵게 여기면 길함은 허물이 커지지는 않기 때문이라 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헤아림 없이 나아가면
숫양이 울타리에 뿔이 걸리듯이 진퇴가 곤란하다.
따라서 어려워하고 분수를 지켜서 삼가면
극(極)에 있어서 그 허물이 오래가지는 않기 때문에 곧 허물을 면한다.
上六이 효변하면 화천대유(火天大有)가 된다.
현명함과 풍성함이 지극하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고 불리할 것이 없다.
35. 화지진(火地晉)
현명한 윗사람을 믿고 유순히 따르라. 그 따름에 합당한 예우를 하라
밝은 불이 땅위로 나오다!
괘사(卦辭)
‘진’(晉)은 나아가다, 밝음이 성대하다, 해가 땅위에 떠오름이다.
괘상은 리상곤하(離上坤下)이다.
리(離)는 불, 해, 중녀, 눈, 꿩, 화려함, 분별, 무인, 달라붙음을 의미하고
곤(坤)은 땅, 노모, 소, 배, 암말, 치마, 황색, 중앙, 유순함을 의미한다.
태양이 땅 위에 솟아올라 그 밝음이 성대한 것이다.
위로는 밝은 덕이 있고 아래로 순(順)하게 따르는 덕이 있어서
군신 간에 서로 신뢰함을 상징한다.
주역에서는 지풍승(地風升), 풍산점(風山漸), 화지진(火地晉) 등이 자라나는 의미인데,
화지진(火地晉)이 그 중에서도 솟아나는 힘이 가장 크다.
승(升)은 땅 밑에서 초목의 싹이 자라서 올라오고,
점(漸)은 산에서 초목이 점점 자라난다.
진(晉)에는 강후(康候)에게 말을 하사하기를 여러 번 하는데
하루에도 세 번이나 강후가 천자로부터 부름받는다.
강후는 천자를 유순히 받들어 나라를 안정시키는 제후를 말하는데,
유순함으로써 위의 밝음에 붙따르는 덕(德)이 있다.
진(晉)은 밝음이 땅 위로 나아감이고, 크게 밝은 것에 순(順)하게 붙따름이다.
유(柔)한 것이 군위(君位)에 있으면서 밝은 덕으로 아래의 신하들을 총애하고
그에 맞게 예우하여 아랫사람이 순종하고 따르도록 만든다.
주역에서 제후는 네 번 나온다.
水雷屯 괘의 利建候에 나오는 제후는 만물을 生하는 어려움에 공이 있는 제후로
開國의 功, 창업의 功이 있는 제후(初九)로 신분과 혈연, 지연을 초월한 제후이다.
雷地豫 괘의 利建候에 나오는 제후는 하늘의 뜻에 순종하는 제후(九四)이다.
地水師 괘의 丈人은 전쟁에 공이 있는 제후(九二)이다.
그리고 火地晋 괘의 康候는 밝은 진리로 세상을 편안하게 한 제후(六二)이다.
밝은 진리로 세상을 편안하게 한 제후의 功이 가장 크므로
강후에게 말을 자주 하사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불러서 극진하게 예우하였다.
효사(爻辭)
[初六] 晋如摧如(진여최여) 貞吉(정길) 罔孚(망부) 裕无咎(유무구)
나아가고 물러난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 신임받지 못해도 느긋하면 허물은 없다.
象曰 晋如摧如(진여최여) 獨行正也(독행정야) 裕无咎(유무구) 未受命也(미수명야)
진여최여는 홀로 바름을 행함이고 유무구는 명을 받지 못함이다.
初六은 진(晉)의 시작이다.
위의 九四는 정응이다.
初六은 음효로 재능도 없는데 위(位)도 바르지 못하고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윗사람에게 단번에 신임을 받기는 어렵다.
신임을 얻기에만 급급해 나아가면 망동함이고 허물을 자초하는 것이다.
신임을 얻지 못해도 자기 분수를 알고 여유를 갖고 정도를 지키면 허물이 없다.
비록 나아가더라도 정응 九四는 성품이 바르지 못한 석서와 같은 대신이다.
아래 음효들을 저지하고 의심한다.
상전에도 나아가고 물러남은 홀로 올바름을 지키기 위함이고
여유를 가지면 허물이 없음은 명(관직)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발에 형틀을 채워서 발을 상하게 하면 허물이 없다.
경미할 때 행동을 금하여 더 이상 악을 행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六二] 晉如愁如(진여수여) 貞吉(정길) 受玆介福于其王母(수자개복우기왕모)
나아감이 근심스럽다.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다. 왕모로부터 큰 복을 받는다.
象曰 受玆介福(수자개복) 以中正也(이정중야)
수자개복은 중정하기 때문이다.
六二는 중정(中正)을 얻었지만 군주 六五와 정응이 아니고
九四에게 가로막혀 나아감에 근심이 있다.
六二는 중정한 덕을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다.
다행히도 군주 六五는 리(離)의 주효로 밝은 덕이 있어서 결국 등용될 수 있다.
그래서 왕모(六五)로부터 큰 복을 받는다 했다.
상전에서도 큰 복을 받는 것은 중정한 덕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수레바퀴를 뒤로 끌어당긴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
과강하면 윗사람에게 불손을 범하기 쉽다.
[ 六三 ] 衆允(중윤) 悔亡(회망)
무리(衆)가 믿고 따른다. 후회가 없다.
象曰 衆允之志(중윤지지) 上行也(상행야)
무리가 믿는 뜻은 위로 행함이다.
六三처럼 음효가 양위(陽位)에 있고 하괘의 극(極)에 있으면
보통 허물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六三은 곤(坤)의 극(極)에 있어서
유순하고 순종함이 지극해서 아래 初六과 六二가 믿고 따른다.
六三이 혼자가 아닌 무리를 지어서 세 음효가 함께
지혜로운 군주 六五를 따르기 때문에
위(位)가 바르지 못한 허물을 면하게 되고 후회가 없어진다.
상전에도 무리가 믿는 그 뜻은, 위로 나아감에 있다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화산려(火山旅)이다.
그 숙소가 불타고 동복의 바름을 잃어서 위태하다.
과강해서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랫사람을 홀대했기 때문이다.
[九四] 晉如(진여) 鼫鼠(석서) 貞厲(정려)
나아가는 것이 다람쥐와 같다. 눈치를 보고 나아가면 위태하다.
象曰 鼫鼠貞厲(석서정려) 位不當也(위부당야)
석서정려는 위(位)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九四는 성품이 바르지 못한 대신으로 지위를 탐하면서
아래로 유순하게 六五를 따르는 곤(坤)의 음효들을 올라타고 있고
위로는 유(柔)하지만 밝음이 지극한 군주를 짊어지고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치 석서(들쥐, 날다람쥐)와 같다.
석서(鼫鼠)는 교활하게 사람의 눈치를 살피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야생동물로,
군주 측근에서 해악을 끼치는 간신을 뜻한다.
마땅한 지위가 아닌데 욕심으로 탐하기를 고집하면 위태롭다.
상전에서도 석서와 같은 행동을 고집하면 위태로운 것은
지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라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산지박(山地剝)이다.
상을 다 깎아서 피부에 이른다.
곧 몸을 상하는 재난이 임박했으니 흉하다.
[六五] 悔亡(회망) 失得勿恤(실득물휼) 往吉(왕길) 无不利(무불리)
후회가 사라진다.
득실을 걱정 말라. 나아가면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失得勿恤(실득물휼) 往有慶也(왕유경야)
실득물휼은 나아가면 경사가 있다.
음유한 六五가 아래에 양강하고 부당한 구사를 올라타고 있어서
후회가 있을 법도 하다.
六五는 상괘 리(離)의 중(中)을 얻어 지혜롭고
상하가 모두 붙따르기 때문에 후회가 사라진다.
잃고 얻음이라고 함은 아래 세 음효들이 구사에 의해서 저지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六五는 크게 밝고 중용의 덕이 있어서 백성들이 모두 유순하게 따르기 때문에
나아가면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전에도 득실을 걱정하지 말라 함은 나아가면 경사가 있음이라고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천지비(天地否)이다.
불통을 그치게 한다.
대인은 길하다.
망할까 거듭 두려워하며 뽕나무 등걸에 단단히 붙들어 맨다.
불통이 완전히 다스려질 때까지 신중을 기한다.
[上九] 晉其角(진기각) 維用伐邑(유용벌읍) 厲吉(려길) 无咎(무구) 貞吝(정린)
그 뿔에 나아감이다. 오직 읍을 정벌함에 사용하면 위태하나 길하다.
허물은 없지만 올바름에는 인색하다.
象曰 維用伐邑(유용벌읍) 道未光也(도미광야)
유용벌읍은 도(道)가 빛나지 못함이다.
上九는 리(離)와 진(晉)의 극(極)이다.
上九는 양강하고 진의 극(極)이자 마침에 있어서
과강함이 궁극에 이르러서 뿔이라 했다.
조급히 나아가면 강함과 밝음이 상하게 된다.
오직 읍을 정벌함에 사용함(維用伐邑)이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과강함은 자기 자신을 다스림에나 사용하면 길해도 과하므로 올바름에는 인색하다.
무력을 사용해서 그 불복하는 자들을 정벌하는 것이라고도 해설한다.
上九가 효변하면 뇌지예(雷地豫)이다.
上六은 예(豫)의 극에 있어서 쾌락에 빠져 눈이 어두워졌다.
그리 오래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개과천선해야 허물을 면한다.
36. 지화명이(地火明夷)
자신의 밝음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더라도 올바름을 잃지 말라
성인에게 배우는 난세를 사는 법!
괘사(卦辭)
‘명이’(明夷)는 밝음이 상(傷)해서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밝음이 땅속에 들어가면 어둠이 된다.
괘상은 화지진(火地晉)을 거꾸로 뒤집은 곤상리하(坤上離下)이다.
곤(坤)은 땅, 노모, 소, 치마, 황색, 유순함, 순종함을 의미하고
리(離)는 불, 태양, 중녀, 눈, 꿩, 분별, 달라붙음, 화려함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유순하게 보여도 내면에는 밝은 덕이 있다.
폭군이 존위(상육)에 있어 지혜를 드러낼 수 없는 암군(暗君)의 시절이다.
군자가 밝게 드러내면 상하고 해를 입게 된다.
명이(明夷)에는 자신의 밝은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 의리(義理)이고 최선(最善)이다.
밝음이 상하는 명이(明夷)의 때, 비록 어렵더라도 올바름을 지켜야 이롭다.
올바름을 잃지 않는 것에 이로움이 있다.
명이는 안으로 밝고, 밖으로는 유순한 덕이 있어서 큰 환난을 이겨낼 수가 있다.
주(周) 문왕이 은(殷) 주왕에 의해서 유리옥(羑里獄)에 갇혀서 고초를 겪었지만
자신의 밝음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 유순하게 처신해서
그 큰 환란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렵더라도 올바름을 지킴이 이로운 것은 그 어두운 때가 오래 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자(箕子)가 그랬듯이, 비록 나라 안에 있어서 어렵지만 그 뜻을 바르게 할 수 있다.
기자는 주왕의 가까이에서 올바름을 간언했지만
비간(比干)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고서 깨닫고 거짓 광인 행세를 해서
자기 뜻을 감추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명이(明夷)의 때,
군자는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지 않아야 화(禍)를 면할 수 있다.
비록 밝음이 땅 속에 들어갔다고 해도,
그 밝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그저 감춰진 것이다.
군자가 명이(明夷)를 살펴서 본받아 백성의 허물을 살피더라도
그 잘못을 너무 일일이 밝게 드러내지 않는다.
너무 밝히게 되면 백성이 감추고 거짓되게 만드는 것이고
또 소인들의 저항 때문에 해를 입을 수도 있다.
오히려 그 허물을 감춤으로써 백성의 바름을 기른다.
효사(爻辭)
[初九] 明夷(명이) 于飛垂其翼(우비수기익) 君子于行(군자우행)
三日不食(삼일불식) 有攸往(유유왕) 主人有言(주인유언)
명이에 나는데 날개를 늘어뜨린다.
군자가 행함에 3일을 먹지 않는다. 나아감에 주인이 말이 있다.
象曰 君子于行(군자우행) 義不食也(의불식야)
군자우행은 백이 숙제가 의리 상 먹지 못함이다.
初九는 명이(明夷)의 시작이다.
다른 괘와 달리 명이에서는 上六이 암군이다.
初九는 암군에게서 가장 멀리 있다.
初九는 정응인 六四를 향해서 가고 싶지만 밝음을 상하게 하는 시절이기 때문에
녹(祿)을 먹지 않고 멀리 날아간다.
군자가 나아가서 뜻을 펼칠 수 없는 것을 날개를 늘어뜨린다고 말했다.
명이에 날개를 다쳐서 늘어뜨린다고도 한다.
명이(明夷)의 시초에 이미 그 기미(幾微)를 깨닫고 서둘러 피하는데,
관직과 녹(祿)을 버리고 의연하게 물러나서 3일을 굶을 만큼
궁핍한 은둔 생활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고 말이 있다.
初九는 위에 정응을 두고도 때와 기미를 살펴서 응하지 않고 물러나기 때문에
주인 六四가 말이 있다.
상전에서도 날아감에 3일을 먹지 않는 것은
녹(祿)을 먹음이 의리에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지산겸(地山謙)이 된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춰서 땅의 아래에 있듯이 겸손해야 하는 때이다.
初六은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다.
대천을 건넘과 같은 위험한 일에도 해(害)를 입지 않을 정도로 길하다.
[六二] 明夷(명이) 夷于左股(이우좌고) 用拯馬壯吉(용증마장길)
명이에 왼쪽 다리를 상함이다. 구원해주는 말이 건장하면 길하다.
象曰 六二之吉(육이지길) 順以則也(순이칙야)
六二가 길한 것은 순리대로 법칙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六二는 명이의 때 화를 면할 수 없어 왼쪽 다리를 다쳤다.
군자는 비록 상해를 입더라도 정도를 지키기 때문에 심한 상해를 입지 않고
또 구원의 방법이 있다.
왼쪽 다리를 다친 것은 심한 상해는 아니라는 뜻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성품이 바르고 리(離)의 중정(中正)을 얻었으니
지혜롭고 순하게 따르기 때문에 큰 해를 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원의 방법인 말이 건장해야 길하다.
상전에도 六二의 길함은 그 법칙으로써 순리대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지천태(地天泰)가 된다.
九二는 소통과 안정을 다스리는 자로서,
거친 것들도 포용하고 맨몸으로 강을 건널 만한 용기도 있고
멀리 있다 하여 버리지 않고 사적인 정에 치우쳐서 붕당을 짓지 않고
중도로써 행한다면 숭상함을 받게 된다.
[九三] 明夷(명이) 于南狩(우남수) 得其大首(득기대수) 不可疾貞(불가질정)
명이에 남쪽으로 사냥을 가서 그 우두머리를 잡는다.
잘못을 급히 바르게 할 수는 없다.
象曰 南狩之志(남수지지) 乃大得也(내대득야)
남쪽으로 사냥하는 뜻을 크게 얻게 된다.
九三은 리(離)의 극(極)에 있어서 강함과 밝은 덕이 지극하다.
九三은 上六과 정응이지만,
명이(明夷)의 때 上六은 곤(坤)과 명이의 극(極)으로 어둠이 지극한 암군이다.
사실 九三과 上六은 상극(相剋)으로, 적응(敵應)이 된다.
남쪽은 임금이 좌정해서 바라보는 방향으로 앞쪽에 있는 밝은 곳이다.
사냥은 해악을 제거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남쪽으로 사냥가는 것은
밝은 덕으로 나아가서 어두움(해악)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괴수는 암군 上六이다.
암군을 잡더라도 급하게 바로잡으려 하면 곤란하다.
잘못된 구습에 미혹된 채로 익숙해져서
오히려 반발이나 혼란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때를 기다린 뒤에 점진적으로 바로잡아야만 한다.
九三이 효변하면 지뢰복(地雷復)이 된다.
이때는 오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잃었던 것을 회복하니,
절망적인 동지에 하나의 양이 움튼다.
六三은 처한 위와 음유한 자질 때문에 실도하고 회복하기를 자주 반복한다.
위태하나 허물은 없다.
[六四] 入于左腹(입우좌복) 獲明夷之心(획명이지심) 于出門庭(우출문정)
왼쪽 배에 들어간다. 명이의 마음을 얻어 문을 나선다.
象曰 入于左腹(입우좌복) 獲心意也(획심의야)
입우좌복은 마음과 뜻을 얻는다.
六四는 유순하고 성품이 바르고 상괘 곤(坤)의 체에 있어서 유순히 따른다.
상전에도 암군 상육의 왼쪽 배에 들어감은 그 마음과 뜻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우측은 밝음, 마땅함, 드러냄을 뜻하고 좌측은 어둠, 악함, 숨김을 뜻한다.
좌측 배에 들어가서 명이의 마음을 얻은 이후에 문밖을 나선다는 것은,
六四가 자신의 올바름을 감추고
上六을 거짓으로 섬겨서 안심시킨 후 달아나는 것이다.
옛날에 미자(微子)가 주왕에게 거짓 충성하여 신임을 얻은 뒤에
은나라 종묘의 신주와 위패를 빼돌려 은둔했던 것을 말한다.
六四가 효변하면 뇌화풍(雷火豊)이 된다.
번개와 우레가 더불어 풍성함을 이루는 순간으로,
밝은 덕으로 동(動)하면 형통하게 된다.
풍성할 때는 다사다난하기 쉬워서 마치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두루 천하를 비추듯이 살펴야만 크게 형통함을 이룰 수 있다.
九四는 그 거적이 풍성해서 마치 한낮에 북두칠성을 보는 듯하다.
대등한 주인을 만나면 길하다.
九四는 위로 우매한 군주를 보필하기 때문에
아래의 대등한 짝인 初九와 함께 같은 덕으로 조화를 이뤄서
화합하면 풍성함을 이루게 된다.
[六五] 箕子之明夷(기자지명이) 利貞(이정)
기자의 명이(明夷)다. 올바르게 하면 이롭다.
象曰 箕子之貞(기자지정) 明不可息也(명불가식야)
기자의 바름은 밝음이 사라질수 없음이다.
六五는 원래는 군위(君位)인데 명이(明夷)에서는 上六이 암군이다.
上六에 가장 가깝기 때문에 밝은 덕이 드러나면 화를 입게 된다.
마치 기자(箕子)가 자신의 밝음을 감춘 것처럼 해야만 화를 면할 수 있다.
비록 자신의 밝음을 감추더라도 마음속의 뜻은 정도를 지켜서 올바르게 해야 이롭다.
명이의 환란에 처해서 핍박 때문에 정도를 잃으면, 자신의 밝음을 잃음이다.
논어 미자(微子) 편에서 미자(六四)는 은나라 주왕의 무도함을 깨닫고 은둔하였고,
비간은 간언하다 결국 죽임을 당했다.
기자(六五)는 주왕의 태사(太師)로 간언하다가,
동생 비간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고 거짓으로 광인 행세를 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六五가 효변하면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이미 완성된 순간으로 큰일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기울기 쉽다.
그래서 작은 일은 형통하지만 큰일에는 형통하지 못하다.
동쪽 이웃이 소를 잡아서 성대한 제사를 드려도
서쪽 이웃이 검소하게 제사를 드려서 받는 복보다 못하다.
九五는 감(坎)의 험난함에 빠져 있고
기제(旣濟)의 끝에 가까워서 조만간 혼란이 예상되는 쇠락하는 때이다.
[上六] 不明晦(불명회) 初登于天(초등우천) 後入于地(후입우지)
밝지 못해서 어둡다.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지만, 나중에는 땅 속으로 들어간다.
象曰 初登于天(초등우천) 照四國也(조사국야) 後入于地(후입우지) 失則也(실칙야)
초등우천은 사방의 나라를 비춤이요 후입우지는 법칙을 잃음이다.
보통은 5번째의 효사가 군주이지만 명이(明夷)에서는 上六이 암군(暗君)이다.
上六은 명이(明夷)와 곤(坤)의 극(極)에 있어 밝음의 상함이 지극하다.
처음에는 군주의 지위에 올라서 기세등등하지만 지혜가 어둡고 아둔해서
그 시운(時運)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민심과 도리를 잃고 멸망하게 된다.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에 대한 것이다.
上六이 효변하면 산화비(山火賁)이다.
꾸밈은 실질에 조화롭게 더해야 빛난다.
무릇 꾸밈이 실질보다 과하면 필히 흉하게 되기 때문에 조금만 장식하는 것이 이롭다.
장식의 참 의미는 장식의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고 실질을 잃지 않음에 있다.
上九는 꾸미는 때의 마침이니
소박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아래의 유약한 六五를 도리어 꾸며서
그 뜻을 얻기 때문에 허식을 조심해야 하는 처지이다.
따라서 소박하게 꾸며야만 허물을 면할 수 있다고 경계한 것이다.
37. 풍화가인(風火家人)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가정에서는 여자가 바로 서야 이롭다.
각 자의 자리에서 온 마음을 다하라!
방을 쓸지 않는 자 어찌 천하를 쓸 수 있겠는가?
괘사(卦辭)
‘가인’(家人)은 ‘가족’(家族)을 의미하는데,
풍화가인(風火家人)은 집안을 다스리는 가정의 도(道)이다.
괘상은 손상리하(巽上離下)이다.
손(巽)은 바람, 나무, 닭, 장녀, 시장, 장사, 3배의 이익, 은둔, 들어감, 줏대 없음,
공손함 등을 뜻하고
리(離)는 태양, 꿩, 밝음, 문명함, 중녀, 지혜, 아름다움, 붙따름, 달라붙음 등을 뜻한다.
위에는 장녀 손(巽)이 있고, 아래에 중녀 리(離)가 있어서 중녀가 장녀에게 순종한다.
상괘는 바람, 하괘는 불이니, 바람이 불에서 나온다.
안의 불이 타올라 밖으로 바람이 나오듯이,
가인(家人)은 안의 가정의 도리가 밖으로 나와서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자는 안에서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바르게 함이 옳다.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부인은 부인답게 행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사람이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해야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가정을 바르게 해야 만사를 성취할 수 있다.
이것이 곧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먼저 자기를 수신(修身)하고 그 수신의 바탕 위에서 가도(家道)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
가인(家人)은 여자가 바르면 이롭다.
안을 바르게 하면 밖도 바르게 된다.
따라서 먼저 스스로 자신을 갈고 닦아야만 한다.
여자는 집안에서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바르게 한다.
그래서 안에서 바르게 함을 여자가 바르면 이롭다고 말한 것이다.
안으로 밝은 덕이 있고 밖으로 공손히 따르면 잘 다스려진 것이다.
初九는 손자, 六二는 모친, 九三은 동생(妹), 六四는 형(姉), 九五는 부친,
上九는 조부라고 볼 수 있다.
주역에서는 五효에 양효가, 二효에 음효가 자리함으로써
중정(中正)으로 응(應)함이 정도이다.
비록 작은 가정의 일이라고 해도 위엄을 잃으면 공경함과 예(禮)가 사라진다.
엄히 통솔하는 어른이 없으면 가도(家道)가 무너지기 때문에
부모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이다.
군자는 바람이 불에서 나옴을 살펴서 그 말을 실천(物)하고 행함에 일관성이 있다.
효사(爻辭)
[初九] 閑有家(한유가) 悔亡(회망)
가도(家道)를 세워서 방비하면 후회가 없다.
象曰 閑有家(한유가) 志未變也(지미변야)
한유가는 뜻이 변하지 않음이다.
初九는 가도(家道)를 바로 세워서 집안을 다스리는 시초에 있는
양강(陽剛)하고 성품이 바른 군자이다.
집안이 어지러워지고 문란해져서 그 뜻이 퇴색된 이후에 엄하게 다스리려고 하면
후회가 남게 된다.
따라서 가정을 다스리는 초기에
미리 가도(家道)를 굳게 세워서 대비하면 후회가 없게 된다.
다행히 初九는 밝은 덕이 있어서 시작부터 미리 가도를 세워서 방비한다.
상전에도 뜻이 변하지 않음이라하였다.
初九가 효변하면 풍산점(風山漸)이다.
안으로 머무르고 밖으로 공손하게 따르면 나아감에
때와 질서에 어긋남이 없고 점진할 수 있고 곤궁할 것이 없다.
바른 도를 좇아서 점진적으로 시집가는 때이다.
그러나 初六은 나아가고 싶지만
재능도 없고 위에서 끌어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위태하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나아감이 의리(義理)에 마땅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말은 있어도 허물은 아니다.
[六二] 无攸遂(무유수) 在中饋(재중궤) 貞吉(정길)
이루려 하는 바가 없다.
가운데에 있으며 음식을 해서 봉양한다.
올바르고 길하다.
象曰 六二之吉(육이지길) 順以巽也(순이손야)
六二의 길함은 순리대로 공손함으로써 하기 때문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부인이다.
위의 중정(中正)한 九五와 정응이다.
六二는 아래에 강한 初九를 올라타고 있다.
이루려고 하는 바가 없음은,
자신이 나서거나 주장함이 없이 그저 부인으로서 덕을 지켜서 공손하게 따르며
음식을 해서 가족을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음식을 해서 가족을 봉양하고 제사를 모시고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이 부인의 중요한 내조였다.
양강(陽剛)한 남자도 정(情)에 매임 없이 가도를 바로 세우기가 쉽지 않은데
음유(陰柔)가 음위(陰位)에 있는 六二는 엄정하게 집안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이루고 싶어도 이룰 수가 없다.
바깥일과 집안을 다스리는 일은 남편에게 맡기고
부인은 가족을 봉양하는 일에 충실하는 것이 올바르고 길하다.
상전에서도 六二의 길함은 순리대로 유순하고 공손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풍천소축(風天小畜)이 되는데 밀운불우(密雲不雨)이다.
하나의 음이 부드러운 도(道)로써 다섯 양들을 그쳐서 쌓게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九二는 다른 양들을 이끌어서 정도를 회복한다.
스스로 중도를 잃지 않고 소축의 그쳐서 쌓게 하는 六四를 넘어 도를 회복한다.
[九三] 家人碻碻(가인학학) 悔厲(회려) 吉(길) 婦子嘻嘻(부자희희) 終吝(종린)
집안을 너무 엄히 다스린다.
후회하고 두렵지만 길하다.
부자가 희희낙락하면 마침내 궁색하다.
象曰 家人碻碻(가인학학) 未失也(미실야) 婦子嘻嘻(부자희희) 失家節也(실가절야)
가인학학은 법도를 잃지 않음이고 부자희희는 집안의 절도를 잃음이다.
九三은 리(離)의 극(極)에 있어서 과하다.
九三은 과강(過剛)하고 작은 일에도 밝게 해서 집안을 너무 엄격하게 다스린다.
너무 엄하게 하므로 원망과 후회가 있을 수 있다.
비록 너그럽지 못하고 너무 엄히 집안을 다스리면 중도를 벗어난 것이지만,
가정의 법도는 바르게 서기 때문에 후회하지만 길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너무 관대하게 해서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비록 화기애애하게 보일 지도 모르지만, 집안의 절도를 잃어서 결국 궁색하게 된다.
상전에도 집안을 엄히 다스리면 법도를 잃은 것은 아니지만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집안의 절도(家節)를 잃는 것이라고 했다.
정이천은 정(情)이 예(禮)를 이기고 은혜가 의리를 이기므로,
오직 그 뜻을 강하게 세운 사람만이 사적인 정(情) 때문에 절도를 잃지 않는다 했다.
따라서 가인(家人)은 강한 것을 선(善)으로 보고 다소 과해도 길하다고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풍뢰익(風雷益)이 되는데,
이때는 위의 남는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해주는 때로,
어렵고 험할 때 험난함을 구제하면 이롭다.
六三은 더해주는 것을 흉사에 쓰면 허물이 없다.
성신을 다해 중도를 행하되 공(公)에게 고할 때 규옥(圭玉)을 사용하듯이 해야만 한다.
六三은 위급한 사태나 흉사가 있을 때
위의 남는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해주는 지방의 수령이다.
특히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위치가 위태로워서 경계했다.
[六四] 富家(부가) 大吉(대길)
집안을 부유하게 한다. 크게 길하다.
象曰 富家大吉(부가대길) 順在位也(순재위야)
부가대길은 순리대로 위치(位)에 있음이다.
六四는 공손하고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六四는 상괘인 손(巽)의 맨 아래에 있기 때문에 손(巽)의 주효로,
손(巽)에는 시장, 장사, 3배 이익이란 뜻이 있다.
六四는 유순하게 순종하고 성품도 바른 부인이다.
따라서 공손한 덕으로 마땅한 자리에서 남편을 보필해서 집안을 부유하게 만들고
또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
상전에서도 집안을 부유하게 해서 크게 길한 것은
유순(順)하고 올바른 위(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화동인(天火同人)이다.
이때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뜻을 모아서 화합한다.
九四는 담에 올랐다가 공격할 수 없어서 제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길하다.
九四도 유일한 음효 六二에게 마음이 있지만
음위에 있어서 강유를 겸비하여 과강하지 않고,
자신의 세(勢)도 미치지 못하고 의리(義理)도 바르지 못함을 깨닫고
九五를 공격하지 않고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九五] 王假有家(왕격유가) 勿恤(물휼) 吉(길)
왕이 제가에 지극하다. 근심할 것이 없고 길하다.
象曰 王假有家(왕격유가) 交相愛也(교상애야)
왕격유가는 서로 사귀어 사랑함이다.
九五는 강건중정(剛健中正)한 군주이다.
아래의 중정(中正)한 六二는 정응으로 九五에게 순종한다.
왕이 비록 존위에 있음에도 모범을 행하여 수신(修身)함으로 제가(齊家)하면,
아랫사람들이 본받게 되고 곧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이룬다.
수신(修身)과 가도(家道)를 바로 세움이 지극하기 위해서는 위엄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여 화합해야 이룸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근심할 것이 없고 길하다.
상전에서도 왕이 제가에 지극하니 서로 사귀어 사랑한다고 하였다.
九五가 효변하면 산화비(山火賁)이다.
꾸밈이 실질보다 과하게 되면 필히 흉하게 되기 때문에 조금만 장식함이 이롭다.
꾸밈은 실질에 조화롭게 더해져야 빛난다.
六五는 위의 上九에 의해서 꾸밈을 받는다.
비록 검소한 예물로 하니 궁색하다는 말은 듣겠지만 결국에는 길하다.
장식이 과한 것보다 조금만 한 것이 더 낫다.
[上九] 有孚(유부) 威如(위여) 終吉(종길)
믿음을 두어 위엄 있게 하면, 마침내 길하다.
象曰 威如之吉(위여지길) 反身之謂也(반신지위야)
위엄의 길함은 자기를 반성함을 말한다.
上九는 손(巽)의 극(極)에 있다.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후회가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上九는 양효가 음위(陰位)에 있어서 과강하지 않고
또 손(巽)의 극(極)에 있어서 겸손이 지극하다.
가정을 다스릴 때, 위엄을 근본으로 삼으면 사랑과 믿음이 적을까 걱정하게 되고,
사랑과 믿음을 근본으로 하면 위엄이 부족할까 걱정하게 된다.
사랑과 믿음 그리고 위엄이 조화를 이루어야만 한다.
上九는 가인의 마침이자 극(極)으로, 가정을 다스리는 지극한 도를 말한 것이다.
上九는 위(位)가 바르지 않고 손(巽)의 극에 있어서 공손하기 때문에
위엄이 부족할까봐 경계했다.
그러나 위엄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살펴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원망하고 따르지 않으니 위엄이 서지 않는다.
상전에서도 위엄이 있어 길한 것은 자기 자신을 살펴서 반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큰일은 이미 형통해서 기울기가 쉽고,
안정한 때가 극(極)에 이르렀기 때문에 조만간 어지럽게 된다.
上六은 강을 건너려다가 머리를 적시니 위태하다.
안일함에 젖어 있다가 대비하지 않으면 위태하게 된다.
38. 화택규(火澤睽)
조금 거리를 두고 포용하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할 수 있다
포용과 화합의 괘
괘사(卦辭)
‘규’(睽)는 어긋나다, 등지다, 곁눈질하다, 헤어지다는 뜻이 있다.
괘상은 풍화가인(風火家人)을 거꾸로 뒤집은 상(象)으로 리상태하(離上兌下)이다.
리(離)는 눈, 해, 꿩, 지혜, 믿음, 중녀, 무인, 화려함, 분별, 달라붙음을 뜻하고
택(澤)은 입, 연못, 양, 첩, 기쁨, 소녀, 수다, 무당, 은둔, 구멍(穴)등을 뜻한다.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므로 서로 어긋난다.
리(離)는 중녀이고, 태(兌)는 소녀이다.
어려서는 중녀와 소녀가 한 집에서 함께 살지만
뒤에는 각각 다른 곳으로 시집가는 것이다.
내괘는 기쁘고 외괘는 붙따르니 기쁘게 붙따르는 덕이 있다.
상괘인 리(離)는 태양의 운행을, 하괘인 태(兌)는 달의 운행을 상징하기 때문에
태양과 달의 운행 날짜가 어긋나는 것을 상징한다고도 말한다.
계사전에는 활대와 활줄의 서로 어긋나는 힘에 의해서
화살을 쏘는 것에서 상을 취했다고 하였다.
비록 서로 뜻이 어긋나고 헤어져서 흉하지만, 작은 일에는 길하다.
이는 기쁨으로 밝음에 붙따르기 때문이다.
유한 것(六五)이 나아가서 높은 지위에서 중(中)을 얻고
아래의 강한 것(九二)과 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하늘과 땅이 어긋나도 더불어 만물을 생육하고
남자와 여자가 어긋나지만 그 뜻이 통하고, 만물이 어긋나도 그 하는 일(事)은 같다.
논어 자로(子路)편에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했다.
소인은 겉으로는 다른 사람과 생각이 같은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화합하지 못한다.
그러나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화합한다.
군자는 같음보다도 ‘화합’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 간에 다소 거리를 두고 포용하면 비록 다르다 하지만
전체 안에서 하나로 화합할 수가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건강한 화합과 공존이 가능하다.
규(睽)에서는 6개 효사들 중에서 5개 효사들이 모두 바른 위(位)가 아니다.
규(睽)는 서로 등져서 화합을 이루지 못한
어긋난 상태에서 처신하는 도(道)를 알려준다.
효사(爻辭)
[初九] 悔亡(회망) 喪馬(상마) 勿逐自復(물축자복) 見惡人 无咎(견악인 무구)
후회가 없다. 말을 잃지만 쫓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온다.
악인을 만나면 허물이 없다.
象曰 見惡人(견악인) 以辟咎也(이피구야)
견악인은 그로써 허물을 면함이다.
初九는 규(睽)의 시작이다.
위의 九四는 같은 양이기 때문에 정응이 아니고, 九二도 친비가 아니다.
初九는 양이기 때문에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서 나아가고 싶지만,
정응이 없어서 응원이 없다.
그러나 서로 어긋나는 규(睽)의 때에 九四도 뜻을 같이 하는 응원이 없어서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九四와 初九는 동류로서 서로 뜻을 같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후회할 일이 없어지고 말을 잃었지만 쫓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온 것이다.
자기와 뜻이 어긋났던 사람이나 싫어했던 사람인 악인을 다시 만나서
통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상전에서도 악인을 만나는 것은 허물을 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어긋나기 쉬운 규(睽)의 때,
서로 화합하기를 청해도 부족한데 뜻이 다르다고 단절하고 멀리하면,
원망과 허물만 쌓이게 된다.
군자는 서로 다르더라도 포용함으로 화합하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
初九가 효변하면 화수미제(火水未濟)로
미완성의 때니 완성을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나 初六은 어린 여우가 꼬리를 적시므로 궁색하다.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정응 九四를 구해서 나아가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험난함에 빠지게 된다.
[九二] 遇主于巷(우주우항) 无咎(무구)
주인을 골목에서 만난다. 허물이 없다.
象曰 遇主于巷(우주우항) 未失道也(미실도야)
우주우항은 도를 잃지 않음이다.
九二는 군주 六五와 정응이지만 지금은 서로 어긋나는 규(睽)의 때이고
九二도 六五도 위(位)가 바르지 못하다.
게다가 부당한 六三이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정도를 잃지 않고 간절히 서로 만나려고 애써야 한다.
규(睽)의 때이지만,
정성으로 만날 기회를 구하면 우연히 골목에서 만날 수도 있고 허물을 면한다.
상전에서도 골목에서 우연히 만남은 도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이가 효변하면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입속에 이물이 있으면 씹기 힘들 듯이,
천하의 화합을 가로막고 있는 악인을 다스리는 때이다.
六二는 살을 씹어서 코를 상하게 하지만 허물이 없다.
六二는 아래에 초구를 올라타고 있고 과강한 초구가 죄를 다스림에 반발하기 때문에
초구가 절실하게 통감할 만큼 엄한 형벌이 필요하다.
코를 멸할 정도로 깊숙이 깨물어야 하지만 이것이 六二의 허물인 것은 아니다.
[六三] 見輿曳(견여예) 其牛掣(기우체)
其人天且劓(기인천차의) 无初有終(무초유종)
뒤에서 수레를 당기고 앞에서는 소를 가로막는다.
머리를 깎이고 코를 베였다.
시작은 없지만 마침은 있다.
象曰 見輿曳(견여예) 位不當也(위부당야) 无初有終(무초유종) 遇剛也(우강야)
견여예는 위가 부당함이고 무초유종은 강을 만남이다.
六三은 태(兌)의 극(極)에 있다.
정응 上九에게 나아가고 싶지만,
뒤에는 九二가 당기고 앞에는 九四가 가로막고 상해를 입힌다.
마치 머리를 깎이고 코를 베이는 듯하다.
六三은 아래로 강(剛)을 올라탔고 태(兌)의 극(極)에 있으면서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위태하다.
양위(陽位)에 있어서 상구에게로 가려는 뜻은 있지만
음효이니 재능이 없고 그 뜻을 굳게 지키기 힘들다.
오히려 나아가다가 큰 해를 입게 된다.
시작은 없지만 마침은 있는 것은 비록 어려움을 겪겠지만
정응에게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이다.
상전에서도 뒤에서는 당기고 앞에서는 가로막는 것은
위가 부당하기 때문이고 시작은 없지만 마침이 있는 것은
강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화천대유(火天大有)이다.
이때는 풍족한 때로 사람들이 모여서 다사다난하기 쉬워 미리 경계함이 이롭다.
변방의 제후인 九三은 공물로써 천자를 형통하게 하지만, 소인들은 능히 할 수 없다.
[九四] 睽孤(규고) 遇元夫(우원부) 交孚(교부) 厲无咎(려무구)
어긋나고 외롭다.
원부(初九)를 만나서 진심으로 사귄다.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다.
象曰 交孚无咎(교부무구) 志行也(지행야)
규부무구는 뜻을 행하는 것이다.
九四는 아래로 정응이 없고 친비 六三, 六五와 친하고 싶지만,
둘 모두 정응이 있기 때문에 서로 어긋나서 외롭다.
九四는 대신의 지위에 있지만 함께 할 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공(功)도 세울 수 없다.
결국 九四는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원부(元夫)인 初九와 믿음을 두어 서로 사귀어 화합한다.
九四와 初九는 둘 모두 정응이 없고
같은 양효로 동류(同類)이기 때문에 서로 친할 수 있다.
상전에서도 믿음을 두어 사귀니 허물이 없는 것은
그 뜻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산택손(山澤損)이 된다.
이때는 아래의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하는 때이기 때문에,
반드시 아랫사람의 믿음을 얻어야 길하고 허물을 면한다.
그러나 六四는 그 병을 덜어낸다.
서둘러 덜면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다.
상하 모두 음효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음위에 있어서 음이 지나치기 때문에
마치 허약한 병자와 같다.
정응인 初九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과음(過陰)을 즉,
불선(不善)함을 서둘러서 덜어내면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다고 했다.
[六五] 悔亡(회망) 厥宗噬膚(궐종서부) 往何咎(왕하구)
후회가 없어진다.
종족이 살을 깊숙이 깨문다. 나아가면 어찌 허물이겠는가?
象曰 厥宗噬膚(궐종서부) 往有慶也(왕유경야)
궐종서부는 나아가면 경사가 있음이다.
六五는 음효가 양위에 있어서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강(剛)을 올라타고 있어 후회가 있을 것 같지만 리(離)의 중(中)을 얻었고
아래 양강중용(陽剛中用)한 덕이 있는 九二와 정응이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진다.
비록 六五와 九二는 모두 위(位)가 바르지 못하지만
같은 중용의 덕으로 서로 통하여 잘 화합할 수 있다.
궐종서부(厥宗噬膚)는 같은 무리나 군신이 서로 잘 화합하거나
서로 마음이 잘 맞는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했다.
유순한 군주 六五는 강건한 九二와 정응이기 때문에
서로 마음이 잘 맞아서 화합하기 때문에 나아가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상전에도 종족이 살을 깊숙이 깨무는 것은 나아가면 경사가 있다고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천택리(天澤履)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위태하지만 기쁘고 온화한 태도로 쫓으면 화를 면할 수 있다.
九五는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위태한 순간인데도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를 버리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쾌리(夬履)하기 때문에 비록 그것이 올바르다고 해도 위태롭다.
[上九] 睽孤(규고) 見豕負塗(견시부도) 載鬼一車(재귀일거)
先張之弧(선장지호) 後說之弧(후탈지호) 匪寇婚媾(비구혼구) 往遇雨 (왕우우)則吉(즉길)
어긋나서 외롭다.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쓴 것과 귀신이 가득한 수레를 본다.
처음에는 활을 쏘려고 했다가, 뒤에는 활 시위를 내려놓는다.
도적이 아니라 구혼하려 함이다.
나아가면 비를 만나고 길하다.
象曰 往遇之吉(왕우지길) 群疑亡也(군의망야)
나아가서 비를 만나서 길함은 여러 의심이 없어짐이다.
上九는 리(離)와 규(睽)의 극(極)이다.
양강하면서 규(睽)의 극(極)에 있으므로
어긋남이 심하고 밝음의 극(極)에 있어서 살핌이 지나쳐서 의심이 많다.
上九와 六三은 정응으로 고독할 이유가 없지만,
上九는 처한 위치와 자질 때문에 밝음과 어긋남이 지나쳐서 스스로 고립되어 외롭다.
上九는 비록 처음에는 六三을 의심하지만
뒤에 六三이 구하는 것이 바르고 구혼하러 온 것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화합한다.
무릇 어긋남이 극에 이르면 의심이 사라지고 통하게 되서 음양화합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을 비를 만난다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정도에 따라 유순히 시집가지 않고
기쁨을 좇아서 유순함을 잃고 부정하게 시집가는 때이다.
上六은 아래의 六三과 정응이 아니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 해도
종묘 제사를 받들 수가 없어서 결국 부부가 될 수 없고 이로울 바가 없다.
39. 수산건(水山蹇)
앞에 험난함이 가로막고 있으니 나아가지 말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라
어려움이 새 시대를 연다!
괘사(卦辭)
‘건’(蹇)은 어려움이나 험한 것이 앞에 가로막고 있어 나아가기 힘든 것을 뜻한다.
주역의 4대 흉괘
수산건(水山蹇), 수뢰둔(水雷屯), 택수곤(澤水困), 감위수(坎爲水) 중의 하나이다.
‘둔’(屯)은 처음이기 때문에 통하지 못해서 어렵고,
‘곤’(困)은 유(柔)가 강(剛)을 가리고 핍박하기 때문에 어렵고,
‘건’(蹇)은 험난함이 앞을 가로막아서 어렵다.
괘상은 감상간하(坎上艮下)이다.
감(坎)은 물, 강물, 중남, 돼지, 귀, 법, 도적, 근심, 북쪽, 험난하다는 뜻이 있고
간(艮)은 산, 소남, 개, 손, 귀신, 제사, 성실, 그침(止), 마침(終)의 뜻이 있다.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산이 있다.
건(蹇)은 밖으로 험난하고 안으로 머무른다.
바깥의 험난한 것을 보고 안으로 그쳐서 머무르는 것이다.
앞의 험난함을 보고 잠시 머무르면서 역량을 키우고 기다리는 것이다.
군자는 어렵고 막히는 때에는, 자신을 살펴서 반성하고 스스로 덕을 쌓는다.
건(蹇)은 서남(西南)이 이롭고 동북(東北)은 이롭지 못하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올바름을 지키면 길하다.
서남(西南)은 곤(坤)의 방향이고, 동북(東北)은 간(艮)의 방향이다.
따라서 서남은 평탄하고 순하지만 동북은 높아서 험난하다.
지리학적으로도 서남(西南)은 평지로 주나라가 있던 방향으로 문왕을 상징한다.
동북(東北)은 산악 지역으로 은나라가 있던 방향으로 주왕을 상징한다.
상으로는 九五가 서남(으로 가서 중을 얻어서 이롭지만,
九三은 동북으로 가서 중을 얻지 못해서 이롭지 못하고 그 도가 궁색하다.
험난할 때는 반드시 九五와 같이 덕이 있는 성현(聖賢)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
대인을 만나면 이로운 것은 나아가서 공을 이룬다는 것이고
마땅한 자리(서남)에 바르게 처함이 길한 것은 그로써 나라를 바르게 세운다는 뜻이다.
험난함을 구제함에 있어서 정도로 행해야 한다.
어려움을 해소하지 못하더라도 정도를 지켜야 올바르다.
구차하게 정도가 아닌 도로써 험난함을 해소하면 이롭지 않다.
효사(爻辭)
[初六] 往蹇(왕건) 來譽(래예)
나아가면 험난하고, 되돌아오면 명예가 있다.
象曰 往蹇來譽(왕건래예) 宜待也(의대야)
왕건래예는 마땅하게 기다림이다.
初六은 건(蹇)의 시작으로, 위에는 구제해 줄 정응도 없고 음효로 재능도 없다.
감히 나아갈 수 없음에도 양위(陽位)에 있다고
뜻만 앞세워서 감험(坎險) 속으로 나아가면, 더욱 곤란하게 될 뿐이다.
나아가면 험난한 것을 깨닫고 되돌아오면
시운(時運)을 아는 지혜가 있다는 명예가 있다.
상전에서도 나아가면 험난하고 되돌아오면 명예가 있음은
기다림이 마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수화기제(水火旣濟)가 된다.
이때는 완성을 이룬 때로 큰일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 기울기 쉽다.
따라서 작은 일은 형통하나 큰일은 형통하지 못하다.
이미 안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곧 다시 어지러운 때가 된다.
初九는 수레를 뒤로 당긴다.
이미 이룬 것을 안정시키는 것이 덕(德)이기 때문에,
대천을 건넘과 같은 위험한 일은 시도하지 말고 경거망동하지 않아야 허물을 면한다.
[六二] 王臣蹇蹇(왕신건건) 匪躬之故(비궁지고)
왕의 신하가 건에 험난하다. 자신의 탓이 아니다.
象曰 王臣蹇蹇(왕신건건) 終无尤也(종무우야)
왕신건건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六二는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인 九五와 정응으로 신임을 받는다.
그러나 九五는 건(蹇)의 험난한 때
또 다시 감(坎)의 험난함 속에 빠져 있어서 험난하고 험난하다.
그 험난함이 六二의 탓은 아니다.
아무리 六二가 자신의 중정한 도를 다해서 노력해도 재질이 음유하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극복하게 도울 수는 없다.
비록 건험(蹇險) 속에 빠져있는 군주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六二의 허물은 아니다.
六二의 그 애씀이 자신의 탓도 또 자기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전에서도 마침내 허물이 없다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수풍정(水風井)이 된다.
우물은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항도(恒道)로
만물에게 차별 없이 두루 쓰임을 공(功)으로 한다.
九二는 우물물이 골짜기로 흘러서 붕어에게 쏟아진다.
독이 깨어져서 새는 것과 같다.
九二는 위로 나아가고 싶지만 위에서 응함으로 함께 하는 사람이 없어서
친비한 아랫사람과 함께 하면서 머무른다.
[九三] 往蹇(왕건) 來反(래반)
나아가면 험난해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象曰 往蹇來反(왕건래반) 內喜之也(내희지야)
왕건래반은 안에 기쁨이 있음이라.
九三은 간(艮)의 극(極)에 있다.
정응인 上六은 음유로서 마침이니 위(位)가 없고 九三에게 응하려 하지 않는다.
九三은 과강하기 때문에 감(坎)의 험난함이 앞에 놓여있지만 나아가려고 한다.
따라서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편안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제자리로 돌아오면 하괘의 음효들과 뜻을 합하게 된다.
九三은 그쳐서 멈추는 간(艮)의 주효로서
그 아래의 두 음효들이 기꺼이 따르고 의지한다.
그러므로 나아가서 험난함 속에 빠지지 말고
돌아와서 편안한 자리에 머무름이 이롭다.
상전에도 나아가면 험난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면 안(하괘)에서 기뻐한다고 하였다.
九三이 효변하면 수지비(水地比)이다.
친밀함은 서둘러 와야지 주저하다가 그 때를 놓치면 흉하다.
그러나 편안하지 못한 사람이 도움을 구하러 왔는데
도와서 편안하게 돕지 않고 어떻게 친밀하다 하겠는가?
그러나 六三은 적절치 못한 사람과 친밀하려고 한다.
六三은 효사 간의 덕(德)인 정(正), 중(中), 승(承), 승(乘), 응(應) 중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위로 상육도 정응이 아니다.
성품도 바르지 못하고 처한 위치도 위태로워서 흉하다.
[六四] 往蹇(왕건) 來連(래연)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무리와 연합한다.
象曰 往蹇來連(왕건래연) 當位實也(당위실야)
왕건래연은 마땅한 위(位)가 실하기 때문이다.
六四는 음유한 대신으로 재능이 부족하며 정응도 없는데
아래에 강을 올라타고 있어서 위험이 있다.
유약한 자신의 재질로 건의 험난함을 구제하려고 나아가면 험난하게 된다.
다행히 六四는 위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고, 아래 九三과 친비하다.
九三도 성품이 바르고 양강(陽剛)한 하괘의 주효이다.
九三이 돌아가서 六二와 初六과 뜻을 합하는 것을 보고 六四도 나아가지 않고
돌아와서 그들과 뜻을 합하여 연대하면 이 험난함을 타개할 수 있다.
이렇게 같이 연합할 수 있는 것은
험난한 중에도 九三과 六四가 둘 다 위(位)가 바르기 때문이다.
상전에서도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무리와 연합함은 마땅한 위(位)에서 충실(實)하기 때문이라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택산함(澤山咸)이다.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기쁨으로 쫓아서 감응한다.
기쁨으로 겸손히 낮춰서 여자를 취하면 길한 때이다.
九四는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자주 오고가면 벗들이 너의 뜻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바르게 하지 않고 사적으로 엄지발가락 초육에게 감응하면 후회하게 된다.
비록 뜻을 얻더라도 동류(同類)만 따르니 크게 빛나지는 못한다.
[九五] 大蹇(대건) 朋來(붕래) 몹시도 험난한데, 벗들(朋)이 와서 도와준다.
象曰 大蹇朋來(대건붕래) 以中節也(이중절야)
대건붕래는 중도로 절제하기 때문이다.
九五는 감(坎)의 중(中)을 얻었고, 아래 六二와 정응이다.
군주 九五는 비록 감(坎)의 험난함 속에 빠져 있지만,
중정(中正)한 덕을 지켜서 절제하고 기다리면
충성스러운 신하들(朋)이 무리지어 와서 군주를 돕는다.
九五는 위아래와 더불어 힘을 모으기 때문에 건(蹇)의 험난함을 타개할 수 있다.
무리를 이루어 연합해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두 九五가 양강중정(陽剛中正)한 덕이 있기 때문이다.
상전에서도 크게 험난한데 친구들이 와서 돕는 것은 중도로 절제하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험난함이 몹시 심하고 강건한 신하가 아닌 유순한 신하들이 돕기 때문에,
험난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어서 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九五가 효변하면 지산겸(地山謙)이 된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춰서 땅의 아래에 있듯이 겸손해야 하는 순간이다.
재물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지만
六五는 비록 부유하지 않음에도 그 이웃과 함께 한다고 했다.
그러나 때로는 불복하는 자들을 무력을 동원해서 정벌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고 했다.
음유한 군주이므로 그저 겸손과 유순함만을 숭상할 수 없고
위엄과 무력도 조화를 이루면 더욱 길하다.
[上六] 往蹇(왕건) 來碩吉(래석길) 利見大人(이견대인)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크게 길하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다.
象曰 往蹇來碩(왕건래석) 志在內也(지재내야) 利見大人(이견대인) 以從貴也(이종귀야)
왕건래석은 뜻이 안에 있음이고 이견대인은 귀인을 따름이다.
上六은 건(蹇)의 극(極)에 있다.
건(蹇)이 극(極)에 이르면 변해서 벗어나는 것이 그 이치인데,
上六은 음유하기 때문에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을 무릅쓰고 나아가기보다 돌아와서
아래 양강(陽剛)한 九五와 함께 하게 되면 크게 길하다.
하괘의 정응 九三은 물론이고 친비한 대인 九五와 함께 합하면
건(蹇)의 난관을 타개할 수가 있어서 이롭다.
상전에도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크게 길함은
뜻이 안에 있음이고 대인을 만나면 이로운 것은 귀인(九五)을 따름이라고 했다.
다른 효사들은 곤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길하다 하지 않았지만
上六은 건(蹇)의 극(極)에 있어서 변해서 통하게 되는 이치가 있어서
대인을 만나면 길하다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풍산점(風山漸)이 된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공손히 따르면
나아감에 때와 질서에 알맞게 점진하기 때문에 곤궁할 것이 없다.
정도를 좇아서 점진적으로 시집가기에 좋은 순간이다.
上九는 겸손과 점진하는 덕이 지극하다.
그 나아감에 절도가 있고 질서정연해서 가히 모범이 될 만하고 크게 길하다.
40. 뇌수해(雷水解)
풀어야 할 일이 남았으면 서두르되, 크고 간단하고 관대하게 해결하라
풀어주고 자유롭게 하라! 그 속에 시간의 춤이 있다.
괘사(卦辭)
‘해’(解)는 어려움이 풀리는 것, 해산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레가 하늘에서 울리고 비가 아래로 쏟아진다.
말하자면 뢰우(雷雨)가 일어나는 것이다.
괘상은 수산건을 거꾸로 뒤집은 진상감하(震上坎下)이다.
진(震)은 우레, 용, 제후, 장수, 장남, 발, 다리, 동쪽, 큰길,
움직임(動), 격분함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감(坎)은 물, 강물, 중남, 귀, 북쪽, 돼지, 도적, 근심, 험난함, 빠짐을 의미한다.
수산건은 어려움을 앞에 두고 그쳐서 때를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고(갈마 듬),
뇌수해는 그 상황이 역전되어
이제 그 어려움에서 움직여서 나아간다는 것(펼쳐 짐)을 의미한다.
감(坎)은 북쪽과 겨울이지만 진(震)은 동쪽과 봄이다.
추운 겨울에 얼고 굳었던 것들이 봄이 되어 녹아서 촉촉해진다.
음과 양이 즉, 하늘과 땅이 서로 소통하여 우레와 비가 내리게 되고,
백가지 과실과 초목이 싹을 틔우게 된다.
해(解)는 서남(西南)이 이롭다.
나아갈 바가 더 이상 없으면 와서 돌아 옴(復)이 길하다.
나아갈 것이 있거든 서둘러서 해야 길하다.
서남은 곤(坤)의 방향이다.
크고 넓고 평탄하고 너그럽다.
곤(坤)은 팔괘에서 획수가 가장 많아서 무리(衆)도 의미한다.
어려움을 해결할 때에는 까다롭거나 복잡하게 혹은 번거롭게 해결하지 말고,
곤(坤)의 덕(德)처럼 크고 관대하고 간단하게 함이 이롭고,
그렇게 포용하면 많은 무리를 얻게 된다.
이미 어려움이 해소되고 더 이상 해결할 일이 없으면
다시 일상의 도(道)로 되돌아와야 길하다.
그래서 와서 회복함이 길하다 했다.
하지만 해결할 일이 아직 남아 있으면 가서 서둘러 해결해야만 길하다.
이것을 살펴서 군자도 남의 허물을 용서해주고
죄를 지은 자의 벌을 관대하게 감해준다.
40번째 주역괘 해(解)는 주역의 하경(下經)에서 10번째 순서의 괘이다.
하경(下經)에서 첫 번째 괘인 택산함(澤山咸)에서 잉태한 것이
열 달 만에 해산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解는 모든 것이 풀리는 것이다.
하도 낙서의 四象<水(1,6) 火(2,7) 木(3,8) 金(4,9)>의 數의 합이 40이다,
天道인 元亨利貞과 人道인 仁禮義智로 움직여야 모는 것이 풀린다.
互卦 水火旣濟는 모든 것이 풀려서 이루어 졌음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효사(爻辭)
[初六] 无咎(무구) 허물이 없다.
象曰 剛柔之際(강유지제) 義无咎也(의무구야)
강(剛)과 유(柔)의 사귐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
初六은 위의 九四와는 정응이고, 강명(剛明)한 덕이 있는 九二와는 친비이다.
강(剛)과 유(柔)가 만나서 어려움이 해소되는 시초에
비록 初六이 정위(正位)에 자리하지는 못했지만
상괘 진(震)의 주효이자 정응인 九四가 응원해 주기 때문에 허물을 면한다.
설사 허물이 있다 해도 음양이 상응함이 도리이므로 그 나아감이 의리상 허물이 없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강(剛)과 유(柔)가 사귐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바르게 유순히 시집가지 않고 기쁨을 구해서 유순함을 잃고
부정하게 동(動)하여 시집간다.
初九는 낮은 자기 신분과 분수를 알고 스스로 낮춰서
절름발이가 다른 사람의 뒤를 쫓아서 걷는 것처럼 나아가기 때문에 길하다.
[九二] 田獲三狐(전획삼호) 得黃矢(득황시) 貞吉(정길)
밭에서 3마리 여우를 잡고 황색 화살을 얻었다.
굳게 바르게 해서 길하다.
象曰 九二貞吉(구이정길) 得中道也(득중도야)
九二가 바르게 해서 길함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九二는 군주 六五와 정응이므로, 군주의 신임을 받는다.
밭은 군주의 터전을, 황색은 중용의 덕을, 화살은 곧음을 상징한다.
九二는 감(坎)의 험난함 중에 있어서 중도(中道)를 지켜서
굳게 올바름을 지켜야 길하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음사(陰邪)한 소인들을 여우로 비유했다.
사냥은 해악을 없애는 일로써 3마리 여우는,
음사 소인들인 初六, 六三, 上六 세 음효들을 말한다고도 하고,
음사(陰邪)한 六三을 말한다고도 해설한다.
六五는 음효가 군위에 있기 때문에 밝은 지혜와 위엄을 잃기가 쉽고
굳게 올바름을 지키기 어려워서 소인에게 미혹당하기 쉽다.
그래서 강건(剛健)한 九二가 음사 소인들을 사냥을 해서 제거한다.
상전에서도 九二가 올바르게 해서 길한 것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뇌지예(雷地豫)이다.
이때는 음양(陰陽)이 서로 통하게 되어서 기쁘지만,
자칫 쾌락은 사람을 그 속에 빠뜨려서 실도하게 만들어 근심이 오도록 한다.
그러나 다른 음효들이 쾌락 속에 빠져있을 때
六二 혼자 돌과 같이 절개를 지켜서 쾌락 속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길하다.
이것은 六二가 九四와 관계가 없고 중정(中正)을 얻었기 때문이다.
[ 六三 ] 負且乘(부차승) 致寇至(치구지) 貞吝(정린)
짐을 짊어지고 올라탄다.
도적을 자초함이다.
바르다해도 궁색하다.
象曰 負且乘(부차승) 亦可醜也(역가추야) 自我致戎(자아치융) 又誰咎也(우수구야)?
부차승은 또한 추하니 스스로 도적을 초래했으니 누구를 탓하리오?
六三은 감(坎)의 극(極)에 처했다.
六三은 강한 九二를 올라타고 있는데 위로는 九四를 짊어지고 있다.
六三은 위(位)도 바르지 못하면서 덕과 재능도 부족하다.
게다가 감(坎)의 험난함이 지극한데도
위에는 정응도 없기 때문에 바르더라도 궁색할 따름이다.
이것은 짐이나 짊어질 미천한 사람이 고관처럼 마차를 타고서 뽐내다가
도적을 불러들이는 꼴이다.
六三은 음유한 소인으로 마땅히 아랫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하괘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아래 九二를 업신여기고
위의 九四의 자리를 노리기 때문에, 도리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다.
상전에도 짐을 짊어지고 올라타는 것은 또한 추한 것이고
스스로 도적을 초래한 것이니 누구의 탓을 하겠는가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뇌풍항(雷風恒)이다.
우레와 바람이 서로 만나서 조화를 이루므로 만물을 싹틔우고 생육시킨다.
중년 부부의 도리를 말하는 항(恒)은 모든 효사가 음양이 응한다.
이는 강유(剛柔)가 상응함이 곧 항구할 수 있는 상도(常道)이기 때문이다.
항(恒)은 변통을 모르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때와 상황에 맞게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이 이치(理致)이다.
九三은 자신의 덕을 항구히 지키지 못한다.
혹 수치를 당하게 되고 고집하면 인색하다.
[九四] 解而拇(해이무) 朋至斯孚(붕지사부)
너의 엄지발가락을 풀어 버리면 벗이 와서 신뢰한다.
象曰 解而拇(해이무) 未當位也(미당위야)
해이무는 위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九四는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성품이 바르지 못한 대신이다.
그러나 九四는 양강한 재능이 있고 밝은 덕과 강유(剛柔)를 겸비했다.
아래의 初六과 정응이고, 六三과는 친비하다.
엄지발가락은 발의 가장 아래에 있기 때문에 괘의 가장 밑에 있는 初六을 뜻한다.
그러나 初六과 九四 모두 정위(正位)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적인 만남인 셈이다.
九四는 위로 유약한 군주를 섬기는 대신으로서,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적으로 성품도 바르지 못한 初六과 응하면
현인들과는 멀어진다.
비록 정응이지만 사적인 관계를 끊게 되면,
강명(剛明)하고 덕이 있는 벗 九二가 와서 믿음을 두게 된다.
상전에도 九四가 엄지발가락을 풀어야 하는 것은
지위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수사(地水師)이다.
역량과 덕이 있는 장인(丈人)에 의해서 통솔되어야 한다.
六四는 정위(正位)에 있어서 성품이 올바르기 때문에
무리해서 나아가지 않고 군사를 뒤로 물려서 화(禍)를 면한다.
[六五] 君子維有解(군자유유해) 吉(길) 有孚于小人(유부우소인)
군자가 오직 해소하면 길하다. 소인에게 믿음을 얻는다.
象曰 君子有解(군자유해) 小人退也(소인퇴야)
군자유해는 소인이 물러감이다.
六五는 유순한 군주로 아래 강건한 현인 九二와 정응이고 九四와는 친비하다.
군위(君位)에 있는 六五는 중용의 도로써 아래 九二와 응하여 험난함을 해소하면
소인도 그것에 승복하고 따르기 때문에 길하다.
그러나 오직 중용의 덕(德)으로 험난함을 해소해야만
소인에게 믿음을 얻을 수 있고 승복하고 물러난다.
그래서 상전에도 군자의 해소는 소인이 물러나는 것이라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수곤(澤水困)이 된다.
비록 곤란함에 처했다 하여 말을 앞세우지 말고
차라리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고 침묵함이 낫다.
어차피 말을 앞세워도 믿어주지 않는다.
九五는 上六에게 코를 베이고 아래의 신하인 九二는 初六에게 발꿈치를 베인다.
九二와 九五 모두 중직(中直)한 덕이 있어서
늦게나마 서서히 기쁨이 있겠지만 제사를 지내는 정성으로 해야 복을 받는다.
[上六] 公用射隼(공용석준) 于高墉之上(우고용지상) 獲之(획지) 无不利(무불리)
공이 높은 담 위에서 쏘아서 새매를 잡는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公用射隼(공용석준) 以解悖也(이해패야)
공용석준은 거스림을 해소함이다.
上六은 해소함(解)의 극(極)에 있다.
上六은 높은 지위에 있지만 군주는 아니기 때문에 ‘공’(公)이라 했다.
새매는 해로운 짓을 하는 소인 六三을 말한다.
上六은 해소됨(解)의 종극이 되었다.
上六은 해(解)에서 유일하게 정위(正位)를 얻어서 해소하는 방도가 지극하다.
계사전에도 군자가 자기 몸에 새를 잡는 도구(활)를 가지고
때를 기다렸다가 행하여 새매를 잡는데,
새를 잡는 도구를 완벽히 갖추고 때를 기다린 뒤에 행하니 이롭다고 했다.
상전에도 공이 새매를 잡음은 거스림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이 시기에는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분발해야 한다.
그러나 上九는 미제의 극(極)이기 때문에 조만간 기제(旣濟)가 된다.
上九는 기제로 변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유유자적하며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머리가 술에 잠길 정도로 지나치게 되면 해롭다.
41. 산택손(山澤損)
아랫사람의 신뢰를 얻은 뒤에 알맞게 덜고 또 적절한 때에 더하라
덜어낼 때에는 정성을 다하라!
괘사(卦辭)
‘손’(損)은 손해, 덜어내다, 상하다는 의미이다.
괘상은 풍뢰익을 거꾸로 뒤집은 간상태하(艮上兌下)이다.
간(艮)은 산, 소남, 개, 손, 귀신, 제사, 마침(終), 착실함, 그친다(止)는 뜻이고,
택(澤)은 연못, 소녀, 입, 양, 첩, 수다, 기쁨, 무당, 은둔, 구멍(穴)을 뜻한다.
손(損)은 욕심을 내려 놓으니 안으로 기뻐하고 밖으로 머무르는 덕이 있다.
위에 산이 있고 아래 연못이 있다.
아래 못이 깊어지면 상대적으로 위의 산은 더 높아지듯이,
아래 연못을 파내서 그것을 위의 산에 더하는 것이다.
산 아래의 윤택한 연못(澤) 덕택에 산(艮)의 초목과 만물이 자라는 것도
아래를 덜어서 위에 더하는 것이다.
하괘 태(兌)의 효사들은 모두 상괘의 효사들과 정응이기 때문에
서로 응하여 위를 받드는 것도 아래를 덜어서 위에 더하는 것이다.
주역에서 양(陽)은 강(剛)하고 가득한 실(實)이지만,
음(陰)은 약(弱)하고 부족한 허(虛)이다.
지천태(地天泰)의 곤건(坤乾)에서 九三이 上六과 뒤바뀐 것이 산택손(山澤損)이다.
산택손(山澤損)에서 태(兌)의 六三은 건(乾)의 강(陽)이 유(陰)로 변한 것이고,
간(艮)의 上九는 곤(坤)의 유(陰)가 강(陽)이 되었다.
이것 또한 아래의 실한 양(陽)을 덜어서 위에 더한 것이다.
위에서 남는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하면 익(益)이지만,
아래에서 덜어 위에 더하면 손(損)이다.
무릇 세상사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더하면 ‘익’(益)이 되지만,
윗사람이 아래에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하면 ‘손’(損)이 된다.
손(損)은 반드시 아랫사람의 믿음을 얻은 이후에 덜어야만 길하고 허물이 없다.
진실한 정성으로 손(損)의 도(道)를 행하면 소박한 두 대그릇으로도 제사드릴 수 있다.
믿음을 두어 정성을 다해서 아래의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해줄 때
바르고 알맞게 덜어서 더해주되 반드시 적절한 때를 따라서 시행해야 한다.
그 덜고 채움이 바르고 알맞게 하고 마땅한 때에 행해지면 크게 선하고 길하다.
損은 자신의 욕망과 교만에 찬 마음을 비우면 성인지도를 자각하는 보탬을 받아
천인합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盈虛消息 損益之道는 하늘의 운행이다.
효사(爻辭)
[初九] 已事遄往 无咎 (이사천왕 무구) 酌損之(작손지)
일을 마치면 서둘러 가야 허물 없다. 참작해서 알맞게 덜어야 한다.
象曰 已事遄往(이사천왕) 尙合志也(상합지야)
이사천왕은 위와 뜻을 합하기 위함이다.
初九는 손(損)의 시작으로 위의 六四와는 정응이다.
六四는 유약한 대신이기 때문에 初九의 양강한 재능이 필요하다.
무릇 아랫사람이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해주더라도
그 공(功)을 주장하지 말고 서둘러 가야 허물이 없다.
그 공(功)에 안주하여 머무르고 자신의 것으로 삼으면 허물이 된다.
특히 과강한 初九는 처음 덜어서 위에 더해주기 때문에
너무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알맞게 덜어야 한다.
상전에서도 일을 마치면 서둘러 가는 것은 위와 뜻을 합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산수몽(山水蒙)이다.
이 시절에는 산 아래에 험난함이 있어서 곤란하여 그쳐서 기다리되
그 몽매함을 깨우치기 위해 배우는 때이다.
가르침에 있어서 형벌을 사용함은 두려움에 따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참다운 깨우침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계속 형벌로 엄하게 깨우치게 하려고 고집하면 결국 궁색하다.
비록 처음에는 형벌을 사용하더라도 뒤에는 그것을 벗겨주는 것이 이롭다.
[九二] 利貞(이정) 征凶(정흉) 弗損益之(불손익지)
바르게 하면 이롭다. 나아가면 흉하다.
덜지 말아야 더해주는 것이다.
象曰 九二利貞(구이이정) 中以爲志也(중이위지야)
九二가 바르게 하여 이로운 것은 중도로써 뜻을 삼기 때문이다.
九二는 음위(陰位)에 있고 위의 六五는 정응이다.
九二는 음위(陰位)에 있어서 이미 강유(剛柔)를 겸비했는데도
六五에게 응해서 태(兌)의 기쁨으로 나아가면 자신의 강중(剛中)한 덕을 잃게 된다.
올바름을 지켜서 나아가지 않으면 이롭다.
그러나 강을 덜어서 六五에게 더해주려고 나아가면 흉하다.
상전에서도 九二가 바르게 하면 이로운 것은 중도로써 그 뜻을 삼기 때문이라 했다.
다른 해설로는 유약한 군주를 보필하려면 단순히 순하게 군주를 따르기만 하지 않고,
강직하게 군주의 잘못을 간언해야하는 것을 말한다고도 한다.
그것이 九二가 바르게 하는 것이다.
九二가 효변하면 산뢰이(山雷頤)가 된다.
이때에는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때로,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오지만 화는 입으로부터 말미암는다.
六二는 응이 없어서 거꾸로 아래로부터 부양을 받고 싶지만
상도(常道)가 아니고 위의 上九로부터 부양을 받으러 가는 것도 흉하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六三] 三人行(삼인행) 則損一人(즉손일인) 一人行(일인행) 則得其友(즉득기우)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어내고, 한 사람이 가면 벗을 얻는다.
象曰 一人行(일인행) 三則疑也(삼즉의야)
일인행은 셋이면 의심이 있음이다.
지천태(地天泰)에서 하괘인 건(乾)의 九三이 산택손(山澤損)의 上九가 되고,
곤(坤)의 上六이 산택손(山澤損)의 六三이 되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게 되면 짝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의심이 생겨서 한 사람을 덜어낸다.
그 한 사람이 위로 가서 짝(벗)을 얻는데 그것이 六三이다.
천하의 만물들이 모두 짝을 이루기에 初九와 九二가 짝을 이루고
아래에 남는 九三은 위로 덜어 낸다.
홀로 남은 九三이 위로 가서 上九가 되므로 아래 六三과 짝을 이루게 된다.
결국 만물이 음양의 교감에 의한 것으로 서로 짝해야 비로소 화생하게 된다.
六三과 上九는 본래 서로 정응이었고 위치를 바꾸더라도 정응이다.
初九와 九二, 六四와 六五는 같은 덕으로써 벗이 된다.
손(損)의 모든 효사들은 음양(陰陽)이 짝지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六三이 효변하면 산천대축(山天大畜)이다.
두 음효가 네 양효들을 그치게 만들어 크게 쌓는 때이다.
바르게 쌓아야 크게 쌓을 수 있고 쌓은 뒤에는 세상에 나아가서 크게 베풀어야 길하다.
점사(占辭)에 흉함이 하나도 없는 크게 길한 괘이다.
九三은 위에서 대축의 극(極)에 있는 상구가 동류로서 이끌어 주기 때문에
마치 좋은 말을 타고 쫓듯이 빠르다.
그러나 어렵게 생각하고 올바름을 지켜서
매일 수레몰기와 방비하는 법을 익히면 나아가도 이롭다.
[六四] 損其疾(손기질) 使遄(사천) 有喜(유희) 无咎(무구)
그 병을 덜어 낸다. 서둘러서 덜어내면 기쁨이 있고, 허물이 없다.
象曰 損其疾(손기질) 亦可喜也(역가희야)
손기질은 또한 기뻐할 만하다.
六四는 위아래 모두 음효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고 음위(陰位)에 있어서 음이 지나치다.
六三과 六五는 음효가 양위(陽位)에 있어 음양을 겸비했지만
六四는 음효가 음위에 있어서 마치 허약한 병자와 같다.
아래 과강(過剛)한 정응 初九의 도움을 받아서 六四의 과음(過陰)한 질병을 다스린다.
初九가 六四의 과음을 즉, 불선(不善)을 덜어내는 것이다.
혹여 불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서둘러서 덜어내면 허물에 이르지 않아서 기쁨이 있다.
상전에서도 병을 덜어내면 기쁨이 있다고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화택규(火澤睽)가 된다.
어긋나고 뿔뿔이 헤어지고 흩어져서 흉하다.
모두 힘을 모아야 하는 큰일은 불가하고 작은 일에만 길하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합하기에 힘쓰라.
九四는 서로 어긋나고 외로워서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초구를 만나서 진심으로 사귄다.
위태롭지만 허물은 없다.
[六五] 或益之(혹익지) 十朋之(십붕지) 龜弗克違(귀불극위) 元吉(원길)
혹 더하여주면 많은 친구가 온다. 거북점을 쳐봐도 틀림없이 크게 길하다.
象曰 六五元吉(육오원길) 自上祐也(자상우야)
六五가 크게 길함은 위로부터 돕기 때문이다.
六五는 유순한 군주로서 아래 양강한 九二와 정응이다.
군주가 중용의 도로써 겸손히 자신을 낮춰서 아랫사람을 대하면
신뢰를 얻게 되고 크게 길하다.
아래의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하는 손(損)은,
윗사람이 유순하고 중용의 덕이 있으면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상전에서도 六五가 크게 길함은 하늘로부터 돕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묻는 거북점을 쳐봐도 틀림없이 길하다.
‘십붕지귀, 불극위’라고 끊어 읽기도 한다.
십붕(十朋)이나 나가는 값비싼 거북점을 쳐봐도 길하다.
六五가 효변하면 풍택중부(風澤中孚)가 된다.
기쁨으로 공손히 따르는 순간으로 진실한 믿음으로 바르게 하면
하늘도 감동시킬 수 있고 미물에게도 이롭다 했다.
비록 九五는 정응이 없지만 같은 덕을 가진 九二와 진심으로 당겨서 매어놓듯이 하면
허물이 없다.
군신이 서로 진실한 믿음으로 굳게 하나가 되면 허물이 없다.
[上九] 弗損益之(불손익지) 无咎(무구) 貞吉(정길)
利有攸往(이유유왕) 得臣无家(득신무가)
아래에서 덜지 않고 더해준다. 허물이 없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 나아가기에 이롭다.
신하를 얻어서 천하가 하나가 되기 때문에 가문(집)이 없어진다.
象曰 弗損益之(불손익지) 大得志也(대득지야)
불손익지는 뜻을 크게 얻음이다.
上九는 손(損)의 극(極)에 처했다.
上九는 손(損)이 다해서 조만간 익(益)으로 변하게 된다.
아래 六三과 정응이다.
아래의 남는 것을 덜어서 위에 더할 때에,
上九는 아래의 것을 덜지 않고 자신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하려 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양강한 윗사람이 높은 지위를 사용해서
아랫사람의 남는 것을 덜어 자신에게 더하는 것은 바른 도리가 아니다.
오히려 上九는 손(損)의 마침이므로
때에 맞게 오히려 자신의 양강(陽剛)한 도로 아래를 더해 도와주니 허물이 없다.
이와 같이 손(損)의 도가 지극하여 굳게 바르게 하면
감동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신하가 된다.
천하가 신하되기를 청하기 때문에 모두 하나가 되니 무가(无家)라 하였다.
상전에서도 덜지 않고 더해주는 것은 그 뜻을 크게 얻은 것이라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지택림(地澤臨)이다.
아래에서 양이 자라지만 윗자리의 음들이 유순함으로 아래에 임한다.
성대해지는 시절에 장차 쇠퇴할 것을 미리 대비하면 그 성대함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上六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성품이 바르고 후덕(厚德)해서
아랫사람을 따르고 현인을 존중하니 곧 돈독(敦篤)하게 임함이다.
42. 풍뢰익(風雷益)
어려운 때에는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해주라
덕행만이 이익을 줄 뿐!
괘사(卦辭)
‘익’(益)은 그릇에 물이 가득차서 넘치는 것을 말한다.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보태는 것이다.
괘상은 산택손(山澤損)을 거꾸로 뒤집은 손상진하(巽上震下)이다.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닭, 시장, 장사, 의심, 들어감(入), 냄새, 줏대 없음,
3배의 이익, 허벅지, 공손함을 뜻하고,
진(震)은 우레, 장남, 용, 발, 제후, 격동, 광주리, 봄, 동쪽, 움직임(動), 격동함을 뜻한다.
우레와 바람은 서로 유익을 더해준다.
바람이 거세지면 우레도 커지고, 우레가 커지면 바람도 더 강해진다.
천지비(天地否)의 건곤(乾坤)의 九四와 初六이 위치를 바꾸면
풍뢰익(風雷益)의 손진(巽震)이 된다.
즉 천지비의 九四가 위에서 겸손하게 아래로 내려와서
풍뢰익의 初九가 되어 낮추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하는 훌륭한 도(道)이다.
손(損)이 부부가 아이를 가져서 10달이 되어 출산하는 것이라면,
익(益)의 손(巽)은 장녀이고 진(震)은 장남이기 때문에
손의 아이가 부모를 계승하는 것이다.
익(益)은 나아가면 이롭고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
익(益)은 어렵고 험난할 때 더욱 크게 유익한 것은,
그 험난함을 구제하여 익(益)의 도가 널리 행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아래로 겸손히 낮추기 때문에 백성이 크게 기뻐하는 것이고
그 도(道)가 크게 빛나게 된다.
六二와 九五가 상하에서 중정(中正)한 덕으로 서로 응하기 때문에 더욱 경사가 있다.
익(益)은 나아가더라도 공손히 나아가기 때문에 날로 나아감이 끝이 없다.
하늘이 베풀면 땅은 생육하여 만물을 기르고, 그 유익함이 천하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무릇 익(益)의 도(道)도 그 마땅한 때와 더불어 행해야 한다.
군자가 익(益)을 본받아서 선한 것을 보면 따라하고 잘못이 있으면 고친다.
효사(爻辭)
[初九] 利用爲大作(이용위대작) 元吉无咎(원길무구)
큰일을 하기에 이롭다.
크게 길해야 허물이 없다.
象曰 元吉无咎(원길무구) 下不厚事也(하불후사야)
원길무구는 아랫사람이 큰일을 할 수 없음이다.
初九는 익(益)의 시작이다.
初九는 진(震)의 주효로 양강하고 성품이 올바르다.
위의 대신 六四와는 정응이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더하는 때,
六四와 정응이기 때문에 신임을 받아서 큰 소임을 맡게 된다.
初九는 시운(時運)과 처한 상황이
수도를 옮기거나 성을 쌓는 일처럼 큰일을 하기에 이롭다.
비록 初九가 진(震)의 주효이고 재능이 있고 六四가 응원한다고 해도
지위가 없는 시초에 있기 때문에 중대한 일을 맡기에는 의심이 있다.
따라서 작은 공(功)은 세워보아도 부족하고
큰 공(功)을 세워서 크게 길해야 비로소 허물을 면한다.
상전에서도 크게 길해야 허물을 면하는 것은
아랫사람이 중대한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初九가 효변하면 풍지관(風地觀)이다.
음효들이 점점 자라서 무성해지기 때문에 위의 양효들이 물러나는 시절이다.
그러나 위의 두 양효들이 아래 음효들을 두루 살피기 때문에
아래의 음효들이 위의 양효들을 우러러본다.
그러나 初六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유치하고 얕게 살피니
소인은 허물이 없지만 군자는 궁색하다.
[六二] 或益之(혹익지) 十朋之(십붕지) 龜弗克違(귀불극위) 永貞吉(영정길)
王用享于帝(왕용향우제) 吉(길)
혹 더해주면 많은 친구들이 온다.
거북점을 쳐봐도 틀림이 없다.
오래토록 바름을 지키면 길하다.
왕이 상제께 제사를 드려도 길하다.
象曰 或益之(혹익지) 自外來也(자외래야)
혹익지는 밖으로부터 옴이다.
六二는 산택손(山澤損)의 六五가 뒤집혀져서 내려온 것이므로 효사도 동일하다.
위로 九五와 정응이기 때문에 군주로부터 신임 받는다.
같은 중정한 덕의 군주가 응원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믿고 따라서 거북점을 쳐봐도 틀림이 없다.
상전에도 혹 더해주면 바깥(외괘/타인)에서 온다 했다.
그러나 六二는 음유해서 굳게 지키기 힘들어서
오래 굳게 바름을 지켜야 길하다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기쁘게 공손히 쫓는 때로 진실한 믿음으로 바르게 하면
하늘도 감동시키고 심지어 미물에게도 이롭다.
九二는 양강하고 중실(中實)하기 때문에 그 신의가 지극하다.
신의가 지극하면 감통하게 된다.
우는 학이 응달에 있어도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아하는 술잔이 있어서 내 너와 함께 나누려 한다.
마음속에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감응하지 않음이 없고
덕(德)이 선(善)하면 천리 밖에서도 감응이 일어나지만
불선(不善)하면 천리 밖에서도 떠나간다.
[六三] 益之用凶事(익지용흉사) 无咎(무구)
有孚中行(유부중행) 告公用圭(고공용규)
더해주는 것을 흉사에 쓰면 허물이 없다.
성신을 다해서 중도로 하라.
공에게 고할 때 규옥을 사용하듯이 하라.
象曰 益用凶事(익용흉사) 固有之也(고유지야)
익용흉사는 굳게 지킴이다.
六三은 성품이 바르지 못하며 진(震)의 극(極)에 처했고 위로 上九와 정응이다.
세 번째 효사는 상괘의 윗자리로서 변방의 제후와 같은 지위이다.
자기 영지에서 환란이나 흉사가 있을 때,
제후는 과감히 익(益)의 도를 사용해야 허물이 없다.
공(公)은 윗사람인 대신 六四를 의미한다.
육삼은 마땅히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것이 정도이지만
위급한 사태나 흉사가 발생했을 때에는 절차를 떠나서
우선 사태의 경중을 파악하고 힘을 다해서 백성을 돌보는 것은 허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행함에 있어 성신을 다해서
중도로 대처해야 나중에 윗사람에게 고하였을 때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신임이 두터워진다.
‘규옥’(圭玉)은 군신 간의 믿음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제사나 혹은 조정의 조회에 나아갈 때 규옥(圭玉)을 사용해서 예(禮)를 다하는 것이다.
위급한 흉사가 발생해서 더해줄 때에도
마치 신하가 군주 앞에서 규옥을 들고 예를 다하듯이
성신을 다해 중도로 행하라고 말한 것은 六三의 성품과 위치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상전에서도 흉한 일에 더해주는 것은 굳게 지키기 때문이라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안의 가정의 도리가 밖으로 영향을 미치는 때로, 특히 여자가 올바르면 이롭다.
九三은 과강하고 밝아서 집안을 너무 엄하게 다스린다.
비록 엄하게 다스린 것을 후회하겠지만 길하다.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절도를 잃고 궁색하게 된다.
[六四] 中行(중행) 告公從(고공종) 利用爲依(이용위의) 遷國(천국)
중도로써 행하여 공에게 고하면 윗사람이 따른다.
그에게 의지하여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것이 이롭다.
象曰 告公從(고공종) 以益志也(이익지야)
고공종은 유익하게 하려는 뜻으로 고함이다.
六四는 상괘 손(巽)의 주효로서 유순하고 겸손이 지극한 대신이다.
六四는 유순(柔順)하기 때문에 위로는 군주를,
아래로는 양강한 初九를 의지하며 따른다.
그러나 初九도 육사도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중(中)을 얻지도 못해서 중도를 지켜서 공에게 고하라고 경계했다.
상전에서도 六四가 공에게 고하여 윗사람이 그것을 따르는 것은
그의 뜻이 천하를 유익하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뢰무망(天雷无妄)이다.
사심 없는 행동도 정도가 아니면 결국 재앙으로 돌아온다.
九四는 올바름을 지킬 수가 있어서 허물이 없어진다.
아래에 정응이 없어서 사적인 관계에 마음을 두지 않기 때문에 망동하지 않을 수 있다.
[九五] 有孚惠心(유부혜심) 勿問元吉(물문원길) 有孚惠我德(유부혜아덕)
성신으로 은혜를 베푼다.
물어보지 않아도 크게 길하다.
믿음을 얻어 내 덕을 감사히 여긴다.
象曰 有孚惠心(유부혜심) 勿問之矣(물문지의) 惠我德(혜아덕) 大得志也(대득지야)
유부혜심은 물을 것도 없음이고 혜아덕은 뜻을 크게 얻음이다.
九五는 六二와 정응으로 함께 중정(中正)한 도(道)로써 유익하게 하므로 크게 길하다.
중정(中正)한 군주가 아래 중정(中正)한 신하의 보필을 받고
성신을 다해 천하의 유익을 구하므로 물어 볼 필요도 없이 크게 길하다.
군주가 성신을 다해 천하를 유익하게 하기 때문에
백성들도 감동해서 그 덕(德)을 은혜롭게 여긴다.
상전에서도 성신으로 은혜를 베푸니
물을 것도 없이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기는 것은 크게 뜻을 이룬 것이라고 하였다.
九五가 효변하면 산뢰이(山雷頤)가 된다.
이때는 기르는 때로 언어를 삼가고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순간이다.
병은 입을 통해서 들어오지만 화는 입으로부터 말미암는다.
六五는 아랫사람의 부양을 받는 것이 상도에 어긋나지만 바르게 거처하면 길하다.
하지만 혹 대천을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하고 큰일은 감당할 수가 없다.
[上九] 莫益之(막익지) 或擊之(혹격지) 立心勿恒(입심물항) 凶(흉)
더해주는 사람이 없다. 혹 치려 한다.
마음을 세움이 항상 하지 못한다. 흉하다.
象曰 莫益之(막익지) 偏辭也(편사야) 或擊之(혹격지) 自外來也(자외래야)
혹익지는 너무 치우쳤다는 말이고 혹격지는 밖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上九는 익(益)의 극(極)에 처했고, 익(益)이 극(極)에 이르게 되면 손(損)이 된다.
윗사람이 자기 것을 덜어 아래에 더해 줘야 하지만
上九는 오히려 아래의 것을 덜어서 자신에게 더하려고 하기 때문에,
누구도 더해주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증오해서 오히려 빼앗으려고 한다.
천하에 이익은 모두가 원하는 바이다.
군자는 공정하게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익을 나누고
남의 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길 원한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집착하고 이익에 따라 행하면
서로 간에 다툼이 발생하고 원망이 많다.
타인에게서 덜어서 나에게 더하는 도를 추구함이 과하면,
미움을 사서 공격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상전에서도 혹 더해주는 사람이 없음은 욕심에 치우쳤기 때문이고
혹 치는 것은 바깥(타인)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수뢰둔(水雷屯)이다.
처음 시작하면서 경솔히 나아가지 말고
경험 많은 일꾼을 세워서 도움을 받는 것이 길하다.
上六은 감험의 극(極)에 있는데 양강한 구오를 올라타고 있어서
그 위태로움이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43. 택천쾌(澤天夬)
소인을 결단할 때에도 강경하게 하지 말고 온화하게 물러날 여지를 두라
결단이 필요한 순간!
괘사(卦辭)
‘쾌’(夬)는 무엇을 결정하다, 용기 있는 결단, 과감함, 막힌 것을 터뜨리는 것을 뜻한다.
강건한 양들이 음사(陰邪)한 음을 결단하고 몰아낸다.
택천쾌(澤天夬)는 아래의 다섯 양들이 자라서 위에 하나 남은 음을 결단한다.
괘상은 태상건하(兌上乾下)이다.
택(澤)은 연못, 소녀, 입, 양, 첩, 수다, 기쁨, 무당, 은둔, 구멍(穴)을 의미하고,
건(乾)은 하늘, 노부, 머리, 말, 군자, 대인, 수레, 강건함을 의미한다.
상괘는 기쁘고, 하괘는 강건하다.
겉으로는 온화하지만 속은 강건하다.
강건하게 나아가면서도 온화하게 기뻐한다.
소인을 제거할 때에 함부로 왕성한 세력을 휘두르지 않고
온화하게 해서 물러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이롭다.
그 왕성한 세(勢)를 앞세워 다스림은 궁색하다.
乾道(호괘 乾)로써 사려깊게(교역괘 履) 결단하여 소인을 군자로 만들어야 한다.
쾌(夬)는 비록 양이 왕성해져서 음이 물러나는 때이기는 하지만,
아직 음이 다섯 양의 윗자리에 있고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아무리 쇠락하는 음이라고 해도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쉽게 여기고 대비하지 않으면
뜻하지 않은 위험 때문에 후회가 있을 수 있다.
쾌(夬)는 왕의 뜰에서 먼저 죄상을 낱낱이 고하고
성신을 다해서 호령함으로써 결단의 위태로움이 있음을 알린다.
읍(邑)으로부터 고하되 군사를 부리는 것은 이롭지 않지만 나아가는 것은 이롭다.
고자읍(告自邑)을 스스로 자신부터 바르게 다스리되
그렇지 않고 군사를 부려서 다스리는 것은 이롭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자기 영지에서 병사를 모집하는 명(命)을 고(告)하여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이롭지 않는다고 해설할 수도 있다.
쾌(快)는 강(剛)이 유(柔)를 강건하지만 기쁨으로 결단하여 화합하는 것이다.
소인이 쇠락하는 때,
上六(柔)이 九五(剛)를 올라타고 있기 때문에
그 위태로움이 커서 왕의 뜰에서 성신을 다해 호령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성한 세(勢)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숭상하여
소인을 무력으로 다스리면 궁색하다.
나아감이 이롭다고 한 것은 양이 자라나는 것이 순리(順理)이고
결국 음이 스스로 물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효사(爻辭)
[初九] 壯于前趾(장우전지) 往不勝爲咎(왕불승위구)
앞발꿈치가 왕성하다.
나아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다.
象曰 不勝而往(불승이왕) 咎也(구야)
이기지 못하는데 나아가면 허물이다.
初九는 쾌(夬)의 시작이다.
初九는 정응도 친비도 없다.
初九는 미천한 지위에 있음에도 과강해서 위로 나아가려는 뜻이 굳세다.
자신의 덕도 지위도 또 위에서 도와주는 이도 없는데 뜻만 앞선다.
자기 역량을 살피지 않고 나아가서 上六을 결단하려고 하면
오히려 이기지도 못하고 화를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상전에도 이기지도 못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허물이라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된다.
나무는 물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물이 과하면 뿌리가 썩듯이,
아무리 필요한 것도 과하면 오히려 해를 입힌다.
흰 띠풀로 자리를 깔고 제사를 지내듯이 공손하고 지성으로 하니 허물이 없다.
양의 기운이 과해서 위태롭지만
손(巽)의 주효인 初六은 공손함과 신중함이 지극해서 허물을 면할 수가 있다.
[九二] 惕號(척호) 莫夜有戎(모야유융) 勿恤(물휼)
두려워하며 호령한다.
깊은 밤에 군사가 일어나도 근심치 마라.
象曰 有戎勿恤(유융물휼) 得中道也(득중도야)
유융물휼은 중도를 얻음이다.
九二는 음위(陰位)에 있어 과강하지 않고 중(中)을 얻어서
미리 대비해 경계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깊은 밤에 군사가 일어나도 근심할 필요가 없다.
군자가 소인을 결단할 때는 반드시 경계하고
미리 대비를 잘 해야만 화를 면할 수 있다.
九二는 양강한 재질로 중을 얻어 두려움을 간직하고 호령하여 경계하기 때문에
비록 예상하지 못한 공격이 있다고 해도 걱정할 바가 없다.
상전에서도 군사가 일어나더라도 근심이 없음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택화혁(澤火革)이다.
물은 불을 꺼트리려고 하고 불은 물을 변혁시키려고 한다.
변혁은 막힌 것을 통하게 만들고 바로잡기 때문에 만약 변혁이 성취되면 크게 길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시기가 무르익은 뒤에 추진하고
변혁한 뒤에도 굳게 바르게 안정을 취해야 길하다.
六二는 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변혁을 이룬다.
나아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六二는 리(離)의 주효이기 때문에
분별하여 윗사람의 명을 기다린 뒤에 명을 좇아서 변혁을 이룬다.
시일이 지나서 윗사람과 아랫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뒤에 변혁하기 때문에
그 행함이 아름답다.
[九三] 壯于頄(장우규) 有凶(유흉) 獨行遇雨(독행우우) 君子夬夬(군자쾌쾌)
若濡有慍(약유유온) 无咎(무구)
광대뼈가 왕성하다. 흉하다.
홀로 가서 비를 만난다.
군자는 결단할 것을 결단한다.
비를 만나서 옷을 버린 듯이 화를 내면 허물은 없다.
象曰 君子夬夬(군자쾌쾌) 終无咎也(종무구야)
군자쾌쾌는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九三은 하괘 건(乾)의 극(極)에 있어서 과강하여 그 왕성함이 얼굴에 드러나서 흉하다.
九三은 음을 결단하는 쾌(夬)의 때,
上六과 정응이기 때문에 사적인 정에 끌려서 홀로 나아가서 음양화합을 이룬다.
주역에서 비는 하늘의 은택을 의미한다.
지금은 양(陽)이 다함께 소인 上六을 결단하기 위해서 가는데,
홀로 그 上六과 음양화합을 이룸은 정도가 아니다.
군자는 결단해야 할 상육을 결단해야 한다.
위(位)가 바른 九三은 홀로 음양화합을 이룬 것이 실도(失道)한 것임을 깨닫고
그 행동을 돌이켜야 한다.
사적인 정(情)에 매이지 않고 결단할 것을 결단하면 허물은 없다.
상전에도 군자는 결단할 것을 결단하기 때문에 마침내 허물은 없다 하였다.
九三이 효변하면 태위택(兌爲澤)이다.
즐거운 순간이지만 반드시 올바른 도를 따라야 이롭다.
정도를 벗어나서 쾌락을 추구하거나
아첨을 떨거나 간사를 부리면 후회와 허물이 있다.
六三은 태(兌)의 주효로서 위(位)가 부당해서 성품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아래 九二에게 내려와서 기쁨을 구하기 때문에 흉하다.
[九四] 臀无膚(둔무부) 其行次且(기행자저) 牽羊悔亡(견양회망) 聞言不信(문언불신)
엉덩이에 살이 없다.
그 가는 걸음이 머뭇거린다.
양을 끌고 가면 후회가 없다.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다.
象曰 其行次且(기행자저) 位不當也(위부당야)
聞言不信(문언불신) 聰不明也(총불명야)
기행자저는 위가 부당함이요 문언불신은 귀가 총명하지 못함이다.
九四는 음위(陰位)에 있기 때문에 결단력이 부족하다.
마치 엉덩이에 살이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같다.
상괘 태(兌)에는 양의 상이 있는데, 양은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다.
하괘 건(乾)의 세 양효가 함께 무리지어서 나아오기 때문에
그것을 올라타고 있어서 편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나아가려고 해도 음위(陰位)에 있어서 유약하고
위에는 양강(陽剛)한 九五가 있어서 결연히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대신의 지위에 맞게 양떼를 이끌고 함께 군주에게 나아가면 후회가 없다.
하지만 구사는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결단력이 없고
총명하지 못해서 조언을 듣고도 믿고 따르지 않는다.
九四가 효변하면 수천수(水天需)이다.
앞에 험난한 대천이 가로막고 있어 그쳐서 성장을 기다린다.
六四는 다행히 아래 정응 初九와 위의 친비 九五의 덕분에
약간의 피해만을 입고 동굴(어려움)로부터 벗어난다.
[九五] 莧陸夬夬(현륙쾌쾌) 中行无咎(중행무구)
잡초같은 악인을 결단한다.
중도로 행하면 허물 없다.
象曰 中行无咎(중행무구) 中未光也(중미광야)
중행무구는 중도가 빛나지 못함이다.
九五는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위의 上六은 괘에서 유일한 음효로 九五와 친비이다.
게다가 上六은 태(兌)의 극에 있어서 감언이설로 환심을 산다.
음을 제거하는 주체인 九五에게는 그 친밀함이 허물이다.
현륙(莧陸)이란 잡초는 인가 근처에서 독 있는 과실을 맺는 여러 해 살이 풀로,
볕에도 강하고 부드러워 자르기도 쉽지 않다.
그 뿌리도 단단해서 생명력이 질기다.
소인의 악이 그만큼 뿌리 뽑기가 힘들다는 상징이다.
비록 九五가 중도를 지켜서 허물은 면하겠지만,
마음속에 친비 上六과 친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상전에서도 그 중도가 크게 빛나지는 못한다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천대장(雷天大壯)이다.
군자의 세력이 자라나서 왕성해지고 소인의 세력이 쇠퇴하는 때이다.
양이 자라서 음이 물러나지만,
왕성할 때 그 왕성한 기세와 힘을 내세우지 말고
수신(修身)함으로 예(禮)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六五는 양을 쉬이 잃으면 허물이 없다.
비록 군위에 있다 하지만 네 양효들이 왕성하게 자라서
무리지어 나아오는 것을 힘으로는 막을 수 없고,
오직 중용의 덕으로 온화하게 맞아야 한다.
[上六] 无號(무호) 終有凶(종유흉)
호소할 데가 없다. 결국 흉하다.
象曰 无號之凶(무호지흉) 終不可長也(종불가장야)
무호유종은 결국 오래 가지 못함이다.
上六은 쾌(夬)와 태(兌)의 극(極)이다.
양(陽)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음(陰)을 결단하는 쾌(夬)의 때,
가장 윗자리에 있는 유일한 음효인 上六은 구설과 쾌락이 지극하다.
그러나 마침에 있으면서 소인 행세를 마냥 계속 할 수는 없다.
아무리 감언이설로 도움을 구하려고 울부짖고 하소연 해보아도 호소할 데가 없다.
마침내 군자의 도(道)가 점점 성대해지고 결국 물러나야 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힘이나 기세로 소인을 결단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소멸되기 때문이다.
상전에서도 호소할 데가 없고 흉하다 함은
마침내 오래토록 지속될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上六이 효변하면 건위천(乾爲天)이 된다.
건(乾)은 만물의 아버지로서 순수한 양(陽)이다.
크게 형통하다.
하늘의 강건하고 공정함을 본받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이롭다.
上九는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으로 후회가 있다.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다고 물러날 줄 모르고 과강하게 나아가려고만 한다.
귀하다고 하나 지위가 없고 높아도 백성이 없으며
아래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오직 후회만 남는다.
44. 천풍구(天風姤)
돌연 왕성한 여자를 만나더라도 절대 취하지 말라
한 여인과 다섯 남자의 만남
괘사(卦辭)
‘구’(姤)는 우연한 만남을 뜻한다.
하나의 음효가 다섯 양효들을 우연히 만난다.
양이 음을 결단했음에도
한 여름인 음력 5월, 하지(夏至)에 음이 다시 아래로부터 자란다.
택천쾌(澤天夬)가 음(陰)의 끝이면 천풍구(天風姤)는 음(陰)의 시작이다.
하늘의 이치는 결국 순환하기 때문에 쾌(夬)를 뒤집으면 구(姤)가 된다.
비록 맨 밑에서 자라나는 음은 미약하지만
점차로 왕성해져서 거세게 세상을 휘젓게 되고
뜻하지 않은 만남이 발생하면서 당혹하게 된다.
괘상은 건상손하(乾上巽下)이다.
건(乾)은 하늘, 노부, 머리, 군자, 수레, 대인, 말, 강건함을 의미하고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닭, 허벅지, 공손함, 의심, 시장, 3배의 이익,
줏대 없음, 들어감(入), 공손함을 뜻한다.
하늘 아래의 바람이 두루 다니면서 만물과 만나지 않음이 없다.
구(姤)는 여자가 왕성하기 때문에 취하지 말라.
상괘인 건(乾)은 노부이고, 하괘 손(巽)은 장녀로서 젊고 왕성하다.
구(姤)는 음(陰)이 자라서 양(陽)과 만나게 되기 때문에 여자가 점점 왕성해진다.
곤(坤)이 극(極)에 이르면 건(乾)과 다투듯이,
공손히 따르는 음의 덕(德)을 잃고 양과 대적하게 된다.
그래서 왕성한 여자는 취하지 말라고 했다.
왕성한 여자는 더불어 오래 함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효사(爻辭)
[初六] 繫于金柅(계우금니) 貞吉(정길) 有攸往(유유왕) 見凶(견흉)
羸豕孚躑躅(이시부척촉)
쇠말뚝에 매어 두면 바르고 길하다.
나아가면 흉하다.
야윈 암퇘지가 날쌔게 날뛴다.
象曰 繫于金柅(계우금니) 柔道牽也(유도견야)
계우금니는 유의 도가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初六은 위(位)가 바르지 못한 소인이다.
九四는 정응이고 九二와는 친비이다.
初六은 구(姤)와 손(巽)의 시작으로,
비록 지금은 미약하겠지만 앞으로 자라나서 위의 양효들을 핍박하게 된다.
그래서 쇠말뚝에 매어놓고 바르게 해야 길하다.
쇠말뚝은 양강(陽剛)한 九二의 乾道를 의미한다.
九二에게 매어두면 바르게 하는 것이고 길하지만,
나아가게 두면 성대해져서 마침내 양을 해치게 되기 때문에 흉하다.
비록 初六이 손(巽)의 주효로서 공손하고 기세가 미약해 보이지만
성대해지면 밭에 출몰한 야윈 암퇘지처럼 날쌔게 이리저리 날뛰게 된다.
소인은 비록 기세가 미약하더라도 군자를 해치려는 뜻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상전에서도 쇠말뚝에 매어두는 것은 음의 도가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건위천(乾爲天)이다.
건(乾)은 만물의 아버지요 순양(純陽)이다.
강건하고 공정한 하늘을 본받아서 바르게 하고자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하는 때다.
그러나 初九는 양(陽)의 기운이 잠복해 있는 상태이므로
시운이나 생체 리듬이 가장 저조한 때이다.
용의 덕을 지녔으나 지금은 잠용(潛龍)이므로 쓰지 말라.
[九二] 包有魚(포유어) 无咎(무구) 不利賓(불리빈)
물고기를 꾸러미 속에 두면 허물이 없다.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象曰 包有魚(포유어) 義不及賓也(의불급빈야)
포유어는 의리상 손님에게 이르게 할 수는 없음이다.
九二는 위(位)가 바르지 않지만,
공손한 손(巽)의 중(中)을 얻어서 온화함으로 친비 初六을 포용한다.
손(巽)에는 냄새, 꾸러미, 의심, 시기, 질병의 뜻이 있다.
물고기는 음(陰)의 물건으로 비린내가 진동하기 때문에 물고기는 初六을,
손님은 初六의 정응인 九四를 비롯한 다른 양들을 말한다.
예상치 못한 만남의 구(姤)는 다른 괘와 달리 九四와의 정응보다
九二와의 친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는 初六으로 인한 해(害)를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비록 九二는 중을 얻어서 진심을 다해서 初六과 친하고자 하지만,
정응 九四를 비롯한 다른 양들이 괘에서 유일한 음효인 初六과 친하기를 원한다.
혹여 初六이 손님 즉,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이면 이롭지 못하다.
상전에도 꾸러미 속에 물고기를 두는 것은
의리상 꾸러미 속의 물고기를 손님에게 이르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천산돈(天山遯)이 된다.
아래로부터 음이 점점 자라서 무성해지니
양이 거처하던 곳을 떠나서 물러나는 때이다.
그러나 군자가 소인을 멀리할 때도
그 말씨나 태도를 험악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을 보여서
소인들이 존경심을 갖도록 해야 해를 입지 않는다.
六二는 황소가죽으로 잡아매서 그것을 벗길 수 없다.
六二는 위로 같은 중정한 덕이 있는 九五에게 순리를 좇아서 응한다.
황소의 가죽으로 잡아맨 것과 같이 그 뜻이 견고해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때문에
돈(遯)의 효사 중에서 유일하게 효사에 돈(遯)이 빠져 있다.
[九三] 臀无膚(둔무부) 其行(기행) 次且(자저) 厲(려) 无大咎(무대구)
엉덩이에 살이 없다.
가는 걸음이 머뭇거린다.
위태롭기는 하지만 큰 허물은 없다.
象曰 其行次且(기행자저) 行未牽也(행미견야)
기행자저는 나아감을 끌어주지 못함이다.
양강한 九三은 初六과 친하고 싶지만 정응도 아니고 初六은 九四와 정응이고
또한 이미 친비인 九二에게 포용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나설 처지가 되지 못한다.
마치 엉덩이에 살이 없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머뭇거림과 같다.
이를 상전에서는 위에서 끌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라 했다.
비록 九三이 위태로운 위치에 있지만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 또한 올바르다.
애초에 初六과 응(應)이나 비(比)의 관계였던 것도 아니고,
初六이 음사(陰邪)한 소인임을 깨닫게 된다.
또한 九三은 손(巽)의 극에 있기 때문에 겸손이 지극하다.
따라서 비록 위태롭기는 하겠지만 큰 허물은 없다.
九三이 효변하면 천수송(天水訟)이 된다.
이때에는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나는 순간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쉽게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한다.
다툼을 오래 끌기보다 도중에라도 그만두면 길하다.
그러나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은 옛 덕을 먹으면서
굳게 바름을 지켜야 마침내 길할 수가 있다.
감(坎)의 극(極)에 있어서 분수를 지켜 위의 上九에 응하면
그것이 옛 덕을 먹는 것이다.
처한 위치가 위태롭고 음효이므로 위태롭게 여기고 바름을 지켜야 길할 수 있다.
[九四] 包无魚(포무어) 起凶(기흉)
꾸러미 속에 물고기가 없다.
흉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象曰 无魚之凶(무어지흉) 遠民也(원민야) 물
고기가 없어서 흉함은 백성을 멀리함이다.
九四는 初六과 정응이지만 바로 위의 친비인 九二에게 이미 포용되어서
마치 꾸러미 속에 물고기가 없는 것과 같다.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잃었기 때문에 흉하다.
윗사람이 실도(失道)한 것이 아니면,
윗사람이 그 상응하는 아랫사람을 잃을 이유가 없다.
정이천은 백성이 멀리하는 것은 그가 실도(失道)해서 자초한 것이라고 했고,
상전에서도 꾸러미에 물고기가 없어 흉한 것은 백성을 멀리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四가 대신임에도 중정(中正)하지 못해서 정응인 初六에게만 관심이 있다.
하지만 初六은 이미 九二에게 포용되었기 때문에
九四는 初六도, 백성의 마음도 또 자신의 덕도 잃었다.
따라서 흉한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九四가 효변하면 손위풍(巽爲風)이다.
끊임없이 겸손히 온화하게 행동하면 결국 형통하게 되지만 유약해서 조금 형통하다.
六四는 후회할 일이 없어지고 사냥을 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
六四는 상괘 손(巽)의 주효이고 성품이 바르기 때문에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공손하게 대하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없고 길하다.
[九五] 以杞包瓜(이기포과) 含章(함장) 有隕自天(유운자천)
버드나무로 오이(소인)를 감싼다.
아름다움을 머금으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있다.
象曰 九五含章(구오함장) 中正也(중정야)
有隕自天(유운자천) 志不舍命也(지불사명야)
九五함장은 중정함이고 유운자천은 뜻이 명을 버리지 않음이다.
九五는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는 군주이지만 아래에 응(應)도 비(比)도 없다.
버드나무는 잎이 좁아서 물건을 감싸기 어렵다.
그러나 중정한 九五가 강중(剛中)한 덕으로 응하여 포용하면
하늘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
이런 九五의 중정한 덕을 아름다움(章)이라고 했다.
상전에서도 九五의 머금은 아름다움은 중정한 덕이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있음은 그 뜻이 천명(命)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 아름다움을 머금으면 비록 그 덕을 드러내지 않아도
결국 하늘로부터 복이 있고 반대로 九五가 아름다움을 머금지 못했으면
九二에게 몸을 낮춰서 구하더라도 그 구함을 얻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복도 받지 못할 것이다.
군주로서의 지위를 앞세우기보다는 중정한 아름다움(章)을 품는 것이 옳다.
九五가 효변하면 화풍정(火風鼎)이다.
솥은 물질을 삶아서 날것을 익은 것이 되게 만들고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이 되게 만들기 때문에
솥은 새롭게 해서 새것을 취하는 도(道)이다.
六五는 솥의 누런 귀와 금 고리이다.
바르게 함이 이롭다.
六五는 리(離)의 중을 얻어서 지혜가 있고 九二는 손(巽)의 중(中)을 얻어 공손하다.
같은 중용의 덕이 있으면서 상응하지만 六五가 음효이므로
굳게 올바름을 지켜야 이롭다고 했다.
[上九] 姤其角(구기각) 吝(인) 无咎(무구)
그 뿔에서 만남이다.
궁색하지만, 탓할 곳이 없다.
象曰 姤其角(구기각) 上窮(상궁) 吝也(인야)
구기각은 위에서 궁하여 인색함이다.
上九는 구(姤)와 건(乾)의 극(極)에 있다.
上九는 양강(陽剛)으로 가장 윗자리에 있으면서
강건한 건(乾)의 극에 있어서 과강한 뿔의 상이다.
上九는 자신의 높은 지위와 강함을 내세워서 만남을 구하기 때문에 궁색하다.
이러한 자세로 만남을 구하면 함께 하고 싶더라도 다른 사람이 따르지 않고 멀리한다.
스스로 자초한 허물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없다.
상전에서도 그 뿔에서 만남은 위에서 궁(窮)해서 인색(吝)한 것이라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이다.
나무는 물이 반드시 필요하나 물이 과하면 뿌리가 썩듯이,
아무리 필요한 것도 과하면 해가 된다.
그러나 上六은 대과의 극(極)에서 자기 역량도 무시하고
경솔히 나아가다가 물에 빠져서 이마까지 빠지는 재난을 당하게 되므로 흉하다.
45. 택지췌(澤地萃)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다사다난하기 마련이다. 대인(大人)이 필요하다
성대한 잔치도 끝날 날이 있다! 그날을 대비하라!
괘사(卦辭)
‘췌’(萃)는 모이는 것, 풀이 무더기로 나는 것이다.
땅위에 물이 모여서 큰 연못을 이루듯이,
선(善)한 것들이 모여 서로 통하게 되므로 형통하다.
괘상은 태상곤하(兌上坤下)이다.
태(兌)는 연못, 양, 첩, 수다, 소녀, 구멍(穴), 무당, 은둔, 즐거움을 뜻하고,
곤(坤)은 땅, 노모, 소, 암말, 중앙, 황색, 치마, 배, 무리(衆), 유순함을 뜻한다.
연못이 땅위에 있어 물이 땅위를 흐르고 모여서 연못을 이룸이다.
췌(萃)는 안으로 유순하게 따르고, 밖으로 기뻐하는 덕이 있다.
췌(萃)에는 왕이 종묘(宗廟)를 모시기에 이롭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 형통하고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이로움이 있다.
제사를 드릴 때에는 순종과 정성으로 드림이 길하고, 나아가면 이롭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것으로는 위로 신명을 받들고
아래로 백성을 이롭게 하는 종묘를 제사지내는 것과 비교할 것이 없다.
무릇 사람과 사물이 모이면 다사다난(多事多難)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다스릴 만한 대인을 만나야 이로움이 있고 형통함을 이룰 수 있다.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미리 혼란과 다툼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췌(萃)는 상하가 중정(中正)한 덕으로 서로 응하기 때문에
순종하면서 기뻐하기 때문에 모을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모여 합하면 모든 일이 통하기 마련이므로,
췌(萃)는 풍족하고 후덕한 시기이다.
후덕하게 서로 사귀면 췌(萃)의 풍성함을 오래 누릴 수 있고
그것이 곧 천명(天命)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모이는 것을 잘 살피면 천지만물의 정(情)을 알 수가 있다.
만물이 발생하고 이루어지는 것에서 만나고 헤어짐이 그 정수이다.
유무동정시종(有無動靜始終) 즉,
있고 없고 움직이고 멈추고 시작하고 마침 이 모든 것들이
결국 모이고 흩어지는 것이다.
군자가 췌(萃)의 이치를 살피고 배워서 모일 때에 다사다난함을 알고
미리 대비해서 병장기를 수리하여 예기치 못한 일을 막는다.
효사(爻辭)
[初六] 有孚不終(유부유종) 乃亂乃萃(내란내취) 若號(약호)
一握爲笑(일악위소) 勿恤(물휼) 往无咎(왕무구)
믿음을 두어도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어지러워져서 망령되게 모일 것이다.
만약 부르짖어 구하면 천지의 도로 웃게 되니 절대로 근심하지 말고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
象曰 乃亂乃萃(내란내취) 其志亂也(기지란야)
내란내취는 그 뜻이 어지러워짐이다.
初六은 위의 九四와 정응이다.
그러나 初六은 위(位)가 바르지 못한 음유이니
정응 九四가 응원한다는 믿음을 굳게 지키지 못한다.
어지러워져서 곤(坤)의 동류인 음사(陰邪) 무리와 어울려서 망령되게 모인다.
하지만 마음을 돌이켜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구사를 구하면,
정도를 좇아서 정응 九四를 따르니 허물을 면하게 된다.
상전에도 어지러워져서 망령되이 모이는 것은 그 뜻이 어지러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택뢰수(澤雷隨)가 된다.
높은 곳의 귀한 양이 낮춰서 낮은 음에게 오기 때문에 음이 즐거워하며 따르는 때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면 남도 자기를 따른다.
천지비의 上九가 겸손히 아래로 와서 택뢰수의 初九가 되었기 때문에
주관하던 것에서 변동이 있다고 했다.
올바르게 해야 길하고 문을 나서서 사귀면 공(功)을 이룬다.
정응이 없다 해서 하괘의 六二, 六三에게 사적인 정(情)에 머무르지 말고
문밖을 나서서 같은 덕(德)인 九四와 더불어 사귀면 공(功)을 이루게 된다.
[六二] 引吉(인길) 无咎(무구) 孚乃利用禴(부내이용약)
끌어당기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성신을 다하면 소박한 제사도 이롭다.
象曰 引吉无咎(인길무구) 中未變也(중미변야)
인길무구는 중도로써 변치 않아야 함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다.
위의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군주인 九五와 정응이다.
六二는 정응인 九五와 당연히 음양화합을 이루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함께 모이는 것이 덕인 췌(萃)의 때이고,
위에는 九四가 아래에는 六三과 六四가 九五와의 음양화합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끌어당겨야만 길하다.
만약 서로 끌어당기지 않으면 허물이 된다.
상전에도 끌어당기면 길하고 허물이 없는 것은 중도로써 변함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제사에는 성신을 다하는 것이 근본이듯이 사람들이 모임에도 그 진심이 근본이다.
성신을 다해 진심으로 하면 소박한 제사도 길하다.
九二가 효변하면 주역의 4대 흉괘인 택수곤(澤水困)이다.
곤란함에 처했다 해서 말을 앞세우지 말고
차라리 즐거운 마음으로 그 곤란을 받아들이고 침묵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정도에서 벗어나 말을 앞세워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九二는 먹고 마시는 것에 곤하다.
그러나 곧 윗사람의 부름이 있기 때문에
제사를 드리는 정성으로 수신하고 있어야지 나아가면 흉하게 된다.
[六三] 萃如嗟如(취여차여) 无攸利(무유리) 往无咎(왕무구) 小吝(소린)
모으려 하나 슬퍼 탄식한다. 이로울 것이 없다.
나아가면 허물은 없다. 다소 궁색하다.
象曰 往无咎(왕무구) 上巽也(상손야)
왕무구는 윗사람이 공손함이다.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한데 곤(坤)의 극(極)에 있다.
위에는 정응도 없는데, 바로 위의 친비 九四는 初六과 정응이기 때문에 응하지 않고,
바로 아래 六二는 九五와 정응이기 때문에 응하지 않는다.
췌(萃)의 때 모으려 하지만 호응이 없어 슬퍼 탄식한다.
함께 하고자 하는 이가 없어서 나아가서 上六에게 구하면
上六은 성품이 올바르고 기쁨의 극에 있어서
따름이 지극한 六三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상전에서도 나아가면 허물이 없는 것은 윗사람이 손순(巽)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비록 六三과 上六은 정응은 아니지만 上六도 정응이 없고 같은 동류이기 때문에
조금 궁색하지만 허물은 없다.
六三이 효변하면 택산함(澤山咸)이다.
이 순간에는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기쁨으로 겸손히 구하여 감응하니 형통하나
올바름을 지켜야 길하다.
九三은 넓적다리에 감응한다.
그 따르는 것에만 집착해 나아가면 궁색하다.
과강하고 처한 위치가 위태로워서 바른 도를 따라서 그쳐서 머무르지 못하고
위의 上六을 조급히 따른다.
양이 음을 쫓는 것에만 집착하면 부끄럽다.
[九四] 大吉(대길) 无咎(무구)
크게 길해야만 허물이 없다.
象曰 大吉无咎(대길무구) 位不當也(위부당야)
대길무구는 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九四는 양강(陽剛)하고 재능 있는 대신이다.
그러나 위로 같은 성질의 군주를 모시면서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화를 입기가 쉽다.
그러나 모이는 췌(萃)의 때,
九四는 췌(萃)에서 군주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강건(剛健)한 신하이다.
게다가 아래 初六은 정응 九四를 따르고 六三도 친비해서 九四를 따른다.
九四는 성품이 바르지 못해서 대신의 지위에 마땅하지 않게
위아래의 신임을 얻어서 위태함을 자초하기 쉽다.
따라서 정도를 지켜서 신임을 얻어 크게 길해야만
부당한 위에서 양강한 군주를 보필하는 허물을 면할 수 있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크게 길해야만 허물을 면하는 것은
九四가 위(位)가 부당하기 때문이라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수지비(水地比)가 된다.
친밀함을 청하는 것은 늦지 않게 서둘러 구해야만 한다.
주저하다가 그만 때를 놓치면 흉하다.
편안치 못한 사람이 도움을 구하여 오는데
그것을 도와서 편안하게 만들지 않고 어떻게 친밀하다 할 수가 있는가?
六四는 정응이 아닌 初六을 버리고 위의 현명한 친비 九五와 친밀하다.
그래서 밖으로 친밀하다고 했다.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만 길하다.
[九五] 萃有位(취유위) 无咎(무구) 匪孚(비부) 元永貞(원영정) 悔亡(회망)
취에 군위에 있음이니 허물은 없다.
믿지 않으면, 오래 바르게 하면 후회가 없어진다.
象曰 萃有位(취유위) 志未光也(미지광야)
취유위는 뜻이 빛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을 갖춘 군주이지만
아직 다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初六은 九四와 정응이고, 六三은 九四와 친비해서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九五는 오래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만 후회가 없어진다.
양강한 군주가 중정(中正)한 도를 행함에도 믿고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으면,
스스로 반성하고 오래 바르게 덕(德)을 쌓으면 후회가 없어진다.
상전에도 모이는 때 군위에 있지만 믿어주지 않는 것은
그 뜻이 크게 빛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라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지예(雷地豫)가 되는데, 음양(陰陽)이 서로 통해서 기쁘다.
자칫 쾌락은 사람을 그 속에 빠뜨려 실도(失道)하게 만들어 근심이 오도록 한다.
六五는 올바름에는 질병이 있지만 오래토록 죽지는 않는다.
아래에 예(豫)의 유일한 양효 구사를 올라타고 있어서
군주로서 올바름을 지킴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중(中)을 얻어서 오래토록 군주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다.
[上六] 齎咨涕洟(재자체이) 无咎(무구)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니, 누구 탓을 하리오.
象曰 齎咨涕洟(재자체이) 未安上也(미안상야)
재자체이는 위에서 편안하지 못함이다.
上六은 위(位)가 바르지만 취(萃)와 태(兌)의 극(極)에 있다.
극에 이르게 되면 다하여 변하기 때문에 그 모임과 기쁨이 다하여 흩어짐만 남았다.
취(萃)의 때에 음유(陰柔)한 소인 上六이 높은 자리에서 그것을 알지 못하고
홀로 쾌락에 젖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다.
모이는 취(萃)의 때 홀로 모이지 못하니,
자신의 고립을 탄식하고 잘못을 뉘우쳐서 눈물을 흘리지만 허물할 사람이 없다.
상전에서도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윗자리에서 편치 못한 것이라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천지비(天地否)가 된다.
이때에는 불통(不通)의 순간으로 소인이 지위를 얻어서 득세하고
군자는 덕을 감추어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비(否)를 뒤집으면 태(泰)가 되듯이,
上九는 불통이 다하여 다시 통하게 되는 기쁨이 있다.
46. 지풍승(地風升)
순리대로 작은 것을 쌓아서 점차 높은 것이 되게 하라
어떻게 오를 것인가?
괘사(卦辭)
‘승’(升)은 위로 올라가다, 열 홉이 한 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괘상은 택지취(澤地萃)를 거꾸로 뒤집은 곤상손하(坤上巽下)이다.
곤(坤)은 땅, 노모, 소, 암말, 중앙, 치마, 배, 유순함, 순종함을 뜻하고,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허벅지, 줏대 없음, 시장, 3배의 이익,
파고 들어감(入), 공손함을 뜻한다.
승(升)은 아래로는 공손하게 파고들고 위로는 품어서 기른다.
안으로 공손하고 밖으로는 유순히 따르는 덕이 있다.
곤(坤)은 땅이고 손(巽)은 나무이기 때문에,
승(升)의 상(象)은 나무(싹)가 땅 밑에서 자라나서
시절에 알맞게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땅속의 바람(木)이 곤(坤)의 트인 틈 사이로 파고드는 것이기도 하다.
군자도 땅 속의 작은 싹이 점점 자라나서 나무가 되는 것을 보고,
작은 덕을 쌓아서 점차 높고 큰 덕이 되게 한다.
만물은 때에 알맞게 나아가는데,
쌓고 쌓여서 마침내 이루어지는 것이 곧 그 순리(順理)이다.
위로 나아가는 ‘승’(升)의 때는 크게 형통하다.
대인을 만나더라도 근심치 말고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
남(南)은 리(離)의 방향이고 왕이 앉아서 바라보는 방향이다.
그래서 밝다(明), 앞(前)이라는 의미가 있다.
남정(南征) 즉, 남쪽으로 나아감을, 정이천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해설했다.
그러나 왕필과 공영달은 음(陰)이 리(離)의 방향인 남쪽으로 나아가서
크게 밝은 데 걸린다고 말했다.
승(升)은 아래의 강중(剛中)한 九二가 六五에게 응하여 공손하게 따르기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그러나 九二와 六五 모두 위(位)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근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마침내 서로 응해서 공(功)을 이루기는 경사(慶事)가 있다.
승(升)은 크게 형통해서 모든 점사(占辭)가 형통하다.
또한 손(巽)은 남동이고, 리(離)는 남이고, 곤(坤)은 서남이다.
승(升)의 남동쪽인 하괘 손(巽)이 남쪽(離)을 거쳐서
서남쪽인 상괘 곤(坤)으로 가는 것이고
음목이 남에서 리(離)에 의해서 길러진다고 볼 수도 있다.
효사(爻辭)
[初六] 允升(윤승) 大吉(대길)
믿고 따라서 올라간다. 크게 길하다.
象曰 允升大吉(윤승대길) 上合志也(상합지야)
윤승대길은 위와 뜻을 합함이다.
初六은 승(升)의 시작으로 위(位)가 바르지 못하지만,
初六은 하괘인 손(巽)의 주효로서 지극히 겸손하고 공손하다.
初六의 상은 마치 나무의 뿌리와도 같다.
비록 지금은 작은 싹에 불과하지만, 장차 자라서 나무가 된다.
初六은 유(柔)가 양위(陽位)에 있어 나아가려는 뜻은 있지만,
정응도 없고 음유(陰柔)이기 때문에 유약해서 자기 스스로 올라갈 수 없다.
다행하게도 친비인 강중(剛中)한 九二는 군주와 정응이기 때문에
부름을 받아서 올라가므로 그를 믿고 따라서 올라간다.
그래서 상전에도 믿고 따라서 올라가면 크게 길함은
위와 뜻을 합하기 때문이라하였다.
初六이 효변하면 지천태(地天泰)이다.
하늘과 땅이 사귀어 통하니 만물이 생성된다.
음력 정월로 봄의 시작이니 모든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初九는 띠 뿌리를 뽑았는데 서로 엉켜있어서 그 무리와 더불어 나아가면 길하다.
初九는 위로 나아가려는 건(乾)의 양효들과 뜻을 모아 함께 나아가면 길하다.
[九二] 孚乃利用?(부내이용약) 无咎(무구)
성신이면 간소한 제사도 이롭다. 허물이 없다.
象曰 九二之孚(구이지부) 有喜也(유희야)
九二의 성신은 기쁨이 있음이다.
九二는 위(位)가 바르지 않지만 손(巽)의 중(中)을 얻은 현인이다.
위의 군주인 六五와는 정응이다.
강(剛)이 유(柔)를 섬기는 것 즉,
양(陽)이 음(陰)을 따름이 일반적인 순리(順理)는 아니기 때문에 다소 위태함이 있다.
군주와 신하 사이에 지극한 성신(誠信)이 없으면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가 힘들다.
강건한 신하가 유한 군주를 섬기면 간교한 허식으로 꾸미기 쉽다.
그러나 진실한 믿음이 중심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허식으로 꾸미지 않고 소박한 제사를 드려도 이로울 수 있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구이가 소박하지만 성신을 다하면 기쁨이 있는 것이라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지산겸(地山謙)이 된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추어 땅의 아래에 있듯이 겸손해야 하는 때이다.
六二는 겸손이 지극해서 자연스럽게 가슴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저절로 그 말과 행동에 드러나게 되고 그 겸손이 울려서 두루 떨쳐지게 된다.
[九三] 升虛邑(승허읍)
빈 고을로 올라간다.
象曰 升虛邑(승허읍) 无所疑也(무소의야)
승허읍은 의심할 것이 없음이다.
九三은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고 손(巽)의 극(極)에 있다.
九三은 上六과는 정응이고, 六四와는 친비이다.
九三은 양강(陽剛)하지만 성품이 바르고 겸손이 지극하다.
위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도 있고 게다가 상괘는 곤(坤)이므로
순종의 미덕이 있기 때문에 앞길에 저항이 없다.
이는 마치 빈 고을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상전에도 빈 고을을 오르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음이라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지수사(地水師)가 된다.
이때는 군사를 부리는 순간이다.
역량과 덕이 있는 장인(丈人)에 의해서 통솔되어야 한다.
六三은 군사를 부리는 사(師)에 혹 여러 장수가 주장하면 흉하다.
혹 패하여 수레에 시체만 싣고 오니 흉하다.
음유하고 역량도 부족한데 위(位)도 바르지 못하면서 감(坎)의 극(極)에 처했다.
九三은 하괘의 윗자리에서 양강(陽剛)하여
그 뜻이 강해니 서로 장수가 되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장수가 여럿이면 군사를 부림이 쉽지 않고 흉하다.
[六四] 王用亨于岐山(왕용형우기산) 吉(길)无咎(무구)
왕이 기산에서 형통케 한다.
길하고 허물이 없다.
象曰 王用亨于岐山(왕용형우기산) 順事也(순사야)
왕용형우기산은 일을 순리대로 하는 것이다.
六四는 유순하고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六四는 유순한 덕으로 위로 군주에게 순종하고,
아래로는 아랫사람들이 올라오도록 순응하면서 자신은 분수를 지킨다.
고대에 천자는 천지를 제사지내고 제후는 그 영지의 산천을 제사지냈다.
주나라 문왕도 폭군인 주왕을 몰아내고 천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위로 천자를 받들고 아래로 천하의 현인들을 순리대로 등용하면서
자신은 겸손하게 제후로서 남았다.
승(升)의 때에 六四는 군주와 가까운 지위에 있기 때문에
위로 올라서 왕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지만
성품이 바르기 때문에 자기 분수를 지킬 수 있고 길하여 허물이 없음이다.
상전에서도 왕이 기산에서 형통하게 한다는 것은
일을 순리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六四가 효변하면 뇌풍항(雷風恒)이다.
항(恒)은 중년 부부의 도리이다.
모든 효사가 음양이 상응하는데,
강유(剛柔)가 상응함이 곧 항구할 수 있는 상도(常道)이기 때문이다.
항(恒)은 변통을 모르면서 불변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오히려 때와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九四는 사냥을 가도 밭에 짐승이 없다.
마땅한 자리에 거처하여 그 행하는 바가 정도에 합당하고
그것을 항구히 지키면 공을 이루겠지만
마땅한 자리가 아니면 아무리 노력해도 유익이 없다.
[六五] 貞吉(정길) 升階(승계)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다. 섬돌에 올라간다.
象曰 貞吉升階(정길승계) 大得志也(대득지야)
정길승계는 뜻을 크게 얻음이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군주이다.
음유한 六五가 군위(君位)에 있기 때문에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길하다고 했다.
그렇지 못하면 아래의 현인 九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신뢰를 잃고 흉하게 된다.
하지만 올바름을 굳게 지켜서 아래의 정응 九二와 다른 현인들을 두루 등용해서
보필을 받으면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승계’(升階)를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황제 즉위식에서 상징적으로 오르는 섬돌을 오른다고 해설할 수도 있다.
상전에서도 계단을 오르는 것은 뜻을 크게 얻는 것이라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수풍정(水風井)이 된다.
우물은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항도(恒道)로써
만물에게 차별 없이 두루 쓰이는 것을 그 공(功)으로 한다.
九五는 맑고 시원한 샘물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마시게 된다.
그러나 우물은 끝까지 길어져야
비로소 그 공(功)을 이루기 때문에 길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上六] 冥升(명승) 利于不息之貞(이우불식지정)
올라감에 어둡다. 쉬지 않고 바름이 이롭다.
象曰 冥升在上(명승재상) 消不富也(소불부야)
위에서 어둡다. 쇠락하니 부유하지 못한다.
上六은 상괘 곤(坤)의 극(極)이면서 승(升)의 극(極)에 처했다.
지혜가 어두워서 어리석음이 극(極)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르는 것에만 급급하여 그칠 줄을 모르기 때문에 흉하다.
어두우면서 욕심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그칠 줄 모르면 흉하다.
올바름을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야 이로움이 있다.
상전에서도 오르는 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어둡기 때문에,
조만간 사그라들게 되고 부유하게 되지 못한다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산풍고(山風蠱)가 된다.
이때는 질서가 무너지고 어지럽게 되기 때문에 치울 일거리가 생기는 순간이다.
上九는 진퇴의 시기를 잘 알아서 나아가야 할 때에는 왕후(王侯)를 섬기지만
물러나야 할 때는 초연하게 물러나기 때문에 높이 숭상 받을 만하다.
47. 택수곤(澤水困)
곤란함에 처해서 말을 앞세우느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낫다
험난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지혜
괘사(卦辭)
‘곤’(困)은 곤궁(困窮)하다, 궁핍하다는 뜻이다.
괘상은 태상감하(兌上坎下)이다.
택(澤)은 연못, 소녀, 무당, 양, 첩, 입, 혀, 은둔, 구멍, 쾌락, 기뻐함을 뜻하고
감(坎)은 물, 강, 중남, 귀, 돼지, 법, 도적, 병, 술, 근심, 위험, 빠지는 것을 뜻한다.
위의 연못의 물이 아래로 빠져서 고갈되어 곤궁한 것이다.
택(澤)과 감(坎) 모두 음이 윗자리에 있어 양이 음에게 가려져서 곤궁하다.
안으로 험난하나 밖으로 기뻐한다.
험난함 속에도 기쁨을 잃지 않으면 형통하고 올바름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대인이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군자는 험난한 가운데 태연히 천명(天命)을 받들고
정도를 지키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곤란을 수용하고 침묵한다.
하지만 곤란함을 면하기 위해서
정도를 벗어나서 말을 앞세워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강중(剛中)한 덕이 없으면 곤궁한 때에 처하면
그것을 면하기 위해서 변명이나 해명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곤(困)의 때는 강중(剛中)한 대인(大人)이라야 길하다.
곤(困)의 九二와 九五를 두고 한 말이다.
곤궁함(困)은 곧 유(柔)가 강(剛)을 가리고 핍박하는 것이고,
소인이 군자(陽)의 윗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九二와 九五 모두 강중(剛中)한 덕이 있어서
굳게 올바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에 대인은 마침내 길하다.
효사(爻辭)
[初六] 臀困于株木(둔곤우주목) 入于幽谷(입우유곡) 三歲不覿(삼세부적)
엉덩이가 나무 그루터기 때문에 곤궁하다.
그윽한 골짜기에 들어가서 3년이 되도록 볼 수 없다.
象曰 入于幽谷(입우유곡) 幽不明也(유불명야)
입우유곡은 그윽해서 밝지 못함이다.
初六은 곤(困)의 시작이지만 위(位)가 바르지 못하다.
初六은 하괘인 감(坎)의 험난함의 아래에 있지만
그 곤궁함을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음효이다.
재능이 있는 윗사람을 만나면 구제받을 수 있지만,
정응인 九四가 구제해주지 않는다.
九四는 음위(陰位)에 있어서 양강함을 잃었고
중용의 덕도 없고 위의 유(柔)에 의해서 가려졌기 때문이다.
初六이 정응인 九四에게 자신의 곤궁함을 구제받고자 나아가지만 얻지 못하는 것을,
엉덩이가 그루터기(주목) 때문에 곤궁하다고 했다.
성품이 바르지 못한 初六은 음유해서 곤궁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서 숨는데, 3년이 되도록 볼 수 없다.
상전에서도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두워서 밝게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태위택(兌爲澤)이다.
화합해서 기쁨을 구하여 길하다.
[九二] 困于酒食(곤우주식) 朱紱方來(주불방래)
利用亨祀(이용향사) 征凶无咎(정흉무구)
먹고 마시는 것에 곤궁하다.
주불(군주)의 부름이 조만간 있다.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나아가면 흉하고 누구의 탓을 할 데가 없다.
象曰 困于酒食(곤우주식) 中有慶也(중유경야)
곤우주식은 중도로 하니 경사가 있음이다.
九二는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고 위의 군주 九五와 정응이다.
九二는 감(坎)의 험난함에 빠져 있지만 위의 군주 九五는 정응이 아니다.
군주의 부름도 받지 못하고 감(坎)의 험난함에 빠져있어서 먹고 마시는 것이 곤궁하다.
그러나 강중(剛中)한 자신의 덕을 갈고 닦고 있으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군주에게 알려지고 군주의 부름이 있을 것이다.
마치 제사를 드리는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윗사람의 감동을 일으키게 되고 부름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쳐서 안정하지 않고 나아가면 강중(剛中)한 덕을 잃고 망동함이다.
그러므로 나아가면 흉하게 되고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다.
상전에서도 먹고 마시는 것에 곤궁하지만
중도를 지키면 경사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九二가 효변하면 택지취(澤地萃)가 된다.
끌어당기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성신을 다하면 소박한 제사도 이롭다.
六二는 비록 유순하고 중용의 덕이 있지만
같은 부류인 음들의 중간에 있어서 군주 九五가 위에서 끌어주면 길하다.
소박하더라도 성신을 다해서 사람들의 모임을 구하면 길하다.
[六三] 困于石(곤우석) 據于蒺藜(거우질려)
入于其宮(입우기궁) 不見其妻(불견기처) 凶(흉)
돌에 곤궁하다.
가시덤불에 앉았다.
집에 들어가도 처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
象曰 據于蒺藜(거우질려) 乘剛也(승강야)
入于其宮(입우기궁) 不見其妻(불견기처) 不祥也(불상야)
거우질려는 강을 올라탐이요 입우기궁불견기처는 상서롭지 못함이다.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한데 감(坎)의 극(極)에 처했다.
六三은 정응이 없고, 아래 九二와 친비하다.
六三은 밑에 양강(陽剛)한 九二를 올라타고 있어서
마치 가시덤불에 앉은 것과 같이 위태롭고,
나아가고 싶지만 九四는 初六과 정응이기 때문에 六三을 받아주지 않는다.
마치 단단한 돌에 부딪친 것과 같이 곤궁하다.
六三은 험난함의 극(極)에 위치했지만
물러나지도 나아갈 수도 없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六三은 양위(陽位)에 있어서 나아가고 싶은 뜻은 있지만
자질이 유약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하다.
진퇴가 어려운 것을 깨닫고 원래 자기 자리에 머물러
편안히 안정을 취하려고 해도 上六은 정응이 아니고 마침이므로
처(妻)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집은 편안히 안정을 취하는 곳이고 처는 그 집의 주인이다.
상전에서도 가시덤불에 앉은 것은 강을 올라탄 것을 말하고
집에 들어가도 처를 보지 못함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이다.
과강해서 기둥이 흔들려서 흉하다.
무릇 과강하면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어렵고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최악의 상황에 처했음에도 중도를 벗어나서 과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어서 흉하다.
[九四] 來徐徐(래서서) 困于金車(곤우금거) 吝(인) 有終(유종)
오기를 더디 하는 것은 쇠수레에 곤하기 때문이다.
궁색하지만 마침은 있다.
象曰 來徐徐(래서서) 志在下也(지재하야)
雖不當位(수부당위) 有與也(유여야)
래서서는 뜻이 아래에 있음이고 비록 자리가 부당하지만 함께 함이 있음이다.
九四는 위(位)가 바르지 못한 측근대신이다.
양효로 재능은 있지만 그 성품이 바르지 못하다.
아래 初六과 정응이기 때문에 初六을 만나서 곤궁함을 구원하고 싶지만,
九二(쇠수레)가 가로막고 있다.
비록 九四와 初六이 서로 정응이라 해도 九四는 성품이 바르지 못하다.
하지만 九二는 강중(剛中)하고 初六과도 친비이다.
初六이 자신의 정응을 두고도 九二에게 마음이 있어 천천히 오기 때문에 곤하다.
비록 初六이 九四에게 천천히 오기는 하지만
결국 마침이 있음은 순리(順理)대로 정도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九二는 강중(剛中)한 덕이 있는 군자이므로,
애초에 初六에게 뜻이 없어서 가로막을 생각이 없다.
그저 九四와 初六이 위가 바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래서 상전에도 오기를 천천히 하는 것은 그 뜻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비록 위가 마땅치는 않지만 함께함이 있다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4대 흉괘인 감위수(坎爲水)가 된다.
한 동이 술과 두 그릇 음식을 질그릇에 내어
바라지 창문으로 들여보내면 마침내 허물은 없게 된다.
천하의 환란을 구해야 하는 대신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온화한 간언과 소박함, 성신(誠信)으로 군주인 九五를 섬기면
마침내 허물은 없게 된다.
[九五] 劓刖(의월) 困于赤紱(곤우적불)
乃徐有說(내서유열) 利用祭祀(이용제사)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인다.
적불(신하)에게 곤궁함이 있다.
서서히 기쁨이 있다.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象曰 劓刖(의월) 志未得也(지미득야)
乃徐有說(내서유열) 以中直也(이중직야)
利用祭祀(이용제사) 受福也(수복야)
의월은 뜻을 얻지 못함이고
내서유열은 중직(中直)하기 때문이고 이용제사는 복을 받음이다.
九五는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지만
정응이 없어서 함께 천하의 곤궁함을 구제할 신하를 얻지 못했다.
비록 九二는 같은 양효로 정응은 아니지만 둘 모두 같은 강중(剛中)한 덕을 가졌다.
곤(困)의 때에, 양은 음에게 가리고 핍박당한다.
九五는 上六에게 코를 베이고, 九二는 初六에게 발꿈치를 베임과 같은 처지이다.
상하가 함께 하지 못해서 곤궁하지만 결국 서로 뜻을 모으게 된다.
마치 제사를 지내는 것과 같은 지극한 정성으로 해야 한다.
상전에서도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임은 그 뜻을 얻지 못한 것이고
서서히 기쁨이 있는 것은 중직(中直)한 덕이 있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고 한 것은 그런 정성이면 복을 받음이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수해(雷水解)이다.
중용의 덕(德)이 있어서 군자가 풀어버리면 길하고,
소인에게도 믿음을 얻게 되고 스스로 승복하여 물러난다.
[上六] 困于葛藟(곤우갈류) 于臲卼(우얼올)
曰動悔(왈동회) 有悔(유회) 征吉(정길)
칡넝쿨과 위태함에 곤궁하다.
움직이면 후회가 있다고 말하고 뉘우치면 나아가도 길하다.
象曰 困于葛藟(곤우갈류) 未當也(미당야) 動悔有悔(동회유회) 吉行也(길행야)
곤우갈류는 마땅하지 못함이고 동회유회는 길하게 행함이다.
上六은 태(兌)와 곤(困)의 극(極)에 처했다.
上六은 재능이 없는 음유(陰柔)한 소인인데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은 바르다.
上六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아래에 강(剛)을 올라타고 있고 정응(正應)도 없다.
나아가려고 하면 더 엉켜서 위태롭게 된다.
움직일수록 더 엉키고 가만히 있어도 편안하지 못하니 곤궁하다.
하지만 뉘우침이 있고 행동에 변화를 주면 나아가도 길하다.
왜냐하면 곤궁함이 지극하면 변하게 되는 것이 이치이고
기뻐하는 태(兌)의 극(極)에 있기 때문이다.
상전에서 곤궁함은 처한 바가 마땅하지 않음 때문이고,
움직이면 후회가 있다고 말해서 뉘우치면 길하게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둔(屯)의 上六에서는 피눈물을 흘리지만 곤(坤)의 上六에서는 뉘우치면 길하다 한 것은
곤에는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하기 때문이다.
上六이 효변하면 천수송(天水訟)이다.
미련하게 소송을 끝까지 끌고 간 사람으로,
비록 소송에 이겨서 상을 얻었다 해도 그것들을 지킬 수 없고
금방 다시 빼앗기기 때문에 흉하다.
48. 수풍정(水風井)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도(道)를 베풀라
더운 여름날을 식혀줄 차갑고 시원한 우물의 지혜
괘사(卦辭)
‘정’(井)은 고대인의 삶의 근원인 ‘우물’을 말한다.
우물은 아무리 길어가도 변함없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우물(井)의 도(道)는 잃고 얻음을 초월해서 변함없이 베푸는 도(道)를 의미한다.
괘상은 감상손하(坎上巽下)이다.
감(坎)은 물, 달, 귀, 중남, 도적, 돼지, 병, 험난함을 뜻하고,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허벅지, 닭, 시장, 장사, 냄새, 줏대없음,
들어감(入), 공손함을 뜻한다.
하괘 손(巽)의 나무 두레박이 상괘 감(坎)의 물속으로 들어가서 물을 퍼 올린다.
정(井)은 上六에 이르면 비로소 공(功)을 이룬다.
마을은 바꾸고 옮길 수 있지만, 우물은 옮길 수 없다.
그것은 九二와 九五가 강중(剛中)한 덕이 있어서 변함없이 머무르기 때문이다.
우물(井)은 길어도 마르지 않고 그냥 두어도 차서 넘치지 않는다.
우물은 언제나 변함없는 도로
차별 없이 만물에게 두루 쓰이는 것을 그 공(功)으로 한다.
두레박 끈의 길이가 충분해야 하고 튼튼해야만 한다.
혹여 도중에 쏟아지거나 끝까지 길어지지 못하면 흉하다.
다른 때에는 극한에 이르면 변하나 수풍정(井)과 화풍정(鼎),
이 둘에서는 극에 이르러서 비로소 공(功)을 이룬다.
효사(爻辭)
[初六] 井泥不食(정니불식) 舊井(구정) 无禽(무금)
우물물이 진흙탕이라 먹지 못한다.
옛 우물에는 짐승도 찾지 않는다.
象曰 井泥不食(정니불식) 下也(하야)
舊井(구정)无禽(무금) 時舍也(시사야)
정니불식은 아래에 있음이고 구정무금은 때가 初六을 버림이다.
初六은 정(井)의 시작인데 위에 정응도 없고 음유가 위(位)도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오래 쓰지 않아서 버려진 우물과 같다.
더러워져서 마실 수 없어서 짐승들도 찾지 않는다.
재능이 부족한 음유(陰柔)가 아래에 위치했는데 위에서 응원하는 이가 없으면,
아래의 우물물이 위로 길어질 수 없다.
상전에도 우물이 진흙탕인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고
오래된 우물에 짐승이 없음은 때가 初六을 버렸기 때문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수천수(水天需)가 된다.
교외에서 기다림이다.
경솔히 나아가지 않고 변함없는 마음을 지키면 이롭고 허물이 없다.
[九二] 井谷(정곡) 射鮒(석부) 甕敝漏(옹폐루)
우물물이 골짜기의 붕어에게 쏟아진다.
독이 깨어져 샌다.
象曰 井谷(정곡 )射鮒(석부) 无與也(무여야)
정곡석부는 함께 하지 못함이다.
九二는 위(位)가 바르지 못하지만 손(巽)의 중을 얻었다.
그러나 상괘의 九五는 같은 양(陽)이기 때문에 정응이 아니다.
九二는 그저 아래의 친비 初六과 친밀할 따름이다.
정(井)의 때는 아래에서 위로 물을 길어서 두루 쓰임이 그 공(功)이기 때문에,
양효는 마땅히 위로 나아가야 하지만
위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래에 머문다.
마치 우물물이 길어지지 못해서 골짜기로 흘러서 붕어(初六)에게 쏟아지는 형국이고,
물동이가 깨어져서 새는 것이다.
상전에도 우물이 골짜기로 흘러서 붕어에게 쏟아짐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4대 흉괘인 수산건(水山蹇)이 된다.
왕의 신하가 건(蹇)의 때 험난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탓이 아니다.
자신의 중정한 도(道)를 다하여 노력하더라도
건(蹇)의 험난함 속에 빠져있는 九五를 구할 수는 없다.
[九三] 井渫不食(정설불식) 爲我心惻(위아심측)
可用汲(가용급) 王明竝受其福(왕명병수기복)
우물을 깨끗이 해도 먹이지 못해서 내 마음이 슬프다.
길어서 쓸 만하다.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
象曰 井渫不食(정설불식) 行惻也(행측야)
求王明(구왕명) 受福也(수복야)
정설불식은 행하지 못함을 슬퍼하는 것이고 구왕명은 복을 받는 것이다.
九三은 손(巽)의 극(極)에 있다.
上六은 정응이다.
九三은 위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지만 과강한 양이고
정응인 上六의 응원도 있고 하괘의 가장 높은 지위에 있어서
상괘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간절하다.
재능이 있고 성품이 바르기 때문에 우물을 깨끗이 해서 쓰일 준비가 되었지만
위로 등용되어 쓰일 수 없기 때문에 九三의 마음이 슬프다.
九三은 비록 양강하지만 손(巽)의 극(極)에 처했기 때문에 겸손이 지극하다.
군주인 九五가 현명해서 九三과 같은 인재를 등용하면
정(井)의 공(功)을 이루게 되기 때문에 복을 서로 받게 된다.
상전에서도 우물을 깨끗이 해도 먹이지 못하니 그것이 슬픈 것이고
왕의 현명함을 구한 것은 복을 받기 위함이라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감위수(坎爲水)이다.
오고감에 험난하다.
험난함을 또한 베개 삼는다.
더 깊은 구덩이에 들어간다.
분수를 지켜서 그치지 못하고 더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니 이런 도(道)는 쓰지 말라.
[六四] 井甃(정추) 无咎(무구)
우물을 고쳐서 수리하면 허물이 없다.
象曰 井甃无咎(정추무구) 脩井也(수정야)
정추무구는 우물을 수리함이다.
六四는 재능은 부족하나 위(位)가 바르고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중정(中正)한 九五와는 친비하기 때문에 신임을 받는다.
대신인 六四는 중정한 군주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지만 않으면 허물은 면한다.
비록 六四는 재능과 뜻이 부족하고 응도 없어서
길어져서 만물을 구제하는 공(功)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잘 살펴서 고치면 소임을 다하고 허물을 면한다.
상전에도 허물이 없음은 우물을 수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택풍대과(澤風大過)가 된다.
기둥이 높아서 길하다.
그러나 두 마음을 가지면 부끄럽게 된다.
[九五] 井冽寒泉食(정렬한천식)
우물물이 맑아서 시원한 샘물을 마신다.
象曰 寒泉之食(한천지식) 中正也(중정야)
한천지식은 중정함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군주이다.
우물이 깨끗해서 시원한 샘물과 같다.
상전에도 맑고 시원한 샘물을 마심은 중정하기 때문이라 했다.
맑고 시원한 샘물이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마시게 되므로,
우물의 도가 지극하여 선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井)에서는 끝까지 길어져야
공(功)을 성취하기 때문에 길하다고 하지 않았다.
아직 上六까지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쓰임에는 미치지 못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지풍승(地風升)이다.
음효가 군위에 있기 때문에 굳게 바름을 지켜야 길하고 섬돌에 오른다.
두루 등용해서 보필 받으면 크게 뜻을 얻게 된다.
[上六] 井收勿幕(정수물막) 有孚元吉(유부원길)
우물물을 길은 뒤에도 덮개를 덮지 않는다.
믿음을 얻고 크게 길하다.
象曰 元吉在上(원길재상) 大成也(대성야)
위에서 크게 길하다고 함은 크게 이루기 때문이다.
上六은 아래 九三과 정응이고 九五와는 친비이다.
극(極)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공(功)을 이루기 때문에 크게 길하다.
우물의 덮개를 덮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무 때나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음껏 서로 나누는 믿음이 있으면 정(井)의 도가 지극하게 된 것이므로 크게 길하다.
상전에도 크게 길함이 위에서 있음은 크게 이룬 것이라고 했다.
상육이 효변하면 손위풍(巽爲風)이다.
겸손이 너무 지나쳐서 평상 아래에 있다.
그 재물과 도끼를 잃는다.
올바른 도(道)에서 보자면 흉하다.
스스로 본래의 강건한 덕을 잃게 되어서 결국 화를 자초한다.
49. 택화혁(澤火革)
서두르지 말고 때가 무르익은 뒤에 변혁하되 변혁한 뒤에는 굳게 지켜라
혁명의 계절에 듣는 주역의 지혜
괘사(卦辭)
‘혁’(革)은 고쳐서 바꾸다 혹은 질긴 가죽을 말한다.
동물의 털을 제거하고 무두질한 가죽을 의미한다.
그 과정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물질이 되기 때문에 변혁하는 것을 뜻한다.
괘상은 화풍정을 뒤집은 택상리하(澤上離下)이다.
태(兌)는 연못, 소녀, 양, 무당, 첩, 입, 혀, 수다, 은둔, 구멍, 기뻐함을 뜻하고
리(離)는 불, 꿩, 중녀, 해, 밝음, 무기, 화려함, 신뢰, 분별, 달라붙음을 뜻한다.
물은 아래로 내려가려 하고 불은 위로 가려 하는 성질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
물은 불을 꺼트리려 하고 불은 물을 증발시키려 한다.
서로가 서로를 변혁하거나 혹은 멸망시키려고 한다.
상괘인 태(兌)는 소녀이고 하괘인 리(離)는 중녀이다.
두 여자가 한 집에 살지만, 소녀가 위에 있고 중녀가 아래에 있다.
그 뜻을 서로 얻지 못하고 마침내 각자 다른 곳으로 시집간다.
태(兌)는 가을(秋)을, 리(離)는 여름(夏)을 상징하므로,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무성했던 양기(陽氣)가 음기(陰氣)로 바뀐다.
안으로 밝은 덕이 있고 밖으로 기뻐하므로 크게 형통하다.
옛 것을 변혁하면 사람들이 쉽게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시일이 지나야만 비로소 믿음을 얻게 된다.
혁(革)은 막힌 것을 통(通)하게 하고 바르게 하기 때문에
변혁이 성취되면 크게 형통하다.
그러나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이롭고 후회가 없다.
정도에서 벗어나서 변혁을 하거나 믿음을 얻지 못하고 강제로 변혁을 하게 되면
오히려 폐해를 자초한다.
또한 변혁한 뒤에는 굳게 지켜서 안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다시 변혁이 일어난다.
변혁에는 마땅한 때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 때가 무르익은 뒤에 행하면,
사람들의 이해와 신뢰를 얻어서 크게 형통하게 된다.
효사(爻辭)
[初九] 鞏用黃牛之革(공용황우지혁)
황소가죽으로 묶는다.
象曰 鞏用黃牛(공용황우) 不可以有爲也(불가이유위야)
공용황우는 일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이다.
初九는 혁(革)의 시작이다.
初九는 九四와 정응이 아니고 六二와는 친비이다.
初九는 재능이 있는 양효로 과강(過剛)해서 변혁할 의지가 강하지만,
아직 때와 지위가 부족하고 위로 응원하는 이도 없다.
그러나 친비 六二는 중정(中正)하고 밝은 덕이 있는 리(離)의 중에 있어 지혜가 있다.
황색은 중앙(中道)의 색이고 소는 유순한 동물이고,
소가죽은 견고하고 질겨서 변함이 없다.
六二의 순하고 현명한 덕을 좇아서
경거망동하지 않는 것을 황소가죽으로 묶는다 했다.
변혁은 반드시 적절한 때와 지위, 재능을 갖춘 이후에 신중하게 단행해야 후회가 없다.
初九는 혁(革)의 시초로 때가 무르익지도 못했고
위(位)도, 응원도 부족하면서 과강하기만 해서
六二의 중용의 덕에 단단히 묶어야 한다.
상전에서도 황소 가죽으로 묶는 것은 아직 변혁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택산함(澤山咸)이다.
그 감응이 깊지 못해서 엄지발가락만 감응한다.
초육은 양위(陽位)에 있어서 뜻은 있지만 그 자질이 음유(陰柔)해서 재능이 부족하다.
[六二] 已日乃革之(이일내혁지) 征吉(정길) 无咎(무구)
날이 지나서야 변혁한다.
나아가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象曰 已日革之(이일혁지) 行有嘉也(행유가야)
이일혁지는 행함에 아름다움이 있음이다.
六二는 하괘인 리(離)의 중(中)을 얻어서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신하이다.
위의 九五와 정응이기 때문에, 강건하고 중정한 군주를 도와서 변혁을 행한다.
군주의 변혁의 명을 기다렸다가 시행하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시일을 두어야 모든 사람이 믿게 되고 허물이 없다.
그래서 날이 지나서야 변혁을 행한다 했고 나아가면 길하다.
六二는 리(離)의 주효로 밝은 덕이 있어서
사리를 잘 분별해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신뢰를 얻은 뒤에 변혁을 이룬다.
‘이’(已)를 ‘기’(己)로 보면
‘기일’(己日)은 천간(天干)에서 6번째로 중간을 막 지난 것이다.
시일이 충분히 지난 뒤에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기를 기다린다.
결과적으로 기일(己日)로 보는 것도 이일(已日)로 보는 것과 동일한 뜻이 된다.
六二가 하는 변혁이 적절하고 허물이 없기 때문에
상전에서도 그 행함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六二가 효변하면 택천쾌(澤天夬)이다.
중도를 얻어서 소인을 결단할 때도
항상 경계하고 대비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호령한다.
깊은 밤에 군사가 일어나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九三] 征凶(정흉) 貞厲(정려) 革言三就有孚(혁언삼취유부)
나아가면 흉하다.
바르게 하고 두려워한다.
변혁의 말을 여러 번 논의한 뒤에 비로소 신임을 얻는다.
象曰 革言三就(혁언삼취) 又何之矣(우하지의)
혁언삼취는 또 어찌 하겠는가?
九三은 비록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지만 과강(過剛)하다.
그 뜻은 바르지만 리(離)의 극(極)에 처해서
너무 급히 서두르고 명확하게만 변혁하려고 하기 쉽다.
변혁이란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급히 나아가면 흉하고 바르게 하고 두려워해야 화를 면할 수 있다.
비록 변혁을 하는 것이 정도에 합당하다고 해도,
조급하게 서두르면 분란이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두 번 세 번 변혁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중론을 모아 신중히 변혁하면 신임을 얻는다.
상전에서도 변혁을 세 번이나 논의하니 더 어떻게 하겠는가 물었다.
九三이 효변하면 택뢰수(澤雷隨)이다.
장부에게 매이면 소자를 잃게 된다.
六三은 위태로운 위치에 처했는데 위(位)도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굳게 올바름을 지켜야만 그 구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다.
비록 따름에 그 구하는 것을 얻겠지만 바르게 거처하는 것이 이롭다.
[九四] 悔亡(회망) 有孚改命(유부개명) 吉(길)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믿음을 얻고 변혁한다. 길하다.
象曰 改命之吉(개명지길) 信志也(신지야)
변혁이 길함은 뜻을 믿기 때문이다.
九四는 위가 바르지 못해서 원래는 후회할 일이 있지만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九四는 양강하지만 음위에 있어서 강유(剛柔)를 겸비했기 때문에,
지나친 변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혁(革)의 때는 모든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변혁의 시기를 살펴서 두루 위아래의 신임을 얻은 이후에
비로소 변혁을 단행해야 길하다.
상전에서도 그 뜻이 신뢰받기 때문에 길하다고 하였다.
九四는 이미 하괘를 떠나서 상괘에 넘어 왔기 때문에 혁(革)의 중간을 넘어섰다.
따라서 이제 변혁의 시기가 무르익었고,
위로 군주인 구오의 신임을 받아서 변혁의 명(命)을 받든다.
위아래로 신임을 두루 얻어야 후회가 없게 되고
험난함에서 벗어나서 변혁을 이룰 수 있다.
구사가 효변하면 수화기제(水火旣濟)이다.
기제의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에 점점 결점이나 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치 배 밑바닥의 작은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과 같다.
六四는 누더기로 그 틈을 막고도 환란이 닥치지 않을까 걱정하여 종일 경계한다.
[九五] 大人虎變(대인호변) 未占有孚(미점유부)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한다.
점을 쳐보지 않아도 믿음을 얻는다.
象曰 大人虎變(대인호변) 其文炳也(기문병야)
대인호변은 그 무늬가 빛남이다.
九五는 상괘 손(巽)의 중(中)을 얻어서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을 갖춘 군주로 변혁의 주체이다.
마치 솔개가 발톱을 갈고 호랑이가 그 털을 갈아서
색이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것과 같다.
상전에서도 대인이 호랑이처럼 변함은 그 무늬가 빛나는 것이라고 했다.
대인의 중정(中正)한 도(道)는
변혁함에 있어서 타당하지 않음이 없고 때에 맞지 않음이 없다.
변혁의 과정과 그 이치가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
마치 호랑이가 털을 갈아서 아름답게 되는 것과 같아서
굳이 점을 쳐보지 않아도 신뢰하게 된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화풍(雷火豊)이다.
빛난 것을 오게 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고 길하다.
六五는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아래 六二가 동덕(同德)으로 응(應)하여
나아오면 의심하지 않고 함께 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고 길하다.
빛난 것은 아래의 현인 六二를 말한다.
[上六] 君子豹變(군자표변) 小人革面(소인혁면) 征凶(정흉) 居貞(거정) 吉(길)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
소인은 얼굴만 고친다.
나아가면 흉하고, 머무르면 바르고 길하다.
象曰 君子豹變(군자표변) 其文蔚也(기문위야)
小人革面(소인혁면) 順以從君也(순이종군야)
군자표변은 그 무늬가 무성함이요 소인혁면은 순하게 군주를 쫓음이다.
上六은 혁(革)과 리(離)의 극(極)에 있다.
중정(中正)한 九五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한다고 했고
上六은 호랑이보다 작은 표범처럼 변한다 했다.
군자는 속마음을 바꿔서 그 변한 모습이
표범의 털처럼 확연히 외부로 밝게 드러나지만
소인은 우매하여 진정으로 바꾸지는 못하고 단순히 얼굴만 고치고 마지못해서 따른다.
비록 소인이 얼굴색만 바꾸었다 해도 변혁이 이루어진 것인데,
더 이상 지나치게 나아가면 흉을 초래한다.
상전에도 군자가 표범처럼 변함은 그 무늬가 아름다운 것이고
소인은 얼굴만 바꾸는 것은 겉으로만 군주에게 순종하는 것이라 했다.
변혁을 통해 이룬 성과를 잘 지켜서 바르게 머무름이 길하다.
아니면 다시 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변혁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변혁을 이루고 나면 안정을 이루어서 머물러 잘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上六이 효변하면 천화동인(天火同人)이 된다.
함께 어울리는 동인(同人)의 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인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동인을 교외에서 한다고 했다.
비록 후회는 없으나 동인의 공도 없다.
50. 화풍정(火風鼎)
사사로움에 매이지 말고 역량을 잘 살펴서 소임을 다하라
밥 짖는 것과 다스림에는 균형이 필요하다
괘사(卦辭)
‘정’(鼎)은 세 발 달린 솥으로 날것을 삶아서 익히는 가마솥이다.
혁(革)을 옛 것을 버리는 도(道)라고 하면, 정(鼎)은 새 것을 취하는 도이다.
괘상은 혁(革)을 거꾸로 뒤집은 리상손하(離上巽下)이다.
리(離)는 불, 꿩, 눈, 중녀, 밝음, 지혜, 무인, 남쪽, 달라붙음을 뜻하고,
손(巽)은 바람, 나무, 허벅지, 닭, 장녀, 들어감(入), 시장, 장사,
3배의 이익, 공손함을 뜻한다.
손(巽)의 나무가 위의 리(離)의 불에 들어간다.
나무는 공손하게 순종함으로 위의 불을 붙따른다.
정(鼎)은 안으로 공손히 따르면서 밖으로 환히 밝히는 덕이 있어 크게 형통하다.
고대에는 ‘솥’(鼎)이 천지종묘(天地宗廟)를 제사 드리는 중요한 예기(禮器)로써
한 나라의 힘과 정치적 권위를 상징했던 물건이다.
성인이 나무로 불을 일으켜서 솥에 제물을 삶아서 상제께 제사 드린다.
제물을 넉넉히 삶아서 그것으로 천하의 성현들을 봉양했다.
국가의 가장 큰 행사였던 천제(天祭)와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실 때
‘청동솥’은 신성한 물건이었다.
솥(鼎)은 공손하고 눈과 귀가 총명하고,
음유(陰柔)한 六五가 위로 올라가서 중(中)을 얻어서
아래 공손한 강양(剛陽)의 九二와 상응(相應)하기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정(鼎)은 가마솥의 형상(象)에서 가져온 것이다.
初六은 가마솥의 발이고,
九二에서 九四까지 가마솥의 몸통이자 솥에 든 음식물이고,
六五는 솥의 귀이고, 上九는 솥의 윗 고리이다.
또한 상괘인 리(離)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상이고
하괘인 손(巽)은 발이 있는 상이므로 이것도 가마솥의 상(象)이다.
불과 바람(木)이 더불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솥은 물질을 삶아서 날것을 익히는 것으로,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이 되도록 만들어 새로운 성질의 물질로 변혁시키기 때문에
정(鼎)은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
주역에서 자연적인 상(象)이 아니라
문명의 산물에서 따온 것은 화풍정(鼎)과 수풍정(井) 이 둘 뿐이다.
효사(爻辭)
[初六] 鼎(정) 顚趾(전지) 利出否(이출비)
得妾(득첩) 以其子无咎(이기자무구)
솥의 발이 엎어져서 찌꺼기를 내놓게 된다. 이롭다.
첩을 얻으면 아들을 얻고 허물이 없다.
象曰 鼎顚趾(정전지) 未悖也(미패야)
利出否(이출비) 以從貴也(이종귀야)
정전지는 거스르지 않음이요 이출비는 귀한 것을 따름이다.
初六은 정(鼎)의 시작으로 손(巽)의 주효이다.
初六은 공손한 음유(陰柔)로 가장 낮은 지위에 있어서 첩(妾)의 상이 있다.
가마솥(鼎)의 가장 아래에 있는 발이다.
九四와는 정응이고 九二는 친비이다.
初六은 정응 九四에게 나아가려 해도 위로 九二와 九三이 가로막고 있다.
나아가기가 힘들어서 친비인 九二와 함께 하고자 하므로
정응이 아니기 때문에 첩이라 했다.
첩으로 갔지만 아들을 얻으면 허물이 없어진다.
비록 솥이 엎어져 음식물이 쏟아졌지만 찌꺼기를 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상전에도 솥의 발이 엎어졌지만 이치를 거스른 것은 아니고
비색한 것을 내놓게 되어 이로운 것은 귀한 것(양)을 따르기 때문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화천대유(火天大有)이다.
유일한 음효 六五가 군위에 있고 나머지 다섯 양효들이 따르기에 형통하다.
점괘에 흉함이 하나도 없을 만큼 크게 길하지만,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되면 사람들이 모이고
결국 다사다난하기 쉽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初九는 사귐이 없어 해롭다.
허물은 아니다.
어렵게 여기고 조심해야 허물을 면한다.
대유(大有)의 시작이지만 정응과 친비가 없어서 사귐이 없는데
과강하기 때문에 뜻만 앞세워서 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허물을 면할 수 있다.
[九二] 鼎(정) 有實(유실) 我仇有疾(아구유질) 不我能卽(불아능즉) 吉(길)
솥에 음식물이 있다.
내 짝에게 병이 있다.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 길하다.
象曰 鼎有實(정유실) 愼所之也(신소지야)
我仇有疾(아구유질) 終无尤也(종무우야)
정유실은 가는 바를 신중히 함이고 아구유질은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九二는 위로 군주 六五와 정응이고 아래 初六은 친비이다.
九二는 강실(剛實)로 중(中)을 얻어서 솥에 음식물이 차 있는 상(象)이다.
친비인 初六은 강중(剛中)한 九二를 따르지만 初六은 정응도 아니고 좋은 짝도 아니다.
九二는 중용(中庸)의 덕이 있어서 음사소인(陰邪小人) 初六이 따르는 것을 경계하지만
初六이 반드시 구하기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
상전에는 솥에 내용물이 있어서 신중히 가야하는 것이고
내 짝이 병이 있지만 결국 허물이 없다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화산려(火山旅)가 된다.
세상의 만사가 시의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겠지만
여행 중에는 일정한 거처가 없어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시의가 중요하다.
시의에 맞게 유순하고 겸손히 행동해야 화를 면할 수가 있다.
六二는 여행을 하는데 편히 머무를 숙소도 구했고 여비도 충분하고
또 올바른 어린 몸종도 얻었다.
허나 지금은 나그네 신세이기 때문에 그저 재앙이나 위험을 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九三] 鼎(정) 耳革(이혁) 其行塞(기행색)
雉膏不食(치고불식) 方雨(방우) 虧悔(휴회) 終吉(종길)
솥의 귀가 변혁해서 그 나아감이 막힌다.
기름진 꿩고기를 먹지 못한다.
바야흐로 비가 내리면 부족함과 후회가 결국 길하게 된다.
象曰 鼎耳革(정이혁) 失其義也(실기의야)
정이혁은 그 의리를 잃음이다.
九三은 손(巽)의 극(極)에 있지만 위의 上九는 정응이 아니다.
九三은 양효로서 재능이 있고 위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고 공손한 손(巽)의 극(極)에 있어 공손함이 지극하다.
그러나 중(中)을 얻지 못해서 과강한 九三은 六五 군주에게 등용을 받지 못한다.
솥의 귀는 六五를 말하고 군주의 신임을 받지 못하는 것을
솥의 귀가 변해서 그 나아감이 가로막힌다고 했다.
상괘인 리(離)에는 꿩의 상이 있기 때문에
리(離)의 중을 얻은 六五를 기름진 꿩고기라고 했다.
九三이 군주에게 등용되지 못하면 지위와 녹(祿)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기름진 꿩고기를 먹지 못한다.
상전에서도 솥의 귀가 변혁한 것은 그 의리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역에서 비(雨)는 언제나 음양화합(하늘의 은택)을 뜻한다.
六五는 밝은 덕이 있어 九三이 재능있고 올바른 성품을 가진 것을 알고
의심을 풀게 되고 결국 등용하게 된다.
비록 九三이 과강(過剛)하고 중용의 덕이 부족해도
공손히 따르기 때문에 후회가 마침내 길하게 된다.
九三이 효변하면 화수미제(火水未濟)이다.
이때는 미완성의 순간으로,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
六三은 미제에 나아가면 흉하다.
六三은 어려움이 겹쳐 있는데 역량도 덕(德)도 부족하고
위(位)도 바르지 못한데 처한 위치가 위태로워 나아가려 하니 흉하다.
대천을 건널 수만 있으면 이롭다.
[九四] 鼎(정) 折足(절족) 覆公餗(복공속) 其形渥(기형악) 凶(흉)
솥의 다리가 부러져서 공(公)에게 드려야 할 음식이 엎어졌다.
그 얼굴이 땀으로 젖게 되니 흉하다.
象曰 覆公餗(복공속) 信如何也(신여하야)?
복공속은 그 신뢰가 어떻게 되겠는가?
九四는 아래의 初六과 정응이고 위로 군주 六五는 친비이다.
九四는 양강하지만 위(位)가 부정(不正)한 대신이다.
무릇 대신이면 천하의 재능 있는 인재들을 두루 등용해야 한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한 자를 등용하면 일을 그르치고 환란을 자초하게 된다.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성품이 바르지 못한 九四는,
아래의 정응인 음사 소인 初六을 사적인 정 때문에 등용했다가 일을 망친다.
무안하고 당황해서 얼굴이 땀으로 젖는다.
부덕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자리하고는
사적인 정에 매여서 무능한 자에게 중임을 맡긴다.
이는 화를 자초하는 일이고 흉하다.
상전에서는 그런 흉한 일을 일으키면 신뢰가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九四가 효변하면 산풍고(山風蠱)이다.
질서가 무너지고 어지럽게 되므로 치울 일거리가 생기는 때이다.
六四는 우유부단해서 아비의 일을 너그럽게 처리한다.
나아가면 궁색하게 된다.
[六五] 鼎(정) 黃耳金鉉(황이금현) 利貞(이정)
솥에 누런 귀와 금 고리이다.
올바르게 함이 이롭다.
象曰 鼎黃耳(정황이) 中以爲實也(중이위실야)
정황이는 가운데 해서 실(實)함이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군주이다.
정(鼎)의 상에서 솥의 귀에 해당된다.
중용(中庸)의 덕을 누런 귀라고 했다.
금 고리는 아래의 정응 九二다.
六五는 리(離)의 중을 얻어서 밝은 덕이 있고,
九二는 강중(剛中)하면서 유순한 덕으로 정응이다.
그러나 음유한 六五가 군위에 있어서 그 뜻을 굳게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굳게 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천풍구(天風姤)가 된다.
양이 음을 결단했지만 아래로부터 다시 음이 자라나는 때이다.
이때는 왕성한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九五는 아래에 정응이 없지만 마치 박달나무가 오이를 감싸듯이
중용의 덕으로 九二와 만남을 구하면 길하다.
아름다움을 머금으면 하늘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
[上九] 鼎(정) 玉鉉(옥현) 大吉(대길) 无不利(무불리)
솥의 옥고리이다. 크게 길하다.
이롭지 않음이 없다.
象曰 玉鉉在上(옥현재상) 剛柔節也(강유절야)
옥현이 위에 있는 것은 강유(剛柔)를 절제함이다.
上九는 정(鼎)의 극(極)에 있어 그 도(道)를 이루었다.
강유(剛柔)의 덕을 겸비한 上九는 강직하면서도 온화한 덕이 있어서
옥으로 된 고리라고 했다.
우물(井)과 솥(鼎)은 모두 상효에 도달해야 공(功)을 이루고 통(通)하게 된다.
정응이 없기 때문에 사사로이 매임도 없고 아래 군주 六五는 친비이다.
상전에도 위에 있지만 강유를 겸비하여 과강(過剛)하지 않아서 크게 길하다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뇌풍항(雷風恒)으로, 중년 부부의 도(道)이다.
모든 효사들이 음양이 서로 응한다.
그것은 강유(剛柔)가 상응하는 것이 곧 항구할 수 있는 상도(常道)이기 때문이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반드시 항구하는 덕을 갖춰야만 공(功)을 이룰 수 있는데,
上六은 항도를 지키지 못하고 분주히 움직여서 흔들리기만 하기에 크게 흉하다.
51. 진위뢰(震爲雷), 중뢰진(重雷震)
두려운 일이 있을 때 나를 돌아보고 수신하면 태연자약할 수 있다
천지가 토해내는 사자후
괘사(卦辭)
‘진’(震)은 움직임, 두려움, 우레, 발, 다리, 제후, 격분을 뜻한다.
우레는 막힌 것을 뚫어서 통(通)하게 하고, 움직이되 격분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진(震)은 건(乾)과 곤(坤)이 처음 사귐으로 발생한다.
天地合德이다.
따라서 진(震)에는 발생과 장남의 계승이란 뜻이 있다.
진(震)은 하나의 양(陽)이 두 음(陰) 밑에서 발생해서 움직여 위로 나아간다.
양기(陽氣)가 처음 발동해서 소리를 내는 것이 바로 우레(雷)이다.
우레가 울려 사물을 떨게 하므로 진동이다.
땅 속에 숨어있던 초목의 싹(陽)이 밖으로 움트는 것이다.
진위뢰(震爲雷)는 우레가 거듭 울려서 만물을 진동하게 하고 분발하게 만들어서
일이 잘 진행되고 형통하게 한다.
우레가 울렸을 때 놀라고 두려워하면 뒤에 여유를 갖고 담소를 나눌 수 있다.
그 두려움을 간직하고 혹 잘못은 없는지 자신을 살펴서 수신하면,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우레가 울릴 때 놀라서 두려워하고 수신하면
태연자약할 수 있는 그 법칙(則)이 있는데 그것이 복(福)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우레가 그치면 사람들은 다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정성을 다해서 드리는 제사도 모실 수 있게 된다.
반드시 우레가 아니라도 두렵거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수신함으로써 자신의 허물을 살피고 고치면 그것 또한 길하다.
효사(爻辭)
[初九] 震(진) 來虩虩(래혁혁) 後(후) 笑言啞啞(소언액액) 吉(길)
우레가 울리면 놀라서 두려워해야 나중에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길하다.
象曰 震來虩虩(진래혁혁) 恐致福也(공치복야)
笑言啞啞(소언액액) 後有則也(후유칙야)
진래혁혁은 두려워해서 복에 이르는 것이고 소언액액은 뒤에 법칙이 있음이다.
初九는 진(震)의 주효이자 시작이다.
우레가 진동(震動)하는 시초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자기를 살펴서 수신(修身)하여 그 허물을 고쳐야 뒤에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고
웃고 떠들며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상전에도 우레가 울리면 두려워해야 복에 이를 수 있고
웃고 떠들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나중에 법칙(則)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뇌지예(雷地豫)이다.
음양(陰陽)이 통해서 기쁘다.
자칫 쾌락은 사람을 그 속에 빠뜨려서 실도하도록 만들어 근심이 오게 한다.
初六은 성품이 바르지 못한 음유 소인으로 즐거움을 울려대니 흉하다.
유일한 양효인 九四에게 의지해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려대기 때문에,
그 경박함에 질시를 받게 되므로 흉하다.
[六二] 震(진) 來厲(래려) 億喪貝(억상패)
躋于九陵(제우구릉) 勿逐(물축) 七日得(칠일득)
우레가 울리면 위태하다.
재물을 잃을까 염려해 구릉에 오른다.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
象曰 震來厲(진래려) 乘剛也(승강야)
진래려는 강을 올라탔기 때문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다.
유약한 六二는 진동(震動)의 주효인 초구를 올라타고 있어서 위태롭다.
初九가 격분해서 나아오면 감당할 수가 없고 두려워서 실도(失道)하기 쉽다.
상전에도 우레가 울리면 위태함은 강을 올라탔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二는 중정(中正)한 도를 잃지 않고자 구릉으로 몸을 피하여 자신의 도를 지킨다.
六二가 중정(中正)한 도(道)를 귀히 여기고
그 도를 지키면 재물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잃은 것을 쫓지 않고서 평상을 회복하는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
하나의 효사를 하루로 보면 6효사의 주역괘를 순환해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중정(中正)한 도를 지키면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때가 되면 회복된다.
六二가 효변하면 뇌택귀매(雷澤歸妹)이다.
정도로 유순하게 시집가지 않고 기쁨을 좇아서 부정하게 시집가는 때이다.
九二는 애꾸눈이 능히 보는 것과 같다.
유인(幽人)과 같이 바르게 하면 이롭다.
위의 정응이 올바른 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나아가서 공(功)을 이룰 수가 없다.
차라리 칩거하여 유인(幽人)과 같이 굳게 올바름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六三] 震(진) 蘇蘇(소소) 震行(진행) 无眚(무생)
우레가 울려서 망연자실하다.
움직여서 행하면 재앙이 없어진다.
象曰 震蘇蘇(진소소) 位不當也(위부당야)
진소소는 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진(震)의 극(極)에 처했다.
유약한 六三이 양위(陽位)에 있어서 위(位)도 부당한데
또한 진동의 극(極)에 처했으니 더욱 편안하지 못하다.
위로 나아가면 올바른 위(位)를 얻기 때문에 재앙을 면할 수 있다.
六三은 初九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때 위로 움직여서 나아가야 화를 면한다.
유약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은 우레가 울리니
두려워서 얼이 빠지고 망연자실해서 움직여서 나아가지 못한다.
나아가면 재앙이 없어진다.
상전에서도 우레가 울려서 망연자실한 것은 위(位)가 부당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六三이 효변하면 뇌화풍(雷火豊)이 된다.
번개와 우레가 함께 풍성함을 성취한다.
밝은 덕으로 나아가면 형통하게 된다.
그러나 다사다난하기가 쉬워서
해가 중천에 떠서 두루 천하를 비추듯이 살펴야 형통할 수 있다.
九三은 그 장막이 풍성해서 한낮에 이름 없는 작은 별을 본다.
오른팔이 부러졌지만 허물할 데가 없다.
과강한 九三은 정응 六三에게 나아가도
上六은 진(震)과 풍(豊)의 극이자 마침에 있어서 더불어 풍(豊)을 이룰 수 없다.
마치 오른팔이 부러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九四] 震(진) 遂泥(수니)
우레가 수렁에 빠진다.
象曰 震遂泥(진수니) 未光也(미광야)
진수니는 빛나지 못함이다.
九四는 상하 네 음효들 사이에 빠져있다.
또한 외호괘(3-5효)와 내호괘(2-4효) 둘을 살피면
감(坎)과 간(艮)으로 수산건(水山蹇)이다.
九四를 중심으로 상하 두 음효들을 하나의 음효로 보면 하나의 큰 감(坎)이 된다.
이중으로 험난함 속에 빠진 상이다.
원래 九四는 상괘 진동(震動)의 주체이지만,
중(中)을 얻지 못하고 양(陽)이 음위(陰位)에 있어 정(正)도 얻지 못하고
이중으로 험난함 속에 빠져있어서 마치 수렁에 빠진 꼴이다.
상전에서도 우레가 수렁에 빠진 것은 빛나지 못함이라고 하였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뢰복(地雷復)이 된다.
오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잃었던 것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절망적인 동지에 하나의 양이 움트는 것이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허물이 없다.
六四는 무리와 함께 가다가 홀로 회복한다.
六四는 위(位)가 바르고 복(復)의 주효 初九와 정응이기 때문에
상하의 네 음효들과 더불어 가다가 홀로 돌아와서 도(道)를 회복한다.
[六五] 震(진) 往來(왕래) 厲億(려억) 无喪有事(무상유사)
우레가 가고 온다.
위태하니 잘 헤아려서 일을 망침이 없게 하라.
象曰 震往來厲(진왕래려) 危行也(위행야)
其事在中(기사재중) 大无喪也(대무상야)
진왕래려는 행함이 위태함이요 그 일을 중도로 하니 크게 잃음은 없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을 가진 군주이다.
아래에 정응도 없고 아래에 양강(陽剛)한 九四를 올라타고 있어서 위태롭다.
六五는 위로 가려 해도 자질이 음유해서 진동의 극한에 편안히 머무를 수 없고
아래로 내려가려 해도 양강한 九四를 범하게 되므로 위태하다.
그러므로 위태로움을 잘 헤아려서 두려워하고 중도(中道)를 지켜야 한다.
비록 위(位)가 바르지 못하나 중(中)을 얻었기 때문에 중도를 지킬 수 있다.
주역에서는 항상 정(正)보다 중(中)이 더 중요하다.
정을 얻어도 흉할 수 있지만, 중을 얻으면 길하다.
그래서 위태롭지만 잘 헤아려서 일을 망치지 않도록 경계하였다.
특히 六五는 유약한 음효이기 때문에 그 뜻을 변함없이 굳게 지키기 어렵다.
그러나 중용의 덕을 잃지 않으면,
비록 위태롭다 하더라도 크게 잃는 것은 없는 법이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뢰수(澤雷隨)가 된다.
높은 곳의 귀한 양이 자신을 낮춰서 낮은 음에게 오니 음이 기뻐하면서 따른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면 남도 자기를 따르게 된다.
九五는 중정한 군주로서 아름다움에 성신(孚)으로 하니 길하다.
그 덕이 아름다워서 두루 믿음을 얻는다.
[上六] 震(진) 索索(삭삭) 視矍矍(시확확) 征凶(정흉)
震不于其躬(진불우기궁) 于其鄰(우기린) 无咎(무구) 婚媾有言(혼구유언)
우레가 흩어져서 두리번거린다. 나아가면 흉하다.
우레가 자기 몸에 이르지 않고 그 이웃에 이르면 허물이 없다.
혼구에게 원망을 듣는다.
象曰 震索索(진삭삭) 中未得也(중미득야)
雖凶无咎(수흉무구) 畏隣戒也(외린계야)
진삭삭은 중을 얻지 못함이고
비록 흉하나 허물이 없음은 이웃의 일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上六은 진(震)의 극(極)이자 마침에 있다.
上六은 음유한 자질로 진동의 극한에 처해서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심해서 불안하여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진(震)의 종극에 이르렀기 때문에 곧 변(變)하는 것이 이치인데
더 나아가면 반드시 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비록 우레가 내 몸에 맞지는 않았지만 가까이에 미쳤을 때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극한에 이르지 않아서 허물은 면할 수 있다.
상전에도 우레가 흩어졌는데 두리번거리는 것은 중(中)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고
비록 흉하지만 허물이 없는 것은
이웃의 재앙을 보고 두려워 경계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극한에 이르지 않고 개과천선하면 화를 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우레를 맞은 가까운 이에게서 원망의 말은 들게 된다.
上六의 효사를 해사(該事)해서 점사들로 간주하고
별개로 보고 나누어서 해설할 수도 있다.
상육이 효변하면 화뢰서합(火雷噬嗑)이다.
입속에 이물이 있으면 씹기가 힘들 듯이,
악인이 천하의 화합을 가로막고 있어서 그 악인을 다스리는 순간이다.
계사전에 上九는 죄악이 쌓여 가릴 수가 없고,
죄가 커서 용서할 수가 없는 자라고 했다.
높은 자리에서 안하무인이기 때문에
죄를 범하고도 뉘우침이 없는 다루기 힘든 죄인이다.
고로 上九는 형틀을 목에 씌워서 밝지 못한 그 귀를 상(傷)하게 하므로 흉하다.
52. 간위산(艮爲山), 중산간(重山艮)
그쳐야 할 때 그치더라도, 나아가야 할 때가 되면 나아가라
욕망의 그침
괘사(卦辭)
‘간’(艮)은 그치다, 견실하다, 산을 뜻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침이 아니라 산과 같이 안정되고
성실하게 스스로 위에 그쳐서 편안하게 거처함이다.
간(艮)은 산, 손, 소남, 귀신, 제사, 머무름, 그침(止), 여우, 소로, 동북을 의미한다.
동(動)과 정(靜)은 그 때가 중요하다.
멈춰야 할 때 멈추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면 그 도(道)가 크게 빛난다.
그쳐야 할 때 그침은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고
그쳐야 할 때에 그치지 못함은 그 이치를 모르거나
알면서도 욕심에 그치지 못함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자신의 분수(位)를 벗어나지 않는다.
간위산(艮爲山)은 서로 등지고 있어서 서로를 볼 수 없다.
거듭 그쳐서 머무르기 때문에 소통도 어렵다.
지게를 짊어지면 그 등을 볼 수 없듯이 욕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등에서 그침은 그쳐야 할 마땅한 위치에 그치는 것이다.
합당한 위치를 얻으면 편안하고 합당한 위치를 잃게 되면 혼란하다.
간(艮)은 정지된 상태로 조화가 없다.
6효사들 모두 상응이 없고 음은 음과 양은 양과 등지고 있다.
효사(爻辭)
[初六] 艮其趾(간기지) 无咎(무구) 利永貞(이영정)
그 발꿈치에 그침이다. 허물이 없다. 오래 바르게 함이 이롭다.
象曰 艮其趾(간기지) 未失正也(미실정야)
간기지는 바름을 잃지 않음이다.
初六은 가장 아래에 있어 발꿈치인 셈이다.
발꿈치에 그침은 움직임의 시초에 멈추는 것이다.
시초에 그치면 그치기 쉽고, 바름을 잃지 않은 것이다.
상전에도 발꿈치에 그침은 바름을 잃지 않음이라 했다.
初六은 음효가 양위(陽位)에 있기 때문에 사심에 이끌려서 나아가기 쉽다.
그러나 나아가면 정도를 잃는 것이다.
그 뜻을 굳게 지키기 어려워서 오래토록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경계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산화비(山火賁)가 된다.
그 발을 꾸민다.
수레를 버리고 걸어서 간다.
[六二] 艮其腓(간기비) 不拯其隨(부증기수) 其心不快(기심불쾌)
그 장딴지에 그침이다.
구원하지 못하고 따른다.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象曰 不拯其隨(부증기수) 未退聽也(미퇴청야)
부증기수는 물러나서 듣고 따르지 않음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다.
위의 六五는 정응이 아니고 九三은 친비이다.
初六이 발꿈치면 六二는 그 위의 장딴지이다.
六二는 중정하기 때문에 간(艮)의 그치는 도(道)를 얻었지만
군주와 정응이 아니므로 신임을 얻지 못했다.
친비인 九三은 하괘의 윗자리로 간(艮)의 주효이고
상하의 네 음효들 사이에 빠져 있다.
그러나 九三은 그침이 지극해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험난함 속에 머물러 있다.
중정한 六二는 위태로운 九三을 구하고 싶지만
상전에서 말했듯이 九三은 六二의 조언에 귀 기울여 따르지 않는다.
비록 六二의 허물은 아니지만
九三을 구원하지 못하고 따르기 때문에 심기가 편안치 못하다.
六二가 효변하면 산풍고(山風蠱)가 된다.
어미의 일을 주관함이다.
너무 바르게만 할 수는 없다.
엄정하게 잘못을 바로 잡으려다가 모자의 정(情)을 상하기 쉽다.
[九三] 艮其限(간기한) 列其夤(열기인) 厲薰心(려훈심)
그 허리에 그침이다.
그 등뼈를 벌림이다.
위태하여 애가 탄다.
象曰 艮其限(간기한) 危薰心也(위훈심야)
간기한은 위태해서 애가 타는 것을 뜻함이다.
九三은 하괘 간(艮)의 주효이다.
상하괘의 경계에 위치한 九三은, 인체로 보면 허리와 같다.
九三은 간(艮)의 극(極)에 처했고 내호괘(2-5 효사)가 감(坎)의 험난함 속에 빠져 있다.
상하 네 음효들의 중간에 처해서 두 음효를 하나로 보면 이것도 일종의 큰 감(坎)이다.
따라서 이중으로 험난함 속에 빠져 있다.
위의 두 음효들과 아래 두 음효들 사이를 갈라놓고
화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마치 허리가 몸통과 하지를 나눔과도 같다.
九三은 위로 정응도 없고 이중으로 험난함 속에서 빠져서 그쳐 있으니
마치 등뼈를 벌려놓은 것과 같이 위태로워서 마음이 타는 듯하다.
간(艮)은 머무를 때 머무르더라도
나아갈 때에는 나아가서 그 때를 잃지 않음에 참뜻이 있다.
상전에도 진퇴를 못하고 허리에 그쳐 있어서 위태하여
마음이 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九三이 효변하면 산지박(山地剝)이다.
깎는 허물이 없다.
군자인 정응 上九의 응원에 힘입어 홀로 깎는 허물이 없다.
[六四] 艮其身(간기신) 无咎(무구)
그 몸에 그침이다. 허물이 없다.
象曰 艮其身(간기신) 止諸躬也(지저궁야)
간기신은 자기 몸에만 그침이다.
六四는 상괘 간(艮)의 가장 아래에 있고 하괘를 지났기 때문에 몸통이라 했다.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이 바르지만, 음효로서 유약하고 재능이 부족하다.
대신이란 높은 지위에 있지만 정응도 없고 위로 양강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서
그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만 바르게 그쳐서 자기 몸에만 그쳤다고 했다.
그러나 六四는 위(位)가 바르고 괘의 중간을 지나서 하괘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비록 대신으로서 간(艮)의 도(道)를 널리 펼치지는 못하고
자기만 바르게 그쳤기 때문에 겨우 허물만 면한다.
六四가 효변하면 화산려(火山旅)이다.
여행을 함에 머무를 숙소도 여비와 도끼도 얻었지만 그 마음이 유쾌하지는 못하다.
[六五] 艮其輔(간기보) 言有序(언유서) 悔亡(회망)
그 뺨에 그침이다. 말에 조리가 있다.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象曰 艮其輔(간기보) 以中正也(이중정야)
간기보는 중도로써 바르게 하는 것이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용의 덕이 있는 군주다.
상괘의 중(中)으로 몸통을 지나서 얼굴의 뺨에 그쳐서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삼가고 말이 조리가 있어서 이치가 정연하다.
위(位)가 바르지 않아서 후회할 일이 있을 것 같지만,
중(中)을 얻어 진중히 말하기 때문에 실언해서 후회할 일은 없다.
상전에서도 그 뺨에 그침은 중(中)을 얻어서 바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 그침의 도(道)를 이룸에 있어서 무엇보다 삼가야 할 것은 곧 언행(言行)이다.
언행을 바르게 삼가면 후회할 일이 없다.
六五가 효변하면 풍산점(風山漸)이 된다.
기러기가 점점 언덕에 나아간다.
여자가 3년이 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한다.
마침내 이기지 못하니 길하다.
[上九] 敦艮(돈간) 吉(길)
돈독(敦篤)하게 그친다. 길하다.
象曰 敦艮之吉(돈간지길) 以厚終也(이후종야)
돈간길은 후덕함으로 마침이다.
上九는 간(艮)의 극(極)에 있어서 그침이 지극하다.
비록 上九는 그침의 마침에 있지만
음위(陰位)에 있어 지나침이 없기 때문에 그침이 돈독(敦篤)하다.
上九는 강실(剛實)로서 위에 있고 간(艮)의 주체이다.
또 간위산(艮爲山)의 마침에 있어 그침의 공(功)을 이룬다.
항상 상괘가 간(艮)인 경우에 上九는 길하다.
그래서 여섯 효사들 중에서 홀로 길하다 했다.
상전에도 돈독하게 그침은 그 마침을 후덕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흔히 굳게 지키다가도 끝에 가서 지키지 못하기 쉽지만
上九는 마침임에도 두텁고 후덕하게 그침을 지킬 수 있어서 길한 것이다.
上九가 효변하면 지산겸(地山謙)이 된다.
겸손을 울리니 군사를 부림이 이롭다.
유순함과 겸손함이 과해서 결국 군사를 부려서 정벌하지만 마침내 이롭다.
53. 풍산점(風山漸)
너무 성급히 진행하지 말고 때와 질서에 어긋남이 없이 점진적으로 하라
점진적으로 나아가라!
괘사(卦辭)
‘점’(漸)은 점점 나아감, 때와 질서에 맞게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괘상은 손상간하(巽上艮下)이다.
손(巽)은 바람, 나무, 닭, 장녀, 허벅지, 시장, 장사, 들어감(入).
줏대 없음, 의심, 공손함을 뜻하고
간(艮)은 산, 개, 소남, 손, 귀신, 제사, 성실, 그침(止), 머무름을 뜻한다.
점(漸)은 산 위의 나무가 점점 자라난다.
안으로 그쳐서 머무르고 밖으로는 공손히 따른다.
천지비(天地否)에서 건곤(乾坤)의 九四와 六三이 서로 자리를 바꿈으로써
풍산점(風山漸)에서 손간(巽艮)의 六四와 九三이 된다.
기러기는 남녀 간의 이별과 정절을 상징하는 철새이다.
기러기는 그 때를 잘 알아서 정확히 오고 간다.
무리를 이루어 질서정연하게 점진적으로 날아간다.
점(漸)의 효사는 기러기의 상(象)을 취했다.
점(漸)은 여자가 시집감이 길하나 바르게 해야 이롭다.
여자가 안으로 그쳐서 안정하고 밖으로 공손히 따르면
나아감에 때와 질서에 어긋남이 없다.
이처럼 점진해서 시집가면 이롭고 욕심으로 조급히 나아가면 곤궁하게 된다.
효사(爻辭)
[初六] 鴻漸于干(홍점우간) 小子厲(소자려) 有言(유언) 无咎(무구)
기러기가 점점 물가로 나아간다.
소자가 위태해서 말이 있다. 허물은 없다.
象曰 小子之厲(소자지려) 義无咎也(의무구야)
소자의 위태함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
初六은 점(漸)의 시작이지만,
위(位)도 바르지 못하고 음효로 유약하고 위에는 정응도 없다.
양위(陽位)에 있어 나아가고 싶은 뜻은 있지만
재능도 없고 위에서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위태하다.
점(漸)은 점진적으로 나아감을 그 의(義)로 삼기 때문에,
상전에서도 初六이 점진하는 것은 의리상 허물은 아니라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풍화가인(風火家人)이다.
가도를 세워서 방비하면 후회가 없다.
[六二] 鴻漸于磐(홍점우반) 飮食衎衎(음식간간) 吉(길)
기러기가 점점 반석에 나아간다.
먹고 마심이 즐겁고 길하다.
象曰 飮食衎衎(음식간간) 不素飽也(불소포야)
음식간간은 배부르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현인이다.
위로 강건하고 중정한 군주인 九五와 정응이다.
강건한 군주를 얻어서 등용되고 봉록(俸祿)을 받는다.
마치 반석 위에 편안히 거하며 먹고 마시는 것과 같다.
六二는 중정한 덕으로 응함으로 그쳐서 안정을 취하며
순하게 九五를 따르기 때문에 길하다.
그러나 편히 머무르며 먹고 마시는 것은 그저 안주하여 배불리는 것이 아니라
덕을 길러서 천하를 편안케 하기 위함이다.
상전에서도 먹고 마심이 즐거운 것은 헛되이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손위풍(巽爲風)이다.
겸손해서 평상아래 있다.
성신(誠信)을 다해서 사(史)와 무(巫)를 성대히 쓰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九三] 鴻漸于陸(홍점우륙) 夫征不復(부정불복)
婦孕不育(부잉부육)凶(흉) 利禦寇(이어구)
기러기가 점점 뭍에 나아간다.
아비는 나아가면 돌아오지 않고, 어미는 잉태하더라도 기르지 못해 흉하다.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
象曰 夫征不復(부정불복) 離群醜也(이군추야)
婦孕不育(부잉불육) 失其道也(실기도야)
利用禦寇(이용어구) 順相保也(순상보야)
부정불복은 무리를 떠나서 추하고 부잉불육은 그 도를 잃음이고
이용어구는 순리대로 서로 보존함이다.
九三은 성품이 바르지만 간(艮)의 극(極)에 있다.
上九는 정응이 아니고 六四는 친비이다.
九三과 六四는 둘 다 정응이 없다.
九三은 양(陽)으로 위로 나아가고 싶지만 위에서 응원하는 이가 없다.
정도를 지켜 때를 기다려야 하지만, 六四에 대한 욕심에 나아가려 한다.
그러나 정도가 아니므로
비록 부정하게 六四와 합을 이뤄서 아이를 잉태해도 기를 수 없다.
九三은 머무르는 간(艮)의 극에 있는데도 머무르지 않고
하괘를 버리고 六四에게 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어미가 잉태해도 키우지 못해 흉하다.
도적은 음사(陰邪)한 六四이다.
점(漸)의 효사는 선(善)하지 않음이 없는데,
유독 九三만 실도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상전에도 정도를 잃지 말고 도적을 막아서
이치에 맞게 순하게 서로 보존하라고 경계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풍지관(風地觀)이다.
나의 생(生)을 관하여 나아가던지 물러나던지 하라.
[六四] 鴻漸于木(홍점우목) 或得其桷(혹득기각) 无咎(무구)
기러기가 점점 나무에 나아간다.
혹 평평한 가지를 얻으면 허물이 없다.
象曰 或得其桷(혹득기각) 順以巽也(순이손야)
혹득기각은 순하고 공손함이다.
六四는 유순하고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六四는 음유해서 재능은 부족하더라도 상괘 손(巽)의 주효이고
성품이 바르기 때문에 군주 九五를 공손히 따를 수 있고 허물을 면한다.
그러나 아래에 과강한 九三을 올라타고 있어서 위험하기 때문에
스스로 편안할 방법을 구해야 허물을 면한다.
기러기는 발의 물갈퀴 때문에 나뭇가지를 움켜쥘 수 없어서
평평한 가지를 구해야 편히 머무를 수 있는 것과 같다.
상전에도 평평한 가지를 얻음은 六四가 순(順)하고 공손(巽)하기 때문이라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산돈(天山遯)이다.
九四는 좋은 것을 두고도 물러난다.
사적인 정(情)에 매이지 않고 응을 두고 물러나는 것이다.
군자는 길하고 소인은 흉하다.
[九五] 鴻漸于陵(홍점우릉) 婦三歲不孕(부삼세불잉) 終莫之勝吉(종막지승길)
기러기가 점점 언덕에 나아간다.
여자가 3년이 되도록 잉태하지 못한다.
마침내 이기지 못하니 길하다.
象曰 終莫之勝吉(종막지승길) 得所願也(득소원야)
종막지승길은 그 원하는 바를 얻음이다.
九五는 양강하고 중정(中正)한 군주요 남편이다.
아래의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현인이자 부인 六二와 정응이다.
가장 높은 언덕인 군위(君位)에 올랐다.
하지만 六二의 친비인 九三과 九五의 친비인 六四의 방해 때문에
3년이 되도록 만나지 못하고 아이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만나게 되고 길하게 된다.
상전에서도 마침내 이기지 못해서 길함은 그 원하던 바를 얻음이라 했다.
九五를 효변하면 간위산(艮爲山)이다.
그 뺨에 그친다. 말에 조리가 있어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上九] 鴻漸于陸(홍점우규) 其羽(기우) 可用爲儀(가용위의) 吉(길)
기러기가 점점 허공에 나아간다.
그 깃털이 모범이 될 만하다. 길하다.
象曰 其羽可用爲儀吉(기우가용위의길) 不可亂也(불가란야)
기우가용위의길은 어지럽힐 수 없음이다.
上九는 점(漸)과 손(巽)의 극(極)이자 마침에 있다.
上九는 아래에 정응이 없기 때문에 사적인 매임이 없다.
上九는 겸손하고 점진하는 미덕이 지극하고 음위에 있어서 과하지 않다.
上九의 점진하는 것에 절도와 질서가 있다.
마치 기러기가 머물던 곳을 떠나서 창공을 날 때
그 나는 모습이 질서정연한 것처럼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상전에서도 모범이 될 만한 것은 도(道)를 잃고 어지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수산건(水山蹇)이다.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크게 길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기 보다
돌아와서 대인(九五)을 만나서 함께 하면 이롭고 크게 길하다.
54. 뇌택귀매(雷澤歸妹)
더디게 가더라도 올바름을 지켜서 마땅한 짝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누이가 시집가다
괘사(卦辭)
귀매(歸妹)는 시집가는 것을 뜻한다.
귀매는 젊은 여자가 나이든 남자를 쫓아 시집가는 것이다.
괘상은 풍산점을 뒤집은 진상택하(震上澤下)이다.
진(震)은 우레, 장남, 발, 봄, 용, 제후, 장수, 움직임, 격분해 나아감을 뜻하고
택(澤)은 연못, 소녀, 입, 첩, 양, 구설, 수다, 은둔, 구멍, 무당, 기쁨을 뜻한다.
진(震)은 장남이고 태(兌)는 소녀이니, 아래의 소녀가 위의 장남을 움직여서 시집간다.
안으로 기쁘고 밖으로 진동한다.
우레가 연못 위에 진동하므로 아래 연못의 물이 기쁘게 쫓는다.
귀매는 항(恒)이나 점(漸)처럼 바르고 유순히 시집을 가지 않고 부정하게 동(動)한다.
택산함(澤山咸)은 젊은 남녀의 감응을,
뇌풍항(雷風恒)은 중년 남녀의 감응을,
풍산점(風山漸)은 바르게 시집감을,
뇌택귀매(雷澤歸妹)는 부정하게 시집감이다.
기쁨으로 동(動)하면 올바름을 잃게 된다.
初九와 上六을 제외하고는 九二에서 六五까지 위가 바름을 얻지 못했다.
초구와 상육도 양(陽)이 아래에 음(陰)이 위에 있기 때문에 바른 것은 아니다.
또 六三과 六五는 모두 유(柔)가 강(剛)을 타고 있어서 위태하고 이로움이 없다.
효사(爻辭)
[初九] 歸妹(귀매) 以娣(이제) 跛能履(파능리) 征吉(정길)
귀매에 첩으로 간다.
절름발이가 능히 걷는다. 나아가면 길하다.
象曰 歸妹以娣(귀매이제) 以恒也(이항야)
跛能履吉(파능리길) 相承也(상승야)
귀매이제는 항구한 덕으로 함이요 파능리길은 서로 공경하는 것이다.
初九는 귀매(歸妹)의 시작이다.
가장 미천한 初九는 정응도 없어 첩이라 했다.
태(兌)에도 첩의 상이 있다.
소녀가 정실을 따라가는 제(娣) 혹은 잉첩(媵妾)으로 시집간다.
初九는 위(位)가 바르기에 성품도 바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스스로 낮춰서
마치 절름발이가 뒤를 쫓아서 걷듯이 나아가면 길하다.
상전에서도 누이동생을 첩으로 시집보냄은 항구함을 얻기 위함이고
절름발이가 걷듯이 나아가면 길함은 서로 공경하기(承) 때문이라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뇌수해(雷水解)이다.
해(解)의 시작으로서 비록 음유하고 위(位)가 바르지 못하지만
위의 정응 九四와 친비 九二가 도와주기 때문에
그 나아감에 있어서 의리상 허물이 없어진다 했다.
[ 九二 ] 眇能視(묘능시) 利幽人之貞(이유인지정)
애꾸눈이 능히 보려함이다.
유인의 올바름이면 이롭다.
象曰 利幽人之貞(이유인지정) 未變常也(미변상야)
이유인지정은 상도를 변하지 않는 것이다.
九二는 강명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부인이다.
九二는 六五와는 정응으로 六五의 정실부인이다.
그러나 남편 六五는 성품이 바르지 못한 음유한 남편이다.
九二가 스스로 나아가 내조의 공(功)을 이룰 수 없고,
차라리 유인(幽人)과 같이 칩거해서 정도를 지킴이 이롭다.
상전에도 유인의 바름이 이로움은 상도를 변치 않음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진위뢰(震爲雷)이다.
우레가 울리면 위태하다.
재물을 잃을까 두려워서 구릉에 오른다.
쫓지 않아도 7일이면 다시 얻게 된다.
[六三] 歸妹(귀매) 以須(이수) 反歸以娣(반귀이제)
귀매에 기다린다. 돌아와서 첩으로 간다.
象曰 歸妹以須(귀매이수) 未當也(미당야)
귀매이수는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성품이 바르지 못하면서 태(兌)의 극(極)에 처했다.
六三은 정응이 없다.
六三은 태(兌)의 주효이자 극(極)이기 때문에 기
쁨이 지극해서 쾌락을 좇아서 시집가기를 구하여 동(動)하기 때문에 정숙하지 못하다.
정응이 없어서 마땅히 혼처가 없으면 올바름을 지켜서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六三은 하괘의 윗자리로 천한 여자도 아니지만
양위(陽位)에 있어서 성품이 바르지 못하여 나아가고 싶은 뜻만 강한고
그 뜻을 굳게 지키지 못한다.
그래서 돌아와 쾌락을 좇아서 첩으로 시집간다.
상전에서도 시집보내려고 했지만 기다려야했던 것은
마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三은 지위와 덕, 예법 모두 부당하기 때문에 배필로 맞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위태로움에 정실로 시집가기를 포기하고
쾌락과 안위를 구하여 첩으로 시집간다.
六三이 효변하면 뇌천대장(雷天大壯)이 된다.
왕성한 기세만 믿고 힘으로 밀어붙인다.
마치 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서 뿔이 걸린 형국으로
이와 같은 도를 고집하면 위태하다.
[九四] 歸妹(귀매) 愆期(건기) 遲歸有時(지귀유시)
귀매에 혼기를 넘겼다.
더디게 시집가는 것은 그 때가 있기 때문이다.
象曰 愆期之志(건기지지) 有待而行也(유대이행야)
혼기를 넘김은 기다려 행함이다.
九四는 初九와 정응이 아니고 친비 六五는 九二와 정응이다.
마땅한 짝이 없어 혼기를 놓쳤다.
九四는 대신의 지위에 있어서 높은 지위의 여자인데 정응이 없어 시집가지 못했다.
상전에도 혼기가 지남은 마땅한 짝을 기다린 때문이라고 했다.
바름을 굳게 지켜 기다리면, 때가 오게 되고 다소 늦게라도 좋은 짝을 만난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택림(地澤臨)이다.
지극하게 임(臨)하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六五] 帝乙歸妹(제을귀매) 其君之袂(기군지몌)
不如其娣之袂良(불여지제지몌양) 月幾望(월기망) 吉(길)
제을의 귀매이다.
소군(妹)의 옷치장이 그 첩(娣)의 옷치장 좋음만 못하다.
달이 거의 보름이다. 길하다.
象曰 帝乙歸妹不如其娣之袂良也(제을귀매불여기제지몌양야)
其位在中(기위재중) 以貴行也(이귀행야)
제을귀매는 그 위가 중에 있어서 귀히 행함이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황제 제을의 누이동생이다.
아래의 九二와 정응으로서 왕녀가 제후에게 하가(下嫁)하는 것이다.
황제가 신분이 낮은 변방 제후에게 누이동생을 결혼시켜 나라의 평안을 구한다.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어서
왕녀(소군)의 치장이 따라서 가는 첩(娣)의 치장보다 화려하지 않다.
六五는 겸손해서 불필요한 장식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으면 달이 보름에 가깝더라도 가득 차지 않아서 길할 수 있다.
음(陰)이 가득 차게 되면 양(陽)과 대적하기 때문에 흉하게 된다.
상전에도 六五의 길함은 중(中)을 얻어서 귀(貴)함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태위택(兌爲澤)이다.
위의 上六이 속마음을 감추고 감언이설로 깎는데도 방심하고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다.
[上六] 女承筐无實(여승광무실) 士刲羊无血(사규양무혈) 无攸利(무유리)
여자가 광주리를 받들어도 실질이 없다.
남자가 양을 잡아도 피가 없다. 이로울 바가 없다.
象曰 上六无實(상육무실) 承虛筐也(승허광야)
上六이 실질이 없음은 빈 광주리를 받드는 것이다.
고대에는 남자는 희생물을 베어서 그 피로 제사 지내고
여자는 광주리에 채운 음식으로 제사를 모셨다.
上六은 여자가 시집을 갔지만 제사를 지낼 수가 없어서 마침이 없다.
광주리 안에 제물도 없고 양을 잡아도 피가 없다.
상전에도 실질이 없다 함은 빈 광주리를 받듦이라고 했다.
上六과 六三은 정응이 아니므로
제사를 모시는 정식 부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로움이 없다.
上六이 효변하면 화택규(火澤睽)이다.
어긋남의 극(極)으로 어긋나서 외롭다.
六三이 구혼하러 온 것이 올바른 것임을 뒤늦게 알아보고
결국 의심을 거두고 나아가서 화합한다.
55. 뇌화풍(雷火豊)
풍성한 때에는 탈도 많아서 밝게 두루 살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자화상
괘사(卦辭)
‘풍’(豊)은 풍부함, 성대(盛大)하다는 의미이다.
괘상은 진상리하(震上離下)이다.
진(震)은 우레, 장남, 발, 봄, 용, 제후, 장수, 움직임, 격분하여 나아가는 뜻이 있고
리(離)는 불, 해, 중녀, 눈, 꿩, 지혜, 화려함, 믿음, 무인, 무기, 달라붙는다는 뜻이 있다.
번개가 먼저 치고 우레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이 곧 풍(豊)이다.
안으로 밝은 지혜를 품고 밖으로 진동하기 때문에 성대함(豊)을 이룬다.
밝음으로 동(動)하면 그 동(動)함으로 형통함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풍성할 때 탈도 많아서 근심이 없게
해가 중천에 떠서 천하를 두루 비추듯이 살펴야 한다.
어진 왕이라야 그런 풍성함을 다스려서 크게 형통하게 할 수 있다.
달도 차면 기울고 해가 중천에 이르면 머지않아 기울게 되듯이,
풍성하면 조만간 그 풍성함이 줄어드는 때가 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풍성할 때 탈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군자는 옥사를 판결하고 형벌을 집행한다.
리(離)는 밝게 드러내는 것이고 진(震)은 위엄을 가지고 나아감이다.
옥사를 판결함에도 지혜롭고 위엄 있게 판결하고 집행해야 사람들이 그것에 순종한다.
효사(爻辭)
[初九] 遇其配主(우기배주) 雖旬(수순) 无咎(무구) 往(왕) 有尙(유상)
그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난다.
비록 대등하지만 허물은 없다. 나아가면 숭상받는다.
象曰 雖旬无咎(수순무구) 過旬災也(과순재야)
수순무구는 과하게 대등하면 재앙이 된다.
초구는 위(位)가 바르고 양강(陽剛)하고 리(離)의 아래에 있어서
지혜롭고 재능이 있으면서 성품이 바르지만 미천한 지위에 있다.
九四와는 정응이 아니다.
풍(豊)은 밝음(明)과 진동(震動)이 조화를 이루고
서로 도와야만 그 공을 이루기 때문에,
初九는 비록 같은 양효로서 정응은 아니지만 九四와 대등한 짝이 된다.
初九는 번개의 시초요, 九四는 우레의 시초이다.
初九는 밝음의 시작이고 九四는 진동함의 시작이기 때문에,
같은 덕(德)으로써 상응하여 서로 짝이 되는 것이다.
밝은 덕이 없으면 동하여 나아갈 수 없고, 동할 수 없으면 밝은 덕이 소용없다.
따라서 같은 덕(德)으로 대등하게 조화를 이루면 풍성하게 되고 곧 허물이 없다.
初九는 九四에게 나아가면 九四로부터 가상히 여김 받고 숭상받는다.
상전에서도 비록 대등하게 해도 허물이 없지만
과하게 대등하려고 하면 재앙이라고 하였다.
대등하더라도 서로를 숭상하고 자신을 낮추면 서로 의지하고 협력할 수 있지만
자신을 낮추지 않고 과하게 대등하고자 하고 자신의 이익을 구하면 재앙이 된다.
初九가 효변하면 뇌산소과(雷山小過)가 된다.
음이 무성해져서 평소보다 다소 지나친 순간이다.
따라서 작은 일에는 형통하겠지만 큰일에는 형통하지 못하다.
소과에는 높이 날지 않고 아래에 머무르는 것이 덕(德)인데,
初六은 양위(陽位)에 있고 위로 九四의 응원을 힘입어서
조급하게 날아가기 때문에 흉하다.
[六二] 豊其蔀(풍기부) 日中見斗(일중견두)
往得疑疾(왕득의질) 有孚發若 吉(유부발약 길)
그 거적이 풍성하다.
한낮에 북두칠성을 본다.
나아가면 의심과 질시를 얻는다.
성신을 다해서 그 뜻을 펼치면 길하다.
象曰 有孚發若(유부발약) 信以發志也(신이발지야)
유부발약은 신뢰로써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이다.
六二는 유순하면서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현인이다.
六二는 리(離)의 밝음의 주효이기 때문에, 총명하고 성품이 바른 현인이지만,
군주 六五와 같은 음효로서 정응이 아니다.
六二는 유약하고 우매한 군주를 만나서 자신의 밝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다.
마치 큰 거적으로 해를 가려서 한낮에도 북두칠성이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고 六五를 쫓아서 나아가면 도리어 의심과 질시를 받는다.
따라서 六二가 성신으로 뜻을 펼치면 의심이 사라지고 신임 받게 된다.
六二는 밝음의 주체이고 중정(中正)해서 진정으로 지혜롭지만,
六五는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움직일 수가 없다.
六二의 밝음만으로는 풍(豊)을 이룰 수 없다.
풍(豊)은 밝음과 움직임이 서로 협력해야 가능하다.
밝음의 공(功)을 잃고 어둡게 된 것을
밤에나 보이는 북두칠성을 한낮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상전에서도 성신(誠信)을 다해서 그 뜻을 펼치는 것은
신뢰(信)로써 뜻을 펼치는 것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뇌천대장(雷天大壯)이 된다.
군자의 세력이 자라서 왕성해지고
소인의 세력이 쇠퇴하는 때로 양이 자라서 음이 물러남이다.
그 왕성한 기세와 힘을 앞세우지 말고 자기 자신을 다스려
예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음이 바르다.
九二는 위로 유약한 군주를 모시기 때문에 굳게 바르게 해야만 길하다.
九二는 강유(剛柔)가 조화를 이루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어서 음유한 군주를 모시지만
시운을 잘 살펴서 그 처신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
[九三] 豊其沛(풍기패) 日中見沫(일중견매) 折其右肱(절기우굉) 无咎(무구)
그 장막이 풍성하다.
한낮에 이름 없는 작은 별을 본다.
그 오른팔이 부러졌다. 허물할 데가 없다.
象曰 豊其沛(풍기패) 不可大事也(불가대사야)
折其右肱(절기우굉) 終不可用也(종불가용야)
풍기패는 큰 일은 할 수 없음이고 절기우굉은 마침내 쓰일 수 없음이다.
九三은 리(離)의 극(極)에 있다.
九三은 위의 上六과 정응이다.
上六은 진(震)의 극(極)에 있어서 더 이상 동(動)하지 않기 때문에
上六과 함께 풍(豊)을 이룰 수 없다.
거적보다 큰 장막으로 덮은 것과 같다.
대낮에 깜깜해져서 북두칠성 뒤의 작은 별이 보일 만큼 六二보다 더욱 어둡다.
과강한 九三은 나아가도 오른팔이 부러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듯이
공을 이루지 못한다.
정응 上六은 음유한 자가 높은 지위에 있어서 공을 이룰 수 없다.
게다가 九三은 오른팔이 부러져서 쓰일 수 없으니
공을 이루지 못한 허물을 탓할 수 없다.
상전에도 그 장막이 풍성하면 큰일은 할 수 없음이고,
그 오른팔이 부러지면 마침내 쓰일 수가 없다고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진위뢰(震爲雷)이다.
우레가 연이어 온다.
우레 소리가 울리면 그 두려움을 간직하고
잘못은 없는지 자신을 살피고 반성하며 수신하는 때이다.
六三은 우레가 울리니 망연자실하다.
움직여서 나아가면 재앙을 면한다.
六三은 유약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한데
위태한 자리에 있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
[九四] 豊其蔀(풍기부) 日中見斗(일중견두) 遇其夷主(우기이주) 吉(길)
그 거적이 풍성하다.
한낮에 북두칠성을 본다.
그 대등한 주인을 만난다면 길하다.
象曰 豊其蔀(풍기부) 位不當也(위부당야)
日中見斗(일중견두) 幽不明也(유불명야)
遇其夷主(우기이주) 吉行也(길행야)
풍기부는 위가 부당함이고 일중견두는 어두워서 밝지 못함이요
우기이주는 길한 행함이다.
九四는 아래 初九와 정응이 아니고, 군주인 六五는 친비이다.
九四는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친비인 군주가 우매하기 때문에 六二와 같이,
마치 거적을 크게 둘러서 해를 가려 한낮임에도 북두칠성이 보일 정도로 어둡다.
비록 같은 양효로 정응은 아니지만, 아래의 초구에게 응하여 함께 나아가면 길하다.
初九는 밝음(明)의 처음이고 九四는 움직임(動)의 처음이니 서로 대등한 짝이다.
만약 初九와 九四가 동덕(同德)으로 화합하면 풍(豊)을 이룰 수가 있다.
대신인 九四는 비록 위(位)가 부당하지만 과강(過剛)하지 않아서
몸을 낮춰 아래의 초구에게 구하여 더불어 군주를 보필할 수 있고 길하다.
상전에서도 거적이 풍성한 것은 지위가 부당하기 때문이고
한낮에 북두칠성을 봄은 어두워서 밝지 못함이고
그 대등한 주인을 만남은 길하게 행함이라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화명이(地火明夷)이다.
군자가 자신의 지혜를 드러내면 해를 당한다.
다행히도 六四는 위(位)가 바르고 유순한 곤(坤)의 가장 아래에 있어
어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六四는 암군의 좌측 배로 들어가서
마음과 뜻을 얻어서 안심시킨 뒤에 문밖을 나서 달아난다.
[六五] 來章(래장) 有慶譽(유경예) 吉(길)
빛난 것을 오게 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고 길하다.
象曰 六五之吉(육오지길) 有慶也(유경야)
六五의 길함은 경사가 있음이다
六五는 풍(豊)의 주체요 진(震)의 주효이지만 음유하고 위(位)가 바르지 못하다.
아래 중정한 六二는 정응이 아니므로 풍(豊)을 이룰 수가 없다.
음유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해서 지혜로운 신하 六二가 나아와도 의심한다.
하지만 성신을 다하는 六二에 대한 의심을 풀고
나아오게 허용하면 경사와 명예가 있다.
六五의 길함은 六二를 등용하면 六二와 함께
다른 양강한 初九, 九三, 九四도 따라서 오게 되기 때문이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화혁(澤火革)이다.
변혁은 막힌 것을 통하게 만들고 바르게 하는 뜻이 있어 변혁이 성취되면 길하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때가 무르익은 뒤에 변혁하고
그 뒤에는 굳게 안정을 취해야만 길하다.
九五는 호랑이처럼 변해서 점을 쳐보지 않아도 신뢰를 얻는다.
九五는 중정한 덕이 있어 그 변혁함이
마치 호랑이가 털갈이 후에 무늬가 아름다운 것과 같이 분명하다.
[上六] 豊其屋(풍기옥) 蔀其家(부기가) 闚其戶(규기호)
闃其无人(격기무인) 三歲不覿(삼세부적) 凶(흉)
그 집을 풍성하게 하고 거적으로 가린다.
그 집을 엿보니, 사람도 없고 고요하기만 하다.
3년이 되도록 볼 수 없으니 흉하다.
象曰 豊其屋(풍기옥) 天際翔也(천제상야)
闚其戶闃其无人(규기호격기무인) 自藏也(자장야)
풍기옥은 하늘 높이 오른 것이고 규기호격기무인은 스스로 감추는 것이다.
上六은 풍(豊)과 진(震)의 극(極)에 있다.
음효가 풍성한 때에 높은 자리에 있어 욕심이 지나치다.
그 집을 풍성하게 하고도 다른 사람들이 볼까 싶어서 거적으로 가린다.
교만해서 외부와 단절하고 스스로 숨으니,
다른 사람과 친함이 없어서 사람을 볼 수 없고 고요하다.
풍(豊)은 과한 것을 경계하고 더불어 풍을 이룸을 그 덕(德)으로 한다.
괘의 종극은 변통이 있어야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변할 줄을 모른다.
上六은 음유해서 스스로 궁지를 벗어날 수가 없으니 흉하다.
上六이 효변하면 이위화(離爲火)이다.
上九는 밝은 지혜가 지극하고 양강하지만 음위(陰位)에 있어서 과강하지 않다.
왕이 군사를 부리면 기쁨이 있고 나아가서 두목을 죽이더라도
부하들은 살려주는 관용을 베풀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56. 화산려(火山旅)
인생의 여로에서 옹졸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덕을 잃지 말라
삶은 여행 중
삶은 여행과 같다고 한다.
여행은 불안정한 상태의 연속이다.
상이한 힘들이 교차하고 서로 다른 윤리들이 좌충우돌한다.
여기에 고정된 가치나 절대적인 척도는 없다.
그러니 인생길은 유목일 수밖에 없다.
화산려의 初六이 힘든 여행일 수밖에 없는 것은 처음 가보는 길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길은 처음 가보는 길이다.
다만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해지면 쉼 없이 갈 뿐이다.
왜냐하면 삶은 생생불식(生生不息)하며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하여 화산려의 정도(正道)는 이 우주적 길에 순응하는 것이다.
그러니 초행길이라 두려워 말고 길을 나서라.
그 길에서 창문 넘어 도망친 백 세 노인을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든든할 것 같다.
괘사(卦辭)
‘여’(旅)는 여행, 나그네, 거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는 뜻도 있다.
괘상은 뇌화풍(雷火豊)을 거꾸로 뒤집은 리상간하(離上艮下)이다.
리(離)는 불, 해, 눈, 밝음, 꿩, 지혜, 중녀, 무인, 무기, 화려함, 달라붙음을 뜻하고
간(艮)은 산, 개, 소남, 손, 제사, 그침(止), 마침(終), 성실, 그쳐서 머무르는 것을 뜻한다.
안으로 그쳐서 머무르고 밖으로는 밝게 처신하기 때문에 행동에 과함이 없다.
산은 그쳐서 머무르고 불은 활활 타올라 머무르지 않으니
서로 어긋나서 떠나는 것이 여행이다.
밝게 비춰서 바르게 머무르는 것이니 신중한 것이다.
군자가 산위에 불이 있는 여(旅)의 상을 살펴서 형벌을 내릴 때,
밝게 비춰서 신중히 형벌을 내리고 또 불이 타오를 때 머무르지 않음을 살펴서
죄인을 너무 오래 옥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고대의 여행은 멀리 타향으로 가기 때문에 위험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의지할 이가 없는 낯선 곳으로 여행하기에 교만하지 않고 올바름을 굳게 지켜
겸손히 행하고 양강한 대인의 도움을 받으면 화를 면할 수 있다.
밝은 지혜로 자신의 분수에 알맞게 시의 적절하게 그쳐야 하므로
여(旅)에는 시의(時宜)가 중요하다.
비록 만사가 시의 적절히 대처해야 하겠지만,
특히 여행 중에는 일정한 거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대처하기 어렵다.
그래서 다른 일보다 시의(時宜)가 특히 더 중요하다.
효사(爻辭)
[初六] 旅瑣瑣(여쇄쇄) 斯其所取災(사기소취재)
여행을 함에 비루하고 옹졸하다. 재앙을 자초한다.
象曰 旅瑣瑣(여쇄쇄) 志窮災也(지궁재야)
여쇄쇄는 뜻이 궁해서 재앙이 있다.
初六은 여(旅)의 시작이다.
九四와는 정응이다.
음유한 初六은 위(位)가 바르지 못하므로 성품이 옹졸하다.
성품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곤궁한 나그네의 처지가 되면,
옹졸하고 인색해서 자잘한 일에도 일일이 신경을 쓴다.
자잘하고 옹졸하게 굴게 되면 결국 화를 자초하여 남들로부터 멸시와 모욕을 당하게 된다.
상전에도 여행을 하는데 비루하고 옹졸하면 그 뜻이 궁색해서 재앙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여(旅)의 때 나그네가 이런 도로 행하면 비록 위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흉하다.
게다가 다른 괘와는 다르게 여(旅)에서는 九四가 대신의 지위도 아니고
상괘인 리(離)의 아래에 있다.
리(離)는 중간의 음효(陰爻)를 붙따르기 때문에,
初六을 구원해주지 않고 친비인 六五를 따른다.
初六이 효변하면 이위화(離爲火)가 된다.
타오르는 불이 연이어 있기 때문에 맹렬해지면
과열될 수 있어서 바르게 하고 유순한 덕을 기르면 길하다.
初九는 발걸음이 어지러워서 머뭇거린다.
공경하면 허물이 없다.
정응이 아닌데 위로 나아가다가 그것을 깨닫고 머뭇거린다.
정응도 아닌 九四에게 나아가지 말고 친비인 六二를 공경하고 붙따르면 허물이 없다.
[六二] 旅卽次(여즉차) 懷其資(회기자) 得童僕貞(득동복정)
여행을 함에 머무를 숙소도 얻었고, 여비도 넉넉하다. 동복의 올바름도 얻었다.
象曰 得童僕貞(득동복정) 終无尤也(종무우야)
득동복정은 마침내 허물이 없음이다.
六二는 간(艮)의 중을 얻어서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다.
여행을 하는데 편히 머무를 숙소도 구했고, 여도 충분하다.
게다가 충직한 어린 몸종도 얻어서 걱정거리가 없다.
하지만 나그네 신세에서는 재앙이나 위험 같은 화(禍)만 면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에
길하다 하지 않았다.
상전에도 동복의 올바름을 얻음은 마침내 허물이 없다고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화풍정(火風鼎)이다.
솥은 물질을 삶아서 날것을 익은 것이 되게 하고
딱딱한 것을 부드러운 것이 되도록 만든다.
솥은 새것을 취하는 도(道)이다.
九二는 솥에 음식물이 있다.
나의 짝에게 병이 있어서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면 길하다.
九二는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데
아래의 음사소인 初六이 정응도 아닌데 따르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했다.
[九三] 旅焚其次(여분기차) 喪其童僕貞(상기동복정) 厲(려)
여행을 함에 그 숙소가 불타고, 동복의 올바름을 잃어서 위태하다.
象曰 旅焚其次(여분기차) 亦以傷矣(역이상의)
以旅與下(이려여하) 其義喪也(기의상야)
여분기차는 또한 상함이고 나그네가 아랫사람을 그와 같이 대하므로 의리를 잃음이다.
九三은 과강하면서 간(艮)의 극(極)에 처했다.
九三은 上九와 정응이 아니고, 九四와도 같은 양효로 친비가 아니다.
여(旅)의 때에 유순하고 겸손해야 하는데 九三은 과강(過剛)하고 중용의 덕이 없어서
비록 하괘의 높은 지위에 있다 하여 자만한다.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아랫사람을 홀대하는 것이,
마치 머무를 숙소를 스스로 불사르는 것과 같고 어린 몸종의 바름을 잃음과 같다.
나그네가 과강해서 집과 같은 윗사람을 능멸하고
아랫사람인 동복을 홀대하면 위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상전에서도 그 숙소를 불태우면 또한 상(傷)하게 되고
아랫사람에게 그와 같이 대하면 의리를 잃는 것이라고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화지진(火地晉)이다.
해가 땅위로 솟아올라서 세상을 밝히듯이
군자가 수신하여서 밝은 덕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
六三은 무리가 믿고 따른다.
六三은 곤(坤)의 극(極)에 있어 유순하고 따름이 지극해서
아래의 初六과 六二가 믿고 따른다.
세 음효가 더불어 위의 명중(明中)한 六五를 따르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진다.
[九四] 旅于處(여우처) 得其資斧(득기자부) 我心不快(아심불쾌)
여행을 함에 거처를 구했고, 여비와 도끼를 얻었지만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象曰 旅于處(여우처) 未得位也(미득위야) 得其資斧(득기자부) 心未快也(심미쾌야)
여우처는 지위를 얻지 못함이요 득기자부는 유쾌하지 못함이다.
九四는 아래의 初六과 정응이고 위로 六五와 친비이다.
九四는 비록 중(中)을 얻지 못했지만
밝은 덕이 있는 상괘 리(離)에 있고 음위에 있어서 과강하지 않고 온유하다.
그래서 상하와 잘 어울려 여비와 도끼(도구, 권력) 모두 얻는다.
하지만 친비 六五도 양강(陽剛)하지 못하고,
아래 정응 初六도 옹졸하기 때문에 여(旅)의 도를 이루지 못한다.
게다가 여(旅)에서 六五는 군주의 지위를 잃었기 때문에
구사도 대신의 지위를 얻지 못한다.
그래서 상전에도 지위를 얻지 못해서 마음이 유쾌하지 못하다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간위산(艮爲山)이다.
동(動)과 정(靜)은 그 때를 잃지 않음이 중요하다.
그쳐야 할 때 그침은 자기 분수를 알기 때문이지만
그렇지 못함은 그 이치를 모르거나 욕심에 그치지 못함이다.
대신인 六四는 정응이 없고 위로도 양강한 군주를 만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만 바르게 그치기 때문에
그 몸에 그침이고 허물은 없다고 했다.
[六五] 射雉一矢亡(석치일시망) 終以譽命(종이예명)
활을 쏘아 한 번에 꿩을 잡았다. 마침내 명예와 복록을 얻는다.
象曰 終以譽命(종이예명) 上逮也(상체야)
종이예명은 위에 도달함이다.
六五는 리(離)의 중(中)을 얻어서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리(離)의 주효이자 여(旅)의 주효이다.
꿩을 쏘아서 한 번에 잡은 것은 밝은 덕이 있어서 명예와 복록(福祿)이 있다는 뜻이다.
유순하고 밝은 덕을 가지고 중용을 지키면, 상하가 모두 응한다.
나그네가 이런 덕으로 상하의 응함을 받으면 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六五는 군위(君位)에 있지만 여행 중에는 그 지위를 잃어서 군주가 아니다.
나그네는 편안한 거처를 잃은 곤궁한 순간을 뜻하지만
명예를 얻고 믿음을 얻어서 위아래로 두루 편안하게 되면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반대로 비록 여행 중이 아니라고 해도
서로 믿음이 없어서 편안함을 잃으면 나그네와 다름없다.
六五가 효변하면 천산돈(天山遯)이다.
아래로부터 음이 점점 자라나서 무성해져서 양이 거처하던 곳을 떠나서 물러난다.
비록 군자가 소인을 멀리해도 말씨나 태도를 험악하게 하지 않고 위엄을 보여서
소인들이 공경하게 해야만 해를 입지 않는다.
九五는 그 나아가고 물러남이 아름답고 길하다.
아래 六二와 함께 둘 다 중정(中正)한 덕으로써 응하니 그 진퇴(進退)를 알맞게 한다.
[上九] 鳥焚其巢(조분기소) 旅人(여인)
先笑後號?(선소후호도) 喪牛于易 凶(상이우이 흉)
새가 그 둥지를 불태운다.
나그네가 먼저 웃지만 뒤에는 울부짖는다.
소를 쉽게 잃어 흉하다.
象曰 以旅在上(이려재상) 其義焚也(기의분야)
喪牛于易(상우우이) 終莫之聞也(종막지문야)
나그네가 위에 있으니 그 의리가 불타게 되고
상우우이는 결국 듣고도 깨닫지 못함이다.
上九는 여(旅)의 극(極)에 있다.
정응은 없고 六五와는 친비하다.
上九는 양효로 리(離)의 극(極)이기 때문에 날아가는 새로 비유하였다.
上九는 응도 없고 극에 있어서 더 올라갈 곳도 없으니 갈 데가 없다.
마치 새가 둥지를 불태움과 같다.
여행 중에는 유순겸손(柔順謙遜)해야 하는데
높은 지위에 있다고 교만을 떨다가 그 거처를 잃는다.
나그네가 높은 지위에 있다고 기고만장하게 행하면 뭇사람의 질투를 받게 된다.
먼저는 웃다가 뒤에는 둥지를 불태워서 돌아갈 곳을 잃고는 울부짖는다.
유순한 소를 쉽게 잃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솔하게 소를 다루었다는 의미이다.
상전에서도 나그네가 위에 있으니
그 의리상 불타고 소를 쉬이 잃으니 마침내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뇌산소과(雷山小過)이다.
이때는 음이 무성해져 평소보다 다소 지나친 때이다.
따라서 작은 일은 형통하나 큰일에는 형통하지 못하다.
소과에는 높이 날지 않고 아래에 머무름이 길하다.
上六은 만나지 않고 지나친다.
날아가는 새가 떠나간다.
바로 이것이 재앙이다.
上六은 격분해서 나아가는 진(震)의 극에 있어 자칫 대과(大過)하기 쉽다.
그래서 정응인 九三을 만나지 않고 지나치고 날아가기 때문에
새가 떠나가니 그것이 곧 재앙이라고 했다.
57. 손위풍(巽爲風), 중풍손(重風巽)
지극한 겸손과 부드러운 도로 끊임없이 하면 결국 통하게 된다
공손함이 부른 개혁
괘사(卦辭)
‘손’(巽)은 겸손, 용납,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손(巽)에는 바람, 나무, 장녀, 닭, 동남(東南), 허벅지, 시장, 장사,
3배 이익, 시기, 의심, 줏대 없음, 공손함, 온화함, 파고들다 등의 의미가 있다.
손(巽)은 아래 음(陰)이 공손히 위의 두 양(陽)을 따르는 상이다.
손(巽)은 음괘(陰卦)로 계속 부드럽게 부는 산들바람이다.
겸손하게 끊임없이 온화하게 행하면 마침내 통(通)하게 된다.
손(巽)은 조금 형통하니 나아가면 이롭고 대인을 보면 형통하다.
상괘와 하괘의 두 양효들이 중을 얻어서 그 뜻을 행하고
아래의 음효들이 모두 손순(巽順)하게 위의 양(陽)들을 따르기 때문에
유약하지만 조금은 형통하다.
태(兌)는 형통하고 손(巽)은 조금 형통한 것은,
태(兌)는 양(陽)이 음(陰)을 이루지만 손(巽)은 음이 양을 이루기 때문이다.
잡괘전에서는 태(兌)는 음이 자신을 드러냄이고
손(巽)은 음이 엎드려서 파고드는 것이다.
태(兌)는 양이 자라지만 손(巽)은 음이 자라고,
태(兌)는 음(陰)이 밖에 있어서 온유하지만,
손(巽)은 음(陰)이 안에 있어서 본성이 부드럽다.
호원은 큰일은 강건한 덕과 과단성이 필요한데
손(巽)은 공손하고 순종하므로 크게 시행되지는 못해서 조금 형통하다 했다.
효사(爻辭)
[初六] 進退(진퇴) 利武人之貞(이무인지정)
나아갔다 물러난다. 무인의 올바름이 이롭다.
象曰 進退(진퇴) 志疑也(지의야) 利武人之貞(이무인지정) 志治也(지치야)
진퇴는 뜻을 의심하는 것이고 이무인지정은 뜻을 다스림이다.
初六은 손(巽)의 주효이다.
初六은 유약한 재질로 위(位)도 바르지 못하다.
또 손(巽)에는 줏대 없음, 의심이라는 뜻이 있다.
지나치게 겸손하고 줏대가 없고 의심이 많아서
늘 나아갔다가 물러났다 반복하기만 한다.
初六은 음유(陰柔)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해서
매사를 의심해서 진퇴에 굳은 의지가 없고 우유부단하다.
그러나 무인(武人)은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기 때문에, 굳은 의지가 필수적이다.
마치 무인의 올바름 같이,
그 뜻을 다스려서 굳게 바름을 지키면 의심을 떨치고 이롭다.
상전에도 나아가고 물러남은 그 뜻에 의심이 있음이고
무인의 올바름이 이로운 것은 그 뜻을 다스림이라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공손한 음 하나가 부드러운 도로 다섯 양들을 그쳐서 머무르게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한다.
初九는 정응인 六四에게 마음이 있어서
위로 나아가는 건(乾)의 정도를 잊고 머무르려 한다.
그러나 사적인 정에 매이지 않고 올바름을 회복하기 때문에
허물이 있을 수 없고 길하다.
[九二] 巽在牀下(손재상하) 用史巫紛若(용사무분약) 吉无咎(길무구)
겸손해서 평상 아래에 있다.
사(史)와 무(巫)를 쓰기를 성대히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象曰 紛若之吉(분약지길) 得中也(득중야)
성대히 해서 길함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九二는 양효로 강건하지만 음위(陰位)에 있어 중용(中庸)의 덕이 있다.
九五와 정응을 이루지는 못하고 아래 初六과는 친비이다.
九二는 강중(剛中)하기에 비록 과하게 겸손해서 평상 아래에 있다 해도 사심은 없다.
과손(過巽)함이 비록 바른 예법은 아니지만,
위의 九五와 같은 양효이기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게 신하의 예를 갖춰야만 한다.
사무(史巫)는 고대에 제사를 지낼 때 신명(神明)과 통하기 위한 사람들이다.
하늘의 뜻에 통하기를 정성을 다하듯이,
지성으로 겸손히 하면 군주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가 있고 길하다.
상전에도 九二가 사무(史巫) 쓰기를 성대하게 하면 길한 것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九二가 효변하면 풍산점(風山漸)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공손히 따르면
나아감에 때와 질서에 어긋남이 없어서 점진하기 때문에 곤궁할 것이 없다.
이때는 바른 도로 유순하게 점진적으로 시집가는 시절이다.
六二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九五와 정응이기 때문에
반석에 나아가서 먹고 마시는 것에 즐겁고 길하다.
[九三] 頻巽(빈손) 吝(인)
실수하고 다시 겸손하기를 자주 반복하니 궁색하다.
象曰 頻巽之吝(빈손지린) 志窮也(지궁야)
자주 겸손해서 인색함은 뜻이 궁색함이다.
九三은 손(巽)의 극(極)에 있다.
손(巽)의 때에 하괘의 윗자리에 있는 과강한 九三은
그 뜻이 강하여 힘써 겸손하길 노력하지만
그 뜻을 잃고 실수하고 다시 겸손하기를 자주 반복한다.
본래 자질이 공손하지 못하고 과강해서 진실로 손순(巽順)하지 못하기 때문에
덕을 잃고 다시 겸손하기를 자주 반복하니 궁색하다.
九三이 효변하면 풍수환(風水渙)이 된다.
이때는 흩어지고 풀어지는 순간이다.
무릇 사람이 이별하고 흩어지는 것은 마음에 달린 것이므로
흩어짐을 막는 것도 마음에 달린 것이다.
굳게 올바름을 지켜서 흩어지는 험난함을 구제하면 길하다.
六三은 흩어지는 때에 자기 몸만 후회가 없다.
아래에 양강한 九二를 올라타고 있어서 후회할 바가 있겠지만,
정응인 上九가 구제해 주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六四] 悔亡(회망) 田獲三品(전획삼품)
후회가 없어진다.
사냥을 해서 만족스러운 사냥물을 얻는다.
象曰 田獲三品(전획삼품) 有功也(유공야)
전획삼품은 공이 있음이다.
六四는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아래 初六과 정응이 아니고,
바로 밑에는 양강한 九三을 올라타고 있어 후회할 일이 있을 것만 같지만 그렇지 않다.
六四는 위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 또한 바르고
상괘인 겸손한 손(巽)의 주효로서 위로 친비한 군주 九五를
유순하고 겸손히 잘 섬기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사냥을 해서 삼품(三品)을 얻었다고 한 것은
만족스러운 사냥물을 얻었으니 상하에 모두 미치는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상괘의 아랫자리인 六四는 윗사람에게 손순(巽順)하고
아랫사람에게도 부드러운 도로써 겸손히 대한다.
상전에서도 삼품을 얻음은 공이 있음이라고 했다.
六四는 원래가 후회할 소지가 있었지만 지극히 공손하게 처세함으로 후회가 없어지고
손순(巽順)한 공(功)을 이루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풍구(天風?)가 된다.
양이 음을 결단했지만 다시 아래로부터 음이 자라난다.
돌연 왕성한 여자를 만나는 때이다.
九四는 본래 정응인 初六을 잃었다.
初六은 九二에게 포용되어 꾸러미에 물고기가 없는 것이다.
윗사람이 실도하지 않았다면 아랫사람이 멀리할 이유가 없다.
물고기를 잃었으니 흉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九五] 貞吉(정길) 悔亡无不利(회망무불리)
无初有終(무초유종) 先庚三日(선경삼일) 後庚三日(후경삼일) 吉(길)
올바르게 하면 길하다.
후회가 없어져 이롭지 않음이 없다.
처음은 없으나 마침은 있다.
명을 내리기전 3일 살피고 명을 내린 뒤 3일 살피면 길하다.
象曰 九五之吉(구오지길) 位正中也(위정중야)
九五의 길함은 위가 바르게 중을 얻음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아래의 九二와는 정응을 이루지 못했고 六四는 친비이다.
九五는 정응이 없고,
아래 六四와 친비로 혹여 올바름을 잃을까 바르게 하면 길하다고 경계했다.
처음은 없으나 마침은 있다고 한 것은,
일의 시초가 불선(不善)하기 때문에 변경함으로 선(善)을 회복하게 되면
마침은 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선하다면 변경하는 명(命)을 내릴 필요가 없다.
변혁할 때는 단행하기 전에 미리 시작과 마침,
전후사정을 잘 살펴서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게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변혁을 단행한 뒤에도 다시 살펴야 한다.
그래서 변혁의 명을 내리기 전에 3일간 신중히 검토하고
변혁을 성취한 뒤에도 3일간 다시 살펴야 길하다 했다.
변혁을 단행하면 처음엔 따르지 않더라도 결국 따르게 된다.
천간에서 갑(甲)은 일의 시작이며, 경(庚)은 변경의 시초를 뜻한다.
무기(戊己)는 천간의 중간에 있어서 중간을 지난 경(康)은 변혁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선경삼일 후경삼일’(先庚三日 後庚三日)이라고 하였다.
九五가 효변하면 산풍고(山風蠱)이다.
이때는 질서가 무너지고 어지럽게 되어 치워야할 일거리가 생기는 때다.
六五는 유약한 군주라서 새로운 일이나 큰일은 벌이지 못하고
그저 옛일이나 이어갈 수 있을 뿐이다.
아래의 양강한 九二를 등용하게 되면 아비의 일을 계승했다는 명예를 얻을 수 있다.
[上九] 巽在牀下(손재상하) 喪其資斧(상기자부) 貞凶(정흉)
겸손해서 평상 아래에 있다. 그 재물과 도끼를 잃는다. 올바름에는 흉하다.
象曰 巽在牀下(손재상하) 上窮也(상궁야)
喪其資斧(상기자부) 正乎(정호)? 凶也(흉야)
손재상하는 위에서 궁한 것이고 상기자부는 올바르겠는가? 흉하다.
上九는 손(巽)의 극(極)에 처했다.
上九는 재질은 강하나 음위에 있어서 성품이 바르지 않고 뜻이 약하다.
과하게 겸손해서 강명한 재질을 잃어서 재물과 도끼(결단력)를 잃는다고 했다.
비록 겸손함이 바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본래 강건한 덕을 잃게 되므로 화를 자초한다.
여(旅)에서는 자부(資斧)를 재물과 도끼(권력)인 것으로 보았지만
여기에서는 양효가 가진 양강한 본질을 잃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보고
실질과 강직한 결단력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윗자리에 처해서 과하게 손순(巽順)하므로
스스로 도를 잃게 되면 올바른 도리에서 보면 흉하다.
상전에서도 겸손해서 평상 아래에 있음은 위에 있으면서도 궁한 것이고
그 재물과 도끼를 잃음이 과연 올바르겠는가? 흉하다고 했다.
上九가 효변하면 수풍정(水風井)이 된다.
이때에는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도(道)로써
만물에게 차별 없이 두루 쓰임을 공으로 한다.
上六은 우물의 도의 완성으로서 우물의 덮개를 덮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든지 길어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크게 성취함이고 믿음을 얻어서 크게 길하다.
58. 태위택(兌爲澤), 중택태(重澤兌)
쾌락에 빠지거나 정도를 벗어난 아첨하는 말과 구설을 조심하라
기뻐하되 탐닉하지 말라!
괘사(卦辭)
‘태’(兌)는 희열, 기쁨으로 따르기 때문에 통합을 이루는 것이다.
물은 다투지 않고 모이고 어울려서 하나가 된다.
물은 부드럽지만 강해서 물을 이기는 것은 없다.
하나의 음이 두 양의 위에 있어 유(柔)가 강(剛)을 타고 있다.
하나의 음(陰)이 두 개의 양(陽) 위로 올라가서
음이 양을 기뻐하고 양에 의해서 기쁘게 된 것이다.
안으로는 강하지만, 밖으로 부드럽고 온화해 기쁨이 있다.
안으로 강직해도 밖으로 유연한 태도로 해야
타인의 마음을 감동시켜 기쁘게 할 수 있고 이로움이 있다.
태(兌)는 감(坎)의 아래가 막힌 연못(澤)이다.
땅이 움푹 패인 곳에 물이 고여서 연못이 된다.
태(兌)는 양, 입, 혀, 서쪽, 수다, 구설, 기쁨, 소녀, 첩, 무당,
깎임, 분리, 은둔, 서쪽, 두려움 등의 상(象)이 있다.
태(兌)는 가을(秋)을 대표하는 괘로서,
만물이 성숙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만물이 또한 기뻐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감(坎)은 중(中)에 양(陽)이 위치함으로 실(實)하고 상하가 음허(陰虛)하지만,
태(兌)는 위가 음허(陰虛)하지만 중(中)과 그 아래는 양(陽)으로 실(實)하다.
감(坎)의 물을 취해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막으면 택(澤)이 되는 것이다.
괘상은 손위풍(巽爲風)을 거꾸로 뒤집은 모습이다.
기쁨의 도(道)는 형통하지만 반드시 정도(正道)를 따라야 이롭다.
정도를 떠나서 쾌락을 구하거나 아첨을 떨거나 간사를 부리게 되면
후회와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굳게 바름을 지켜야 이롭다.
기쁨으로 사람을 대하면 그 수고로움을 잊고,
기쁨으로써 하면 험난한 일을 하게 하더라도 그 죽음조차 잊는다고 했다.
기쁨의 도는 이토록 위대해서 사람을 힘써 따르게 만든다.
군자가 이것을 본받아서 친구들과 더불어 기쁨으로 학문을 배우고 익힌다.
효사(爻辭)
[初九] 和兌(화태) 吉(길)
화합함으로 기쁨을 구한다. 길하다.
象曰 和兌之吉(화태지길) 行未疑也(미행의야)
화태지길은 행함에 의심받지 않음이다.
初九는 기뻐하는 태(兌)의 시작이다.
위의 九四는 정응이 아니고, 九二도 친비가 아니다.
그러나 初九는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성품 또한 바르고
위에 정응이나 친비가 없기 때문에 사사로운 정(情)에 끌림이 없다.
初九는 비록 중(中)을 얻지 못했지만,
사사로운 마음에서 화합하려 함이 아니기 때문에 의심을 받지 않는다.
初九는 과강(過剛)하지만 성품이 바르고
사사로이 화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전에서도 아첨이나 간교하게 생각하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初九가 효변하면 주역의 4대 흉괘 택수곤(澤水困)이 된다.
곤란함에 처했다고 말을 앞세우기 보다는
차라리 즐거운 마음으로 곤란을 수용하고 침묵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정도를 벗어나서 말을 앞세워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初六은 성품이 바르지 못해서 곤궁함이 처하여
제대로 대처하지를 못하고 오히려 깊은 계곡에 들어가서 3년이 되도록 볼 수가 없다.
[九二] 孚兌(화태) 吉(길) 悔亡(회망)
믿음으로 기쁨을 구한다. 길하다. 후회가 없어진다.
象曰 孚兌之吉(화태지길) 信志也(신지야)
화태지길은 뜻이 신실함이다.
九二는 위로 군주 九五와 정응(正應)이 아니고, 소인 六三과 친비(親比)하다.
九二는 음위(陰位)에 있어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위로 소인을 받들기 때문에 후회할 일이 있을 것 같지만,
九二는 강중(剛中)한 덕이 있어서 소인을 가까이 하지만
성실한 본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강중(剛中)한 덕을 지키면 길하고 후회할 일이 없다.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화합하고 소인과 가까이 해도
자신의 뜻을 잃지 않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
상전에도 믿음으로 기쁨을 구하면 길한 것은 그 뜻이 신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택뢰수(澤雷隨)가 된다.
높은 곳의 귀한 양이 자신을 낮춰서 낮은 음에게 오므로 음이 기쁨으로 양을 쫓는다.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면 남도 자기를 따르기 마련이다.
六二는 소자(初九)에게 매이면 장부(九五)를 잃는다.
六二는 중정한 덕이 있고 위로 같은 중정한 덕의 九五와 정응이지만
음유해서 굳게 바름을 지키지 못할까 경계했다.
[ 六三 ] 來兌(래태) 凶(흉)
내려와서 기쁨을 구한다. 흉하다.
象曰 來兌之凶(래태지길) 位不當也(위부당야)
래태지흉은 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태(兌)의 극(極)에 있다.
六三은 위(位)가 부당해서 정도(正道)가 아닌 사심을 가지고 기쁨을 구하기 때문에 흉하다.
주역에서는 위로 가는 것은 간다고(往) 말하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온다고(來) 말한다.
六三은 하괘의 극(極)에 있어서 상괘로 나아갈지 하괘에 머물지 선택해야 한다.
六三은 음효이기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려는 성질이 있다.
따라서 六三은 九四가 아닌 아래의 九二에게로 내려와서
기쁨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실도(失道)하는 것이고 흉하다.
상전에서도 아래로 와서 기쁨을 구해서 흉한 것은
위(位)가 부당(不當)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택천쾌(澤天夬)가 된다.
이때는 비록 소인을 결단하는 때이지만,
함부로 세력을 휘두르지 않고 온화함이 필요하다.
양이 왕성하고 음이 물러나는 때이기는 하지만,
아직 음이 다섯 양들의 윗자리에 있고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해야만 한다.
그러나 결단해야 할 上六을 정응(正應)이라고 사귀어서 음양화합을 이루면
정도가 아니다.
군자는 그 결단해야 할 上六을 결단해야 하고
그 행동을 성내듯이 개과천선해야 허물이 없다.
[九四] 商兌未寧(상태미녕) 介疾有喜(개질유희)
헤아려서 기쁨을 구한다. 편안하지 못하다.
절개를 지켜서 미워하면 기쁨이 있다.
象曰 九四之喜(구사지희) 有慶也(유경야)
九四의 기쁨은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九四는 위로 중정한 군주 九五와 아래 소인 六三 사이에 있다.
初九는 정응이 아니고 六三과는 친비하다.
六三은 위(位)가 부당해서 내려와서 기쁨을 구하는
음사(陰邪)한 소인이지만 친비이므로 九四가 기뻐하기 때문에
절제함으로 멀리할 것을 결단하지 못해서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대신인 九四는 군주 九五를 따르는 것이 올바르고,
태(兌)의 극(極)에 있어서 쾌락이 지극한 六三을 사사로운 마음에 따르면 흉하다.
간사하게 아첨하는 六三을 절제함으로 막고
중정(中正)한 九五를 섬기면 경사와 복(福)이 있고 그것이 곧 기쁨이 있는 것이다.
상전에서도 九四의 기쁨은 경사가 있음이라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수택절(水澤節)이다.
무릇 사람은 기쁠 때 그칠 줄 모르고 어렵고 험하게 되어서야 뒤늦게 그치려고 한다.
절도는 기쁠 때에 그쳐야 하고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올바른 것이다.
성품이 바르고 유순한 六四는 억지로 절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안히 절제해서 군주 九五를 보필하기 때문에 형통하다.
[九五] 孚于剝(부우박) 有厲(유려)
깎는데도 믿으면, 위태로움이 있다.
象曰 孚于剝(부우박) 位正當也(위정당야)
부우박은 그런 자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九五는 강건하면서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아래의 九二는 정응이 아니고 태(兌)의 극(極)에 있는 위의 上六은 친비(親比)이다.
소인은 속마음을 감추고 그냥 얼굴만 바꾸어 순종하는 척하지만,
언제라도 선(善)을 해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잘 대비해야 한다.
그래서 위태롭다고 경계하였다.
上六은 음사(陰邪)한 자로서 윗자리에서 온갖 감언이설로
九五의 양강(陽剛)한 덕을 깎는다.
자칫 방심하게 되면 위태로움이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마땅하다.
상전에서도 깎는데도 믿는 것은 그런 자리에 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뇌택귀매(雷澤歸妹)가 된다.
이때에는 정도를 좇아서 유순하게 시집가지 않고 기쁨을 좇아 부정하게 시집간다.
그러나 황제 제을이 누이동생을 제후에게 하가시킨다.
그러나 왕녀의 옷치장이 왕녀를 쫓아서 시집가는 첩의 옷치장보다 화려하지 않다.
비록 六五는 하가(下嫁)하지만 불필요하게 장식하지 않는다.
음이 가득 차게 되면 양과 맞서게 되고 흉하게 되니,
달이 거의 보름에 가깝더라도 가득 차지 않아야 길하다.
[上六] 引兌(인태)
끌어 당겨서 기쁨을 구한다.
象曰 上六引兌(상육인태) 未光也(미광야)
上六인태는 빛나지 못함이다.
上六은 기쁨(兌)의 주효요 극(極)에 있다.
극(極)에 이르면 그쳐 변하는 것이 도리인데, 그칠 줄 모르고 쾌락에 빠져있다.
아래의 九四와 九五를 끌어당겨서 기쁨을 구한다.
하지만 九五는 중정(中正)을 얻어서 실질적으로 기쁨을 얻기는 힘들다.
六三은 위가 바르지 못한 음유로서
아래에 위(位)가 바르지 못한 九二를 올라타고 있어서 흉하다 했지만,
上六은 위가 바르고 또 구하더라도 실제적으로
그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해서 흉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상전에서도 上六이 끌어 당겨서 기쁨을 구함은 빛나지 못한다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천택리(天澤履)가 된다.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서 위태하겠지만
기쁘고 온화한 태도로 따르면 화를 면할 수가 있다.
上九는 건(乾)의 극(極)이자 리(履)의 극에 있어서
리(履)의 도를 마치며 유종의 미를 거둔다.
자신이 밟아온 것에서 결국 화복(禍福)이 오는 것을 깨닫고
지나온 자신의 행동들을 되돌아보기 때문에 크게 길하다고 했다.
59. 풍수환(風水渙)
유순한 태도로 마음을 얻어서 흩어진 것을 모으기에 힘쓰라
바람아, 이 험난함을 흩어버려라
괘사(卦辭)
‘환’(渙)은 물이 출렁출렁하다, 흩어진다는 뜻이다.
바람이 수면 위에 불어서 흩어지는 것이다.
괘상은 손상감하(巽上坎下)이다.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닭, 장사, 들어감(入), 시장, 3배의 이익,
줏대 없음, 공손함을 뜻하고
감(坎)은 물, 강물, 중남, 돼지, 도적, 귀, 은둔, 술, 법, 근심, 험난함을 뜻한다.
환(渙)은 바람(巽)이 물(坎) 위에 불어 물이 흩어진다.
손(巽)에는 바람과 나무의 상이 있기 때문에,
환(渙)은 물위의 나무이고, 물위에서 노를 젓는 배의 상이다.
괘상은 천지비(天地否)의 건곤(乾坤)이 풍수환(風水渙)의 손감(巽坎)이 되었다.
천지비의 九四와 六二가 위치를 바꿔서 풍수환의 九二와 六四가 되었다.
불통의 천지비에서 九四가 九二로 중(中)을 얻고 六二가 六四로 정(正)을 얻었다.
환(渙)은 해산(解散)이라는 의미도 있다.
즉, 막힌 것이나 어려움을 해결해서 통하게 만드는 기쁨이 있다.
물에 빠졌는데 나무토막을 잡은 것으로 볼 수도 있어서
불운한 중에 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환(渙)은 재산을 잃거나 흩어지거나 헤어지는 의미가 크기 때문에
굳게 정도를 지켜야 한다.
환(渙)은 형통하다.
왕이 종묘제사(宗廟祭祀)를 모시는 정성이면 대천을 건너도 이롭지만,
올바름을 지켜야 이롭다.
사람이 이별하고 흩어짐은 결국은 마음에 달린 일이고,
흩어짐을 막는 것도 마음에 달린 일이다.
마음을 얻어서 합하면 흩어진 것을 다시 모을 수 있다.
맹자도 마음을 얻어야 백성을 얻는다고 했다.
고대에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방법으로
제사를 모시는 일처럼 지극한 정성으로 모으게 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왕이 상제께 제사지내고 종묘를 세워 백성의 마음을 얻어서
다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 공(功)을 성취한다.
따라서 환(渙)의 때에는 흩어지는 어려움에서 벗어남을 그 덕(德)으로 한다.
배(나무)를 타고 대천을 건너듯이, 흩어짐을 구제하면 공(功)을 이룬 것이다.
효사(爻辭)
[初六] 用拯(용증) 馬壯(마장) 吉(길)
구원을 받는다. 말이 건장하다. 길하다.
象曰 初六之吉(초육지길) 順也(순야)
初六의 길함은 순하기 때문이다.
初六은 정응이 없고 九二와 친비이다.
初六은 환산(渙)의 시초에 양위(陽位)에 있어서 뜻은 있지만 응이 없어서
친비인 九二에 의해서 구제받는다.
비록 初六이 음효이고 위(位)도 바르지 못하고 성품도, 재능도 부족하나
아직 환의 시초이기 때문에 위험에 빠진 정도가 심하지 않고
강중(剛中)한 친비 九二도 정응(正應)이 없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구제받을 수가 있다.
初六이 九二를 따르는 것은,
마치 건장한 말을 얻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九五에게 가는 것과 같기 때문에 길하다.
그래서 상전에도 初六의 길함은 순(順)해서 따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환(渙)에서 初六만 환(渙) 즉, 흩어짐을 말하지 않음은
초기에 흩어짐을 구제하면 흩어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기 때문이다.
初六이 효변하면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진실한 믿음으로 바르게 하면 하늘도 감화시킬 수 있고 미물에게도 이롭다.
初九는 위에 성품이 바른 정응 六四가 있음에도
그 사이에 六三이 있다 하여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에게 이끌려서
다른 마음을 품으면 편치 못하다.
잘 헤아려야 길하다.
[九二] 渙(환) 奔其机(분기궤) 悔亡(회망)
환에 기댈 안석에게 달려간다. 후회가 사라진다.
象曰 渙奔其机(환분기궤) 得願也(득원야)
환분기궤는 원하는 것을 얻음이다.
九二는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지만 감(坎)의 험난함 속에 빠져있다.
비록 정응 관계는 아니지만 아래 初六과 친비하기에,
서로 힘을 모아 환(換)에서 벗어나고 후회가 없어진다.
몸을 기댈 안석(案席)은 바로 初六를 뜻한다.
初六은 九二를 건장한 말이라 했고 九二는 初六을 몸을 기댈 안석이라 했다.
환산(渙)의 때 정응이 없는 初六과 九二가 서로 구하여 화합하면
구제되는 것이고 길하다.
상전에서도 안석에게 가면 그 원하는 바를 얻는다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풍지관(風地觀)이 된다.
이때에는 아래에서 음효들이 자라서 무성해지기 때문에
위의 양효들이 물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위의 두 양효들이 아래 네 음효들을 두루 살피기 때문에
아래 음효들도 우러러본다.
그렇지만 六二는 관찰하는 것이
마치 여자처럼 문틈으로 엿보기 때문에 명확하지 못하다.
여자나 소인에게는 이롭지만 군자라면 추한 것이다.
[六三] 渙(환) 其躬(기궁) 无悔(무회)
환에 자기 몸만 후회가 없다.
象曰 渙其躬(환기궁) 志在外也(지재외야)
환기궁은 뜻이 밖에 있음이다.
六三은 上九와 정응이다.
환(渙)의 때, 六三은 홀로 정응(正應)이 있다.
六三은 감(坎)의 극(極)에 있고 양위(陽位)에 있지만 정응 上九에 의해서 구제 받는다.
六三은 아래에 九二를 올라타고 있어서 후회할 바가 있지만,
정응 上九가 구제해 주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진다고 했다.
상전에서도 자기 몸만 후회가 없는 것은 그 뜻이 밖(上九)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음유(陰柔)로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또 정응 上九도 지위가 없기 때문에
천하의 환(渙)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저 자신의 환(渙)만 구제할 수 있을 뿐이다.
六三이 효변하면 손위풍(巽爲風)이 된다.
끊임없이 겸손하고 온화하게 행동하면 마침내 통(通)하게 되지만
본성이 유약해서 조금 형통하다.
九三은 과강해서 겸손하고 싶지만 뜻을 지키지 못하고 잃어 버렸다가
다시 회복하기를 자주 반복하기 때문에 궁색하다.
[六四] 渙(환) 其群(기군) 元吉(원길)
渙(환) 有丘(유구) 匪夷所思(비이소사)
환에 무리를 모은다. 크게 길하다.
환에 언덕처럼 모으는 것은 보통사람은 생각할 수 없다.
象曰 渙其?元吉(환기군원길) 光大也(광대야)
환기군원길은 빛나고 큼이다.
六四는 공손한 손(巽)의 주효로서 대신의 지위에 있다.
六四는 정응은 없지만 바로 위의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군주 九五와 친비이다.
환산(渙)의 때에는 양강(陽剛)한 태도로 공(功)을 이룰 수 없고,
유순하게 화합해야 공을 이룰 수 있다.
六四는 음효로 위(位)가 바르기 때문에 유순하고 성품도 바르다.
손(巽)의 주효로 손순(遜順)하기 때문에
중정을 이룬 九五와 힘을 모아 천하의 환산(渙)을 구한다.
중정한 군주와 순하고 바른 신하가 힘을 모아서
환산(渙)을 구제하는 공(功)을 이루어 마치 언덕과 같이 크게 모이게 된다.
상전에서도 흩어지는 때에 무리를 모으니 크게 길한 것은 빛나고 크다고 했다.
환산(渙散)의 때,
부드러운 도(道)로 큰 무리를 모아서 언덕처럼 모으는 것은
보통사람이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수송(天水訟)이 된다.
서로 만나지 못하고 어긋나는 순간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쉽게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한다.
다툼을 오래 끌기보다는 도중에라도 그만두면 길하다.
구사는 다툼을 이길 수가 없음을 깨닫고 돌아와서 명(命)을 받든다.
마음을 바꾸어 편안하고 바르게 하면 길하다.
[九五] 渙(환) 汗其大號(한기대호) 渙(환) 王居无咎(왕거무구)
환에 땀이 흐를 만큼 대호령을 내린다.
환의 때 왕의 도리를 다하니 허물이 없다.
象曰 王居无咎(왕거무구) 正位也(정위야)
왕거무구는 지위가 올바른 것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아래 九二는 정응(正應)이 아니고 六四는 친비이다.
환산(渙)의 때 군주는 흩어지는 것을 막고 모으기 위해
땀이 흐를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서 호령을 내린다.
환산을 구제하려는 군주의 대호령에 백성이 믿고 따른다.
군주 九五의 호령에 백성들이 모이게 되면 환산을 구제하는 것이고
자신의 도리를 다한 것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는 것이다.
九五와 六四가, 자신들의 양강중정(陽剛中正)한 덕과 손순(巽順)한 덕을 다하여서
서로 화합함으로 무리가 흩어지는 것을 막아서 공(功)을 이루기 때문에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도 왕이 도리를 다해서 허물이 없는 것은 지위가 올바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산수몽(山水蒙)이다.
이때는 산 아래에 험난함이 있어서 곤란하여 그쳐서 기다리면서
그 몽매함을 깨우치려고 배우는 순간이다.
六五는 세상의 추함에 물들지 않은 아이와 같은 몽매함이다.
정응 九二에게 자신을 낮춰 가르침을 받고 몽매함을 깨우치니
배움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자세이다.
[上九] 渙(환) 其血(기혈) 去逖出(거척출) 无咎(무구)
환에 그 피를 가도록 한다.
두려움에서 나가면 허물이 없다.
象曰 渙其血(환기혈) 遠害也(원해야)
환기혈은 해를 멀리함이다.
上九는 환(渙)과 손(巽)의 극(極)에 있다.
上九는 환(渙)에서 홀로 정응이 있다.
上九가 정응인 六三을 구하려고 가면 감험(坎險)에 빠지게 되고
환산(渙散)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스스로 해악(피)을 멀리하고 두려움을 떨쳐야만 허물이 없다.
上九는 양효로 강한 재질이면서도 상괘 손(巽)의 극(極)에 있어
겸손이 지극해서 환산(渙)에서 벗어나는 형국이다.
상전에서도 그 피를 가도록 하는 것은 해(害)를 멀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환(渙)의 때 사사로이 六三에게 매이지 말고 크게 모아 위험이 가도록 해야 하는데
六三에게 사사로이 매이면 곧 허물이 되기 때문에 그 허물을 면한다는 의미도 있다.
上九가 효변하면 주역의 4대 난괘인 감위수(坎爲水)가 된다.
거듭된 험난함에도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굳건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행함이 있어야 공을 이룰 수가 있다.
上六은 감험의 극(極)에 처했지만 응(應)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그 험난함으로부터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끈으로 묶어서 가시 넝쿨 속에 두고 3년이 되도록 얻지 못하기 때문에 흉하다.
60. 수택절(水澤節)
과한 절제는 괴롭다. 험한 때가 되고나서 그치지 말고 기쁠 때에 그쳐라
밥과 물처럼 담박하게
괘사(卦辭)
‘절’(節)은 절약, 절제, 절도를 뜻한다.
괘상은 풍수환(風水渙)을 거꾸로 뒤집은 감상태하(坎上兌下)이다.
감(坎)은 물, 중남, 돼지, 귀, 술, 병, 근심, 북쪽, 도적, 험난함, 빠지는 것 등을 의미하고,
태(兌)는 양, 입, 혀, 첩, 수다, 구설수, 기쁨, 소녀, 무당, 분리, 은둔, 구멍(穴),
서쪽 등을 의미한다.
위에는 감(坎)의 험함이 있고 아래에는 태(兌)의 기쁨이 있어서
안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바깥의 어려움을 견딘다.
기뻐하며 동(動)하는 성질이 위험 때문에 멈추는 것이 절제이다.
수택절(水澤節)은 연못 위에 물이 담겨있는 상(象)으로,
연못이 물을 담는 용량은 한계가 있어서
가득차면 넘치게 되므로 절제가 필요하다.
절(節)은 형통하지만 괴로운 절제는 바르지 못하다.
절(節)은 상황에 알맞게 처신해서 형통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절제가 너무 과하면 괴롭고 부족하면 허물이 된다.
절제가 과해서 괴롭게 되면 굳게 절제를 지속할 수 없다.
그런 도는 궁(窮)하기 때문에 상도(常道)일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은 기쁠 때에는 그칠 줄 모르고
어렵고 험할 때에 이르러 뒤늦게 그치려고 하기 쉽다.
그래서 기쁠 때 그치는 것이 곧 절(節)의 참뜻이다.
절(節)은 정도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형통하게 하는 바가 있다.
그 행함에 자연스러운 절도가 있다면 반드시 형통하게 된다.
효사(爻辭)
[初九] 不出戶庭(불출호정) 无咎(무구)
방문 밖의 정원에도 나서지 않는다. 허물이 없다.
象曰 不出戶庭(불출호정) 知通塞也(지통색야)
불출호정은 통하고 막히는 것을 앎이다.
初九는 절(節)의 시작이다.
초구는 과강하고 상괘의 六四와 정응이기 때문에,
위로 나아가고 싶지만 강중(剛中)한 九二가 가로막는다.
이를 방문 밖의 정원도 나서지 않는다. 즉, 방문 밖 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정도 아닌 호정을 나서지 않음은 집밖을 나서는 행동 뿐 아니라
구설의 절제도 의미한다.
初九는 절(節)의 시초에 방문 밖 출입도 조심할 뿐 아니라
언행도 절제를 하므로 허물이 없다.
상전에도 호정에도 나서지 않음은 통(通)함과 막힘(塞)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때가 통하면 나아가고 막히면 멈춰야 한다.
무작정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의리상 마땅히 나가야 하면 나가야한다.
初九가 효변하면 감위수(坎爲水)가 된다.
초육은 위가 부당해서 거듭 험난하므로 더 깊은 구덩이에 들어가므로 흉하다.
[九二] 不出門庭 凶
대문 안의 정원을 나서지 않는다. 흉하다.
象曰 不出門庭凶(불출문정흉) 失時極也(실시극야)
불출문정흉은 때를 잃음이 지극함이다.
九二는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현인이지만
위의 군주 九五와 정응이 아니기 때문에
그 뜻을 펼칠 수 없어서 대문 밖을 나서지 않는다.
양강한 九二는 정위(正位)가 아니고 정응이 없어서 친비인 六三과 친하고 싶다.
그러나 六三은 태(兌)의 극(極)에 있어
감언이설과 쾌락 속에 빠져있는 음유한 소인이다.
九二는 사적인 정에 매여서 나아갈 때를 놓치므로 강중(剛中)한 덕을 잃게 된다.
이는 잘못된 절제로 결국은 나아갈 때를 놓치는 것이고 흉하다.
비록 九二와 九五가 정응은 아니지만,
같은 강중(剛中)한 덕(德)으로 서로 화합하게 되면 절(節)의 때 그 공(功)을 이룰 수 있다.
절(節)의 마땅한 도는,
나아가야 할 때에 나아가고 멈추어야 할 때 멈추는 것이다.(時止則止 時行則行)
상전에서도 문정을 나서지 않음은 그 때를 잃음이 지극한 것이라고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수뢰둔(水雷屯)이다.
어려워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말을 탔다가 다시 내렸다.
도적이 아니라 구혼함이다.
여자가 바름을 지켜서 시집가지 않고 십 년 만에 시집간다.
[六三] 不節若(부절약) 則嗟若 无咎(즉차약 무구)
절제를 못해 탄식하니 허물할 데가 없다.
象曰 不節之嗟(부절지차) 又誰咎也(우수구야)
부절지차는 또 누구를 허물할 수 있겠는가?
六三은 하괘 태(兌)의 주효이자 극(極)에 있다.
六三은 음유하면서 위(位)마저 바르지 못해 절제해야 할 때 절제하지 못한다.
위에 정응도 없고 음유(陰柔)가 아래에 강(剛)을 올라타고 있어 편할 바가 없다.
六三은 성품도 바르지 못하고 덕도 부족한데 처한 자리마저 위태롭다.
강을 올라타고 앞에 감(坎)의 험난함을 두고 있다.
상전에서도 육삼이 비록 슬퍼서 탄식하겠지만,
쾌락에 빠져서 스스로 절제를 못한 것이므로 어느 누구의 탓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六三이 효변하면 수천수(水天需)가 된다.
진흙탕에 빠져서 기다린다.
스스로 도적을 불러들인다.
九三은 과강해서 위태하므로 기다리지 못하고 나아가려 하다가 화를 자초한다.
[六四] 安節(안절) 亨(형)
마음 편히 절제한다. 형통하다.
象曰 安節之亨(안절지형) 承上道也(승상도야)
안절지형은 위의 도를 받드는 것이다.
六四는 성품이 올바른 대신이다.
六四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군주인 九五와 친비하다.
위(位)가 바른 六四는 안정을 이뤘으니 억지로 절도를 행함이 아니라
마음 편히 절제를 행할 수가 있고 위로 군주 九五를 보필하기 때문에 형통하다.
절도는 억지로 행하면 괴롭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해야 선(善)을 이룬다.
따라서 마음 편히 절제하는 것이 아니면 오래 지속되기도 힘들다.
상전에서도 마음 편히 절제하지만
형통한 것은 위의 九五의 중정(中正)한 도를 받들기 때문이라 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태위택(兌爲澤)이 된다.
헤아려서 기쁨을 구하기에 편안하지가 못하다.
분별해서 친비인 소인 六三을 막으면 복을 받는 기쁨과 경사가 있다.
[九五] 甘節(감절) 吉(길) 往(왕) 有尙(유상)
달가운 절제로 길하다. 나아가면 숭상받는다.
象曰 甘節之吉(감절지절) 居位中也(거위중야)
감절지길은 처한 위(位)가 중을 얻음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군주로 절(節)의 주체이다.
존위(尊位)에 있지만 그 절제함이 중정(中正)한 도를 따라서 달갑게 절제하므로,
천하 만민이 이것을 숭상하고 본받아서 따르려 한다.
천하가 기뻐서 따르기 때문에 달가운 절제이고, 절(節)의 도(道)에 있어서 최고선이다.
이와 같이 달갑게 절제하면 크게 공(功)을 이루게 되고 숭상받는 것은 당연하다.
상전에서도 九五가 달가운 절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처한 위치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라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지택림(地澤臨)이다.
지혜롭게 임(臨)한다. 대군으로서 마땅하고 길하다.
[上六] 苦節 貞凶 悔亡
괴로운 절제이다. 고집하면 흉하다. 뉘우치면 흉이 없어진다.
象曰 苦節貞凶(고절정흉) 其道窮也(기도궁야)
고절정흉은 그 도가 궁색함이다.
上六은 절(節)과 감(坎)의 극(極)에 있다.
절제가 과하면 괴롭고 행하기 힘들고, 곤궁하다.
비록 절제가 바른 일이라고 하지만 고집하면 반드시 흉하고
그 과도한 절제를 뉘우치고 고치면 그 허물이 없어진다.
상전에도 괴로운 절제를 고집하면 흉한 것은 그 도가 궁색하다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풍택중부(風澤中孚)이다.
날개 소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고집하면 흉하다.
만물이 지극하면 변하는 것이 이치인데 너무 집착하고 변통을 몰라서 흉하다.
上九는 극에 이르고도 교만하게 높이 오르려고만 하기 때문에
이런 도를 고집하면 흉하다.
61. 풍택중부(風澤中孚)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미물에게도 이롭고 힘든 일도 가능하다
믿음은 비움에서 나온다
괘사(卦辭)
‘중부’(中孚)는 진실한 믿음으로, 진심을 다하는 성실한 믿음이다.
괘상은 손상태하(巽上兌下)이다.
손(巽)은 바람, 나무, 장녀, 닭, 허벅지, 시장, 의심, 냄새, 장사, 파고드는 것(入),
3배의 이익, 줏대 없음, 공손한 것을 뜻하고
태(兌)는 연못, 양, 소녀, 입, 혀, 수다, 기쁨, 첩, 은둔, 서쪽, 구멍 등을 뜻한다.
손(巽)은 공손하고 태(兌)는 기뻐하기 때문에 기쁘게 공손히 따른다.
아래는 기꺼이 위를 기뻐하고 또 위는 기꺼이 아래를 따르는 것이다.
손은 바람이고 태는 연못이기 때문에 바람이 연못 위에 불어서 즐겁게 물결친다.
전체적으로는 유(柔)가 가운데에 몰려 있지만, 위아래의 강(剛)이 중(中)을 얻었다.
이는 유약한 음이 강건한 양에 의해서 길러지고
마치 부모의 품에서 아이가 길러지는 것이다.
진실한 믿음이면 돼지나 물고기와 같은 미물에게도 길하고
대천을 건너는 위험한 일도 이롭다.
그러나 중부(中孚)는 바르게 해야 이롭다.
바르고 진실한 믿음으로 행하면 하늘도 감화시킨다.
진실한 믿음(中孚)은 유(柔)가 안에 있지만 강(剛)이 중(中)을 얻은 것이다.
마치 빈 배를 타고 대천을 건너는 것과 같으니,
배는 속이 비어 있어야 사람이 탈 수 있듯이,
중부(中孚)의 상도 ‘중허’(中虛)하여 속이 빈 배의 상이다.
중부(中孚)는 전체적으로는 두 개의 음이 중앙에 있어서 ‘중허’(中虛)하지만,
상하에서 중(中)을 얻은 양효들을 보면 ‘중실’(中實)하다.
주역에서 양효는 실(實)이고, 음효는 허(虛)라고 부른다.
‘중허’(中虛)라고 한 것은 네 양효(陽爻)들이 중앙에 六三, 六四
두 음효(陰爻)를 품어 기르는 것을 말하고,
‘중실’(中實)은 九二와 九五 두 양효가 상하괘에서 중(中)을 얻은 것을 말함이다.
중허(中虛)는 진실한 믿음의 근본(本)으로써 사사로움이나 거짓이 없는 것이다.
중실(中實)은 진실한 믿음의 질(質)로써
사적인 욕심이나 거짓에 흔들리지 않는 충실함을 상징한다.
효사(爻辭)
[初九] 虞吉(우길) 有他(유타) 不燕(불연)
잘 헤아리면 길하다. 다른 마음을 품으면 편안하지 못하다.
象曰 初九虞吉(초구우길) 志未變也(지미변야)
初九우길은 뜻이 변하지 않음이다.
初九는 중부(中孚)의 시작이다.
유순하고 성품이 바른 六四와 정응(正應)이다.
중부(中孚)의 시작이기 때문에 처음에 잘 헤아려서 믿고 따르는 것이 현명하다.
중앙의 두 음효 중에서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하고 六四는 위(位)가 바르다.
성품이 바르고 손(巽)의 주효인 六四를 잘 헤아려서 믿고 따르면 길하고,
六四를 두고도 그 아래 六三에게 다른 마음을 품으면 편안하지 못하다.
상전에도 初九가 잘 헤아려서 길한 것은 그 뜻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풍수환(風水渙)이 된다.
이때는 흩어지고 풀어지는 흉한 순간이다.
무릇 사람이 이별하고 흩어지는 것은 결국 마음에 달린 일이기에,
흩어짐을 막는 것도 마음에 달려있다.
굳게 바름을 지켜서 흩어지는 험난함을 구제하는 것이 그 의리이다.
初六은 구원을 받는데 말이 건장하면 길하다.
강중한 친비인 九二를 순(順)하게 쫓으면 길하다.
흩어짐의 시초에 구제되면 흩어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된다.
[九二] 鳴鶴在陰(명학재음) 其子和之(기자화지)
我有好爵(아유호작) 吾與爾靡之(오여이미지)
우는 학이 응달에 있다.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아하는 술잔이 있어, 내 너와 함께 나누고자 하노라.
象曰 其子和之(기자화지) 中心願也(중심원야)
기자화지는 중심으로부터 원하기 때문이다.
九二는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다.
위의 九五는 비록 정응이 아니지만 중부(中孚)의 때
서로 응(應)하는 위치에 있어서 같은 강중(剛中)한 덕을 나누고 서로 화답한다.
이것을 군주 九五가 아래 현인 九二에게
좋은 술잔(벼슬)을 같이 나누기를 원한다 했다.
九二는 양강면서도 중실(中實)해서 그 신의가 지극하다.
신의가 지극하면 감통하게 된다.
상전에서도 어미 학이 깊은 골짜기에서 울어도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은,
그 마음 중심에서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음속에 진실한 믿음이 있으면 감응하지 않을 수 없다.
九二가 효변하면 풍뢰익(風雷益)이 된다.
이때에는 위의 남는 것을 덜어서 아래에 더해주니,
그것으로 험난함을 구제하면 유익하다.
六二는 혹 더해주면 많은 친구들이 온다.
거북점을 쳐보아도 틀림이 없다.
오래토록 바르게 하면 길하다.
왕이 상제께 제사를 드려도 길하다.
六二는 유순하면서 중정(中正)한 덕이 있기 때문에
정응이자 같은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九五의 신임을 받으니 길하다.
[六三] 得敵(득적) 或鼓或罷(혹고혹파) 或泣或歌(혹읍혹가)
적을 얻었다.
혹 북을 두드렸다가 혹 그친다.
혹 눈물을 흘렸다가 혹 노래를 부른다.
象曰 或鼓或罷(혹고혹파) 位不當也(위부당야)
혹고혹파는 위(位)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六三은 태(兌)의 주효이자 극(極)에 있다.
위의 上九는 정응이다.
음유하고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은 하괘에서 위태한 위치에 있고
양위(陽位)에 있어서 上九에게 나아가고 싶은 뜻은 있지만 六四가 가로막고 있다.
게다가 음유 六三은 그 뜻을 굳게 지키지 못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므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
하지만 六四는 손(巽)의 주효로서 성품이 바르고 공손한 대신이다.
위의 六三의 정응 上九는 성품이 바르지 못하고
마침이라 지위가 없어서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다.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한데다
음유로 태(兌)의 극에서 쾌락에 빠져서 스스로 구제할 수도 없다.
고로 六三은 성품이 바르고 공손한 대신 六四를 동류(同類)로 믿고 의지하여 따른다.
처음에 六三은 六四를 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려고 했지만,
명분도 없고 성품이 바르고 공손한 대신 六四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물러난다.
그러나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워 눈물을 흘리다가 그를 따르게 되니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六三이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성품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쁨과 슬픔이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따라 끝없이 흔들리고,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해서 진퇴가 일관성이 없다.
六三과 六四 이 둘은 중부(中孚)의 중허(中虛)로 중부(中孚)를 이룬 주체이다.
六四는 위(位)가 바르니 지위를 얻고, 六三은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부덕하다.
상전에도 북을 두드리고 그침은 위(位)가 부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六三이 효변하면 풍천소축(風天小畜)으로 밀운불우(密雲不雨)하다.
하나의 음이 부드러운 도(道)로 다섯 양을 머물러 쌓게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九三은 수레바퀴가 빠지고 부부가 반목한다.
과강한 九三이 六四에게 나아가지만
六四는 외유내강하기 때문에 九三에 의해서 다스려지지 않는다.
[六四] 月幾望(월기망) 馬匹亡(마필망) 无咎(무구)
달이 거의 보름이다.
말의 짝을 잃게 되면 허물이 없다.
象曰 馬匹亡(마필망) 絶類上也(절류상야)
마필망은 동류를 끊고 위로 감이다.
六四는 손(巽)과 중부(中孚)의 주효이다.
六四는 위의 군주를 손순(巽順)하게 섬기는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달이 거의 보름에 가까움은 六四의 음덕(陰德)이 지극한 것을 뜻한다.
달이 보름달이 되면 음양(陰陽)이 맞서게 되고
신하가 군주 앞에서 기고만장하게 되는 것을 비유했다.
따라서 거의 보름에 가깝지만 보름이 되지 않음은,
군주를 공손하게 섬겨서 군주의 신임을 얻고
대신의 자리에 머물러 군주와 대적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말의 짝이라고 한 것은 아래의 정응 初九를 말한다고도 하고
아래의 동류(同類) 六三이라고도 한다.
六四는 아래의 初九에 대한 사적인 정을 끊고 군주를 섬기면
대신의 소임을 다할 수 있다.
상전에서도 말이 그 짝을 잃음은 동류를 끊어버리고 위로 간다고 말했다.
六四가 효변하면 천택리(天澤履)이다.
호랑이의 꼬리를 밟아서 위태하지만 기쁘고 온화한 태도로 따르면 화를 면할 수 있다.
九四는 위가 바르지 못한데 정응도 친비도 없고
군주 九五도 같은 양효이므로 위태롭다.
그러나 九四는 음위(陰位)에 있어 과강하지 않고 순(順)하여
호랑이 꼬리를 밟았지만 조심하고 조심하면 결국 길할 수 있다.
[九五] 有孚攣如(유부연여) 无咎(무구)
진실한 믿음으로 당겨서 매면 허물이 없다.
象曰 有孚攣如(유부연여) 位正當也(위정당야)
유부연여는 위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진실한 군주이다.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같은 강실(剛實)한 덕으로
아래 현인 九二와 서로 응하고 공손히 따르는 대신 六四와 친비(親比)하다.
군신이 서로 진실한 믿음으로써 굳게 하나가 되면 허물이 없다.
상전에서도 진실한 믿음으로 당겨 매는 것은 위(位)가 바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산택손(山澤損)이다.
아래에서 덜어 위에 더하는 이 순간에는
반드시 아랫사람의 믿음을 얻어 정성을 다해야만 길하고 허물을 면한다.
六五는 유순하고 겸손히 자신을 낮춰서 아랫사람을 대하므로
신뢰를 얻고 크게 길하다.
더하여 주면 많은 친구가 오고 거북점을 쳐보더라도 틀림없이 길하다.
[上九] 翰音(한음) 登于天(등우천) 貞凶(정흉)
날개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 고집하여 흉하다.
象曰 翰音登于天(한음등우천) 何可長也(하가장야)
한음등우천은 어찌 오래가겠는가?
上九는 중부(中孚)와 손(巽)의 극(極)에 있다.
한음(翰音)은 수탉이 날갯짓하는 것이다.
마침에 이르고도 높이 오르려고 하면 흉하다.
양(陽)에는 나는 상이 있고 손(巽)에도 닭의 상이 있어
上九에서 닭이 높이 나는 상을 취한 것이다.
만물이 지극하면 변하는 것이니,
헛된 믿음에 집착하고 변통을 모르고 고집하면 흉하다.
上九는 중부(中孚)의 종극인데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교만하여 높이 오를 줄만 안고 그것을 고집하면 흉하다.
상전에서도 날개 소리가 하늘에 올라도 어찌 오래가겠는가 하였다.
上九가 효변하면 수택절(水澤節)이다.
절도는 기쁠 때에 그치는 것이 바르고 과도하지 않아야 한다.
上六은 절(節)과 감(坎)의 극에 처해서 과한 절제를 하니 괴로운 절제이다.
이것을 고집하면 흉하고 뉘우쳐야 흉을 면한다.
62. 뇌산소과(雷山小過 )
작은 일에는 길하지만 큰일에는 흉하다. 과하면 대과가 된다
조금 지나친 사람들을 위한 삶의 기술
괘사(卦辭)
‘소과’(小過)는 조금 지나치다, 정도를 넘어서다, 과오(過誤)라는 의미이다.
괘상은 풍택중부에서 음양을 거꾸로 반전시킨 진상간하(震上艮下)이다.
진(震)은 우레, 장남, 발, 용, 농사, 제후, 광주리, 움직임(動), 동(東)을 뜻하고
간(艮)은 산, 소남, 손, 개, 쥐, 귀신, 제사, 마침(終), 착실함, 그침(止), 머무름,
동북(東北)을 뜻한다.
소과(小過)는 산 위에 우레가 치는 것이다.
안으로 그치고 밖으로 나아가는 덕이 있다.
주역에서 ‘大’는 양(陽)을, ‘小’는 음(陰)을 말한다.
즉, 소과(小過)는 음(小)이 무성해서 평소보다 지나친 것이다.
네 개의 음효와 두 개의 양효로 구성되어 있는데 두 양효가 중앙에 몰려 있고
그 둘을 네 개의 음효들 둘러싼다.
비록 두 양효가 적지만 중심에 있고 네 음효가 많고 중(中)을 얻었지만
바깥에 있어서 대과(大過)라 하지 않고 소과(小過)라고 불리는 것이다.
소과(小過)는 날아가는 새의 상을 취해서 해설했다.
효사들을 두 개씩 짝지으면
하나의 큰 감(坎)의 상이 되기 때문에 그 위험함을 알 수 있다.
소과(小過)는 형통하나 바르게 함이 이롭고
작은 일은 형통하지만 큰일은 형통하지 못하다.
비조가 소리만 남기고 급히 위로 날아가면 마땅치 못하고
신중히 아래에 마땅하게 머물면 크게 길하다.
위로 오를수록 궁해지는 것으로 새만 한 것이 없어서 그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높이 날면 사냥을 당할 수도 있고 결국은 아래로 내려와야 편안함을 구할 수 있다.
소과(小過)는 소(小)가 지나쳐서 형통한 것으로 과도하지만
바르게 함에 이로움은 그 때에 맞게 행하기 때문이다.
이치에 따라서 다소 과하게 해서 바르게 해야 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치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을 새가 거스르지 않고 순하게 아래로 나는 것으로 비유했다.
유(柔)가 중도를 얻었기 때문에 작은 일은 길하고
강(剛)이 중도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큰일은 불가하다.
소과(小過)가 상도(常道)는 아니기 때문에
작은 일에는 적합하더라도 큰일에는 적합하지 못하다.
효사(爻辭)
[初六] 飛鳥(비조) 以凶(이흉)
날아가는 새이다. 흉하다.
象曰 飛鳥以凶(비조이흉) 不可如何也(불가여하야)
비조이흉은 어찌 할 수 있겠나?
初六은 간(艮)과 소과(小過)의 시작이다.
위로 九四는 정응이다.
음유한 初六은 양위(陽位)에 있어서 나아가려는 뜻은 있지만,
재능이 없고 성품이 바르지 못해 그 뜻을 굳게 지키지 못한다.
소과(小過)에는 높이 날지 않고 아래에 머무름을 그 덕(德)으로 하지만,
初六은 마음만 급한데 九四의 응원을 받아서 더욱 성급히 날아가기 때문에 흉하다.
상전에도 날아가는 새가 흉함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하였다.
初六이 효변하면 뇌화풍(雷火豊)이 된다.
번개와 우레가 더불어 풍성함을 이룬다.
밝은 덕으로써 동(動)하면 형통하게 된다.
풍성할 때에는 다사다난하기 쉬우니
해가 중천에 떠서 두루 천하를 비추듯이 살펴야 크게 형통함을 이룬다.
初九는 그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난다.
나아가면 숭상을 받게 된다.
비록 정응은 아니지만 대등한 짝인 九四를 만나서 함께 하면
허물이 없고 풍성함을 성취한다.
[六二] 過其祖(과기조) 遇其妣(우기비)
不及其君(불급기군) 遇其臣 无咎(우기신 무구)
할아버지를 지나서 할머니를 만난다.
군주에게 이르지 않고 신하를 만나면 허물이 없다.
象曰 不及其君(불급기군) 臣不可過也(신불가과야)
불급기군은 신하가 과할 수 없음이다.
六二는 유순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다.
九三과는 친비하고, 六五는 정응이 아니다.
조금 지나친 소과(小過)의 때에는 동덕(同德)으로 서로 응(應)할 수 있다.
따라서 조부(九四)를 지나서 자신을 아끼는 조모(六五)를 만나는 것이다.
九三은 아버지이고 九四는 조부인 것이다.
六五는 음으로 군위(君位)에 있어서 조모이다.
음양(陰陽)이 서로 구하는 것이 정도이지만, 소과(小過)에는 지나치기 마련이다.
비록 조금 지나쳐도 허물은 아니지만 조금 과한 것이 크게 과하게 되기 쉬워서
六二가 六五를 구함에 있어서도 너무 과하지 않게
군주에게 바로 이르지 말고 신하를 먼저 만나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六二는 중정(中正)한 덕(德)이 있어서 자기 분수를 지킬 수 있다.
상전에서도 군주에게 이를 수 없다고 한 것은
신하가 자기 분수를 넘어 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했다.
六二가 효변하면 뇌풍항(雷風恒)이다.
중년 부부의 도리를 이야기하는 항(恒)은 모든 효사들이 음양이 상응한다.
이치에 바르게 하면 항구할 수가 있다.
九二는 후회가 없어진다.
유순한 六五의 응원에 힘입어서
중도(中道)를 항구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에 후회가 없어진다.
[九三] 弗過防之(불과방지) 從或?之 凶(종혹장지 흉)
다소 지나치게 막지 않으면 쫓아와서 혹여 해를 입히게 된다. 흉하다.
象曰 從或?之(종혹장지) 凶如何也(흉여하야)
혹종장지는 흉함이 어떠하겠는가.
九三은 간(艮)의 극(極)에 처했다.
소과(小過)에는 음이 과하여 득세하고 양은 지위를 잃게 된다.
소인의 도(道)가 무성해지면 반드시 군자(陽)를 해치기 때문에
그것을 방비함에는 마땅히 지나치게 해야 한다.
소인의 음해를 방비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이 바로 서야 한다.
九三은 위(位)가 바르고 그치는 간(艮)의 극(極)에 있으므로
방비를 과하게 하면 화를 면할 수 있다.
음(陰)이 득세한 소과(小過)에 음사(陰邪)가 따라와서 상해를 입히게 되면,
그 흉함이 어떠하겠느냐고 상전에서 경계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뇌지예(雷地豫)이다.
음양(陰陽)이 서로 통하게 돼서 기뻐하는 때다.
무릇 쾌락은 사람을 그 속에 빠트려서 실도하게 만들어 근심이 오게 한다.
六三은 유일한 양효 구사를 우러러보고 즐거워한다.
九四가 받아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우물쭈물하기 때문에 후회가 있다.
[九四] 无咎(무구) 弗過遇之(불과우지) 往厲必戒(왕려필계) 勿用永貞(물용영정)
허물 없다. 지나치지 않아서 만나게 된다.
가면 위태하니 필히 경계하라.
오래 바름을 고집하지는 말라.
象曰 弗過遇之(불과우지) 位不當也(위부당야)
往厲必戒(왕려필계) 終不可長也(종불가장야)
불과우지는 위가 마땅하지 못함이고 왕려필계는 마침내 자라지는 못함이다.
九四는 위(位)가 바르지 못한 대신이다.
다소 지나친 소과(小過)의 때,
위(位)가 바르지 못한 九四는 허물이 있을 것 같지만,
양강(陽剛)이 음위(陰位)에 있어서 지나치게 강하지 않아서 허물을 면할 수 있다.
음이 득세하는 소과(小過)에,
비록 九四가 대신의 지위에 있고 六五와 친비하고 初六과 정응이지만
지금은 음(陰)이 득세하는 시기로 저들이 양(陽)을 따르지 않는다.
九四는 상괘 진(震)의 주효이고 위로 나아가는 성질의 양효이므로,
바르다 하여 나아가기를 고집하면 위태롭다.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양의 성질은 강직하고 굳세고 또 진의 주효로 나아가는 것이 비록 올바르지만
그것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상전에는 지나치지 않아서 만남은 위가 부당(不當)하기 때문이고
가면 위태해서 필히 경계해야 함은 결국 자라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지산겸(地山謙)이다.
높은 산이 자신을 낮춰서 땅의 아래에 있듯이 겸손해야 하는 순간이다.
六四는 겸손을 두루 베풀기 때문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六四는 성품이 바르고 유순하기 때문에 두루 겸손을 베푼다.
아래의 양강한 九三을 올라타고 있어서 허물이 있을 것 같지만
九三은 공로가 있어도 내세우지 않는 노겸군자이기 때문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六五] 密雲不雨(밀운불우) 自我西郊(자아서교) 公弋取彼在穴(공익취피재혈)
빽빽한 구름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
구름이 서쪽 교외에서 왔다.
공이 구멍에 있는 것을 쏘아 잡는다.
象曰 密雲不雨(밀운불우) 已上也(이상야)
밀운불우는 이미 올라갔기 때문이다.
六五는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군주이다.
음유한 六五가 군위(君位)에 있지만
아래에 정응도 없고 자신의 덕과 재능도 부족하기 때문에,
마치 구름은 빽빽하지만 비가 오지 않는 것과 같다.
소과(小過)는 음괘인 간(艮)은 그쳐서 머무르고
양괘 진(震)은 격분하여 나아가기 때문에 위아래 즉,
음양이 사귀지 못하니 밀운불우이다.
공(公)이 구멍(중허 中虛) 속에 숨은 六二를 취해
동류로서 화합하는 것을 활을 쏘아 잡는다고 했다.
그러나 음유한 동류가 화합을 이루어도 큰일을 이룰 수 없으니 이것도 밀운불우이다.
주역에서 비는 음양의 화합이다.
하괘의 九三은 간(艮)의 극에 있기 때문에 그침이 지극하고,
九四는 음위에 있어 지나치지 않아서 나아가지 않으니
음양이 만날 수 없는 밀운불우(密雲不雨)이다.
상전에서도 밀운불우는 음이 이미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음(陰)의 방향인 서쪽에서 구름이 일어서
아직 양(陽)의 방향인 동쪽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六五가 효변하면 택산함(澤山咸)이다.
젊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기쁨으로 쫓아서 감응하니 형통하지만
올바름을 지켜서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
九五는 그 등살에 감응하니 후회가 없다.
중정한 군주로서 소임을 다하려면 사심을 등져야만 한다.
정응인 六二에게만 사적으로 감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그 등에 감응함이다.
[上六] 弗遇過之(불우과지) 飛鳥離之(비조리지) 凶(흉) 是謂災眚(시위재생)
만나지 않고 지나친다.
날아가는 새가 떠나간다. 흉하다. 이것을 재앙이라 말한다.
象曰 弗遇過之(불우과지) 已亢也(이항야)
불우과지는 이미 높이 오름이다.
上六은 소과(小過)와 진(震)의 극(極)에 처했다.
上六은 소과의 마침인데도 그 이치에 맞지 않게 과(過)하기 때문에 재앙을 자초한다.
上六은 아래의 정응 九三과 응하지 못한다.
九三이 경계하여 과하게 방비하고 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소 과한 소과(小過)와 격분해서 나아가는 진(震)의 극(極)에 있는 上六은
자칫 대과(大過)하기 쉽고 흉하혀 재앙을 초래한다.
상전에도 만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이미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上六이 효변하면 화산려(火山旅)이다.
시의에 맞게 유순하고 겸손히 행동해야 화를 면할 수 있다.
上九는 높은 지위에 있다고 교만을 떨다가 그 거처를 불태우게 된다.
먼저는 웃지만 뒤에는 울부짖게 된다.
교만하고 경솔하게 굴다가 소를 쉽게 잃게 되고 흉하게 된다.
63. 수화기제(水火旣濟)
일이 완성되었으니 조만간 다시 어지럽게 된다. 안정에 힘쓰되 소인은 쓰지 말라
끝이라고? 다시 시작이다!
괘사(卦辭)
‘기제’(旣濟)는 일을 성취하다, 마치다, 구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기제(旣濟)의 효사들은 모든 위(位)가 바르고
양과 음이 모두 친비(親比)하고 상응(相應)하여 완벽히 조화롭다.
괘상은 감상리하(坎上離下)이다.
감(坎)은 물, 중남, 돼지, 귀, 술, 병, 근심, 북쪽, 도적, 험난함, 빠짐을 뜻하고
리(離)는 꿩, 눈, 해, 문명, 믿음, 중녀, 무인, 무기, 분별, 지혜, 화려함,
달라붙음을 뜻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고,
불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성취가 있음이다.
기제(旣濟)는 큰일은 이미 성취되어서 기울기 쉽고,
작은 일에나 형통하기 때문에 바르게 함이 이롭다.
기제(旣濟)는 모든 효사가 마땅한 자리를 얻었으니
그 완성을 견고히 지켜서 안정하는 것이 덕이다.
일견 안정되어서 좋아 보이겠지만 정체되어 변화가 없다.
비록 먼저는 잘 진행되기 때문에 길하지만 마침내 다시 어지럽게 된다.
기제(旣濟)가 극에 이르면 다시 미제(未濟)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변화로의 혼란이 있기에,
일이 성취된 뒤에는 다시 어지러워짐을 경계해야 한다.
군자도 환난을 고려하여 미리 방비한다.
효사(爻辭)
[初九] 曳其輪(예기륜) 濡其尾 无咎(유기미 무구)
그 수레를 뒤로 당긴다.
그 꼬리를 적시면 허물이 없다.
象曰 曳其輪(예기륜) 義无咎也(의무구야)
예기륜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
初九는 기제(旣濟)의 시작이다.
기제(旣濟)에는 성취한 것을 안정시킴이 덕이다.
따라서 대천을 건너는 것과 같은 위험한 일은 해서는 안 된다.
그 수레를 뒤로 당긴다.
어린 여우는 물을 건널 때 꼬리들 들어서 젖지 않도록 하는데,
꼬리를 적신 것은 건너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
도리어 건너지 못하고 되돌아오면 허물이 없다고 했다.
기제(旣濟)의 때에는 다시 미제가 될 것을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이 바르다.
상전에도 수레를 뒤로 당겨서 돌아오면 의리상 허물이 없다 했다.
初九가 효변하면 수산건(水山蹇)이 된다.
나아가면 험난하고 돌아오면 명예가 있다.
[六二] 婦喪其茀(부상기불) 勿逐(물축) 七日得(칠일득)
부인이 수레의 덮개를 잃어버렸다.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
象曰 七日得(칠일득) 以中道也(이중도야)
칠일득은 중도로 하기 때문이다.
六二는 지혜롭고 중정(中正)한 부인이다.
위로 중정한 덕의 九五와는 정응이다.
기제(旣濟)의 때, 九五는 이미 성취했기에 六二를 등용하려는 뜻이 없다.
六二가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부인이 수레 덮개를 잃어버려서 나갈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명하고 중정(中正)한 六二는 수레 덮개를 쫓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면 조만간 잃은 것을 되찾게 된다.
그것을 쫓게 되면 중정한 덕(德)을 잃는 것이다.
중도를 지켜서 기다리면 7일이 지나기 전에 다시 때가 온다.
주역괘는 6자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의 주기를 마치고
다시 처음 상태로 회복된다는 의미이다.
머지않아 미제(未濟)의 때가 오면 반드시 쓰임이 있다.
六二가 효변하면 수천수(水天需)이다.
모래 사장에서 기다린다.
다소 구설은 있겠지만 결국 길하다.
[九三] 高宗伐鬼方(고종벌귀방) 三年克之(삼년극지) 小人勿用(소인물용)
고종이 귀방을 정벌하였으나 3년 만에 이루었다.
소인은 쓰지 말라.
象曰 三年克之(삼년극지) 憊也(비야)
삼년극지는 고달픈 것이다.
九三은 리(離)의 극에 있다.
九三은 과강(過剛)하고 위(位)가 바르지 못해서 위태한 위치에 처해서 과도하기 쉽다.
기제(旣濟)에 과강하면 마치 옛날 고종이 귀방(흉노족)을 정벌했을 때와 같다.
천하가 이미 안정되어 있는데
멀리 변방을 정벌하기 위해서 위엄과 무력을 사용함이다.
고종같은 훌륭한 왕도 귀방 정벌에 3년이나 걸렸다.
위엄과 무력을 사용해서 백성을 구제하는 것이 군주의 일이라 하지만,
이미 성취되어 안정되어 있을 때에는
군대를 움직이는 것 같은 큰일을 벌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훌륭한 고종도 그러하기 때문에 소인은 절대 쓰지 말라고 경계했다.
상전에서도 고종이 귀방을 3년 만에 정벌하면 고달프다 했다.
九三이 효변하면 수뢰둔(水雷屯)이다.
몰이꾼도 없이 사슴사냥을 갔다가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군자는 일의 기미(幾微)를 살펴서 도중에라도 그칠 수 있다.
[六四] 濡(유) 有衣袽(유의여) 終日戒(종일계)
배가 샌다.
낡은 누더기로 그 틈을 막는다.
종일 경계한다.
象曰 終日戒(종일계) 有所疑也(유소의야)
종일계는 의심하는 바가 있음이다.
六四는 성품이 바른 대신이다.
기제(旣濟)의 절반이 지나서 점차 결점이나 틈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치 배 바닥의 작은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과 같다.
낡은 누더기로 틈을 막아서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도
종일토록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성품이 바른 六四는 종일 경계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도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다.
상전에도 종일 경계함은 환란이 닥칠까 의심하기 때문이라 했다.
기제(旣濟)의 때 가장 큰 미덕이다.
六四가 효변하면 택화혁(澤火革)이다.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두루 믿음을 얻어서 변혁을 행하기 때문에 길하다.
[九五] 東隣殺牛(동린살우) 不如西鄰之?祭(불여서린지약제) 實受其福(실수기복)
동쪽 이웃이 소를 잡아도 서쪽 이웃이 검소한 제사를 드린 뒤에 받는 복보다 못하다.
象曰 東隣殺牛(동린살우) 不如西鄰之時也(불여서린지시야)
實受其福(실수기복) 吉大來也(길대래야)
동린살우는 서쪽 이웃의 시운만 못하고 실수기복은 크게 길함이 오는 것이다.
九五는 강건하고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아래의 六二와는 정응이다.
기제의 중간을 지났으니 이제 곧 미제가 된다.
六二와 九五는 모두 중정하지만,
六二는 기제(旣濟)의 아래에 있어 아직 나아가 이룰 일이 있지만,
九五는 기제의 극(極)에 가까웠고 감(坎)의 험난함에 빠져있다.
극(極)에 이르면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곧 쇠락하게 된다.
아무리 제물이 성대하다 해도 시운보다 못하다.
비록 동쪽의 은나라(九五)가 성대히 제사 드리고,
서쪽의 주나라(六二)가 검소한 제물로 제사 드려도
더 지극한 정성과 시운 때문에 서쪽 주나라(六二)가 더욱 큰 복을 받는다.
상전에도 동쪽 이웃이 소를 잡음이 소쪽 이웃의 때만 못하고
받는 복이 큰 것은 크게 길함이 올 것이라 했다.
九五가 효변하면 지화명이(地火明夷)이다.
기자는 자신의 밝음을 감추고 거짓 광인 행세를 했다.
바르게 하면 이롭다.
[上六] 濡其首(유기수) 厲(려)
여우가 강을 건너가다가 그 머리를 적신다. 위태하다.
象曰 濡其首?(유기수려) 何可久也(하가구야)
유기수려는 어찌 오래 가겠는가?
上六은 기제(旣濟)와 감(坎)의 극(極)에 있다.
안정한 때가 극(極)에 있어 변해서 어지러운 시기가 조만간 온다.
안일함에 젖어서 다가올 혼란에 대비하지 않으면 위태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上六은 겁 없이 뛰어들었다가 물이 머리에 까지 이르게 되므로 위태롭다.
상전에도 머리를 적셔서 위태한 것이 어찌 오래 가겠는가 하였다.
上六이 효변하면 풍화가인(風火家人)이 된다.
가정을 다스림에 있어서 신실한 믿음(孚)과 위엄(威)이 조화를 이루면 마침내 길하다.
64. 화수미제(火水未濟)
미완성이므로 오히려 완성의 가능성과 어울림을 보고 성취를 위해 노력하라
네버엔딩 스토리
괘사(卦辭)
‘미제’(未濟)은 아직 일이 성취되지는 못한 ‘미완성’을 의미한다.
주역을 미완성인 미제(未濟)로 마침은,
하늘의 도(道)는 끝없이 순환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기제(旣濟)는 미제(未濟)를 낳고 미제는 기제를 낳는다.
만물은 다해서 그침이 없기 때문에, 미제(未濟)로 주역을 마무리한 것이다.
미제(未濟)는 아직 일이 완성되지 않아서 분발하여 성취하려고 애써야 한다.
괘상은 기제(旣濟)를 거꾸로 뒤집은 리상감하(離上坎下)이다.
불은 위에 있는데, 물이 그 아래에 있다.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기 때문에,
서로 만나서 쓰임이 없어서 미제(未濟)이다.
기제(旣濟)는 모든 위(位)가 바르고 서로 상응하지만,
미제(未濟)는 모든 위(位)가 바르지 못하다.
미제(未濟)는 다행히도 응(應)과 비(比)는 이룬다.
음양이 모두 어울림은 있기 때문에, 서로 뜻을 함께 하려고 한다.
미제(未濟)가 형통한 것은 상응하는 강유(剛柔)인 九二와 六五가 모두 중(中)을 얻어서,
그나마 미제(未濟)에 선처(善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괘의 九二가 감(坎)의 험난함 속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어린 여우가 용감히 강을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움이 없다고 했다.
미제(未濟)에는 특히 남자가 궁하다고 하는데
세 양효(陽爻)가 모두 위(位)가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기제(旣濟)를 건강한 상태로 간주하면
미제(未濟)는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게 된다.
효사(爻辭)
[初六] 濡其尾(유기미) 吝(인)
어린 여우가 꼬리를 적시니 궁색하다.
象曰 濡其尾(유기미) 亦不知(역부지) 極也(극야)
유기미는 또한 알지 못함이 지극함이다.
初六은 미제(未濟)와 감(坎)의 시작이다.
위가 바르지 못해서 그 성품이 바르지 못하고
양위(陽位)에 있어 나아가려는 뜻만 있다.
음효로 재능이 없고 시작부터 감험(坎險)의 아래에 있기 때문에
위태하여 정응(正應)인 九四에게 의지하려고 나아간다.
初六은 음유하고 구사는 중정(中正)이 아니라
나아가서 감험(坎險)에 빠지게 되면 구제함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상응(相應)을 구하여 자기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감험(坎險) 속으로 나아가면,
마치 어린 여우가 강을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시고 강을 건너지 못함과 같다.
보통 여우는 물을 건널 때 꼬리를 드는데,
여우가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물에 빠져서 건너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아가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니 궁색하다.
상전에도 강을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심은 분수를 알지 못함이 지극하다고 했다.
初六이 효변하면 화택규(火澤睽)가 된다.
후회가 없어진다.
말을 잃었지만 쫓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온다.
어긋나서 싫은 사람(惡人)을 만나면 허물이 없다.
[九二] 曳其輪(예기륜) 貞吉(정길)
수레바퀴를 뒤로 끌어당긴다. 올바르게 하면 길하다.
象曰 九二貞吉(구이정길) 中以行正也(중이행정야)
九二정길은 중도로 바르게 행함이다.
九二는 감(坎)의 중(中)을 얻었고
위로 유순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군주 六五와 정응이다.
九二는 강명(剛明)한 현인으로,
미제(未濟)의 때 양강(陽剛)하고 음위(陰位)에 있어
과강하지 않고 또한 중용을 지켜서 함부로 나아가지 않는다.
六五는 음유가 군위에 있기 때문에 아래의 강명한 九二는 자연스럽게 등용된다.
그러나 강(剛)은 유(柔)를 가볍게 여겨서 핍박하기가 쉽고 물은 불과 상극한다.
九二는 감(坎)의 중이고 六五는 리(離)의 중이므로 물이 불을 꺼뜨릴 수가 있다.
따라서 九二가 자칫 과강(過剛)하면 윗사람에게 불손하기 쉽다.
그러나 九二는 중도(中道)를 지켜서 공손히 신하의 도리를 잃지 않고,
신중하게 나아가는 것이 정도이고 길하다.
수레를 뒤로 끌어당김은,
자신의 나아가는 그 기세를 늦추어서
혹여 윗사람에게 불손을 범하지 않게 경계하는 것이다.
상전에도 九二가 바르게 해야 길한 것은 중도로써 바르게 행하는 것이라 했다.
九二가 효변하면 화지진(火地晉)이 된다.
나아감에 근심스럽다.
굳게 바름을 지키면 길하고 왕모로부터 큰 복을 받는다.
六二는 중정하지만 군주인 六五와 정응이 아니기 때문에,
위로 등용되지 못하고 또한 九四에게 가로막혀서 근심스럽다.
하지만 六二가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결국 큰 복을 왕모(六五)로부터 받는다고 했다.
[六三] 未濟 征凶(미제 정흉) 利涉大川(이섭대천)
미제에 나아가면 흉하다.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
象曰 未濟征凶(미제정흉) 位不當也(위부당야)
미제정흉은 위(位)가 부당함이다.
六三은 감(坎)의 극(極)에 처했다.
위의 上九는 정응이다.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은 감(坎)의 극(極)에 처해서
감험(坎險)이 지극하여 벗어나고 싶지만,
다시 외호괘(3-5 효사)도 감(坎)으로 환란이 연달아 있다.
성품이 바르지 못한 六三은 자신을 구제할 역량도 없고,
덕도 부족한데 나아가려고 하므로 흉하다.
그래서 상전에서도 미제에 나아가면 흉한 것은 지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나 험난함이 극에 이르면 그것이 변하는 것이 이치이고,
위로 지혜가 있고 재능있는 上九가 상응하고 있다.
화수미제의 중간을 넘어 간다면 수화기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서 다함께 대천을 건널 수만 있다면 이롭다.
上九의 응원과 아래의 친비(親比) 九二와 더불어
감(坎)의 험난함을 헤쳐 나가면 이로움이 있다.
때가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六三의 재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六三이 효변하면 화풍정(火風鼎)이 된다.
성품이 바르고 공손하고 처음에는 군주 六五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밝은 덕이 있는 六五가 의심을 거두고 등용하기 때문에 마침내 길하게 된다.
[九四] 貞吉 悔亡(정길 회망) 震用伐鬼方(진용벌귀방)
三年 有賞于大國(삼년 유상우대국)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다.
분연히 나아가서 귀방을 정벌하니 3년이 걸려서 천자에게 상을 받았다.
象曰 貞吉悔亡 (정길회망) 志行也(지행야)
정길회망은 뜻을 행함이다.
九四는 비록 위가 바르지 못하지만 상하로 정응(正應)과 친비(親比)가 있으므로,
바름을 굳게 지키면 후회할 일이 없어진다.
九四는 양명(陽明)한 재능이 있지만 음위(陰位)에 있어서
강유(剛柔)를 겸비한 대신이다.
군주 六五와 친비(親比)해서 군주의 신임도 받는다.
게다가 상괘로 넘어와서 미제(未濟)의 중(中)을 지났으니
강양한 자질로서 음유한 군주를 보필해서 올바름을 굳게 지킨다면
기제(旣濟)로 나아갈 수가 있다.
마치 고종이 귀방(흉노족)을 나아가서 정벌했을 때 3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마침내 공(功)을 이루고 천자에게 상을 받게 된 것과 같다.
이처럼 천하를 구제하는 도리는 마땅히 올바름을 굳게 지켜야 한다.
특히 九四가 음위(陰位)에 있기 때문에 굳게 바름을 지키라고 경계하였다.
상전에도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길하고 후회가 없어진다 한 것은
그 뜻이 행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九四가 효변하면 산수몽(山水蒙)이다.
위아래의 음효들 사이에 위치해서
자신의 몽매함을 벗어나게 깨우쳐 주고 인도해줄 스승이 없기 때문에 궁색하다.
[六五] 貞吉无悔(정길무회) 君子之光(군자지광) 有孚吉(유부길)
굳게 바르게 하면 길하고 후회가 없다.
군자의 빛남이다. 반드시 길하다.
象曰 君子之光(군자지광) 其暉吉也(기휘길야)
군자지광은 그 빛남이 길함이다.
六五는 리(離)의 중을 얻어 지혜롭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유순한 군주이다.
아래 강건하고 중용(中庸)의 덕이 있는 현인 九二와 정응이고,
아래 양명(陽明)한 대신 九四와는 친비하다.
六五는 상괘 리(離)의 주효로서 밝은 덕의 주체이지만,
음유(陰柔)로 자신의 덕을 오래토록 지키기 힘들기 때문에
굳게 바르게 지켜야 길하다고 경계하였다.
정도(正道)를 굳게 바르게 지켜서 신하들을 두루 등용하면
사방으로 군자의 도(道)를 빛내고 두루 믿음을 얻어서
길하고 후회할 일이 없고 반드시 길하다.
유부길(有孚吉)은 군자의 빛남이 믿음을 얻어 길하다고 해설하고
또 반드시 길하다고도 해설한다.
상전에서도 군자의 빛남이 믿음을 얻어 길함은 그 빛남이 길하다는 것이라 했다.
六五가 효변하면 천수송(天水訟)이다.
구오는 송사의 주체로서 중정(中正)한 덕이 있는 군주이다.
따라서 지나치거나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송사가 크게 길하다.
[上九] 有孚于飮酒(유부우음주) 无咎(무구)
濡其首(유기수) 有孚失是(유부실시)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다.
머리를 적시듯이 과하면 필히 마땅함을 잃게 된다.
象曰 飮酒濡首(음주유수) 亦不知節也(역부지절야)
음주유수는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함이다.
上九는 미제(未濟)와 리(離)의 극(極)에 있다.
上九는 미제의 마침이기 때문에 지위가 없고
음위(陰位)에 있어서 과강하지 않고 조급히 망동하지 않아서 허물이 없다.
미제(未濟)의 극은 곧 기제(旣濟)이므로
미제(未濟)의 때에서 기제(旣濟)의 때로 변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유유자적 하며 술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고 머리가 술에 잠길 정도로 지나치면
바름을 잃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해롭다.
그저 순리를 따라서 시운을 살피면서 편안하게 유유자적 하더라도
절제함으로 서로 믿음을 나눠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허물을 자초한다.
상전에서도 술을 마심에 있어 그 머리를 적신다고 한 것은
절제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완성의 끝이라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극한 정성으로 마땅한 의리와 그 때를 살펴서
그 마땅함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上九가 효변하면 뇌수해(雷水解)이다.
환란이 해소되는 종극의 시기에 유일하게 위(位)가 올바른 上六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고 어지럽히는 六三(새매)를 쏘아서 잡기 때문에
이롭지 않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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