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관형찰색
1.
오늘날의 의학은 너무 분과를 나누다 보니 한 사람의 병을 완치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상태가 되었지요.
그러나 어떠한 병이든가 국부적인 것은 전체로 나타나며
훌륭한 의사란 어떤 한쪽에 치우친 觀으로 병자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병자의 모든 것을 재빨리 파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합적’이란 말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이 ‘종합적’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일년, 이년 정도의 연륜이 걸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그렇다고 턱없이 세월만 보낸다고
이 ‘종합적인 觀’이 세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지요.
바로 여러분이 의사로서 가장 중요한 종합적인 관을 세우기 위해
지금 여기 와서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거지요.
치료를 함에 있어서는 먼저 진단이 앞서야 되지요.
舍岩針에서 사용하는 60穴을 외우고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나
진단을 하는 차원에서 나타나는 舍岩針法의 특징은 주목을 해야 합니다.
四診(望・聞・問・切) 중 望診에 대해 강의를 하겠습니다.
觀形察色을 하는 望診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觀形은 陰陽・寒熱・表裏・虛實 또 七情之浮沈을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곧 지금까지 말씀 드린 六經上으로 나뉘어진 形 즉,
중심으로 모이는가? 바깥으로 퍼지는가? 사물사물 피어오르는가? 혹은 내려가는가?
하는 것을 보는 겁니다.
그런데 六經의 形보다 먼저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균형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의 陰陽 즉 天(頭)과 地(身)의 비율을 보는데
옷을 입지 않은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몸에 비해 머리가 작으면 음적이고, 몸에 비해 머리가 크면 양적이 되지요.
쥐의 경우 머리는 작고, 머리에 비해 몸통이 크니까
陰濕한 데에 살고, 바깥에 나오길 싫어합니다.
이에 반해서 말(馬)은 머리가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구유를 보면,
목 정도의 높이에 나무를 걸쳐 놓기만 해도 도망을 못 갑니다.
성격이 陽的이므로 악착같이 뛰어서 넘어가려고만 하지
걸쳐 놓은 나무 밑으로 기어나가려는 노력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쥐가 밝은 것을 싫어함에 비해 말은 어두운 것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病에도 크게 陰病과 陽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환자를 보고 陰陽을 판별하면 그 사람의 병은 체질적으로
“陰的으로 많이 오겠구나, 陽的으로 많이 오겠구나!” 하는 짐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한 觀形法인데도 이걸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걸 모른 채 진단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눈, 코, 귀, 입의 배열을 보는 것은 四象이요,
머리와 몸통의 비율을 보는 것은 陰陽입니다.
‘天圓地方’이라고 한 것은,
머리는 둥글고 몸은 모나게 생겼다는 뜻이지
옛 사람들이 땅을 모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頭大身小면 陽的인 체질, 身大頭小면 陰的인 체질입니다.
머리, 얼굴, 어깨가 발달되었는데 다리 쪽이 허약하면
陽的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프와 발이 크고 손은 작고 눈・코・귀가 아기자기하다면
이 사람은 陰人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陽人은 陽的인 病, 陰人은 陰的인 病이 오기 쉽습니다.
이렇게 음양이 구별되면
八網(陰陽・寒熱・表裏・虛實) 중 寒熱은 저절로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陽人은 陽實陰虛, 陰人은 陰實陽虛임을 알 수 있으므로
八網의 虛實 또한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病을 관함에 있어서,
陰陽을 알지 못하고서는 寒熱과 虛實을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또 확률적으로 봐서, 陽人은 表病이 많고,
陰人은 裏病이 많음으로 미루어 보면
陰陽 寒熱 表裏 虛實의 八網이 저절로 결정되게 됩니다.
“醫學入門”과 “東醫寶鑑”의 설이 서로 상반되어
아직까지도 일정한 정설이 없는 병이 近視와 遠視입니다.
“東醫寶鑑”을 보면 ‘近視眼은 陰實陽虛’라고 되어 있습니다.
처방은 주로 氣를 보충시키는 약을 쓰도록 해 놓았습니다.
빨간색을 볼 수 있는데 파란색을 못 본다면
어디가 實하고 어디가 虛한지 色盲에 대한 연구를 해 보십시오.
유전병인 만큼 치료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치료에 충분한 이론상의 뒷받침은 있지요.
다만 병의 深度에 비해 治療力이 약하다거나 그 深度에 맞춰 치료를 진행시켰는데,
환자가 강력한 치료력을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환자의 뱃속에 積이 있다고 하니,
‘그건 大黃이나 芒硝로 쓸어내리면 돼!’라고 했다 합시다. 이론상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약을 쓰면 자칫 臟器까지 모두 빠져버리고,
심하면 식도와 혓바닥까지 항문으로 나가 버립니다.
물론 죽게 되지요.
‘養正則積自除라’는 말씀과 같이
정기를 서서히 보양하면 적은 스스로 없어진다고 합니다.
或者는 “내가 積은 끝내주지!”하고는,
三稜, 蓬朮, 穿山甲, 皂角刺 넣고
大黃, 芒硝, 厚朴, 枳實이 든 大承氣湯도 배웠으니 넣고,
舍岩針法도 공부했으니까 手少陽三焦經으로 돌리고 퉁기고…. 하면
병은 나을지 몰라도 잘못하면 사람이 죽습니다.
바둑의 격언처럼(我生然後殺他),
나의 실력이나 약물은 强하지 않은데 病의 勢力이 강하면 서서히 접근해야 합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서히 正氣散 정도로 치료하다가 결정적일 때 강한 약을 쓰는 것입니다.
약을 강하게만 쓰면 낫는 병인데 강하게 쓰지 못해서 완쾌시키지 못했을 때
수치심, 열등감, 회의, 절망 따위는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병을 너무 키워서 온 경우,
“적어도 병을 더 심하게 하지는 말라”는 것이 임상가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M선생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병은 낫게 하려고 하지 말고 더하지만 않게 하라!
왜? 더하지 않게 하는 것도 일단은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니까”
몸이 뚱뚱한 사람이 왔는데 熟地黃을 쓰면 안 됩니다.
또 半夏, 南星 따위는 강해서 못쓰니
薏苡仁, 木通, 澤瀉, 車前子 정도로써 利尿만 시켜도 병을 더하게 한 것은 아니지요.
이건 오래만 쓰면 낫거든요.
그런데 뚱뚱한 사람에게 그저 외운 대로 숙지황 한 냥이 들어가는 처방을 썼다면
이것은 병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축구시합에서도 수비를 잘해서 골을 먹지 않는 것이 승리의 한 방법이 됩니다.
‘貪不得勝’ 욕심을 내면 이길 수가 없는 법입니다.
모쪼록 신중히 환자를 대하고 신중히 약과 침을 쓰세요.
주변 친척들에게 약 지어 주고는 “결과가 어때요?” 하고 물었을 때
“글쎄? 별로 나은 것 같지 않아. 병이 더한 것도 아니고….” 이러면 안심하세요.
그런데, “약 몇 첩이면 끝내줍니다. 혹은 침 한 방이면 끝납니다”
부디 이런 웃기는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그렇게 끝내 주려면 약이 강해야 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그만큼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후회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항상 조심스럽게 약과 침을 다루어야 하므로 먼저 陰陽觀이 투철해야 합니다.
다른 어떠한 것도 모두 次善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려운 것이 이 陰陽觀의 터득입니다.
저에게 주역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陰陽구분만 공부하는 데에도 10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또 “100~150개 정도의 처방을 운용하다가
네 나이 마흔이 넘거든 2가지로 줄여서 써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陰陽이 전도된 선입견으로 환자를 보게 되면 자칫 무서운 결과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은 洋方病名과 해부학적 지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해부학적 지식으로서야
어떻게 小腸病을 신경으로 고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萬物은 상대적이라는 것이 오늘 강의의 핵심입니다.
이 상대성을 믿지 않으면 제 강의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위궤양에는 무슨 經絡이 좋을까요? 폐결핵은요?”
하는 질문에 폐결핵은 대체로 마르고 火氣가 있는 사람에게 많이 오므로
手太陽小腸經이나 足少陰腎經을 한번 써봐라 하고 충고할 수도 있지만,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洋方病名, 해부학적 지식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세요.
머리속에 든 상식, 중 고등학교에서 배운 지식, 해부학적 지식들이
한방치료에 방해가 된다고 호소해 오는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참 많다는 것을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새로운 觀을 얻기보다
기존의 지식을 지우고 없애는 시간이 훨씬 더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陰陽을 보는 法에 온 정열을 기울이도록 하세요.
환자를 척보고 먼저 머리가 큰가, 몸통이 큰가, 뚱뚱한가, 말랐는가,
몸이 찬가 더운가, 병이 겉에 있는가 속에 있는가,
이런 것부터 살펴야 합니다.
근시안 이야길 조금 더 하자면 근시안의 동양의학적 원인은
陰實陽虛로 그 처방은 氣를 보충시키는 것이고,
원시안은 반대로 陽實陰虛로 주로 血을 보충시키는 것이라고
“東醫寶鑑”에 근거되어 있다고 했지요.
예를 들어, ‘補中益氣湯’이라는 처방이 氣를 보충시키는 것이라면
근시의 처방이라 할 수 있겠고, 六味地黃湯은 원시에 쓰게 되어있습니다.
어둠을 陰, 밝음을 陽, 달을 陰, 해를 陽, 물을 陰, 불을 陽,
욕심을 陰, 분노를 陽이라고 한다면
근본적 차원에서 볼 때 나는 陰, 너는 陽이 됩니다.
앞의 氣穴論에서 말씀 드렸듯이,
유심적으로 본 八卦類推에서 나를 위주로 생각하면 血이 강해지고,
상대방을 위주로 생각하면 氣가 강해집니다.
에고 즉 자아의 강화가 陰實症인데
타인과의 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陰實이란, 말 그대로 ‘나(我)’라는 생각에 싸여 내 가까운 곳만 보는 것이며
멀리 내다보지 못하는 아집이므로 근시안이지요.
또한 근시안은 자기 에고가 강하므로 저축심이 강하고,
모으고 간직하는 성향이 많고, 나쁜 면으로는 너무 욕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와 반대로 원시안은 남을 많이 생각하므로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희생이나 봉사활동을 좋아하는데 나쁜 면으로는 공격적인 점을 들 수가 있습니다.
히프가 큰 사람(男子)은 재무나 창고지기에 잘 맞고,
머리가 큰 남자는 변방의 군인이나 남을 공격하는 토론대회 같은 자리에 내보내면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잘 해냅니다.
옛날 어느 성인이 자신에게는 세 가지 덕이 있는데,
첫째는 남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고,
둘째는 검약정신,
셋째는 不敢爲先 즉, 남 앞에 감히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서지 않고 陰하게 자꾸 숨어드는 사람은 음모가 많지요.
남 앞에 나서고 싶어하는 사람은 괜히 우쭐거리기를 좋아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그 性格을 잘 관찰하고 잘 이용하면
그 사람과의 대화나 융화를 얼마든지 유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以心治心’ 즉, 마음으로써 마음을 치료할 수가 있지요.
옛날, “傷寒論”을 저술한 張仲景은
脾臟이 약한 환자의 화를 돋우기 위해 갑자기 뺨을 때렸다고 합니다.
환자가 “왜 때려! 의사는 사람을 쳐도 되는 거야? 당장 고발하겠어!”
이렇게 화를 내다가 어느새 脾臟病이 나았다고 합니다.
왜? 이것은 五行의 相克作用 木克土의 원칙으로
감정에 관계되는 병을 감정으로 다스린 한 예입니다.
이렇게 반대방법을 쓰려면 陰陽을 먼저 알아야 됨은 불문가지입니다.
치병에는 약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定心住이고, 둘째는 足心住, 셋째는 丹田住, 넷째는 以心治心法이고,
다섯째가 藥性으로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呪文에 의한 치료법이 있습니다.
定心住라는 것은 아주 고차적인 방법인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치료를 합니다.
즉 아픈 자리에 마음을 놓고 觀하는 방법입니다.
足心住란 발바닥의 湧泉穴 양쪽을 동시에 觀하는 방법입니다.
丹田住란 배꼽 밑의 丹田部分을 觀하는 방법입니다.
呪文은 “東醫寶鑑“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병이 도무지 낫지 않을 때 주문으로 고치는 방법입니다.
즉 三世에 있는 醫聖들에게 치료를 비는 방법입니다.
以心治心法의 최초 원류는 우리나라 탈바가지였습니다.
오늘날의 탈춤문화는 모두 以心傳心法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신라시대 어느 공주가 도무지 웃을 줄을 몰랐습니다.
어떤 의사가 동원되어도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득도한 스님이 탈을 갖고 와서는 뒤집어쓰고 춤을 추자
그만 그 공주가 깔깔깔 웃더랍니다.
그 이후로 민중들에게 감정의 해학적인 치료법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
以心治心法입니다.
이것이 바로 음양치료법이지요.
라즈니쉬 저서 “Journey Toward the Heart”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의사에게 자기 아내의 불임병을 호소했습니다.
의사가 뚱뚱한 아내의 맥을 짚어보더니,
“40일 이내에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 아내는 겁이 나서 太陽之氣, 少陽之氣, 陽明之氣가 일어났지요.
40일 동안의 긴장 속에서 그만 뚱뚱하던 몸집이 홀쭉하게 빠졌더랍니다.
그런데 40일이 지나도 죽지 않으니까 이 부인이 의사에게 와서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예 압니다. 이제 부인은 임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인의 불임은 살이 너무 쪄서 그랬던 것입니다”
씨를 땅에 뿌렸을 때 그 땅에 물이 너무 많으면 싹이 트기는커녕 땅에서 썩어버리지요.
그러므로 뚱뚱한 여자들이 임신을 쉽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濕하고 冷하니까 씨가 물에 불어서 싹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한편 바싹 말라서 火氣가 많은 사람들도 임신을 잘 못합니다.
가문 땅에 씨를 심었는데 어떻게 자라겠어요?
특히 이런 사람은 유방에 통증이 심합니다.
이렇게 마른 사람은 十全大補湯이나 六味地黃湯에 五味子를 넣고,
인삼은 빼고, 生地黃, 麥門冬, 天門冬, 黃精도 넣어서 陰氣를 보충시켜야 합니다.
또한 뚱뚱한 사람이 임신을 못한다 하면 이런 경우는 濕을 빼주어야 합니다.
補中益氣湯이나 二陳湯에 利尿劑 좀 넣고,
너무 냉하지 않을까 염려되면 吳茱萸, 艾葉, 益母草를 추가시킵니다.
이게 곧 임신약이 되는 거지요.
외울 필요도 없어요. 陰陽만 알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의사는 약을 쓰지 않았던 것이지요.
우리 집에 살 좀 빼달라고 오는 여자들이 있는데,
이 때 半夏, 南星 같은 것을 넣어주면 목이 건조해지니까
음료수를 연신 마시게 됩니다.
살을 좀 빼주면 물이 그렇게 맛있다나요.
사흘 굶고 난 후 열흘을 왕창 먹는다면 만사 수포로 돌아가고 말지요.
그러니까 이 의사처럼,
아예 죽는다고 엄포를 놓으면 겁이 나서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지요.
죽음에 대한 공포 이외에
식욕과 음식을 떼어 놓을 수 있는 방편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러한 以心治心法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친구를 잘 지도하려면 거만한 사람 혼내주고,
가난한 사람에겐 돈을 좀 주고,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은 포커를 해서 돈을 따버려야 합니다.
또 매일 여자 밝히는 사람은
성병으로 자칫 AIDS로 큰 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겁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 공포심이 足太陽膀胱經 手太陽小腸經을 쫘악 지나가게 되고
거기에서 계율정신이 나오게 됩니다.
한편, 그저 “남자는 더러운 존재야!”하면서
남자를 송충이 보듯 하는 여자에겐
가끔 Disco홀에 가서 부비는 즐거움을 일러주어야 합니다.
너무 극단적인 사람은 말년에 가면 음탕해지기 쉽습니다.
너무 냉랭한 이런 여자는 少陰君火의 불로 따뜻하게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以心治心法을 염화약방문의 “안경지옥”에서
‘너와 나의 관계’로 얘기를 해 놓은 것입니다.
이번에는 ‘以心治心論’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기껏 30전후의 젊은이가 스스로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다(少陽熱).
남몰래 주색을 밝히던 사업가가 당뇨병에 걸렸다(少陰君火에 의함).
반장선거에서 패배한 어린이가 갑자기 밥맛을 읽고 수척해졌다(少陽熱).
깜짝 놀란 임신부가 낙태를 한다.
애인을 잃은 처녀가 불면증에 걸린다.
의심 많은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욕심 많은 할머니가 너무 비대해서 천식으로 고생한다.
이렇게 수많은 질병의 근본은 인간의 한 생각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經絡의 허실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다스림을 등한히 하고 질병을 고친다는 것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돋아나기 마련입니다.
의술 이전에 修心이라고 강조한 옛 명의가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太乙眞人의 ‘七禁文‘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少言語 養內氣
말을 적게 하여 內氣를 기르고,
戒色慾 養精氣
색욕을 조심하여 정기를 기르고,
薄滋味 養血氣
입맛을 담백히 하여 血氣를 기르고,
嚥精液 養臟氣
진액을 보존하여 五臟의 기운을 기르고,
莫嗔努 養肝氣
분노를 조절하여 간장의 기운을 기르고,
美飮食 養胃氣
음식을 조절하여 위장의 기운을 기르고,
少思慮 養心氣
망상을 적게 하여 心氣를 기를지니라.
이 모두가 마음을 경계한 뜻이니 조화 있는 중도의 체득은 養生最高의 비결입니다.
그저 약간의 의술을 내세우려 하지 말고 환자에게 이 비법을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가족끼리 불화하여 쌓인 불만과 실망 등으로 정신병이 생겼는데
명의라면 그 불화의 원인을 찾아낼 것입니다.
화엄경에 “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듯이,
천하 모든 질병의 조작을 한 생각이 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서야
어찌 훌륭한 의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분열적인 의식구조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인에게도 괴로움을 파급시킵니다.
그런데 분열의 諸原因이 ‘나’의 강조에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내 나라, 내 종교, 내 고향, 내 가족, 내 물건….
이렇게 나타내어지는 ‘나(我)’는 아무리 철저히 가면을 씌우고 미화를 시켜도
결국 나의 확대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天(頭)과 地(身), 陰과 陽의 유심적 관찰을 중요시하는데,
陽實陰虛인 원시안은 나보다는 타인을, 금생 보다는 내생을,
이승보다는 천당이나 극락을 생각하기 때문에 현장을 못 보지요.
陰實陽虛인 찰나주의 즉, 근시안적 문화는 가까이는 잘 보지만 멀리 보질 못하지요.
그저 오늘만을 생각합니다.
産兒制限 표어를 보세요.
지난날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는데,
지금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그렇다면 90년대쯤엔 ‘무자식이 상팔자’로 되겠지요.
자식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 좋고,
마누라가 없으니 바가지 긁히지 않아서 좋은 독신주의자에겐
정부에서 원호금을 주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러한 陰實陽虛의 家庭敎育을 보면,
“네가 공부 잘해야 동생이 본받을 것 아니냐!”
혹은 “이 엄마 아빠를 좀 닮아라!”하며 Ego의 교육을 시킵니다.
참으로 조잡하고 위태롭지요.
약 10년 전,
일본은 수출 실적이 좋아서 달러 보유액이 10억 달러에서 70억으로 늘었습니다.
이것을 본 유태인들이 평가절상과 평가절하를 이용한 달러장사를 했습니다.
일본의 재무담당자들은 국고에 달러가 많이 쌓임을 좋아하다가
큰 손해를 보고 말았지요.
엔화가 평가 절상되고 달러 값이 내려가게 되었을 때
그 차액을 유태인들이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만 생각하다가 현재를 보지 못하는 경우나,
현재에만 집착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경우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입니다.
陰과 陽, 天과 地, 나와 너의 비중을 항상 평등하게 한다 함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나’라는 탈을 쓰고 나면 반드시 ‘남’이라는 상대적인 경우가 동반됩니다.
나와 남이라는 관계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타협하고 조정을 해도 불평등하기 마련입니다.
인류의 건강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충고는 자아의식으로부터의 탈출입니다.
진리를 깨달음이 곧 자유이지 나의 행복을 추구함이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필히 타인의 경계와 부딪치게 되므로 충돌이 불가피해집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그 사실이 전쟁을 조장하고 야기함은
실로 아이러니컬한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추구함이 없이 쉬다가 문득 무아의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우리들은 비로소 온갖 망상에서 비롯된 일체의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以心治心法이지요.
望診이란 형상을 보는 것인데,
洋方病院에서 위궤양이라 하든 폐결핵이라 하든
먼저 형상을 보고 색깔을 봐야 합니다.
이것은 원시적인 치료법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기초적으로 반드시 익혀야 되는 과정입니다.
이번에는 입술로써 任脈(陰)과 督脈(陽)의 특성을 얘기하기로 합니다.
陰과 陽을 보았으면 이제 任脈과 督脈을 보아야 합니다.
몸의 이상이 맥에 나타나듯 입술에도 나타납니다.
이때 任脈과 督脈의 차이를 잘 살펴보면 관상학에 입술이 길흉의 판단 기준이 되듯,
한의학에서도 診斷上 입술의 厚, 薄, 色, 光澤, 大小 등을 보게 됩니다.
아랫입술이 별나게 두껍고 윗입술이 얇은가, 이와 반대인가,
양 입술이 모두 두터운가, 혹은 얇은가, 입술이 긴가, 짧은가 등을 봅니다.
그리하여, 督脈쪽이 발달되어 있으면 陽的인 사람,
任脈쪽이 발달되어 있으면 陰的인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매부리코에 윗입술이 발달된 여자는 절대 임신이 불가능합니다.
코와 귀는 陽이고, 눈과 입은 陰입니다.
그러므로 코가 크고 뾰족하고,
윗입술이 발달되어 있는 여자들은 임신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한편, 남자의 코가 돼지 코에다 아랫입술이 발달되어 있는 경우는
아주 탐욕스럽고 陽氣가 부족하여 어떤 일을 추진력 있게 해 내질 못합니다.
어린아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서 볼 때 윗입술이 툭 튀어나온 아이를 두고,
“이 아이는 질문이 무척 많겠군요.
성격이 까다롭고, 공연히 이것저것 간섭도 잘 할 겁니다.
또 고집이 있으므로 창조성이 뛰어나지요?”
이렇게 추리를 해서 몇 마디 들려주면,
환자들이 “어떻게 아시느냐”고 놀랍니다.
친구나 동업자를 사귈 때 耳・目・口・鼻가 정연한 사람을 사귀세요.
자신이 매부리코에 윗입술이 두텁다면, 코가 좀 작고 입술이 얇은 배우자를 구하세요.
그러나 이와 반대의 남녀가 만나게 되면 남자가 陰的, 여자가 陽的이 되어,
남자는 그저 소극적으로 집안에서 잠이나 자고 직업을 못 구하는데,
여자는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하려 하므로
陰陽의 조화가 맞을 법도 하나 불행해지기 쉽지요.
사귀는 여자가 있는 사람은 오늘 당장 가서 입술을 한번 보세요.
아랫입술에 비해 윗입술이 발달되어 있으면
성격이 陽的임을 이내 확인할 수 있겠지요.
그런 사람에겐 자꾸 ‘잘한다, 잘한다!’하고 칭찬을 해줘야지 조금만 잘못했다고 하면
이내 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마음이 곤두서고 떠나갈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아랫입술이 두툼하게 잘 발달된 여자는
매사 믿기를 잘하고 어리석으므로 자주 지적을 해준다거나
깜짝 깜짝 깨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양 입술이 잘 조화된 여자, 남자를 만나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용이하도록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운명이지요.
서로 맞추고 양념을 조금 치고 해서 살려고 해야지,
상대의 성질을 고치려 하면 선천적으로 타고 나온 성질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任脈과 督脈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것을 추리해낼 수 있고
엄청나게 많은 病變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道學공부나 심리적인 정황을 다 이해하여도
병이 잘 고쳐지지 않을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우리네 마음이 추해 있고,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취객이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택시를 타더니 “정부종합청사로 갑시다” 했어요.
막 차를 출발시키던 택시기사가 “여기가 정부종합청사 앞이요”하며 도로 차를 세우니,
그 취객이 말하기를 “야! 다음부턴 택시 너무 빨리 몰지 마” 하더라더군요.
우린 이렇게 취해 있습니다.
자기가 취한 것은 모르고 남만 취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 친구 하나는 하도 두루두루 아는 게 많아서 ‘문 두루’라고 불리는데,
두루 아는 게 많은 이러한 사람이 착각에 빠지기 쉽고 창조성이 부족하지요.
이 친구가 하루는 술이 취해서 옆집 대문을 자기 집인 줄 알고 쾅쾅 두드렸어요.
그러자 옆집 주인이 나와서
“여긴 우리 집이니 당신 집인 이 옆집으로 가세요”라고 일러 주었지요.
그러자 대취한 문두루 왈.
“야! 니가 우리 집에 잘못 들어와 있는지 어떻게 알어? 임마!”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망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몸에 밴 취기와 망상을 깨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늘 앞서가는 사람과 친하세요.
그래서 자기보다 나은 점을 배우세요.
국민하교 6학년이 국민학교 1, 2학년 꼬마들이나 데리고 놀고 큰소리치다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5학년짜리만 만나도 슬슬 꽁무니 빼는 아이들,
이런 애들은 나이를 먹어도 마찬가집니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여기까지 와서 배우려고 하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道心입니다.
개하고 포커를 즐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나 하고 한 사람이 구경을 가서 보니, 아니?
개가 배팅도 할 줄 알고 투 페어면 죽을 줄도 알고 아주 포커에 훤하거든요.
그런데 한 번도 개가 돈을 따지를 못해서 이를 궁금히 여긴 구경꾼이
그 개 주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영리한 개와 포커를 하는데 어찌 한 번도 지지 않소?” 하니까.
“걱정 마시오 이 개는 좋은 패가 들어오면 꼬리를 흔드오”
이와 같이 매일 자기에게 지는 상대하고만 게임을 하는 사람은 Egoist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Ego를 죽일 생각이 전혀 없는 위험한 사람입니다.
나이도 얼마 되지 않으면서 후배들 모아 놓고 강좌 하는 버릇 가진 사람,
특히 저 같은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왜?
단상에 올라서서 내려다보고 얘기하는 이 기분. 삼삼하거든요.
이것도 일종의 명예욕, 권력욕 같은 것입니다.
대학교수, 선생….이런 사람들도 일종의 권위주의자라 할 수 있지요.
단상에서 강의해 본 사람은 단상을 뿌리치고 내려오지 못합니다.
아뭏든 스승이나 선배 없이 그저 못난 사람들 데리고 가르칠 때
자기 자신의 Ego를 누가 지적하고, 누가 죽여주겠습니까?
任脈과 督脈의 판별만으로 모든 병을 다 알아 맞춘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눈매가 찢어지고 코가 돼지 코라 하더라도
任脈이 발달되어 督脈을 이기고 있으면 웃는 모습이 됩니다.
한편, 눈이 웃는 모습이고 그리고 코가 잘 생겼다고 하더라도
任脈보다 督脈이 발달되어 있으면 미운 얼굴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입이 가장 결정적인 기준이 됩니다.
입술은 天과 地가 만나서 氣를 교차시키는 곳이지요.
여러분, 어떤 가수가 노래할 때 보면 입술이 자주 옆으로 돌아가지요.
이렇게 입술이 실룩실룩하는 사람들은 좌우의 병변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입술의 上・下는 陽과 陰, 否定과 肯定을 나타내고,
중간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누면 ‘나’ 중심이냐 ‘너’ 중심이냐 등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에 병이 오면 血虛하므로 四物湯을 쓰고,
오른쪽에 병이 오면 氣虛이므로 四君子湯을 써라”고 하는 것도
어떤 생각의 기운이 그렇게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몸을 上, 下, 左, 右 즉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통과 머리만 보지 말고 입술 모양도 보고 눈 꼬리도 보고 전후도 살피며
전체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가령, 왼쪽이 특별히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면
“아하! 저 사람은 어떻겠구나”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눈(目)이나 여자들 유방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좌우 대칭이 되지 않습니다.
또 그렇게 좌우 짝이 안 맞는 것이 정상이지요.
대체적으로 좌측은 형상적으로 실하지만 기가 없고,
우측은 기운은 있는데 형상적으로 좀 부족한 법이지요.
이러한 좌우의 개념을 여러분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上・下・左・右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이젠 전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지요.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의 이름을 모를지라도 몸 색깔, 입모양, 지느러미,
전체의 균형….등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내 그 물고기의 성격을 판별할 수 있지요.
여러분 복어를 먹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와질까요, 더워질까요?
차게 되겠지요.
그것은 머리와 몸통의 비율이 陰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이 陰毒을 약으로 쓰는 것이지요.
陰陽이 고루 들어있는 쌀은 약으로 사용치 않으나
陰陽 중 어느 한 편에 치우친 복어는 술국으로 씁니다.
그렇지만 옛날 사람들이 이 복어를 먹어보고
어디에, 어느 병에 좋으니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긴 모습을 척 보고 ‘어디에 좋겠구나’하고 느낀 것이지요.
그런데 이 복어를 뚱뚱하고 몸이 냉한 사람이 정력 좋아지라고 먹는다면,
그 부인은 머지않아 입을 한 자나 빼어 물고 친정으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陰에 陰毒을 보탰으니까요.
바로 이러한 안목이 한방입니다.
또 복어요리에 설탕을 넣겠습니까? 고춧가루를 넣겠습니까?
당연히 고춧가루가 들어가야 陰毒이 발산되겠지요.
우주가 워낙 변화무쌍하므로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머리에 비해 몸집이 크면 아랫입술이 발달되고,
머리 쪽이 더 크면 윗입술이 발달된다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몇 가지 원리만 찾으면 사물을 보는 지혜가 생기게 되지요.
진리는 복잡한 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알고 나면 마음이 담담해져서
모든 걸 관조하는 상태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엔 더욱 마음이 우아해지고 정숙해지지요.
전후 차원에서 보면,
배(腹)쪽이 발달된 사람과 등(背)쪽이 발달된 사람으로 구분되는데
이것으로 動과 靜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을 시켰을 때 전자의 사람은 과속으로 전진만 하려할 뿐
좀체 브레이크를 사용치 않고,
후자의 사람은 느림보 운전에 저 먼 앞쪽에 가로수 그림자만 비쳐도
얼른 브레이크에 발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잠시 五行을 자동차에 비유해서 고찰해 보겠습니다.
木은 자동차의 시동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고 하더라도 시동이 안 걸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어떤 일이든 시작할 때는 결단성이 있어야 합니다.
확실히 깨닫지 못해 주저하는 갈등은 일단 실패를 각오한 시작으로 극복하세요.
그 실패가 의외로 깨달음을 이끌어 올지도 모르니까요.
火는 속도 즉, 추진력에 해당합니다.
시동을 걸어 놓고 악셀레이터를 밟을 줄 모르면 안 되겠지요.
그리고 속도를 낼 때는 초고속으로 달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한 土는 운전능력에 해당합니다.
운전을 할 때 오직 전진만 할 수는 없지요.
前・後・左・右로 필요에 따라 조절할 줄 알아야겠지요.
五運六氣上
中央土가 부족한 사람은 변화를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오뚜기처럼 생겼다면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팔과 다리로 움직여 운전을 하므로 ‘脾(土)主四肢’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중앙토의 성격을 먼저 연구한 다음
비장이 中央土에 해당하니까 ‘脾主四肢’라고 한 것이지
脾臟이 四肢를 주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四肢의 역할이 中央土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새의 中央土는 날개와 다리가 될 것이고,
물고기의 中央土는 지느러미가 운전능력으로서 그에 해당하겠지요.
이렇게 五運六氣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확대해석과 유추해석을 잘 해야 합니다.
金은 브레이크에 해당합니다.
시속 1000km를 달리는 차라도 브레이크가 없으면 그 차는 쓸모가 없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를 타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지요.
추진, 전진만을 강조하는 세상이다 보니 브레이크의 중요성을 망각하기 쉽습니다.
바로 太陽寒水라든가 陽明燥金이 여러분의 브레이크입니다.
정지해야 할 때 정지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파탄이 나고 맙니다.
적당한 브레이크!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쇠를 연금할 때 알맞게 달구고 알맞게 찬물에 담궈야 강철이 되지
계속해서 불에 달구기만 하면 나중에는 형체도 없이 녹아버립니다.
이러한 브레이크는 인간의 계율정신에 해당합니다.
水는 기름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시동이 잘 걸리고, 고속 주행이 가능하고,
탁월한 운전사가 있고 브레이크가 좋다 하더라도
기름이 없으면 또한 아무 쓸모가 없지요.
남자가 精을 조절 못하면,
마치 첩첩산중에서 몰고 가던 차의 기름이 고갈된 경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신적인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끈기란 추진력과는 다르지요.
이것은 어떠한 일을 해 나감에 있어서 견디어내는 정력을 말합니다.
요즈음의 세태를 보면 지렁이, 개구리, 달팽이, 불개미, 굼벵이 등 등
별의 별것을 다 정력제라고 찾아다니며 먹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 자위를 과하게 한 사람,
주색을 밝힌 사람들은 일찍 머리칼이 쉬고, 허덕허덕해집니다.
정력이 없으니 매사에 하고 싶은 것이 없습니다.
의욕 없는 폐물이 되고 맙니다.
기름이 없으면 불이 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精이 있고 나서 神이 있는 것입니다.
五行上으로 木은 肝臟에, 火는 心臟에, 土는 脾臟에, 金은 肺臟에,
水는 腎臟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저는 이러한 유물적인 取象은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매일 품고, 쓰고 있는 마음과 연결하기를 좋아합니다.
이번엔 “五志七情論“으로 오장을 살펴봅시다.
“肝主魂, 心主神, 脾主思意, 肺主魄, 腎主志“의 오지칠정은
전과 후를 관찰하기 위해서 반드시 여러분의 사고 속에 넣어놓아야 하는 것이므로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魂은 隨神往來者’라고 배웠지요.
즉 神을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魂이라 하고 ‘神은 兩精相博者’라고 합니다.
魄은 ‘並精而出入者‘, 意는 ‘心有所憶者‘, 志는 ‘意之所存者‘입니다.
이것은 上下左右前後出入을 설명하는 기초이므로 꼭 암기해 주십시오.
意는 뜻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바 ‘心有所憶者‘를 말하는 것으로
국민학교 동창생 영숙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어느 날 영숙이와의 결혼에 뜻을 둘 수 있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있음으로써 뜻을 가지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고 하는 것입니다.
志는 ‘意之所存者‘라.
뜻이 오래 보존되고 굳어서 意志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뜻을 굳게 가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름탱크에 기름을 저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魂은 神을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라 하는데,
“야! 신난다”할 때 신명이 나는 모양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神은 ‘兩精而相搏者‘로
陰精과 陽精이 서로 부딛쳐 일어나는 스파크와도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의 神이란 음양이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또 “陰陽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신이라고 한다”라는 신에 대한 본체론도 아니며,
기분이나 감정의 분화된 상태에서 신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당이 섬기는 신은 우주의 근본인 本體論的인 신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分上에 대한 ‘신명남’일 뿐이지요.
신들린 사람들의 눈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겁이 납니다.
무당들이 “산신령이 내려 온다아….”고 하는 이 신 내림,
신 내림이란
手少陰心經의 어떤 굉장히 개발된 에너지를 전수받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저 갈고 닦아서 이루는 일종의 훈련과도 같은 것입니다.
“어디서건 바른 깨달음을 흐리게 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그가 누구이든 간에 빨리 그에게서 떠나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그가 부모일지라도 죽이고, 친족권속이라 해도 죽여라.
그래야만 비로소 최상의 자유인 해탈에 이를 수 있다.
그 때 그대는 아무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될 것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선사의 말입니다.
이렇게 道에 이르는 길은 훈련과 통제를 벗어난 자연스러운 모습이어야 합니다.
마치 道가 숱한 훈련 속에서 성장하는 줄 알지만
결과는 이와 반대로 구령에 따라 반사적으로 행동하는 기계가 되어버립니다.
진실한 전술을 가르쳤던 孫子나 吳子, “六韜三略”을 쓴 姜太公같은 사람들의 병법은
훈련과 통제에 의한 것이 아니고 투쟁에 의한 것도 아니며,
人情으로써의 응집과, 無我의 정신,
또는 조국을 위해 나를 버릴 수 있는 정신의 유발이었던 것입니다.
훈련과 통제의 목표는 어쩌면 하루에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조국수호의 충정 없이, 깨어 있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훈련만 받은 병사들은
오합지졸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대령의 부인이 불면증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제 남편은 왼쪽으로만 누우면 코를 골아요.
아무리 바로 눕혀도 이내 왼쪽으로 돌아눕고,
그러면 또 코를 곱니다. 치료가 가능하겠는지요?”
의사가 대답하기를
“남편 직업이 현역군인이라면 치료가 아주 쉽습니다.
앞으로는 왼쪽으로 눕기만 하면,
큰소리로 ‘우향 우!’하고 구령을 붙이십시오”
집으로 돌아온 부인은 코를 골며 잠자는 남편의 귀에다 대고
“우향 우!”하고 외치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정면으로 반듯이 누워 조용히 잘 자더랍니다.
이 만큼 무의식중에 우리의 머리속엔 통제와 훈련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道로 들어가는 방해물입니다.
道人은 연약합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누가 와서 향기를 맡아주지 않아도
저 혼자 조용히 피었다가 지는 산속의 꽃처럼 그냥 죽어 주잖아요.
무당의 신 내림이 어느 한 經絡만을 훈련시켜서 강인하게 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로
무술 같은 것을 잘해서 도사라 일컬음을 받는 것도
훈련을 통해서 강인함을 기른 것일 뿐, 그것이 도가 되지 못합니다.
이상을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은 표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肝–魂 : 隨神往來者
心–神 : 兩精而相搏者
脾–思, 意 : 心有所憶者
肺–魄 : 並精而出入者
腎–志 : 意之所存者
다시 ‘前後’로 돌아가 봅시다.
前은 動, 後는 靜, 前은 전진, 後는 후퇴라고 했습니다.
눈이 앞에 달려 있기 때문에 뒷걸음질이 쉽지 않습니다.
만약 눈이 뒤에도 달렸다면 뒷걸음질에도 우린 무척 익숙하게 될 것입니다.
머리 뒷편에는 눈이 없으므로 뒤로는 쉬겠다 후퇴하겠다는 뜻을 두는 겁니다.
앞쪽이 발달된 경우와 뒷쪽이 발달된 경우에 대한 관찰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背와 復을 陰陽으로 구분 지을 때 背가 陽, 腹은 陰이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전이 陰이고, 후가 陽이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陰陽은 무조건 암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손자병법의 맨 마지막 병법인 36계도 그 후퇴의 정도가 빠르면 陽이 되고,
전진이라도 그 정도가 느리면 陰이라 할 수 있으므로
단지 전후만을 두고 음이다 양이다 단정하면 안 되겠습니다.
한 두루마리의 옷감을 3등분하여 수건을 하나 만들고,
비치가운을 하나 만들고, 나머지 삼등분으로는 외출용 투피스를 만들었다고 합시다.
똑같은 옷감이라도, 물을 닦기 위한 수건의 용도라면 陽明燥金에 해당되고,
강한 햇빛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비치가운의 용도라면 太陽에 해당되고,
멋을 추구하는 패션차원의 투피스라면 少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陰陽을 공식화시키지 말고 깊이 관찰을 해야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出入’에 대해서 얘기해 보기로 합시다.
출입은 병을 봄에 있어서 상하좌우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가까운 예로, 윗사람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입이 이만큼 나오지요.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울 때 입이 튀어나옵니까?
그렇지 않지요. 문어같이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동물이 있다면
이것은 기본적으로 성질이 아주 고약한 놈입니다.
아뭏든 환자가 왔는데 상하, 좌우, 전후에 문제가 없다면 출입을 생각해야 합니다.
‘뿔따구가 났다’는 말의 뜻은 화가 났다는 것이고,
상징은 성질 고약한 도깨비쯤이 되지요.
동물 가운데 뿔이 난 것은
이러한 뿔따구의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바다에 사는 성게도 예외가 아님을 아시겠습니까?
척 보면 알 수 있어야지요.
대합조개나 전복을 보면,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이 入하는 느낌이며, 부드럽고 수용하는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여성의 성기도 들어가게 되어 있으므로 자궁입구라고 하지,
출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에게 陰氣가 있어서 빨아들이는 기운이 강합니다.
남성의 경우는 이와 반대입니다.
서양에서는 입구(Entrance)와 출구(Exit)가 분리되어 있지만,
동양에서는 출입구라 하여 전체적인 용도로 사용합니다.
서양은 분리를 동양은 전체를 추구합니다.
집 구조도 서양에서는 침실, 거실, 주방….등으로 분리가 되어 있는데 비해,
우리나라가 서양의 구조를 모방하기 전까지는,
방 하나가 침실, 거실, 주방, 애들 놀이터, 도박장….등의 종합적인 기능을 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불 분리성을 이규태(조선일보 논설위원)씨가 피력했으며,
김용옥씨는 “여자란 무엇인가?”란 저서에서
남성우월론의 대두와 남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의 편협성을 지적했습니다.
지구 위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대성과 평등성을 觀하자는 것으로 그러면 갈등은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은 발산되는 쪽과 들어가는 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 음식은 들어가고 말은 나옵니다.
항문을 그저 糞을 내보내는 것으로만 생각지 마세요.
내보내는 이상의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없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항문의 괄약근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항문 근처의 陰穴은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혈입니다.
활을 쏠 때 정신통일을 위하여
“항문에 대추씨를 하나 넣은 것처럼 하고 힘을 주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곳으로 보이지 않는 기운이 엄청나게 많이 흡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들도 한번 해 보세요.
나가는 곳에도 반드시 들어오는 기운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명상을 깊이 이해하면 알 수가 있습니다.
이마 한가운데 印堂穴이 있는데 이것을 인도말로는 아즈나차크라 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도 호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氣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 도인들은 印堂穴의 기운이 다하면 죽을 때가 가까워 왔음을 느꼈다 합니다.
아즈나차크라 수행정도는 여러분들이 조금만 연구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모진 마음으로 호흡을 길게 끊어본다거나 극
단적으로 수행을 하면 아즈나차크라로 끈끈한 것이 모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에도 출입이 있습니다.
눈이 빤짝이고 호수와도 같이 맑은 눈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지만 浮光 즉,
눈이 부하게 떠서 벌건 사람은 조만간 죽을 相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지요.
만물은 너무 나오거나 너무 들어가게 되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관찰하는데 가장 용이한 것은
呼氣와 吸氣로 呼氣는 陽, 吸氣는 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는 단전호흡을 하고 나서 양기가 좋아지기는커녕 더 떨어졌어요”
“저는 ^456 356 356 123^무술을 배웠는데
자꾸 내쉬는 숨을 많이 쉬라고 해서 힘은 좀 생겼는데
몸에 통증이 생겨 죽을 지경입니다”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사람에 있어서, 날숨과 들숨의 조화는 인생의 모든 조화를 지배합니다.
여러분들 화가 났을 때 어떻게 숨을 쉽니까?
날숨을 씩씩거리며 세차게 내쉬지요.
기분이 좋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십니다.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死와 성적인 오르가즘.
이 두 경우에 다다름에 있어서 공히 호흡이 가빠지고 정신이 풀리게 됩니다.
형태는 달라도 죽음이라는 명제 하에서 죽음에 이르는 현상은 거의 같습니다.
그러니까 호흡 안에 어떠한 감정의 표현이
아주 예민하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목매달아 죽일 때 정액이나 음액이 나온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에 어떠한 오르가즘을 느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이 호흡에 반영됨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사일생했을 때,
“휴우….이젠 살았구나!”하고 내쉬는 숨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은 呼氣를 강하게 하고, 마른 사람은 吸氣를 呼氣보다 강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들숨이 陰이라면 陽人에게 권해야 되고,
날숨이 陽이라면 陰人에게 권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환자에게, “억지로라도 기분 좋은 생각을 해 보세요”라든가
“배꼽에 이르도록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십시오”라고 하면
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고 합니다.
뚱뚱한 사람이 丹田呼吸을 많이 하면
기분이 굉장히 우울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잠이 자꾸 오게 됩니다.
뚱뚱한 사람에겐 呼氣보다 吸氣를 치중하도록 권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모르고 어리석은 치료를 합니다.
길을 가던 목사가 지나가는 꼬마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얘야! ××교회 가는 길이 어디니?” 그
러자 그 꼬마는 친절하게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 참 고맙다. 착하구나. 네게 신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줌으로써
너의 고마움에 대신하려 하는데 나와 같이 교회에 가겠니”하자,
그 꼬마 배꼽을 쥐고 웃으며
“교회 가는 길도 모르는 주제에 어떻게 신에게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꼬마와 같이 교활하고 어리석습니다.
교회에 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에게로 가는 길은 아무데고 있습니다.
교회는 상징입니다.
여러분들이 그까짓 상징으로 가는 길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신으로 가는 길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에이! 자기 마누라 하나 간수 못하는 주제에….’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어찌하여 오늘날까지 숭앙을 받고 있습니까?
신으로 가는 길은 몇 가지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지요.
참으로 신에 이르는 길은 형상이나 현상,
혹은 몇 가지의 지식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 꼬마와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이상의 呼吸觀이 시시한 것같이 보일지 모르나
아무에게서나 쉬 들을 수 있는 觀法이 아님을 아셔야 됩니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짓는 상태가 아닌
자연스런 상태에서의 호흡을 무심코 관찰해 보세요.
呼氣와 吸氣 중 어느 것이 강한가를 알 수 있으며
호흡이 감정과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 애인과 맨 처음 손을 잡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호흡이 긴장되고 빨라짐을 느낄 수 있고,
악몽 같은 기억을 떠올리면 이내 숨이 탁 막힘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호흡과 감정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잘 개발하면 어떤 사물이나 감정에 매이지 않는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상, 하, 좌, 우, 전, 후, 출, 입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형상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환자가 오면 이것을 보고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여러분들 스스로 더욱 관찰하는 法을 익혀 나가도록 하세요.
환자를 보는데 있어서,
우선 전체를 봐야 되고 그리고 나서는 하나하나 뜯어 봐야 합니다.
太極, 그 자체는 陰도 없고 陽도 없습니다.
우선 관형찰색의 기본인 관상은 눈・코・귀・입(耳目口鼻)의 四象에 있습니다.
절대적인 학설은 아니지만,
사상은 不變 또는 변하기 어려운 것임에 비해 六經 속에 있는 감정은 쉽게 변합니다.
그래서 四象(耳目口鼻)은 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선천적입니다.
예를 들면 눈은 단춧구멍만큼이나 작은데 코가 크다거나
눈은 왕방울만한데 돼지 코라든가 입은 조그마한데 귀가 당나귀 귀만 하다고 할 때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받는 인상이 있습니다.
이쯤에서 12지의 동물을 본다면 이야기가 참 쉽게 풀리겠지요.
토끼는 귀가 아주 큰데 입이 작고, 쥐는 오밀조밀하고,
뱀은 입이 큰데 반해 귀는 겉으로 아예 드러나지도 않고,
말은 눈이 크고…. 원숭이는 눈이 큰 반면 코가 납작하다든가….
그러니까 그 동물의 형상을 보면 그 동물들의 성격, 특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결정이 되는 四象은 깊이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라도 서양인, 그 중에서도 흑인을 보십시오.
그 사람들은 耳目口鼻가 다 같아 그 사람이 그 사람같이 보입니다.
물고기를 보세요.
同種의 물고기는 다 같아 보입니다.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은데 유독 한 여자를 여러 명의 남자가 따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동물을 볼 때는 다 같아 보이는데
자기네들끼리 볼 때는 뭔가 틀린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깊이 연구를 하면 동물의 세계까지도 능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은 大小와 厚薄만 보아도,
예를 들면 눈이 작고 매부리코라면 고약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눈이 크고 서글서글한데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면
어떠하다고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잘 눈물을 글썽거리고,
무언가 그리워하는 듯 망연한 눈빛에다
툭 건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듯한 여자에겐 조심하십시오.
天下의 色婦요, 妖婦입니다.
이와 같은 여성의 마음이 한번 뒤집어지면 시기, 질투, 음모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 여자의 코가 크다면 吉相이고
한편 이 여자의 콧대가 얇다면 복부인 타입입니다.
남자, 돈, 권력….등 다 먹어 치우는 무서운 여자입니다.
이렇게 관상학과도 연관이 있는 四象은 매우 중요하므로
나중에 별도로 四象醫學章에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形을 볼 때는, 전체적으로 보는 법, 음 양, 상 하, 좌 우, 전 후, 출 입을 관찰하는 법,
또 관상학적으로 눈 코 귀 입을 관찰하는 법, 근골 보는 법, 肉을 보는 법,
손톱 발톱이 연하냐 단단하냐, 발바닥이 크냐 작으냐 등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번엔 望診 때의 색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색깔에 주로 청색이나 녹색이 많으면 厥陰經이 많이 발달했고
홍색, 적색 쪽이면 少陰經이나 少陽經,
흑색을 많이 띠면 太陽經, 황색이면 太陰經,
面白하면 陽明經쪽이 많이 발달했군 하고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분장술에 보면, 살기등등한 사람의 얼굴을 희게 하고,
착한 사람의 얼굴은 대체로 붉은 듯하게 합니다.
색의 광택이 있으면 實, 없으면 虛하다고 봅니다.
“선생님! 저 애는 입술이 붉으니 手少陰心經이나 足少陰腎經이 實한 것 같은데요,
저 친구는 눈자위가 희니 陽明燥金之氣가 많은가 봅니다”
이것은 잘못된 짐작입니다.
입술이야 당연히 빨개야 되고, 눈자위야 하얗고 투명한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각 기관의 정상적인 색에 다른 색이 개입될 때
우린 그것을 보고 어느 經絡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지 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本草綱目”에도 보면, 식물의 씨가 붉은 것은
心經絡이나 腎經絡 즉 少陰經絡으로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색깔이 형성되기까지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색은 빨간데 맛이 시다’라면 원인규명이 난해해 질 것입니다.
이렇게 相合된 상황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六經上으로 분류를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윤택하면 그 經絡이 實한 것이고,
어떤 色이 윤택하지 않으면 그 經絡이 허한 것임을 기억해두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望診의 觀形察色이 끝났습니다.
望診 다음으로 聞診이 있습니다.
聞診은 어렵습니다.
거의 도를 통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문진은, 음성의 고저,
말을 느리게 하는가 빠르게 하는가의 장단, 리듬 등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의 음이 높고 떼떼거리면 氣가 短하게 마련입니다.
음성이 낮고 느린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
힘없는(無力) 목소리, 힘찬(有力) 목소리가 있고,
떨리는 목소리에도 긴장된 목소리와 이완된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말을 하는 리듬이 있습니다.
음악영화의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짜르트의 장모가 모짜르트에게 떼떼거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모짜르트는 그것을 음악으로 듣습니다.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야단칠 때 유심히 들어보면 그 야단치는 목소리에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리듬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리듬은 대체로 일정하므로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노래에서도 그 사람의 성격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노래가 자신의 성격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聞診의 분위기에 대한 인식은 望診의 경우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道와 이어집니다.
깊이 깨우치면 이론을 넘어서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잠시 望診의 분위기에 대한 인식을 재고해 볼까요.
환자의 일거일동이 望診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몸을 비비 꼬면서 말을 하는 사람은 다분히 감상적인 환자입니다.
목에 힘을 주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환자,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환자,
또 고개를 옆으로 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고개를 돌리고 얘기하는 사람은
의사를 믿고 온 사람이 아니고 심심풀이쯤으로 온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튼 환자에게서 전해오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뭐라고 말로 꼭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사관생활 몇 년 만 하고 오라 하시던 어떤 스승의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옛날에 S농과대학교의 어느 교수가
자신이 이론에는 밝은데 실제 나무재배에 실패를 하게 되자,
실전에 강한 정원사를 교단에 서게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정원사가 교단에서 한 마디도 말을 못하는 거였어요.
그저 자기가 느끼는 대로 나무를 돌보고 보호했을 뿐, 별다른 이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교단을 내려오며
“난 아무 할 말이 없소!”하자, 한 농학도가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 정원사는
“당신만이 내 뜻을 아셨군요”하고는 나가버렸다고 합니다.
이건 이론으로 금방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직감을 개발하셔서
환자의 상태를 용이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기초를 다져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경락의 에너지에 손상이 왔는지
느낌으로 아는 望診, 聞診 다음으로 問診이 있습니다.
당연히 물어봐야 합니다.
요즘 일부 한의원에서 병명 알아맞히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환자의 병은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자꾸 입에서 습관이 되도록 익힌 다음
하나 하나 물어봐야 됩니다.
특히 여자들 經度는 꼭 물어봐야 합니다.
問診으로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환경을 물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病歷을 묻고, 그 다음으로 自覺症狀을 묻는 것입니다.
또 타 병원의 진단이 어떠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궁금하고 필요로 하는 여러 의문점을 하나하나 물어가는 것입니다.
남자에겐 직업도 물어보고,
여자는 七情으로 인한 병이 많으므로 환경적인 것에 대한 상담도 하십시오.
병치료에 유효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면담장소는 환자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가령 시어미와 며느리가 함께 왔을 때는
개별적인 상담을 해야 하고 환자의 비밀은 절대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교활한 환자들,
특히 30대 40대 부인네들이 젊은 의사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꾸며대는 이야기
특히 정신과 상담에서의 대화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경우에 대한 대화술을 예로 들어보면
사람이 너무 거만하면 厥陰風에 해당하므로 톡 쏘아서 氣를 꺾고,
거꾸로 자기비하의식이 강한 사람은 칭찬을 해주고,
또 빈곤해서 병이 든 사람은 약값을 깎아주는 등으로 부담감을 없애주어야 합니다.
또 환자가 여유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좋아지겠지요. 산 입에 거미줄 치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 환자의 마음이 한결 푸근해 질 것입니다.
환자의 마음을 다스림에 때로는 엉터리 관상도 동원시켜야 합니다.
“얼굴에 있는 그 점이 福點입니다. 나중에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해주면
환자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희망이 하나의 동기가 되어 병이 낫고 또 돈도 벌게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약값은 잘 떼어 먹지 않으니 안심하고 그냥 주셔도 됩니다.
너무 거만하고 여유를 부리면
“당신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하고 겁을 주고 초조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너무 色을 밝혀도 겁을 주어야 합니다.
색을 밝히는 사람 중에
의외로 性器矮小症이나 정신적인 열등감에 빠진 사람이 많습니다.
한 여자도 제대로 사랑하기 어려운데 어떻게 여러 여자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바람기 있는 여자들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여자들 無毛症이 黃帝”素女經”에는 가장 길한 여자로 되어 있습니다.
무모증의 환자에게 黃帝”素女經”을 보여 주면서 용기를 북돋우면
이 여자도 사진 찍어서 자신 있게 들고 다닐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無毛症이란 순전히 우리가 만들어낸 열등의식의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인생은 정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리 보면 이렇고 저리 보면 저렇고,
굴절운동으로 보면 屈折運動이고, 입자운동으로 보면 粒子運動입니다.
시험에 떨어질까 봐 긴장하는 고등학생을 대할 때는
학생의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을 참으로 신중히 상담해 주어야 합니다.
그 불안감은 실로 엉뚱한 작용을 할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루기에 까다로움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앞뒤 볼 것 없이 혼을 내 주어야 합니다.
옛날에 허준 선생이 여행 중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그 마을 갑부가 자기 아들의 지독한 병약함을 고쳐 주십사 간청을 하여 가서 보니
다 큰 놈이 어찌나 게으르고 응석받이인지
식사도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길 바랄 정도로 운동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허준 선생이
“본인이 직접 바닷가에 가서 조개 3000개를 잡아 닳여 먹도록 하라”고 처방을 내리고
그 아버지를 불러 병의 원인과 처방의 이유를 얘기하자,
그 아버지가 깊이 이해하고 아들을 당장 바닷가로 쫓아버렸습니다.
아들이 조개를 캐자니 죽을 지경이었겠지요.
그럭저럭 며칠 조개를 캐는 사이
그전엔 거들 떠 보지도 않았던 보리밥이 굉장히 맛있었습니다.
결국 조개 3000개를 잡고 나니 밥맛 좋아지고, 건강 좋아지니 정신도 돌아와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동네 처녀와 결혼하여 새마을운동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허준 선생은 환자의 기를 꺾고 다스리는데 정말 능란했습니다.
시장이 반찬이 되고, 환경의 지배를 받는 예는 흔합니다.
임진왜란 때 피란을 가던 선조대왕이 목어라는 고기를 먹어보고는
그 맛에 감탄을 하여 그 이름을 은어로 바꿔 부르도록 명을 했는데,
전쟁이 끝나서 환궁을 하고 세월이 좀 지난 후
피난시절의 목어 맛이 그리워 목어를 잡아오게 하여 먹어보니
그렇게 맛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은어란 명칭을 취소하고 도로 목어라 하여라!
에이, 입맛 버렸다….”고 했답니다.
지금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도루목이 바로 이 물고기입니다.
시장기가 곧 반찬이었지요.
이렇게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환자에 대한 의사의 狀況演出은 참 중요합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
한 한의사 밑에서 오래 공부를 한 제자가 독립을 하여 개업을 했는데,
하루는 선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저렇게 치료를 했는데 환자가 영 낫질 않았습니다”
“그 경우는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나을 텐데 이상하구나. 내가 한번 가서 보자”
하고는 가서 보니까 병이 낫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살펴보니 금테안경에 장식물은 모조리 유명메이커를 걸쳤고
밖엔 번쩍거리는 승용차를 세워 두었거든요.
그래서 ‘아하! 알았도다’하고는 제자에게 약을 한 첩에 얼마를 받았느냐고 하니까,
첩당 5천원씩 받았다고 하거든요.
“안 된다. 첩당 5만원씩 받도록 하여라”하고는 시치밀 뚝 떼고,
진맥을 척 하고는
“젊은 양반의 병은 특수하므로 한 첩에 5만원짜리 약을 써야 되겠습니다”하니,
아주 만족한 얼굴로 거의 내용이 같은 약을 10배의 값을 치르고 가져갔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사흘 후,
“의사선생님, 아주 좋아졌습니다”하고 전화가 오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이 환자가 약값이 싼 것을 경멸하여
무성의하게 약을 복용했음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때로는 환자의 교만을 꺾기 위한 以熱治熱도 구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만든 질 좋은 청바지를 처음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팔리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라!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하는데 값을 왕창 올려보자!’하고는
가격을 아주 비싸게 매겼더니 그제서야 곧잘 팔리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심리지요.
이것이 바로 부자들이 가진 특권의식입니다.
‘나는 비싼 음식, 비싼 옷을 입는 비싼 인간이야.’
제 친구가 와서는 “야! 오늘 양주 한잔 하자”고 합니다.
“그래 좋지! 요 아래 슈퍼에 가면 15000원 하니까 사다가 먹자”고 하면
“야! 유치하다. 그게 무슨 맛이니? 싸롱에 가서 먹어야지”라고 합니다.
같은 양주를 한 병에 5~6만원씩 주고 먹는 그런 허세를 왜 부리는 걸까요?
그 친구가 진정으로 양주를 즐기는 걸까요?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친구에게 돈을 쓰는 호기를 보이기 위함이지요.
그럴 때는 돈을 쓰게 하는 겁니다.
나중에 그런 호기가 병을 유발시켜 치료를 청하여 오면,
기를 사정없이 죽여서 산산조각을 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처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참으로 가소로운 호탕병이 많습니다.
이건 참으로 어리석은 부유층의 망상이지요.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는 이런 것들이
진짜로 병이 됨을 여러분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의 問診에 대한 이야기를 기초로 하여
앞으로의 발전적인 부분은 여러분 개성대로 창조하십시오.
어떤 환자는 의사가 너무 많은 설명을 해주어서 믿기지 않더라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그냥 지나치는 말로 “약 드시오”하는 데에서
알 수 없는 신뢰가 動하더라고 하기도 합니다.
많이 묻고 많이 설명해 주는 것만이 능사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여러분들 스스로의 개성을 찾도록 하세요.
한의대 화교 학생들은 학교 다닐 때 한국말도 잘 모르고
영어는 더 모르기 때문에 겨우겨우 쫓아가기 바쁘고,
또 졸업할 때도 처방에 아득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개업하면 잘 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환자가 이것저것 물어봐도
“우리 사람 그런 거 몰라 해! 그저 약 열 첩만 갖다 먹어 해”
그러면 뭔가 신뢰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설명이 자상하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니 여러분이 잘 생각해서 하세요.
이번엔 切診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切診에는 脈診, 腹診 등이 있는데
이건 모두 직접 만져보고 아는 것이므로 觸診이라고도 합니다.
觸診을 이론상으로 설명하면 그럴듯한데
사실 이론과 실제를 접근시키기란 그렇게 용이하지 않습니다.
浮・沈・遲・水
脈에는 四大鋼領이 있으나 병의 원인이나 병명을 찾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浮・沈에서 太陰, 陽明을 알고 (沈脈은 太陰, 浮脈은 陽明)
遲・水에서 少陰, 太陽을 안다. (遲脈은 太陽, 數脈은 少陰)
審浮沈緊知 太陰 陽明,
審遲數知 少陰 太陽
審緩急(緊) 知 厥陰 少陽
緩急으로 厥陰 少陽을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急이란 긴장되었다는 말도 되고 弦의 의미와도 통한다고 할 수 있고,
緩은 늘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맥을 볼 때는 무엇보다 먼저 병의 치유가능성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려면 結代脈의 有無와 强弱을 보아야 하고
또 병의 輕重을 파악한 후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병을 치료함에 있어서 완급,
즉 급하게 치료해야 될 것인가 천천히 치료해야 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옛 부터 기관지천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오늘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면 어떤 약을 먼저 써야 하겠습니까?
감기약 먼저 써야지요. 이와 같은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少陽脈은 이완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澁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太陰脈은 滑脈에 가깝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太陽(太陽寒水)은 다소 緊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너무 차고 오그라붙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 하에서 맥을 보는데,
왼쪽 맥과 오른쪽 맥에 각각 臟腑를 나누어서 진맥을 합니다.
즉, 좌측에 心・肝・腎을 배당하고, 우측에 肺・脾・命門 三焦를 배당하고
이것을 다시 寸・關・尺으로 나누는 방법이 있습니다.
左血右氣는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脈을 잡아보세요. 왼쪽맥과 오른쪽맥이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脈은 본래 손목을 주로 보지만
太谿穴(안쪽 발목 근처)의 太谿脈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太谿는 足少陰腎經에 속하는 것으로 太谿脈이 끊어지면 죽는다고 합니다.
저는 환자를 볼 때 손목과 태계의 두 맥을 상대적으로 곧잘 봅니다.
두 맥이 서로 비슷하면 균형이 맞으므로 위험한 사람이 아니고
두 맥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면 위험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옆구리를 보는 방법도 있고, 눈이나 혓바닥의 실핏줄,
말단에 있는 실핏줄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洋方에서는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빈혈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切診 중의 하나인 腹診을 六經으로 나누어 봅시다.
腹部에 肉이 많다.
즉 살이 쪘다고 하면 太陰이 되겠고,
마르고 뼈가 발달되어 있으면 陽明에 해당이 되겠고,
가슴 부위가 펄떡펄떡 뛴다거나 動悸가 있으면 일컬어 心火라고 하는데
이것은 少陰君火로 보면 될 것입니다.
또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혹은 조금 살이 찐 듯한 사람) 사람이
손발이 차고 배도 차다면 太陽이 될 것이고,
또 배가 팽팽하고 배에 임금 왕 자도 새겨지고
근육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고 하면 厥陰에 해당이 되겠고,
근육은 별로 없는데 피부가 거칠고 上焦가 굉장히 燥하고
熱感이 있으며 겉으로 발산되는 반점이 있다면
少陽相火之氣에 해당이 됨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떤 직장에 근무하는 아가씨가
피부병으로 6개월간 치료를 했는데도 낫지를 않았다며 찾아 왔는데
手少陽三焦經을 瀉해 주었더니 사흘 만에 좋아지더군요.
또 우리 건물을 관리하는 젊은 청년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피부병이 심해서 찾아왔는데 가만히 보니,
건물을 지키면서 오르내리는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속에 뿔따구가 많이 쌓였음을 알았지요.
그래서 少陽相火之氣를 瀉해 주니까 하루 만에 깨끗이 없어지더군요.
이건 아마 少陽相火之氣의 대표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切診 중 가장 중요 시 해야 할 것은 經絡診斷입니다.
환자를 보았을 때 六經的 이미지가 유추되지 않으면
病變部位를 따라 흐르는 經絡을 취하면 됩니다.
가령 허리가 아프고 옆구리가 결린다고 하면
옆구리를 따라 흐르는 경락인 足少陽膽經을 補하거나 瀉해 주는 것입니다.
頭痛일 경우는 陽明經을 補 또는 瀉해 주면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六經絡이 흐르는 流注를 외우셔야 합니다.
經絡診斷은 손바닥을 보는 것으로도 우리에게 觀形察色을 가능케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손바닥에 붉은 반점이 많으면 吉하다 하는 등의
手相 따위와는 무관한 것입니다.
손바닥에 실핏줄이 많은 사람, 손바닥이 노랗거나 파란 사람,
손바닥이 창백하거나 손가락이 가늘고 긴 사람, 굵고 짧은 사람 등으로 다양합니다.
手太陰肺經의 魚際穴은 두툼하고 살이 쪄야 좋은데
폐결핵환자나 肺가 약한 사람을 보면 푹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魚際穴이 들어가면 陰虛火動病이 있다고 했습니다.
엄지손가락에는 太陰經, 넷째 손가락에는 少陽經,
새끼손가락에는 少陰經과 太陽經이 흐릅니다.
병이란 한 경락의 허실의 균형이 깨져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징후가 쉽게 드러납니다.
즉 어느 한 쪽이 重해서 병이 오기 때문에 병의 징후가 확실히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太陰인 엄지손가락은 짧고 굵지요.
太陰이란 陰的으로 많이 발달된 것이므로 體가 짧으면서 단호한 것이 특징입니다
(발가락인 足太陰도 마찬가지임).
사람도 키가 작달막하고 오동통하면 太陰人에 속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六經上의 太陰이므로
四象醫學의 太陰과 혼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厥陰은 길기도 하고 오동통합니다.
그러므로 크고 살이 찐 근육체질인 사람인데 눈매가 거만합니다.
太陰(키가 작고 오동통)의 사람은 재물관리에 능하고 재물이 따르며,
厥陰(키가 크고 근육형)의 사람은 대체로 정치가나 권력가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학자들도 여기에 속하는데 細長形이라 해도
나이 얼마 되지 않아서 이내 배가 나오고 큼지막한 체구로 변하기 쉽습니다.
少陰人은 細하면서도 短합니다.
“腎者作强이니 技巧出焉”
足少陰腎이 발달하면 성격이 세밀하고 기교가 뛰어납니다.
腎經에서 기교를 연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새끼손가락이 잘 발달했으면 기술계통으로 나가면 좋겠지요.
엄지가 유별나게 발달되었다면 사장타입,
가운데 손가락이 발달되었다면 권력가 타입이라는 성격적인 유추를 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볼 때, 실핏줄이 많이 발달되어 있으면 厥陰風이 셉니다.
그리고 魚際穴 부분이 오동통하고 살이 많으면
‘이 사람은 太陰이 實하겠군’, 푹 꺼져 있으면 ‘虛하겠군’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손바닥이 전체적으로 血色이 좋으면 少陰, 血色이 없으면 太陽이라고 볼 수 있고,
실핏줄이 많고 적음에 따라, 많으면 厥陰, 없으면 少陽이 實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血色有無로 少陰과 太陽을 구분하여 짐작할 수 있고,
靑色有無로 厥陰과 少陽을, 魚際穴을 보고 太陰의 虛實을 구분하는 겁니다.
여러분 冥想을 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자기 몸의 가장 아픈 곳을 들여다보세요.
그리하면 어느 날 어느 경지쯤에 이르게 되면 아픈 곳이 풀리게 되는데 그 때,
얼굴이 간질거리고 온 몸에 뭔가 쭈욱쭈욱 흘러 다니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또 손바닥이나 발바닥이 화끈 달아오를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초에 있는 경락으로 에너지가 흐르는 것입니다.
물론 자꾸 冥想을 해보아야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웬만큼 체한 것은 약이나 침을 쓰지 않고
명치 밑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뚫립니다.
몸의 어느 한 부분을 꼬집었는데 전혀 다른 곳이 찌릿찌릿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생들 의료봉사 가서, 足太陰脾經을 강하게 자극하니까
목덜미 부분이 마구 뜨거워진다고 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이렇듯 經絡의 流注라는 것이 확연한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經絡의 시작과 끝나는 자리를 확실히 외워야 하지 않겠어요?
경락에 의한 치료는 어떤 것일까요? 예를 한 가지만 들어 봅시다.
제가 요즘 피곤해서인지 눈이 자꾸 실룩거리더군요.
본래 저는 침을 맞기보다는 觀해서 낫는 방법을 좋아하는데
이번 경우는 영 낫지를 않더군요.
足陽明胃經을 補했더니 아주 좋아졌습니다.
“舍岩針灸要訣”을 보면,
“15~16세의 한 남자가 왼쪽 耳根 밑에 白色의 뾰로통한 것(목뒤 연주창)이 났는데
이것은 體氣虛弱에서 오는 일종의 風霜腑症이므로
大腸 正格을 用하기 數度에 효과를 보았다”라고 나와 있고,
또, “3세 小兒가 항상 설사를 그치지 못하고, 얼굴빛이 누르고 다소 浮氣가 있으며,
명치 밑에 伏梁(心的)이 있는 것 같고, 耳下 大腸經이 흘러가는 부근에 核이 있으므로
大腸 正格을 治하기 數度에 병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經絡의 流注만 알아도 대장정격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舍岩針法에는 數度(몇 차례 치료하지 않고)
또는 一度에 완치를 했다는 예가 많이 나옵니다.
陽明, 少陽, 太陽의 經絡이 흐르는 곳은 손등 쪽입니다.
둘째손가락이 陽明, 넷째손가락이 少陽, 새끼손가락이 太陽이 되지요.
손등을 한번 살펴봅시다.
손을 뒤집어서 볼 때 전체적으로 뼈가 잘 발달되어 있고,
손톱자체가 實하면 陽明의 허실을 알 수가 있고
이와 반대로 손에 살이 오동통하게 쪄서 뼈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것으로 陽明을 판단합니다.
少陽之氣는 손등이나 얼굴에 얼마나 털이났는냐 하는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안에서 밖으로 밀어내는 힘 같은 것이기 때문에
털이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火氣가 많을 겁니다.
이 털은 지구상의 나무와 비슷합니다.
추운 곳에서는 나무가 잘 자랄 수 없듯이 털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도 부근(火氣旺盛)에 정글이 있음은 당연하겠지요.
少陽相火와 少陰君火는 같은 火이지만 조금 다릅니다.
少陰君火는 속에서 흐르는 어떤 火氣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少陽相火는 털이 자라나오듯이 火氣가 바깥으로 發散되어 나오는 성질의 것입니다.
털의 다소 외에도 손등의 전체적인 혈색과 손톱 밑의 和色을 봅니다.
그 색이 희다면 분명히 뱃속에 회충이 있습니다.
속을 데워주는 火氣가 부족하므로,
속이 냉하면 생기게 되는 기생충의 유무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공격적이지 못합니다.
少陽相火之氣가 부족하므로
이런 사람은 용기가 부족할 뿐 아니라 대체로 겁쟁이 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회충약을 한번 볼까요?
安蛔理中湯은 “脾虛虫痛 혹은 嘔吐, 手足冷을 다스린다”고 主治가 나와 있고
白朮, 건강(乾薑), 人蔘, 白茯苓, 花椒가 들어간다고 되어 있습니다.
회충은 濕하고 冷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六經 중 太陰에 가깝습니다.
太陰에 속하는 회충을 죽이려면 陽明經을 쓰면 됩니다.
그러므로 매운 맛을 가진 川椒를 쓰는 것입니다.
담배 진도 좋지요.
그러니까 담배 많이 피우는 사람은 회충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하므로 여러분이 六經을 충분히 이해를 하시고 나면
치료가 참으로 간단해지게 됩니다.
간단히 요약해 보면,
윤택한 것은 太陰에 해당하고,
緊張性, 運動性, 收縮性 등은 厥陰에 해당하고,
손끝이 차다 덥다 하는 것은 太陽之氣에 해당합니다.
少陰君火之氣가 강한 사람은 손바닥이 따뜻하고 핏줄이 보이고 훈훈한데
太陽之氣가 강한 사람은 대체로 차갑습니다.
여러분들 긴장되고 기분이 나쁠 때 손가락이 싸늘히 식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특히 두려움과 긴장이 동반될 때 더욱 그러하지요.
이것은 촉감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끈끈하고 기분 나쁘게 냉한 땀을 흘리는 사람은 비겁하고 음험합니다.
그래서 손가락에 끈끈한 땀이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찬 땀이 나는 것은 太陽之氣가 實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附子나 桂皮, 桂枝를 먹어야 됩니다.
太陽과 少陰은 寒熱에 관계되므로 觸覺上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손 쪽에 六經의 流注를 이야기 했는데,
切診에서도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經絡의 流注를 통한 진찰입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간단히 머리카락과 눈을 한번 볼까요.
미용실에 가면 火氣로 퍼머를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로 열대에 살았던 흑인들도 몸 안에 火氣가 많으므로
아예 뱃속에서 태아의 머리를 퍼머시켜서 출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 부터 곱슬머리와 옹니를 상종말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머리카락의 색깔과 형태로 이와 같은 구별을 하듯이
눈동자도 다양한 색으로 구분이 됩니다.
청색인 민족은 厥陰之氣가 강하므로
백인 중에서도 눈동자가 파란 사람은 다른 인종보다 거만합니다.
한편 흑진주와 같이 까맣고 윤택한 여자는 조심성 있고 차분하고 정숙합니다.
눈이 청색이면 厥陰에 해당하므로
권력욕, 자존심, 지식욕이 많고 틀림없이 거만하겠지요.
이에 비해 눈동자가 검은 사람은 겁이 많아 太陽寒水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太陽寒水가 발달되었다 해서 그 사람이 방탕하거나 음탕하지만은 않습니다.
도리어 매우 조심스럽고 靜肅합니다.
그래서 옛 부터 “눈동자가 검고, 눈자위가 희고 투명하며,
입술은 앵두 같고, 코가 오똑하며, 머리칼이 칠흑같이 까만 여자를 골라라”
하고 이야기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눈동자가 브라운색이면 어떨까요?
브라운은 황색과 검정의 혼합색입니다.
그러므로 브라운색이 밝으면 思考力이 풍부한데 반해 어두우면 의심이 많습니다.
또 그런 사람은 대체로 불안합니다.
개나 여우 따위의 눈을 보면 브라운 색입니다.
이렇게 머리카락이나 눈을 보는 외에도 觀相法, 손바닥을 보는 手相法,
발바닥을 보는 足相法, 잠자는 모습 등 많은 것을 진단의 수단으로 보는 것입니다.
입을 헤 벌리고 자는 사람은 보기에도 흉하지만 관상학적으로도 흉상입니다.
任脈과 督脈 사이로 氣가 계속 새어 나가니 좋을 수가 없지요
2.
식물을 관찰하는 독특한 이론이나 방법을 옛 선인들의 혜안을 통해 터득하고자
많은 문헌 등의 자료를 참고해보니 본인의 일천한 지식에 많은 보탬이 되더군요.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我相이고,
둘째는 인간 자신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교미하고 새끼 낳고
생을 위한 약육강식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나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므로
다른 동물들을 지배하고 잡아먹을 능력과 권한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人相입니다.
셋째는 生命相입니다.
사람들은 生命이 있는 것, 없는 것,
有情, 無情으로 나누고자 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지요.
우리 주변에는 식물을 무생물이라고 한다든가
감정이 없는 생물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미국에서 식물 감정실험 학설을 발표한 것이나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 열매가 알차고 많이 맺힌다는 등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식물에 감정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지요?
老子의 道德經에 보면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는 가시나무만 무성하다”고 했는데,
陽明燥金의 투기가 왕성했던 전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이건 무슨 의미를 담고 있겠습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일으키는 한 생각의 파장이
수억 광년 떨어진 어느 별자리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릅니다.
하물며 靈性을 가진 식물에 대해서야….
이런 이해가 여러분의 사고 속에 담겨지지 않으면
앞으로 식물을 접함에 있어서 어떠한 식물의 특성도 읽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지요.
我相이란 너는 전라도 나는 경상도… 나! 나! 나!…. 너! 너! 너!
이런 식으로 ‘나’ ‘너’로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리의식과 교만은 의사들에게 특히 현저합니다.
6년 졸업하고 대학원이라도 나오면 아주 안하무인이 됩니다.
그 이면에는 나를 키워온 Ego의 망상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 我相이 많은 것을 수행을 통해서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男‘ ‘女‘라는 무너뜨려야 할 性의 相이 남습니다.
이것마저도 떨쳐버려야 합니다.
“넌 어째 남자가 매일 소꼽장난만 하니? 아예 불알을 떼어버려라!”
이렇게 남녀가 가진 기운을 분리시키려고 우리 인간들은 획책해 왔지요.
그러나 이것 또한 극복을 해도 사물과 인간의 분리인 人相은 남지요.
우리가 인간일까요?
혹시 흙이고 바람이고 곤충이고 선인장이지는 않을까요?
여러분 낚시 좋아하지 마세요.
“저는요 잡았다가 놓아 주니까 죄가 없겠지요?”
이런 말은 50보 100보지요.
고기 주둥이를 찢어 놓고는
‘살려주니 죄가 없다’고 함은 간특한 자기변명에 불과합니다.
무생물에게 조차도 가해를 하면 안 됩니다.
벽을 향해 공을 던져 보세요.
던지는 속도에 비례하여 되돌아옵니다.
작은 미물 하나라도 가벼이 여기지 마세요.
소동파가 어느 禪師를 찾아가서 어떻게 공부해야 합니까? 하니
“모든 善은 받들어 봉양하고 모든 악은 짖지말아라
(衆善奉行하고 諸惡莫作하라),
네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다”고 하니
“그건 제가 읽은 지 오랩니다”고 했어요.
이에 禪師 가라사되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기는 쉽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힘들다네”
여러분들이 식물을 볼 때에 이제는 무심코 보지 말고
그것의 분위기와 감정을 느끼도록 하세요.
비 온 뒤에 마구 신이 나서 일어나는 채소, 추우면 움츠리고,
한 여름 햇볕에는 축 쳐지고, 아침에 태양이 떠오를 때는 기분이 좋아서 반짝입니다.
인간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동식물에도 識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형태, 형상이 같으면 다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옛날 복희씨는 전쟁을 할 때
독수리, 코끼리, 사자, 호랑이를 전열에 세우고 전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금수와 인간의 구별 없이 대화가 통했고,
식물과도 대화가 통했다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리석은 인간이 같은 형상끼리만 동류인줄 알고
자기네들끼리만 어울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탈만 뒤집어썼지 뱀 같고 여우 같고 늑대 같은 사람이 있는 줄을 모르고….
옛날 사람들은 형상을 보지 않고 氣運을 보았다고 하지요.
신맛을 내는 식물은 厥陰風木 기운이 강하고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은 陽明燥氣가 많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도 있겠지요.
식물이 동물처럼 여러 경락을 다 가진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각각의 그 나름의 특수한 몇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五味子와 같이 다섯 가지 맛을 다 가진 것을 聖草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령스런 풀인 영초도 있지요.
인간만이 12經絡을 다 가지고 있듯이
식물 중에도 12經絡에 해당하는 맛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신령스런 식물인지도 모르지요.
無害無毒하다는 쌀, 보리, 밀, 인삼 등은 특별히 강한 맛이 없습니다.
그러나 강하거나 맛이 독한 식물은 한 가지 經絡에만 치우쳐 작용하므로
그 맛이 强毒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식물의 편벽된 성품을 읽을 줄 아는 觀을 얻어야 됩니다.
옛날 의학자들은 식물의 맛과 성품과 생김새를 가지고
여러 가지 추리를 해서 치병의 작용과 방법을 기술해 놓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추리를 배우려 하지 않고 기술된 것만을 그저 외우기만 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동양의학자라면, “本草綱目”에 없는 국내에 처음 수입되어온 약초라 할지라도
그 성분을 알아낼 수 있어야 하며
入經의 藥理學的 측면 역시 추리할 수 있어야 된다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직접 맛을 본다거나 그 식물의 성품을 접촉할 수 있는 체험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학계에서 거의 덮어두고 지나치다시피하는 五運六氣라든가 入經의 문제는
단순한 지식 암기식의 학문적 태도로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식물도 性情이 있다고 하는 전제 하에서
광물이 가지고 있는 감정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례로 陽起石을 들 수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남자들 陽氣 부족한데 씁니다.
延齡固本丹이나 十全大補湯에 六味를 合方하고,
五子와 肉從蓉, 淫羊藿도 넣고, 이 陽起石을 조금 넣습니다.
법제의 방법은 불에 이 陽起石을 달구었다가 식초에 담가 삭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돌가루가 어떻게 인간의 양기를 돋구워 주느냐 하는 것이지요.
朱砂(심장 안정제로 씀)도 마찬가지입니다.
朱砂는 不眠症, 癎疾, 驚氣, 嘔吐, 眼疾 등 하다 못해 귀신을 쫓는 데까지 씁니다.
옛날 할머니들은 어린애가 태어나면
鏡面朱砂를 어린애 입술에다 조금 묻혀주는 지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하면 藥性이 入經이 되어서 아이가 경기를 안 합니다.
이런 광물질인 朱砂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겠습니까?
이렇게 잘 생각해보면 동물이나 식물, 광물질까지도
그것들 나름의 어떤 성품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옛날 어느 선사가 도를 깨닫고 보니,
식물에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이 있고,
동물은 動하는 괴로움이 있음을 알 수 있더라고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식물은 動하고 싶어하고 동물들은 靜하고 싶어 합니다.
動은 靜으로부터 양식을 얻고 靜은 動으로부터 양식을 흡수합니다.
즉 식물은 동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동물은 식물로부터 에너지를 얻게 되지요.
어떤 도인은
“식물이 하나 생겨나면 그것에 상응하는 동물이 하나 반드시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이건 우주의 조화지요.
五運六氣冊을 보면,
“하느님은 실수하는 법이 없어서 병이 나게 되면
그 병을 낫게 해주는 약초도 만들어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은 남고, 어떤 것은 모자라다’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각일 뿐이지요.
만물의 이러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곧 陰陽인 것입니다.
식물과 동물은 상호보완적이므로 동물은 식물을 먹어야 마음의 평정을 얻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들은
돼지고기, 쇠고기, 닭, 오리, 뱀, 아롱사태, 제비추리, 심지어 지렁이까지 먹습니다.
동물이 동물을 먹어대니까 평정을 잃고 躁動하게 되어
요즈음과 같은 불행한 세태가 되어가는 겁니다.
무조건 살생을 하지 말라,
肉類를 먹지 말아라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동식물의 상호보완적인 차원에 대한 이야기지요.
동물계에도 人系・畜生系가 있듯이
식물도 여러 성품을 두루 다 지닌 靈草가 있을 것이고
附子나 大黃처럼 편벽되고 독한 성품을 지닌 것도 있을 것입니다.
“方藥合編”에 나온 附子를 보면 맨 끝에
“인삼과 숙지황은 治世를 다스리는 어진 宰相이요.
부자와 대황은 亂世를 다스리는 어진 장군이다
(人蔘, 熟地治世之良相, 附子大黃亂世之良將)”라는 말은
시절이 어지럽고 사람이 독해지면 그만큼 약도 독한 것을 써야 되고
사람들 인심이 유순하고 편안할 때에는 인삼, 숙지황 같은 약이 좋다는 것이지요.
열이 38~39도 되는 데도 환자의 컴퓨터 四柱八字의 해석에 附子가 맞게 되어 있다고
附子를 넣어주는 한심한 한의사도 많습니다.
大黃을 써야 되는데 附子를 쓴다면 환자를 수도 없이 죽이게 됩니다.
병을 잘못 다스리는 것은 살인보다 더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심지 한복판에 난데없는 개구리 떼가 도로를 메운다거나
제철도 아닌데 메뚜기나 하루살이 떼가
어느 지역의 하늘 전체를 메웠다는 뉴스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런 현상을 무심코 넘기는 사람은 五運六氣 학자가 아니지요.
五運六氣 학자들은 어떤 기운이 盛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어떤 곤충이 興하면 어떤 邪氣가 많이 작용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부를 “六經” ‘五運六氣編 氣交變大論‘에서 이르기를,
帝曰
余聞得基人不敎是謂失道傳非基人慢泄天寶余誠德未足以受至道
然而 衆子哀基不終
願夫子保于無窮流于無極余司基事則而行之奈何
“황제가 이르길
‘가르칠 가치가 있는 자인데도 가르치지 않음은 하늘의 도리를 잃는 것이고,
가르칠 가치가 없는 자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하늘의 至寶를 함부로 누설시키는 것이다’라고 들었다.
그러나 짐은 참으로 부덕하여 천도의 온오(蘊奧)를 받을 만큼의 자격이 없는 것 같소.
원컨대 하늘의 至寶를 한없이 지니게 하여 영구히 이를 전하게 합시다.
짐은 그 가르침에 따라서 바른 정치를 행할 생각이오”
이러한 오운육기는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농사, 정치, 문화, 거래, 인간의 吉凶禍福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미치지 않는 데가 없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至寶이므로 周易學者나 運氣학자들은
아는 공부 3년 했으면 모르는 공부 7년 하라고 합니다.
바로 입닫는(누설치 않는) 공부를 하라는 거지요.
여러분들 六經 공부 좀 했다고 친구나 후배 만나서 경솔히 지껄이지 마십시오.
좀 알아도 모른 척하고, 內經의 깊은 의미를 확대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운육기는 배우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마음을 엄숙히 하고 齋戒를 해서 공부를 해야지
어린애 장난하듯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黃帝같이 위대한 분도 岐伯에게 머리를 숙여 가면서,
“짐이 참으로 부덕해서….그 가르침을 따라 정치를 행할 생각이다”
라고 겸손히 말하는 이 모습을 보십시오.
“黃帝內經“의 뜻은 하나하나가 다 나중에 黃帝가 될 기질을 길러주는 것이 올시다.
오직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비교나 분리의식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다른 나라의 고통도
불쌍하게 생각해 줄 정도로 덕이 넓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배워서,
전 세계 인류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해야 되겠지요.
지금 여러분들은 어마어마한 학술세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 조그만 감정의 부스러기나 질투, 시기 따위에 사로잡히지 말고
마음을 크게 쓰세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지극한 보물은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리워지고, 또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리워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禪問答을 가려 놓은 것과 동일합니다. 왜 가려놓았을까요? 그
것은 스스로 밀고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몇 가지 외운 지식만으로
이 우주의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黃帝는 六經을 일컬어
“정열하게 수리를 갖추고 簡明하여 빠진 곳이 없으며 영원히 어긋남 없는 진리”
라 했고,
老子도 “하늘의 그물은 성긴 것 같으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有條理簡而不匱久而不絶易用難忘爲之綱紀….)”고 했습니다.
六經을 분류하고 오운육기를 결합시켜 보면 빠져나갈 것이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과제물을 부여하고,
이것저것 조사를 해오라고 하는 이유는 몇 가지 이론만 외우면 될 것이 아니냐는
여러분들의 안일한 생각을 없애기 위한 노력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왜 이렇게 괴롭히지? 요점만 빨리 끝내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지요.
그런 머리 속엔 이렇게 심원한 학문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지난겨울 방학 때는 이 오운육기 강의를 하면서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오운육기 이야기만 나오면 졸더군요.
다시 말씀 드리지요.
오운육기란 위로는 天文을 알고 아래로는 地理를 알고
가운데로는 人事를 아는 공부입니다.
六經공부를 하고 나면 별(星)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內經 ‘五運六氣編 氣交變大論‘에 나온 것을 참고해 봅시다.
帝曰
基行之徐疾逆順何如
岐伯曰
以道留久逆守而少是謂省下
以道而去去而
速來曲而過之 是謂省遺過也
久留而環 或離或附 是謂議災與基德也
應近則少 應遠則大 芒而大倍常之一基化甚大常之二基省卽也
少常之一基化 减少常之二是 謂臨視省下之過與基德也
德者福之 過者伐之
“運星이 常軌를 타고 바르게 운행하고, 때때로 常軌를 조금 이탈하여도
약간일 때는 이것을 하늘이 天下萬民의 행동을 보고 계신다 라고 말하고,
運星이 常軌에서 빗나갔다가 빨리 원래대로 돌아오고
彎曲하여 운행할 때는 이것을 하늘이 治世의 잘못을 보고 계신다 하고 말하고,
運星이 常軌를 타고 운행하다가 때때로 빗나가고
때로는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에는
이것을 하늘이 治世의 잘못에 대하여 災禍를 줄 것인가,
선정에 대하여 칭찬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下界의 선정과 악정을 보시고
덕이 있는 자에게는 복을 주고 잘못이 있는 자에게는 죄를 주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岐伯같은 분은 혜성이나 별을 약간 唯心的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밤하늘의 별이 평소와 다른 광선을 쏘듯이 날카롭게 나타내기 시작하면
‘지구상의 풍조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웃기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수억 광년 전의 광선이 지금에야 도달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무얼 생각했단 말이예요?
어쩌면 그렇게 비과학적인 말씀을 하십니까’하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색깔이 나타나고 또 우리 눈에 그런 광선이 들어올까요?
인간의 역사를 보면 처음에는 土器時代였지요.
그 다음은 鐵器時代 지금은 火器時代
앞으로는 水器時代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木火土金水로(相生으로) 시대가 흐르지 않고,
木克土, 金克木, 火克金….이렇게 相克으로 돌아가므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합니다.
옛사람들이 하늘과 별의 운행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았던 점이나
심한 가뭄이나 홍수 때에 임금들이
“짐의 덕이 부족한 탓이로다”고 한 것은 인심이 자연에 영향을 끼치고,
자연이 인심에 영향을 미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심과 자연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이 움추려 들고,
문명의 발전에 따라 생태계나 지구의 구조 자체에 큰 변화가 오는 것도
인심과 자연이 둘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사상이 수용되지 않은 배울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들으면
머리가 깨지듯 아플 뿐인 것입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인간의 여러 감정들, 어떤 동물과 식물,
어떤 색과 맛이 갑자기 盛하고 興함은 그럴만한 이유가 근본적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게가 바다에서 살지 못하고 산으로 기어올라 가서 산다거나,
까치가 나무 위에다 집을 짓지 않고 방송국 철탑 같은데다가
20–30개의 집을 짓고 산다면 무슨 징조가 있는 것일까요?
주역학자들은 대상을 가지고 풀어냅니다만 여기에도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지렁이가 더 잘 아는 것도 많습니다.
바깥기운이 살벌하고 건조한데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겠어요?
모든 동물들은 豫知能力이 있는데 우리 인간은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항해하는 배속의 쥐들은 폭풍우가 오기 훨씬 전부터 이리저리 날뛴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형의 기운이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五運六氣란 참으로 간단한 학문이면서
아주 넓게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음을 안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소홀히 하여 안이하게 보낼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3%의 0.3%도 아직 강의를 하지 않았는데
여러분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저를 고무시켜
저 역시 의욕적으로 강의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딴은 여기 와서 강의를 들은 후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한방이 훌륭한 것임을 느끼기만 한다면 제 강좌를 들은 소기의 목적은 이룬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내일 죽는다고 하면 오늘 진리공부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帝曰 善所 謂精光之論大聖之業宣明大道通於無窮究於無極也”
“정밀하고 명백한 이론은 대성인이 하는 업으로 천지의 공리를 명백하게 말하고
영구히 변하지 않는 한없는 이치를 궁구하여 진리에 통하여 있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밀하다고 하는 것은 철없는 어린애가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것입니다.
‘내가 가까운 것을 너무 멀리 하고 있었구나’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도를 깨닫고 나서 어찌나 이 道를 가르쳐 주고 싶은지
설법을 하러 돌아다니는데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랍니다.
할 수 없이 돌산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설법을 했는데
나중에는 돌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랍니다.
도란 한낱 어린애가 듣거나 돌일지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단순한 것이지요.
“內經”의 장중함에 눌리고,
권위주의와 洋方 일변도로 변해가는 사이비, 주체성 없는 학문관,
중공 것이나 도용해서 끼어 붙이려는 박쥐 같은 학문 풍토,
입이 있어도 陰陽觀 하나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벙어리 같은 강의로 인해
여러분의 두뇌는 나날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졸업 후 13년 동안 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큰소리칠 자격이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최루탄 앞에서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몸부림치는 여러분들에게
선구자적인 학문관, 진리관을 넣어 줌으로써
우리 한의학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진리를 추구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데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黃帝도 의사가 아닌 왕이었지만
의술을 통하지 않고는 국민을 제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의사로서,
조그마한 기술자로서 어떻게 커 볼까하는 생각보다는 큰 뜻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천지의 공통된 이론은 공리를 명백하게 하고
영구히 변하지 않는 한없는 이치를 궁구하여
진리에 통하여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문지리에 통한 자는 인체에 있어서도 그것을 이용할 수가 있습니다.
올해의 운세는 어떤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조심을 해야겠군!
1985년 乙丑年은 뚱뚱하고 열이 있는 사람이 조심을 했어야 했군!
그러니까 그런 사람을 위한 약으로
어떠어떠한 것을 많이 준비해 두어야 했었군 하는 것을 예지해야 합니다.
“올해는 어떤 약초를 많이 준비해야한다”
라는 얘기쯤은 할 수 있는 동양 의학자여야 합니다.
먼 옛날의 大理論을 잘 아는 자는 현재에 있어서도 그것을 이용할 수 있고,
무형의 움직임을 잘 아는 자는 유형의 상태에도 통할 수 있습니다.
五運六氣의 영향을 잘 아는 자는
반드시 천지의 움직임에 응하여 자기를 순응시켜 장수할 수가 있지요.
“선생(岐伯)이 아니면 세상이 넓다 한들 누가 이 大道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길조를 골라서 ‘氣交篇’이라 이름 짓고, 이것을 매일 아침 암송하고 싶소.
제계하여 몸을 맑게 한 자가 아니면 결코 보잘것없는 무리에게는 전하지 않을 걸세”
라고 五運六氣의 氣交變大論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제가 舍岩針法을 강의한다고 소문이 나니까
무면허침구사도 그리고 미국 L.A에서도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짧은 시간 투자해서 돈 벌어 먹을 길이 없나 하는 얄팍한 생각에서,
또는 이민 가는데 鍼術을 배워가면 좋다는 말을 듣고
침술학원에 가 봐도 별로 신통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는 거지요.
그러나 적어도 대학 6년 다니면서 고민도 해보고,
실망도 해보고, 흥분도 해본 사람들 즉,
한방에 엄청난 大理論이 있음을 신뢰하고 수긍하는 여러분들에게
강의를 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제 강의는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하는 이 강의는 정말 들어보기 힘든 것입니다.
절대 가벼이 여기지 마시고 부디 열심히 공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보면, 멀고 먼 수많은 난관을 헤치고 어떤 구슬을 얻습니다.
그래 그것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더니 가지고 놀다가 아이들은 잃어버리고 맙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쉽게 얻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구슬 속에 담겨진 항해와 거친 풍파,
어려운 난관의 의미를 모릅니다.
이제 이 강의를 마치고 ‘五運六氣編’ 한번 펼쳐 보세요.
여러분이 미처 느끼지 못했던 친밀감이 확 다가올 것입니다.
‘厥陰, 少陰, 太陰, 少陽, 陽明, 太陽이 먼 꿈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속에 흐르고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예를 들어서 “厥陰의 해에는 시고 짠 것으로 치료를 해라”라고 씌어 있다면,
‘왜일까?’하고 생각을 하게 되고,
黃帝內經의 五運六氣가 모든 법을 다 설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는 동기만을 이야기 해 놓았으므로
여러분들의 눈을 넓히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분들이 한방이론에 친밀성 친화성을 가지고 공부를 하다 보면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서도 도인이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任性合道
逍遙絶惱
繫念乖眞
昏沈不好
성품 따라 맡겨두고 道를 합치면
일 없는 듯 번뇌가 끊기고
마음 두고 분별 내어 참뜻과 어긋나면
흐리멍텅 가라앉아 좋지 않으리라.
식물과 동물의 상호보완작용이란 靜과 動, 陰과 陽의 상대적인 의미와
서로 양분을 취하는 작용, 상호호흡작용 등의 생명활동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식물과 동물을 보는 방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은 위를 머리 부분이라 하지만 식물은 땅 밑에서 자라는 부분을 머리라고 합니다.
서로 반대지요.
식물은 地氣를 먹고, 동물은 天氣를 먹습니다.
식물은 윗부분에 꽃이 피어서 암수가 구별되지만,
동물은 아래쪽에 있는 성기로 암수가 구별됩니다.
동물은 上이 天이 되고 식물은 上이 地가 되며,
동물은 下가 地가 되고, 식물은 下가 天이 됩니다.
인간이 섭취하는 것은 天氣地味인데, 식물이 섭취하는 것은 地氣天味가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생명을 보충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다만 기능상의 위치만 전도되어 있으므로
인간처럼 식물을 보되 위치만 바꾸어서 이해하면 쉽습니다.
“창조주는 절대 실수가 없다”고 오운육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주에게 실수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창조주가 왜 실수를 해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저런 독한 식물을 만들고 도둑놈, 창녀를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을 하지만 창조주의 일은 절대 실수가 없을 뿐 아니라
균형에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다만 인간이 스스로 일부분만을 보고는 균형이 깨졌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주만물을 결정하는 주인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기실 식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우리, 동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요,
표독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도 곧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만물에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은
나와 그 관계를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만이 분리의식을 가지고
저건 더러운 놈, 저건 어리석은 놈, 저건 못된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들이 곧 나의 분신임을 알아야 됩니다.
철이 많이 나는 나라와 물이 많이 나는 나라와 돌이 많은 나라에는
각각 그 자연과 연관 지어진 동식물이 살지요.
이것을 일일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크게 六經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桂枝같은 가지는 사람의 팔 다리에 쓰고,
식물의 씨는 사람의 씨(여자의 자궁, 남자의 생식기)에 쓰입니다.
인간의 기운을 上氣시킨다거나 거들어 올리고 싶을 때는
뿌리가 깊이 박힌 것을 써야 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나 80% 이상은 맞습니다.
대체로 뿌리가 박혀 있는 기운이 강한 것일수록
사람에게 補氣시키는 작용과 上氣시키는 기운이 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當歸는 이와 다릅니다.
머리부분과 몸통부분 그리고 뿌리부분의 작용이 그림과 같이 다릅니다.
앞의 이론대로라면,
尾를 많이 쓰면 上氣시켜 피를 위로 올려 줄 것이고
頭는 破血作用이 있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 이유는, 當歸뿌리가 깊이 박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뿌리이든지 뿌리의 중간부분은 끝부분보다 힘이 약합니다.
인삼도 끝부분 쪽이 맛이 강합니다.
그것은 몸통보다 뿌리 끝부분이 뚫고 들어가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當歸뿌리는 補血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瘀血을 풀어 주는데 쓰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식물을 보았을 때,
지표면을 기준으로 윗 쪽이 발달된 것과 아래쪽이 발달된 것
또는 상하가 고르게 발달된 것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버섯과 같이 지표 윗부분이 발달된 것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것은 뿌리가 거의 없지요.
이것을 먹었을 때 독이 있는 버섯이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上氣가 되거나 두통이 일어나지는 않지요.
설사가 심해서 창자까지 빠져 내려서 죽습니다.
버섯도 위와 땅속의 부분이 균형이 잡힌 것은 대체로 몸에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보는 식물일지라도 天과 地,
즉 上下가 균등하게 이루어진 것은 위험하지 않으나
한 쪽이 치우쳐 발달한 것은 독성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머리는 조그맣고 몸통이 큰 복어를 잡았다고 합시다.
이건 보나마나 위험한 거지요.
독 중에서도 陰毒(몸체가 크므로)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요리할 때는 기를 위로 끌어 올려주는 조미료 등을 첨가해야 됩니다.
색으로도 알 수가 있지요.
버섯이나 물고기의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독이 많습니다.
화장을 진하게 하는 여자일수록 독한 경우가 많습니다.
색깔이 진하다는 것은 어느 한 생각에 대한 집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버섯이 색이 진하고 예쁘면 독이 있다는 식물학 지식은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陰陽觀에 입각해서 地表를 중심으로 상하의 균형을 보는
지극히 簡明한 식물관찰법을 일러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비법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런 이야기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저는 엄청난 시간을 고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버섯을 식용으로 할 때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많이 먹게 되면 陽氣가 떨어집니다.
그것은 버섯이 陰氣가 강한 식물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버섯은 陰地에서 자랍니다.
한 식물의 성품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땅을 결정하기도 하고,
땅이 그 식물의 성품을 결정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지표 윗쪽 부분이 발달된 것을 보면
‘아하! 이놈은 음지에서 자랐겠구나’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겠지요.
지표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많이 발달된 것은 陽的이므로
습지에서는 잘 자라지 못합니다.
牛黃淸心元에 쓰는 大豆黃卷(콩나물)은
뿌리 부분이 발달되어 있으므로 어떤 성품을 가졌을까요?
우리 몸에 들어와서는 윗 쪽으로 작용을 합니다.
陽的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콩나물과 복어를 함께 써서 요리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멋진 콤비플레이가 되겠지요.
더우기 콩나물의 陰的 부분인 대가리를 떼내고 요리를 하면 더 좋겠지요.
요리 전문가들이 영양가 운운하면서
콩나물 대가리를 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요.
한방에서는 이렇게 영양가 외에도 氣의 升・降・浮・沈과 味의 厚薄 등을 보는 것입니다.
콩나물 대가리를 떼 내면 陽的인 부분만 남기 때문에
뱀장어나 복어와 같이 陰毒한 것과 같이 먹는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콩나물 몸통만 계속해서 먹는다면 어리어리하게 두통이 오고,
더 계속해서 먹으면 氣의 상승이 과해서 몸이 붕붕 뜨려고 할 겁니다.
특히 升麻와 섞어 먹는다면 비행술 연습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氣의 升・降・浮・沈에 대한, 허준 선생님의 우화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허준 선생이, 감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날
어느 바둑고수인 노인과 바둑 삼매경에 들었습니다.
감나무 아래에 자리를 펴고 바둑을 두는 정취에 한껏 젖어 있는데
제자가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긴급환자가 대기 중이라고 허둥댔습니다.
“체해서 뱃속이 꽉 막힌 환자인데 어서 손을 좀 쓰셔야지요” 하니까,
“針으로 四關을 틔워주든지 네가 알아서 응급처치를 해라”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당대의 명의로 추앙받는 자가 이럴 수가!….”
제자는 하는 수 없이 四關穴에 침을 놓고 방법을 다했으나 듣지를 않았습니다.
체한 것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를 하는 上吐下瀉 즉 霍亂이고,
또 하나는 토하지도 사하지도 않는 氣不升降,
즉 기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關格이지요.
전자는 좀 견딜만 하고, 같은 ‘곽’자 돌림인 藿香이 좋은 치료제로 쓰이는데
후자는 자칫하면 죽기 쉬운 급성입니다.
이 환자의 경우가 바로 關格이었던 것입니다.
제자의 재촉에 마지못해 일어난 허준 선생은
바로 옆에 떨어져 있던 감나무 잎을 주섬주섬 모으더니
“이걸 좀 달여 먹이도록 하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어이없는 일이지요.
감나무 잎에는 떫은 성분(澁味)이 들어 있으므로 체한 것이 더 악화되겠지요.
제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미친 짓이야! 무당이나 하는….
또 평소에는, 체한 데에 감나무를 쓰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를 하시더니….”
의아해 하면서 달여 먹였는데, 환자가 거짓말처럼 낫는 것이었어요.
“이럴 수가….”
제자는 허준 선생의 경지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면 물어봐야지요.
그러자 “체했을 때, 감나무에 매달린 잎을 쓰지 말라고 했지
내가 언제 땅에 떨어진 잎을 쓰지 말라고 하더냐?”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슬도 아침이슬과 저녁이슬이 다르듯이
같은 감나무의 잎이라도 매달려 있는 것과 떨어진 것은 다르지요.
떨어진 감나무 잎에는 降하는 (떨어진 잎이므로) 기운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라도 이걸 외워서
霍亂이나 關格에 떨어진 감나무 잎을 쓸 생각은 마십시오.
이것은 비유로 쓰인 우화일 뿐입니다.
같은 약이라고 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하는
氣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한다는 좋은 본보기이지요.
少陽之氣란 太陽의 비추임이요, 어미 닭이 알을 품는 따스함이요,
친구간이나 부모자식간에 충고를 하거나 회초리를 드는 것입니다.
계란 노른자를 많이 먹으면 膽汁분비를 촉진시켜서
담즙을 낭비시키므로 少陽之氣가 부족하게 됩니다.
少陽之氣가 과하면 곧잘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형 과격형의 성격이 되지만
少陽之氣가 부족하면 겁이 많고 공격적이지 못합니다.
계란 노른자를 많이 먹으면 洋方에서는 담즙이 낭비되어 고갈되므로
단백질을 소화시키기 어렵다고 말을 하지만
우리 한방에서는 뱃속에 회충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胎敎法에 약 108가지가 있는데, 그 내용을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계란을 많이 먹으면 태아에게 회충이 생기고,
게를 많이 먹으면 게처럼 아이가 옆으로 나오려 하므로
橫産(태아가 팔부터 나옴)을 하기 쉽고,
문어나 오징어와 같이 머리털이 없거나 비늘 없는 고기를 먹으면
어린애가 대머리가 된다고 합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결코 미신을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동식물을 먹으면 그것이 가진 특수한 그 나름의 氣의 작용으로 인하여
우리 체내의 어느 經絡이 발달하게 되므로 그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콩나물의 몸통과 뿌리를 牛黃淸心元에 넣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藥性을 上焦에 작용시키고자 함이지요.
이 외에도 牛黃淸心元에는 山藥, 甘草, 人蔘, 蒲黃, 神麯, 犀角 등 많이 들어갑니다.
서각은 물소뿔인데 備穴, 衄血, 즉 코피 나는데 쓰지요.
물소뿔은 밤에 달이 간직하고 있는 月精을 빨아들이므로
그믐밤에 보면 후광 같은 것이 드리워진다고 합니다.
달의 精을 모으는 또 다른 방법은,
경주에서 나는 옥돌 같은 것에 홈을 파가지고 달빛 아래에 두면
그 홈에 물이 고인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月精水인데 火氣가 많고 성질이 급하고 고약한 사람이 많이 먹으면
성격교정은 물론 신선이 된다고 합니다.
“方藥合編”下統에 犀角地黃湯(下統 60편)이 있는데
“治衄血不止及上焦有瘀血便黑 즉
멎지 않는 衄血(코피)과 上焦에 瘀血이 있어서 대변이 검게 되는 것을 다스린다”
고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신으로 여기는 한약방의 합리성을 몇 가지 예로써 증명해 보겠습니다.
부뚜막의 흙을 약으로 씁니다.
伏龍肝이라 하지요.
伏龍肝을 빨갛게 달군 다음 냉수에다 탁 부으면 치지직 소리가 나겠지요.
이 물을 약으로 복용하는데 어떤 경우에 쓸까요?
대들보 위에 쌓인 먼지를 樑上塵이라 하는데 이것도 약으로 씁니다.
催吐劑로 쓰이는 樑上塵은 콧 속으로 불어 넣는데 이것은 오래된 것일수록 좋습니다.
수십 년 묵은 古書를 뒤적거리다 보면 연거푸 재채기가 나고, 눈물이 나고,
멍멍해지는 수가 있지요.
이것도 樑上塵과 같은 기운의 작용입니다.
사마귀는 율무나 뜸을 뜨거나 면도칼로 잘라 치료합니다.
또 제일 먼저 생겨난 사마귀에 뜸을 뜨면 나머지는 저절로 평정이 됩니다.
그런데 제 사부님께서는 아프지 않게 낫는 방법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번개가 사납게 치는 날 사마귀를 번갯불에 노출시킨 뒤
‘
아! 뜨거’를 세 번 외치면 낫는다”고 해서
“에이, 사부님도 농담이 지나치십니다”하니
“의사인 네게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실지로 이렇게 해서 수백 명도 더 나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어떠한 少陽之氣의 전기를,
주역학적으로는 四震雷에 해당하는 어떤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번개는 이 지상에 순식간에 엄청나게 많은
少陽之氣를 갖다 나르기 때문입니다.
牛黃淸心元에는 朱砂(水飛해서 씀)와 牛黃(소에게서 나오는 특정한 이물질,
해열제로 씀)등의 광물질류가 들어가므로 그 작용이 아래로 내려가겠지요.
腎臟의 熱을 치고 싶다면 이대로 쓰면 되겠지만,
心臟의 熱을 치고 싶다면 콩나물을 넣는 겁니다
(콩나물에 열을 가해서 炒를 해서 쓰면 더 좋지요).
그러나 升麻는 너무 끌고 올라가므로 쓰지 않지요.
흔히 먹는 콩나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위로 끌고 올라가는 것이 신기하지요.
거듭 말씀 드리자면 식물은 동물과 반대의 형태로 작용을 합니다.
동물은 식물을 통해서 地味를 얻습니다.
파의 뿌리 가까운 쪽의 흰부분을 총백(葱白)이라고 하지요.
“方藥合編” 中統 13번 五積散을 보면 葱三本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治感傷風寒 頭身痛
四肢逆冷 胸腹作痛 嘔瀉 或傷生冷”
몸이 冷한 사람에겐 五積散, 더운 사람에겐 防風通聖散이 聖藥입니다.
또 파의 윗부분을 잘라 먹으면 下氣시키는 작용이 강하므로
변비나 소변이 안 나오는 것과 經度不通에 아주 특효약입니다.
이렇게 下焦에 쓰는 瀉下劑이지요.
이건 비방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것 하나만 듣고 가더라도 보람있는 일이 될 겁니다.
한편 ‘葱白三莖을 넣어라’는 처방이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처방은 위로 올라가게 하는 藥일까요? 아래로 내려가게 하는 藥일까요?
또 몸을 덥게 하는 약일까요? 차게 하는 약일까요?
위로 올라가게 하고, 몸을 덥게 하는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기도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 오지요.
“方藥合編” 下統 136번 蟠葱散을 보면
“治脾胃虛冷 心腹功刺連胸脅
膀胱少陽 腎氣作痛”
蒼朮, 甘草, 三稜, 蓬朮, 白茯苓, 靑皮, 砂仁, 丁香皮,
檳榔, 玄胡索, 肉桂, 乾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빈랑만 下氣시키는 약이고,
전반적으로 藥性이 가볍고 더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출은 溫脾袪濕, 三稜・蓬朮은 破積之劑에 해당하는데 주로 물을 말리는 약입니다.
玄胡索은 血中의 熱 또는 血하고 관계되는 부인들 약이고,
肉桂와 乾薑은 속 부위를 데우는 약
(乾薑과 良薑은 술 먹고 속이 冷한 사람에겐 꼭 쓰는 藥임)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다 총백 일경을 넣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파의 흰 부분에서 실뿌리까지를 톡 잘라서 넣는 겁니다.
이렇게 파뿌리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氣를 거들어 올려 승해 주는 약임을 바로 알 수가 있지요.
蟠葱散은 下焦가 冷한 사람에게 쓰이는 聖스러운 약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腎臟結石, 膀胱結石, 신경성 대장염, 남녀 임질 등의 성병,
여자들 冷症, 옛말로는 疝症 등으로 배가 살살 아픈 경우에 쓰는 데
마른 사람에겐 아무리 痛症이 같아도 쓸 수 없습니다.
走馬看山格으로 지나쳐가지만 총론에서 다루는 약들이 실은 대단한 것들입니다.
이젠 어떤 탕이라도 파뿌리를 넣으라고 되어 있다면 여러분들은 쉬
“몸을 덥게 하는 것 내지는 아래에 있는 것을 위로 거들어 올려주는 것이로군”
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이번엔 씨의 升・降・浮・沈을 한번 살펴볼까요.
씨에는 주로 ‘子’나 ‘仁’자를 쓰는데 사람에게 상응시켜 보면
씨는 腎臟이나 생식능력을 돕는 작용을 합니다.
“方藥合編” 卷末部分에 보면 石隱補遺方이란 제목으로 처방이 10여개 실려있는데
그 중에 延齡固本丹이 있습니다.
延齡固本丹은 “治五勞七傷 諸虛百損
顔色 衰朽 形體嬴廋 中年陽事不擧
精神短少 未至五旬 鬚髮先白
手足癱瘓 或脚膝痠疼
小腸疝氣 婦人無子 下元虛冷”
중년 이후에 陽事가 不起하여 12방향이 잘 되지 않고 정신이 短小하여
기억력이 가물거리므로 방금했던 이야길 하고 또 하는 경우에 씁니다.
六味地黃湯에 加五子(五味子, 枸杞子, 兎絲子, 覆盆子는 넣고, 蛇床子는 빠져있음)
加歸脾湯 재료 등으로 구성된 이 延齡固本丹은
마른 체질의 사람에게 기가 막힌 약이지요.
여러분들 개업기념으로 아버지께 정력제를 선물하는 것은 정말 멋진 생각입니다만
몸이 통통하고 대머리가 벗겨지고 여름에 땀을 많이 흘리며 씩씩거리는 아버지에게
연령고본단을 선물한다면 한의대 헛 보냈다고 땅을 치며 통곡하실 것입니다.
이 약은 3개월 가량 먹게 되는데 위와 같은 사람이 복용하면
먹을수록 陽氣가 더 떨어지겠지요.
이럴 때는 아쉬운 대로 升麻와 콩나물을 합한 升麻大豆黃卷湯을 써 보세요.
여기에다 半夏나 南星을 넣고 二陳湯을 가미하면 멋진 정력제가 됩니다.
여기에 다른 것을 좀더 넣고 싶으면 薏苡仁 같은 袪濕之劑에 補中益氣湯이나
藿香正氣散을 加味하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겠지요.
아무튼 좀 마르고 신경질 적인 환자에게
좋은 延齡固本丹에 五子가 들어감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선생님! 만형자(蔓荊子)도 씨지만 精力制로 쓸 수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蔓荊子는 쓸 수 없지요.
씨가 좀 쫀득쫀득하다거나 맛이 시고 떫거나 해야 收澁이 될텐데
만형자는 無味일 뿐 아니라 매우 가볍습니다.
中統 125번의 蔓荊子散을 찾아보세요.
“治腎經有風熱 耳中熱痛出膿汁 或鳴 或聾”
蔓荊子, 赤茯苓, 甘菊, 麥門冬, 前胡, 生地黃, 桑白皮,
赤芍藥, 木通, 升麻, 甘草가 들어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蔓荊子, 升麻, 甘菊, 白芷 등의 가벼운 약은
위로 올라가므로 머리 쪽 질환에 쓰입니다.
씨라고 해서 다 下焦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蔓荊子와 같이 升・降・浮・沈의 공식에서 어긋나는 것이 있습니다.
한방은 고지식한 안목으로 보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씨앗 중에 決明子라는 것이 있지요.
밝은 明子 그대로 눈에 좋은 것인데, 草決明과 石決明 두 가지가 있습니다.
下統 108번 洗肝明目湯을 보면
“治一切風熱眼目 赤腫疼痛“에 초결명을 쓰지요.
그리고 머리를 좋게 하고 두통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으로
蔓荊子, 甘菊 등도 들어갔지요.
下統 107번 石決明散을 보면
“治肝熱 眼赤腫 生瞖 或脾熱 瞼內鷄冠蜆肉 蟹睛疼通 螺起“에
石決明, 草決明은 君藥으로 되어 있습니다.
눈의 질환이 熱로 인해서 올까요? 冷으로 인해서 올까요?
熱로 인해서 오지요.
그러므로 石決明과 草決明은 당연히 熱을 식혀주는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혀주는 약을 많이 먹으면 陽氣가 떨어지겠지요.
따라서 決明子는 씨앗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먹게 되면
五子와 반대되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本草綱目“에도 배가 찬 사람은 決明子를 삼가라고 되어 있는데
길가 돌팔이들은 精力制라고 떠들어 댑니다.
이상과 같은 예외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식물의 뿌리부분은 동물의 머리 쪽으로 작용을 하고,
가지 부분은 동물의 팔 다리에 작용을 하고,
지상부분은 동물의 下焦에 작용한다는 것을 공부했습니다.
3.
동물의 성품은 머리와 몸의 비율, 임맥과 독맥의 상대적인 발달 정도,
입술 모양, 눈의 크기, 몸에 털이 있느냐, 깃털이 있느냐,
비늘이 있느냐, 아니면 딱딱한 껍질을 가졌느냐….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동물을 六經的으로 분류를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털이 난 동물 즉 호랑이, 산돼지, 곰 등의 맹수를 毛虫이라 하는데
이러한 동물들은 木에 속하고,
우리 인간과 같이 발가벗은 동물을 裸虫이라 하는데 太陰濕土에 해당하겠지요.
그리고 甲殼類와 같이 딱딱한 껍질에 싸인 것은 陽明燥金에 해당되고,
비늘이 있는 생선류는 水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른 사람에겐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 생선 등을 많이 먹도록 권해야 합니다.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太陽寒水에 해당되고,
털이 있는 짐승(맹수)은 少陰君火에 해당됩니다.
한편 같은 火라도 少陽相火는 깃털 달린 것으로서
매우 공격적인 성품을 가진 독수리나 벌 따위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대충 분류를 하면 다소 무리한 점도 없지 않지만 참고로 해 두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정도만 알아도 어떤 동물이 그 해에 크게 번성한다면
그 해는 그 동물이 생활하기 알맞도록
風・寒・暑・濕・燥・火가 적절히 구성되어 있다고 추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丙寅年은 寅申相火의 해이므로 건드리면 톡톡 쏘는 쐐기나 모기가 번성한다든지,
어떤 해에는 날 파리나 메뚜기 떼가 번성했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동물의 성품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가령, 메뚜기를 예로 들자면 머리 부분이 큰가 몸통이 큰가?
날개가 있는가. 눈이 발달되었는가. 입은 어떻게 발달되었는가.
심지어는 메뚜기의 맛을 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슷한 종류인데도 방아깨비처럼 순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마귀와 같이 아주 독한 것이 있으므로 참으로 예리하게 판별치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에는 이론보다는 직관에 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펠리칸이 번성하는 나라와 독수리가 번성하는 나라가 있다고 할 때
어느 나라가 더 평화롭겠습니까?
명태가 많이 잡히는 나라와 상어가 많이 잡히는 나라가 있다고 할 때도
어느 나라가 더 평화로울까요?
周易學者나 五運六氣學子는 이런 징조를 금새 알아차리고 그 민족성을 꿰뚫어 봅니다.
어느 동네에 가니 버섯이 많이 나더라, 어느 동네에는 선인장이 많더라….하면
이내 그 동네의 土質을 알 수가 있지요.
여러분! 이런 징조를 보는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버지를 보고 잘 모르겠으면 그 아들을 보고,
땅의 토질을 보고자 할 때는 그곳의 나무를 보라고 했습니다.
산지나 그 식물이 자란 때의 영양상태나 기후까지도
식물 하나만을 보고 추리해 낼 수가 있습니다.
무생물의 경우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뾰족뾰족한 돌이 많고 산들이 대체로 모가 난 나라의 사람들은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겠구나’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요.
동식물은 물론 무생물까지도 서로 얽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여러분은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개를 보세요.
국민성과 같이 양순하기 짝이 없지요.
야채를 주로 먹는 우리나라 개에 비해서
고기를 주로 먹는 서양의 개들은 대체로 난폭하고 사납습니다.
植物觀相, 動物觀相, 人間觀相 심지어는 음악, 미술 등의 예술까지도
六氣, 즉 風・寒・署・濕・燥・火와 미묘한 연관이 있습니다.
왕의 사당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孔子는
“머지않아 정변이 일어나겠군”하고 짐작을 하더랍니다.
어떤 일에는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징조가 있습니다.
‘금년에 보리가 대풍작이다’라든가 ‘금년엔 울릉도 오징어가 풍어다’고 할 때
周易學者들은 이것을 六經에다 대입을 시키고 거기에서 표출되는 양상으로
“아! 어떤 일이 벌어지겠구나”하고 알아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産地를 보고도 성품을 알 수 있고,
그것의 생김새를 보고서도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지요.
지상과 지하를 구분해서 보는 陰陽 구별법을 말씀드렸었는데
땅에 사는 식물이 아니라도 음양의 구별은 가능합니다.
물 위에 사는 식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지요.
물위나 아래의 어느 한 쪽이 반대쪽보다 훨씬 크다면
이것은 틀림없이 독성이 강한 식물일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개구리밥(浮萍草)이 있지요.
浮萍草는 피부병에 특효약입니다.
그러면 이 부평초는 가볍게 작용할까요? 무겁게 작용할까요?
부평초는 가볍게 작용하므로 두통에도 잘 듣습니다.
나팔꽃을 보면 뿌리는 아주 작고 땅속으로는 얕게 들어가 있지만
위로 감고 올라가는 힘과 높이는 대단하지요.
그러므로 나팔꽃은 쉽게 식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선생님! 마늘이나 양파 같은 것은 지상부분이 지하부분보다 훨씬 큰데
어떻게 식용을 할 수 있습니까?”
아무리 지상부분이 더 크다고 해도
그 식물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은 지하부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파와 마늘은 上氣가 되지요.
마늘을 생으로 먹으면 憤心을 돋구고, 익혀서 먹으면 음심을 돋군다고 합니다.
憤心을 돋군다는 것은 바로 上氣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종합적으로 上下의 균형이 맞는 식물(약초)을
성스럽다 하고 또는 靈草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식물을 어찌 上下 관계만으로 나눌 수 있겠어요?
관찰법 이외에도 맛을 보거나 향을 맡거나 산지를 보는 방법을 통해서
식물을 감별할 수 있지요.
그리고 모양의 생김새 외에도 질을 보기도 합니다.
민들레 꽃씨가 터지기 일보직전에 있는 경우라든가
배추가 중심을 향해 모이는 상황이나 난초처럼 바깥으로 축축 처지는 성질,
쭉쭉 뻗어 올라가는 것과 빙빙 감아 올라가는 덩쿨도 있지요.
또한 이런 생김새도 보지만, 소나무 껍질과 같이 단단한 것,
선인장 껍질과 같이 보드랍고 매끄러운 것,
또는 매끄러운 것 등의 질을 보기도 하고 색을 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식물과 六經에 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휘어 감는다든가 바깥에서 안으로 오그라드는 성질이 있는 덩굴식물류는
厥陰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이런 식물은 收歛하고자 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속이 실한 경우가 많지요.
蘭을 키우고 계신 분은 잘 알 것입니다.
蘭은 섬세하고도 유연한 인상을 주지요.
이렇게 간들간들 간드러지고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것은 少陰君火에 속합니다.
칸나, 수선화, 히야신스, 양귀비와 같이
간들거리면서 예쁜 꽃들도 모두 少陰君火에 속합니다.
과일도 마찬가집니다.
배처럼 딱딱한 것이 있는가 하면 복숭아와 같이 연한 것,
또는 바나나와 같이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있습니다.
또 식물이 자라는 산지에 따라서 그것이 가진 속성과 형태가 다 다른 것이
민심과도 연결이 됨을 五運六氣法을 배우는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이제 상당히 자신감이 생기셨을 줄 압니다.
저도 이런 이야기를 들은 처음에는 그랬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그 자신감이 엷어지더군요. 왜 그럴까요?
지금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이론에 너무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벌써 몇 번째 강조되는 이야기입니다만 결국은 이론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때그때의 직감과 직관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만물은 단순한 음양이나 몇 가지 六經的 이론만으로
알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민학교 어린이가 미술시간에 蘭을 그리라고 하니까 보석을 가득 그리더랍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느냐고 담임선생님이 묻자,
“우리 아버지는 난초를 보석보다 더 귀히 여기십니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다시 蘭을 그렸을 때에는
난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은 이론적이 되고,
속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느낌을 억누르고
외부로부터 들어가는 이론과 지식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이중섭이나 피카소 같은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대상 자체의 형질적인 점보다는
그것으로부터 받는 느낌,
속으로부터 반향되어 나오는 인상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지요.
나아가서는, ‘틀’이 없는 그림인 비구상을 하는 화가도 많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네 동양의학도 직관을 중요시하는 공부를 해야지
따분하고 지루한 이론이나 지식공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날인데도 우울할 수가 있고,
추적추적 장마 비가 계속되는 데도 명랑한 날이 있습니다.
지하철을 탔는데, 차내 분위기가 어색합니다.
그러면 ”아!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군!” 이런 느낌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벼랑의 바위틈에 붙어 있는 난초에서부터
화원에서 곱게 가꾸어지는 장미꽃에 이르기까지 그
때그때의 상황에서 다른 식물의 기분을 살필 수 있을 만큼 여러분은 민감해야 됩니다.
민감하지 않으면 육경공부가 이론화되어서
사물을 대함에 그저 이론적으로 분류하게 되고 맙니다.
어떤 느낌을 잡으려 하지 않고
“이 사람은 厥陰・少陰・太陰・少陽・陽明・太陽 중 어디에 속할까”
하고 분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여섯 가지 틀을 만들어서 그 틀 속에 사람을 집어넣습니다.
너는 무슨 형! 저건 무슨 형!
이라고 판단하는 즉시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에 속기 시작합니다.
순간적으로 맞았다면 몰라도, 사람을 어떻게 틀 속에 넣어 고정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주관적인 지식이나 선입관 없이
냉철하게 볼 수 있는 心眼의 개발이 중요합니다.
뚜껑 없는 우물이 있었습니다.
어느 축제날, 한 사람이 발을 헛디뎌 그만 이 우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축제에 들뜬 사람들은 아무도 이 사람의 구원 요청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밤이 깊어 축제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구조의 손길은 닿지 않고, 무심한 별들만이 반짝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스님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 자비로우신 스님 절 좀 올려주십시오”
그러자
“당신은 아마도 전생의 업 때문에 여기에 빠졌을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업은 다 치러내지 않으면 끝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부디 그 속에서 당신의 업을 다 치르시기 바랍니다.
소승이 宿命通을 얻었다면 당신 전생의 업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텐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하고는 총총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물에 빠진 사나이는 스님의 무심함을 한탄하며 다시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번에는 사회개혁가가 지나가다가 사람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왔습니다.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황급히 일어서서 사회개혁가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현 사회는 이런 모순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상에 우물에 뚜껑을 하지 않다니!
지금 당장 가서 전 세계의 우물에 뚜껑을 만들어 달도록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서명운동도 하고, 정치가를 만나서 설득도하겠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설득도 좋고 개혁도 좋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 할 거 아니요?”
라고 소리를 지르자,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이란 사회 전체의 개선을 위해선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당신과 같은 이런 희생이 좋은 본보기로서 꼭 필요한 때입니다.
제가 당신을 구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의 희생은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유토피아적인 사고방식입니까?
자기 스스로의 內革을 못한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사회를 개혁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우물에 빠진 사람은 이제 자포자기를 했습니다.
“에라 믿지 않았던 하느님이지만 마지막으로 기도나 하고 죽자!”
그러자 위에서 두레박이 내려왔습니다.
놀라서 올려다보니,
금분이 노랗게 칠해진 검은 성경책을 가진 목사가
구조의 두레박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 하느님은 역시 하느님입니다. 고맙습니다”
우물에 빠진 사람은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었습니다.
이윽고, 목사가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은혜로운 종교인이십니다. 고맙습니다”고 인사를 하자,
“항상 예수님께서는 불쌍하고 고통 받는 자를 구원하고 위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할 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셔서 당신의 아들딸에게도 자주 우물에 빠지는 법을 일러주십시오.
그리해야 다른 사람들도 하느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개인의 구원이 선행되지 않는 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 종교인은 간접적인 폭력자입니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바로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무의촌 봉사는 강원도 첩첩 산골의 어느 마을로 결정되었습니다.
“선배님은 왜 안 가십니까?”
“야 임마! 기왕이면 경치 좋고, 소주라도 한 잔 할 수 있는 데가 좋잖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는 거룩한 허준 선생님의 후예로서 한 끼 밥을 굶더라도
오직 봉사와 희생과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위대한 삶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일종의 Ego일지 모릅니다.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마음조차도 관찰할 수 없는데
어떻게 식물을 관찰할 수 있겠습니까?
몇 가지 이론만으로 신비한 식물의 세계를 어떻게 탐사할 수 있을지
저는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들에게 쏟고 있는 사랑의 9할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래에, 부모님들이 당대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주도록,
맺힌 한을 풀어주도록 하기 위한, 당신들의 분신에 대한 사랑이기 쉽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인간관계에 ‘이용’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강조하느냐 하면,
식물의 성품을 알면 오직 치병에 쓰고자 해야 하고,
쓸 때는 부득이 쓰는 마음을 가져야지,
“저건 어디 먹으면 좋아, 저건 정력제야, 저건 어쩌구…” 이래선 안 되겠지요.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대로, 고통을 고통 그대로 느끼고 볼 줄 아는
심안을 열도록 해야지 얕은 생각을 굴리면 마음이 편하질 못하지요.
여러분이 선문답을 들을 때
마음속에 청풍이 솨아 하고 불어옴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참 의미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 우리는 산 송장과 같습니다.
살아서 펄펄 끓는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지식과 이론과 수만 년 동안에 누적된 부질없는 전통과 관습,
습관에 물들어 있는 우리는 사실 산 송장들입니다.
“내가 이래 뵈도 한의대생인데, 얼굴도 잘 생기고, 집도 부유하고,
또 몇 가지 주워들은 풍월이 있는데…”
이런 명예의식, 이런 교만의식이 여러분의 자아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공부는 동양의학 이전에 동양철학입니다.
동양철학의 근본은 하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4.
四象 중 하나인 입이 하는 일을 보면 먹는 일과 말하는 일로 나눌 수 있는데
四象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여기에서는 입의 먹고 맛보는 작용기능에 관하여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맛을 보려면 우선 혓바닥이 건전해야 합니다.
味盲이라든가 五味 중의 어느 한 가지에만 잘 길든 사람은 곤란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五味를 고루 섞어 먹거나,
어느 시점에서 먹고 싶은 대로 먹어야 합니다.
단 허욕에서 발동되는 미각이어서는 안 되겠지요.
“아! 지난여름에 생선회를 먹고 식중독으로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런 식으로 몸을 사리지 마세요. 그건 옛날 일입니다.
어느 때에 자신의 속으로부터 무엇이 갈구되어지는지를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의사 이상입니다.
이것을 일반 사람들은 모르므로 우리에게 상의를 하러 오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환자의 깊은 속에서 요구하는 맛을 알아내어
그에 맞게 약을 주어야 하는데 잘 모르겠으면 五味를 두루 섞어서 주도록 하세요.
大黃같이 쓰고 찬 약이 들어가면 肉桂와 같이 달고 더운약도 넣고
山査같이 신 맛의 약도 좀 넣고, 짠 맛의 약이 없으면
집에 가서 음식을 좀 짜게 먹으라고 하는 식으로 섞어주면 이상이 없습니다.
공연히 잘난 척하고 맛을 극단적으로 편벽하게 취해서 약을 지어 주면
여러분에게 엄청난 화가 돌아옵니다.
겨울을 지나고 봄에 열매를 맺는 보리로 밥을 지어 주면
겨울을 모르는 쌀보다는 冷하므로 자꾸 下氣가 되고 방귀가 풍풍 나오는 것입니다.
옛 부터 단식가들은 소나무 잎을 무척 좋은 음식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소나무가 늘 푸르게 四時(春夏秋冬)를 지내므로
元亨利貞의 덕이 있어서 인간에게 무해무독하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덕성과 성인의 성품을 가진 것이 바로 소나무올시다.
이런 소나무 뿌리에서 나는 것이 茯苓이지요.
또 그것이 조금 굵어진 것을 白茯苓이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섞어 먹어서 병이 났다면 무엇을 먹어야 되겠습니까?
淡味를 넣어주어야지요.
淡味도 전체적으로 작용하므로 中央土에 넣습니다.
그러면 六經으로는 어디에 배속이 될까요? 애매하지요?
굳이 억지를 써서 배속을 시키려고 하지 마세요.
淡味가 있고 나서 六經이 생겼을진대
六經이라는 틀 속에 淡味를 끼워 넣으려고 집착하지 마세요.
아무튼 소나무는 上下가 평등하므로 陰陽이 화평합니다.
그리고 사시에 청청하므로 전체성과 완전성이 있습니다.
춘하추동을 다 지낼 수 있는 사람이나 개와는 달리 곰은 겨울잠을 잡니다.
이것은 곰이 아무리 영리하고 민첩한 동물이라 하더라도
어딘가 한 구석 모자람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뱀도 마찬가지겠지요.
“莊子”에
“여름철에 사는 매미나 하루살이에게
겨울에 눈이 풀풀 내리는 아름다움을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는 말이 있습니다.
겨울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어느 경락과 연관 지어질까요?
少陰君火 꽃인데 겨울(五行上 水)에 피니까 水
가운데 火가 있는 經絡인 足少陰腎經이나 手太陽小腸經이 되겠지요.
특히 足少陰腎經락에 해당하는 子(12지 가운데에서)의 성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에 꽃이 피는 것만을 보고도
“아! 이걸 먹으면 어떻게 되겠구나”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春夏를 陽, 秋冬을 陰이라고 할 때
地上部가 地下部 보다 큰 식물은 언제 잘 자라겠습니까?
또한 버섯은 언제 잘 자랄까요?
겨울에 오는 기러기와 봄에 오는 제비 중 어느 쪽이 몸이 더울까요?
옛날 사람들이 “중풍에는 오리 피를 먹어라”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너무 무조건 외우길 좋아합니다.
피곤하게 정신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외워 가지고는 참 의미의 답은 한 마디로 할 수가 없습니다.
藥을 먹을 때, 鷄猪酒麵(닭고기, 돼지고기, 술, 밀가루 음식)을 금하라고
주로 이야길 많이 합니다만 무조건적으로 먹지 말라고 해선 안 되지요.
환자에 따라서 쓰기도 하지요.
猪蹄湯이라고 하는데 돼지발톱(족발)에 四物湯을 넣고
穿山甲, 皂角刺를 조금 더하여 달여 주면,
산모가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이것을 복용하면 젖이 많이 나옵니다.
무조건 외워서 써 먹으려고 하지 마세요.
사시사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식물이 있다면 그것은 靈草지요.
동물가운데에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때를 가리지 않고 성욕을 발산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동물은 식물과 마찬가지로 발정주기가 있지요.
그리고 인간 중에도 봄에는 여자의 발정도가 세고
가을에는 남자의 발정도가 세다고 하는 이야길 들어보셨겠지요.
이건 당연한 것이지요.
봄에는 陽氣가 升發하므로 여자들의 기운이 평정을 찾고,
가을은 수렴하고 藏하는 陰氣가 盛할 때이므로
남자들의 기운이 평정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인간에게도 동식물과 같은 주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神은 어느 때 어느 장소의 어떤 마음이라도 용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하고 나서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에 있는
어떠한 經絡이라도 꺼내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신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마음이 어떻게 되어 있어야 되겠습니까?
비어 있어야지요.
무엇이든지 다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은 항상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인의 정치는 고기를 잡되 너무 촘촘한 그물을 쓰지 않음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고 할 때도 너무 나무라면 안 되지요.
“애들도 있고, 우리 집안 가문이 있지 않느냐…”하고 처음엔 타일러야지요.
우리는 어린 새싹을 귀하게 여기듯
막 일어서려는 것을 사정없이 밟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다 때가 있지요.
봄, 여름에 만물이 무성히 생장할 때는 우리 마음도 그것에 따르게 하고
가을이 되어 거두어야 할 때는 지체 없이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추수라 함은 殺의 의미도 있지요.
예수님께서 “이제 추수기가 다가왔다”고 말씀하신 이면에는
심판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生長化收藏의 리듬을 옛 성인들은 잘 지켜나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성인들의 德化정치의 기본이 바로 陰陽五行,
五運六氣에 있었음을 이제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肝氣가 성해서 脾臟氣運을 강하게 억누르고 있는데다가
비타민 C를 한꺼번에 10알씩 먹이다 보니 요즈음 過비타민증이 무지하게 많아요.
또 요즈음은 의학자들이 만들어내는 병도 있습니다.
바로 의사병이지요.
의사의 처방대로 먹은 약으로 인해 생기는 병입니다.
우리 한약은 왜 이런 부작용이 없는 줄 아십니까?
大黃이면 大黃,
이렇게 우리도 單方만 형식적으로 처방했다면 부작용이 많았을지 모릅니다.
처방이 약 다섯 가지가 되는 것이 주로 상한론이지요.
그러므로 傷寒論 처방이 대체로 위험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양약의 위험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감기약 하나만 주시오”하면 무엇을 넣었는지 몇 알 먹지도 않았는데 머리가 핑 돌죠.
운전할 때 보면 깜박 졸고
“아까 감기약을 먹었는데 이상하게 팽그르르 돌아요”라고 말을 하지요.
이것은 섞어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우리 한약은 약을 골고루 넣어주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 구제프가 티벳의 신비한 수도승을 만나서
음식을 오래 씹어 먹다가 망신당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250살 먹은 신비의 수도승을 만났습니다.
구제프라고 하는 사람도 유명한 도인인데
이 사람이 도를 구하러 갔을 때 어느 인도 요기가 시키는 대로 음식을 먹을 때
한 번에 오십 번 이상 꼭꼭 씹어먹기로 작심을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여러분들 음식을 30번씩 씹어 먹는 분 있습니까?
음식을 30번씩만 씹어 먹을래도 엄청나게 힘이 듭니다.
그런데 50번씩 씹어 먹으려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어요?
이 모습을 보던 노승이
“자네 왜 음식을 꼭꼭 씹어먹고 그러는가”하니
“아휴! 이런 것도 모르십니까?
250살까지 살았으면서도.
저는요 인도의 어떤 스승이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해서 그 말 대로 하고 있지요”
그러니까 노승은 깔깔깔깔 웃으면서
“자네는 보나마나 40대도 못되어서 위궤양 등 모든 위장병만 잔뜩 걸릴걸세”
하는 겁니다.
재수없는 소리를 듣고서 기분이 되게 나빴습니다.
그런데 구제프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250살까지 산 노인이 거짓말 할 까닭은 없을 것이고,
또 여러 사람이 도인으로서 숭앙을 하고 있으니까 그 노인에게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그 이유인즉 인체라는 것은 안 쓰면 그 기능이 상실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소변이 안 나온다고 利尿劑를 자꾸 쓰는 지금의 腎臟 치료는 위험합니다.
소화가 안 된다고 소화제를 자꾸 쓰면
결국 소화능력 자체는 없어지고 소화제만 의존하게 되죠.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돌이든 뭐든 다 섞어서 아무거나 먹어라.
그래서 胃腸을 단련시켜야 된다는 것이 그 노인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뭐든지 너무 씹어 먹는 것도 병이 되는데
섞어 먹지 않으면 얼마나 큰 병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한방에서는 가능한 한 원리를 모르면 섞어줄 것
또 사시사철을 다 지낸 약이 靈藥이라는 것이니,
봄에는 단 맛, 여름에는 약간 매운 맛, 한참 濕할 때는 약간 짠 맛을,
가을에는 좀 신 맛과 겨울에는 쓴 맛을 좀 가해주세요.
여러분이 현재 특별한 병이 없이 별로 뚱뚱하지도 않고 냉하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평범한 체질이라면 지금부터 일생 동안 지켜보세요.
어마어마하게 좋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5.
만일 병에 걸렸는데 그 병에 맞는 음식물이 생각나지 않을 때도
섞어서 약을 지어줘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짜고 한
춘하추동의 사시의 덕성, 五運六氣의 덕성을 몽땅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오행 순환을 해서 전체를 형성하기 때문이지요.
전체는 곧 신이요, 신은 완전이요,
건강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죠.
섞어 먹는다는 것, 뭐든지 종합해서 먹는다는 것,
이것은 자체 나름대로 어떤 싸이클을 이루게 됩니다.
“나는 앞으로 肝臟 專門만 할거야. 어떤 것만 전문할꺼야” 이러지 마세요.
간장암 박사가 간장암으로 죽었어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간장암 전문이라고 하니까 간장암 환자만 오거든요.
간장이 암이 될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 성격이 얼마나 지독하고 모질겠습니까?
속으로 굉장히 집착이 강한 사람이겠지요.
성인의 지혜라는 게 뭡니까?
결국은 빈 지혜가 성인의 지혜죠.
정신 건강의 극치는 무심입니다.
육체적 건강의 극치는 조화입니다.
정신건강의 극치는 모든 생각을 다 일으켜보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이전으로 쉴 줄 아는 것이 정신건강의 극치입니다.
厥陰 少陽 太陰 陽明… 이런 조화의 이치를 알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가령, “어제 내가 비를 맞았지? 으스스 추워, 좀 뜨거운 데 가서 땀을 내야지”
“어제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러니까 오늘은 돼지고기를 먹어봐야지”
그렇죠? 그렇게 하는 거지요.
“광산에서 일을 했더니 너무 목이 건조해. 탄가루를 너무 많이 마셨어”
이 때는 돼지 비게를 많이 먹어야지요.
돼지 비게가 없으면 탄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죽고 맙니다.
그런데 “아! 여보 오늘 참 수고했어요. 먼지 많이 마시느라고 고생하셨어요.
제가 오늘은 특별히 생각해서 북어포를 사왔어요.
북어포를 고추장에다가 무쳐가지고 거기다 양파를 올려놓고
또 파를 얹어서 빨갛게 구워왔어요. 안주해서 소주나 한 잔하세요”
이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이삼 일이면 죽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백묵가루 마실 때에도 돼지고기 많이 먹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벌써 조화지요. 그러니까 육체의 건강은 조화입니다.
그래서 무심을 體로 삼고,
리듬을 타는 조화감각을 用으로 삼는 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
“모든 암은 마음의 집착에서 온다!” 나는 직설적으로 얘기합니다.
마음의 집착에서 온다.
動하는 마음의 쌓임이 물질화되어서 덩어리가 되고,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의 妄動함이 자꾸 산과 같이 되어서 암이 됩니다.
병갓머리(疒)안에 口자가 3개 있고 山자가 들어가 있으면
그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산과 같이 쌓여서 그렇게 된다는 파자풀이도 있습니다.
독한 마음도 시초는 사소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라서 덩어리가 되고 나면 고치기가 힘들죠. 산불이 그러합니다.
어린이들이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났어도 그 불을 처음에 끈다면 아무 것도 아닌데
온 산에 나무가 시꺼멓게 숯덩이가 된 뒤엔 그 숲의 나무를 살릴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암에 걸리면 어떤 것이 약입니까?
죽는 것이 약이지요.
아무리 독한 마음도 시초에는 별것 아닌 데서 시작합니다.
이걸 알아야지요.
병이 깊어 이미 죽음이 가까이 왔는데 치료하는 것을 “內經”에서는 下醫라 그랬습니다.
병이 이미 오기 전에 그 기운을 알아서
“너 이런 것 조심해. 너 아무거나 부러워하는 것 보니까 너 아무래도 자궁암 생기겠어”
이렇게 한의는 병을 예방할 줄 알아야 합니다.
‘七氣湯과 不動心’을 한번 볼까요.
무엇이 중간에 딱 걸린 脾胃臟 中央土에 관한 병이 걸린 환자가 왔을 때,
위로 아예 올려서 구토를 시켜버리든지 아래로 사하제를 쓰든지 해야 합니다.
아픈 것도 같고 어떻게 생각하면 기분이 좋고 그렇죠.
남자 옆구리를 자꾸 간지럽혀 봐요.
아이구 간지러워! 이거 참 좋다고 할 수도 없고 나쁘다고 할 수 없고 그렇죠?
이런 것은 上下의 不通으로 오는 겁니다.
그런 증상에는 脾臟正格을 놓지요.
사촌이 땅을 사면 아랫배가 끊어지게 아파요.
이 때는 어느 經絡에 손상이 올까요?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봤을 때 성격이 나쁜 사람은
왜 아랫배가 싸르르 하면서 화장실을 한번 씩 가야 할까요?
신경성 대장염 증상이 왜 봉급생활자들에게 많을까요?
그 전날 술도 안 먹었고 밥도 잘 먹고 나왔는데
왜 그렇게 자꾸 아랫배가 아프면 어떤 經絡의 증상일까요?
아랫배가 아프면 冷해서 올까요? 아니면 더워서 올까요?
冷해서 온다면 원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첫째 太陽經을 들 수 있지요? 太陽經은 어떤 마음의 반응이라고 그랬죠?
긴장과 공포 같은 것이 너무 조심스레 오는 경우지요.
끊어지게 막 칼로 베는 것 같이 아파 오는 증상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陽明經에 해당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겁이 많고 상사들한테 계속 눈치 보이고,
조그만 잘못에도
“에이! 너 말이야 잘라 버리겠어, 엉? 너 같은 사람 이 세상에 수두룩해” 하면
자신의 처지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속으로 앓게 됩니다.
사실 조직사회에서의 윗사람에 대한 공포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험 때만 되면 화장실 가고 싶은 학생들이나
다른 사람이 땅을 산 것이 배가 아프고 시기 질투가 일어나는 것은
陽明經이 더 강하게 된거죠.
너무 실하게 되어서 그런 겁니다.
한편 윗사람에게 혼날까봐 수동적으로 공포를 느끼는 것은 太陽입니다.
반면에 약간 능동적으로 남을 죽이려는 것은 少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少陽은 아니고 배가 살살 아프다,
누가 자꾸 오랫동안 배가 사르르르 아파오면
手太陽少陽經이나 足太陽膀胱經을 놓지 말고
手少陰心經이나 足少陰腎經을 놓으면 싹 풀어져요.
약간 우측으로 오는 膽石疝痛이나 腎氣通 등은
허리에서부터 배 부분까지를 칼로 그냥 확 베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는 手太陰肺經을 놓지요.
그런 사람들은 뭔가 재물을 많이 잃었든지
일생 동안 재물을 가져보지 못한 고통을 마음속에 끈질기게 간직하고 있는 겁니다.
부자에게도 그런 증상은 있어요.
부자란 무엇입니까? 재물이 많은 것입니까?
거지가 빌딩이 불타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어때? 저런 빌딩을 갖지 않은 이 거지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하니?”
한 말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렇게 불타는 것이 아무 걱정되지도 않는구나.’ 이것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100억을 가졌는데 50억을 더 벌어야지. 졸라 매자하면
手陽明大腸經에 엄청난 나쁜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아주 정력적으로 사업을 추진해가는 사람 중에
인간미 없이 돈만 밝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유가 없고 날카롭습니다.
눈매가 샤프합니다. 그건 독기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오래되면 자꾸 배가 아프죠.
강력히 附子 한 냥을 써도 안 낫더란 말입니다.
돈을 수십억이나 가진 사람인데도 그렇게 배가 아파요.
그건 전부 陽明經에 터무니없는 에너지가 있는 것이지요.
七情이 얼키고설켜서 마음이 답답하고 배가 아플 때 七氣湯을 씁니다.
식물 중에서도 어떤 한 가지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한계점을 가지지만
사계절에 두루 쓰는 白茯神과 같은 것은 전체성을 가진 대표적인 약입니다.
“方藥合編” 上統 66번에 白茯神이 들어가는 처방이 있습니다.
“方藥合編”을 잘 활용하여 洋方病名을 따르지 말고 韓方病名과 증상을 활용하세요.
옛날 저의 스승이
“바닷가에 가서 개업할 때는 附子를 잘 쓰고
산중에 가서는 消化劑를 잘 쓰고
도회지에 가서 개업하게 되면 환자를 보지 않고도
10사람 중 7사람에게는 歸脾湯을 쓰라”고 했습니다.
저희 집에서도 열 사람 중 다섯 사람에겐 歸脾湯입니다.
왜 바닷가에 사는 사람에게 부자를 쓰라고 했을까요?
차기 때문이지요.
산중에 사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다가 잔칫집이라도 있다 하면
달려가서 배부르게 먹고 대개 체하거나 아니면 잘 먹지 못해서 병이 들기 쉽지요.
그러니까 소화를 잘 시켜주거나 補하는 치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얕은꾀를 부리지 않지요.
그런데 도시에서의 생활은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면장쯤만 되어도 그렇게 거만할 수가 없어요.
뒷짐 딱지고 아주 뭐 대단합니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은 동장을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서울에서 돈 1억 있어봐야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냅니다.
부자소리는 어림도 없고 그저 집칸이나 있는가봐! 그저 먹고 사는가 봐!
그런데 시골로 1억만 가지고 내려가면 금방 유지가 되요.
방범위원장, 무슨무슨 회의, 또 국민학교 운동회 때 가서 한번 연설도 할 수 있습니다.
도시란 비교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곳입니다.
기죽기 싫거든 시골에 가서 개업하세요.
조그마한 시골 안에도 소규모의 사회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규모지만 전체를 이해하기에는 시골이 안성마춤입니다.
그런데 도시생활이라는 것은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열심히 월급장이 해서 한 7년쯤 지나 계장이 되어
신입사원복 입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흐뭇한데,
과장만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야 되거든요.
한 10년쯤 지나면 과장이 되어 부하직원을 내려다보지만
부장만 들어오면 부동자세로 딱 있어야 되지요.
또 부장쯤 되어 높은 것 같지만 이사가 들어오면 벌떡 일어나야 되고,
이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도 회장이 한번 행차했다 하면 당황합니다. 딱하죠.
그 층층시하에서 어떤 사람이 잘난 겁니까?
지난번에 통행금지가 한번 된다고 하니까
부인에게 “여보! 나 오늘 통행금지 때문에 집에 못 가게 되었소”
눈치껏 전화를 하고는 뒷방에서 고스톱을 치는 남편 군상들, 불쌍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한번 마음 놓고 고스톱도 한번 못 치는 세상이 됐는지.
부인에게 묶이지 않은 것 같아도 교묘하게 묶여 있습니다.
서로 먹히고 먹혀가는 이 인간의 고립 이것이 도회지 생활에서 역력합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니까 이 얕은 생각을 기막히게 해야 합니다.
내가 이기지 않으면 내가 당장 죽는 거예요.
기업에서 회의를 하는데, “Idea를 대라” 하고는 회장이 딱 지켜보고 있습니다.
“멋진 Idea를 찾지 못하면 이번 감원조치에서 해고 되는데….”
이건 참 사람 말리는 겁니다.
농부들처럼 자주 찬바람을 쐬거나, 비 오는 날 못자리하다가 병이 오면 雙敗湯
또 바닷가에서 바람 맞아서 병이 왔을 때 附子理中湯! 을 먹이면 효과가 있지만
도시사람들에겐 그런 것 소용없어요.
도시인에게 제일 좋은 처방은 바로 歸脾湯입니다.
歸脾湯
治憂思 勞傷心脾 健忘怔忡
當歸, 龍眼肉, 酸棗仁(炒), 遠志, 人蔘, 黃芪, 白朮, 白茯神 各一錢 (4g)
木香 五分 (2g) 甘草 三分 (1.5g) 薑 五片 棗 二枚
酸棗仁은 볶으면 잠이 오고 볶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지요.
遠志는 말 그대로 뜻을 멀리해 주는 것이므로 사람 마음을 너그럽게 해주는 거지요
그런데 遠志하고 꼭 같이 들어가는 心竅의 痰을 치료하는 것에 무엇이 있지요?
石菖蒲지요. 석창포가 약에 꼭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當歸, 龍眼肉, 酸棗仁炒, 遠志, 人蔘, 黃芪는 補心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人蔘은 만병통치약입니다.
백출은 袪濕之劑이면서 補脾之劑요. 즉 脾臟을 補하는 것입니다.
백복령을 안넣고 백복신을 넣습니다.
木香, 甘草, 薑 五片, 棗 二枚가 들지요.
“治憂思 勞傷心脾 健忘怔忡”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잊자 하다 보면 건망증이 생깁니다.
건망증이 왜 생기는 줄 아십니까?
여러분들의 무의식세계에서 잊어먹고 싶은 것입니다.
신화에 우화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은 참 굉장히 슬픈 동물입니다.
옛날 희랍에 왕과 아름다운 부인과 그 왕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사위와
비옥한 국토와 백성이 있는데 어느 날 이 왕이 도망을 갔어요.
그런데 이 왕비가 어찌나 그 왕을 사랑했는지 10년 20년을 찾아다니다가
다 늙어서 만났는데 이 왕이 꽃 밑에서 가만히 멍청하게 앉아 있더래요.
그래서 왕비가 막 붙들고 울었어요.
“어째 당신은 가만히 있기만 합니까?”
그런데 이 왕은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은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기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잊는 거지요.
잊는 것은 자기 의식적인 노력이라고 과감히 전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애인하고, 사귀고 있는데
“어머! 미안해. 아휴, 내가 전화를 깜빡 잊었지 뭐야”
이럴 때는 조용히 돌아서세요.
그녀의 무의식 가운데는 그 남자에 대한 실망이 몇 가지 생긴 겁니다.
그래서 잊어버리려는 노력을 안 해도 깜빡 까먹게 되는 거지요.
깜빡 까먹는 것 좋아하네.
“어! 미안해! 어제 3시에 약속한 건 내가 깜빡 까먹었지만
4시에 약속장소에 가서 1시간이나 기다렸어. 미안해!”
이것은 속보이는 말로 심리학에서 나옵니다.
제가 전공이 정신과 아닙니까?
속으로 싫어하고 실망했거나 뭔가 어떤 여자하고 비교를 한다던가
어머니가 “얘 그 여자 사귀지 말아라. 사주보니까 좋지 않다더라” 하던,
엄마 말에 영향을 받아가지고는 은근히 자르려 하는 무의식적인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똑같이 함께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데이트를 잘 할런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잊어먹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미안해! 그만 사정이 이렇게 되어서…”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솔직합니다.
歸脾湯에서는 白茯神이 하나의 君藥의 하나지요.
龍眼肉은 加減을 잘 해야 합니다.
뚱뚱한 사람은 절대로 안됩니다.
왜? 龍眼肉의 맛이 어떻죠? 단 맛입니다.
통통한 사람에게 歸脾湯을 쓰면 잠이 더 안 오고 몸이 더 노곤해집니다.
歸脾湯도 부작용이 많아요.
그리고 귀비탕에 꼭 가미해야 될 약으로는 石菖蒲 외에도
香附子를 三, 四錢을 가미해야 합니다.
향부자는 많이 넣을수록 좋아요.
어린애 오줌을 받아다가 童便炒를 하세요.
동변이 없으면 미지근한 소금물에라도 담구어 두었다가 볶아서 주어야 합니다.
香附子는 원래 부인들 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인들보다도 남자들 약에 더 좋습니다.
왜냐? 옛날 남자들은 산수구경도 제법 다녔는데,
요즘 남자들은 아침에도 회의, 점심때도 회의, 밤에도 그렇고,
12시, 1시까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스트레스를 한껏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면
“여보, 뭐 사왔어? 손에 들고 온 것 뭐야?” 이러고 앉았어요.
“아빠!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는데?”
매양 달라는 것 투성이에요. 자기한테 준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불쌍합니다.
그때는 香附子를 최소한도 12g 이상씩 마음 놓고 쓰세요.
便香附子, 柴胡, 梔子가 들어가는 加味歸脾湯은 여자들 月經不順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三焦經이나 少陰經의 열을 내려주는 처방으로 쓰는 약이기도 합니다.
“氣不升降 加便香附子“라고 했듯이 앞으로는 香附子를 많이 쓰세요.
도시의 감옥 속에 사는 사람들을,
싸늘한 콘크리트벽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다면 歸脾湯을 즐겨 쓰세요.
불쌍하게 생각하시고 香附子를 마음껏 넣어주세요. 값도 싸고 좋습니다.
소나무와 같이 四時를 지낸 식물은 津液, 이파리, 열매…등이 다 좋습니다.
茯神이라고 하는 물건이 신기하지만
복신을 키워내는 소나무가 더욱더 신기하지 않습니까?
白茯神만 생각하지 말고 소나무가 어떤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을 해 보세요.
옛말에 소나무가 푸르른 것은 白雪이 뒤덮인 겨울에 드러나고
대장부가 남몰래 닦은 도는 난세에 더욱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五運六氣로 厥陰, 少陰, 太陰…을 배우고,
“陰陽 나누는 ‘비교’가 병이 된다. 정신분열이 된다”,
“우등과 열등을 가르지 마라”하면서 남몰래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두면
나라가 흔들거리고 지구가 어지러워지는 현대의 머지않은 미래에
반드시 그 빛을 찬란히 발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茯神의 맛은 아무 맛도 없는 것이 유별난 특징인데
이렇듯 무미의 맛을 터득한 한 나무이므로 神木이라고 불립니다.
모란꽃을 왜 꽃 중의 여왕이라고 하는 줄 알아요?
향기가 없기 때문에 모든 꽃 중의 왕이 되는 것이지요. 아시겠어요?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기 때문에 담백하고도 우아한 품위가 더 돋보이는 것이지요.
마음을 비워야만 천지를 포용할 수 있듯이
白茯神과 같이 무미하여야만 만 가지 맛을 다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잡다하게 장시간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맛을 섞어서 쓰든가 무미의 약을 쓸 때도 중화를 고려할 줄 알라는 얘기입니다.
쓴 맛이라도 益母草와 같이 삼키고 싶은 것이 있지요.
예를 들면 해물 중에 쓰면서도
씹다 보면 입안이 달콤해지면서 목으로 넘기고 싶은 게 있죠?
그게 뭐죠? 멍게지요.
맛은 쓴데 자꾸 속으로 들어가는 성품을 가진 것이 있지요.
쓴 맛은 뱉습니다만 단 맛을 퉤퉤 뱉아내는 사람 있어요?
또 신 것을 먹고서 뱉아냅니까?
물론 너무 시면 뱉을지 모르지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신 맛이나 단 맛은 기운을 밖에서 안으로 吸入하는 작용이 있으므로 ‘陰’字가 붙습니다.
그리고 뱉아내는 것은 陽에 속하지요.
吳茱萸를 씹어보면 그 매운 맛 때문에 한참을 뱉아내어야 할 정도입니다.
짠 맛도 마찬가지지요.
“그 놈은 소금같이 짜! 하숙방에 놀러가도 과자부스러기 하나 내놓을 줄 몰라!”
“에잇 짠 놈!” 그러면서 퇴 하고는 침을 뱉지요.
이렇게 짠 맛도 뱉어내게끔 하는 성질이 있지요.
이런 모든 것은 사실이 전제되고 나서 이론이 생긴 것이지,
이론에 사실을 대입시킨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酸, 苦, 甘, 辛, 鹹의 맛에 厥陰, 少陰… 등의 六經을 접목시킨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지요.
환자가 숨이 너무 팽팽해서 숨을 좀 죽이고 싶으면 大黃, 芒硝를 넣습니다.
미친 사람이 담을 넘으며 마구 날뛸 때 大黃, 芒硝를 쓰면 풀이 폭 죽어요.
또 뚱뚱한 사람 발산시킬 때 매운 약을 쓰는 겁니다.
몸이 냉한 사람을 데우고자 할 때 吳茱萸같은 것을 넣지요.
건조한 약으로 알고 있는 半夏는 꼭 법제를 해서 써야 합니다.
“薑汁에 반드시 법제를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법제를 하지 않고는 二陳湯에 못씁니다”
“濕이 많고 뚱뚱한 사람에게 二陳湯을 썼는데 왜 낫지 않을까?”
그런 경우의 반하를 보면 법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生半夏를 하나씩 드릴테니까 씹어 먹으면서 가세요. 어떤지 아십니까?
목 안이 심하게 갈증을 느낍니다.
여러분! 간혹 生半夏를 쓸 때에는 生薑을 많이 넣으라고 해야 됩니다.
후배들이 개업하고 있는 집에 가보면 熟地黃 약통이 비어 있어요.
“왜 비어 있느냐?”하고 물으면
“熟地黃은 泄瀉가 심해서 없애버렸어요”라고 합니다.
인삼통도 비어있어요.
“왜 인삼은 안 넣지?”
“熱이 심해서요…”
“大黃은 왜 안 넣지?”
“아 그거야 극약 아닙니까?”
“半夏는 왜 안 써?”
“半夏먹으면 목구멍이 쪼여 붙는다고 그래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150개 약통 중에 한 100가지가 비었어요.
“蟬退(매미껍질)는 왜 안 넣느냐?”
“손님들이 한번 열어보고 벌레껍질 넣는다고 그래서…”
이건 사실이예요.
여러분들! 한의원에 가서 열어 보세요.
글쎄. 麥門冬 없을 땐 뭘로 쓸거예요?
熟地黃을 넣어준다거나 黃精을 넣어준다거나 해야 될 거 아니예요?
半夏가 없으면 뭘 넣지요?
南星으로 대신하고 튀밥으로라도 대신해야 될거 아니예요?
대신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면 바보예요.
마침 覆盆子가 없다면 破故紙라도 많이 넣어줘야지요.
하다못해 산딸기 익은 거라도 말려서 넣어줘야지요.
이렇게 대신할 줄 알아야 됩니다.
熟地黃은 소화가 안 되니 넣지 않고, 熱을 낸다고 人蔘, 附子를 빼버리고 나면
八物湯에서 중요한 약이 2가지나 쑥 빠지고 말지요.
또 “黃芪는 왜 꿀로 법제를 안 해 놓았지? 왜 그냥 생으로만 쓰지?”하고 물으면
“요새 꿀 값이 얼마나 비싼데요?
선배님도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런 실정입니다.
半夏, 南星, 胡椒, 蓽撥… 이런 것은 陽明에 관한 약입니다.
吳茱萸, 小茴香 등은 少陽에 해당하지요.
太陰에 해당하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天門冬, 麥門冬, 甘草… 熟地黃은 太陰에도 가깝고
太陽寒水에도 가깝지요(生地黃은 太陽).
그런데 少陰君火에 관계되는 약이 좀 어렵습니다.
쓰면서도(苦) 데워주는 附子같은 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附子를 씹어 먹어보면 자꾸만 삼키고 싶어지지요.
우리가 많이 먹고 있는 일상음식 중에도 少陰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쓰면서도 火氣도 많고 물기도 가장 많은 것으로는 술이 가장 대표적이지요.
그래서 술은 몸을 덥게 하는 데나 諸經으로 引經시키는 데에 쓰지요.
少陽之氣에 가까운 것은 제가 처음부터 자주 얘기해드렸지요.
바로 담배는 藥性이 약간 쓰면서도 가볍습니다.
그래서 少陽之氣에 가깝지요.
담배를 피면 지식이 쪼로록 배설되면서 멍하게 되지요.
바둑 같은 知識勞動을 할 때 열심히 생각하다 보면 마구 골치가 아프지요.
그 手가 그 手 같고 막 어지럽습니다.
이때 담배를 한대 피우고 나면 뭔가 단순해짐을 느낄 수 있지요.
멍한 상태에서 다시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지식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담배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인 밥은 太陰에 해당하는데, 조미료는 어떻습니까?
식초는 厥陰, 고춧가루는 陽明, 소금은 太陽… 이렇듯 조미료도 곧 六經이지요.
그러니까 입맛에 맛는 대로 “오늘은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그럴 때는 음식에 식초를 듬뿍 뿌려 먹습니다.
“아 오늘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 이럴 때는 무엇이 좋을까요?
음식에 고춧가루나 겨자를 많이 넣으면 좋지요.
옛날에 M선생님은
“술 좋아하는 사람은 겨자를 한 숟갈 타서 미리 마시고 가거라.
그리하면 절대로 酒痰에 걸리지를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제가 藥物論에 나오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하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들어 주세요.
白芥子는 어디에 쓰지요?
半夏나 南星類는 전반적인 濕을 제거하는데 쓰지만,
白芥子는 주로 어디에 있는 痰을 제거시킵니까?
“方藥合編“上統 51번 金水六君煎을 보면 “氣弱者는 不用“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氣가 약한 사람에게 쓰면 안되지요.
白芥子는 독한 약이예요. 자칫하면 큰 일납니다.
매우면서도 탁 쏘는 살기가 강한 약입니다.
처음에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지만
일단 겨자 맛을 들이고 나면 생선회를 먹을 때 겨자 없이는 못 먹는다고 하지요.
陽明燥金이므로 마른 사람에겐 좋지 않겠지요.
이 白芥子는 피부와 근육사이로 돌아다니는 痰을 치료하는데 탁월합니다.
흔히 일컫는 늑막염에 白芥子와 川芎을 쓰면 참 좋지요.
약은 순하게 써야 합니다.
그런데, “늑막염에는 黑丑, 白丑, 海金砂에다 利尿劑를 쓰든가,
小靑龍湯에 麻黃을 三錢 써야지” 이런 사람이 있다면 큰일이지요.
사람잡기 꼭 알맞습니다.
그저 藿香正氣散에 이뇨제와 白芥子, 川芎을 조금씩 넣어서
서서히 풀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 맥주를 많이 마셨으니 겨자를 좀 넣자 고추도 좀 넣어 볼까?
너무 매울 때는 설탕을 좀 넣으면 좋지요.
요리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렇게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가 있는 것이죠.
음식점에서 일방적으로 꼭 같은 음식을 내오는데 이것은 손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元祖’에 해당하는 음식점에 가면 五味가 고루 들어가도록 요리를 해서 내놓습니다.
음식이건 우리 생활이건 예술이건 종합적으로 구성된 것은
우리를 몰아의 경지로 인도합니다. 신에 대한 공감이지요.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은 자기도취를 유발시키기 일쑤입니다.
잠시 자신을 잃고는 대단한 경지를 경험한 듯이 착각을 합니다.
전체가 배제된 것은 어떤 것도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지요.
“方藥合編”을 보면 藥性歌에 각 약초마다 入經이 둘 이상씩 나오는데,
그 중 하나는 自經을 일컫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체로 상대經絡 즉 치료가 되는 경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의 기본은 六經이요 곧 陰陽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를 알면 만을 알 수가 있지요.
앞으로는 本草學을 두려워 마세요.
예를 들어서, ‘맛이 달다(甘) 入太陰經, 陽明經’이라고 쓰여 있다면
‘아하! 自經인 手太陰肺經과 足太陰脾經으로 들어가고,
手陽明大腸經, 足陽明胃經으로 들어가서는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로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심오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大黃은 어느 經絡으로 入經할까요?
대황은 짠 맛과 매운 맛이 합해져 있습니다.
쓴 맛이라고 하지만 맛을 보면 그리 쓴 맛도 아니예요.
이런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될까요?
또 단 맛인데도 太陰經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신 맛이라고 전부 厥陰經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 맛인데 藥性이 가볍고 매운 맛이 좀 섞여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건 여러분들이 任意用之하셔야 되는 부분입니다.
6.
藥의 香, 産地, 形, 質, 色 가운데에서 이번에는 色을 한번 살펴볼까요.
色을 봄에 있어서는 五色을 보기에 앞서 먼저 그것의 광택을 봐야 합니다.
광택이란 疏密 즉 성기냐 치밀하냐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 그 고유의 광택을 유지하는 것일수록 좋겠지요.
배 껍질이 사과 껍질처럼 반들거린다거나
수박 꼭지가 말라비틀어져 거무스름하다면 이건 틀린 거죠.
먹어 보나마나입니다.
이렇게 藥物의 광택을 본 다음에는 厚薄 즉 두께의 두껍고 얇음을 보고,
그 다음에는 氣의 升, 降, 浮, 沈을 보고 난 뒤에 맛을 봅니다.
"方藥合編"의 藥性歌에서 蓽撥을 찾아보면
"蓽撥辛溫下氣易 痃癖陰疝霍瀉痢"라고 되어 있고 入手足陽明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맛이 매우므로 당연히 陽明經으로 들어가겠지요.
필발의 맛은 순수 辛味로 다른 맛과는 거의 복합이 되지 않는가 봅니다.
또 下氣를 주로 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이해를 잘 해야 합니다.
이것은 氣를 위로 올려줌으로써 아래가 뚫어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銀丹에 제일 많이 들어가는 薄荷는 맛이 조금 맵습니다.
신미가 많지요.
辛味는 발열성인데도 박하는 해열제로 쓰입니다.
외워서 될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도 박하의 신미만을 쫓아서 박하를 上焦의 발산에 쓰면 안 되겠지요.
박하사탕을 먹어보세요.
가슴속이 시원해지는 가을 기운(凉)이 있습니다.
박하를 가을에 채취함은 지극히 당연하겠지요.
天氣란 춘하추동 중의 어느 氣를 받느냐 하는 것이고
그 약의 성질은 아마도 더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氣와 味를 두루 살피지 않으면 큰일나지요.
사람을 볼 때는 성격과 체격을 다 보아야 합니다.
그저 체격만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파악해선 안 되지요.
뚱뚱한데도 少陽之氣가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매사 복합적으로 잘 관찰해서 이해하고 난 뒤
六經的으로 분배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신맛은 거두는(收) 성품이 있고 少陰은 익히는(熱) 작용이 있으며 번성을 시키므로
꽃의 화려함에 대비를 시켜 설명했던 적이 있지요.
少陽은 발산작용에 살기를 동반하고, 陽明은 발산작용에 凉한 느낌을 동반합니다.
太陽은 유연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風, 寒, 署, 濕, 燥, 火이지요.
色을 살펴보면 청색이나 녹색은 대체로 厥陰의 기운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봅니다.
대체로 발산하고 動하는 성질이 있는 白光에 비해,
안으로 위축이 되고 모이는 성질의 靑은 靜하는 기운이 있습니다.
少陰은 赤, 太陰은 黃, 少陽은 白色光, 陽明은 白色, 太陽은 黑色인데
灰色은 어디에 해당할까요?
검정에 흰색을 합친 것이므로 陽明과 太陽의 혼합이지요.
스님들의 회색 옷은 인간의 마음을 動하게 하는 것의 근본인
少陰君火의 妄動을 다스리기 위해서
少陰을 치는 두 가지 색깔을 혼합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옷 색깔만 척 보고도(의상이든 장신구든)
그 사람의 성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과일은 풋 것일 때는 파랗고 신데,
익으면서 점점 노랗게 변해가면서 (太陰으로 변하면서) 그 맛이 달콤해지지요.
이러한 色에 대한 이론은 사람들이 잘 아는 편입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수박은 파란 색인데도 어째서 맛이 달지요?"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닙니다.
기실은, 그동안 죽 보아왔듯이 예외가 더 많지요.
매사를 이론에 대입시키려 하지 말 것이며
어느 한 가지 면을 쫓아 속단하지 말 것을
여러 차례 역설해 온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그런 질문을 하실 만큼 아셨으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하나 깨우쳐 갈 때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으리만큼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한그루의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지만
그것의 색깔이 변함에 따라 맛도 따라서 변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심어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엔 모양(形)을 살펴봅시다.
식물의 대체적인 모양에 회전을 하는 것,
즉 말려 있는 것은 厥陰에 가깝습니다.
잎이 은빛을 칠한 듯 솜털이 보송보송 나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그대로 미끄러져 내리는 건조한 것은 陽明에 가깝겠지요.
陽明之氣를 지닌 담배는 마른 땅에서 자랍니다.
배수가 조금만 더디어도 이내 잎이 상하고 맙니다.
진흙에서 자라는 미나리가 濕하리라는 건 이제 질문을 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일이 덜 익어서 파랄 때에는 딱딱하지만
노랗게 익으면 무르고 연하고 부드럽게 되지요.
시고 파란 것은 움츠리고 팽팽한 긴장성을 갖지만,
바나나와 같이 달고 노란 것은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이런 太陰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뚱뚱한 사람은
少陰에 해당하는 식물이나 사람(마른 사람)보다
씨앗을 생산한다거나 자식을 낳는 점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뒤떨어집니다.
中和에의 푸근함으로 종족번식에 대한 집착이 없지요.
花草가 가련한 것일수록 꽃을 많이 피우고,
바짝 마른 사람들이 일찍 결혼을 하는 것도 다 한가지 脈絡인 것입니다.
지금은 학교 교수라는 사람들이 엉뚱한 연구만 하니 학생들은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은 四柱觀相쟁이에게 가서 공부하고,
내일은 五運六氣 선생 찾아가고, 무면허돌팔이에게 가서 배우고,
"黃帝內經"의 대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산 속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이 말 들으면 이 말이 옳고 저 말 들으면 저 말이 옳고
갈팡질팡, 횡설수설 하다보면 6년입니다.
그나마 그렇게 찾아다니는 사람은 또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방학 40일 동안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들은
학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 생각됩니다.
환자가 오면, 역대 돈 잘 번 한의사의 처방 메모나 잔뜩 모아 놓고
그것 컨닝하느라 급급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絡石이 腰痛에 좋다고 하니까 絡石을 쓰고,
은방울꽃이 좋다고 하니까 은방울꽃을 쓰는 이런 기이한 술법,
기이한 비방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두통에 지렁이 갈비가 좋다니까 "지렁이 갈비 구해와라"하고,
두통에 印堂이 좋다니까 무조건 印堂을 쓰고는
환자 앞에서 폼 잡느라고 퉁기고 돌리고 야단입니다.
기본적인 迎隨補瀉, 圓補方瀉도 모르는 주제에 퉁기고 긁는 것은 또 무슨 경우입니까?
요즘 침은 일본식 실침으로 가늘고 아프지 않은 데다,
환자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무려 백 개씩이나 꽂아대는 작태 정말 한심합니다.
補瀉法도 모르고 일본식의 가는 침을 쓰면서 일본 흉내 내는 몰골,
이건 망할 징조입니다.
얼마 전 漢醫學을 韓醫學으로 바꾸었는데
漢에서 韓으로 바뀌었다고 내 것으로 금새 되는 것입니까?
남 흉내 내는 것을 한의학이라 해도 됩니까?
우리 고유의 방법을 쓸 때 진짜 한의학이 되는 것이지요.
'漢'자나 '韓'자나 그게 뭐가 그리 큰 의미입니까?
그저 껍데기, 겉치레만 좋아해 가지고...
韓醫學으로 명칭을 바꿔놓고 주체성을 많이 강조하는데,
실제 우리 民族醫學을 개발해 낸 주체적인 사상이 있고나서 주체가 있는 것이지
그런 노력도 없이 이름만 바꾸면 주체성이 찾아집니까?
여러분들이 "舍岩針法"책에서 舍岩針의 효능을 보셨더라도
임상에 들어가면 충격 받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어! 一度에 快差하더라.
이것은 여러분들이 시골로 의료봉사가면 하루에 두서너 건씩 접하게 되는 일입니다.
여름방학 때 의료봉사 갔던 어떤 학생은
膀胱炎으로 출혈을 하며 10년 동안 전국에 있는 종합병원에 다 돌아다녀도
낫지 않았던 환자를 足太陽膀胱經 正格 한 방에 낫게 해 주었다나요.
정말 듣는 것보다 실제 임상에서 놀라운 것은 舍岩針法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한방 계는 급합니다. 외부에 눈을 돌릴 틈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의학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관의 개발이 필요한 것입니다.
객관적인 직관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다분히 자기 성찰적으로 되어야 합니다.
제가 강연을 통해서 누누이 주장하는
'자기관찰의 방법'은 최고의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흔히 死體實驗이나 動物實驗으로 대체되어지는 인간의 생리, 병리의 연구방법은
아주 보잘것없고 졸렬한 방법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生理, 病理현상은 생체의 조건하에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심적 활동의 복잡 미묘한 현상이므로
死體나 動物의 실험으로 파악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 욕심과 공포, 희열과 분노,
안심과 놀람 등의 복잡한 정신활동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생은
그대로가 하나의 우주입니다.
이러한 것을 이미 生의 활동이 정지된
死體의 해부학적인 구조를 관찰한다 해서 나타날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나를 관찰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결론의 필연성과 당연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이런 무의미한 시도로부터 자유로와야 합니다.
분하면 열이 오르고 숨이 차고 上氣가 되는 등의 육체적인 반응이 수반되는데
이 분노라는 情的인 현상과 빨간색의 상기된 물질적 현상 사이에는
어떠한 금을 그어 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긴장하면 땀이 난다든가, 신경만 쓰면 소화가 안 된다는 등의
모든 감정과 육체의 반응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의학은 인간학일진대
살아있는 인간을 그 대상으로 하는 학문임이 분명합니다.
經絡의 존재가 死體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의식 활동과 감정 활동의 통로가 경락이므로
이미 死體에서는 감지될 수 없음도 자명합니다.
死體가 공포를 느끼고 추워 떨거나 즐거움을 느껴 웃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의학자는 가장 가까운 자신을 관찰해야 하고
스스로 '자신에게서 배우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경전이나 의서의 이론에 의한 참고는 곧 자기 확인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경전이나 의서의 복잡 미묘한 응용적 처방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의 구조, 심리적인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커다랗게 묶을 수 있는 어떠한 이론체계가 나온다면
그런대로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이론을 외워서
자신의 규격이나 특징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자신의 內面洞察을 통한 자아의 이해는
모든 인간의 생명활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옛날 아테네의 哲人 소크라테스의 명제인 '너 자신을 알라'는 이 한마디의 경구는
곧 동의학자에게 필수불가결한 말입니다.
남을 알기 전에 나를 아는 현명함은 곧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작업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곧 우주의 축소판 모델이자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는 깊은 통찰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생리를 좀 더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직관의 출발은 자신의 심리적인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민감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니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문적인 타협이나 아전인수격인 인용으로부터 탈피해야 합니다.
어떠한 동양철학적인 개념을 증명시키기 위해서
굳이 서양의 물질적 과학적 개념으로 설명을 해야만 합니까?
동양의 모든 영적이며 지적 철학적인 용어가
모조리 서양용어로 되어 있음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임상가들이 현실 적응 상 西洋醫學的 병명을 쓰거나 진단학적용어를 암기함이
혹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환자의 신뢰를 얻거나
설명의 편의상 방편으로 꼭 필요한 정도 이외에,
東醫學的 개념을 일부러 학문적으로 결부시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요?
소위 痒疹漢治라는 명분은 흡사 동서양의 지혜를 총동원한
고도의 지성적 산물같은 냄새를 풍기지만,
실제의 치료 관점에서 보면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마른 사람이 중이염으로 왔다고 가정합시다.
이 사람은 두말 할 나위 없이 陰虛하므로 위궤양이든 머리의 병이든 다리의 병이든
어떤 병이든 일단 陰을 먼저 보충시켜주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경우 六味地黃湯이나 十全大補湯을 쓸 수가 있겠지요.
반면에 뚱뚱하게 살이 찐 사람이 中耳炎으로 왔을 때에는
袪濕利尿, 發汗을 적당히 해주고 또 조금, 데워줄 필요가 있으므로
附子 조금 升麻 조금, 半夏, 南星, 薏苡仁은 좀 많이, 麻黃 조금, 利尿劑는 많이 씁니다.
이렇게 袪濕, 利尿, 發汗을 시켜주면 귀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위장도 좋아지고,
몸이 붓는 것도 좋아지고 신경통도 좋아진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방의 '전체적인 관점'입니다.
陰虛浮腫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方藥合編"上統 40번 六味地黃湯을 한번 볼까요.
거기에 보면 腎水가 부족할 때 쓴다고 쓰여 있고 뒤로 쭉 넘어가면,
"陰虛浮腫에는 熟地黃을 조금 줄이는 듯하면서
(숙지황은 너무 많이 쓰면 泥滯物質이 되어 通氣에 방해가 됨)
牛膝, 車前子, 肉桂를 써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니? 浮腫에는 보통 五苓散, 四苓散(下統 10번), 木通, 澤瀉, 猪苓, 車前子 등을 넣는데
왜 六味地黃湯을 쓰는가 하는 겁니다.
六味란 물을 더 넣어주는 작용을 하는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한방의 특성입니다.
중국빵 중에 '공갈빵'이라고 껍데기만 있고 속이 빈 바삭거리는 빵이 있듯이
사람이 부었더라도 너무 허하여 껍데기만 부은 (가물 때 땅의 표면이 붕 떠오르듯이,
특히 논바닥 같은 곳)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利尿가 안 되서 그렇다고 보고
利尿劑를 써서야 되겠습니까? 이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주면 가라앉겠지요.
이것이 바로 기가 막힌 직관입니다.
그러니까 陰虛浮腫이 되어 浮하게 뜬 사람에게 계속 이뇨제를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제 경우는 六味地黃湯 10첩으로 깨끗이 고쳐 준 적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결코 말라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얼굴을 잘 보면 안색이 부황 뜬 것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못 먹어서 부황이 있는 사람에게 蔘出健脾湯(上統 21번),
平胃散(下統 22번)을 써서야 되겠습니까?
삭힐 것은 별로 없고, 소화력은 왕성해지니 위장이 제살마저 소화시켜버릴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겐 熟地黃이나 龍眼肉, 麥門冬, 天門冬 등이 좋은데
구할 수가 없다면 묵을 사먹인다거나 쌀로 미음이라도 해 먹여야지,
소화제를 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화제 먹고 체하면 무얼로 소화시킬 겁니까?
그러므로 우리 한방은 병명위주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그저 위궤양에 ××탕, 신경통에 ××탕
이런 암기식의 痒疹漢治 치료법 같은 것은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습니다.
사람이 말랐는지(燥), 뚱뚱한지(濕) 정도도 살펴볼 필요조차 없는
획일적인 처방의 암기는 극히 비논리적이며 터무니없이 불합리한 것입니다.
무리한 인용과 陰陽觀없는 한방지식의 남용은
심각한 진리퇴행의 현실을 낳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전대보다 못하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언뜻 보면 매우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西洋醫學체계가
실제 임상에서 어떻습니까?
갈수록 패배감이 짙어가는 지금의 현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갈등없는 진료태도는 學問觀의 뚜렷한 정립에서 비롯됩니다.
진찰이론과 처방이론의 어긋남에서 오는 위화감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 집안엔 부자들이 많으니 개업해서 보약이나 팔아먹지 뭐,
대충 보약이나 팔아먹는데 陰陽觀 필요있나!
철따라 歸脾湯이나 팔아먹고 精力制 따위의 비싼 약이나 팔아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한의사 면허증 반납하고 식품영양사 자격증이나 가져가세요.
질병과 싸움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雙和湯이나 十全大補湯사세요. 陽氣不足이나 早漏症 치료합니다"
하고 돌아다니게 될 겁니다.
지금은 졸업생이 많으니 경쟁은 치열한데,
연구나 공부는 안하고, 양의학자들이 버리고 있는 이론을 교과서로 배우고 있습니다.
양의사들이 한의학을 전공한 사람을 우습게 안다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의원 경영상의 테크닉 개발에나 몰두하는 한의사가 있다면
그는 병에 도전하는 원리의 갈등으로 해서 학문적 배경의 확신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한의사로서 陰陽, 寒熱, 虛實, 經絡에 대한 임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한방 책을 공부해서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洋方書籍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지요.
여러분 학교에서 공부는 하세요. 교수들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러나 잊어버리세요.
여러분들이 한의사로 존재하려면 陰陽觀부터 공부하셔야 됩니다.
洋藥師들이 지금 한의사들이 공부하는 傷寒論을 공부해서
洋藥을 韓藥의 이론으로 처방을 내린다면 그 洋藥은 韓藥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한방에서는 利尿劑를 단순히 이뇨제로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간단하고 좋은 처방을 하나 일러드리지요.
소아가 3개월 이상 설사를 하면,
白朮 40g, 車前子 20g (白朮은 조금 炙하는 것이 좋음)이면 됩니다.
옛날에 傷寒論 교수가
대학교 6년 동안 이 처방 하나면 본전 빼는 거라고 한 처방입니다.
설사에 補脾除濕시키고 運脾시키는 白朮을 쓰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이뇨제인 車前子를 왜 쓰는지 이해가 안가지요?
간단합니다.
오줌으로 나가야 할 것이 똥으로 나오니까 利水를 시켜주면 될 것 아니겠어요?
설사의 치료방법은, 무조건 收斂之劑로 틀어막는 것이 아니라
먼저 利尿를 시키는 것입니다.
숯가루로 된 돼지표 구리겔이라는 약이 있었는데,
이것은 大腸을 거두어서 건조하게 하여 틀어막는 방법이므로
아무리 효과가 좋다 해도 그건 제 2의 방법이지요.
한방에서 설사는 제일 먼저 利水부터 시킵니다.
자꾸 물 설사가 나오는데 그걸 틀어막아서 어쩌자는 겁니까?
大腸을 틀어막으면 小腸으로 넘어오고 小腸을 틀어막으면 胃腸으로 넘어오는데
이런 식으로는 결국은 토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利尿를 시키면 아무 탈 없이 낫습니다.
(車前子는 氣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利尿를 시킵니다).
이건 기가 막힌 처방입니다.
蔘出健脾湯보다 더한 처방을 써도
利尿劑가 들어가지 않으면 설사가 잘 낫지 않습니다.
특히 물만 먹으면 洞泄하는 증세에는 반드시 이뇨제가 들어가야 합니다.
설사에 利尿를 시키지 않아서 나중에는 六味地黃湯으로
陰虛를 보충시켜 주어야 하는 경우도 자주 생깁니다.
의사는 뜻을 얻어야 됩니다.
양약사가 이걸 가만히 보니 아주 재미있는 이론이거든요.
그래서 소아들 설사에 라식스란 이뇨제를 조금씩 넣어 줘보니 100% 잘 듣더라던군요.
그러나 이것은 한방이론입니다.
한의사가 한의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양약을 썼다면
그 양약은 곧 한약이 되는 것입니다.
洋藥師들은 機轉 이외의 것은 모릅니다.
반면에 우리의 처방은 어떻습니까.
신 맛이 필요한데 五味子도 떨어졌고 木果도 다 떨어졌다면
가까운 약국에서 비타민 C를 사다가 빻아서 넣어 줄 수도 있겠지요.
기본적인 觀만 있다면 우주 만물이 다 한약이 될 수 있습니다.
양약도 陰陽醫學的인 관점에서 보면 전부 한약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관점을 터득하기까지는
양방의 외우는 지식을 그저 졸업에 지장 없을 만큼만 들어두세요.
깊이 한방의 관점을 터득한 후에 洋藥觀을 가지고 양방의 허점을 구별하고
또 그 장점을 취하셔야지요.
지금은 스님(僧)도 아니고 俗漢도 아니예요.
우리 四溟大師의 스승인 西山大師께서
"末世가 되면 박쥐중(낮엔 머리 깎고 다니며 반야심경 외우고,
저녁엔 가발 뒤집어쓰고 요정 출입하는 중)이 많이 생길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앞으로는 陰陽五行觀을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東洋醫學者가 창궐할 것입니다.
스님도 아니고 속한도 아닌,
東洋學者도 아니고 한의학자도 아닌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外典을 공부하는 것은 칼로 흙을 베듯 아무 득이 없습니다.
여러분 원전으로 돌아가라는 저의 간절한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벙어리 염소중과 같은 교육으로 인해서
저는 대학 졸업 후 13년간을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제 전철을 조금 덜 밟으세요.
제가 10년을 고통 받았다면 여러분은 1년만 받고,
여러분들의 후배는 1개월만 받고,
그러면 나날이 달라져서 우리 한의학의 정신적인 풍토가 개선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성인의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한의학을 연구하여
허준과 같은 사람이 한 번 더 탄생되면 국위선양 뿐만 아니라
인류건강의 기초가 달라질 것입니다.
제 강의에 잡다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여러분들에게 이론을 넣어줘서 잘 먹고 잘 사는 한의사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고
동양의학이라는 병의 원리에 도전하는 학문에 대한 확신감을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신념, 신념만 가지고 가신다면
저의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학문과 임상 즉 기초와 임상이 분리된 것 같은
대학의 학문풍토는 과감하게 지양되어져야 합니다.
나는 기초교실에 있으니까 임상에는 약하다느니,
나는 임상을 주 전공으로 하고 있으니까 기초에는 약하다느니 하는
무책임한 태도 따위는 이론과 실제의 분리에서 오는
공허를 메꾸려는 자기도피요 자기합리화일 뿐입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오직 원리의 터득을 기초로 한 임상태도이며,
원리는 동양고대의 지혜로운 陰陽五行의 원리에 대한 재조명과 깨달음입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깊이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東洋醫學革命小考에서,
①비방위주의 아집 적이고 자기보호적인 태도의 축출
②혁명이란 의문 없이 일어날 수 없다
③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고백할 줄 아는 진리에 대한 무지의 고백
④전통의학을 보전하려면 서양의학을 흉내 내지 말라 등의 얘길 했습니다.
물질분석에 지친 서양의 모든 학계가 이제 동양의 종교를 탐사하러 오는 이때,
Ego의 확대만을 위한 야심의 학자들로 득실거리는 대학풍토는
참으로 한심스럽고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학 6년간 周易卦象 하나도 들어보지 못한 채
숱한 해부학적 낱말의 기억만을 강요당하는 학문풍토에서
직관을 공부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미끈하게 조직화된 과학적 논리에 물든
西洋醫學 체계의 연구가나 교수들이 잘 알지도 못하고서
韓醫學을 경멸 조롱하는 이 현실 속에서
상해가기만 하는 자존과 비하의식의 회복은
오로지 참된 동양의학관의 재정립으로써만이 가능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한 조직학 교수는 강의시간에 아예 노골적으로 韓醫學을 경멸하길 예사로 했습니다.
여러분! 조직화 되어서 얼핏 보면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 실천적이지 못한 학문이 과학입니다.
물론 우리가 연구해야(科學을) 될 부분이 없지는 않겠으나
그보다 한 걸음 앞서 강조하는 것이 바로 직관입니다.
구겨진 자존과 비하의식은
오직 참된 동양의학관의 재정립으로써 일으켜 세워져야 합니다.
비웃음만 당하는 동양적 직관적 방법이란 과연 그토록 어리석은 것인가?
그런데 直觀의 세계를 현재의 서양학자들은 또 왜 그렇게도 갈구하는 것일까요?
直觀! 이것이야말로 열쇠요 해답입니다.
이것이 곧 혁명의 주춧돌입니다.
직관은 주관인가? 객관인가?
보편타당하다고 알려진 상식이 직관인가?
나만이 알고 있는 인식의 독특성이 직관인가?
혹은 안다는 상태의 변형이 직관인가?
이러한 모든 추측은 직관의 주체가 아닙니다.
마치 죽음에 대한 추측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듯이 말입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직관은 지식이 동원되는 마음의 세계가 아닙니다.
"저기 있는 꽃이 무엇이니?
수선화! 으응 수선화로구나. 그래 알았어"
그런데 수선화라는 이름을 안다고 수선화 전체를 안다 할 수 있을까요?
시골사람 두 명이 만나서 서울에 가본 척을 하느라고
남대문 문지방 너비를 문제로 서로 다툽니다.
"33.3cm야",
"아니야 38.99cm야",
"아니야!"
"맞아!..."
이렇게 싸우는 모습을 본 서울 사람이
"남대문에는 문지방이 없소
당신들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라고 했다.
실지로 그 시골사람이 남대문을 다녀왔고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직관이란 기억이나 지식과 별개의 것인데... 꽃이름이 무슨 소용입니까.
아하! 머리 끄덕끄덕 하며 저게 수선화로구나 하면 끝입니다.
그것에 대한 직관, 직관으로 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공부가 지금 너무 없어요.
서양에서도 이젠 외우고 분석하고 쪼개는 학문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서양 물리학계의 최고봉인 카프라(Fritjof Capra)는
"이런 통찰은 갑자기 일어나는 경향이 있는데
책상 앞에 앉아 등식을 풀고 있을 때가 아니라
욕탕 속에서 심신을 녹이고 있을 때나
숲속이나 해변을 거닐고 있을 때처럼 허심할 때 홀연히 떠오르는 특성이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학을 공부하고 "黃帝內經"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
虛心이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니, 觀心이니 道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 되겠어요.
公案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항상 이 虛心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비우라고 합니다.
어떤 학생은 公案法이 안 풀리니까
"에이! 나는 할 수 없구나 술이나 먹자"
하고는 술을 아무 생각 없이 한 잔 들다가 문득 어떤 느낌이 와 닿아
"음 혹시 이것 아닐까"하며 제게 전화를 합니다.
그럴 때 맞는 답이 나오는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지식이 활동을 하는데 어떤 순간에 그 마음이 싹 비게 됩니다.
일본에는 지금 아이디어맨 전문교육장이 있습니다.
이 아이디어맨을 교육시킬 때 절대로 똑같은 코스로 출퇴근을 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전공이 공학이면 엉뚱하게 미술책을 자주 읽으라고 하다가도
어느 날은 요리책을 읽으라는 식의 전혀 엉뚱한 교육을 시킨답니다.
이렇게 아이디어 학교를 2년간 수료하고 나면,
회사에서 100명의 사람이 생각을 해도 안 되는 것을
이 사람은 현장에서 척척 해결을 해 낸답니다.
한 회사에 아이디어맨 세 사람만 있으면
그 기업을 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장담을 합니다.
그 훈련방법은 다름 아닌 '기억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안 해 보던 일, 안 해 보던 습관, 안 보던 책, 안 먹던 음식...
이런 것과 마주칠 때 과거로부터의 기억이 배제됩니다.
바로 아이디어맨과 같이 창조적인 사람들이 우리 학계에 자꾸 태어나야 합니다.
기존의 교수들이나 舍岩針法을 흉내 내는 사람보다는 창조적인 사람, 깨어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한방에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적활동에 골몰하고 나서 잠시 쉬는 틈에 직관적 마음은 솟아나는 듯하며
이것이 과학적 연구에 희열을 가져다주는
명석한 통찰을 갑작스럽게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직관적 통찰은 그것이 일관성있는 수학적 체계로 형성되고
일상 언어로 해석되어 보완되지 않는다면 물리학자들에게는 無用한 것입니다.
저는 公案을 통해서 여러분의 직관의 세계를 열고,
다시 수학적인 체계로 五運六氣로 들어가서 虛心의 세계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직관과 知의 양면을 다 보완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카프라도 지적인 활동과 직관적인 활동의 이러한 상호보완작업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너무 지적인 활동에 대해서만 골몰해 왔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에게 주로 직관세계를 역설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몇 가지 처방, 鍼術 및 技術을 습득하기는 쉬우나
제가 강조하는 상상력 추리력은 습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여러분이 애를 쓰다가 지치는 어느 순간에 깨달음이 올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닌 六臟六腑에 대해,
五行을 그릇으로 하고 六氣를 내용물로 하는, 卦象을 한번 그려 보시고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유물적, 유심적 取象을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면 足厥陰肝經의 卦象은 重風巽이고 유물적 取象은 피리,
유심적 取象은 책 사러 서점가는 것(지식욕의 충족을 위해서)으로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取象이나 확대 해석을 많이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六臟六腑의 卦象은 다음의 도표와 같습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肝과 三焦, 心과 膀胱, 脾와 大腸, 肺와 胃,
腎과 小腸, 心包와 膽의 卦象이 각기 서로 그 형태가 거꾸로 되어 있지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小腸의 짝이 심장인 줄로만 알고 계셨지요?
그런데 五運六氣上의 짝은 전혀 다릅니다.
위의 그림을 보세요.
五運六氣上 小腸의 짝은 腎臟입니다.
"黃帝內經"에 보면
"腎이 虛할 때 小腸을 補하라"라든가
"肺가 實할 때 胃를 瀉하라"는 등의 이론같 지 않은 이론이 자주 나오는데,
이 이론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튼 心包의 짝이 痰이 되고, 大腸의 짝이 脾臟이 되고 膀胱의 짝이 心臟이 되고,
三焦의 짝은 肝이 됩니다.
이를테면, 우리 舍岩針法에서는 足厥陰肝經의 병을
手少陽三焦經으로 고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관으로 들어가서 상상하고 추리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러다가 행여 臟腑의 개념을 다른 방향에서 이해하게 될 지도 모르지 않겠어요?
足少陽膽經을 보면 巽風과 震雷가 만나서 雷風恒이라는 卦로 풀이됩니다.
그렇다면 雷風恒이라는 卦의 내용 즉,
'우뢰하고 바람이 만나서 恒이라'는 것이
足少陽膽經의 성격 일부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하므로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이해하셔야 됩니다.
手少陽三焦經의 熱을 足厥陰肝經으로 치료를 한다고 하면
"뭐?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
우리가 열심히 연구안한 것이지 결코 엉뚱하거나 틀린 것이 아닙니다.
12臟腑와 연결지은 卦象을 周易책에서 찾아 깊이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周易의 12괘상 읽어보신 다음 각 경락마다 유물적 유심적 取象 다섯 가지씩 해 보세요.
예를 들면, 足少陽膽經의 유물적 取象은 五行上 그릇은 나무(膽木)이고
내용물은 六氣 중 少陽相火之氣이지요.
따라서 나무(木)를 體, 相火를 用이라 할 수 있겠지요
(참고: 君火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불, 相火는 光明 즉 빛과 같은 것임)
또 '바람 속의 등불'의 경우는 바람이 그릇, 등불이 내용물이 되겠지요.
'물속의 물고기'는 물이 器, 물고기가 質이 됩니다.
여러분 그릇과 내용물의 개념을 확실히 파악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取象을 할 때 보다 넓고 깊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足少陽膽經의 유물적 取象은 '나무 횃불'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取象이란 사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므로
좀 엉터리같은 이야기라 해도 그 뜻만 부합되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유심적 取象을 해 봅시다.
木과 少陽相火之氣가 서로 부딪쳤을 때의 상황은 어떤 것일까요?
木은 厥陰風으로 주로 명예욕, 지식욕, 권력욕 같은 것이고,
少陽相火之氣는 권력에 관계되는 망신, 지식의 망각, 명예를 이루지 못한 비애감,
초조감, 수치심 등이므로 足少陽膽經의 유심적 取象은
'강의실에서 수업 도중 창피를 당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지식욕을 가지고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망신을 당했으니까요.
이렇게 각 경락의 이미지를 유물적으로 유심적으로 取象을 많이 해 보아야만
周易 책에 兌卦는 少女요, 무당이요, 새끼달린 말이요...
하고 적어 놓은 뜻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런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환자가 왔을 때 "음~! 너는 노란 바탕인데 붉은 색이 떠오르는군!
아하! 기본이 土인데 火가 떠오르고 있군,
삐쩍 말라서 陽明燥金인데 의외로 몸이 冷하군 太陽寒水가 들어갔구나!
그러니 어떤 臟腑가 나쁘겠구나"하는 것을 추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 이런 상상 공부가 우습게 여겨질지 모르나 공부 중에 제일가는 공부올시다.
周易이 곧 인간사일진대
우리 한방도 인간사로 풀어 나가야 된다고 저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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