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적신압산(穂積臣押山)을 백제에 보내 축자국(筑紫国)의 말 40필을 하사 하였다.
그 해 12월 백제가 사자를 보내 조공하였다.
그리고 별도의 문서를 바쳐 임나의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娑陀), 모루(牟婁)의 4현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일본서기>
계체8년 3월 반파(伴跛)는 자탄(子呑)과 대사(帯沙)에 성을 쌓아
만해(満奚)와 연결하고 봉수대와 무기고를 설치하여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하였다.
또 이열비(爾列比)와 마수비(麻須比)에 성을 쌓아
마차해(麻且奚), 추봉(推封)과 연결하였다.
<일본서기>
일본서기는 대신들의 협의를 거쳐 계체 6년에 <금촌金村>이 이를 수용하고
임나4현을 백제에 할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가야가 차지하고 있던 임나4현을 <사마>가 정벌한 것을
그들의 역사로 기록한 것이다.
전남 여수, 돌산, 순천, 광양이 다시 백제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기 512년 임나4현을 점령한 <사마>는
513년 다시 전북의 남원(己汶)과 섬진강의 하동(滞沙)을 확보한다.
일본서기는 이 땅을 열도의 천황이 백제에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백제는 전쟁을 통하여 대가야로부터 백년 전의 옛 땅을 되 찾았던 것이다.
계체8년(514년)의 기사는 백제에게 전남의 4현과, 전북의 남원(己汶)과
섬진강의 하동(滞沙)을 빼앗긴 대가야(伴跛)가 전선을 후퇴하여
섬진강과 낙동강 사이로 밀려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서기에서 말하는 반파(伴跛)는 고령의 대가야를 말하며
자탄(子呑)은 진주, 대사(帯沙)는 하동. 만해(満奚)는 의령이다.
이열비(爾列比)는 의령, 마수비(麻須比)는 창녕, 마차해(麻且奚)는 삼랑진,
추봉(推封)은 밀양이다.
대가야가 진주와 하동에 성을 쌓고 의령과 연결하고 의령과 창녕에 성을 쌓아
삼랑진과 밀양을 연결하여 백제의 침공에 대비한 것을 말한다.
梁나라 武帝 天監 연간(502-519)에 고구려에게 패배하여
쇠약해 지기를 수년간 지속하더니 남한땅으로 옮겨갔다.
梁 무제 普通 2년(521) 왕 <餘隆>{무령왕}이 다시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
"고구려를 여러 차례 무찌르고 이제 비로소 통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南史>
대륙백제에 있던 백제의 호족들이 고구려에 귀부하고
무령왕 <사마>는 국내정치가 안정되자
임나4현을 정벌하고 고구려를 공격하여 황해도와 요동반도까지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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