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해왕 14년(AD.323)
5월 큰 비가 내려 무너진 산이 40여 개소였다.
왕이 자책(自責)하며 반찬을 먹지 아니하였다.
<미추味鄒 (292-362)>를 맞이하여 나라를 살피기를 바라서,
모든 재상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였으나 나오지 않았다.
(아이혜)后가 스스로 <미추>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나라의 임금이 편안하면 그 나라가 위태롭다.
오로지 신군(神君)만이 오랫동안 편안히 할 수 있으니
어찌하여 스스로 오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이에 <미추>가 왔다.
7월 혜성(彗星)이 동쪽에서 나타났다가 25일 동안 사라지지 아니하였다.
왕이 근심하였다.
군신들이 모두 <미추味鄒>가 능히 재앙을 사라지게 하고
백성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에 미추를 부군(副君)으로 삼고 남당(南堂)을 나왔다.
(혜)성이 곧 사라져서 감추었다.
이에 나라 안팎에 연회를 베풀고
또 왕의 딸 <광원光元(310-392)>을 <미추>에게 시집보내어 결혼식을 행하였다.
<미추味鄒>는 <알지 閼智(94-155)>의 6세손 <구도仇道(218-301)>와
<내례內禮(186-263)>{아달라와 벌휴의 后}의 손녀 <술례述禮(256-338)> 사이에서
292년에 태어났다.
이때 <조분助賁> 70세, 내례의 손녀 <술례述禮> 68세, <아소례阿召禮>62세,
<첨해沾解> 50세, 홍모의 딸 <아이혜阿爾兮>38세,<미추味鄒> 32세,
아이혜와 조분의 딸 <명원命元> 17세, <광원光元>14세,
내해와 홍모의 아들 <우로于老> 47세, 구도의 아들 <말흔末昕> 46세,
말흔의 아들 <말구未仇> 27세, 조분과 아소례의 아들 <유례儒禮>18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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