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 <호예好禮(BC57-28)>태후는 <금와>왕의 딸이다.
그녀의 어미 <호인>태후는 청하백 <옥두진>의 처이며 <수제>의 천비이다.
성모께서 <금와>의 후가 되니, <호인>은 성모<유화>후의 어미로
<금와>의 승은을 입어 <호예>태후를 낳았다.
단아하고 고왔으며 통통하며 미모여서,
속으로는 <옥인>씨를 전하여 잇고 겉으로는 <금와>왕의 용모였다.
<금와>왕이 동명{상해, 추모}을 사랑하여 처를 삼아주었더니,
정은 부부이고 따져 보면 이모였더라.
<장화獐花(BC42- )>를 낳고 <유리>를 임신하고서 헤어지게 되었다.
후는 대장부의 뜻을 여자가 막는 것은 옳지 않다며
제께서 남하하시는 것을 허락하였다.
성모께서 홀로 지낸지가 오래였느냐를 물으시고서
제의 동생 <해불觧弗(BC55-BC29)>로 하여금 혼인하게 하여서,
갑신년{BC37}에 아들 <왕동王同>을 낳고, 무자년{BC33}에 아들 <왕긍王兢>을 낳고,
임진년{BC29}에 딸 <왕전王典>을 낳았다.
이해{BC29} 정월에 <해불>이 죽고
다시금 제의 동생 <해백觧百(BC46- )>의 처가 되어서
병신년{BC25}에 아들 <갈백曷百>을 낳으니,
때에 <유리>가 이미 성장하여 <갈백>과 다투고 시기하며 화목하지 않았다.
성모께서 <해백>에게 명하여 후를 포기하게 하고는
“동생과 다투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후가 <유리>와 함께 같은 방을 쓰더니 딸 <운雲(BC23?- )>을 낳았다.
제께서 소식을 듣고 누차 꿈을 꾸더니
황금 수천 근을 보내주고 명하여 찾아오게 하였다.
신축년{BC20} 8월에 비로소 제와 란대에서 재회하게 되니,
때에 후는 춘추 이미 서른여덟이었다.
옛 모습이 사뭇 없어졌음에 상께서 측은히 여기시고
“그대를 이리되게 한 것은 나의 죄요."라고 하였다.
후는
“지금 이후로 저는 당신의 품안에 있으면서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앞서 죽은 <도都(BC74-BC24)>후를 능가하여
오래지 않아서 <재사再思(BC19- )>공주를 임신하였다.
<재사>공주가 태어나기 전에 제께서 죽으으니,
새 임금이 천궁 황태후로 높여서 후비들의 당석을 모조리 관장하며
아들 낳기를 비는 일로 즐거움을 삼으시면서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르는 것이니 내가 무엇을 걱정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자연스럽게 늘 제{유리}를 사랑하시어서 스스로 밤일을 감당하였으며,
총애를 받음도 <소召>・<방房>・<온溫>・<전旃>에 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