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47년{단기AD479}을미,
2월, <자비慈悲(414-479)>가 지난해 지진으로 무너진 것들에 깔렸다가
병이 심하여 이달 삼일에 죽었고, 아들 <비처毗処(436-500)>가 섰다.
<비처毗処>의 어미는 <미해美海(393-433)>의 딸이었다.
혹간엔 <미해美海>의 애첩인 倭녀가 <자비慈悲>와 통하여 낳았다고도 한다.
<비처毗処>는 <선혜善兮(459-518)>를 처로 두고서도
이찬의 딸네 집에 묵으며 미녀들과 어지러이 호음하였다.
그런데 <비처毗処>는 효성도 있었고 아랫사람들에게도 겸손하고 공손하여,
<선혜善兮>가 정사를 도맡았다고 한다.
<장수대제기>
자비22년(AD 479)은 토양(土羊=己未)의 해이다.
二月三日 王崩 于上宮 春秋六十六 王性寬仁大慈 雖一草一虫 未嘗擅殺 愛民恤軍
每以盛暑暴寒 問其疾苦 賜以衣食 後宮與宗臣有私 則皆許嫁 與不問其咎
時人以爲聖王 仰之 若父母凶聞 一播 號泣者 載于京野 隣國之人 亦皆縞素 發祥
<자비성왕기>
2월 3일 왕이 상궁(上宮)에서 붕(崩)하였다. 춘추 66세였다.
왕은 성품이 관대하고 인자하여 크게 자비로왔으며
풀 한포기 벌레 한마리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백성을 사랑하고
군사를 구휼하여 무더위와 추위에는 그 질고(疾苦)를 묻고 옷과 식량을 보냈다.
후궁과 종신은 모두 출가를 허락하고 그 허물을 묻지 않았다.
이때 사람들은 성왕(聖王)으로 우르러 모셨다.
마치 부모가 돌아가신 것처럼 우는자들이 경도의 들판에 가득하고
이웃 나라 사람들도 모두 흰옷을 입고 발상(發祥)하였다.
자비왕 22년(479년)
봄 2월 3일, 왕이 별세하였다.
소지[비처라고도 한다.] 마립간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자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이며 서불한 미사흔의 딸이다.
왕비는 선혜부인이며 내숙 이벌찬의 딸이다.
소지는 어릴 때부터 효성스러웠고,
겸손함과 타인을 공경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였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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