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AD524}<안장>6년,

 

 

2월, <순>태자가 로 가서 <각>의 딸 <화양華陽>공주와 혼인하여 돌아왔다.

 

역시 <호>의 소생이었다.

 

<순>이 <호>씨가 유폐된 궁을 찾았더니,

<호>는 우리의 말로 소통하기가 불가능한지라,

입술을 들썩거리더니만 가슴속에서 끄집어낸 글을

<순恂> 옷소매 속으로 던져 넣었다.

 

請送十万兵殺义更立我"

 

"십만 군병을 보내서 <의>를 죽이고 다시 나를 세워주시오

 

라는 열 글자는 추호같이 작았었다.

 

이를 들은 상은 를 치려고 하였으나, <사덕師德>이 간하여 그만두었다.  

 

 

 

3월, 魏에서는, <호胡>를 유폐한 이래로, 도적이 봉기하였다.

 

<육한六韓>・<발릉拔陵>・<고평高平>・<호침胡琛> 등이 각자 임금을 참칭하였더니,

적도들의 위세는 날로 더하여졌다.

 

<후>는 나이가 어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고환高歓>이 수용추장(秀容酋長) <이주영爾朱榮>을 설득하고,

그의 가축과 재물을 풀어서 날래고 용감한 이들을 모으고 호걸들과 결납하였더니,

<후경候景>・<사마자여司馬子如>・<가현賈顯>・<도가영度叚榮>・<헌태憲泰> 등이

<고환高歓>에게 의탁하였다.

 

<이주영爾朱榮>은 신묘한 계략으로 결단이 분명하고,

무리를 엄하고 정연하게 이끌었으며,

<고환高歓>을 보내서 호초피・수정・옥석 등을 바쳐오고 번신이 되겠다고 청하였다.

 

상은 이를 허락하였으며, 명을 내려 책력과 율령을 나누어 주었다.

9월, <담위談緯>가 찾아와 말하길;

 

“<담복談福>이, <호胡>씨와 밀통하고 <의>를 싫어하더니,

몰래 그를 제거하려고 방위를 느슨하게 하고는 <후>와 왕래하고 있으며,

<호>는 <후>를 면대하고, 군신들에게 이르길

 ‘어미와 자식이 갈라져 있으니,

나는 응당 비구니가 되어 숭산(崇山)한거사(閑居寺)에서 살고 싶소.’라 하였고,

<후>가 극력하여 말렸다.”

고 하였다.  

 

 

영주(營州)사람 <유안정劉安定>이 <덕흥德興> 등에게 들러붙어서,

그곳의 자사 <이중준李仲遵>을 죽이고 성을 거점으로 하여 반란하니,

<왕안王安>이 그놈을 미워하며 <안정安定>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

 

이에 <덕흥德興>은 자신의 무리 2천여를 이끌고 월해(月海)에 이르더니,

<모용>씨의 옛 나라를 세우고자 <燕>왕을 자칭하고, 사신을 보내와서 칭신하였다.

 

이에 상이 그의 무도함을 질책하고 토벌하려 하였더니,

그의 무리 중에 찾아와 항복한 이들이 천여 인이었다.

 

농・공・상・약에 능한 이들은 남구(南口)서하(西河) 땅 사이에 살게 하였고,

부랑하며 거짓됨이 많은 이들은

월해(月海)의 바깥으로 내쳐서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덕흥德興>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동(東) 적극원(赤極原)으로 도망하여 지켰다.

10월, 해()왕 <두출梪出>이, 처 <호죽好竹>{발원공 딸이며 상의 수양딸}

아들 <호두귀好豆皈>를 낳자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며 말하길;

 

회()삭()의 북쪽 땅이 크게 어지럽습니다.

<두출梪出>의 종질인 <우문굉宇文肱> 또한 군사를 일으켜 <하발賀拔> 등과 함께

<위가고衛可孤>를 습격하여 죽였습니다.”

라 하였다.

 

<우문굉宇文肱>은 <일두귀逸豆皈>의 현손인 <우문태宇文>의 아비였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