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수제의 죽음

 

羊吉의 폭정으로 쫒겨난 모수제에게

충신 청하백 <옥두진>은 그의 딸 <유화>로 하여금 모수제를 모시게 한다.

 

청하백(靑河伯) <옥두진屋斗辰(BC92-BC45)>이 천제를 위로하며

靑河 땅으로 가시길 청하였더니,

 

임술{BCE59}년 가을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동쪽으로 내려왔다.

 

서풍{가을바람, 하늬바람}이 소슬하여 목마(牧馬){풀 뜯는 말}가 슬피 울고,

천 리 강변엔 부들 꽃 백설 같아도 청산(靑山)은 늙지 않았더니,

인생은 꿈만 같았어라.

청하 땅은 비록 조그마하나 산수는 곱고 아름다우며,

고국원(故國原) 땅 사물들은 예古스럽고 사람들은 순박(淳朴)하며,

안으로는 아름답고 늘씬한 <호인好人>과 <유화柳花{옥두진과 호인의 딸}>가 있고

밖으로는 <두진斗辰>과 <비류侯 오천奧川{호인의 오빠}>이 있어

충성하고 효도하니, 이들을 저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웅심산熊心山> 아래에다 집을 짓고 <압록수鴨淥水>변을 소요하니,

단궁(檀宮){夫余天帝宮의 명칭}>은 비록 동대(銅䑓){큰 누대}는 잃었으나

{다시 짓거나 再起할} 계획을 세울 수는 있었고,

후비(后妃)들은 이미 떠나갔어도 외로이 핀 꽃들이 사랑스러웠고,

기러기들이 물에 노닐고 사슴들이 산을 넘나들어서

비록 내 손안엔 없어도 또한 벗 할 만하였으며,

어부(漁夫)와 초부(樵夫)의 문답으로 구름을 일구면서

<이윤伊尹{湯을 도와 夏를 멸하고 殷을 세우게 한 賤出 宰相}>이 때를 기다리니,

<여상呂尙{周를 도와 殷을 멸하고 齊를 세운 太公姜子 牙}>의 부귀영화는

지난날의 꿈이지만, 청아하고 고상함은 오늘의 행복이었어라.

 

작은 이룸에도 즐거워함은 초요(鷦鷯){뱁새・굴뚝새처럼 작은 새들}의 풍류이었고

괴국(槐國){회화나무・느티나무 숲속}에서 번거로운 것은 개미{玄駒}들의 꿈이었으며,

<유화柳花>는 물과 화목하여서 마음이 넓어 몸에 살이 오르고

<훤화萱花{BC71-BC22}>는 햇빛과 화목하여서 군자가 함께 있을 만하여

<임사妊姒{妊은 文王의 어머니이고 姒는 武王의 어머니로 덕이 있는 부인을 말한다}>의

덕과 <여왜女媧{복희씨의 부인}>어미의 아름다움이었으며,

구름이 두텁고 비가 넉넉하였더니 꽃이 피고 꽃이 지고,

5룡들이 옹위하고 곡선{鶴仙}들이 우익(羽翼){侍立하는 臣下}을 하여서

기린(猉獜) 잔등이에 봉鳳・황凰이 앉았더니

뇌우(雷雨)가 크게 일고 용들이 못 가에서 교합하였더라.

 

하늘이 성인(聖人)을 내실 땐 반드시 이적(異蹟)들이 있었다던데,

룡龍들이 교합하였으니 <황제黃帝{軒轅}>를 잉태하였던 모습이오,

햇빛日이 따라다니며 비추었으니 <서언황徐偃皇>의 징조였으며,

내다버렸어도 밟지 않았으니 <후직后稷>의 전승이요,

알이 변해서 사내로 되었으니 <소호小昊{金天}>의 기록이며,

백수(百獸)가 호위하고 범虎이 젖을 주고 갔으니, 갖가지들이 황제가 될 일이로다.

 

흉노(匈奴)의 <묵돌冒頓{모돈}>과 패읍(沛邑)아이 <유방劉邦>같은 무리들도

역시 용과 교합했단 얘기들이 있었는데,

하물며 <추모芻牟> 같은 성인에 있어서야...!

{☞ 이런 태몽胎夢을 遺跡化함은 시조를 신성시 함이다}

 

제는 이미 추모의 성태를 주었으니 큰일이 이미 끝났음을 스스로 알았더라.

세상만사가 의미 없음을 깨닫고 산수풍경이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이 싫어,

[우발]에서 이룡거를 타고 [중천]에서 기린을 버리니,

옥 채찍은 아무도 없는 물가에서 이리저리 흩날리는데,

꽃구름은 멀리에까지 펼쳐져있더라.

{☞ 모수제의 죽음을 말함}

  

구의산은 멀고 아득한데, 상수 대나무는 피로 얼룩지고,

창해 만 리에서는 지아비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네.

죽은 사람은 그뿐이지만, 산 사람은 어찌할꼬? 

<추모경>

 

 

“구의묘망 상죽반혈九疑渺茫 湘竹斑血”

이 구절은 순(舜)임금이 구의산(九疑山)에서 죽자,

두 왕비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상수(湘水)에서 창오를 바라보며 울었는데,

피눈물이 대나무에 묻어 얼룩이 생겼다는 고사를 말함이다.

 

모수제가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옥유화>를 떠나 스스로 죽음을 택하자,

남은 <옥유화>는 모수제를 그리워하지만 망부석이 되지못하고

다시 금와왕에게 시집을 가야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청하에 압록수가 있다 하였으니 古 압록은 지금의 난하이다.

 

 

<웅심산과 압록수 및 청하>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