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해왕 15년(A.D.324)

 

12월 부군(副君)이 해택(海宅)에서 조회를 받고, 진재(眞齋)를 베풀었다.

 

왕이 아후(阿后){아이혜 (286-362)}와 부군(副君){미추(292-362)}과 함께

운제산당(雲梯山堂)에 가서 대일제(大日祭)를 행하고 해택(海宅)으로 돌아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는데 28일의 저녁이었다.

 

부군(副君)에게 즉위하도록 유명(遺命)을 남겼다.

 

부군이 고사(固辭)하여 피하여 숨었다.

 

아후(阿后)가 눈을 무릅쓰고 부군이 숨어 지내는 야인(野人)의 집에 이르러,

함께 말을 타고 돌아와 상서로운 즉위식을 행하였다.

 

이때가 청계(靑鷄=乙酉, 325년) 원단(元旦, 1월1일)이다.

 

선도(仙徒)들이 해택(海宅)에서 산호(山呼)를 하였다.

 

상서로운 기운이 바다에 두루미치어 가득 찼고, 누런 태양이 떠올랐다.

 

<손광孫光>대사가 항상 말하기를 김(金)씨가 왕을 맡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효험이 있었다.

 

처음에 소비(所非)왕{벌휴의 子 내음奈音(220-?)}의 딸 <술례述禮 (256-338)>가

양정(壤井)의 사당에 있었는데,

꿈속에서 황금색의 큰 새가 화림(花林)으로부터 나와 품으로 안겼다.

 

마음속으로 기이하게 생각하고 조짐을 기다리고 있는데,

<구도仇道 (218-301)>왕이 적기에 기도를 행하였다.

 

이에 구도와 사당 안에서 사합(私合)하였다.

 

(구도가) 말하기를

 

“나의 꿈에 하얀 까마귀가 황금색 닭으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화림(花林)이 성하게 될 운이다.”

라고 하였다.

 

<술례> 역시 꿈을 고(告)하니, 반드시 귀한 아들이 생길 것이라 하였다.

 

기한에 이르자 <구도>의 집으로 들어가 <미추>를 낳았다.

 

우뚝한 코에 임금의 얼굴로,

사유(四乳) 원비(猿臂)처럼 힘이 좋았으며,

너그럽고 후하여 장자(長者)의 풍채가 있었다.

 

3세에 이르자 신선을 알았고,

<구도>가 <손광>대사에게 진경묘법(眞經妙法)을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일찍이 조화(造化)에 통하여, 선도의 마음이 모두 귀의하여 (선도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임금이다.”라고 하였다.

 

조상의 사당 안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옥그릇이 있었는데,

선금(先今)이 처음으로 알현할 때 그 밑바닥에 있는 문장을 보았다.

 

그 문장은 “계존(鷄尊)이 세상을 맡으면 이에 대운(大運)이 이른다.”라고 하였다.

 

이에 천하를 선양(禪讓)하였는데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처음에 <내례內禮(186-263)>태후가 <지마祇摩>帝의 딸로

오랫동안 제위(帝位)에 있었는데,

 

<벌휴伐休(189-256)>帝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나의 자손이 아니면 왕을 세울 수 없다.”

라고 하였다.

 

<옥모玉帽 (238-311)>태후 역시 천신정통(天神正統)인 까닭에

 

<첨해沾解 (274-324)>에게 유명을 남기어 말하기를

 

“비록 <내례>의 자손일지라도 나의 핏줄로 나라를 전하여야

마땅히 진골정통(眞骨正統)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첨해>帝가 이를 따랐다.

 

당시 <첨해>帝의 비(妃) <아이혜阿爾兮 (286-362)>后가 호색(好色)하여

사적으로 총애를 함이 많음에도, 왕이 총애를 하여 그 욕정을 금하지 아니하였다.

 

<말흔末昕 (278-350)>이 간(諫)하여 말하기를

 

“천후(天后, 아이혜)는 사자(嗣子, 대를 잇는 아들)의 신분이니,

사적으로 총애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라고 하였다.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저 사람도 진골정통이다. 비록 나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어찌 해로움이 있겠느냐.”

라고 하였다.

 

<말흔>이 이에 <첨해>가 천하를 사사로이 계승할 뜻이 없음을 알고,

 

이에 <술례述禮>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나의 자식 <말구末仇 (297-358)> 역시 진골이므로 가히 천하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너의 자식 <미추味鄒>는 성덕(聖德)이 있어 선심(仙心)이 그에게 돌아갔으니,

나는 먼저 <미추>를 세워 화림(花林)을 창성하게 하면

신인(神人)의 뜻과 합치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술례>가 말하기를

 

“너의 말은 심히 나의 뜻과 부합한다. 꿈의 조짐이 응당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옛날에 구도세신(仇道世神)이 <장훤長萱>의 집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꿈속에서 금색대조(金色大鳥)를 보고, 마음속으로 기이하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장훤>의 처 <술례> 역시 꿈속에 금색대조를 보고,

 

<장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반드시 귀한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합궁함이 옳다.”

라고 하였다.

 

<장훤>이 이에 <술례>를 끌어안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추위와 싸우느라 방사가 이루어지지 않자

이에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말하기를

 

“내가 무슨 공적이 있어 감히 이 꿈을 감당하겠는가.

이 꿈은 응당 <구도>주공(主公)의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술례>를 나아가게 하여 천거하였다.

 

<술례>는 크게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나아가지 않았다.

 

<장훤>이 이에 <술례>를 업어 <구도>의 침전으로 강제로 들어왔다.

 

<구도>가 말하기를

 

“나의 꿈이 크게 길하니, 너의 처를 빌림이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라고 하였다.

 

<장훤>이 말하기를

 

“하늘의 뜻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술례>를 밀어 넣고 물러났다.

 

<구도>가 이에 <술례>를 안고 따뜻한 햇볕이 있는 쪽에 누워 있다가,

드디어 운우(雲雨)를 이루어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기이하고 상서로운 조짐이 많았다.

 

이때부터 <술례>는 <구도>의 처가 되어 <미추> 니금을 낳았다.

 

이때 <구도>의 나이 이미 75세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장훤>의 아들이라고 의심하였는데,

자라면서 옥모(玉貌, 왕의 얼굴)가 구도와 다름이 없었다.

 

<옥모>태후가 총애하여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많지만 이 아이와 같지 않다.

화림이 흥하는 것은 오로지 이 아이에게 있다.”

라고 하였다.

 

<손광孫光>에게 명하여 선도(仙道)의 후계자로 삼고,

현묘(玄妙)함을 가르치도록 하였는데 십칠팔 세에 이르자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컸으나, 말이 적고 말을 조심하고 그런 연후에 승낙하였다.

 

나라사람들이 그릇이라고 하였다.

 

<옥모>태후가 항상 곁에 두고 살면서 의지하여 말하기를

 

“나의 동생이 아니면 불편하다.”

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조분助賁>帝가 태후사신(太后私臣)으로 명하였다.

 

태후가 죽자 그 진귀한 보물을 많이 얻어 천하의 갑부(富甲)가 되었고,

선도(仙徒)의 빈민(貧民)에게 잘 베풀어,

당시 사람의 인심이 <미추>에게 크게 돌아가게 되었다.

 

<첨해>와 <아이혜>后 모두 <옥모>태후의 유명(遺命)을 존중하여,

사(師)로 삼아 궁중에 맞이하여 진재(眞齋)를 설치하고 재앙을 막았다.

 

<아이혜>后가 깊이 사모하여, 누차로 재목(齋沐)을 부탁하여,

비실(秘室)로 이끌어 들어오게 하여, 진신(眞身)을 주기를 구걸하였다.

 

드디어 상통(相通)하여 기운을 들어올리고,

부부(夫婦)가 되기를 마음으로 약속하여, 이에 <소명昭明>공주를 낳았다.

 

<술례>에게 기르도록 명하고,

 

은밀히 <술례>에게 설명하여 말하기를

 

“이 아이는 <미추>의 딸입니다. 짐은 미추와 더불어 천하를 함께 다스리기를 원하니,

어머니는 <말흔>과 대사(大事)를 의논하여 정함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흔>이 크게 기뻐하며 <양부良夫> 등과 상언(上言)하여 말하기를

 

“재앙을 막는 것은 백성을 살리는 일이며,

성인(聖人)을 받들어 부군으로 세움과 같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첨해>帝는 <아이혜>의 뜻이 <미추>에게 있음을 알고 허락하고자 하였다.

 

<조분선제助賁仙帝 (254-329)>가 그 소리를 듣고 <阿>后의 신뢰 없음을 책망하였다.

 

<阿>后가 이에 <조분>의 딸 <광원光元>을 <미추>의 처로 삼으며 말하기를

 

“내가 <미추>의 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이에 너의 딸을 배우자로 삼아 나라를 전하겠다.”

라고 하였다.

 

<조분>은 선심(仙心)이 이미 (미추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에는 부군(副君)으로 삼기를 허락하였다.

 

<阿>后를 선궁(仙宮)으로 불러 말하기를

 

“너는 곧 나의 처이다. 마땅히 나와 함께 살아야 한다.

어찌하여 <광원>과 부군을 다투려 하느냐.”

라고 하였다.

 

<阿>后가 부득이 선궁으로 들어가

<조분>의 딸 <광명光明 (324-392)>을 임신하며 말하기를

 

“이미 너의 자식을 가졌다. 비록 사적으로 총애를 할지라도 어찌 해가 되겠느냐.”

라고 하며,

 

이에 다시 천궁(天宮)으로 들어와 정사(政事)를 살폈다.

 

<첨해>帝가 손을 드리우고, 부군에게 모두 결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부군의 같은 어머니의 형 (훤술)을 총상(寵相, 이벌찬)으로 삼고

선양을 받을 책략을 준비하도록 하였다.

 

<첨해>帝가 그 뜻을 알고 해택(海宅)에 이르러,

장차 선양(禪讓)을 행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병이나 죽었다.

 

부군이 피하여 즉위하지 않으려 하였는데,

<阿>后가 강제로 <미추>를 세워, 이에 왕위에 올랐다.

 

 

※ 참고

 

진재(眞齋) : 나라에 천재지변등 우환이 발생할 때 선도(仙徒)가 祭를 올리는 것

                 첨해 21년(321년)에는 진재(眞齋)를 행하기 위한 관청을 두기도 하였다.

 

산호(山呼) : 山呼萬歲, 나라의 중요 의식에서 신하들이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하여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부르는 것

 

사유(四乳) : 4개의 젖이 달린 어미 소, 여기서는 백성을 보살핌

 

원비(猿臂) : 원숭이의 팔, 팔이 길고 힘이 있어 활쏘기에 좋은 팔을 가짐

 

 

신라사초에서는 선양하였다 하지만 행간을 들여다보면

<아이혜>와 <말흔>, <말구>, <훤술>등이 공모하여 <첨해>를 독살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우로>는 끝내 역모에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로>는 <아이혜>의 친오빠이고 <옥모>의 외손자이다.

 

<미추>는 <옥모>의 동생이니 외가로는 할아버지뻘이 된다.

 

<우로>는 15살이나 어린 <미추>의 즉위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