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대제22년{AD321}신사,
12월, <외廆>가 아들 <황皝(297-348)>을 세자로 삼고, 궁의 동쪽에 학당을 만들고,
평원(平原)의 <유찬劉讚>을 제주사(祭酒使)로 삼았다.
<황皝>은 모든 소생들과 함께 수업하였고, <외廆>도 짬을 내어 친히 참석하여 들었다.
<황皝>은 뜻이 크고 굳세었으며, 권략도 풍부하고 경술을 배우기를 좋아하였기에,
국인들은 <황皝>을 칭송하였다.
<외廆>가 <모용한(慕容翰)>에게는 요동으로 옮겨서 진을 세우게 하고,
<모용인(慕容仁)>은 평곽(平郭)으로 옮겨서 진을 세우게 하였다.
<한翰>은 민간을 다독여서 편안케 하여
이(夷)인 들은 위엄과 은혜를 느끼고 있었고, <인仁>은 그 다음이었다.
<모용부의 요동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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