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323년 무술년 보을 19년 (燕 易王 10년)
정월(戊戌 十九年 正月)에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병사들과 함께 입궁하여
스스로 번조선왕이라 칭하고 관리를 보내어 이 사실을 윤허할 것을 청하여,
연의 역왕(易王)이 왕이라 칭하는데,
번조선에서는 <수한水韓>이 죽고 후사가 없으므로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하시고 그로 하여금 연나라에 철저히 대비하도록 하였다.
<기후箕詡>는 번한성(番汗城){북경인근,西都}으로 천도를 하였다.
번조선의 제후국인 수유국의 <기후箕詡>{箕子의 후손}가 번조선왕으로 즉위한 것을
중국인들은 箕子조선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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