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제懷帝) 영가(永嘉: 307-313년) 초,
<모용외>는 선비대선우(鮮卑大單于)를 자칭했다.
요동태수 <방본龐本>이 사적인 원한으로 동이교위(東夷校尉) <이진李臻>을 죽이자,
부새(附塞,요새 부근)의 선비족인 <소련素連>, <목진木津> 등이
<이진>의 원수를 갚는다고 겉으로 칭탁하며 실제로는 이를 틈타 난을 일으키고자 하여
마침내 (요동군의) 여러 현(縣)들을 공격해 함락하고 사서(士庶)들을 살략했다.
요동태수 <원겸袁謙>이 여러 번 싸웠으나 패배하니
동이교위 <봉석封釋>이 두려워하여 화친을 청했다.
해마다 침범해 노략질하니 백성들이 생업을 잃고 유망하다가
<모용외>에게 귀부하는 자가 잇달았다.
<모용외>의 아들 <모용한>이 <모용외>에게 말했다,
“제후(諸侯)를 구원하는 것(소련,목진을 돕는 것을 비유)은
근왕(勤王)(요동군을 돕는 것을 비유)하느니만 못합니다.
예로부터 임금이 된 자 중에는
이것(근왕)에 의거하지 않고 대업을 이룬 자는 없습니다.
지금 <소련>, <목진>이 발호(跋扈)하여 왕사(王師,관군)가 복패(覆敗)하고
창생(蒼生)들이 도회(屠膾,도륙)당하니 어찌 이보다 더 심하겠습니까!
수자(豎子,풋내기)들이 겉으로는 <방본龐本>을 명분으로 삼으나
내심 실제로는 침범하기를 바라는 것이니,
봉사군(封使君){봉석封釋}이 <방본>을 죽이고서 화친을 청했으나
그 해독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요동이 무너진 지 거의 2주(周)(2년)에 이르렀고
중원(中原)에 병란이 일어 주(州)의 군대가 여러 번 패했으니
지금이 바로 근왕장의(勤王杖義,근왕하며 의義에 의거함)할 때입니다.
선우께서는 의당 구벌(九伐,아홉가지 죄에 대한 징벌)의 위엄을 표명하여
위기에 처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고,
<소련>, <목진>의 죄를 열거하며 의병(義兵)을 합쳐 주벌하셔야 합니다.
위로는 요(遼) 땅을 복구하고 아래로는 (소련, 목진의) 2부(部)를 병탄하고,
본조(本朝)(진나라)에 충의를 밝히면서도 사사로이는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귀속되니,
이는 즉 우리가 홍점(鴻漸,세력이 강성해지는 것)함의 시작이며,
끝내는 제후들 사이에서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모용외>가 이를 따랐다.
바로 이 날, 기병을 이끌고 <소련>, <목진>을 쳐서 대패시키고 베었고,
2부(部)가 모두 항복하자 이들을 극성(棘城)으로 옮기고,
요동군(遼東郡)을 (다시) 세운 뒤에 돌아 왔다.
회제(懷帝)가 몽진(蒙塵)하여 평양(平陽)에 있어
<왕준王浚>이 승제(承制)하여(황제의 명의로써)
<모용외>를 산기상시(散騎常侍), 관군장군(冠軍將軍), 전봉대도독(前鋒大都督),
대선우(大單于)로 임명했으나 <모용외>는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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