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十一年 庚辰 正月 樂浪王仙方薨

上哭哀之曰 昨年仙玉戰死 今春亞父棄我 何奪朕股肱之甚乎

命槨返葬于馬山 上與周皇(后)親臨立祠

  

方 美風儀 有權術 能愛人下 士中興帝業

而仍欲簒奪 爲周皇后所沮 遂知天命所在 務進南西事未成而薨 年六十四

  

尙多精力 而惑於樂浪少女 而沈疾遽劇 人多惜之

方 能知大體 而不識禮節 烝乙太后如其妻

太后臨崩 命方殉之 上以其爲重臣 不可殉於小節而止之

  

夢太后責其負約 心常缺然

至是 夢見太后怒 拔其根而病劇

樂浪女亦暴死 人以爲太后靈

<고구려사초>  

 

 

미천 21년(서기320년) 경진

 

 

정월, 낙랑왕 <선방仙方>이 죽었다.

 

상이 곡하여 슬퍼하며 말하길

 

 

“작년엔 <선옥仙玉>이 전쟁 중에 죽더니, 이 번 봄에는 아부(亞父)가 나를 버리는구나.

어찌 짐의 소중한 중신들을 다 빼앗아 가는고?”

 

 

<선곽仙槨>에게 마산(馬山)에 반장(返葬)하라 명하였다.

 

상과 <周> 황후가 직접 임하여 사당을 세웠다.

  

<선방(257-320)>은 풍의(풍채)가 아름다웠고,

권모술수가 있어 아랫사람을 잘 아꼈으며, 중흥제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찬탈을 꿈꾸었던 것으로 인하여 <周>황후에게 저지당하였고

마침내 천명이 있는 곳을 알아 남서쪽의 일에 힘쓰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니

나이 64세였다.

 

정력이 좋음을 자랑하다가,

낙랑소녀에게 미혹되어 병이 들고 갑자기 심해졌더니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석해 하였다.

 

<선방>은 일의 큰 줄거리는 잘 파악하였으나,

예절을 알지 못하여 <乙>태후를 증(사통)하고 자신의 처와 같이 대하였다.

 

태후가 죽음에 이르러 <선방>에게 따라죽으라고 명하였으나,

 

상이 그가 중신이기에 예절을 따라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그를 막았다.

  

 

태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하는 꿈을 꾸어 마음이 항상 결연(缺然)하였다.

 

근자에는 태후가 노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의 생식기를 뽑아버리는 꿈을 꾸더니 병이 심하여졌었다.

 

낙랑 여인 또한 갑자기 죽었으니, 사람들은 태후의 영령이 그리하였다고 생각하였다.

  

 

 

※ 참고

 

 

아부(亞父) : 임금이 공신(功臣)을 존경하여 부르는 말

                 아버지 다음가는 사람

 

반장(返葬) : 객지(客地)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葬事)를 지냄

                 낙랑국에서 죽은 선방의 시신을 마산으로 옮겨 장사지내라는 것을 말함

 

 

 

<을불(278-331)>은 종종 <선방仙方(257-320)>을 아버지라 불렀다.

 

<선방>은 서기 257년 <선결仙潔>과 <구우九牛>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천10년(서기309년)에 태보가 되면서

 

조상의 성인 주씨(周氏) 성을 하사받아 다시 周씨가 된다.

 

처인 <면대免大>의 딸 <거지居知(291-359)>는 미천대제의 황후{周황후}가 되었으며

그녀가 낳은 아들 <사유斯由(311-371)>는 고국원제가 된다.

 

<선방>의 아들로서 <선곽仙槨>이 있었는데 그의 딸 또한 고국원제의 황후가 된다.

 

 

고구려 15대 미천대제 <을불>이 봉상을 제거하고 제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등공신 <선방仙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을불이 체포되어 끌려갈 때 그를 구출해준 것도,

 

궁중에 혼란스러움을 야기하여 봉상을 미쳐 돌아가게 만든 것도,

 

 

을불반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도 바로 <선방>이었다.

 

 

그는 잠시 고구려 제위를 찬탈할 꿈도 꾸었던 <周>황후의 아버지였다.

  

 

<선방仙方>의 선조가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周瑜(公瑾)의 후손이다.

 

<선방>의 아버지는 <선결仙潔 (237-308)이고.

 

<선결>의 아버지는 <주선周仙)>이고.

 

<주선>은 바로 <주유>의 서손(庶孫)이다.

  

 

<주유>의 서손인 <주선周仙>이 고구려에 오게된 것은

 

서기236년 오나라가 고구려에게 사신을 보낼 때 그 일행 중 한명이었다.

 

 

사신이었던 <호위胡衛>가 동천대제의 노여움을 사 현도에 유배될 당시

 

18살의 <주선>은 나이도 어린데다 고구려말도 능통하고 예쁘게 생겨서

 

집법령(執法令) <주통朱通>이 몰래 자신의 집에 빼돌려

 

용양신(龍陽臣)으로 삼았으며 이후 고구려에서 계속 살게된다.

  

 

<주통>의 처인 우씨(于氏)가 그를 유혹하여 <선결>을 낳게 된다.

 

<선결>은 똑똑하고 박식하였으나

 

오나라 출신이라는 차별을 받아 중용 되지못하고 있을 때

 

신라인 어머니를 둔 안국군 <달가(256-292)>가 그를 기용하여

 

양맥(梁貊)과 숙신(肅愼)정벌에 큰 공을 세우게 된다.

  

 

<달가達賈>와 <치갈>{봉상제}이 경쟁할 때 <선결>은 먼저 <치갈>을 치고

 

<돌고>태자{을불의 아버지}를 옹립하라 하였지만

 

의(義)를 앞세운 <달가>가 말을 듣지 않자

 

변방지역인 마산(馬山)으로 물러나 거기서 큰 재산을 형성하게 된다.

 

  

마산공(馬山公)으로 봉해진 <선결>은 매우 신중하고 겸손한 인물로

 

공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지냈으나 그의 아들 <선방>은 그와는 반대였다.

 

 

아버지 <선결>이 나서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결국 그는 동생인 <선담仙淡>으로 하여금

 

당시 정벌한 낙랑왕 <자술子述>의 딸을 취하게 하여 낙랑을 장악한다.

 

 

미천10년(서기309년)에는 태보(太輔)가 된 <선방仙方>을 필두로

 

이들의 가족들이 좌보(左輔)를 제외한 고구려 정권의 주요자리를 차지하게 되자

 

<선방>은 5부를 장악하고 반정을 꿈꾸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음모를 알고 있던 딸 周후가 이를 제지하며

 

<선방>을 강제로 마산(馬山)으로 돌아가게 하고

 

<선방>이 임명한 5부의 사자 10명을 모두 없애버린다.

  

 

하지만 <선방>은 머지않아 다시 태보의 지위를 회복하고

 

이후 미천14년(서기313년) 낙랑국 정벌을 주도하여

 

낙랑왕이자 태공(太公)으로 봉하여지게 된다.

 

 

비록 그가 꿈꾸던 고구려의 제위는 차지하지 못하였지만

 

고구려에서 그의 후손들이 황후가 되고 그는 낙랑왕의 지위에 오른 것이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