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년 <모용외>의 계속되는 서부여 침공으로 <의라衣羅260-318>는

신천지를 개척코자 지배층과 함께 남하하던 중 대방에서

백제와 맞붙어 <고이古爾(235~286)>의 아들 <책계責稽(264~298)>가 전사한다.

 

<책계>와 <보과宝果(267~?)>의 아들 <분서汾西(283?~304)>가 즉위하였으나

304년 낙랑국 <자술子述>의 용양신(龍陽臣) <황창랑黃倡郞>에게

젊은 나이에 시해 당한다.

 

<보과>태후는 <분서>의 아들 <계契(300?~358)>가 너무 어려서(5세)

<구수仇首(230~264)>의 아들인 정부(情夫) <비류比流(260~344)>를 왕으로 세운다.

 

<비류>는 제위에 오르기 전 사가(私家)에 았을 때 지방호족인 <진眞>씨와 혼인하였다.

 

비류15년 318년에 <책계責稽(264~298)>의 손자 <계契(300?~358)>왕자는

祖父 책계왕을 죽인 숭신천황{부여 의라衣羅(260?-318)}을 향하여 선전포고를 한다.

 

318년 야마토 수복전쟁에 백제 11대 비류왕의 태자와 쌍둥이 아들들을 동행했고,

쌍둥이 아들 중 동생인 근초고왕자 {야마토 다케루, 倭建命,日本武尊(295-375))}가

뱃머리에 큰 거울을 걸었다.

 

야마토 수복전쟁에서 쌍둥이 형과 태자가 전사하고

야마토 다케루는 당시 가야계 수인천황의 딸 야마토히메<倭比賣(277~366)>에게서

세오녀{히미코卑彌呼} 이래로 여 제사장이 보관하던 주몽검을 건네 받고

열도정벌에 도움을 받는다.

 

숭신천황을 정벌하기 위한 가야와 백제의 연합이었다. 

 

 

일본 본토 이즈모(出雲)와 나라현을 공략할 때

 

야마토히메(倭比賣)가 준 주몽검을 사용했고,

 

마침내 부여계 숭신천황을 죽이고 야마토 정복을 완성시킨다. 

 

 

야마토 다케루는 야마토 정벌 후 333년까지 東征을 계속한다.

 

 

일본수복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근초고왕자는

 

야마토다케루,즉 日本武尊과 倭建命이라는 일본 최고 칭호를 얻었다.

 

 

일본 금탄원 백조릉에 333년 39세로 죽었다는 기록은

 

근초고왕자가 일본의 東征을 완성후 백제로 돌아간 해이다.

 

 

일본 古事記와 日本書紀에서

 

야마토다케루(日本武尊)가 갑자기 병이들어 백조가 되어 날아갔다고 하였고,

 

그래서 백조릉이란 곳이 일본 여러 곳에 생겨났다. 

 

 

야마토다케루(日本武尊)는 333년에 백제로 돌아와 태자로 있다가

 

346년에 근초고왕으로 즉위한다.

 

<계>왕자는 야마토 수복 후 경행(景行)천황으로 재위(318~343)하다가

344년에 백제로 돌아와 백제 12대 계왕으로 즉위한다.

 

그러나 346년 초 선비족 전연의 <모용황>이 서부여를 쳐서

부여왕 <여현>과 5만명의 포로를 끌고 간다. 

 

백제 계왕은 선비족 <모용황>에 대한 패전의 책임을 지고

즉위 2년만에 퇴위 당하고 근초고왕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일본으로 다시 들어갔다.

 

 

Posted by 띨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