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도道는 본래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도道’는 영원불변의 도가 아니니,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도라는 물건은) 이름이 없을 때(無名, 만물발생 이전, 절대계)는
하늘ㆍ땅의 시작점이 되며,
이름이 있을 때(有名, 만물발생 이후, 현상계)는 만물의 엄마가 된다.
그러므로 늘 ‘욕망을 없앰’(無欲)으로써 도의 미묘함을 관찰할 수 있으며,
늘 ‘욕망을 가짐’(有欲)으로써 도의 펼쳐짐을 관찰할 수 있다.
양자는 본래 하나이나 나와서(出, 집에서 나옴) 이름이 달라졌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니 모든 신묘한 것들의 문이 된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 天地之始 有名 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同 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 장자 「천지天地」
황제가 적수赤水의 북쪽을 노닐며,
곤륜의 언덕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왔는데, 그 현주를 잃어버렸다.
많이 아는 ‘앎’(知)을 시켜서 찾게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눈이 밝은 ‘이주離朱’를 시켜서 찾게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말을 잘하는 ‘끽후喫詬’를 시켜서 찾게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이에 아는 것이 없는 ‘상망象罔’(형상이 없음)을 시켰더니 상망이 현주를 찾았다.
황제가 말하기를
“신기한 일이다. 상망이 현주를 찾다니!”라고 하였다.
皇帝遊乎赤水之北 登乎崑崙之丘而南望 還歸遺其玄珠
使知索之而不得 使離 朱索之而不得 使喫詬索之而不得也
乃使象罔 象罔得之 皇帝曰 異哉 象罔乃 可以得之乎
* 보조 지눌스님의 수심결
만약 알기를 구한다면, 마침내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모른다는 것’만을 똑똑히 알면 되니, 이것이 바로 자신의 ‘본성’을 본 것이다.
若欲求會 便會不得 但知不會 是卽見性
제2장 현상계는 모두 상대적일 뿐이다
천하 사람들 모두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나 이것은 ‘추한 것’일 뿐이다.
천하 사람들 모두가 ‘선한 것’을 선하다고 여기나 이것은 ‘선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루어 주며
‘긺’과 ‘짧음’은 서로 비교 대상이 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를 넘어뜨리며
‘음音’과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라다닌다.
이 때문에 성인은 ‘무위無爲의 일’에 머물며 ‘침묵의 가르침’을 베푼다.
만물을 진작시키고도 ‘내’가 그렇게 했다고 자랑하지 않고
만물을 모두 낳고도 ‘내 것’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으며
만물을 위하되 ‘나’만 믿으라고 하지 않고
만물을 위해 큰 공덕을 세우고도 ‘내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오직 그 공덕을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기에 그 공덕이 사라지지 않는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是以不去
*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4계절이 베풀어짐에 만물이 (생장수장으로) 살아간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침묵의 가르침, 소리도 냄새도 없는 하느님의 주재하심,
하늘은 4계절을 성실히 펼침에 만물에게 자연의 길을 가르치며,
성인은 사단을 성실히 펼침에 인간에게 인간의 길을 가르침)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논어 「양화陽貨」)
* 금강경
(형상에) 머무름이 없는 자리에 응하여 보시를 행하여라!
만약 보살이 형상에 머무르지 않는 보시를 행하면 그 복덕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應無所住 行於布施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 音聲(음성), 음音과 소리
“‘소리’는 서로 상응하니 변화가 일어나며,
변화가 일정한 규칙을 갖게 된것을 ‘음’이라고 한다”
聲相應 故生變 變成方 謂之音 <예기禮記 「악기樂記」>
(5음, 宮商角徵羽, 계이름)
제16장 진정한 왕이 되는 비결
텅 빔의 극치에 이르고 고요함을 빈틈없이 지켜라.
만물이 함께 일어날 때 나는 그 돌아가는 곳을 관조한다.
만물이 무성하게 일어나나 각각 그 ‘뿌리’로 돌아간다.
뿌리로 돌아감을 ‘고요함’이라고 하며
이것을 일러 ‘본래의 생명을 회복함’이라고 한다.
본래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을 ‘영원불변함’이라고 한다.
이 늘 그러한 자리를 아는 것을 ‘밝음’이라고 한다.
영원불변의 자리를 알지 못하면 망령되게 되니 흉해진다.
영원불변의 자리를 알면 남을 감싸 안을 수 있으며(仁),
남을 감싸 안을 수 있으면 공정할 수 있고(義),
공정할 수 있으면 ‘왕王’이 될 수 있다.
왕이 될 수 있으면 하늘이 될 수 있고,
하늘이 될 수 있으면 도道가 될 수 있다.
도는 오래가는 것이니 몸뚱이가 죽더라도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蕓蕓 各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 장자 「인간세人間世」
안회가 말하기를 “감히 ‘마음의 재계’(心齋)에 대해 묻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중니(공자)가 말하기를
“그대는 뜻을 하나로 모아라!
‘귀’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들으며, 마음으로 듣지 않고 ‘기운’으로 들어라.
귀는 듣는 것에 멈추고, 마음은 부합하는데 멈춘다.
기운은 텅 비어 있으면서 사물을 대한다.
오직 도道는 텅 빈 자리에 모인다.
텅 비우는 것이 마음의 재계이다”라고 하였다.
回曰 敢問心齋 仲尼曰 若一志 無聽之以耳而聽之以心 無聽之以心而聽之以氣
耳止於聽 心止於符 氣也者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 心齋也
* 음부경陰符經
세 요체(눈ㆍ귀ㆍ입)를 되돌리기를 밤낮으로 하면
군사를 부리는데 만 배의 실력이 될 것이다.
三返晝夜 用師萬倍
제17장 최고의 정치는 무위의 정치
최고의 정치는 백성들이 통치자가 존재한다는 것만을 안다.
그 다음은 백성들이 통치자를 친애하고 존경한다.
그 다음은 백성들이 통치자를 두려워하며,
그 다음은 백성들이 통치자를 업신여긴다.
‘믿음’이 부족하여 ‘불신’이 생겨나는 것이다.
조심하라, 그 말을 귀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공덕을 이루고 사업을 완수하더라도,
백성들이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라고 말한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信不足 焉有不信焉 猶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 맹자
패자의 백성은 기뻐하나, (패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패자의 백성이 된 것을 기뻐함)
왕자의 백성은 스스로 밝을 뿐이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임금도 부러워하지 않고
스스로의 양심에 따르는 밝은 삶에 만족함)
죽여도 원망하지 않으며, 이롭게 해주어도 공으로 여기지 않는다.
백성들이 날로선善으로 옮겨가하면서도 그렇게 만드는 자를 알지 못한다.
孟子曰 霸者之民 驩虞如也 王者之民 皞皞如也 殺之而不怨 利之而不庸
民日遷善而不知爲之者
* 장자 「응제왕」
노담이 말하기를
“밝은 왕(明王)의 정치는 그 공적이 천하를 덮으면서도
자기 때문이 아닌 것 같이 여기며,
만물에 교화를 베풀지만 백성은 이에 의존하지 않는다.
뭐라 이름을 들어 설명할 수 없으나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기쁘게 한다.
헤아릴 수 없는 자리에 서서, 아무 것도 없는 자리에서 노니는자이다”라고 하였다.
老聃曰 明王之治 功蓋天下而似不自己 化貸萬物而民弗恃 有莫擧名
使物自喜立乎不測 而遊於無有者也
제34장 위대함을 초월한 자라야 참으로 위대하다
큰 도道는 넘실거리니 좌로도 우로도 갈 수 있다.
만물이 그를 믿고 따르나 만물을 모두 낳아주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공덕을 이루더라도 그 명예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만물을 입혀주고 길러주되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아,
항상 욕망이 없으니 작다고 이름 지을 수 있다.
만물이 모두 귀의하되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으니,
크다고 이름 지을 수 있다.
끝까지 ‘나’를 위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에 능히 위대할 수 있는 것이다.
大道汎兮 其可左右 萬物恃之 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衣養萬物
而不爲主 常無欲 可名於小萬物歸焉 而不爲主 可名爲大 以其終不自爲大 故能成其大
제37장 도道는 하는 것이 없되 못하는 것도 없다
도道는 항상 하는 것이 없되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한 나라의 왕이 만약 이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이 저절로 변화할 것이다.
만물이 변화하되 ‘욕심’이 일어난다면
나는 ‘이름 없는 통나무’로 그것을 눌러버릴 것이다.
대저 장차 욕심이 없어야 할 것이니
욕심이 없어지면 고요해질 것이며 천하가 저절로 안정될 것이다.
道常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 以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제48장 도는 날로 덜어내야 한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날로 더해가는 것이며
‘도道’를 닦는다는 것은 날로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서 하는 것이 없음에 도달해야 한다.
하는 것이 없어야 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천하를 취하려는 자는 늘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는 것이 있으면 천하를 취하기에는 부족하다.
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
取天下者 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제49장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성인은 늘 마음이 없으니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나는 선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또한 선하게 대하니 ‘덕德’이 본래 선해서이다.
나는 진실한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도 진실하게 대하니 ‘덕’이 본래 진실해서이다.
성인이 천하에 있음에 몽땅 거두어 들여 천하를 위하여 그 마음을 혼연하게 한다.
백성들이 모두 눈과 귀를 (성인에게) 맡겼으니
성인은 그들 모두를 ‘갓난아이’로 만든다.
聖人恒无心 以百姓之心爲心
善者 吾善之 不善者 吾亦善之 德善
信者 吾信之 不信者 吾亦信之 德信
聖人之在天下 歙歙 爲天下渾其心 百姓皆屬耳目焉 聖人皆孩之
제53장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잘 베풀어야 한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어서 ‘큰 도’(大道)를 행하게 된다면,
오로지 ‘베풂’(施)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큰 도는 매우 평평한데 사람들은 좁은 길만 좋아한다.
조정은 심하게 정비되어 있으나 밭은 심하게 황폐해져 있고
창고는 심하게 비어 있으며, 옷은 광채가 나고 날카로운 칼을 차며
음식은 가득 차고 재화는 남아돈다면,
이를 일러 ‘도적의 우두머리’(盜竽)라고 하니 이것은 도가 아니다.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采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盜竽 非道也哉
* 대학
재화를 모으는데 열중하면 백성들이 흩어지고,
재화를 널리 흩어지게 하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
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제67장 나에게는 3가지 보물이 있다
천하는 모두 나의 ‘도道’가 너무 커서 흡사 모자란 것 같다고 말한다.
대저 크기 때문에 모자란 것 같은 것이다.
만약 뛰어난 것 같았다면, 오래전에 작아졌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잘 챙겨서 보호한다.
첫째는 ①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② ‘단속함’이며
셋째는 ③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음’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단속하기 때문에 넓어질 수 있으며,
감히 천하에 앞서려 하지 않기 때문에
완성된 그릇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다.
이제 자애로움을 내버리고 용감하기만 하고
단속함을 내버리고 넓어지기만 하며
뒤에 서는 것을 내버리고 앞서기만 한다면 죽게 될 것이다.
대저 자애로움으로 싸우면 승리하고 자애로움으로 지키면 견고하다.
하느님께서 장차 세워주실 때는 ‘자애로움’으로 호위해주신다.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 久矣 其細也夫
我有三寶 持而保之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爲天下先
慈故能勇 儉故能廣 不敢天下先 故能成器長
今舍慈且勇 舍儉且廣 舍後且先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建之 以慈衛之
제77장 남는 곳에서 덜어서 부족한 곳을 채워주라
‘하늘의 도’(天道)는 큰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은 곳은 눌러 내리고, 낮은 곳은 들어 올린다.
남는 곳은 덜어주고 부족한 곳은 보태준다.
‘하늘의 도’는 남는 곳에서 덜어서 부족한 곳을 보태준다.
‘인간의 도’(人道)는 그렇지 않으니,
부족한 곳에서 덜어서 남는 곳을 돕는다.
남는 것이 있으면서도 ‘하늘의 도’를 받들어 취하는 자는 누구인가?
오직 도가 있는 자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만물을 위하되 ‘나’만 믿으라고 하지 않으며,
큰 공덕을 세우고도 ‘내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자신의 현명함을 밖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則不然 損不足 以奉有餘
孰能有餘而有以取奉於天者 唯有道者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 대한민국 건국강령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三均制度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민先民의 명명明命한 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머리와 꼬리를 균등하고 평등하게 함)하면
“흥방보태평興邦保泰平”(나라를 흥하게 하고 태평함을 보호함)이라 하였다.
이는 사회각층의 지력智力과 권력과 부력의 가짐을 고르게 하여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전ㆍ유지하려 함이니
홍익인간과 이화세계理化世界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킬 바 최고의 공리임.
(1941년 11월 28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민족독립을 앞두고
건국원칙 방침을 제시하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