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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2 화태후(禾太后), 양성(羊聖)

 

 

<화禾(CB138-BC94)>태후

 

<수제漱帝 고두막(BC118-BC59)>의 모친이고

<화상禾相(BC120-BC66)>의 고모이다.

 

<덕황德皇 고우루(BC140-BC111)>이 크게 어지시어

선인(仙人) <애종愛鍾>의 화(禍)를 당하였다.

 

후(后)가 <법황法皇(BC138-BC77)>과 함께

<애종愛鍾>을 잡아 참하여 사직을 지탱하고,

<법황法皇>을 세운 후에 2세후가 되어 <수제漱帝>를 황태자로 삼고

<화상禾相>에게 군정을 위임하여 국기를 안정시켰다.

 

집정한지 열여덟 해에 돌아가시니 춘추 마흔 다섯이었다.

 

태후 (BC138-BC94)(고우루 BC140-BC111) - 고두막(BC118-BC 59)

                                                                    원(BC116- ) 

 

<덕황德皇>의 아들 <수제漱帝>와 딸 <원鼋(BC116- )>을 낳으니,

<원鼋>은 황룡후 <양산羊山(BC116-BC62)>의 비(妃)이다.

 

화상(원) - 화뢰禾賴(BC98-BC78)

양산(원) - 양복羊福(BC93-BC60)

               양방羊芳(BC90-BC59)

               양준羊俊(BC87- )

               양용羊蓉(BC84- )

               양화羊花(BC80- )

               양영羊英(BC78- ) 

 

법황(法皇)의 딸 <구龜>・<오鰲>・<벽>・<조竈>・<별鼈>공주 등과

아들 <각角>공이 있었다.

 

 

 

 

 

 

<양성羊聖(BC118-BC66>황후,

 

휘는 성(聖)이니, 황룡후 <양천羊川(BC140?-BC79>의 딸이다.

 

양천(옥완) -  양산羊山(BC120?-BC62) 

                   양성羊聖(BC118-BC66)

                  

성덕이 있어, 수황(漱皇)께서 아끼며 공경하고

큰 정사를 물으니 돕고 이롭게 함이 많았다. 

 

장녀 <황凰(BC100- )>은 순노후 <오천奧川(BC100?- )>의 비요,

 

오천(황) - 오만奧萬(BC83-BC42)

               오건奧犍(BC79-BC23)

               오명奧命(BC77?- )

               오춘奧春(BC72- )

               오방奧芳(BC62- ) 

 

차녀 <란鸞(B98-BC19)>은 애초에 <화상禾相>의 아들

<화뢰禾賴(BC98-BC78)>에게 출가하여

아들 <양길羊吉(BC79-BC36)>을 낳고 딸 <화잠禾岑(BC82-BC25)>을 낳았으며

<양복羊福(BC93-BC60)>에게 재가하였다.

 

셋째 딸 <금禽(BC96- )>은 호(胡)왕 <허려권거虗閭權渠(BC98?-BC60)>의 처가 되어

아들 <산(계후산,호한야)(BC79-BC31)>을 낳았다.

 

장자는 <존存(BC94- )>이니 넷째이며,

 

넷째 딸 <태駾(BC92- )>, 차자 <총驄(BC88- )>, 다섯째 딸 <화華(BC84- )>,

셋째 아들 <덕德(BC80- )>, 여섯째 딸 <골骨(BC76- )> 등이 있었으며,

 

오빠 <양산羊山>의 딸 <양방羊芳(BC90-BC59)>을 거두어 부후로 삼아놓은 후에

정사를 위임하고 휴거하다가

을묘년(BC66) 봄에 돌아가시니, 춘추 쉰셋이었다.

 

불이성 뒤의 덕황(德皇)릉 곁에 장사하였는데 4국의 난리에 도적들에게 파헤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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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띨빡